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코레일 FC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대전 코레일 FC는 1943년 조선총독부 철도국 축구단을 모체로 하여,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단 중 하나이다. 1948년 또는 1949년 교통부 축구단으로 시작하여, 철도청 축구단, 한국철도 축구단을 거쳐 2014년 대전광역시로 연고지를 이전하며 현재의 대전 코레일 FC가 되었다. 2005년과 2012년 내셔널리그 우승, 2019년 FA컵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2020년부터 K3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대전 코레일 FC - 숭의종합경기장
숭의종합경기장은 인천광역시에 위치했던 스포츠 경기 시설로, 주경기장, 야구장, 정구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특히 주경기장은 축구, 럭비, 육상, 사이클 등 다양한 종목의 경기를 치를 수 있는 다목적 경기장이자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등 주요 국제 축구 대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 대전광역시의 축구단 - 유성중학교 축구부
유성중학교 축구부는 꾸준한 투자와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통해 전국적인 강호로 성장했으며, 다수의 국가대표 및 프로 선수를 배출하는 유소년 축구팀이다. - 대전광역시의 축구단 - 대전 하나 시티즌
대전 하나 시티즌은 1997년 창단하여 K리그에 참가하는 대한민국의 프로 축구단으로, 2020년 하나금융그룹에 인수되어 기업 구단으로 전환되었으며, 대전월드컵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자주색과 녹색을 팀 상징색으로 한다. - 한국철도공사 - 대한민국 철도청
대한민국 철도청은 1963년 설립되어 철도 운영, 현대화, 철도망 확장에 기여했으나, 2005년 한국철도공사로 이관되며 폐지되었고, 적자와 경영 효율성 문제가 폐지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 한국철도공사 - 코레일네트웍스
코레일네트웍스는 2004년 설립되어 전국 철도역 역무 및 창구 서비스, 주차장 운영, 레일플러스 교통카드 운영 및 관리, 철도고객센터 운영 등 철도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 회사이다.
대전 코레일 FC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풀 네임 | 대전 코레일 축구단 |
별칭 | 철마 |
창단 | 1943년 (원래) |
재창단 | 1961년 또는 1962년 |
홈구장 | 대전 한밭 종합 운동장 |
수용 인원 | 17,371명 |
구단주 | 코레일 |
회장 | 정창영 |
감독 | 김승희 |
감독 직함 | 감독 |
리그 | K3리그 |
시즌 | 2023 |
순위 | K3리그, 15팀 중 5위 |
웹사이트 | 웹사이트 |
유니폼 정보 | |
홈 유니폼 | 흰색 상의, 흰색 하의, 흰색 양말 |
원정 유니폼 | 파란색 상의, 파란색 하의, 파란색 양말 |
역사 | |
이전 명칭 | 조선총독부 철도국 축구단 (1943~1947) 교통부 축구단 (1944~1953) 철도청 축구단 (1963~1994) 한국철도 축구단 (1995~2003) 인천 한국철도 축구단 (2004~2007) 인천 코레일 축구단 (2007~2013) 대전 코레일 축구단 (2014~2019) 대전 한국철도 축구단 (2020~2023) |
2. 역사
1943년에 창단된 '''조선총독부 철도국 축구단(이하 '조선철도국 축구단')'''을 모체로 하고 있어 연속성을 논외로 한다면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축구단이다. 연속성을 기준으로 재창단 연도로 따지면 1962년 2월 재창단한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보다 몇개월 더 빠르거나 8개월 느리게 창단되었다.
1948년 혹은 1949년부터 '''교통부 축구단'''으로 운영되었으며[7][8] 1950년에는 춘기실업축구연맹전에서 우승을 하였지만[9]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해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1961년[10]혹은 1962년 10월에 교통부 산하 공작창의 수장이었던 김명익 대령에 의해 재창단하였고[11] 1963년 9월 1일 철도국과 공작창 등을 포함하여 교통부의 외청으로 철도청이 신설되면서[12] '''철도청 축구단'''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부터 '''한국철도 축구단'''으로 개칭하여[13] 실업 축구에 참가하였다가 내셔널리그의 방침에 따라 구단 명칭에 연고 지역명을 붙이기로 하여, 2004년에 '''인천 한국철도 축구단'''으로 개칭되었다. 2007년 5월 한국철도공사의 CI가 코레일로 통합됨에 따라 '''인천 코레일 축구단'''으로 변경하였다. 하지만 2007년 FA컵에는 기존 등록명대로 인천 한국철도로 출전하였으며 또한 홍보 부족으로 언론에도 인천 한국철도와 인천 코레일이 혼용되다가 2008년부터 일원화되었다.
2007년까지는 숭의종합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였으나, 숭의경기장이 인천광역시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철거된 후에는 2008년부터 한시적으로 인천문학경기장 보조구장을 사용하였고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홈 구장을 옛 숭의야구장 부지에 신축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으로 옮기자 인천문학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이 경상북도 경주시로 연고지를 이전하여 대전광역시 연고의 내셔널리그 축구 팀이 비어 있었다가, 한국철도공사 스포츠단이 본사 소재지인 대전광역시로 연고지를 이전하기로 함에 따라 2014년 1월 17일 대전광역시청에서 염홍철 시장과 최연혜 6대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참여한 가운데 정식으로 협약을 맺고 이전하여 '''대전 코레일 축구단'''으로 변경하였다.[14]
2019시즌에는 FA컵에서는 돌풍을 보여주며 많은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는데, 32강전에서 당시 K리그1 선두이자 무패행진을 이어가던 울산 현대를 2:0으로 이기는 대이변을 연출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으며, 16강에서 서울 이랜드 FC와 맞붙었고 2:0으로 이기면서 8강에서 강원 FC와 맞붙어서 또다시 2:0으로 이기며 프로팀들을 차례차례 밟으며 4강에 진출했으며, 4강에서는 상주 상무를 상대로는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구단 사상 첫번째, 그리고 내셔널리그 소속 팀으로는 2005년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이후 14년만에 2번째이자 마지막으로 FA컵 결승에 진출했다.[15] 비록 결승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1·2차전 합계 0-4로 대패하긴 했지만 구단 역사상 최초의 FA컵 결승 진출로 한국 축구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2020시즌을 앞두고 새로 창설하는 K3리그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구단명을 기존의 '''대전 코레일 축구단'''에서 '''대전 한국철도 축구단'''으로 변경했다.
2023시즌을 앞두고 구단명을 기존의 '''대전 한국철도 축구단'''에서 2019시즌까지 사용했던 '''대전 코레일 축구단'''으로 재변경하였다.
2. 1. 창단 초기 (1943-1962)
1943년 조선총독부 철도국 축구단(이하 '조선철도국 축구단')으로 창단되어, 연속성을 논외로 한다면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축구단이다.[1] 1948년 혹은 1949년부터 교통부 축구단으로 운영되었으며[7][8] 1950년 춘기실업축구연맹전에서 우승하였지만,[9] 한국 전쟁으로 해체된 것으로 추정된다.이후 1961년[10]혹은 1962년 10월에 교통부 산하 공작창의 수장이었던 김명익 대령에 의해 재창단하였고,[11] 1963년 9월 1일 철도국과 공작창 등을 포함하여 교통부의 외청으로 철도청이 신설되면서[12] 철도청 축구단으로 개칭되었다.
2. 2. 재창단과 철도청 축구단 (1961-1995)
1943년에 창단된 '''조선총독부 철도국 축구단'''을 모체로 하고 있어, 연속성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축구단이다.[1] 1948년 혹은 1949년부터 '''교통부 축구단'''으로 운영되었으며[7][8] 1950년 춘기실업축구연맹전에서 우승을 하였지만[9] 한국 전쟁으로 인해 해체된 것으로 추정된다.이후 1961년[10]혹은 1962년 10월에 교통부 산하 공작창의 수장이었던 김명익 대령에 의해 재창단하였고,[11] 1963년 9월 1일 철도국과 공작창 등을 포함하여 교통부의 외청으로 철도청이 신설되면서[12] '''철도청 축구단'''으로 개칭되었다.
2. 3. 한국철도 축구단과 인천 코레일 (1995-2013)
1943년에 창단된 '''조선총독부 철도국 축구단'''을 모체로 하고 있어 연속성을 논외로 한다면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축구단이다.[1] 1948년 혹은 1949년부터 '''교통부 축구단'''으로 운영되었으며[7][8]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해체된 것으로 추정된다.그 후 1961년[10]혹은 1962년 10월에 교통부 산하 공작창의 수장이었던 김명익 대령에 의해 재창단하였고,[11] 1963년 9월 1일 철도국과 공작창 등을 포함하여 교통부의 외청으로 철도청이 신설되면서[12] '''철도청 축구단'''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부터 '''한국철도 축구단'''으로 개칭하여[13] 실업 축구에 참가하였다가 내셔널리그의 방침에 따라 구단 명칭에 연고 지역명을 붙이기로 하여, 2004년에 '''인천 한국철도 축구단'''으로 개칭되었다. 2007년 5월 한국철도공사의 CI가 코레일로 통합됨에 따라 '''인천 코레일 축구단'''으로 변경하였다. 하지만 2007년 FA컵에는 기존 등록명대로 인천 한국철도로 출전하였으며 또한 홍보 부족으로 언론에도 인천 한국철도와 인천 코레일이 혼용되다가 2008년부터 일원화되었다.
2007년까지는 숭의종합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였으나, 숭의경기장이 인천광역시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철거된 후에는 2008년부터 한시적으로 인천문학경기장 보조구장을 사용하였고,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홈 구장을 옛 숭의야구장 부지에 신축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으로 옮기자 인천문학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
2. 4. 대전 코레일 시대 (2014-현재)
1943년에 창단된 조선총독부 철도국 축구단을 모체로 하는 대전 코레일 FC는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축구단 중 하나이다.[1] 1962년 재창단된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보다 몇개월 더 빠르거나 8개월 느리게 창단되었다. 1948년 혹은 1949년부터 교통부 축구단으로 운영되었으며,[7][8] 1950년에는 춘기실업축구연맹전에서 우승했지만,[9] 한국 전쟁으로 해체되었다.1961년[10] 혹은 1962년 10월, 교통부 산하 공작창의 수장이었던 김명익 대령에 의해 재창단되었고,[11] 1963년 9월 1일 철도청 신설과 함께 '''철도청 축구단'''으로 개칭되었다.[12] 1995년 '''한국철도 축구단'''으로 개칭하여[13] 실업 축구에 참가했다.
내셔널리그 방침에 따라 2004년 '''인천 한국철도 축구단'''으로 개칭되었고, 2007년 5월 '''인천 코레일 축구단'''으로 변경되었다. 2007년 FA컵에는 기존 등록명대로 인천 한국철도로 출전했으며, 2008년부터 명칭이 일원화되었다. 2007년까지 숭의종합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했으나, 2008년부터 인천문학경기장 보조구장을 사용했고,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으로 옮기자 인천문학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
2014년 1월 17일, 한국철도공사 스포츠단이 본사 소재지인 대전광역시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대전 코레일 축구단'''으로 변경되었다.[14]
2019시즌 FA컵에서는 32강전에서 울산 현대를 2:0으로 이기고, 16강에서 서울 이랜드 FC를 2:0, 8강에서 강원 FC를 2:0으로 꺾고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는 상주 상무를 승부차기 끝에 이겨 구단 사상 첫 FA컵 결승에 진출했다.[15] 결승에서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합계 0-4로 패했지만, 한국 축구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2020년시즌부터 새로 창설되는 K3리그에 참여하며, 구단명을 '''대전 한국철도 축구단'''으로 변경했다. 2023년시즌에는 다시 '''대전 코레일 축구단'''으로 구단명을 변경하였다.
2. 5. 창단 연도에 대한 불확실성
내셔널리그 홈페이지 및 코레일 축구단에서는 공식 창단 연도를 1943년이라고 공표하고 있지만, 이는 명확한 근거자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른 것이다. 내셔널리그 연맹과 코레일 축구단에서도 계속 조사 중이다.[16][17]전조선축구대회 1927년 대회에 참가한 철도국 축구단이 존재하며,[16] 1939년 경성실업축구연맹에 철도국 축구단이 참가한 기록이 있다.[17]
모체 축구단의 역사가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공식 발표대로 1945년에 조선철도국 축구단으로 창단되었더라도 현재의 대전 코레일 축구단으로 연속성 있게 이어진 것은 아니다. 1943년 창단 연도 견해는 2005년 이후 나온 것으로, 그 이전까지는 교통부 시절 재창단한 1961년 혹은 1962년이 창단 연도로 통용되었다.[18][19]
1943년 창단 연도는 외국의 유서 깊은 축구단처럼 1943년에 창단되어 현재까지 연속성 있게 역사와 전통이 이어진 축구단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해체 후 공백기를 가지고 재창단했던 축구단들의 경우, 구단마다 모체 창단 연도를 사용하거나 후신 창단 연도를 사용하는 등 일관된 기준이 없어 논란이 되고 있다.
3. 선수단
2023년 3월 28일 기준 대전 코레일 FC의 선수단은 다음과 같다.
번호 | 포지션 | 이름 |
---|---|---|
1 | GK | 박태원 |
4 | DF | 김윤진 |
5 | DF | 최규백 |
6 | MF | 김경연 |
7 | MF | 김영규 |
8 | MF | 송민우 |
9 | MF | 최치원 |
10 | MF | 김민균 |
11 | FW | 박예찬 |
12 | GK | 황치윤 |
13 | DF | 손경환 |
14 | MF | 박요한 |
15 | MF | 방찬준 |
16 | MF | 송수영 |
17 | MF | 김동욱 |
18 | DF | 김민혁 |
19 | MF | 이인규 |
20 | DF | 김규환 |
21 | DF | 유승범 |
22 | MF | 박찬빈 |
23 | GK | 정성욱 |
24 | DF | 최영훈 |
26 | MF | 이찬울 |
27 | MF | 장동혁 |
30 | DF | 김해식 |
33 | MF | 김선우 |
37 | FW | 곽철호 |
44 | MF | 권성윤 |
4. 스태프
5. 경영진
6. 기록과 통계
(리그 골)
문병우 (둘 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