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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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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소우마는 일본의 토종 말 품종으로, 고훈 시대에 한반도와 대륙에서 유입된 말에서 기원했다. 헤이안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 무사, 농경, 운송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가마쿠라 막부 멸망 당시 닛타 요시사다의 군대가 사용한 말로도 확인되었다. 메이지 시대 이후 서양 품종의 도입과 개량으로 순수 혈통의 개체 수가 감소하여 1943년에는 멸종 직전에 이르렀으나, 1946년부터 복원 노력이 시작되었다. 1969년 기소우마 보존회가 설립되었고, 1983년에는 나가노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기소 온타케산 아래의 기소 우마노사토가 번식 및 보존의 중심지이며, 중형마로 평균 130cm 정도의 키와 갈색 털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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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우마
기본 정보
이름기소말
다른 이름기소 우마
기소
기소 포니
특징일본 품종의 말
국가일본
분포해당 없음
상태FAO (2007): 위기
DAD-IS (2022): 알 수 없음
표준해당 없음
용도해당 없음
색상해당 없음
해당 없음
수컷 키134 cm
암컷 키132 cm
무게해당 없음
수컷 무게450 kg
암컷 무게300 kg
비고해당 없음
기소말
기소말
생물학적 분류
학명Equus caballus
Equus
말과
말목

2. 역사

일본 열도에 말이 전래된 것은 고훈 시대(古墳時代)인 4세기 말에서 5세기 경으로, 아시아 대륙과 한반도를 통해서였다. 시나노국(信濃国) 등 동일본 중앙 고지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인 4세기 말의 말뼈가 발견되기도 했다. 아스카 시대(6세기경)에는 미노국(美濃国) 에나 군에서 말 방목이 시작되었다.[28][29]

헤이안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 기소우마는 무사의 군마(軍馬), 농경마, 운송용 말(짐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가마쿠라 시대 후기 닛타 요시사다(新田義貞) 군대가 사용한 군마가 기소우마였다는 사실이 유적 발굴과 DNA 감정을 통해 밝혀졌다. 작은 체구와 산간 지형에 강한 다리 힘이 특징이었으나, 에도 시대에는 우수 개체의 외부 유출과 난부마(南部馬) 도입을 통한 개량 시도도 있었다.[10] 또한 말을 소유하고 농가에 빌려주는 말 소작 제도가 성행했다.[6]

메이지 시대 이후 기소우마는 교통 및 농경용으로 사육 수가 늘었으나, 일본 제국 육군의 군마 대형화 정책에 따라 군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가 주도로 서양 품종과의 교배가 강제되고 순혈 수말이 거세되면서 순혈 기소우마의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11] 이는 재래종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개량 정책의 결과로, 기소우마 고유의 특성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결국 1943년 마지막 순혈 기소우마 계통의 수말이 도태되면서 절멸 직전에 이르렀다.[14]

제2차 세계 대전 후인 1946년부터 기소우마 복원 노력이 시작되었다. 거세를 피한 종마 '신명호'(神明号)와 그의 아들 '다이산-하루야마'(第三春山号)가 현대 기소우마 혈통 복원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1969년에는 기소우마 보존회(木曽馬保存会)가 설립되어 체계적인 보존 활동이 시작되었고, 1983년에는 나가노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17] 이러한 노력 덕분에 개체 수는 점차 회복되었으나, 심각한 개체 수 병목 현상으로 인한 근친교배 문제와 유전적 다양성 확보가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21][22] 현재는 기소 온타케산 기슭의 '기소 우마노사토'(木曽馬の里)를 중심으로 번식과 보존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며, 승마 체험 등 새로운 활용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20]

2. 1. 기원과 전래

일본 열도에 말이 처음 들어온 것은 고훈 시대(古墳時代)인 4세기 말부터 5세기에 걸쳐서이며, 주로 아시아 대륙과 한반도를 통해 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시나노국(信濃国)과 가이국(甲斐国) 등 동일본의 중앙 고지에서는 서일본보다 이른 4세기 말의 말뼈가 발굴되기도 했다. 아스카 시대(飛鳥時代)인 6세기 초에는 미노국(美濃国) 에나 군(恵那郡) (현재의 기후현 나카쓰가와시 일부)에서 말의 방목이 시작되었다.[28][29] 당시 일본의 말들은 주로 농업에 사용되었고 짐을 나르는 역용마(役用馬)로 쓰였으나, 물건을 끄는 견인력 용도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또한 16세기 후반 화기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 토종 말들은 대체로 체구가 크지 않았는데, 가마쿠라 시대(1185–1333)의 전장 터에서 발굴된 약 130마리의 말 유해를 분석한 결과, 어깨높이는 110cm에서 140cm 사이였다.

기소우마는 나가노현의 기소 계곡과 기소 산맥, 그리고 기후현 히가시미노 지역에서 유래한 일본의 재래 마종이다. 헤이안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소우마는 무사들의 군마(軍馬), 농경마, 운송용 말(짐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가마쿠라 시대 후기,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를 무너뜨린 닛타 요시사다(新田義貞)의 군대가 사용했던 군마의 뼈가 유적에서 다수 발굴되었는데, DNA 감정 결과 기소우마였음이 밝혀졌다. 기소우마는 비교적 작은 120cm에서 130cm 정도의 체구를 가져 여성이 다루기에도 용이했으며, 기소 지역의 험한 산간 지형을 잘 견디는 튼튼한 다리 힘을 지닌 것이 특징이었다. 에도 시대에는 기소마를 선호하는 무장들이 많아 우수한 말들이 외부로 많이 유출되었고, 이로 인해 산지에서 좋은 개체가 줄어들자 난부마(南部馬) 암말 30마리를 도입하여 기소마 수말과 교배시키는 등 품종 개량 시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10]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농가가 많아 말을 빌려주는 '말 소작 제도'가 보급되어, 수백에서 천 마리 가량의 말을 소유하고 대여하는 마주(馬主) 업이 성행했다.[6]

메이지 시대(1868–1912)와 다이쇼 시대에 들어서도 기소우마는 교통 수단 및 농경용으로 사육 두수가 증가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제국 육군은 더 큰 체격의 군마를 원했기 때문에, 중형마인 기소우마는 군용으로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가와 군의 주도로 서양 품종(아랍, 앵글로아랍, 트로터, 하크니, 앵글로노르만 등)의 종마가 도입되었고, 기소마 암말과의 교배가 강제되었다. 동시에 순혈 기소마 수말은 종마 이외에는 모두 거세하도록 명령받았다.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순혈 기소우마의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1899년에 6,823마리에 달했던 기소마를 포함한 일본 재래마는, 메이지 중기 말의 99%를 차지했으나 1927년에는 그 비율이 11%까지 떨어졌다.[11] 말의 체형 또한 대형화되어, 메이지 25년(1892년) 평균 128.9cm였던 체고는 쇼와 23년(1948년)에는 146.4cm까지 커졌다.[12] 이러한 대형화와 가냘픈 체형 변화는 지역 주민들이 원했던 바가 아니었으며, 일부에서는 몰래 순계 기소마 수말과의 교배를 통해 기소마의 특징을 유지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전해진다.[13] 결국 1943년(쇼와 18년), 마지막 남은 순혈 기소마 수컷 종마인 '신명호'(神明号)가 도태되어[14] 기소우마는 절멸 직전의 위기에 처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6년(쇼와 21년)부터 기소우마 복원 활동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일부 지역에서는 서양종과의 교잡을 피해 몰래 순계 기소마끼리 교배시켜 얻은 말들이 남아 있었고,[15] 이를 바탕으로 기소마의 혈통을 되살리는 노력이 진행되었다. 특히 종교 신사에 봉납되어 거세를 피했던 단 한 마리의 수말과 그의 아들 '다이산-하루야마'(第三春山号, 1951년생)가 현대 기소우마 혈통의 기초가 되었다. 복원 과정에서 되돌려 교배 등을 통해 기소마 본래의 체형으로 되돌리려는 노력도 이루어져, 체고가 다시 낮아지게 되었다.[16] 1969년(쇼와 44년)에는 기소우마 보존회(木曽馬保存会)가 설립되어 종 등록이 시작되었고, 이후 개체 수는 점차 회복되었다. 1965년에서 1976년 사이 510마리에서 32마리까지 급감했던 개체 수는 2013년에는 약 150마리로 추정되었다. 1983년(쇼와 58년)에는 나가노현 기소정 가이타 고원에서 사육되는 기소우마들이 나가노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품종 전체가 아닌 개체별 지정).[17]

현재 기소 온타케산 기슭의 카이타 고겐(開田高原)에 위치한 '기소 우마노사토'(木曽馬の里)가 기소우마의 번식과 보존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2019년 기준 기소 지역의 기소우마는 138마리이며, 이 중 약 30마리가 기소 우마노사토에서 사육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번식 활동 외에도 승마 체험이나 호스 세라피(Horse Therapy) 등을 통해 기소우마의 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20] 그러나 과거 절멸 위기를 겪으며 심각한 개체 수 병목 현상을 겪었기 때문에, 유효 개체군 크기는 45.8로 낮은 수준이며, 근친교배로 인한 기형 발생률 증가 등의 유전적 문제가 과제로 남아있다.[21][22] 이를 해결하기 위해 종마 선택과 계획적인 교배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2012년 연구에서는 기소우마 내에 4개의 뚜렷한 하위 집단이 확인되기도 했다.

2. 2. 중세 시대

헤이안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소우마는 무사의 말, 농경마, 짐말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기소 지역의 산간 지형에 잘 적응하는 강한 다리 힘과 함께, 여성이 다루기에도 용이한 120cm에서 130cm 정도의 작은 체구가 특징으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가마쿠라 시대(1185–1333 AD) 후기에는 가마쿠라 막부 타도에 나섰던 닛타 요시사다의 군대가 기소우마를 군마로 사용했음이 유적에서 발굴된 말뼈의 DNA 감정을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10] 당시 전쟁터에서 발견된 약 130마리의 말 유해를 분석한 결과, 말들의 어깨 높이는 110cm에서 140cm 사이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말은 16세기 후반 화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에도 시대에는 무장들이 기소우마를 선호하여 구매하면서 양질의 말이 외부로 많이 유출되었다. 이로 인해 산지의 우수한 개체가 줄어들자 개량이 시도되었고, 간분 5년에는 난부마 암말 30마리를 들여와 기소우마 수말과 교배하기도 했다.[10]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농가가 많아 말을 빌려주는 말 소작 제도가 보급되어, 수백에서 천 마리 정도의 말을 소유한 마주업이 성행했다.[6]

2. 3. 근대와 현대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에 걸쳐 기소우마는 주로 승용마나 농경마로 이용되어 사육 수가 증가하였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제국 육군은 군용마로 더 큰 말을 선호하였고, 중형마인 기소우마는 군용으로 부적합하다고 여겨졌다.[11] 이에 따라 국가와 현의 지시로 서양 품종(아랍, 앵글로아랍, 트로터, 하크니, 앵글로노르만 등)의 종마가 도입되었고, 기소우마 암말과의 교배가 강제되었다. 또한, 번식용으로 선발된 종마 외의 모든 기소우마 수말은 거세되면서 순혈 기소우마의 수는 급격히 감소하였다.[11] 이러한 국가 주도의 개량 정책으로 인해 기소우마의 체형과 체고도 변화하여, 메이지 25년(1892년) 평균 128.9cm였던 체고는 쇼와 23년(1948년)에는 146.4cm까지 커졌다.[12] 메이지 시대 중반에는 일본 내 말의 99%를 차지했던 재래마의 비율은 1927년에는 11%까지 줄어들었다.[11] 1899년 기록된 기소우마의 수는 6823마리였다.

쇼와 시대에 들어 기소우마는 절멸 위기에 처했다. 1943년(쇼와 18년), 마지막 남은 기소마 계통의 순혈 종마였던 '호교쿠호'(宝玉号)마저 도태되면서 순혈 수말은 완전히 사라졌다.[1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순수 혈통의 기소우마는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다행히 종교 신사에 봉납되어 거세를 피한 종마 '신메이호'(神明号)가 있었고, 그의 아들로 1951년에 태어난 '다이산-하루야마'(第三春山号)가 현대 기소우마 혈통 복원의 기초가 되었다.

1946년(쇼와 21년)부터 기소우마 복원 활동이 시작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외국 품종과의 교잡을 피해 미거세 수말을 이용해 몰래 순혈 기소우마를 번식시키려는 노력이 있었고[15], 되돌려 교배를 통한 복원 시도도 이루어졌다.[16] 그러나 개체 수는 계속 감소하여 1965년 510마리에서 1976년에는 32마리까지 줄어들었다. 위기 상황 속에서 1969년(쇼와 44년) 기소우마 보존회(木曽馬保存会)가 설립되어 종의 보존과 등록 사업을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1983년(쇼와 58년)에는 나가노현 기소정 가이타 고원에서 사육되는 기소우마가 나가노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품종 전체가 아닌 개별 말 지정).[17]

헤이세이 시대 이후 기소우마의 개체 수는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2013년에는 총 개체 수가 약 150마리로 추정되었으며, 2019년 농림수산성 조사에 따르면 기소 지역에는 138마리의 기소우마가 서식하고 있다.[20] 기소 온타케산 기슭의 카이타 고겐에 위치한 '기소 우마노사토'(木曽馬の里)는 기소우마의 번식과 보존을 위한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20], 이곳의 약 30마리 말들은 번식 외에도 승마 체험이나 호스 세라피 등에 활용되고 있다.[20] 이는 과거 수요 감소로 절멸 직전에 놓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활용 방안을 모색하여 종 보존의 기반을 다지려는 노력이다.[20]

하지만 기소우마는 심각한 개체 수 병목 현상을 겪었기 때문에 유효 개체군 크기는 45.8로 매우 낮으며, 이로 인한 근친교배의 위험성과 기형 발생률 증가 등의 문제가 과제로 남는다.[21][22] 따라서 신중한 종마 선택과 계획적인 교배를 통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건강한 개체군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22] 2012년 연구에서는 기소우마 내에서 유전적으로 구분되는 네 개의 하위 집단이 확인되기도 했다.

2. 4. 다이산-하루야마(第三春山号)

다이산-하루야마(第三春山号, 1951년 ~ 1975년)는 마지막 순혈 기소우마(木曽馬)로 알려진 말이다.[23] 실제 혈통은 98.44%로, 원산지에서는 외래 품종의 영향을 고려하여 '순혈' 대신 '순계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23] 그의 체격 정보는 다음과 같다.[24]

항목수치키 대비 비율
132cm-
몸길이158cm119.6%
가슴 둘레170cm128.7%
다리 둘레18cm13.6%



아버지는 '신명호(神明号)', 어머니는 '녹산호(鹿山号)'로, 두 마리 모두 순혈 기소우마였다.[24] 아버지 신명호는 1939년 제정된 종마 통제법에 따라 거세될 위기에 처했으나, 무스이와케 신사(武水別神社)의 신마(神馬)였기 때문에 처분을 피할 수 있었다.[23] 1950년 재발견되어 신사로부터 불하받은 후, 기소우마 등록 사업의 본 등록마 제1호로 등록되어 종마로 활동했다.[24] 어머니 녹산호는 기소 후쿠시마 신카이(木曽福島新開) 지역에서 사육되었다.

다이산-하루야마는 1953년 종마 검사에 합격하여[25] 나가노현 소유의 종마가 되었다. 하지만 농업 기계화로 인해 산간 지역 농경마로서 기소우마의 수요가 줄면서 방출되었고, 살처분 위기를 겪기도 했다. 여러 농가를 거친 끝에 마지막으로 카이타 촌(開田村)으로 돌아왔다.[6] 이후 기소우마 보존회의 노력 덕분에 기소우마의 혈통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약 700마리의 자마를 남겼다. 대표적인 자마로는 '춘월호(春月号)', '춘풍호(春風号)', '소산호(蘇山号)' 등이 있다.[24] 1973년에는 일본 동물 애호 협회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을 받았다.[25]

1974년 말, 노쇠로 인해 쓰러졌고, 1975년 1월 17일 말의 나이로 25세에 안락사 처리되었다.[23] 이는 당시 다이산-하루야마가 골연화증황달을 앓고 있었으며, 기소우마의 이상적인 모습을 표본으로 남기기 위해 자연사를 기다리지 않고 처분한 결정으로, 일부 논란이 있었다.[23] 사후 내장과 골격은 나고야 대학 농학부에 연구용 표본으로 기증되었고, 가죽은 박제되어 카이타 촌(현 기소마치)의 향토관에 전시되었다.[26]

3. 특징

기소우마는 작은 말이지만, 다른 일본 토종 품종에 비하면 중간 크기에 속한다. 2011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평균 키(체고)는 131.9cm ± 4.4cm였으며, 암컷의 평균 체고는 133cm, 수컷은 136cm이다. 평균 가슴 둘레(흉위)는 167.1cm ± 10.1cm, 관골(cannon bone) 둘레는 18.3cm ± 1cm였다. 성적 이형성은 거의 나타나지 않아 수컷이 암컷보다 약간 크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다. 체중은 350kg에서 420kg 사이다. 서양 품종과의 교잡이 적었던 지역일수록 체고가 낮은 경향이 있으며, 1948년 이후 품종의 크기가 감소했는데, 이는 근친 교배의 영향이거나 전쟁 전에 사용되었던 외국 종마의 영향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수 있다. 개량 전인 메이지 시대에 비하면 여전히 크지만, 되돌림 교배를 통해 점차 작은 크기로 돌아가고 있다.

기소우마의 털색 분포는 1953년 이후 크게 변화했다. 2011년 연구에서는 조사 대상 말의 약 93%가 갈색 또는 짙은 갈색이었고, 나머지는 밤색 또는 버크스킨 둔 색이었다. 반면 1953년에는 갈색과 짙은 갈색이 전체의 60% 미만이었고, 검은색, 회색, 팔로미노 털색의 말도 소수 존재했다. 2011년에 등록된 모든 종마는 갈색이었으며, 이는 현재 갈색 털이 많은 이유 중 하나로 추정된다. 연구 대상 말의 약 66%는 등 중앙을 따라 어두운 줄무늬가 있는 등 줄무늬를 가지고 있었는데, 순수 혈통에 가까울수록 등 줄무늬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신체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다리가 짧고 몸통이 긴 단족동장(短足胴長) 체형이며, 몸의 폭이 넓다.
  • 뒷다리가 X자 형태를 보이며, 발굽은 바깥쪽을 향하는 외향 자세를 하고 있다. 이는 옆으로 버티는 데 유리하여 산의 경사면을 이동하기에 적합하다.
  • 원래 온화한 기질을 가졌으나, 서양 품종과의 교잡으로 기질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여겨진다.
  • 산간 지역에서 농경마나 역마로 사육되었기 때문에 다리와 허리가 튼튼하고 강인하다.
  • 순수 혈통의 기소우마는 발굽이 매우 튼튼하여 농경에 사용될 때 말굽을 박지 않아도 될 정도였으나, 서양 품종과 교잡된 개체들은 이러한 견고한 발굽의 특징이 약화되었다.
  • 기소우마는 본래 선천적으로 측대보(같은 쪽 앞뒤 다리가 함께 움직이는 보행)를 했다고 전해진다. 과거 신슈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순수 혈통에 가까울수록 측대보 경향을 보였고, 외국 품종(예: 노르만종)의 피가 섞인 경우 서러브레드와 같은 일반적인 사대보(대각선 다리가 함께 움직이는 보행)를 보였다. 현재는 측대보를 할 수 있는 기소우마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기소우마는 풀만으로도 사육이 가능하다. 이는 서양 품종 말에 비해 맹장의 길이가 약 30cm 더 길고 두께도 2배 정도 되기 때문이다.

4. 보존

메이지 시대다이쇼 시대를 거치면서 기소우마는 교통 수단 및 농경용으로 사육 두수가 증가하기도 했으나, 중형마라는 특성상 군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일본 정부와 군에서는 군사력 강화를 위해 서양 품종의 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재래종 개량을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순수 혈통의 기소우마 수는 급격히 감소하였다. 특히 1943년(쇼와 18년)에는 마지막 남은 순혈 수컷 종마마저 도태되면서 기소우마는 절멸 직전의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1946년부터 기소우마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1969년에는 기소우마 보존회(木曽馬保存会)가 설립되어 보다 체계적인 보존 활동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83년 기소우마는 나가노현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게 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馬の改良増殖をめぐる情勢 https://www.maff.go.[...] 2021-08-09
[2] 웹사이트 稲城の木曽馬 - 稲城市立図書館 http://www.library.i[...] 2022-06-30
[3] 웹사이트 ずんね空間 木曽馬情報 http://www.zoone.com[...] 2021-08-09
[4] 웹사이트 木曽馬種と木曽馬系種 http://www.kiso.ne.j[...] 2021-08-09
[5] 웹사이트 馬事協会だより 第5号 2010年10月 https://www.bajikyo.[...] 2021-08-09
[6] 웹사이트 悲劇の木曽馬 二千年の足跡 https://takamori-tok[...] 2021-08-09
[7] 문서
[8] 간행물 木曽馬の歩法について https://agriknowledg[...] 信州大学農学部 2021-08-15
[9] 웹사이트 木曽馬の特徴その2 www.kiso.ne.jp/~pony[...] 2021-08-12
[10] 웹사이트 木曽馬の改良その1 http://www.kiso.ne.j[...] 2021-08-09
[11] 서적 競走馬の文化史 筑摩書房 1995-12-15
[12] 간행물 木曾馬とアラブの交雑種について https://hdl.handle.n[...] 信州大学農学部 2021-08-10
[13] 웹사이트 木曽馬の改良その2 http://www.kiso.ne.j[...] 2021-08-09
[14] 웹사이트 高校農業 木曽馬の飼育と活用 木曽馬の歴史 https://gakuen.gifu-[...] 2021-08-09
[15] 웹사이트 木曽馬の歴史 http://www.kis.janis[...] 2021-08-09
[16] 간행물 1970年前後の木曽馬の骨格 https://hdl.handle.n[...] 信州大学農学部附属アルプス圏フィールド科学教育研究センター 2021-08-10
[17] 웹사이트 長野県の芸術・文化情報センター 八十二文化財団 https://www.82bunka.[...] 2022-07-01
[18] 웹사이트 稲城の木曽馬 - 稲城市立図書館 http://www.library.i[...] 2022-07-01
[19] 웹사이트 公益社団法人 日本馬事協会 https://www.bajikyo.[...] 2022-07-01
[20] 웹사이트 木曽馬乗馬センター http://www.kisoumano[...] 2021-08-09
[21] 간행물 木曽馬の近交係数について https://hdl.handle.n[...] 信州大学農学部 2021-08-10
[22] 간행물 木曾馬の体型調査について https://hdl.handle.n[...] 信州大学農学部 2021-08-10
[23] 서적 もっと馬を! 平凡社 1990
[24] 서적 日本の在来馬-その保存と活用- 日本馬事協会 1984
[25] 웹사이트 木曽馬保存会サイト/木曽馬年表 http://www.kis.janis[...] 2010-05-23
[26] 웹사이트 開田郷土館 http://www.kaidakoge[...]
[27] 뉴스 「長寿日本一」木曽馬死ぬ…人間なら100歳超 http://www.yomiuri.c[...] 요미우리 신문 2014-01-29
[28]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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