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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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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을나는 제주도 삼성혈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탐라국 건국의 시조 중 한 명이다. 고려사 지리지에 인용된 고기에 따르면, 고을나를 포함한 삼신인은 한라산 삼성혈에서 솟아났으며, 일본에서 온 세 명의 공주와 결혼하여 농경을 시작하고 탐라국을 세웠다. 카케히 토시오는 고을나 등 탐라 호족 후손들이 신라와 고려로부터 칭호를 받은 점을 들어 제주도의 지역 통합이 늦게 이루어졌다고 평가했다. 고을나와 관련된 이야기는 탐라국과 일본 간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고려사에는 나무 상자와 일본 사자, 공주 등에 대한 묘사가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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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을나는 탐라국의 시조이자 양씨의 시조로, 일본 국왕의 딸들과 혼인하여 농경을 시작하고 탐라국을 건국했으며, 표착한 나무 상자에서 얻은 종자로 농업을 발전시켜 자손이 번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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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작위제1대 탐라 국왕 (신화상)
한글고을나
한자高乙那
히라가나코우루나
가타카나코우루라
재위 기간
재위기원전 2337년 ~ 기원전 2205년 (신화상)
공동 재위자양을나, 부을나 (신화상)
전임자(신설)
후임자건왕 (신화상)
출생 및 가문
출생지삼성혈 (신화상)
국적탐라
가문제주 고씨
가족 관계
형제자매양을나, 부을나

2. 삼성혈 신화와 고을나

고려사 지리지에 인용된 『고기(古記)』에 따르면, 태고에 제주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어느 날, 한라산 북쪽 산록의 삼성혈에서 삼신인이 나타났는데, 그중 한 명이 고을나였다.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삼신인은 사냥을 하며 살다가 일본에서 떠내려온 나무 상자를 발견했다. 이 상자 안에는 푸른 옷을 입은 아름다운 세 명의 일본 국왕의 딸, , 그리고 오곡의 종자가 들어 있었다. 삼신인은 각각 일본 국왕의 딸과 결혼하여 집락을 만들고 산업과 오곡 재배를 시작했다.

카케히 토시오는 탐라호족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의 후손이 신라, 고려로부터 "성주", "왕자", "도내" 등의 칭호를 하사받은 점에 주목하여, 제주도의 지역적 통합이 고려에 이르러서도 확립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탐라가 백제, 신라, 고려에 종속되었던 점을 들어 권력 구조가 계층적으로 사회 질서화되지 않았던 점을 포함해, 탐라가 왕조로서 미성숙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2. 1. 고을나의 탄생과 탐라국 건국

고려사』 지리지에 인용된 『고기(古記)』에 따르면, 태고에 제주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 한라산 북쪽 기슭 삼성혈에서 삼신인(三神人)이 솟아났는데, 그중 한 명이 고을나이다. 고을나를 비롯한 삼신인은 수렵 생활을 하다가 일본에서 온 세 명의 공주를 만나 혼인하고, 오곡을 재배하며 탐라국을 건국하였다. 고을나가 정착한 곳은 '이도(二道)'라고 불렸다.

2. 2. 신화의 해석과 역사적 의미

삼성혈 신화는 탐라국 건국 과정을 설명하는 동시에, 고대 제주도 지역의 생활상과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일본 국왕의 딸들과의 혼인 이야기는 단순한 설화가 아니라, 고대 탐라국과 일본 간의 활발한 해상 교류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고기|古記한국어에 따르면, 한라산 북쪽 기슭 삼성혈에서 나타난 삼신인(양을나, 고을나, 부을나)이 일본에서 온 세 공주와 혼인하여 탐라국을 건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들은 , ,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와서 농경을 시작하고, 각각 일도, 이도, 삼도라는 집락을 형성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탐라국이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선진 문물을 수용하고 발전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3. 『고려사』 속 고을나

고려사』 지리지에 인용된 『고기(古記)』에는 고을나와 관련된 내용이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자색 진흙으로 봉해진 나무 상자"와 "붉은 띠를 두르고 자색 옷을 입은 사자" 등 구체적인 묘사는 신화의 신비로움을 더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강조한다.

일본국 사자는 "서해(西海)의 중악(中嶽)에 신령스러운 아들 셋이 내려와 나라를 세우려 하나, 짝이 없다."라고 하였다.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는 동쪽에서 흘러오는 나무 상자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일본국 사자와 아름다운 세 명의 일본 국왕의 딸, , 오곡의 종자가 들어 있었다. 세 신인은 그녀들을 아내로 맞이하여 산업과 오곡의 재배를 시작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4. 고을나와 탐라국의 역사

고려사』 지리지에 인용된 『고기(古記)』에 따르면, 태고에 제주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어느 날, 한라산 북쪽 산록의 삼성혈에서 세 명의 신인(삼신인)이 나타났는데, 그중 한 명이 고을나이다. 삼신인은 사냥을 하며 생활하다가 일본에서 온 나무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 안에는 푸른 옷을 입은 아름다운 세 명의 일본 국왕의 딸, , 그리고 오곡의 종자가 들어 있었다. 고을나를 포함한 삼신인은 각각 일본 국왕의 딸과 결혼하여 집락을 만들고 농사와 오곡 재배를 시작했으며, 고을나가 정착한 집락은 이도라고 불렸다.

4. 1. 탐라국의 대외 관계

카케히 토시오는 탐라 호족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의 후손이 신라고려로부터 "성주", "왕자", "도내" 등의 칭호를 하사받은 점에 주목하여, 제주도의 지역적 통합이 고려에 이르러서도 확립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카케히 토시오는 탐라가 백제, 신라, 고려에 종속되었던 점을 중시하여, 권력 구조가 계층적으로 사회 질서화되지 않았던 점을 포함해 탐라가 왕조로서 미성숙했음을 지적했다.

4. 2. 한국사 속 탐라국

한라산 북쪽 기슭의 삼성혈에서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삼신인이 나타났다. 이들은 사냥을 하며 생활하다가 어느 날 일본에서 떠내려온 나무 상자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일본 국왕의 세 딸과 , , 오곡의 종자가 들어 있었다. 삼신인은 각각 일본 국왕의 딸과 결혼하여 집락을 이루고 농경을 시작했다. 고을나가 정착한 집락은 이도라고 불렸다.

카케히 토시오는 탐라의 호족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의 후손이 신라, 고려로부터 "성주", "왕자", "도내" 등의 칭호를 하사받은 점에 주목하여, 제주도의 지역적 통합이 고려에 이르러서도 확립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탐라가 백제, 신라, 고려에 종속되었던 점을 들어 탐라의 권력 구조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고, 왕조로서 미성숙했음을 지적했다.

참조

[1] 뉴스 고을나(高乙那) http://encykorea.aks[...] 2022-04-22
[2] 뉴스 日本における済州島史についての研究動向(16世紀以前) https://hdl.handle.n[...] 科学研究費補助金報告書 2022-04-22
[3] 간행물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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