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문화)
1. 개요
한류는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한국 대중문화의 해외 확산을 의미하며, 주로 한국 드라마, 음악, 영화, 패션 등을 지칭한다. 1990년대 아시아 시장에서 시작된 한류는 2000년대 이후 K팝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한류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 인기를 높이고 관광객 증가 등 경제적 영향을 미쳤지만, 문화 제국주의 비판, 과도한 경쟁, 열악한 노동 환경 등의 문제점도 지적된다.
| 이름 | 한류 (韓流) |
|---|---|
| 로마자 표기 | Hallyu |
| 의미 | 한국의 흐름/파도 |
| 다른 뜻 | 한류 (동음이의) |
| 시작 | 1990년대 말 중국 |
|---|---|
| 계기 |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의 인기 |
| 발전 | K-pop을 위시한 한국 대중문화 전반의 세계적인 인기 확산 음식, 패션, 뷰티 등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 증가 |
| 드라마 | 한국 드라마(K-드라마) |
|---|---|
| 영화 | 한국 영화 |
| 음악 | K-pop 대한민국의 음악 |
| 만화 | 만화 웹툰 |
| 음식 | 한국 요리 (김치, 반찬 등) |
| 패션 | 한복 등 한국 전통 의상 및 현대 패션 |
| 게임 | 비디오 게임 (대한민국) |
| 경제적 영향 | 한국 문화 상품 수출 증가 및 관련 산업 성장 |
|---|---|
| 사회적 영향 |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 증가 한국어 학습 열풍 한국 방문 관광객 증가 |
| 정치적 영향 | 한국의 소프트 파워 강화 |
| 영어 | Korean Wave |
|---|
| 관련 문서 | 한국 문화 K-pop 한국 드라마 한국 영화 웹툰 |
|---|
-
예외주의 -
존더베크
존더베크 이론은 독일 근대화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늦은 산업화, 반민주적 엘리트, 바이마르 공화국 불안정, 나치즘 등장 등의 특수성을 보이며 전개되었다는 이론으로, 초기에는 긍정적으로 평가되었으나 나치즘 이후 부정적 의미를 갖게 되었고, 현재는 독일 역사 복잡성을 단순화한다는 비판과 유럽 근대화 과정에서 독일 경험의 특수성에 대한 반박이 제기되고 있다. -
예외주의 -
인간중심주의
-
외국 문화에 대한 동경 -
친일
친일은 일본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나 일본 관련 동향에 대한 긍정적 해석을 의미하며,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며, 국가 간 관계, 문화적 교류, 경제적 영향 등 다양한 요소가 친일 감정 형성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
외국 문화에 대한 동경 -
친미
-
대중문화 -
대중조작
대중조작은 물리적 힘 없이 군중의 참여, 통제, 영향력 행사를 통해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 행위로, 선전, 권위, 장소 선정, 전달 방식 등 다양한 요소를 활용하여 정치, 종교, 소셜 미디어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여론 조작의 위험성과 윤리적 문제가 논의된다. -
대중문화 -
유행
2. 어원
1998년부터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이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한류라고 볼 수 있는 현상이 등장했다. 당시에는 한류라는 단어 자체로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대만에서는 ‘하일한류(夏日韓流중국어, 여름에 부는 한국 바람)’, 중국에서는 ‘일진한류(一陣韓流중국어, 한 바탕의 한류)’와 같은 표현이 가끔 사용되었다. 이 단어들의 유래는 한류가 차가운 해류를 뜻하는 ‘한류(寒流중국어)’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또 ‘한풍(韓風중국어)’과 같은 표현도 사용되었는데, 이는 ‘한풍(寒風중국어)’과 발음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한류 현상에 대한 경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한류라는 단어는 합성신조어로서, 특성 또는 독특한 경향을 뜻하는 접미사 ‘~류(流)’에 한국을 뜻하는 ‘한(韓)’을 붙인 것이다.
이후 한류라는 단어가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99년 대한민국 문화관광부에서 대중음악의 해외 홍보를 위해 〈韓流-Song from Korea〉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제작했을 때였다.
3. 역사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 시절, 대한민국 대중 매체는 정부의 통제와 검열 속에서도 빠르게 성장했다. 1960년대 초, 최초의 상업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국이 개국했지만, 방송윤리위원회의 엄격한 검열을 받았다. 1972년 유신 헌법 제정으로 박정희는 "외국 퇴폐 문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문화 산업을 탄압했다. 12·12 군사 반란 이후 전두환 정권은 언론을 더욱 통제했다. 1980년, 전두환은 민영 방송국들을 한국방송공사(KBS)와 문화방송(MBC)으로 강제 통합하여 국가 주도의 미디어 독점을 만들었다.
1945년, 대한민국은 탈식민지화 과정의 일환으로 모든 일본 미디어 수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일본 미디어는 불법적으로 유통되었고, 국영 방송국과 개인 밀수업자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1998년 일본·대한민국 공동선언으로 이 금지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4단계에 걸쳐 점차 완화되었다.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 산업 보호를 위해 예산을 늘렸고, 전국 대학에 수백 개의 문화 산업 부서를 만들었다.
1세대 한류는 1990년대 후반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며, 주로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확산으로 이루어졌다.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이후, 한국은 김대중 대통령의 '문화 대통령' 선언에 따라 1999년 '문화 산업 진흥 기본법'을 제정하고, 2001년에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을 설립하여 문화 산업 육성과 수출을 지원했다.
3.1. 1990년대: 대중문화의 발전과 민주화
1987년 6·29 선언으로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들어서면서 대중들은 대중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서울방송(SBS)를 포함한 여러 케이블 TV, 위성방송 채널 등이 개국하면서 상업 방송이 활성화되었고, 이는 방송 환경의 발달로 이어졌다. 방송 환경의 발달은 대기업 자본의 문화 산업 참여를 유도했고, 문화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변화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문화 산업에는 '기획'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신씨네, SM엔터테인먼트 등이 그 예이다.
1994년, 《쥬라기 공원》의 1년 수익이 자동차 150만 대 수출 수익과 맞먹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화산업론'이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대한민국의 외환 위기와 IT 산업의 쇠퇴가 겹치면서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문화 산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3.2. 2000년대: 아시아 시장 진출과 성공
2000년대에 대한민국 대중문화 산업은 국내 시장의 한계를 넘어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2000년 2월, H.O.T.는 베이징에서 공연하며 중국에서 한류를 일으켰다. 2003년 베이비복스의 곡은 중국, 대만, 홍콩, 태국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2005년 정지훈은 베이징에서 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공연을 성공시켰다. 2001년 보아는 대한민국 노래 최초로 일본 오리콘 앨범차트 1위에 올랐다.
2000년 드라마 《가을동화》는 대만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얻었고, 촬영지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었다. 영화 《쉬리》는 2000년 일본에서 흥행 1위를 기록했다. 2003년 드라마 《대장금》은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 기여했다. 2003년 《겨울연가》, 2004년 《풀하우스》 등도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2008년 드라마 《주몽》은 이란에서 시청률 85%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고, 다른 대한민국 드라마들도 이란에서 인기를 끌었다. 네팔에서는 《엽기적인 그녀》 등의 영화가 인기를 끌며 "사랑해요(Sarang hyo)" 같은 한국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2009년 동방신기는 한국 그룹 최초로 도쿄돔 무대에 섰다. 이후 소녀시대, 카라 등 걸그룹들이 해외 진출을 주도했다. 2009년 카라는 태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패러디 영상이 만들어지는 등 인기를 얻었다.
1세대 한류는 아시아 국가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가 높아진 시기였다. 1990년대 후반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며, 주로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확산으로 이루어졌다.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이후, 한국은 문화 산업 진흥을 통해 경제 재건을 꾀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문화 대통령'을 선언하고, 1999년 '문화 산업 진흥 기본법'을 제정했다. 2001년에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을 설립하여 문화 산업 육성과 수출을 지원했다.
1990년대 말부터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아시아 각국에 수출되었고, 2012년 한류 상품 매출액의 99%는 아시아(특히 일본)에서 발생했다. 이후 중국 수출이 증가하면서 일본 매출액은 감소했다. 2011년 11월, 대한민국 해외문화홍보원은 아시아 8개 지역에 84개 한류 팬클럽, 231만 명의 회원이 있다고 발표했다.
3.3. 2010년대: 세계화와 K-팝의 부상
2000년대 말부터 대한민국의 문화콘텐츠 기업들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여러 지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보아는 2008년, 원더걸스는 2009년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한국이나 일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2011년 SM 엔터테인먼트는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에서 'SM타운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2012년에는 한류 팬들을 위한 컨벤션 KCON이 열렸다. 2013년에는 슈퍼주니어가 상파울루, 리마, 산티아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멕시코시티 등 남미 도시에서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강남스타일》은 기존 서구의 한류 팬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인기를 얻었으며, 2012년 9월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2위를 기록했다. 2014년 5월 31일에는 유튜브 최초로 조회수 20억 건을 돌파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3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문화에 매료당하고 있다”며 딸들이 자신에게 강남스타일 춤을 가르쳐 줬던 일화를 언급했다.
한편, 아시아에서는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신서유기》는 중국 QQ닷컴에서 1천만 뷰를 돌파했고, 《런닝맨》은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인기를 얻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 비디오의 엄청난 성공을 필두로, 해외에서 K팝 그룹의 성공적인 활동이 한류의 특징이 되었다.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비디오 플랫폼은 K팝의 국제적인 인기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여러 그룹들은 월드 투어,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드 및 기타 해외 행사 출연을 통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3.4. 2020년대: 미국화와 다양성 추구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으나, 이는 영어로 활동한 이후였다. 이후 케이팝 등 대부분의 문화가 한국어 대신 영어를 사용하고, 각본 전개 방식이 미국 영화를 따르면서, 한국 고유의 특성이 사라진다는 우려가 한국 내에서 제기되었다.
4. 지역별 한류
1990년대 말부터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류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2012년 한류 상품 매출의 99%는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했으며, 특히 일본에서 80%를 차지했다. 이후 중국으로의 수출이 증가하면서 일본에서의 매출액은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2010년대 들어 북아메리카 지역에서도 한류가 빠르게 성장했다. 싸이와 방탄소년단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K-pop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독일을 중심으로 한류가 성장하고 있으며, K-pop과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란, 모로코, 이집트, 알제리 등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도 한국 문화 소비가 증가했다. 해외문화홍보원은 한국 드라마를 아랍어 자막과 함께 제공하여 이 지역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중동방송센터(MBC4)는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여 한류 인기를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전통적 가치관과의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는 한국 문화의 인기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는 양측 K-pop 팬들이 문화 선교사 역할을 하며 한류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보고했다.
북한에서는 햇볕정책 기간 동안 일부 한국 엔터테인먼트가 유입되기도 했으나, 2010년 이후 금지되었다.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 이후에는 한국 영상 시청 및 유통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었다.
4.1. 동아시아
1990년대 말부터 중국에서는 한류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1993년 중국중앙방송국(CCTV)에서 드라마 〈질투〉가 처음으로 방영되었으나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97년 CCTV에서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별은 내 가슴에〉, 〈의가형제〉 같은 드라마가 중국에 수출되었다. 1998년에는 H.O.T의 음반이 중국에서 발매되었고, 2000년 2월 베이징에서 열린 H.O.T.의 공연은 한류가 중국에 본격적으로 퍼지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중국에서는 대한민국 문화 마니아를 뜻하는 한미(韓迷중국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이와 비슷하게, 대만에서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합일족이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한 합한족(哈韓族중국어)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대한민국의 대중문화 중에서도 드라마를 좋아하는 팬들은 한극미(韓劇迷중국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은 사드 미사일 방어 시스템 설치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 문화 및 경제 수입에 대한 여러 제한 조치를 시행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한중 합작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중단되었고,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K팝 비디오 스트리밍, 한국 화장품 수입 등이 제한되었다. 많은 한국 연예인들이 비자 발급을 거부당하고 출연이 취소되었지만,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비자 정책이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다. 2017년 3월, 중국 국가여유국은 중국 여행사의 한국 단체 관광을 금지했다. 이로 인해 한국 연예 기획사들은 큰 재정적 손실을 보았는데,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18% 하락하여 150의 손실을, YG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32% 하락하여 230의 손실을 입었다. 2017년 10월 31일, 양국 정부는 사드 문제에 대한 합의를 발표했고, 이후 많은 중국 온라인 비디오 플랫폼이 한국 드라마 수입을 재개하고, 중국 여행사는 한국 단체 관광을 재개했으며, 한국 아이돌 그룹이 중국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1990년대 말부터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가 아시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으며, 2012년 한류 상품 매출액의 99%는 아시아(그중 일본이 80%)에 집중되어 있다. 이후, 중국으로의 수출이 증가하면서 일본에서의 매출액은 감소했다.
2003년 일본에 수출된 드라마 〈겨울연가〉는 NHK에서 방영된 후 일본 중장년 여성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 인기로 인해 일본에서는 〈겨울연가〉의 주인공이었던 배용준을 욘사마(ヨン様일본어)라고 부르며 숭배하는 ‘욘사마 붐’이 일어났고, 드라마 촬영지를 ‘성지순례’하는 관광 붐으로 이어졌다. 2004년 일본에서 대한민국을 방문한 관광객은 전년 대비 5.5% 증가했다. 2005년 〈겨울연가〉의 여주인공 역을 맡았던 최지우가 도쿄 관저에 방문했을 때 당시 일본의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최지우와 함께 〈겨울연가〉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또 한 심포지엄에서는 “자신보다 배용준이 더 인기가 많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배용준은 이러한 공로로 2008년 대한민국에서 문화훈장을 수상했다.
한류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 초기 열풍은 일본 내각총리대신 오부치 게이조와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의 노력에 힘입은 바가 컸으며, 이들은 양국 간의 "미래 지향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대한민국은 1998년 일본 문화 상품 수입에 대한 일방적인 규제를 해제하여 양국 간의 문화 교류를 증진시켰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이 시행한 개방 정책은 일본에서 한류 확산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21년 11월 2일,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으로의 한국 영상 콘텐츠 수출이 눈에 띄게 급증했다. 2021년 수출액은 1810로 치솟아 전년도 1210에서 50%나 증가했다. 이는 일본 시장 내 한국 영상 콘텐츠에 대한 인기와 수요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K-POP, 한국 드라마, 한국 영화, 한국 요리 등 한국의 대중문화는 모두 대만에서 인기가 있으며, 대만인들은 한국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태국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자주 방영되고 있다.
4.2. 북아메리카
2010년대 들어서 북아메리카 지역에서도 한류는 빠른 성장을 보였다. 남미에서 인기를 끌던 K-pop이 2010년대 초반 북미에도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이후 싸이와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하자, 북미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K-pop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4.3. 유럽
독일을 중심으로 한류가 빠르게 성장했다. K-pop을 중심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직 아시아에 비해 팬덤의 규모는 작지만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보인다. 유럽의 주요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가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도 하나의 성장 요인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2011년 2월 25일 런던에서 "런던 K-POP의 밤"이라는 공연이 열려 약 700명이 모였다. 행사 입구에는 200미터의 줄이 늘어서기도 했다. 같은 신문은 영국 BBC가 4월 26일, "한류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국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는 '재벌 기업'에서 'K-POP'을 주축으로 하는 한류로 옮겨가고 있다"고 보도했다고 전했다. 2011년 6월,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열린 샤이니 라이브 공연에는 태극기를 든 현지 팬 800명이 모였다. 2011년 12월 7일, 런던에서 포미닛, 비스트, 지나(G.Na)가 콘서트를 개최하여 히스로 공항에 400명의 팬이 몰려들었고, 콘서트에서는 3,500명의 팬이 열광했다.
4.4. 기타 지역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란, 모로코, 이집트, 알제리 등이 한국 문화를 주로 소비하는 국가로 떠올랐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얻자, 해외문화홍보원은 겨울연가를 아랍어 자막과 함께 제공하여 이집트 국영 텔레비전 네트워크에서 방영되도록 하였다. 중동 지역에서 한국 문화 수출을 지원하는 한국 정부의 노력은 이 지역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중동방송센터(MBC4)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에서 한류의 인기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2012년부터 MBC4는 꽃보다 남자, 미남이시네요, 드림하이, 커피프린스 등의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이슬람 청소년들이 전통적인 가치를 저버릴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중동 지역에 처음으로 소개된 한국 드라마 중 하나인 가을동화는 대한민국 대사관과 이집트 국영 방송사 간의 오랜 협상 끝에 5개월 만에 방송되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한국의 개입으로 인해 나빠졌던 이집트 내 한국에 대한 인식은 이 드라마 방영 이후 좋아졌다.
이란 국영 방송인 이란 이슬람 공화국 방송(IRIB)은 많은 한국 드라마를 황금 시간대에 방영하였다. 한국 프로그램들은 서구권 작품들과 달리 이란 문화 이슬람 지도부 부의 보수적인 기준을 충족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2012년 10월, IRIB 대표단은 양국 간의 "문화적 친밀도"를 강화하고 KBS와 IRIB 간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한국 문화의 인기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K-pop 팬들이 자신들을 "문화 선교사"로 여기고 K-pop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지역 사회 내에서 한류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보고했다.
2000년대 햇볕정책으로 인해 일부 한국 엔터테인먼트가 북한 내에서 시청되기도 하였으나, 2010년 햇볕정책 종료 이후 한국 드라마, 가요 등은 모두 금지되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시청 금지를 어긴 미성년자는 청소년 노동 수용소로 보내졌으며, 형벌은 보통 5년 미만이었다. 그러나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 이후, 한국 엔터테인먼트 영상 시청 및 유통에 대한 최고 형벌은 사형까지 가능해졌다. 2022년에는 10대 남학생 2명이 한국 드라마 시청 혐의로 12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는 영상이 북한 정부에 의해 이념 교육 목적으로 배포되었다. 이 영상에서는 한국 문화의 확산에 대해 "썩어빠진 괴뢰 정권의 문화가 10대 청소년에게까지 퍼지고 있다"는 언급이 있었다. 2024년 1월 18일 BBC 코리아의 취재에 따르면, 탈북자는 "미국 드라마를 보다가 잡혀도 뇌물을 주면 도망갈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를 보면 총살당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2006년에 자국 드라마 보호를 위해 한국 드라마를 규제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2006년 10월 27일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KBS의 방송 영상물 수출은 전년 대비 67% 감소했다. 그러나 학력과 소득 수준이 낮은 중국인들에게 한류 드라마의 인기는 높았는데,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강명구 교수는 "한국 드라마는 로직이 부족하여 시청 시 뇌를 움직일 필요가 없는 것이 저소득·저학력층에 받아들여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한국의 화장품 브랜드 라네즈는 한류 여배우를 내세운 광고로 저가 화장품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일부 사극('주몽'(2006년 MBC), "태왕 사신기"(2007년 MBC), "바람의 나라"(2008년 KBS2), "연개소문"(2006년 SBS), "대조영"(2006년 KBS) 등)은 중국 정부의 고구려·발해 역사 인식(동북공정)에 반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중국에서 방송 금지 조치를 받았다.
2016년 7월 THAAD 미사일의 한국 배치를 반대하는 조치로, 중국에서 한류 스타의 노출을 제한·금지하는 '한한령'이 발동되었다. 같은 해 8월 이후, TV에서 한류 스타에 모자이크 처리가 되거나, 한국인 감독에게 비자가 발급되지 않는 등의 사례가 발생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한국 단체의 중국 내 공연 금지, 신규 한국 연예 기획사에 대한 투자 금지, 1만 명 이상을 동원하는 한국 아이돌 공연 금지, 한국 드라마·예능 협력 프로젝트 체결 금지, 한국 연예인이 출연하는 드라마의 중국 내 방송 금지 등의 추가 조치가 있었다. 한국 기업·브랜드·광고 모델 등, 한국을 나타내는 모든 요소에 대해서도 방송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다만,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기는 어려웠다.
한류가 일본에서 유행하면서, 일본에서 붐이 된 대중문화로서 한류의 부가가치가 생겨 한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유럽 및 미국으로의 보급이 진행되었다. 2011년 10월 2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일본 문화 축제인 "바르셀로나 만화 축제"에서 열린 저스틴 비버 콘서트의 오프닝 무대에 JYJ가 참여했다. "JYJ가 한국 아티스트 최초로 스페인 단독 콘서트를 푸에블로 에스파뇰 광장에서 개최하여 3000명의 관객을 매료시켰다. 관객들은 공연 시작 전부터 JYJ 콜을 연호했다. 현지 한국인은 거의 없었고, 유럽에서의 K-POP 붐을 재확인했다."고 보도되었다.
5. 분야별 한류
한류는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각 분야는 독특한 방식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드라마는 1990년대 후반 중국에서 별은 내 가슴에와 첫사랑이 방영되며 한류의 시작을 알렸다. 2000년대 초 대장금은 아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일본에서는 겨울연가가 한류 열풍을 일으켰다. 2000년대 후반 주몽이 이란 등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2019년 킹덤은 인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분야에서는 1999년 쉬리가 벤처 자본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아 성공하면서 한국 영화 산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2001년 엽기적인 그녀는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2019년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비영어 영화가 되면서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였다.
음악(K-팝) 분야에서는 1990년대 후반 SM 엔터테인먼트, YG 엔터테인먼트, JYP 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들이 등장하며 K팝 산업의 기반을 다졌다. 2000년대 초 보아는 일본 시장에 진출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동방신기, 빅뱅, 소녀시대 등 여러 그룹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2010년대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으며,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뮤직 어워드 등에서 수상하며 K팝의 위상을 높였다.
만화(웹툰)는 2000년대 초 인터넷을 통해 해외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2010년대 웹툰의 등장으로 더욱 발전했다. 네이버, 카카오 등 한국 기업들은 웹툰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고 있다.
게임 분야에서는 2006년 캡콤에서 발매한 로스트 플래닛 익스트림 컨디션에 한국 배우 이병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한류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기타 분야에서는 한식 세계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진행 중이며, 김밥, 치즈 닭갈비 등 한국 음식이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K팝을 중심으로 한류가 확산되고 있으며, 영국 BBC는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국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은 한류 드라마, 영화 촬영지를 유치하여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5.1. 드라마
1990년대 후반, 중국 중앙 텔레비전(CCTV)에서 방송된 질투(1992)는 중국에 처음으로 소개된 한국 드라마였다. 1997년, 첫사랑과 별은 내 가슴에가 중국에서 방영되면서 한류의 시작을 알렸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 동아시아 방송사들은 일본 프로그램의 대안으로 저렴한 한국 드라마를 찾기 시작했다. 2000년, 한국 드라마는 일본 프로그램 가격의 4분의 1, 홍콩 프로그램 가격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대만에서는 불꽃(2000)과 가을동화(2000)의 성공적인 방영이 한류의 시작을 알렸다.
2003년, 사극 대장금은 대만,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홍콩에서는 마지막 회가 4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후 대장금은 전 세계 80개국 이상으로 수출되었다.
일본에서는 2003~2004년 겨울연가가 방영되며 한류가 시작되었다. 배용준은 30대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는 "배용준은 일본에서 나보다 인기가 많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인도 마니푸르 주에서는 2000년 힌디어 영화와 텔레비전 채널이 금지되면서 한국 드라마가 대체재로 인기를 얻었다.
2000년대 후반, 한국 드라마는 동아시아 지역 텔레비전 채널의 주요 프로그램이 되었으며, 중국에서는 다른 모든 외국 프로그램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2세대 한류는 코믹 로맨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등 다양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이어졌다.
2006년, 역사 드라마 주몽은 터키, 루마니아, 이란에서 80~90%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2019년, 킹덤은 인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인도 코로나19 범
5.2. 영화
1966년, 군사 독재자 박정희는 한국 영화 산업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극장에서 상영되는 외국 영화의 수를 제한하는 스크린 쿼터제를 시행했다. 1986년, 미국 영화 수출 협회는 미국 상원에 한국 정부가 부과한 제한에 대해 항의했다. 미국의 압력과 국내 영화 산업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1988년 한국 정부는 외국 영화가 국내 회사에 의해 배급되어야 한다는 제한을 해제했다. 1994년까지 한국 영화는 역대 최저 시장 점유율인 15.4%를 기록했고, 평론가들은 머지않아 한국 영화 산업이 쇠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여, 국회는 문화체육관광부 내에 문화산업국을 설치하고 1995년 영화진흥법을 통과시켜 영화 제작에 대한 세금 혜택을 제공했다. 1999년 2월, 삼성 엔터테인먼트 그룹은 해체를 발표하고 그해 2월 마지막 영화인 쉬리를 개봉했다. 쉬리는 벤처 자본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았으며, 이 영화의 성공으로 1999년 영화진흥법이 개정되어 개인이 영화 제작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2001년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홍콩과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했으며, 여러 번 외국에서 리메이크되었다.
한류 1세대 동안 해외로 수출된 한국 영화는 주로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소비되었다.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동아시아 밖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2019년 블랙 코미디 스릴러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비영어 영화로 기록되었다.
5.3. 음악 (K-팝)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 대한민국 음악은 외국으로부터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SK, 대우, 삼성이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 음악 산업으로 확장했지만,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로 인해 이러한 사업이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이 공백은 SM 엔터테인먼트(1995년 이수만에 의해 설립), YG 엔터테인먼트(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에 의해 설립), JYP 엔터테인먼트(1997년 박진영에 의해 설립)에 의해 채워졌다. K팝은 1997년 라디오 프로그램 서울 뮤직 룸이 베이징에서 방송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중국에서 인기를 얻었다.
2000년 보아, 2002년 비, 2003년 동방신기, 2005년 슈퍼주니어, 2006년 빅뱅, 2007년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데뷔는 아시아에서 K팝의 주요 돌파구였다. 보아는 2002년 앨범 Listen to My Heart를 발매하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양국 간 엔터테인먼트 수입 및 수출을 제한했던 장벽이 무너진 이후, 일본 시장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 팝스타가 되었다. 2008 회계 연도 동안, 대한민국에서 수출된 전체 K팝 수출의 68%가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해외에서 K팝 그룹의 성공적인 상승이 한류의 특징이 되었다. 이러한 성공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 비디오의 성장으로 이끌어졌다.
유튜브 및 기타 온라인 비디오 플랫폼은 K팝의 국제적인 인기를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시아 투데이》는 한국 음악 콘텐츠가 2000년대 후반 원더걸스를 시작으로 세계 대중문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후 빅뱅, 2NE1, 블랙핑크, 방탄소년단이 잇달아 빌보드에서 신기록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그 해 12월 10억 뷰를 돌파한 최초의 유튜브 동영상이 되었다. "강남스타일"의 출시는 K팝이 인도 주류 문화로 진입하는 데 기여했다.
방탄소년단 및 다른 그룹들은 월드 투어,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드 및 기타 해외 행사 출연을 통해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방탄소년단은 12개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와 11개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그래미 어워드에서 5번 후보로 지명되었다. 방탄소년단은 2021년 로스앤젤레스의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4차례의 콘서트를 매진시켰다. 2010년대 이후, K팝과 해외 아티스트 간의 협업이 증가했는데, 예로 방탄소년단과 스티브 아오키, 싸이와 스눕 독의 협업이 있다. 많은 한국 아티스트들에게 국내 인기는 더 이상 해외에서의 전반적인 성공과 상관관계가 없는데, 한국이 더 이상 세계 최대의 K팝 소비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K-POP을 대상으로 한 ETF 발행으로, 미국의 투자자들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접하게 되었으며, "KPOP and Korean Entertainment ETF(KPOP ETF)"는 테마 투자 전략을 개인 투자자 등에게 제안하는 미국 금융 시장의 트렌드를 이어가고 있다. 뉴욕 증권 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에서 거래를 시작한 KPOP ETF의 티커 심볼은 "KPOP"이며,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엔터테인먼트 및 인터랙티브 미디어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한류라는 말이 생기기 이전의 일본에서도, 카스마프게나 부산항에 돌아가리 등의 한국 트로트나,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은 1990년대 중반의 이박사 등의 뽕짝 붐, 또는 『다운타운의 웃긴 이야기』에서의 "오자파멘"과 그 속편 "마우야케소"의 패러디 등 한국 가요의 유행이 산발적으로 있었지만, 그것은 개별 작품의 히트였으며, 한국 음악 전반의 유행은 아니었다. 1998년에 S.E.S.가 일본에 진출했지만, 한국 국내 정도의 판매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2001년에는 BoA가 일본에서도 본격적으로 성공하고, 동방신기나 빅뱅 등의 남성 그룹에 이어, 2010년에는 카라나 소녀시대 등의 여성 그룹도 일본에 진출하여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 이러한 현대적인 한국 대중음악을 K-POP이라고 호칭하게 되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K-POP 문서를 참조할 수 있다.
5.4. 만화 (웹툰)
만화는 만화를 뜻하는 한국어로,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 밖에서 인기를 얻었다. 만화는 일본 만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일본 만화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포괄한다. 2010년대에는 웹툰의 등장으로 형식에 활력이 불어넣어졌는데, 웹툰은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레이아웃을 제공하고 대한민국의 검열 기준을 우회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현대 만화는 네이버, 카카오, 레진과 같은 웹툰을 호스팅하는 한국 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다양한 언어로 자사의 작품을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많은 국가로 그 범위를 넓혔다. 이러한 만화는 웹툰의 접근성을 통해 한국 밖으로 진출하여 일부 영화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각색되는 영향을 미쳤다.
한국 만화 산업은 1910년부터 현재까지 상당한 변화를 겪었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도전에 직면했다. 초창기에는 일본 식민 통치의 영향과 한국 전쟁의 여파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정부의 강력한 개입이 있었다. 정치적 안정에 대한 우려로 인해 추진된 이러한 개입은 검열과 부정적인 사회적 견해를 초래하여 해당 기간 동안 산업의 성장을 제한했다. 2000년대-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웹툰과 교육용 만화의 부상으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디지털화와 온라인 플랫폼에서 번창한 웹툰은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다. 교육용 만화는 또한 어린이 교육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여 사업 위험을 줄이고 산업을 재편했다.
세계화와 디지털화는 한국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웹툰이 전 세계의 다양한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게 했다. 정부의 개입을 줄인 비즈니스 친화적인 환경의 필요성은 만화를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산업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함께 이러한 변화의 핵심이었다. 역사적 과제를 인식하는 것은 한국 만화 산업을 활기차고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환경으로 이끌 효과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데 매우 중요했다.
5.5. 게임
2006년 12월 캡콤에서 발매한 Xbox 360용 게임 로스트 플래닛 익스트림 컨디션에는 한국 배우 이병헌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병헌이 참여한 발표회와 토크 이벤트에는 많은 한류 팬들이 모였다.
5.6. 기타
한류는 일본에서 유행하면서 대중문화로서 부가가치가 생겨 유럽 및 미국으로 보급되었다. 2009년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IPSOS) 조사에서는 프랑스인의 41%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모르겠다"라고 답했지만, 2011년에는 프랑스에서도 한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보도되었다. 같은 해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 2는 "한국, 숨겨진 저력"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K-POP 아이돌들의 활동 등 한류 붐을 소개했다. 2012년 한국관광공사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한류 팬은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2011년 6월 10일 SM 엔터테인먼트의 파리 첫 공연은 "K-POP 인베이전(침략)"의 시작을 알린 역사적인 날로 기념된다.
프랑스 보르도대 홍석경 교수는 "일본 만화를 드라마로 만든 한국 드라마를 즐기다가 K-POP으로 진화했다"고 진단했다. 재팬 엑스포에 한류 콘텐츠가 등장하기도 했으며, 프랑스 출신 방송 관계자는 "일본 문화와 함께 (한국 문화에 대한) 인기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일본 마니아층이 감소하고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는 매우 좋은 시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는 파리를 거점으로 하는 한국 대중문화 동호회 "KOREA CONNECTION"이 있다. 이 단체는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이벤트를 개최하거나, K-POP 콘서트 추가 공연을 요구하는 시위 활동 등을 하고 있다. 2012년에는 "한국 만화"를 프랑스에 보급하는 것을 주제로 활동했다.
2012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K-POP 페스티벌 "뮤직뱅크 인 파리"는 1만 명의 한류 팬이 모였다고 보도되었지만, 현지 보도는 엇갈렸다. 조선일보는 K-POP이 프랑스 대중음악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에 있다고 극찬받고 있다고 해설했으며, 2011년에는 K-POP 안무를 의미하는 "chore de coree"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고 보도했다. 기 소르망 교수는 한류가 세계적으로 비슷한 대중음악을 한국 아이돌 그룹이 부르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갑자기 다른 나라의 물결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2011년 영국 BBC는 "한류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국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는 '재벌 기업'에서 'K-POP'을 주축으로 하는 한류로 옮겨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해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열린 샤이니 라이브 공연에는 태극기를 든 현지 팬 800명이 모였다. 2011년 런던에서 포미닛, 비스트, 지나(G.Na)의 콘서트에는 3,500명의 팬이 열광했다. 2011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일본 문화 축제에서 JYJ가 공연하여 3000명의 관객을 매료시켰다. 2014년 뒤셀도르프에서 예정되었던 대규모 K팝 콘서트가 티켓 판매 부진으로 중단되었다.
2011년 한국 정부는 한류 관련 지원 예산을 17억 원에서 53억 원으로 늘렸지만, K-POP 그룹들의 계약 분쟁이 발생했다. 2012년 강남스타일로 세계를 뒤흔든 싸이의 히트에도 불구하고 아이돌 그룹의 유행은 종언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SM 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하락하고, 엔저 등의 영향으로 K-POP 붐이 쇠퇴했다. 한국 드라마는 《겨울연가》나 《대장금》 이후 히트작을 내지 못하고 있으며, 텔레비전에서도 K-POP의 인기가 하락했다. 2012년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의 독도 상륙 강행과 천황 사죄 요구 등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제2차 한류 붐은 쇠퇴했다.
드라마 《대장금》을 계기로 한국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2008년 한국 정부는 '2017년까지 한식(한국의 요리)이 세계 5대 요리에 포함되도록 한다(한식 세계화)'를 선언하고 홍보 활동을 시작했다. 김윤옥·이명박 대통령 부인은 외교 행사에서 조선 요리(비빔밥, 불고기, 김치, 찌개)의 '우수성'을 알렸으며, 한식 재단은 김치와 젓갈, 고추장, 된장, 간장을 한국의 5대 발효 식품으로 홍보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한국 음식점이 높은 가격과 위생 문제 등으로 인기가 낮다. 중국에서는 한국 식자재의 기생충 문제와 위생 기준 문제로 한국산 김치·막걸리 유통이 금지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한국 요리가 중화 요리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인기가 있으며, 2015년 조사에서는 김밥, 닭강정, 호떡, 계란빵 순으로 인기가 있었다. 2017년에는 치즈 닭갈비, 치즈 핫도그가 유행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뮤지컬을 적극 지원하고 있지만, 2013년 도쿄에 개관한 한국 뮤지컬 전용 극장은 11개월 만에 철수했다. 2015년에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내용을 담은 뮤지컬 '영웅'의 일본 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 지방자치단체들의 한류 드라마, 영화 촬영지 유치 사례
6. 한류의 영향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당시 IMF 구제 금융을 받게 된 한국은 경제 재건을 위해 문화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문화 대통령' 선언과 1999년 '문화 산업 진흥 기본법' 제정을 통해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2001년에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을 설립하여 문화 산업 육성과 수출을 지원했다. 이러한 노력은 K-POP과 한국 드라마 붐을 이끌었고, 대만에서 '한류 열풍'으로 불리며, 2001년에는 일본에서도 '한류'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류는 여러 국가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 타이완: K-POP, 한국 드라마, 영화, 요리 등 한국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형성되었다.
* 싱가포르와 태국: 한국 드라마가 자주 방영되고 있다.
* 북한: 2000년대 햇볕정책 시기에는 일부 한국 엔터테인먼트가 유입되었으나, 2010년 이후 금지되었다.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으로 한국 영상물 시청 및 유통 시 최고 사형까지 가능해졌다. 2024년 BBC 코리아 취재에 따르면, 탈북자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 총살당한다"고 증언했다.
* 중국: 2006년 자국 드라마 보호를 위한 한국 드라마 규제 움직임이 나타났고, 2016년 THAAD 미사일 한국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한한령이 발동되어 한류 스타 노출이 제한되거나 금지되었다.
* 일본: 2003년 NHK에서 방영된 드라마 『겨울연가』가 인기를 얻으며 '한류'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배용준의 애칭에서 유래한 "'욘사마 붐'"이 일어났다. 2009년 배용준 방일 기념 한류 이벤트에는 9만 명이 모였다. 그러나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천황 사죄 요구를 계기로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 하락했다.
* 프랑스: 2011년 SM 엔터테인먼트 파리 공연을 기념하여 6월 10일이 "K-POP 인베이전(침략)"의 시작을 알린 역사적인 날로 여겨진다.
하쿠호도의 하라다 요헤이는 2015년 "성형 수술", "2NE1 스타일의 갸루 패션", "얼짱 메이크업" 등 한국 문화가 일본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정착한 "신(新) 한류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lute의 이가라시 히로히코는 2018년 BoA 세대, 제2차 한류 아이돌에 이은 제3의 흐름인 "한류 서드 웨이브"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하며, 아이유, 혁오, DEAN 등을 언급했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 위기 이후, 한국은 국가 차원에서 문화 산업을 지원해왔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 국가 브랜드 위원회가 설치되어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 향상을 위한 대외 문화 홍보를 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영화, 방송 영상(한류 텔레비전 드라마), K-POP,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캐릭터 등 콘텐츠 산업 진흥을 담당한다.
한류 콘텐츠 수출액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189에서 313로 성장했지만, 일본 시장 의존도와 수익 불균형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6.1. 사회문화적 영향
한국 대중문화는 타이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타이완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드라마 대장금이 큰 인기를 얻은 타이완에서는 일부 팬들이 주인공 배우 이영애처럼 보이기 위해 성형수술을 받기도 했다. 2020년에는 한국어가 멕시코와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외국어가 되었으며, 대한민국 교육부는 이러한 한국어 학습 열풍을 한류의 영향으로 분석했다. 인도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한류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미국에도 다수의 한국 TV 드라마가 진출했지만, 미국 연예 잡지 "할리우드 리포터"와 "빌보드"의 기자 마크 러셀은 한류는 존재하지 않으며 '한류'를 좀비 웨이브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제인 케이건 UCLA 사회교육원 대중문화·예술연구소장은 한국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류가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프랑스의 여론조사 기관(IPSOS)이 프랑스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41%의 프랑스인이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모르겠다"고 답했으나, 2011년 중앙일보 논설에서는 "프랑스에서도 한류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이야기다"라고 소개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2011년 프랑스의 공영방송 프랑스 2가 "한국, 숨겨진 저력"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방송하여 K-POP 아이돌들의 활동 등 한류 붐을 소개했다고 한다. 기 소르망 교수는, 한류는 한국 특유의 요소가 없고, 세계적으로 비슷한 대중음악을 한국 아이돌 그룹이 부르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에서의 "한류"는 2003년 NHK에서 『겨울연가』가 방송되어 인기를 얻으면서 시작되었으며, 주연 배우 배용준의 애칭에서 "욘사마 붐"으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초창기에는 순애 드라마가 많았던 점도 있어, 중장년 여성들이 붐을 이끌었다.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겨울연가』를 언급하기도 했다.
2006년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볼 기회"에 대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전년(2005년)보다 "볼 기회가 늘었다"가 12%포인트 감소한 20%, "볼 기회가 줄었다"가 6%포인트 증가한 9%, "이전에도 지난 1년간 거의 보지 않았다"가 61%라는 결과가 나오면서, 한류 붐의 쇠퇴를 나타냈다. 하지만 2005년부터 NHK 종합 텔레비전에서 방송된 한국의 시대극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를 얻어, 지금까지 중년 여성 중심이었던 시청자층이 중년 남성(특히 50대)으로까지 확대되었다.
2009년 9월 30일, 배용준이 여행 에세이 자서 출판 기념으로 방일하여, 도쿄돔에서 이틀간의 한류 이벤트가 개최되었다. 이 이벤트에는 9만 명의 관객이 모였고, 하토야마 총리 부인도 외국 방문 일정을 늦춰 참석했으며, 정부 여당(민주당)의 의원과 관광청 등 한일 정재계 인사도 참석했다. 다음 날 중앙일보에서는 다소 침체된 한류 부활의 계기가 되었다고 보도했다.
2012년 8월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의 독도 상륙 강행, 더 나아가 천황 사죄 요구 등을 계기로 내각부의 '외교에 관한 여론 조사'에서 일본에서의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 하락했다. 한일 정치 외교 대립과 엔저, 원고 현상이 진행된 영향으로 한국에서는 그 전까지 활기를 띠던 일본인 관광객이 급감하여 "한류와 쇼핑을 좋아하는 일본인은 외국인 중에서도 리피터율이 가장 높고 입국자 수도 중국 다음으로 많다. 일본인 관광객이 줄어 관련 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라고 보도되었으며, 인기 하락에 제동이 걸리지 않았던 제2차 한류 붐은 쇠퇴한다.
한류의 파급 효과는 한국에 대한 일본 국민 감정에도 영향을 미쳐, 오랫동안 양국에 존재했던 감정적인 앙금이나 편견을 없애고, 우호 친선에 기여했다고도 여겨진다. 2001년과 2004년 일본의 여론 조사를 비교하면, 한국에 "친밀감을 느낀다"가 증가,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가 감소했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와 한류(겨울연가, 배용준 열풍)의 영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소동이 된 2006년이 되자 요미우리 신문·한국일보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한국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가진 일본인은 51%, 또한 한일 관계가 악화되었다고 보는 일본인도 59%로, 1995년 조사 시작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으며, 그 원인으로 한일 간의 정치적인 문제와 함께 한국 드라마를 중심으로 일어난 한류 붐이 점차 식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해졌다.
6.2. 경제적 영향
1990년대 이전 대한민국 정부는 현대 대중문화보다 전통 문화를 우선 지원했으나, 1993년 문화 상업화 정책으로 전환했다. 1999년에는 문화 산업 진흥 기본법을 제정하여 한국 문화 상품에 대한 정부 지원을 제공했다.
한류는 한국 관광 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미디어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연간 관광객 수는 2000년 532만 명에서 2023년 1,103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특히 《겨울연가》의 일본 방영은 한국 관광객 증가로 이어졌고, 일본인 관광객의 인구 통계가 주로 기생 관광을 하던 일본 남성에서 젊은 일본 여성으로 변화했다. 많은 한국 드라마 팬들은 한국 여행에 동기를 부여받아 《겨울연가》에 등장한 남이섬, 대장금 테마파크 등 촬영지를 방문한다.
한국관광공사(KTO)는 한류를 관광객 유치의 중요 요인으로 인식하고, 2014년 "Imagine your Korea"라는 관광 캠페인을 시작했다. 2018년에는 10만 명 이상의 인도인이 한국을 방문했으며, 인도 관광객 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화장품, 패션, 관광, 교육 등 한류 관련 분야는 상당한 경제적 기여를 보였다. 2004년에는 문화 수출이 한국 GDP의 0.2% 증가에 기여했고, 2019년에는 12300로 급증했다. 이는 주로 관광에 의해 주도된 한류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보여준다. 한류 제품의 상관 계수는 0.89로 비한류 제품의 0.44보다 훨씬 높아 문화 수출의 강력한 경제적 영향을 나타낸다.
한국 정부는 "2023-2024 한국 방문의 해"를 시작하여 K-팝 콘서트, 문화 축제, 여행 및 숙박 시설 할인 등 관광객 유치를 위한 행사와 프로모션을 제공한다. 한국관광공사(KTO)는 국제 로드쇼와 친환경 활동을 개최하여 문화 및 환경 인식을 높이고 있다.
디지털 기술 또한 관광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이브 스트리밍은 시청자 참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도구로, 시청자의 충성도를 높이고 더 많은 방문을 장려한다.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로 대한민국이 IMF 구제 금융을 받게 되자, 정부는 경제 재건 전략으로 문화 산업 진흥을 내걸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문화 대통령' 선언에 따라 1999년 '문화 산업 진흥 기본법'이 제정되었고, 2001년에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설립되어 문화 산업 육성과 수출 진흥을 지원했다.
일본에서는 2003년 NHK에서 방영된 드라마 『겨울연가』가 인기를 얻으면서 '한류'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주연 배우 배용준의 애칭에서 "'욘사마 붐'"으로도 알려졌다.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겨울연가』를 언급하기도 했다.
2009년 배용준의 방일 기념 한류 이벤트에는 9만 명의 관객이 모였고, 하토야마 총리 부인도 참석했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상륙과 천황 사죄 요구를 계기로 일본 내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 하락했다. 한일 정치 외교 대립과 엔저, 원고 현상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이 급감했다.
한류는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중국, 베트남, 러시아, 인도, 미국에서 한국 간식을 대중화시켰다. 특히, K-드라마와 영화에 라면이 자주 등장하면서 한국 라면의 해외 인기가 높아졌다.
중국에서는 2006년부터 한국 드라마 규제 움직임이 나타났다. 2016년 THAAD 미사일 한국 배치에 대한 반대 조치로 '한한령'이 발동되어 한류 스타의 노출이 제한되거나 금지되었다.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한류가 좀비 웨이브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2018년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연속 1위를 기록하며 한류의 위상을 높였다.
프랑스에서는 2011년 SM 엔터테인먼트의 파리 공연을 기념하여 6월 10일을 "K-POP 인베이전(침략)"의 시작을 알린 역사적인 날로 기념하고 있다.
2009년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41%의 프랑스인이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모르겠다"고 답했으나, 2011년에는 "프랑스에서도 한류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보도되었다.
조선일보는 K-POP이 프랑스 대중음악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에 있다고 프랑스에서 극찬받고 있다고 해설했다. 2011년에는 K-POP 안무를 의미하는 "chore de coree"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기 소르망 교수는 한류가 한국 특유의 요소가 없고, 세계적으로 비슷한 대중음악을 한국 아이돌 그룹이 부르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드라마 《대장금》을 계기로 한국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2008년 한국 정부는 '한식 세계화'를 선언하고 해외 홍보 활동을 시작했다. 김윤옥·이명박 대통령 부인은 외교 행사에서 조선 요리(비빔밥, 불고기, 김치, 찌개)의 '우수성'을 알렸다.
2010년 초부터 한류 숍이 늘어선 도쿄 신오쿠보의 코리아 타운은 "한류 성지"로 불렸지만, 2012년 이명박의 천황 사죄 요구 이후 인기가 급격히 떨어졌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 위기 이후, 한국은 수출 산업에서 활로를 모색하며 국가 차원에서 문화 산업을 지원해왔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 국가 브랜드 위원회가 설치되어 한국의 관민이 국가 브랜드 가치 향상을 위한 대외 문화 홍보를 하고 있다.
2009년 설립된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영화, 방송 영상(한류 텔레비전 드라마), K-POP,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캐릭터 등의 콘텐츠 산업 진흥을 도모하고 있다.
한류 콘텐츠 수출액은 2007년 - 2010년에 1억 8900만 달러에서 3억 1300만 달러로 성장했지만, 일본 시장에 대한 의존도와 수익 불균형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6.3. 외교적 영향
아시아에서 대한민국 문화 상품이 성공하면서, 일부 정부는 자국의 문화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중국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유입을 막기 위해 노력했고, 이는 대한민국 문화 산업이 아시아 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이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한국 전통 문화에 우선적으로 자금을 지원했지만, 1993년 문화 상업화 정책으로 전환했고, 1999년에는 문화 산업 진흥 기본법을 통과시켜 한국 문화 상품에 대한 정부 지원을 제공했다.
한류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후진타오, 원자바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인도 대통령 라마 나트 코빈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줄리아 길라드 등 여러 국가 및 정부 수반들에게 인정받았다. 또한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일본 외무성, 미국 국무부 장관 존 케리, 아프가니스탄 외무부 차관 미르와이스 나브, 뉴질랜드 외교통상부 차관보 앤드리아 스미스, 프랑스 유럽 외무부, 독일 외무부, 영국 외무부 장관 휴고 스와이어도 한류를 인정했다. 해외문화홍보원의 2018-2019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류는 한국에 대한 세계적인 인식의 주요 요인이었다.
한류는 대만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고, 한국과 대만의 관계를 매우 가깝게 만들었다. 인도에서도 한국 문화가 인기를 얻고 있으며, 특히 인도 북동부 지역에서 인기가 높다. 인도와 한국은 서로의 대사관에서 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양국 지도자들은 문화적 유대 관계를 증진하려 노력하고 있다.
한류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 내각총리대신 오부치 게이조와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의 노력 덕분이었으며, 이들은 양국 간의 "미래 지향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대한민국은 1998년 일본 문화 상품 수입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여 양국 간의 문화 교류를 증진시켰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이 시행한 개방 정책은 일본에서 한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21년 11월 2일,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발표에 따르면, 일본으로의 한국 영상 콘텐츠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 2021년 수출액은 1810(약 2460)로 전년도 1210(약 1640)에서 50% 증가했다.
2016년과 2017년 동안 중국은 사드 미사일 방어 시스템 설치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 문화 및 경제 수입에 대한 다양한 제한 조치를 시행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한중 합작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중단되었고,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K팝 비디오 스트리밍, 한국 화장품 수입 등이 제한되었다. 많은 한국 연예인들이 비자 발급을 거부당하고 출연이 취소되었지만,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비자 정책이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다. 2017년 3월, 중국 국가여유국은 중국 여행사의 한국 단체 관광을 금지했다. 이로 인해 한국 연예 기획사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18% 하락하여 150의 손실을, YG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32% 하락하여 230의 손실을 입었다. 2017년 10월 31일, 양국 정부는 사드 문제에 대한 합의를 발표했다. 이후 많은 중국 온라인 비디오 플랫폼이 한국 드라마를 다시 수입하기 시작했고, 중국 여행사는 한국 단체 관광을 재개했으며, 한국 아이돌 그룹이 중국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로 인해 대한민국이 IMF 구제 금융을 받게 되자, 한국은 경제 재건 전략으로 문화 산업 진흥을 내걸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문화 대통령' 선언에 따라 1999년 '문화 산업 진흥 기본법'이 제정되었고, 2001년에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설립되어 문화 산업 육성과 수출 진흥을 위한 지원이 이루어졌다. 한국 각지의 대학교에도 실용 음악과, 영상학과, 전문학교가 다수 설립되어 K-POP과 한국 드라마 붐의 주역들이 성장하게 되었다. 일본 TV 드라마의 가격 상승과 홍콩 영화의 쇠퇴 등은 한국의 배우와 음악 등 대중문화에 대한 인기를 높여 붐을 형성했다. 이 현상은 대만에서 '한류 열풍'으로 표현되었고, 2001년에는 일본에서도 '한류'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여 한국으로 역수입되었다.
K-POP, 한국 드라마, 한국 영화, 한국 요리 등 한국의 대중문화는 모두 대만에서 인기가 있으며, 대만인들은 한국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태국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자주 방영되고 있다.
2000년대 한국은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일부 한국 엔터테인먼트가 북한 내에서도 시청되었으나, 2010년에 한국이 이 정책을 종료하면서, 이후 북한에서는 한국 드라마, 가요 등이 모두 금지되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관련 시청 금지를 어긴 미성년자는 청소년 대상의 노동 수용소로 보내졌다. 형벌은 통상 5년 미만이었으나, 2020년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제정되면서, 한국 엔터테인먼트 영상 시청 및 유통의 최고 형벌은 사형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2022년에는 10대 남학생 2명이 한국 드라마 시청 혐의로 12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는 영상이 북한 정부에 의해 촬영되어, 이념 교육과 "퇴폐적인 녹화물" 금지·경고 목적으로 국내에 배포되었다. 해당 영상 내에서는 한국 문화의 확산에 대해 "썩어빠진 괴뢰 정권의 문화가 10대 청소년에게까지 퍼지고 있다"는 언급이 있었다. 2024년 1월 18일 BBC 코리아의 취재에 따르면, 탈북자는 "미국 드라마를 보다가 잡혀도 뇌물을 주면 도망갈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를 보면 총살당한다"고 말했다.
하쿠호도 브랜드 디자인 젊은 연구소 리더 하라다 요헤이는 2015년 "한국 문화를 자신의 일상생활에 도입하기 시작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성형 수술", "2NE1 스타일의 갸루 패션", "얼짱 메이크업", "커플 앱", "귀요미 댄스", "셀카봉" 등 한국 문화가 일본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정착한 "신(新) 한류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음악 미디어를 운영하는 lute 주식회사 사장 이가라시 히로히코는 2018년 초기의 BoA 세대, 제2차 한류 아이돌에 이은 제3의 흐름인 "한류 서드 웨이브"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유, 혁오, DEAN 등의 이름을 언급했다.
1990년대 후반의 아시아 외환 위기 이후, 자국 시장 규모가 작은 한국은 수출 산업에서 활로를 모색하며, 국가 차원에서 힘을 쏟아왔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의 국가 브랜드 위원회가 설치되어, 한국의 관민(정부계 민간 조직 포함)이 국가 브랜드 가치 향상을 위한 대외 문화 홍보를 하고 있다. 주로 전통 문화나 하이 컬처 분야는 한국 문화원이 담당하고, 대중 문화나 민간 기업의 콘텐츠 산업에 대해서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담당하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가 후원하는 민간 단체인 VANK 등도 적극적인 선전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9년에 설립된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국가 전략으로서 영화, 방송 영상(한류 텔레비전 드라마), K-POP,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캐릭터 등의 콘텐츠 산업 진흥을 도모하여, 콘텐츠 제작과 수출 및 선전에 막대한 국비를 투입하여 강력하게 후원하고 있다. 2010년 10월 29일에는 도쿄 국제 포럼 홀A에서 새로운 한국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K-POP 쇼케이스가 전석 무료 초대로 개최되었고, 2011년에는 K-POP의 인프라 확충과 한류 스타 육성을 위한 K-POP 아카데미(가칭) 지원 사업, 2015년까지 4년간 1조 원의 예산을 투자하는 글로벌 펀드를 통해 한류 콘텐츠 제작 등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발표되었다. 한류 콘텐츠를 제작할 인재를 육성하는 기관은 'K-Arts 아카데미'로 명명되어 2012년 4월부터 운영이 시작된다.
또한 프랑스에서 개최된 Japan Expo나 스페인에서 개최된 바르셀로나 만화 박람회 등의 국제 행사에서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부스를 출전하여 K-POP 및 한국 만화 등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콘텐츠 제작 기업에 제작비의 10%의 수출 실적이 있으면, 한국 정부가 금융기관에 대출 보증서를 발행하며, 이를 통해 한국의 콘텐츠 제작 기업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적극적인 융자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콘텐츠 제작 기업에서 수출처 기업에 보조금이 지급되는 경우도 있으며, 한국 드라마의 방영권을 구매한 대만의 한 기업은, 구매 금액 이상의 보조금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적극적인 콘텐츠 수출 정책과 저렴한 구매 비용으로 인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드라마, 영화, 음악 등 한류 콘텐츠가 널리 수용되고 있다.
국가 차원의 글로벌 확산 정책 결과, 한류 콘텐츠의 수출액은 2007년 - 2010년에 189에서 313로 성장했다. 그러나 특정 시장, 특히 일본에 대한 일극 의존 체질과 수익 구조의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라이브 공연을 하는 K-POP은 아시아에서의 매출이 전체의 99%를 차지하고, 일본이 80.8%로 두드러진다. 이익 배분도 '카라'의 일본에서의 수익을 예로 들어 추산하면, 84%는 일본 측 유통업자, 8%가 일본 측 프로모터에게 돌아가고, 카라 소속 연예 기획사 손에 남는 것은 8%에 불과하다. 일본이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대부분의 이익을 얻고 있으며, 일본 시장에 대한 '대일 편중'과 '수익 불균형'의 딜레마에 대해, 한국 측에서도 콘텐츠 비즈니스 상의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한류 비즈니스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6.4. 북한과의 관계
북한에서는 한류를 '남조선 바람'(남조선 바람한국어)이라고 부른다. 2007년 6월, 북한 작가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황진이는 북한에서 일반 공개된 최초의 한국 영화였다.
통일연구원이 2010년에 실시한 33명의 탈북자 설문조사 결과, 겨울연가와 같은 드라마가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탈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연구원은 또한 한국군사분계선 근처의 일부 북한 주민들이 한국 방송을 수신하기 위해 텔레비전을 조작했으며, 북쪽 국경에서는 CD와 DVD가 중국에서 흔히 밀수입되었다고 밝혔다. 2012년 통일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100명의 탈북자 중 한국 미디어가 북한 엘리트 계층에서 널리 퍼져 있었다. 또한 북쪽 국경 근처에 거주하는 북한 주민들이 한국 연예 콘텐츠에 가장 많이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2005년 북한에 도입된 중국산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인 노텔은 북한에서 한국 미디어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2년 10월,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조선인민군에게 연설하면서 "적의 사상 및 문화 침투에 대한 투쟁을 확대"할 것을 다짐했다.
2013년 5월 15일, NGO 휴먼 라이츠 워치는 "한국의 연예 프로그램이 특히 인기가 많으며 북한 정부의 한국에 대한 부정적 묘사를 훼손하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2021년, 김정은은 K팝을 북한 정부를 훼손하는 악성 암이라고 불렀다. 김정은은 또한 한국 연예가 젊은 북한 주민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경향"을 근절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2020년 12월 북한 정부는 불법 연예물을 소지한 것에 대한 처벌을 5년에서 15년의 강제 노동으로 연장했다. 아시아 프레스가 입수한 유출된 문서에서 김정은은 남자친구를 동무 대신 오빠 또는 여보라고 부르는 북한 여성들을 "변태"라고 간주했다. 이 문서에는 그러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발된 사람들은 거주 지역에서 추방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7. 한류에 대한 비판과 과제
중국과 일본의 일부 지역에서는 한류에 대한 반발이 있었으며, 이는 문화 제국주의에 비유되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에서 한류는 종종 "문화 침략"으로 묘사되었고, 규제로 인해 중국 시청자에게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 수가 제한되었다. 2005년 8월 타이거 로큰롤 콘서트에서는 한 음악가가 배우 배용준 등을 공격하는 인종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랩 "한류의 침략"을 공연하기도 했다.
K팝에 대한 반발은 인터넷에서 흔히 나타나며, 피상적이고 타율성이 강하며 저속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민족주의나 역사적 갈등으로 인해 한류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기도 한다. K팝 산업은 성적인 아시아인 고정관념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대한민국 연예 산업은 소속 음악가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한국 배우 및 아이돌의 잇따른 자살은 이 산업의 혹독한 노동 환경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한국 사극은 역사 부정주의 및 한국사에 대한 부정확한 묘사로 인해 한국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으며, 《설강화》와 《조선구마사》와 같은 드라마는 방영이 취소되기도 했다.
K-pop 보이 그룹과 그들의 팬들은 동성애와 여성스러운 남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বিভিন্ন 인종차별적, 여성 혐오적, 동성애 혐오적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2021년 2월, 독일 라디오 방송국 바이에른 3의 라디오 진행자는 BTS를 "곧 백신이 나오기를 바라는 쓰레기 바이러스"라고 발언하여 비판을 받았다. 2021년 9월 1일, 방탄소년단 정국의 광고판이 파키스탄에서 철거되었는데, 이는 광고판이 동성애를 조장하고 ARMY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파키스탄 육군과의 갈등으로 인해 항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11월, 방글라데시의 한 단체는 BTS가 "무신론과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혐의로 허위 저작권 주장을 통해 BTS 팬덤과 관련된 여러 트위터 계정을 삭제하기도 했다.
K-pop과 K-pop 아이돌은 인도 청소년들 사이에서 체중에 대한 건강하지 못한 태도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일본의 혐한 감정은 한국 연예 콘텐츠 수입에 반대하는 여러 건의 극우 민족주의 시위로 이어졌다. 혐한 만화인 만화 혐한류는 2005년 7월 26일에 출판되어 일본에서 널리 판매되었다. 코리아 타임스는 2014년 2월 기사에서 "한국과 일본의 전문가 및 관찰자들은 집회 참석자가 아직 소수이며 이러한 극단적인 행동이 일본 정치의 주류로 진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최근 몇 달 동안 적대적인 시위의 규모와 빈도가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한일 관계 악화와 중한 관계 개선으로 한류는 일본에서 중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지만, 2017년 중국 정부의 한한령으로 인해 중국 시장에서 배제되었고, 한국은 다시 일본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게 되었다. 한류의 열기는 국제적으로 식어가고 있었고, 일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도 계속 감소하고 있었으나, 일본 음악계의 침체가 지속되면서 한국 아이돌에 다시 주목이 쏠려 제3차 한류 붐을 일으켰다.
K-POP 여성 아이돌 인기를 배경으로, 성형 수술을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이 급증하여 2017년에는 9년 전의 20배 가까이 되는 약 6000명에 달했다. 수술 관련 문제도 발생하고 있어, 일본의 국민생활센터는 "정말로 필요한지 잘 생각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2011년 7월 23일, 배우 타카오카 소스케는 Twitter에서 후지 텔레비전 (이하 "후지")을 비롯한 텔레비전 방송국에 대한 비판을 펼쳤다. 이 일은 한일 양국의 인터넷 미디어에도 다루어지는 등 큰 소동이 되었고, 며칠 후 타카오카는 스타더스트 프로모션과의 매니지먼트 계약을 해지당했다.
이와 관련하여 후카와 료는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만약 일본의 텔레비전 방송국이 한국으로부터 금전을 수수하고 한류를 빈번하게 다루거나, K-POP의 판권을 보유하여 이익을 얻기 위해 한류를 계속 방송하고 있다면, 영향력이 강한 공공의 전파를 사용하여 한 기업의 사복을 채우는 것이 되어 좋지 않은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텔레비전에 대해 "텔레비전은 시대를 비추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텔레비전은 완전히 끝났다"라고 말했다.
후카미 레이이치로는 이번 소동은 반한류가 아니라 후지 텔레비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기점이며, "한류가 싫으면 보지 않으면 된다, 라는 논리는 통용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로부터 방송 면허를 받은 텔레비전 방송국이 후지나 자회사의 콘텐츠를 선전하기 위해 공공의 전파를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위법인 것은 어린아이도 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많은 시청자가, 그것이 세뇌 수준에 달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소란이 일고 있다"라고 분석하며, 한류를 차별하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오히려 차별받고 있는 것은 일본인이며, "후지는 인종 차별을 멈춰라"라고 데모에서 외치고 싶을 정도라고 주장했다.
2011년 7월 타카오카 발언을 계기로 도쿄 오다이바의 후지 본사(FCG 빌딩) 주변에서 후지의 한류 밀어붙이기 및 편향 보도에 반대하는 "[후지 텔레비전 항의 데모]"가 발생했다. 8월 7일에는 주최 측 발표로 2500명, 주간 신조에 따르면 600명이 데모 행진을 했고, 8월 21일에는 주최 측 발표로 약 6000명에서 8000명, 경찰 발표로 3500명이 데모 행진을 했다. 같은 날 시민 단체 힘내라 일본! 전국 행동 위원회가 주최한 데모에는 주최 측 발표로 약 5000명이 참가했다. 이 두 차례 데모의 총 인원은 경찰 집계로 연인원 5300명이었다.
2011년 11월, 카타야마 사츠키는 참의원 총무위원회에서 후지 텔레비전이 과거에 "[독도 (시마네현)|독도]] 캠페인"을 벌인 김태희를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의 주연으로 기용한 것을 비판했다.
2012년 2월, 일본의 일부 인터넷 사용자가 자사 상품 CM에 "독도 캠페인"을 벌인 김태희를 기용한 로토 제약에 대한 대규모 항의 활동을 예고하자, 김태희의 방일 기자 회견이 취소되었다.
여러 국가에서는 한국인 여성의 매춘 등 한류의 부정적인 면도 확산되면서, 반한 및 반한류를 초래하고 있다.
2011년 10월 22일 아사히 신문의 앙케이트 결과에 따르면, "한류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보고 있지 않다"가 6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K팝을 좋아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가 32%, "싫어한다"가 13%였다. "최근 한국 영화를 좋아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본 적이 없다"가 59%로 가장 높았다.
포니 캐니언 (후지 미디어 홀딩스 완전 자회사)은 2012년 7월 26일 공식 twitter에서 후지 텔레비전 한류 α의 시청률이 낮아져 부정기 방송이 되었다고 트윗했다. 2010년 평균 시청률은 3.9%로 원래 낮았지만, 더욱 낮아졌다고 보고했다.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현직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처음으로 독도에 상륙(이명박 독도 방문)하고, 같은 날 런던 올림픽 축구 3, 4위전 경기 후 박종우 선수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쓰여진 플래카드를 든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달 14일에는 이명박이 천황에게 사죄를 요구하고, 독도 문제에 관해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를 요구하는 일본의 친서 수령을 거부하면서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반한 감정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소동을 계기로, 8월 2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사오 게이이치로가 '독도 수영 횡단 캠페인'을 벌인 송일국의 비자 거부를 제안하자, 야마구치 소 외무 부대신은 이에 동의하는 의견을 표명했다. BS 닛테레와 BS 재팬은 송일국 주연 텔레비전 드라마의 방송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9월 7일에는 BS 닛테레 사장이 "한류 드라마가 너무 많다"는 비판을 언급하며 한국 드라마 방송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니혼 TV, TV 아사히, TBS는 2012년 연말연시 프로그램 편성에서 한류 관련 방송을 줄이는 방침을 정했고, 후지 TV도 한류 콘텐츠 노출을 줄이기 시작했으며, 한류 관련 콘텐츠에 대한 BS 및 CS에서의 접촉률도 급감했다.
스포츠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와이드 쇼에서 한류 콘텐츠를 다루는 기회도 급감했고, 한류 드라마 사진전, 굿즈 판매전, 한류 연예인 광고 캠페인, K-POP 가수 콘서트 방송, 한류 배우의 텔레비전 출연, 일본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K-POP 가요제 등이 잇따라 중단되었다. 한국으로의 개별 패키지 여행에도 영향이 미쳐, 간사이 발착 9월 - 10월 예약분은 전년 동월 대비 40% 감소했으며, 한큐 교통사는 한국 방면 여행 상품 신문 광고를 중단했다.
2012년 연말 "제63회 NHK 홍백가합전" 등 각종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한국인 가수의 출장이 없었고, NHK는 한국인 가수가 출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여러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인 가수의) 각각의 수치가 작년보다 하락했다"고 언급하며 한류 인기의 쇠퇴를 시사했다. 그러나 이명박의 독도 방문과 한국인 가수의 불출장 관계성에 대해서는 "영토 문제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 언론은 "일본 연말 3대 가요제, K-POP 가수 전멸 '한류 보이콧' 시작" 등과 같이 한국인 가수의 불출장 이유가 일본 측의 정치적 배경에 의한 보이콧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공영 방송인 영국 방송 협회(BBC)는 한국 연예 기획사와의 계약을 "노예 계약"으로 표현하며, 동방신기, 카라의 분열 소동은 한국 연예계의 잘못된 관행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의 여성 아이돌 그룹 티아라의 멤버는 연중 하루도 휴가를 얻지 못하는 노동 환경을 고백했다.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백댄서조차 월급이 70000JPY 이하이며, 이익의 대부분을 유통 회사가 가져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2012년 11월 6일, 한류 드라마 이벤트 회사인 "삼화엔터테인먼트"에서 조직범죄처벌법 위반(범죄수익수수) 및 사기 방조 혐의로 지정 폭력단 스미요시회 계열 조장이 체포되었다. 2006년 4월 이후 약 460명으로부터 약 1을 갈취했으며, 그 중 약 100이 폭력단의 자금원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 한국 금융감독원의 검사 결과, 한국의 연예인과 재벌 등 44명이 부동산 등 130에 달하는 해외 재산을 신고하지 않고 소유하고 있던 사실이 발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