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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커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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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뉴커머는 1980년대 이후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일본에서는 1980년대 이후 급증한 재류 외국인들을 의미한다. 일본의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외국인 노동력 부족과 관련하여 뉴커머 유입이 증가했으며, 이들은 주로 도쿄도 신주쿠구 오쿠보, 도요시마구 이케부쿠로 주변 등 도심 지역에 거주하다가 교외로 분산되었다. 뉴커머는 일본 사회 및 재일동포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불법 체류 문제와도 연관되어 논의된다.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을 중심으로 상업 활동을 하며, 관련 단체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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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커머

2. 형성 배경

올드커머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이미 일본에 정착하고 있던 재일동포를 가리키는 말로, 이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특별영주권자 지위를 부여받아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일본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1] 이들은 주로 일제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온 사람들과 국교 정상화 이전에 밀입국한 사람들과 그 후손으로 구성된다.[1]

2. 1. 한국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 일본에 정착한 재일동포를 올드커머, 198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뉴커머라고 부른다.[1] 주로 일제강점기 징용, 밀입국 등으로 일본에 건너간 사람들과 그 후손은 올드커머에 해당한다.

국교 정상화 이후부터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에 일본에 건너간 사람들을 따로 구분해서 올드커머라고 하기도 하고,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에 건너간 사람들 가운데서도 40대 이하의 젊은 층들은 스스로를 뉴뉴커머(new new-comer)라고 하기도 한다.[1]

2. 2. 일본

재류 카드 등록 수를 살펴보면, 1959년 67만 명, 1984년 84만 명으로 그 증가세는 완만했지만, 1984년 이후 1990년 100만 명을 넘어, 2005년에는 200만 명을 넘어서는 급격한 증가가 나타났다.

이러한 배경에는 1972년의 중일 국교 정상화, 1979년의 타이완에서의 해외 출국 자유화와 1983년 나카소네 내각에 의한 "21세기 유학생 정책에 관한 제언"으로 시작되는 이른바 "유학생 10만 명 계획" (유학#유학생 10만 명 계획과 유학생의 급증(1983년~) 참조) 실현을 위한 정책 실시 등 일본 국내 요인이 있었다. 즉, 세계화의 추진과 1980년대 후반의 버블 경제에서의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한 외국인 노동자 도입 논의가 있었다. 이 시기에 일본 정부가 정식으로 미숙련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정책을 취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 사회는 이주를 촉진하는 사회적 기반 형성이 진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아시아로부터의 이주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 버블 붕괴를 맞이하여 많은 중소기업은 비용 절감, 저렴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에 주목하게 되었다. 1990년의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 개정에 의한 재류 자격 재편, 1993년 창설된 기능실습제도 도입으로 외국인 연수생의 체류 연수를 단기에서 장기로 변경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3. 거주 현황 및 지역 특성

1980년대 이후 일본에 온 뉴커머들은 이전의 재일동포들과 달리 민족 차별 등의 과거사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세대였다. 이들은 재일동포 사회와 일본 사회의 의식 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뉴커머들은 대부분 취업 비자를 통해 일본에 정주하고 있지만, 일부는 체류 자격을 얻지 못해 불법체류자 문제와 연관되기도 한다.[2]

뉴커머의 수는 불법체류자를 포함하여 20만~30만 명으로 추산되며, 그 중 3분의 1 이상이 도쿄에 거주하고 있다. 특히 도쿄 신주쿠의 오쿠보도리에서 쇼쿠안도리 일대는 뉴커머가 운영하는 가게가 300개 이상 밀집하여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은 한류 붐을 타고 많은 일본인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3. 1. 거주 현황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일본에 온 뉴커머들은 주로 도쿄도 신주쿠구 오쿠보, 도요시마구 이케부쿠로 등 도심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했다. 이는 일본어 학교나 전문학교가 도심에 많았고, 아르바이트 구직이 쉬웠으며, 저렴한 임대 주택이 많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뉴커머의 거주지는 도쿄 외곽으로 분산되기 시작했다. 이는 뉴커머 증가에 따른 임대 주택 부족, 도심 물가 상승 등의 요인 때문이었다. 스미다강 동쪽 지역, 지바현의 JR 게이요선 연선, 사이타마현의 JR 사이쿄선, JR 게이힌토호쿠선 연선, 가나가와현의 JR 도카이도선, 도큐 도요코선 연선 등으로 뉴커머 거주지가 확대되었다.

야마시타 키요미는 가와구치 시바조노 단지에 화교 뉴커머 집주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며, 프랑스 파리 13구의 고층 맨션군을 중심으로 형성된 파리 차이나타운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3. 2. 지역 특성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에 일본에 온 뉴커머들은 대도시 중심부에 거주하는 경향이 많았다. 이들은 주로 일본어, 전문 지식·기술 습득을 목적으로 한 취학 학생이나 유학생이었으며, 특히 1980년대 후반에는 일본어 학교나 전문학교 등이 많이 위치한 도쿄도 신주쿠구 오쿠보, 도요시마구 이케부쿠로 주변에 많이 거주했다. 이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쉬운 점과 도심에 가까운 저렴한 임대 주택이 뉴커머의 거주지로 선호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이 되면서 뉴커머의 증가에 따라 저렴한 임대 주택 부족, 도시 중심부의 물가 상승 등의 요인으로 뉴커머의 거주지는 철도를 따라 교외로 분산되었다. 도쿄 방면에서는 스미다강 동쪽의 각 구와 지바현의 JR 게이요선 연선, 사이타마현에서는 JR 사이쿄선, JR 게이힌토호쿠선 연선, 가나가와현에서는 JR 도카이도선, 도큐 도요코선 연선으로 각각 뉴커머의 거주지가 확대되었다.

야마시타 키요미는 가와구치 시바조노 단지(시바조노정 (가와구치 시)#외국인 인구 참조)에 화교 뉴커머의 집주화가 발생하고 있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파리의 차이나타운이 파리 13구의 고층 맨션군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과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다.

2016년 말 시점의 재류 외국인 수를 비교했을 때, 가장 많은 도쿄도는 약 명, 가장 적은 아키타현은 약 3,600명으로 100배 이상의 차이가 있다. 10만 명을 넘는 도도부현은 도쿄도, 아이치현, 오사카부, 가나가와현, 사이타마현, 지바현, 효고현 순으로, 모두 공업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산업 구조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3][4]

4. 사회적 영향 및 관련 단체

1980년대 이후 뉴커머들은 재일동포 사회와 일본 사회의 의식 변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취업 비자로 거주하지만, 단순 노동에 대한 비자 발급 제한으로 인해 불법 체류자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뉴커머 관련 단체로는 2001년 코리아타운 한국 가게 경영자들을 중심으로 재일본한국인연합회(한인회)가 결성되어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7년 외교통상부는 민단 외 뉴커머 단체에도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지침을 발표하여 뉴커머의 존재가 공식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1]

4. 1. 일본 사회에 미친 영향

1980년대 이후의 뉴커머(new comer)는 민족차별 등 과거사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당당하여 재일동포 사회 및 일본 사회의 의식 변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대부분 1년 또는 3년에 한 번씩 기간을 갱신해야 하는 취업 비자를 가지고 정주자로서 활동하고 있으나, 상당수는 일본이 이른바 단순 노동에 대해 취업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방침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체류 자격을 취득하지 못하여, 불법 체류자 문제의 일부분으로서 사회 문제와 연관 지어 거론되기도 한다.

그 숫자는 불법체류자를 포함해서 20만~30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 중 3분의 1 이상이 도쿄에 살고 있다. 도쿄 신주쿠의 오쿠보도리에서 쇼쿠안도리 일대에는 뉴커머가 경영하는 가게가 300개가 넘게 몰려있어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을 형성하고 있으며, 한류 붐을 타고 많은 일본인들도 이곳을 찾고 있다.

4. 2. 한국의 뉴커머

1980년대 이후의 뉴커머(new comer)는 민족차별 등 과거사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구김살 없이 당당하여 재일동포 사회 및 일본 사회의 의식 변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대부분 1년 또는 3년에 한 번씩 기간을 갱신해야 하는 취업비자를 가지고 정주자로서 활동하고 있으나, 상당수는 일본이 이른바 단순 노동에 대해 취업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방침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체류 자격을 취득하지 못하여, 불법체류자 문제의 일부분으로서 사회문제와 연관 지어 거론되기도 한다.

불법체류자를 포함해서 20만~30만 명으로 추산되며, 도쿄에 3분의 1 이상이 살고 있다고 한다. 도쿄 신주쿠의 오쿠보도리에서 쇼쿠안도리 일대에는 300개가 넘는 뉴커머가 경영하는 가게가 몰려있어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을 형성하고 있으며, 한류 붐을 타고 많은 일본인들도 이곳을 찾고 있다.

단체로는 코리아타운 한국 가게 경영자들을 중심으로 2001년에 재일본한국인연합회(약칭 한인회)를 결성, 수도권을 중심으로 점차 그 활동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 2007년에는 '재일민단 지원' 목적의 정부 예산이 민단 이외의 뉴커머(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에 온 교포나 주재원 등) 단체 등 다른 재일동포 단체에도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의 외교통상부 지침이 뉴스로 되는 등 공식적으로도 뉴커머의 존재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5. 더불어민주당 관점에서의 비판 및 고려사항 (별도 항목)

더불어민주당 관점에서 뉴커머에 대한 비판이나 고려사항은 현재 명확하게 제시된 바가 없다. 뉴커머 자체가 특정 정당이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공식적인 입장이나 논평은 확인되지 않는다.

참조

[1] 논문 在日外国人と日本人とのコミュニケーション--地域における交流・支援活動の実態 広島大学留学生センター
[2] 서적 山下
[3] 서적 富谷
[4] 웹사이트 都道府県別 国籍・地域別 在留外国人 https://www.e-sta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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