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전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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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양적 전제주의는 유럽 중심의 세계관에서 아시아 사회를 이해하려는 시도로 시작된 개념으로, 신격화된 전제 군주에 의한 절대적 지배를 특징으로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몽테스키외, 헤겔 등을 거쳐 마르크스가 아시아적 생산 양식과 결부하여 정의했는데, 농업과 수공업의 결합, 자급자족적인 노동 주체의 공동체 매몰, 토지 소유의 세습과 전제 군주의 유일한 소유 등을 특징으로 한다. 잉여 노동은 공납의 형태로 착취되며, 노동 주체와 전제 군주의 관계는 총체적 노예제와 같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개념은 등장 이후 다양한 비판에 직면했으며, 오늘날 학계에서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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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전제주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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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전제주의 | |
개요 | |
정의 |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 국가보다 더 권위주의적인 경향을 갖는다는 정치적 개념 |
특징 | 강력한 중앙 집권적 권력, 관료제의 부패, 인권 탄압 등을 특징으로 함 |
관련 이론 | 수력 문명 동양 오리엔탈리즘 |
역사 및 기원 | |
최초 사용 | 18세기 유럽 계몽주의 시대 |
주요 이론가 | 카를 비트포겔 몽테스키외 존 스튜어트 밀 카를 마르크스 |
이론의 발전 | 초기에는 아시아 국가들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사회 구조에 대한 설명으로 사용 이후에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반영한다는 비판을 받음 |
비판 | 서구 중심적이고 편견에 기반한 개념이라는 비판이 있음 아시아 국가들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는 비판이 있음 |
이론 적용 | |
적용 국가 | 고대 중국 인도 제국 오스만 제국 |
주요 주장 | 아시아 사회는 서구 사회와 달리 관개 사업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강력한 중앙 집권적 권력이 필요하다고 주장 |
현대적 논쟁 | |
현대 사회 | 현대 사회에서도 동양적 전제주의 개념은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체제와 권위주의적인 경향을 설명하는 데 사용됨 |
비판적 시각 | 현대 학자들은 이 개념이 서구의 편견과 선입견을 반영하며, 아시아 국가들의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맥락을 단순화한다고 비판함 동양적 전제주의라는 개념은 서구의 헤게모니를 정당화하고, 아시아 국가들을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는 데 사용된다는 비판이 있음 |
2. 개념의 기원과 발전
동양적 전제주의는 유럽이 선진적이고 아시아가 후진적이라는 세계 인식을 바탕으로 형성된 사회 구조로, 신격화된 전제 군주에 의한 절대적 지배를 특징으로 한다. 이 개념은 중국의 역대 왕조, 고대 오리엔트, 인도, 일본의 율령제 등 아시아 사회에 널리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19세기에 들어 유럽 중심의 세계관 속에서 아시아 사회를 이해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2. 1. 아리스토텔레스와 몽테스키외
원래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서 《정치학》에서 왕정의 한 예로 아시아에서 행해지는 법에 의한 지배를 중심으로 한 세습적인 왕정을 들면서 노예제를 수용한 데서 유래한 개념이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고대 민주주의의 정반대 개념으로 모호하게 제시되었을 뿐이었지만, 18세기가 되면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정체를 민주주의, 군주제 및 전제주의의 세 가지로 구분하면서 이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전제주의 하에서는 국민이 정치적으로 전혀 무권리한 상태이며, 이를 '정치적 노예제'라고 불렀다.[1]2. 2. 헤겔과 마르크스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자유 의식을 축으로 한 원리의 발전 단계를 서술하는 것이 세계사라고 하면서, 자유 의식이 처음으로 싹튼 것은 전제 군주가 유일한 자유인으로 나타난 아시아이며, 거기에 진정한 세계사의 싹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1] 마르크스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는 개념을 제창하여, 『자본주의 이전의 생산양식』에서 동양적 전제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농업과 수공업이 결합하여 자급자족적인 노동 주체가 비자립적으로 공동체에 매몰되어 있으며, 토지의 소유는 세습적인 것으로 공동체의 총괄적 통일체인 전제 군주만이 유일한 소유자라는 것이다.[1] 이 사회 구조에서 잉여 노동은 공납이라는 형식을 취하며, 전제 군주의 숭앙을 위한 공동 노동으로 착취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1] 마르크스는 이러한 노동 주체와 전제 군주와의 관계를 총체적 노예제라고 불렀다.[1] 또한 전제의 형태는 한 사람의 수장에 의해 대표되는 경우와 가부장 간의 상호 관계로 대표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1] 마르크스는 이후 집필한 『자본론 비판』이나 『자본론』에서도 같은 의미로 이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자본론』에서는 이러한 사회 구조에서는 노동 주체와 전제 군주와의 관계는 신하 관계 이상으로 발전하지 않고, 조세는 지대와 같기 때문에 국가는 최고의 지주로서의 기능을 가지며, 주권은 국가적 규모로 집중된 토지의 소유라고도 서술하고 있다.[1]3. 마르크스의 동양적 전제주의
마르크스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는 개념을 제창하여, 『자본주의 이전의 생산양식』에서 동양적 전제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농업과 수공업이 결합하여 자급자족하는 노동 주체가 비자립적으로 공동체에 매몰되어 있으며, 토지 소유는 세습적인 것으로 공동체의 총괄적 통일체인 전제 군주만이 유일한 소유자인 사회 구조이다. 이 사회 구조에서 잉여 노동은 공납이라는 형식을 취하며, 전제 군주 숭배를 위한 공동 노동으로 착취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노동 주체와 전제 군주와의 관계를 '총체적 노예제'라고 불렀고, 전제의 형태는 한 사람의 수장이나 가부장 간의 상호 관계로 대표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마르크스는 이후 저술한 『자본론 비판』이나 『자본론』에서도 이 개념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3. 1. 아시아적 생산양식
마르크스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는 개념을 제창하여, 『자본주의 이전의 생산양식』에서 동양적 전제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농업과 수공업이 결합하여 자급자족적인 노동 주체가 비자립적으로 공동체에 매몰되어 있으며, 토지의 소유는 세습적인 것으로 공동체의 총괄적 통일체인 전제 군주만이 유일한 소유자인 사회 구조이다. 이 사회 구조에서 잉여 노동은 공납이라는 형식을 취하며, 전제 군주의 숭앙을 위한 공동 노동으로 착취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노동 주체와 전제 군주와의 관계를 총체적 노예제라고 불렀다. 또한 전제의 형태는 한 사람의 수장에 의해 대표되는 경우와 가부장 간의 상호 관계로 대표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이후 집필한 『자본론 비판』이나 『자본론』에서도 같은 의미로 이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자본론』에서는 이러한 사회 구조에서는 노동 주체와 전제 군주와의 관계는 신하 관계 이상으로 발전하지 않고, 조세는 지대와 같기 때문에 국가는 최고의 지주로서의 기능을 가지며, 주권은 국가적 규모로 집중된 토지의 소유라고도 서술하고 있다.3. 2. 『자본론』에서의 동양적 전제주의
마르크스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는 개념을 제창하여, 『자본주의 이전의 생산양식』에서 동양적 전제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즉, 농업과 수공업이 결합하여 자급자족적인 노동 주체가 비자립적으로 공동체에 매몰되어 있으며, 토지의 소유는 세습적인 것으로 공동체의 총괄적 통일체인 전제 군주만이 유일한 소유자인 사회 구조라는 것이다. 이 사회 구조에서는 잉여 노동은 공납이라는 형식을 취하며, 전제 군주의 숭앙을 위한 공동 노동으로 착취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노동 주체와 전제 군주와의 관계를 총체적 노예제라고 불렀다. 또한 전제의 형태는 한 사람의 수장에 의해 대표되는 경우와 가부장 간의 상호 관계로 대표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이후 집필한 『자본론 비판』이나 『자본론』에서도 같은 의미로 이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자본론』에서는 이러한 사회 구조에서는 노동 주체와 전제 군주와의 관계는 신하 관계 이상으로 발전하지 않고, 조세는 지대와 같기 때문에 국가는 최고의 지주로서의 기능을 가지며, 주권은 국가적 규모로 집중된 토지의 소유라고도 서술하고 있다.4. 비판
'동양적 전제주의' 개념은 등장 직후부터 수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오늘날 학계에서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4] 비판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국가와 귀족의 관계: 카를 비트포겔은 전근대 동양 사회에서 토지가 국가 소유였으나, 실제로는 지역 귀족 및 지방 세력이 통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 송나라의 경우 귀족은 명목상의 작위였고, 중앙 관료는 왕권에 소속되었다. 선발된 관료는 출신지를 피해 부임했다. 조선은 태종 때 봉건제가 폐지되고 녹봉제가 성립되어 지방 귀족의 수취권이 없었다.[6]
- 동양 국가 간 차이점 무시: 동양 각국의 정치 특성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동양 국가를 동일한 정치 체제로 보았다. 인도는 전제적 성격과 카스트 제도라는 봉건제적 성격이 혼재되었고, 동북아 지역(중국, 베트남 등)은 관료제 영향이 강하고 신분제가 약했다.[7] 카를 비트포겔은 이러한 차이점을 모두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는 한계가 있다.
4. 1. 일반적 비판
'동양적 전제주의' 개념은 등장 직후부터 수많은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동양적 전제주의라는 개념은 학계에서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4]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규모 관개사업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도 전제적 노예제가 등장하며, 또한, 대규모 관개사업이 활발한 곳에서 봉건제가 형성되기도 한다. 즉, 예외 상황이 너무 많다.[5]
# 카를 비트포겔은 전근대 동양 사회에서 토지는 국가의 소유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지역 귀족 및 지방 세력의 통제에 있다고 하였다. 그는 동양 사회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인민 다수는 귀족 세력에게 노동력 제공 및 공납을 행하는 형태로 종속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송나라(宋朝)부터 귀족이 유명무실한 작위가 되었고, 중앙관료는 지역성을 대표하는 관료 또는 귀족이 아닌, 왕권에 완전히 소속된 관료에 해당하였다. 심지어 선발된 관료에 대해 중국 왕권은 이 선발된 인원의 각 출신지를 피해서 부임시켰다. 또한, 조선의 경우는 초기, 태종에 의해 봉건적 등작제가 폐지되었고, 중반기 이후부터 녹봉제가 성립되었기에 역시 수취권이 지방 귀족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동양적 전제주의' 개념은 한계가 있다.[6]
# 동양 각국이 갖고 있던 정치 특성의 차이점을 무시하고 모든 동양 국가를 동일한 정치 체제의 틀에서 보았다는 점이다. 가령, 인도의 경우는 전제적 성격과 엄격한 봉건제적(카스트 제도) 성격이 혼재된 정체에 속한다면, 동북아 지역(중국, 베트남 등)의 경우는 관료제의 영향이 훨씬 강했으며[7], 신분제의 논리가 열화된 상태였다. 이 사이의 차이점은 지대하며, 본질적인 차이로도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를 비트포겔은 이 모두를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참조
[1]
논문
Oriental Despotism and European Orientalism: Botero to Montesquieu
https://brill.com/vi[...]
2005
[2]
논문
Oriental Despotism and the Limits of Doux Commerce, from Montesquieu to Raynal
http://journals.sage[...]
2023
[3]
논문
The Growth of Chinese despotism: A critique of Wittfogel's theory of Oriental Despotism as applied to China
https://www.jstor.or[...]
1961
[4]
서적
헤겔 역사철학에 있어 '동양적 전제주의'의 문제
한국헤겔학회
2010
[5]
서적
Karl A. Wittfogel
The Free Press
1979
[6]
서적
서양학자들의 동양사회국가관에 관한 고찰; 베버,마르크스, 비트포겔을 중심으로
한국행정사학회
1994
[7]
서적
헤겔 역사철학에 있어 '동양적 전제주의'의 문제
한국헤겔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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