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기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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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기스탄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시 중심에 위치한 광장으로,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 셰르도르 마드라사, 틸라코리 마드라사의 세 마드라사가 주요 건축물이다. 티무르 제국 시대와 샤이바니 왕조 시대에 걸쳐 건축되었으며, 15세기에 이슬람 오리엔트의 주요 교육 기관이었던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 호랑이 모자이크가 특징인 셰르도르 마드라사, 금박으로 장식된 틸라코리 마드라사 등이 있다. 광장 동남쪽에는 1785년에 건설된 초르수 무역 돔이 위치해 있으며,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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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기스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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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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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
좌표 | 39°39′15″N 66°58′32″E |
유형 | 광장 |
역사적 배경 | |
기원 | 1408년-1419년 (울루그 베그에 의해 건설 시작) |
주요 건축물 |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 셰르도르 마드라사 틸랴 코리 마드라사 |
과거 용도 | 왕실 포고 낭독 장소 공개 처형 장소 |
건축 및 디자인 | |
건축 양식 | 이슬람 건축 |
장식 | 모자이크 기하학적 문양 코란 문구 |
현대적 의미 | |
현재 용도 | 관광 명소 문화 행사 장소 |
세계 문화 유산 등재 | 2001년 (사마르칸트의 일부) |
보존 상태 | 잘 보존됨 |
참고 사항 | |
레기스탄 (로마자 표기) | Registon |
뜻 | 모래로 덮인 장소 |
2. 역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는 티무르 제국 시대 티무르의 통치 아래 울루그 베그가 건설했다. 이 마드라사는 광장을 향해 뾰족한 아치형 피쉬타크(정문)가 있는 웅장한 이완을 가지고 있으며, 모서리에는 높은 미나렛이 있다. 이완 입구 아치 위 모자이크 패널은 기하학적으로 양식화된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사각형 안뜰에는 모스크와 강의실이 있고, 학생 기숙사 방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축을 따라 깊은 갤러리가 있으며, 원래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는 모서리에 돔형 ''다르스호나''(강의실) 4개가 있는 2층 건물이었다.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مدرسه الغ بیگ|마드라사 울루그 베그fa)는 15세기에 이슬람 오리엔트 최고의 성직자 대학교 중 하나였다. 위대한 페르시아 시인이자 학자, 신비주의자, 과학자, 철학자인 압둘 라흐만 자미가 이 마드라사에서 공부했다.[1] 울루그 베그 자신도 그곳에서 강의했으며,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이 마드라사는 학문의 중심지였다.
샤이바니 왕조의 묘지는 틸랴코리 마드라사 동쪽에 있다.[1] 샤이바니 왕조의 실질적인 창시자는 아불-하이르 칸의 손자인 무함마드 샤이바니였다. 1500년, 차카타이 한국의 지원을 받아 타슈켄트에 기반을 둔 무함마드 샤이바니는 티무르 왕조로부터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정복했다.[1] 1503년에는 자신을 후원했던 사람들을 공격하여 옛 타슈켄트를 점령했고, 1506년에 히바를 점령했다. 1507년에는 메르브(투르크메니스탄), 동부 페르시아, 서부 아프가니스탄을 급습했다.[1] 샤이바니 왕조는 1502년 아크 코윤루(아제르바이잔)를 물리친 사파비 왕조의 진격을 막았다.[1] 무함마드 샤이바니는 유목 우즈벡 부족의 지도자였으며, 이후 수년 동안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 카스피해 연안, 톈산 산맥 계곡, 러시아 대초원, 인도스탄에 상당 부분 정착했다.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의 대규모 우즈벡 침략은 오늘날 우즈벡 민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1]
2. 1. 티무르 제국 시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는 티무르 제국 시대 티무르의 통치 아래 울루그 베그가 건설했다. 이 마드라사는 광장을 향해 뾰족한 아치형 피쉬타크(정문)가 있는 웅장한 이완을 가지고 있으며, 모서리에는 높은 미나렛이 있다. 이완 입구 아치 위 모자이크 패널은 기하학적으로 양식화된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사각형 안뜰에는 모스크와 강의실이 있고, 학생 기숙사 방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축을 따라 깊은 갤러리가 있으며, 원래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는 모서리에 돔형 ''다르스호나''(강의실) 4개가 있는 2층 건물이었다.울루그 베그 마드라사(مدرسه الغ بیگ|마드라사 울루그 베그fa)는 15세기에 이슬람 오리엔트 최고의 성직자 대학교 중 하나였다. 위대한 페르시아 시인이자 학자, 신비주의자, 과학자, 철학자인 압둘 라흐만 자미가 이 마드라사에서 공부했다.[1] 울루그 베그 자신도 그곳에서 강의했으며,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이 마드라사는 학문의 중심지였다.
2. 2. 샤이바니 왕조 시대
샤이바니 왕조의 묘지는 틸랴코리 마드라사 동쪽에 있다.[1] 샤이바니 왕조의 실질적인 창시자는 아불-하이르 칸의 손자인 무함마드 샤이바니였다. 1500년, 차카타이 한국의 지원을 받아 타슈켄트에 기반을 둔 무함마드 샤이바니는 티무르 왕조로부터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정복했다.[1] 1503년에는 자신을 후원했던 사람들을 공격하여 옛 타슈켄트를 점령했고, 1506년에 히바를 점령했다. 1507년에는 메르브(투르크메니스탄), 동부 페르시아, 서부 아프가니스탄을 급습했다.[1] 샤이바니 왕조는 1502년 아크 코윤루(아제르바이잔)를 물리친 사파비 왕조의 진격을 막았다.[1] 무함마드 샤이바니는 유목 우즈벡 부족의 지도자였으며, 이후 수년 동안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 카스피해 연안, 톈산 산맥 계곡, 러시아 대초원, 인도스탄에 상당 부분 정착했다.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의 대규모 우즈벡 침략은 오늘날 우즈벡 민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1]3. 주요 건축물
레기스탄을 구성하는 세 마드라사는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1417–1420), 셰르도르 마드라사(1619–1636), 틸라코리 마드라사(1646–1660)이다. ''마드라사''(Madrasah)는 학교를 뜻하는 아랍어 단어이다.[1]
각 마드라사는 고유한 건축 양식과 장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셰르도르 마드라사의 호랑이 모자이크는 등에 떠오르는 해를 묘사하고 페르시아 문양을 사용해 살아있는 존재를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1]
3. 1.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 (1417-1420)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는 티무르 제국 티무르 치세에 울루그 베그가 건설하였다. 이 마드라사는 광장을 향해 뾰족한 아치형 피쉬타크 또는 정문이 있는 웅장한 이완을 가지고 있으며, 모서리에는 높은 미나렛이 있다. 이완 입구 아치 위 모자이크 패널은 기하학적으로 양식화된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사각형 안뜰에는 모스크와 강의실이 있고, 주변에는 학생 기숙사 방이 있다. 축을 따라 깊은 갤러리가 있으며, 원래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는 모서리에 돔형 ''다르스호나''(강의실) 4개가 있는 2층 건물이었다.울루그 베그 마드라사(مدرسه الغ بیگ|마드라세 에 울루그 베그fa)는 15세기에 이슬람 오리엔트 최고의 성직자 대학교 중 하나였다. 위대한 페르시아 시인이자 학자, 신비주의자, 과학자, 철학자인 압둘 라흐만 자미가 이곳에서 공부했다.[1] 울루그 베그 자신도 그곳에서 강의를 했으며,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이 마드라사는 학문의 중심지였다.
3. 2. 셰르도르 마드라사 (1619-1636)
17세기 사마르칸트의 통치자 얄란토쉬 바호두르는 셰르도르(شیردارfa) 마드라사의 건설을 명령했다.[1]등에 떠오르는 해를 표현하여 살아있는 존재를 묘사하고 페르시아 모티프를 사용한 호랑이 모자이크가 특히 흥미롭다.[1]
3. 3. 틸라코리 마드라사 (1646-1660)
10년 후, 틸라코리(طلاکاری|틸라코리fa) 마드라사가 세워졌다. 틸라코리는 "금박을 입힌"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뿐만 아니라, 웅장한 ''마스지드''(사원) 역할도 했다. 2층 규모의 정면과 기숙사로 둘러싸인 넓은 안뜰이 있으며, 축을 따라 4개의 갤러리가 있다. 사원 건물은 안뜰 서쪽에 위치해 있다. 사원의 본당은 금박으로 풍부하게 장식되어 있다.[1]3. 4. 샤이바니 왕조의 묘 (16세기)
틸랴-코리 마드라사 동쪽에는 샤이바니 왕조의 묘(16세기)가 있다.[1] 샤이바니 왕조의 실질적인 창시자는 아불-하이르 칸의 손자인 무함마드 샤이바니였다. 1500년, 차카타이 한국의 지원을 받아 당시 타슈켄트에 기반을 둔 무함마드 샤이바니는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티무르 왕조로부터 정복했다. 1503년에는 자신을 후원했던 사람들을 공격하여 옛 타슈켄트를 점령했다. 1506년에는 히바를 점령했고, 1507년에는 메르브(투르크메니스탄), 동부 페르시아, 서부 아프가니스탄을 급습했다. 샤이바니 왕조는 1502년 아크 코윤루(아제르바이잔)를 물리친 사파비 왕조의 진격을 막았다. 무함마드 샤이바니는 유목 우즈벡 부족의 지도자였다. 이후 수년 동안 그들은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 카스피해 연안, 톈산 산맥 계곡, 러시아 대초원, 인도스탄에 정착했다.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의 우즈벡 침략은 오늘날 우즈벡 민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1]3. 5. 초르수 무역 돔 (1785)
초르수(1785)는 셰르도르 바로 뒤에 있으며, 레기스탄 동남쪽 사마르칸트, 타슈켄트, 부하라, 샤흐리사브즈를 연결하는 교차로에 있다. '초르수'는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교차로"를 의미한다.[2] 이 건물은 수 세기에 걸친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초르수는 원래 15세기에 건설된 바자르였지만, 18세기에 재건되어 모자 시장이 되었다.[2] 현재 건물은 아미르 샤무라드 통치 기간인 1785년에 건설되었다. 오늘날 초르수에 있던 바자르는 비비 하눔 모스크 근처의 시요브 바자르로 이전되었다.
2005년, 초르수의 소유권은 우즈베키스탄 예술 아카데미로 이전되었다. 건물 개조 중 3m의 흙을 제거하여 원래 기초 구조를 드러냈다. 초르수는 현재 현대 및 역사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초르수 갤러리의 예술은 다민족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예술, 문화, 역사, 그리고 다양성을 보여준다.
참조
[1]
논문
The role of Islam in education in Central Asia in the 15th–17th centuries
2007
[2]
웹사이트
Ancient Business Center "Chorsu" in Samarkand
http://www.samark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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