클라우디오 라니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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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수비수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세리에 A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US 팔레르모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다. 1986년 감독으로 데뷔하여 이탈리아, 스페인, 잉글랜드, 프랑스 등 다양한 리그에서 활동했다. 특히 레스터 시티를 이끌고 2015-16 시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2024년 11월 AS 로마 감독으로 복귀했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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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라니에리
전체 이름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출생일1951년 10월 20일
출생지이탈리아 로마
182cm
포지션수비수
현재 클럽AS 로마 (감독)
선수 경력
연도1973-1974
클럽AS 로마
출장6
득점0
연도1974-1982
클럽US 카탄차로
출장226
득점8
연도1982-1984
클럽칼초 카타니아
출장92
득점1
연도1984-1986
클럽팔레르모
출장40
득점0
총 출장366
총 득점9
감독 경력
연도1986-1987
클럽비고르 라메치아
연도1987-1988
클럽캄파니아 푸테올라나
연도1988-1991
클럽칼리아리 칼초
연도1991-1993
클럽SSC 나폴리
연도1993-1997
클럽ACF 피오렌티나
연도1997-1999
클럽발렌시아 CF
연도1999-2000
클럽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연도2000-2004
클럽첼시 FC
연도2004-2005
클럽발렌시아 CF
연도2007
클럽파르마
연도2007-2009
클럽유벤투스 FC
연도2009-2011
클럽AS 로마
연도2011-2012
클럽인테르 밀란
연도2012-2014
클럽AS 모나코
연도2014
클럽그리스
연도2015-2017
클럽레스터 시티 FC
연도2017-2018
클럽FC 낭트
연도2018-2019
클럽풀럼 FC
연도2019
클럽AS 로마
연도2019-2021
클럽UC 삼프도리아
연도2021-2022
클럽왓퍼드 FC
연도2023-2024
클럽칼리아리 칼초
연도2024-
클럽AS 로마
훈장
훈장 종류Ufficiale OM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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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선수 시절 주로 세리에 A에서 수비수로 활동했다. 1973년 AS 로마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나, 초기에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두 시즌 동안 6경기에 나서는 데 그쳤으며, 잠시 US 시라쿠사로 임대되기도 했다. 이후 FC 카탄차로 (1974-1982), 칼초 카타니아 (1982-1984), US 팔레르모 (1984-1986) 등 여러 클럽을 거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이 기간 동안 카탄차로에서 두 번, 카타니아와 팔레르모에서 각각 한 번씩, 총 네 차례의 리그 승격을 경험했으며, 1985-86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2.1. 초기 경력

1973년 AS 로마 시절의 라니에리. 파니니 축구 스티커
1973년 AS 로마 시절의 라니에리. 파니니 축구 스티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1973년 AS 로마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하였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두 시즌 동안 6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 이 기간 동안 US 시라쿠사로 한 달간 임대되기도 하였다.

이후 주로 세리에 A 무대에서 수비수로 활약했으며, FC 카탄차로 (1974-1982), 칼초 카타니아 (1982-1984), US 팔레르모 (1984-1986) 등 여러 팀을 거쳤다. 선수 시절 동안 카탄차로에서 두 번, 카타니아와 팔레르모에서 각각 한 번씩 총 네 차례의 팀 승격을 경험했다. 1985-86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2.2. 전성기

1973년 AS 로마 시절의 라니에리. 파니니 그룹 축구 스티커
1973년 AS 로마 시절의 라니에리. 파니니 그룹 축구 스티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주로 세리에 A에서 수비수로 뛰었다. 1973년 AS 로마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했지만, 두 시즌 동안 6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쳐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잠시 US 시라쿠사로 한 달간 임대되기도 하였다.

이후 라니에리는 여러 팀을 거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FC 카탄차로 (1974–1982), 칼초 카타니아 (1982–1984), US 팔레르모 (1984–1986)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수비수로 활약했다. 특히 카탄차로에서 두 번, 카타니아와 팔레르모에서 각각 한 번씩, 총 네 번의 리그 승격을 경험했다. 그는 1985-86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 감독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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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시작기록
경기승률 (%)
Vigor Lamezia이탈리아1986년1987년자료 없음
캄파니아 푸테올라나이탈리아1987년1988년자료 없음
칼리아리이탈리아1988년 7월 1일1991년 6월 30일7223193031.94
나폴리이탈리아1991년 7월 1일1993년 6월 30일6825192436.76
피오렌티나이탈리아1993년 7월 1일1997년 6월 30일14056345040.00
발렌시아스페인1997년 9월 19일1999년 6월 26일7635261546.0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1999년 7월 1일2000년 3월 3일389181123.68
첼시잉글랜드2000년 9월 18일2004년 5월 31일199107464653.77
발렌시아스페인2004년 6월 16일2005년 2월 25일361512941.67
파르마이탈리아2007년 2월 12일2007년 5월 31일1676343.75
유벤투스이탈리아2007년 7월 1일2009년 5월 18일9446301848.94
AS 로마이탈리아2009년 9월 1일2011년 2월 21일9050231755.56
인터 밀란이탈리아2011년 9월 22일2012년 3월 26일351751348.57
모나코프랑스2012년 5월 30일2014년 5월 20일523212861.54
그리스그리스2014년 7월 25일2014년 11월 15일40130.00
레스터 시티잉글랜드2015년 7월 13일2017년 2월 24일7435182147.30
합계 (소스 기준)99445727426341.40

3.1. 이탈리아 (초기)

라니에리의 감독 경력은 아마추어 팀인 비고르 라메치아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팀을 12경기 무패 행진으로 이끌며 리그 선두로 올려놓았으나, 회장과 가까운 에이전트가 데려온 선수 기용을 거부하며 사임했다. 그의 첫 공식적인 감독직은 포추올리의 소규모 팀 캄파니아 푸테올라나였으며, 1987년에 감독을 맡았다.

라니에리가 감독으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칼리아리에 부임하면서부터다. 그는 칼리아리를 세리에 C1에서 세리에 A까지 두 시즌 연속으로 승격시키는 성공을 거두었고, 1989년에는 코파 이탈리아 세리에 C 우승컵도 들어 올렸다. 칼리아리 시절 그의 팀은 경기 중에도 포메이션을 바꾸고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는 유동적인 시스템으로 유명했다.

1991년, 라니에리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던 나폴리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두 시즌 동안 팀을 이끌었다. 첫 시즌에는 리그 4위를 기록하며 UEFA컵 진출권을 따냈지만, 우승 트로피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당시 나폴리는 핵심 선수였던 디에고 마라도나가 출전 정지로 팀을 떠난 상황이었는데, 라니에리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젊은 잔프랑코 졸라를 1군에 적극 기용했다. 또한 베테랑 공격수 카레카와 함께 다니엘 폰세카를 최전방 공격수로 활용했다. 그러나 두 번째 시즌, UEFA컵 2라운드에서 탈락하자 구단주 코라도 페를라이노에 의해 경질되었다. 이는 1라운드에서 발렌시아를 상대로 원정에서 5-1 대승을 거둔 직후였다.

1993년 라니에리는 피오렌티나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임 첫 해인 1993-94 시즌에 팀의 세리에 B 우승을 이끌며 세리에 A로 즉시 승격시켰다. 이후 세리에 A에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가, 1996년에는 코파 이탈리아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1995-96 시즌에는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루이 코스타, 프란체스코 바이아노 등 강력한 공격진을 바탕으로 15경기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리그 선두 밀란에 이어 2위를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 막판 9경기 중 5패를 당하며 최종 순위는 4위에 머물렀다. 다음 1996-97 시즌에는 리그에서 9위로 다소 부진했지만, UEFA 컵위너스컵에서는 준결승까지 진출하여 우승팀 바르셀로나에게 패배했다.

3.2. 스페인

1997년, 라니에리는 스페인으로 건너가 발렌시아 감독직을 맡았다. 그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감독직을 수행하며, 역습을 통한 공격 스타일을 확립하고 팀을 상위권 경쟁팀으로 성장시켰다. 1998-99 라리가 시즌에는 팀을 라리가 4위로 이끌어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으며, 1998 UEFA 인터토토컵 우승과 1999년 코파 델 레이 우승을 달성했다.

라니에리 체제하에서 발렌시아는 전술적으로 엄격한 4-4-2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견고한 수비와 효율성을 보였으며, 적극적인 압박으로 볼을 탈취한 뒤 빠른 역습으로 득점하는 능력을 갖추었다. 또한 선수 육성 및 영입에도 능력을 보여, 유소년 시스템 출신인 가이즈카 멘디에타, 미겔 안헬 안굴로, 하비에르 파리뇨스 등을 육성하고 클라우디오 로페스의 성장에 기여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골키퍼 산티아고 카니사레스를 영입하여 주전으로 기용하는 등 메스타야에서 성공을 거둔 선수들을 영입하기도 했다. 초기에 하위권에 머물렀던 발렌시아를 성공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으며, 1999년 인기 감독으로서 팀을 떠났다.

이후 1999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감독직을 수행하는 동안 팀은 재정 문제로 관리 상태에 들어갔고 경기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팀이 강등 위기에 놓이자, 라니에리는 감독 경질로 악명 높았던 당시 아틀레티코 회장 헤수스 길에 의해 해고되기 전에 스스로 사임했다. 당시 아틀레티코에는 호세 몰리나, 후안 카프데빌라, 루벤 바라하, 산티아고 솔라리, 키코,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 등 재능 있는 선수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1999-2000 라리가 시즌 종료 후 결국 강등되었다.

라니에리는 2004년 6월 발렌시아로 복귀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2005년 2월 경질되었다.

3.3. 잉글랜드 (첼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을 거쳐 2000년 9월 18일 잉글랜드첼시 FC 감독으로 부임했다. 런던 클럽에 도착했을 때 영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해 언어 장벽에 부딪혔으나, 팀 내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를 할 수 있는 선수들의 도움을 받아 소통했다. 또한 나폴리 감독 시절 제자였던 졸라를 중심으로 팀을 운영했다. 첫 시즌인 2000-01 시즌, 첼시는 리그 6위를 기록하며 UEFA컵 진출권을 확보했다.

라니에리는 구단의 지시에 따라 선수단의 평균 연령을 낮추는 작업에 착수했다. 2001년 여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프랭크 램파드, 바르셀로나에서 에마뉘엘 페티와 보데바인 젠던, 아약스에서 예스페르 그뢴케르를 영입하며 미드필더진을 새롭게 구성했다. 또한 마르세유의 수비수 윌리엄 갈라스를 영입하는 등 총 30 이상을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미래의 주장이 될 존 테리를 발탁하기도 했으나, 팬들의 지지를 받던 베테랑 데니스 와이즈를 방출하면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2001-02 시즌, 첼시는 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리그 6위에 머물렀고, FA컵 결승전에서는 아스널에 0-2로 패배했다. 2002-03 시즌 동안 라니에리는 잦은 선수단 교체로 인해 영국 언론으로부터 "땜질 감독(The Tinkerman)"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비판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리버풀을 2-1로 꺾고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클럽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고, 에스파뇰의 엔리케 데 루카스를 자유 이적으로 영입한 것 외에 별다른 보강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라니에리는 사무엘레 달라 보나와 마리오 스타니치의 잠재력을 끌어냈으며, 존 테리, 로버트 후트, 칼턴 콜과 같은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도왔다.

2003년, 러시아의 억만장자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라니에리는 대규모 이적 자금을 지원받았지만, 동시에 그의 감독직은 불안정해졌다. 인수 직후 아브라모비치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스벤-예란 에릭손과 만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감독 교체설이 불거졌고, 이는 시즌 내내 라니에리를 따라다녔다. 라니에리는 2003년 여름, 아일랜드 윙어 데미언 더프(당시 클럽 레코드인 17), 젊은 영국 선수들인 웨인 브리지, 조 콜, 글렌 존슨, 아르헨티나 듀오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에르난 크레스포, 프랑스 미드필더 클로드 마켈렐레, 루마니아 공격수 아드리안 무투 등을 영입하며 120에 달하는 금액을 지출했다.

이러한 대대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첼시는 2003-04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무패 우승을 달성한 아스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는 49년 만에 거둔 클럽 최고의 리그 성적이었으며,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아스널을 꺾고 4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냈지만, 준결승에서 모나코에 패배하며 탈락했다. 특히 모나코와의 경기에서 라니에리가 보여준 이해하기 어려운 선수 교체와 전술 변화는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그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켰다. 비록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는 못했지만, 해당 시즌 첼시는 클럽 역사상 최소 실점과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전 잉글랜드 축구 선수이자 해설가인 데이비드 플랫은 라니에리의 사례를 들며 "우승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것과 실제로 그 팀을 이끌고 우승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결국 1년 가까이 지속된 에릭손 영입설과 구단의 공개적인 구애 끝에, 라니에리는 2004년 5월 31일 첼시 감독직에서 경질되었고, 포르투에서 유럽 대항전 우승을 이끈 조제 무리뉴가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라니에리가 첼시를 지휘한 4시즌 동안 팀의 리그 득점은 매년 향상되었다. 이후 무리뉴 감독 체제에서 프리미어리그 2연패를 달성한 첼시의 핵심 멤버인 존 테리, 윌리엄 갈라스, 웨인 브리지, 클로드 마켈렐레, 프랭크 램파드는 모두 라니에리가 영입하거나 육성한 선수들이었다. 또한 라니에리는 경질 직전 디디에 드록바, 페트르 체흐, 아르연 로번의 영입을 구단에 추천했는데, 이들은 모두 훗날 첼시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게 된다.

라니에리는 첼시에서의 마지막 해를 기록한 책 "Proud Man Walking"을 2004년 9월 출판했으며, 책의 모든 수익금은 런던의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병원에 기부했다.

3.4. 스페인 (발렌시아 복귀)

2004년 6월 8일, 라니에리는 3년 계약으로 발렌시아 감독으로 복귀했다. 이는 전 시즌 UEFA컵과 라리가 더블을 달성한 라파엘 베니테스가 사임하고 리버풀로 떠난 직후였다. 라니에리는 세리에 A에서 마르코 디 바이오, 스테파노 피오레, 베르나르도 코라디, 에밀리아노 모레티 등 여러 이탈리아 선수들을 영입했다. 시즌 초반, 발렌시아는 리그에서 가능한 18점 중 14점을 얻고 포르투를 꺾고 UEFA 슈퍼컵 우승을 차지하는 등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10월부터 발렌시아는 부진에 빠졌다. 7경기에서 단 1승만을 거두었고, 인터 밀란에게 1-5로 대패하며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탈락했다. 이 경기에서는 미드필더 미겔 앙헬 앙굴로가 침을 뱉는 행위로 퇴장당하기도 했다. 잠시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으나, 1월 중순부터 다시 6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하며 부진이 이어졌다.

라니에리는 영입한 이탈리아 선수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출신 플레이메이커 파블로 아이마르를 꾸준히 기용하지 않고 첼시 시절처럼 계속해서 포메이션과 전술을 바꾸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결국 2005년 2월 25일, UEFA컵(당시 UEFA컵) 32강에서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에게 패배하여 탈락한 후 경질되었다. 라니에리가 팀을 떠날 당시 발렌시아는 라리가 6위였다. 그의 발렌시아 두 번째 임기는 총 36경기에서 15승 12무 9패, 승률 41.67%를 기록했다. 발렌시아는 라니에리에게 계약 조기 해지에 대한 보상금으로 3를 지급했으며, 2005년 6월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를 후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3.5. 이탈리아 (파르마, 유벤투스, 로마, 인테르)

2007년 파르마 감독 시절 라니에리
2007년 파르마 감독 시절 라니에리

2년의 공백기 후, 2007년 2월 12일 스테파노 피올리 감독이 경질되자 파르마의 새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강등 위기에 처해 있던 파르마는 라니에리 부임 후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며 반등했다. 삼프도리아와의 첫 경기에서는 1-0으로 패했지만, 이후 10경기에서 승점 17점을 획득하며(이는 전임 감독이 23경기에서 얻은 15점과 비교된다) 팀의 세리에 A 잔류를 이끌었다. 특히 팔레르모 원정 4-3 승리, 메시나전 4-1 대승 등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였고, 겨울 이적 시장에서 합류한 주세페 로시의 활약에 힘입어 취임 당시 18위였던 팀 순위를 최종 13위로 마무리하며 잔류에 성공했다. 시즌 종료 후 파르마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2007년 5월 31일 팀을 떠났다.

2007년 6월 4일, 세리에 A로 복귀한 유벤투스와 3년 계약을 맺고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우디네세의 빈첸초 이아킨타와 아약스의 즈데네크 그리게라 등을 영입했다. 첫 시즌인 2007-08 시즌, 승격팀 유벤투스를 리그 3위로 이끌며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하는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2008년 8월에는 인테르의 새 감독 조제 무리뉴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두 번째 시즌인 2008-09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모두 승리하며 조 1위를 차지했지만, 16강에서 이전 소속팀 첼시에 패해 탈락했다. 리그에서는 부상 악재 속에서 7경기 연속 무승 등 부진이 이어지자 2009년 5월 18일, 아탈란타와의 홈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한 후 경질되었고, 유소년 팀 감독이었던 치로 페라라가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유벤투스는 해당 시즌 코파 이탈리아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라치오에 패했고, 리그는 최종 2위로 마감했다.

2009년 9월 1일, 시즌 개막 후 두 경기 만에 사임한 루치아노 스팔레티의 후임으로 AS 로마와 2년 계약을 맺었다. 로마 출신인 라니에리는 어린 시절 응원했던 팀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그는 실리적인 축구를 통해 팀의 경기력을 극적으로 끌어올렸고, 로마는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인터 밀란을 꺾고 한때 리그 선두로 올라섰으며, 24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라치오와의 더비 경기에서는 0-1로 뒤지던 중 프란체스코 토티다니엘레 데 로시를 교체 투입하는 용병술로 미르코 부치니치의 두 골에 힘입어 2-1 역전승을 거두며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시즌 막판 인터 밀란에게 리그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모두 내주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다음 시즌인 2010-11 시즌에는 2010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다시 인터 밀란에 패했고, 시즌 초반 부진과 함께 팀의 주장 프란체스코 토티와의 불화설 등이 불거졌다. 이후 팀 성적이 다소 회복되었지만, 2011년 2월 20일, 제노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3-0으로 앞서다 4-3으로 역전패한 후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2011년 인터 밀란 감독 시절 라니에리
2011년 인터 밀란 감독 시절 라니에리

2011년 9월 22일,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잔 피에로 가스페리니의 후임으로 인터 밀란 감독으로 임명되어 2013년 6월까지 계약을 맺었다. 데뷔전인 볼로냐 원정에서 3-1 승리를 거두었고, 이어진 챔피언스리그 CSKA 모스크바 원정에서도 3-2 승리를 이끌었다. 2011년 12월부터 2012년 1월까지 라이벌 밀란전 1-0 승리를 포함하여 리그 7연승을 달리며 잠시 우승 경쟁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티아고 모타파리 생제르맹 이적 등이 겹치며 팀은 다시 부진에 빠졌고,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마르세유에 패해 탈락했다. 키에보 원정 2-0 승리로 잠시 경질설이 수그러들었으나, 2012년 3월 26일, 유벤투스와의 홈 경기에서 0-2로 패배한 후, 최근 13경기 2승이라는 극심한 부진과 챔피언스리그 탈락의 책임을 물어 경질되었다.

3.6. 프랑스 (모나코)

라니에리(오른쪽) 2012년 11월
라니에리(오른쪽) 2012년 11월

2012년 5월 30일, 라니에리는 당시 프랑스 리그 2에 있던 AS 모나코와 2년 계약을 맺고 감독으로 부임했다. 첫 시즌인 2012-13 시즌에 모나코를 리그 1으로 승격시켰으며,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리그 2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다음 2013-14 시즌에는 대규모 선수 영입을 바탕으로 리그 1에서 승점 80점을 기록하며 파리 생제르맹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 성적으로 모나코는 UEFA 챔피언스리그 2014-15 시즌 출전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2014년 5월 20일, 계약 기간 만료 후 구단은 라니에리와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았다.

3.7. 그리스 국가대표팀

2014년 FIFA 월드컵 이후 페르난두 산투스 감독의 후임으로 2014년 7월 25일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계약 기간은 2년이었으며, 연봉은 1.6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전 오토 레하겔이나 산투스 감독 시절의 안정적인 팀 운영과 비교하여, 라니에리는 잦은 선수 명단과 포메이션 변경으로 선수단에 혼란을 야기했으며, 그리스 현지에 머물지 않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UEFA 유로 2016 예선에서 약체로 평가받던 파로 제도에게 홈에서 0-1로 패배하는 부진을 겪었고, 경기 다음 날인 2014년 11월 15일에 경질되었다. 경질 당시 800의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라니에리가 이끈 그리스 대표팀은 공식전 4경기에서 1무 3패라는 초라한 성적(승률 0%)을 거두었으며, 팀은 UEFA 유로 2016 예선에서 조 최하위로 탈락했다.

라니에리는 2015년 레스터 머큐리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대표팀 감독 시절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그리스 감독이었을 때 실수를 했습니다. 클럽과 국가대표팀은 다른 직업이기 때문에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네 경기가 있었고 각 경기를 위해 단 3일 동안 선수들을 훈련시켰습니다. 그것은 12일간의 훈련입니다. 12일 만에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단 12일 만에 국가대표팀을 재건해야 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마법사가 아닙니다.

3.8. 잉글랜드 (레스터 시티)

2015년 7월 13일, 나이절 피어슨의 후임으로 레스터 시티와 3년 계약을 맺고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의 임명은 초기에 회의적인 반응을 얻었는데, 가디언의 마커스 크리스텐슨은 라니에리의 잦은 경질 이력과 그리스 대표팀 시절 페로 제도에 패배한 것을 언급하며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라니에리는 8월 8일 선덜랜드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4-2 승리를 거두며 감독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노력했는데, 10월 24일 크리스탈 팰리스를 1-0으로 꺾고 시즌 첫 무실점 경기를 기록하자 선수들에게 피자를 사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레스터 시티는 시즌 초반부터 강세를 보이며 17경기 연속 득점 기록과 함께 크리스마스에 프리미어리그 선두에 올랐다. 이 기간 동안 공격수 제이미 바디는 11경기 연속 리그 득점이라는 프리미어리그 신기록을 세웠다.

라니에리(왼쪽)와 구스 히딩크(당시 첼시 감독)가 프리미어리그 경기 중 터치라인에서 대화하는 모습
라니에리(왼쪽)와 구스 히딩크(당시 첼시 감독)가 프리미어리그 경기 중 터치라인에서 대화하는 모습

라니에리는 부임 후 수비를 정비하고 단순한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견고한 수비와 빠른 역습을 구사하는 전술을 채택했다. 그는 선발 라인업을 거의 바꾸지 않으며 조직력을 극대화했고, 제이미 바디, 리아드 마레즈, 엔골로 캉테, 대니 드링크워터 등 핵심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렸다. 특히 마레즈는 이 시즌 P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2016년 2월에는 우승 경쟁팀이던 맨체스터 시티를 원정 경기장인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3-1로 꺾고 선두 자리를 굳건히 했다. 3월에는 선수들의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훈련 중 "Dilly ding, dilly dong영어"이라는 가상의 종소리를 사용한다고 밝혀, 이 말이 구단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2016년 4월 10일, 선덜랜드 원정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했다. 5월 1일 올드 트래퍼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1-1 무승부를 기록했고, 다음 날 2위 토트넘 홋스퍼첼시와 2-2로 비기면서 레스터 시티는 창단 132년 만에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시즌 시작 전 우승 확률이 5000분의 1에 불과했던 레스터 시티의 우승은 "동화"이자 "스포츠 역사상 가장 놀라운 이변"으로 평가받았다. 라니에리 역시 감독 경력 처음으로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15-16 시즌 우승 후 라니에리와 주장 웨스 모건이 프리미어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모습
2015-16 시즌 우승 후 라니에리와 주장 웨스 모건이 프리미어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모습


시즌 내내 라니에리는 긍정적인 리더십, 성공적인 팀 분위기 조성, 뛰어난 전술 운영 능력으로 언론의 찬사를 받았으며, 일부 언론은 그에게 "King Claudio영어"라는 별명을 붙였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는 전 소속팀 첼시로부터 우승팀 예우인 가드 오브 아너를 받았다. 그는 LMA 올해의 감독상,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상, 엔초 베아르조트 상,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훈장 대십자훈장(Grand Officer)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2016-17 시즌은 2016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1-2로 패하며 시작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지난 시즌과 달리 부진을 면치 못했다. 전문가들은 엔골로 캉테의 이적 공백, 제이미 바디의 득점력 저하, 상대 팀들의 달라진 전술 대응, 챔피언스리그 병행에 따른 부담 등을 부진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출전한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리그 G조에서 FC 포르투, FC 코펜하겐, 클럽 브뤼허를 제치고 4승 1무 1패,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2017년 1월 9일, 라니에리는 2016 FIFA 올해의 남자 감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리그에서의 부진은 계속되었고,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세비야 원정 경기에서 1-2로 패배한 다음 날인 2017년 2월 23일, 라니에리는 결국 감독직에서 경질되었다. 당시 레스터 시티는 강등권보다 승점 1점 높은 리그 17위에 머물러 있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구단주 비차이 스리바타나프라바가 주요 선수들과의 면담 후 경질을 결정했다는 보도와 함께 선수단과의 불화설을 제기했으나, 임시 감독을 맡은 크레이그 셰익스피어와 선수들은 이를 부인했다. 개리 리네커 등 많은 축구계 인사들이 그의 경질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라니에리 경질 후 첫 경기였던 리버풀과의 홈 경기에서 레스터 시티 팬들은 라니에리의 사진과 함께 "Grazie Claudio이탈리아어" (고마워요, 클라우디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그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한편, 2016년 6월에는 맨체스터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유니세프 자선 경기 소커 에이드(Soccer Aid)에서 세계 올스타팀(Rest of the World team) 감독을 맡기도 했다.

3.9. 프랑스 (낭트)

2017년 6월 12일, FC 낭트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구단은 6월 15일에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시즌 후반기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결국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시즌 종료와 함께 팀을 떠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3.10. 잉글랜드 (풀럼)

2018년 11월 14일, 라니에리는 슬라비샤 요카노비치의 후임으로 풀럼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11월 24일, 감독으로서 치른 첫 경기에서 풀럼은 사우샘프턴을 상대로 3-2 홈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9월 22일부터 이어져 온 풀럼의 리그 무승 행진을 끝낸 극적인 승리였다.

그러나 시즌 내내 좋지 않은 흐름을 바꾸지 못했고, 결국 라니에리는 2019년 2월 28일 풀럼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당시 수석코치였던 스콧 파커가 그의 뒤를 이었다. 라니에리는 풀럼에서 17경기를 치르는 동안 3승만을 거두는 데 그쳤다.

흥미롭게도, 라니에리의 전임자였던 요카노비치는 라니에리가 첼시 감독 시절 영입한 첫 선수였고, 후임자인 파커는 마지막으로 영입한 선수였다.

3.11. 이탈리아 (로마 복귀, 삼프도리아)

2019년 3월 8일, 경질된 에우제비오 디 프란체스코의 후임으로 8년 만에 AS 로마 감독으로 복귀했다. 계약 기간은 2018-19 시즌 종료까지였으며, 시즌 종료 후 계약 연장 가능성도 있었다. 3월 11일, 로마 복귀 후 첫 경기였던 엠폴리와의 홈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었다. 5월 26일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파르마와의 홈 경기에서도 2-1로 승리했지만, 로마는 최종적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시즌 종료 후 라니에리는 팀을 떠났다.

2019년 10월 12일, 라니에리는 삼프도리아와 2021년까지 유효한 계약을 맺고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삼프도리아는 세리에 A 최하위에 머물러 있었다. 라니에리는 2019-20 세리에 A 시즌을 15위로 마치며 팀의 강등을 막아냈다. 다음 시즌인 2020-21 세리에 A에서는 팀을 9위로 이끌었으나, 시즌 종료 후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팀을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3.12. 잉글랜드 (왓포드)

2021년 10월 4일, 왓포드는 라니에리를 2년 계약으로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왓포드는 1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한 후 7경기에서 2승을 거두며 리그 15위에 있었다. 부임 후 굿디슨 파크에서 열린 에버턴과의 원정 경기에서 5-2 대승을 거두고, 홈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4-1로 완파하는 등 인상적인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팀은 부진에 빠졌고, 노리치 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0-3으로 패배한 후 2022년 1월 24일, 왓포드가 강등권에 머무르는 등 부진한 성적 때문에 결국 경질되었다.

3.13. 이탈리아 (칼리아리 복귀 및 은퇴)

2022년 12월 23일, 세리에 B로 강등된 칼리아리는 파비오 리베라니 감독의 후임으로 라니에리를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2025년 6월까지로, 라니에리는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칼리아리를 이끌며 세리에 C에서 세리에 A까지 2년 연속 승격을 달성한 지 약 32년 만에 복귀하게 되었다. 당시 리그 14위로 부진했던 팀을 맡아 재건에 성공, 정규 시즌을 5위로 마감하며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 결승에서는 바리를 상대로 2차전 추가시간에 터진 레오나르도 파볼레티의 결승골에 힘입어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팀을 1년 만에 세리에 A로 복귀시켰다. 이는 라니에리가 칼리아리에서 이룬 두 번째 1부 리그 승격이었다.

2023년 7월 인터뷰에서 라니에리는 칼리아리가 자신의 감독 경력 마지막 클럽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23-24 세리에 A 시즌에는 리그 막바지까지 강등권 경쟁을 벌였으나, 시즌 마지막 경기를 한 경기 남겨둔 2024년 5월 19일 사수올로 원정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며 세리에 A 잔류를 확정지었다.

잔류 확정 이틀 뒤인 5월 21일, 라니에리는 시즌 종료 후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식 발표하며 칼리아리가 자신의 마지막 클럽팀이 될 것임을 재확인했다. 그는 향후 클럽팀 감독 제안은 거절할 것이며, 국가대표팀 감독직 제안만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5월 23일, 피오렌티나와의 세리에 A 최종 라운드 홈 경기(2-3 패배)는 그의 마지막 클럽 감독 경기가 되었다. 경기 시작 전, 홈 팬들은 그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이 경기는 그가 1990-91 시즌 세리에 A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유럽 5대 리그에서 치른 912번째 1부 리그 경기였다. 이 기간 동안 오직 아르센 벵거 감독만이 그보다 더 많은 1부 리그 경기를 지휘했다(988경기). 칼리아리는 해당 시즌을 16위(승점 36점)로 마감했다.

3.14. 이탈리아 (로마 3번째 복귀)

2024년 11월 13일, 라니에리가 은퇴 의사를 번복하고 AS 로마로 복귀하기 위해 구단과 협상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다음 날인 11월 14일, AS 로마는 라니에리를 구단의 새로운 감독으로 공식 발표했다. 그는 해임된 이반 유리치(Ivan Jurić)의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2024-25 시즌이 종료된 후에는 구단 고위직에 올라 스포츠 분야에서 구단주 자문 역할을 맡을 예정이라고 발표되었다.

4. 감독 스타일

라니에리 감독이 이끄는 팀은 일반적으로 전술적으로 엄격한 4-4-2 포메이션을 사용하며, 높은 체력과 활동량, 효율적이고 조직적인 플레이 스타일, 그리고 공수 양면에서의 간격 유지(압축)로 유명하다. 그의 팀은 견고한 수비, 적극적인 압박을 통한 공 소유권 회복, 그리고 빠른 역습을 통한 득점 능력으로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레스터 시티 시절 보여준 전술은 여러 선수, 전문가, 감독들에 의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디에고 시메오네 감독 전술과 비교되기도 했는데, 두 감독 모두 상대적으로 부족한 재정 상황에서도 강팀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전술적인 능력 외에도 라니에리는 리더십, 유쾌한 성격,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심리적 압박감을 완화하는 능력으로 칭찬받으며, 이를 통해 팀 내에 승리 의식과 팀워크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감독 경력 동안 여러 가지 독특하고 비정통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 성공 여부는 때에 따라 달랐다. 그의 재치 있는 말투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그를 인기 있는 인물로 만들었다.

반면, 경력 내내 선수 기용에 있어 과도한 로테이션을 가동하거나 시즌 중 전술 및 포메이션 변경이 잦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영국 언론에서는 그에게 "땜장이 감독(The Tinkerman)"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선호하는 시스템은 4-4-2이지만, 상황에 따라 5-3-2나 5-4-1과 같은 5백 시스템, 4-3-1-2, 3-4-3(가짜 9번 활용 포함), 3-4-1-2, 4-3-3, "크리스마스 트리" 포메이션, 심지어 4-2-4까지 다양한 포메이션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전문가와 다른 감독들로부터 그의 전술 시스템이 "구식"이며 지나치게 수비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2016년 레스터 시티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기 전까지 주요 리그 우승 경험이 없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2015-16 시즌, 시즌 개막 직전 갑작스럽게 경질된 나이절 피어슨의 뒤를 이어 레스터 시티 감독으로 부임한 라니에리는 자신의 스타일을 팀에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그는 먼저 수비를 정비하고, 단순한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견고한 수비 후 빠른 역습 전술을 채택했다. 선발 명단을 최대한 고정시키고 기본기와 견고한 수비를 철저히 다지는 데 집중하며 복잡한 전술은 과감히 배제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 신기록인 11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한 공격수 제이미 바디를 중심으로 한 역습 전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꾸준히 승점을 쌓았다.

이러한 전술 하에서 제이미 바디는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고, 미드필더 대니 드링크워터와 엔골로 캉테는 해당 시즌 P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선수들의 기량이 만개했다. 리아드 마레즈 역시 눈에 띄는 발전을 보였다. 라니에리의 지도 아래 레스터 시티는 이전 시즌 강등권에서 경쟁했던 모습과 달리 시즌 초반부터 선두 경쟁을 펼쳤고, 시즌 중반 이후에는 우승 경쟁팀 맨체스터 시티를 원정 경기장인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꺾고 선두 자리를 지키는 등 돌풍을 이어갔다. 결국 2016년 5월 2일, 레스터 시티는 창단 133년 만에 처음으로 1부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라니에리 자신도 오랫동안 유럽의 여러 강팀 감독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지 못했던 리그 우승의 꿈을 처음으로 실현했다.

하지만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 리그를 1위로 통과하며 선전했지만, 리그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강등권까지 추락했다. 결국 2017년 2월 23일,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되었다.

5. 수상 내역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이탈리아, 스페인, 잉글랜드, 프랑스 등 여러 리그에서 감독으로 활동하며 다수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피오렌티나에서는 세리에 B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달성했고, 발렌시아에서는 코파 델 레이UEFA 인터토토컵, UEFA 슈퍼컵 우승을 경험했다. 특히 레스터 시티를 이끌고 2015-16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극적인 우승을 차지하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외에도 칼리아리, 모나코 등에서 하부 리그 우승 및 승격을 이끌었으며,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상, 더 베스트 FIFA 남자 감독상 등 개인적인 영예도 안았다.

5.1.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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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수상 연도/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상2015–16
리그 감독 협회 올해의 감독2015–16
리그 감독 협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2015–16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상2003년 9월, 2004년 3월, 2015년 11월, 2016년 3월, 2016년 4월
엔초 베아르초트 상2016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2016
가제타 스포르트 어워드 올해의 감독2016
BBC 스포츠 개성상 감독상2016
IFFHS 세계 최고 클럽 감독 (3위)2016
골든풋 레전드 상2016
더 베스트 FIFA 남자 감독상2016
월드 사커 매거진 올해의 세계 감독2016
ACF 피오렌티나 명예의 전당2022

5.2. 개인

*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상: 2015–16
* LMA 올해의 감독: 2015–16
* LMA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 2015–16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상: 2003년 9월, 2004년 3월, 2015년 11월, 2016년 3월, 2016년 4월
* 엔초 베르조트 상: 2016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6
* 가제타 스포르츠 어워드 올해의 감독: 2016
* BBC 스포츠 개성상 감독상: 2016
* IFFHS 세계 최고 클럽 감독: 2016 (3위)
* 골든풋: 2016, 축구 레전드 부문
* 더 베스트 FIFA 남자 감독상: 2016
* 월드 사커 매거진 올해의 세계 감독: 2016
* ACF 피오렌티나 명예의 전당: 2022
* 이탈리아 공화국 공훈훈장 2등급 / 대십자장 (Grande Ufficiale Ordine al Merito della Repubblica Italiana이탈리아어): 2016
* 팔마 도로 알 메리토 테크니코 (Palma d'Oro al Merito Tecnico이탈리아어) 1등급: 2016

6. 감독 경력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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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경력 (팀 및 재임 기간별)
국가취임사임기록
경기득점실점득실차승률 (%)
비고르 라메치아이탈리아1986년 5월 28일1987년 6월 9일3021814412+3270.00
푸테올라나이탈리아1987년 6월 10일1988년 1월 25일2457121434-2020.83
푸테올라나이탈리아1988년 5월 9일1988년 6월 7일4013311-80.00
칼리아리 칼초이탈리아1988년 6월 7일1991년 5월 31일12348482712698+2839.02
SSC 나폴리이탈리아1991년 5월 31일1992년 11월 22일552516149266+2645.45
ACF 피오렌티나이탈리아1993년 6월 30일1997년 6월 3일174765840266185+8143.68
발렌시아 CF스페인1997년 9월 19일1999년 6월 27일96511827169106+6353.1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1999년 6월 29일2000년 3월 3일391610136353+1041.03
첼시 FC잉글랜드2000년 9월 18일2004년 5월 31일1991074646358197+16153.77
발렌시아 CF스페인2004년 6월 16일2005년 2월 25일36159124841+741.67
파르마이탈리아2007년 2월 13일2007년 5월 31일187652419+538.89
유벤투스 FC이탈리아2007년 6월 4일2009년 5월 18일9346301716896+7249.46
AS 로마이탈리아2009년 9월 2일2011년 2월 20일84471621140103+3755.95
인터 밀란이탈리아2011년 9월 22일2012년 3월 26일35175134642+448.57
AS 모나코 FC프랑스2012년 5월 30일2014년 5월 20일8851261115277+7557.95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그리스2014년 7월 25일2014년 11월 15일401315-40.00
레스터 시티잉글랜드2015년 7월 13일2017년 2월 23일81362223119105+1444.44
FC 낭트프랑스2017년 6월 15일2018년 6월 1일411510164448-436.59
풀럼 FC잉글랜드2018년 11월 14일2019년 2월 28일1733111634-1817.65
AS 로마이탈리아2019년 3월 8일2019년 5월 27일126421712+550.00
UC 삼프도리아이탈리아2019년 10월 12일2021년 6월 30일7227133299108-937.50
왓퍼드 FC잉글랜드2021년 10월 4일2022년 1월 24일1421111734-1714.29
칼리아리 칼초이탈리아2023년 1월 1일2024년 5월 23일652222218189-833.85
AS 로마이탈리아2024년 11월 14일현재7313139+442.86
합계141064638038421201584+5364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