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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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개최된 자동차 경주 대회로, 1934년에 처음 개최되었다. 이스트 런던의 프린스 조지 서킷에서 시작하여, 1960년대부터는 카얄라미 서킷에서 주로 개최되었다. 1962년에는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 경기가 처음으로 열렸으며, 이후 아파르트헤이트 문제로 중단되었다가 1992년과 1993년에 다시 개최되었다. 짐 클라크, 니키 라우다, 나이젤 만셀, 알랭 프로스트 등이 다승 드라이버로 이름을 올렸으며, 로터스, 페라리, 윌리엄스 등이 컨스트럭터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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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 | |
---|---|
대회 정보 | |
![]() | |
서킷 | 프린스 조지 서킷(1934–1966) 카얄라미(1967–1985, 1992–1993) |
최초 개최 | 1934년 |
마지막 개최 | 1993년 |
개최 횟수 | 33회 |
서킷 길이 (km) | 4.261 |
서킷 길이 (mi) | 2.648 |
레이스 길이 (km) | 306.792 |
레이스 길이 (mi) | 191.386 |
가장 많은 우승 드라이버 | 짐 클라크(4회) |
가장 많은 우승 팀 | 로터스(6회) |
현재 시즌 | 1993년 |
1993년 남아프리카 그랑프리 결과 | |
우승자 | 알랭 프로스트 |
우승 팀 | 윌리엄스-르노 |
우승 시간 | 1:38:45.082 |
2위 | 아일톤 세나 |
2위 팀 | 맥라렌-포드 |
2위 시간 | +1:19.824 |
3위 | 마크 블런델 |
3위 팀 | 리지에-르노 |
3위 시간 | +1 랩 |
폴 포지션 드라이버 | 알랭 프로스트 |
폴 포지션 팀 | 윌리엄스-르노 |
폴 포지션 시간 | 1:15.696 |
가장 빠른 랩 드라이버 | 알랭 프로스트 |
가장 빠른 랩 팀 | 윌리엄스-르노 |
가장 빠른 랩 | 1:19.492 |
2. 역사
갈색 = 1934년, 파란색 = 1936년, 검은색 = 1959년||오른쪽||250px]]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는 초기에 이스턴케이프주 이스트런던의 프린스 조지 서킷에서 개최되었다. 이 서킷은 24.4km의 긴 도로 코스였으나, 1936년 17.7km로 단축되었다. 1959년 영구 서킷이 건설되었고, 1962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에서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이 처음 개최되었다.[3] 그레이엄 힐이 우승과 챔피언십을 차지했으며, 1963년과 1965년에도 프린스 조지 서킷에서 경기가 열렸다. 1966년에는 챔피언십 외 경기로 개최되었다.[3]
1960년대 초, 요하네스버그 근처 키알라미 서킷이 건설되어 196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부터 이곳에서 경주가 열렸다.[4] 존 러브, 페드로 로드리게스, 짐 클라크 등이 우승했다.[4] 197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에서는 톰 프라이스가 사고로 사망했다.[4] 1980년대에는 터보차저 엔진이 강세를 보였고, 르노 팀이 1980년과 1982년에 우승했다.[4]
198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는 FISA-FOCA 전쟁으로 포뮬러 리브레 행사로 치러졌다.[5] 1983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에서는 넬슨 피케가 챔피언십을 차지했다.[4] 198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인한 국제적 논란 속에 개최되었고, 리제와 르노 팀은 불참했다.[7] 이후 장 마리 발레스트르 FIA 회장은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그랑프리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1]
1991년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후, 1992년과 1993년에 카얄라미에서 다시 개최되었으나,[4] 재정 문제로 중단되었다.[4] 197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에서 조디 셰크터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드라이버로 유일하게 우승했다.[4]
최근 2024 시즌 복귀가 논의되었으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입장 때문에 무산되었다.[10]
2. 1. 초기 역사 (1934-1966)
갈색 = 1934년, 파란색 = 1936년, 검은색 = 1959년||오른쪽||250px]]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는 처음에 이스턴케이프 주 해안 도시 이스트런던의 여러 인구 밀집 지역을 통과하는 프린스 조지 서킷이라는 24.4km의 도로 코스에서 개최되었다. 이 코스는 1936년에 17.7km로 단축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레이싱이 재개되었을 때, 1959년에 '프린스 조지 서킷'이라는 이름을 유지한 영구 서킷이 건설되었다. 1962년 12월 29일에는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 첫 번째 레이스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개최되었다. 이 레이스에서 그라함 힐은 짐 클락의 로터스에 발생한 기계적 문제를 틈타 레이스에서 우승하고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이 레이스는 1963년, 1965년에도 프린스 조지에서 개최되었는데, 1966년 레이스는 새로운 3리터 포뮬러가 같은 날 발효되면서 챔피언십 외 경기로 격하되었다.[3]
연도 | 결승일 | 서킷 | 우승자 | 컨스트럭터 | 결과 |
---|---|---|---|---|---|
1934 | 12월 27일 | 이스트 런던 | Whitney Straight영어 | 마세라티 | [16] |
1935 | 개최되지 않음 | ||||
1936 | 1월 1일 | 이스트 런던 | Mario Mazzacurati영어 | 부가티 | [17] |
1937 | 1월 1일 | 이스트 런던 | Pat Fairfield영어 | ERA | [18] |
1938 | 1월 1일 | 이스트 런던 | 브라 마이어 | 라일리 | [19] |
1939 | 1월 2일 | 이스트 런던 | Luigi Villoresi영어 | 마세라티 | 자세한 내용[20] |
2. 2. 카얄라미 서킷 시대 (1967-1985, 1992-1993)
1960년대 초에 건설된 빠른 카얄라미 서킷은 1967년에 첫 번째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를 개최했다. 이 경기에서는 개인 출전 선수인 존 러브가 우승할 뻔했지만 레이스 후반에 연료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고, 멕시코의 페드로 로드리게스가 우승을 차지했다.[4] 1968년에는 짐 클라크가 우승하여 후안 마누엘 팡히오의 통산 최다 우승 기록을 깼으며, 이는 그의 마지막 F1 우승이었다. 그는 그 해 말 호켄하임에서 열린 포뮬러 2 레이스에서 사망했다.[4] 1969년에는 재키 스튜어트가 우승했고,[4] 이듬해 44세의 베테랑 잭 브라밤이 그의 마지막 F1 레이스에서 우승했다.[4] 1971년에는 미국의 마리오 안드레티가 페라리 데뷔전에서 첫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했다.[4]1974년에는 미국의 피터 레브슨이 레이스 테스트 중 바베큐 벤드에서 끔찍한 사고를 당해 방책에 정면으로 충돌했고, 나중에 부상으로 사망했다.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로이테만은 그 해 행사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4] 1975년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선수 조디 셰크터가 우승했다.[4] 1977년 행사는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고 중 하나가 발생한 곳으로, 톰 프라이스가 전속력으로 트랙 마셜 프레데릭 얀센 반 부렌을 치어 사망했다. 니키 라우다가 레이스에서 우승했지만, 그 사고는 스포츠계 전체에 충격을 안겨주었다.[4] 1978년에는 로니 페터슨이 패트릭 드파일러와 리카르도 파트레세를 제치고 막판에 우승했고,[4] 1979년 행사는 변덕스러운 기상 조건에서 열렸으며 캐나다의 질 빌뇌브가 우승했다.[4]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터보차저 자동차가 그랑프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빠르고 고도가 높은 카얄라미 서킷(해발 약 약 1828.80m)의 특성상, 강제 유도 터보 엔진은 엔진에 들어가는 공기의 양을 조절할 수 있었지만, 자연 흡기 엔진은 그렇지 못했다. 터보차저 엔진은 1982년 자연 흡기 엔진보다 150마력의 출력 이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종종 자연 흡기 엔진 자동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그리드의 앞줄에 진출했다.[4] 르노 팀은 1980년과 1982년 레이스를 모두 지배했다. 프랑스인 알랭 프로스트는 중반쯤 휠을 잃은 후 1982년 레이스에서 우승했다. 그는 순위 경쟁을 뚫고 나와 카를로스 로이테만으로부터 우승을 차지했다.[4]
1981년 행사는 FISA-FOCA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랑프리가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의 라운드로 개최될지, 아니면 비선수권 포뮬러 원 레이스로 개최될지를 놓고 FISA와 합의에 도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포뮬러 리브레 행사로 치러졌다. 따라서 1981년 포뮬러 원 규정을 엄격히 준수하지 않은 자동차를 포함하여 FOCA에 소속된 팀만 참가했다.[5]
1983년 행사는 그 시즌의 마지막 레이스였으며, 알랭 프로스트, 브라질의 넬슨 피케, 프랑스인 르네 아르누가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놓고 3파전을 벌였다. 프로스트와 아르누는 모두 엔진 문제로 탈락했고, 피케는 3위를 차지하며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프로스트는 르노의 보수적인 자동차 개발 방식에 대해 비난하는 발언을 했고, 팀에서 해고되었다. 피케의 이탈리아 팀 동료 리카르도 파트레세가 레이스에서 우승했다.[4] 1984년에는 시즌 초에 행사가 열렸고, 프로스트(현재 맥라렌에서 운전)는 그의 레이스카가 시동이 걸리지 않아 예비차로 피트 레인에서 출발했다. 이는 영국인 나이젤 만셀이 그리드에서 시동이 꺼지면서 첫 번째 출발이 취소되면서 합법화되었다. 프로스트는 순위 경쟁을 뚫고 나와 팀 동료 니키 라우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영국인 데릭 워윅이 르노에서 포디움을 완성했고, 브라질의 미래 월드 챔피언 아일톤 세나는 톨먼에서 6위로 완주하며 첫 포인트를 획득했다.[4]
1985년 레이스는 그 해 7월 남아프리카 정부가 국가 내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와 관련된 폭력 사태의 급증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국가들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포츠 행사를 보이콧하기 시작하면서 국제적인 논란에 휩싸였다. 포뮬러 원에 관련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레이싱을 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일부 정부는 자국 드라이버의 참가를 금지하려 했고,[6] 리제와 르노 팀은 프랑스 정부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포츠 행사를 금지함에 따라 레이스를 보이콧했다.[7] 그러나 영국 팀에서 운전하는 프랑스 드라이버 알랭 프로스트는 이전 레이스에서 1985년 챔피언십을 확정했고,[8] 필리프 스트라이프는 모두 참가했다. 영국 드라이버 나이젤 만셀은 두 번째 포뮬러 원 레이스에서 우승했고, 그의 팀 동료 케케 로즈버그는 2번의 피트 스톱 후 트랙을 질주하여 2위를 차지하여 윌리엄스 팀에 1-2위를 안겨주었다.[8] 1985년은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전 마지막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였으며, FIA 회장 장 마리 발레스트르는 레이스 며칠 후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그랑프리가 이 국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1]
1991년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후, 포뮬러 원은 1992년과 1993년에 두 번의 그랑프리를 위해 카얄라미로 돌아왔다. 1992년 행사는 만셀이 지배했고, 1993년 경주는 프로스트, 아일톤 세나, 미하엘 슈마허 사이의 치열한 경쟁으로, 프로스트가 우승을 차지했다.[4] 1993년 7월 카얄라미는 남아프리카 자동차 협회에 매각되었고, 이 협회는 시설을 수익성 있게 운영했지만, 포뮬러 원 행사를 운영하는 것은 너무 비용이 많이 들었고 그랑프리는 다시 열리지 않았다.[4]
1975년의 조디 셰크터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유일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드라이버였다. 영국 드라이버 짐 클라크는 4번 우승했고, 오스트리아 드라이버 니키 라우다는 3번 우승했다.[4]
2. 3.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1992-1993)
2018년 4월, 《The South African》은 모터스포츠 남아프리카 공화국 CEO인 애드리안 숄츠와 함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포뮬러 원 그랑프리 일정에 복귀할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주요 장애물은 그러한 행사를 개최하는 데 드는 높은 비용과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 경주 트랙 중 키알라미가 근접하지만, 국제 자동차 연맹(FIA)의 포뮬러 원 레이스 개최 요건을 충족하는 곳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9]2023년 초, 2024 시즌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가 복귀하는 계약이 최종 단계에 근접했지만, 2023년 6월, FIA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입장을 이유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가 당분간 F1 캘린더에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10]
3. 역대 우승자 및 컨스트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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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