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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블릭 F-84 썬더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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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퍼블릭 F-84 썬더제트는 1940년대 리퍼블릭 항공사가 개발한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한 전투기이다. 1944년 미국 육군 항공대의 요구에 따라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1945년 첫 비행을 했다. 한국 전쟁에 투입되어 B-29 폭격기 호위, 지상 공격 임무를 수행했으며, 공중 급유가 가능한 최초의 전투기였다. F-84는 다양한 파생형으로 개발되었으며, 미국,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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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블릭 F-84 썬더제트
F-84 썬더제트
USAF F-84E 썬더제트
USAF F-84E 썬더제트
기종전투폭격기
제작사리퍼블릭 항공
최초 비행1946년 2월 28일
도입1947년 11월
퇴역1964년 (미 공군)
1974년 (유고슬라비아)
주요 운용국미국 공군
파생형리퍼블릭 F-84F 썬더스트릭
리퍼블릭 XF-84H 썬더스크리치
리퍼블릭 XF-91 썬더셉터
일반 제원
승무원1명
전장11.6 m (38 ft)
날개폭11.1 m (36 ft)
높이3.8 m (12 ft 7 in)
날개 면적26 m² (280 ft²)
자체 중량4,900 kg (10,800 lb)
만재 중량8,200 kg (18,000 lb)
엔진1 × 앨리슨 J35 터보제트 엔진
추력22 kN (5,000 lbf)
성능
최대 속도925 km/h (575 mph)
항속 거리1,600 km (1,000 miles)
상승 한도12,000 m (40,000 ft)
상승률18 m/s (3,500 ft/min)
무장
기관총6 × 12.7 mm (0.50 in) M3 브라우닝 기관총
로켓8 × 127 mm (5 in) 고속 항공 로켓
폭탄900 kg (2,000 lb) 폭탄

2. 개발 및 디자인

1953년 프랑스 쇼몽-세무티에 공군 기지에 있는 F-84G


1944년, 리퍼블릭 항공사(Republic Aviation)의 수석 설계자인 알렉산더 카르트벨리(Alexander Kartveli)는 P-47 썬더볼트 피스톤 엔진 전투기를 대체할 터보제트 동력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제트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 P-47을 재설계하려는 초기 시도는 썬더볼트의 큰 동체 단면 때문에 실패했다. 대신 카르트벨리와 그의 팀은 후방 동체에 축류 압축기 터보제트 엔진을, 동체 노즈에 공기 흡입구를 갖춘 훨씬 더 슬림한 동체를 가진 새로운 항공기를 설계했으며, 공기 덕트는 노즈에서 엔진까지 연결되어 동체 부피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연료는 두껍지만 층류 날개인 스윕되지 않은 날개에 있는 연료 탱크에 주로 저장되었다.[1]

1944년 9월 11일, 미국 육군 항공대(USAAF)는 최고 속도 600mph, 전투 반경 약 1367.94km, 무장 8문의 약 1.27cm 또는 6문의 약 1.52cm 기관총을 갖춘 주간 전투기에 대한 일반적인 운용 요구 사항을 발표했다. 또한 새로운 항공기는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TG-180 축류 터보제트를 사용해야 했으며, 이는 앨리슨 J35(Allison J35)로 생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양은 너무 야심적이었고, 반경 요구 사항은 약 1134.58km으로 줄었고, 무장 세트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6문의 0.50구경 또는 4문의 0.60구경 기관총으로 줄였다.

1944년 11월 11일, 리퍼블릭은 새로운 XP-84의 시제품 3대에 대한 주문을 받았으며, 리퍼블릭에서는 모델 AP-23으로 알려졌다. 설계가 록히드 코퍼레이션(Lockheed Corporation)에서 제작한 P-80 슈팅스타보다 우수한 성능을 약속했고 리퍼블릭은 단좌 전투기 제작에 대한 광범위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계약에 대한 경쟁은 열리지 않았다. "썬더제트"라는 이름은 P-47 썬더볼트에서 시작된 리퍼블릭 항공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새로운 추진 방식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1945년 1월 4일, 항공기가 비행하기도 전에 USAAF는 25대의 서비스 테스트 YP-84A와 75대의 생산 P-84B(나중에 15대의 YP-84A와 85대의 P-84B로 수정)에 대한 추가 주문을 했다.

한편, 전국 항공 자문 위원회(National Advisory Committee for Aeronautics)의 풍동 테스트 결과 고속에서 종방향 불안정성과 안정기 표면 좌굴이 나타났다. 초기 터보제트의 낮은 추력을 감안할 때 항공기 무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어 USAAF는 총 중량 제한을 약 6078.13kg으로 설정해야 했다. 이 예비 테스트의 결과는 세 번째 시제품에 통합되었으며, 이는 "XP-84A"로 지정되었으며, 추력이 4000lbf인 더욱 강력한 J35-GE-15 엔진도 장착했다.

첫 번째 시제품 XP-84는 1945년 12월에 공개되었지만 적합한 엔진의 가용성으로 인해 비행 테스트가 지연되었다. 첫 번째 시제품은 무록 육군 비행장(현재의 에드워드 공군 기지)으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1946년 2월 28일 월리스 A. "월리" 리엔 소령의 조종으로 처음 비행했다. 두 번째 시제품은 8월에 합류했으며, 두 항공기 모두 3750lbf의 출력을 내는 J35-GE-7 엔진으로 비행했다. 1946년 9월 8일, 두 번째 XP-84는 607.2mph의 미국 국내 속도 기록을 세웠지만, 전날 영국 글로스터 미티어가 세운 612.2mph의 세계 속도 기록에는 미치지 못했다. 속도 기록을 깨려는 노력으로 두 번째 시제품의 테스트 프로그램이 지연되었다. 1947년 1월부터 서비스 테스트를 위해 패터슨 비행장(현재의 라이트-패터슨 공군 기지)에 인도된 15대의 YP-84A는 업그레이드된 J35-A-15 엔진을 장착하고, 6문의 0.50 인치 M2 브라우닝 기관총을 장착했으며 (노즈에 4문, 각 날개 뿌리에 1문), 각 226USgal을 수용하는 날개 끝 연료 탱크를 장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XP-84와 달랐다.

제트 엔진 인도 및 XP-84A 생산 지연으로 인해 썬더제트는 1947년 생산 P-84B가 공장에서 출고되기 시작할 때까지 제한적인 비행 테스트만 거쳤다. 특히, 날개 끝 탱크가 항공기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철저히 연구되지 않았다. 이는 나중에 문제가 되었다. 1947년 국가 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 of 1947)에 의해 미국 공군이 창설된 후 "추격" 지정은 "전투기"로 대체되었고 P-84는 F-84가 되었다.

3. 운용 역사

F-84B는 YP-84A보다 빠른 M3 기관총을 장착했고, 날개 아래에 8개의 약 12.70cm 고속 항공기 로켓(HVAR)을 장착할 수 있었다. 1947년 12월 메인주 방고어 도우 비행장의 제14 전투 비행단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제어 반전으로 최대 속도가 마하 0.8, 동체 외피 주름으로 최대 가속도가 5.5 중력(54 m/s2)로 제한되는 비행 제한이 따랐다. 부품 부족과 유지 보수 어려움으로 "정비사의 악몽"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948년 5월 24일, 날개 구조 결함으로 F-84B 운행이 중단되었다.

1948년 제14 전투 비행단, 제48 전투 비행대의 P-84B


F-84C는 F-84B와 동일한 J35-A-13C 엔진을 사용했지만, 연료 및 전기 시스템이 개량되었다. 그러나 F-84B와 거의 같은 결함을 겪었다. 1948년 F-84 프로그램 검토 결과, F-84B와 F-84C는 작전 수행 능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F-84D가 주요 결함을 해결하여 프로그램은 취소되지 않았다. F-80 슈팅스타와 비교했을 때 F-84는 더 큰 폭탄 탑재량, 빠른 속도, 좋은 고고도 성능, 긴 항속 거리를 가졌다.

미국 공군은 1949년 F-84B와 F-84C에 1억 800만 달러를 투자해 100개 이상을 개선했다. 날개는 F-84D 수준으로 보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선에도 불구하고 F-84B와 F-84C는 1952년에 운용에서 제외되었다.

1949년 배치된 F-84D는 더 두꺼운 알루미늄 외피로 날개를 덮었고, JP-4 연료 사용을 위해 연료 시스템을 개조했으며, 5000lbf 출력의 J35-A-17D 엔진을 장착했다. 날개 끝 연료 탱크의 비틀림을 막기 위해 작은 삼각 핀이 추가되었다. F-84D는 1952년 미 공군, 1957년 공군 방위군(ANG)에서 퇴역했다.

1950년 배치된 F-84E는 J35-A-17 엔진, 날개 보강, 동체 연장(조종석, 항공전자 베이 확장), AN/APG-30 거리 측정 레이더가 있는 A-1B 조준경, 날개 아래 연료 탱크 추가 장착 기능을 갖췄다. 전투 반경은 약 1367.94km에서 약 1609.34km 이상으로 늘었다. 5인치 HVAR 로켓 발사 후 접히는 로켓 랙을 도입, 항력을 줄였다. F-84E는 1950년 4월 절반만 운용될 정도로 운용률이 낮았다. 이는 앨리슨 엔진 부품 부족 때문이었다. 1956년 미 공군, 1957년 공군 예비군, 1959년 ANG에서 퇴역했다.

F-84G는 왼쪽 날개에 급유 붐 리셉터클, 자동 조종 장치, 계기 착륙 장치, 5560lbf 추력 J35-A-29 엔진, Mark 7 핵폭탄 탑재 기능을 도입했다. 1951년 배치되었지만, 엔진 부족으로 인도가 지연되었다. 1953년 7월까지 3,025대가 생산, 789대는 미 공군, 2,236대는 군사 원조로 동맹국에 인도되었다. 1960년 중반 미 공군에서 퇴역했다.

중화민국 공군은 1953년부터 잉여 F-84G를 인수받았으며, 1958년 제2차 타이완 해협 위기 동안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MiG-15, MiG-17과 공중전을 벌여 양측 모두 손실을 입었다. 중화민국은 그해 말부터 F-100으로 교체했다.

F-84는 미국 공군 썬더버드가 1953년부터 1955년까지 F-84G, 1955년부터 1956년까지 F-84F를 운용한 최초의 항공기였다.

3. 1. 한국전쟁

한국전쟁 당시 KB-29 공중급유기가 F-84E 전투기에 공중급유 중이다. F-84E는 꼬리날개 부분의 연료탱크에만 공중급유가 가능하다.


F-84 썬더제트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 호위 임무와 지상 공격 임무를 수행했다. 1950년 12월 7일, F-84D와 F-84E가 제27 에스코트 그룹에 편제되어 참전했으며, 1951년 1월 21일에는 최초의 공대공 승리를 기록했다.

F-84E가 로켓을 발사하고 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F-84는 총 86,408회 임무에 투입되어 55,586톤의 폭탄과 6,129톤의 네이팜탄을 투하했다. 미 공군은 F-84가 파괴한 지상 목표물이 전체의 60%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공대공 전투에서는 F-84 8대가 격추되었고, MiG-15는 64대가 격추되었다. F-84는 한국전쟁에서 최초로 공중 급유를 받은 전투기이기도 하다.

F-84는 대부분의 초기 제트기와 마찬가지로 이륙 성능이 좋지 않았다. 더운 한국의 여름에는 로켓 보조 이륙 장치(RATO)를 사용해도 약 3048.00m의 활주로가 필요했다. 조종간을 끝까지 당긴 채 이륙해야 했으며, 착륙 속도도 비슷했다. 하지만 계기 비행과 측풍에는 강한 면모를 보였다.

F-84는 두꺼운 직선형 날개 덕분에 저고도에서 빠르게 마하 0.82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하 제한을 초과하면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고 날개가 떨어져 나갈 위험이 있었다. 고도 약 4572.00m 이상에서는 더 빠르게 비행할 수 있었지만, 심한 진동이 발생했다. 속도 제어가 쉬워 약 3048.00m에서 안전하게 급강하 폭격을 할 수 있었다. MiG-15보다 느리고 급선회가 어려워 공중전에서는 불리했다.

F-84는 안정적인 기총 플랫폼이었고 컴퓨팅 조준기 덕분에 정확한 사격과 폭격이 가능했다. 조종사들은 F-84의 견고함을 칭찬했으며, "리드 슬레드", "아이언 크로우바", "공기를 빨아들이는 구멍", "더 호그",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세발 자전거", "지상을 사랑하는 매춘부"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렀다.

3. 1. 1. 수풍댐 공격

한국 전쟁에서 썬더제트의 유명한 작전은 1952년 수풍댐 공격이었다.[1] 수풍댐은 압록강에 있는 수력 발전용 댐으로,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4년에 건설되어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였다.[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에 있으며, 신의주시에서 약 80km 떨어져 있다.[1]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발전기 일부가 소련에 의해 약탈되기도 했다.[1]

한국 전쟁 당시 미국 공군의 F-84 썬더제트는 수풍댐을 공격했으나, 댐의 견고한 구조 덕분에 붕괴되지는 않았다.[1]

3. 2. 서유럽



포르투갈은 1953년 1월에 처음으로 F-84를 인도받았으며, 25대의 신규 제작 F-84G는 이후 USAFE 재고와 다른 유럽 운용자로부터 보충되어 최종적으로 125대의 F-84G에 도달했다.[1] 이들은 ''포르사 아에리아 포르투게사''의 첫 번째 실전 제트 전투기였다. 포르투갈에서는 두 개의 비행대가 창설되어 F-84를 방공 및 지상 공격 임무에 투입했다. 썬더제트는 곡예 비행 시범팀인 ''드라괴스''에도 장비되었다. 1960년에 두 개의 실전 F-84 비행대가 해산되었고 남은 F-84는 훈련 부대로 이관되었다. 1961년 앙골라에서 포르투갈 통치에 대한 봉기가 시작되자, 25대의 F-84G가 OGMA에 의해 정비되어 앙골라로 보내졌으며, 첫 번째 항공기는 그 해 8월 루안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Esquadra 91''(제91비행대)을 구성하여 분리주의 세력에 대한 폭탄, 로켓 및 기총 공격을 수행했다. 1966년, 로디지아의 일방적인 독립 선언 이후, 영국 해군에 의한 베이라 순찰이 부과되어 모잠비크 베이라 항구를 통해 로디지아로의 연료 흐름을 막으려 하자, 루안다에서 8대의 F-84 분견대가 모잠비크로 보내져 영국군과의 잠재적인 충돌을 방지했으며, 군사 행동의 위협이 사라지자 항공기는 앙골라로 돌아갔다. F-84의 손실은 컸으며, 1973년까지 단 5대의 F-84가 운용되었고, 마지막 기체는 그 해에 사용 중단되었지만, F-84G는 명목상 1975년 10월까지 포르투갈에서 운용되었다.

3. 3. 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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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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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 곡예비행팀

F-84E 썬더제트는 1950년부터 1955년까지 미국 공군의 스카이블레이저 곡예비행팀에 사용되었다.[1]

3. 6. 핵폭탄

썬더제트는 무게 764kg, 폭발력 8-61kt인 마크 7 핵폭탄 1발을 장착할 수 있었다. 마크 7 핵폭탄은 미국 공군 최초의 전술 핵폭탄이었다.

3. 7. 주요 성과

썬더제트는 한국 전쟁 동안 뛰어난 기록을 세웠다. 1950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참전한 후, 미국 제5공군은 F-84 편대를 한국에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다. F-84B와 F-84C는 J35 엔진 수명이 단 40시간에 불과하여 해외 배치가 어려웠지만, F-84D와 F-84E는 적합했다. 이에 F-84E를 장비한 제27 전투 호위 비행단이 항공모함에 탑승, 극동으로 파견되어 1950년 11월 30일 일본에 도착했다. 정비 후 F-84는 대구 비행장(K-2)으로 이동, 1950년 12월 7일 첫 작전을 수행했다. 초기에는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 호위 임무를 맡았으며, 첫 썬더제트 공중전 승리는 1951년 1월 21일에 기록되었으나, F-84 2대가 손실되었다. F-84는 소련의 미코얀-구레비치 MiG-15보다 속도와 기동성이 떨어져, 미그기 요격 임무는 F-86 세이버에게 넘겨졌다. 이후 F-84는 지상 공격 임무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3600 비행 시범팀(USAF 썬더버드) 소속 F-84G-26-RE 썬더제트 51-16719, 1954년.


한국에서 F-84 운용 부대는 공군 주방위군 부대 투입 및 F-80 비행대 전환으로 점차 증가했다. F-84는 총 86,408회 임무를 수행, 55,586톤(50,427미터법 톤)의 폭탄, 6,129톤(5,560미터법 톤)의 네이팜탄, 22,154발의 로켓을 투하했다. 미 공군은 F-84가 전쟁에서 파괴된 지상 목표물 60%를 담당했다고 주장했다. 주목할 만한 F-84 작전에는 1952년 수풍 댐 공격이 포함된다. 전쟁 중 F-84는 공중 급유를 사용한 최초의 미 공군 전투기가 되었다. 공중전에서 F-84 조종사들은 MiG-15 8대를 격추했다고 인정되었고, 소련은 64대 손실을 주장했다. 총 335대의 F-84D, E, G 모델이 손실되었다. 미 공군 1953 회계 연도 통계에 따르면, 한국 전쟁 동안 305대의 F-84가 손실되었으며(전투 임무 249대, 비전투 손실 56대)였다.

포르투갈은 1953년 1월 F-84를 처음 인도받았고, 25대의 신규 제작 F-84G는 이후 USAFE 재고 및 다른 유럽 운용자로부터 보충되어 총 125대에 달했다. 이들은 ''포르사 아에리아 포르투게사''의 첫 실전 제트 전투기였다. 포르투갈에서 2개 비행대가 창설, F-84를 방공 및 지상 공격 임무에 투입했다. 썬더제트는 곡예 비행 시범팀 ''드라괴스''에도 장비되었다. 1960년 2개 실전 F-84 비행대가 해산, 남은 F-84는 훈련 부대로 이관되었다. 1961년 앙골라에서 봉기가 시작되자, 25대의 F-84G가 OGMA에 의해 정비, 앙골라로 보내졌으며, 첫 항공기는 그 해 8월 루안다에 도착했다. ''Esquadra 91''(제91비행대)를 구성, 분리주의 세력에 대한 폭탄, 로켓, 기총 공격을 수행했다. 1966년 로디지아의 일방적인 독립 선언 이후, 영국 해군의 베이라 순찰로 모잠비크 베이라 항구를 통한 로디지아 연료 공급이 차단되자, 루안다에서 8대의 F-84 분견대가 모잠비크로 보내져 영국군과 충돌을 방지했고, 군사 행동 위협이 사라지자 앙골라로 복귀했다. F-84 손실은 컸으며, 1973년까지 단 5대만 운용, 마지막 기체는 그 해 사용 중단되었지만, F-84G는 명목상 1975년 10월까지 포르투갈에서 운용되었다.

  • F-84는 미국 공군 썬더버드가 1953년부터 1955년까지 F-84G 썬더제트를, 1955년부터 1956년까지 F-84F 썬더스트릭을 운용한 최초의 항공기였다. F-84E는 미국 유럽 공군(USAFE)의 팀에서도 운용되었다.
  • 1946년 9월 7일, 두 번째 XP-84 시제기는 977.2km/h의 국내 속도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영국 글로스터 메테오의 세계 기록 985.2km/h보다 약간 느렸다. 이 기록들은 1941년 4월 Me 163A 로켓기가 달성한 약 1,004.5km/h를 넘지 못했다. 1947년 8월 미국의 더글러스 D-558-1 ''스카이스트릭''이 F-84와 같은 Allison J35 터보제트 엔진으로 처음 넘어섰다.
  • 1950년 9월 22일, 데이비드 C. 실링과 윌리엄 리치 대령이 조종하는 두 대의 EF-84E는 프로브 앤 드로그 시스템을 사용하여 영국 플라이트 리퓨얼링 리미티드의 애브로 링컨 급유기로부터 급유받아 대서양을 건너 영국에서 미국으로 비행했다. 리치 항공기는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상공에서 연료가 떨어졌지만, 다른 항공기는 10시간 2분, 3번의 공중 급유로 횡단을 완료했다. 이는 많은 수의 전투기를 대서양 횡단, 신속 이동 가능함을 보였다.
  • F-84G는 내장된 공중 급유 기능을 갖춘 최초의 전투기이자, 핵폭탄 탑재 가능 최초의 단좌 항공기였다.
  • 1953년 8월 20일, 508 전략 전투 비행단의 F-84G 17대가 공중 급유를 사용하여 미국에서 영국으로 비행했다. 여정은 당시 제트 전투기 최장 무착륙 비행이었다.
  • 1955년, F-84G는 트레일러에서 제로 랭스 발사된 최초의 항공기가 되었다.

4. 파생형

F-84 썬더제트는 초기 직선 날개 형태에서 다양한 후퇴익 파생형으로 발전했다. 주요 파생형은 다음과 같다.

형식설명비고
YF-96A (YF-84F, YRF-84K)F-84E 49-2430 기체를 후퇴익 형태로 개조, J35-A35 엔진 장착. F-84F 썬더스트릭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1]
YF-84F라이트 J65 엔진 장착 및 동체 개량 프로토타입.2대 제작.
F-84F 썬더스트릭후퇴익과 J65 엔진을 장착한 양산형.
RF-84F 썬더플래시F-84F 썬더스트릭의 정찰기 버전.715대 제작.
RF-84K FICON 계획B-36 피스메이커 폭격기에 매달 수 있도록 개조된 정찰기 버전.25대 제작.
XF-84H 썬더스크리치실험용 초음속 터보프롭 버전.
YF-84J제너럴 일렉트릭 J73 엔진으로 개조.2대.


4. 1. 직선 날개 변형



1944년, 리퍼블릭 항공사(Republic Aviation)의 수석 설계자인 알렉산더 카르트벨리(Alexander Kartveli)는 P-47 썬더볼트 피스톤 엔진 전투기를 대체할 터보제트 동력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제트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 P-47을 재설계하려는 초기 시도는 썬더볼트의 큰 동체 단면 때문에 실패했다. 대신 카르트벨리와 그의 팀은 후방 동체에 축류 압축기 터보제트 엔진을, 동체 노즈에 공기 흡입구를 갖춘 훨씬 더 슬림한 동체를 가진 새로운 항공기를 설계했으며, 공기 덕트는 노즈에서 엔진까지 연결되어 동체 부피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연료는 두껍지만 층류 날개인 스윕되지 않은 날개에 있는 연료 탱크에 주로 저장되었다.[1]

1944년 9월 11일, 미국 육군 항공대(USAAF)는 최고 속도 600mph, 전투 반경 약 1367.94km, 무장 8문의 약 1.27cm 기관총 또는 6문의 약 1.52cm 기관총을 갖춘 주간 전투기에 대한 일반적인 운용 요구 사항을 발표했다. 또한 새로운 항공기는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TG-180 축류 터보제트를 사용해야 했으며, 이는 앨리슨 J35(Allison J35)로 생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양은 너무 야심적이었고, 반경 요구 사항은 약 1134.58km로 줄었고, 무장 세트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6문의 0.50구경 또는 4문의 0.60구경 기관총으로 줄였다.

1944년 11월 11일, 리퍼블릭은 새로운 XP-84의 시제품 3대에 대한 주문을 받았으며, 리퍼블릭에서는 모델 AP-23으로 알려졌다. 설계가 록히드 코퍼레이션(Lockheed Corporation)에서 제작한 P-80 슈팅스타보다 우수한 성능을 약속했고 리퍼블릭은 단좌 전투기 제작에 대한 광범위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계약에 대한 경쟁은 열리지 않았다. "썬더제트"라는 이름은 P-47 썬더볼트에서 시작된 리퍼블릭 항공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새로운 추진 방식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1945년 1월 4일, 항공기가 비행하기도 전에 USAAF는 25대의 서비스 테스트 YP-84A와 75대의 생산 P-84B(나중에 15대의 YP-84A와 85대의 P-84B로 수정)에 대한 추가 주문을 했다.

한편, 전국 항공 자문 위원회(National Advisory Committee for Aeronautics)의 풍동 테스트 결과 고속에서 종방향 불안정성과 안정기 표면 좌굴이 나타났다. 초기 터보제트의 낮은 추력을 감안할 때 항공기 무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어 USAAF는 총 중량 제한을 약 6078.13kg으로 설정해야 했다. 이 예비 테스트의 결과는 세 번째 시제품에 통합되었으며, 이는 "XP-84A"로 지정되었으며, 추력이 4000lbf인 더욱 강력한 J35-GE-15 엔진도 장착했다.

첫 번째 시제품 XP-84는 1945년 12월에 공개되었지만 적합한 엔진의 가용성으로 인해 비행 테스트가 지연되었다. 첫 번째 시제품은 무록 육군 비행장(현재의 에드워드 공군 기지)으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1946년 2월 28일 월리스 A. "월리" 리엔 소령의 조종으로 처음 비행했다. 두 번째 시제품은 8월에 합류했으며, 두 항공기 모두 3750lbf의 출력을 내는 J35-GE-7 엔진으로 비행했다. 1946년 9월 8일, 두 번째 XP-84는 607.2mph의 미국 국내 속도 기록을 세웠지만, 전날 영국 글로스터 미티어가 세운 612.2mph의 세계 속도 기록에는 미치지 못했다. 속도 기록을 깨려는 노력으로 두 번째 시제품의 테스트 프로그램이 지연되었다. 1947년 1월부터 서비스 테스트를 위해 패터슨 비행장(현재의 라이트-패터슨 공군 기지)에 인도된 15대의 YP-84A는 업그레이드된 J35-A-15 엔진을 장착하고, 6문의 0.50 인치 M2 브라우닝 기관총(노즈에 4문, 각 날개 뿌리에 1문)을 장착했으며, 각 226USgal을 수용하는 날개 끝 연료 탱크를 장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XP-84와 달랐다.

제트 엔진 인도 및 XP-84A 생산 지연으로 인해 썬더제트는 1947년 생산 P-84B가 공장에서 출고되기 시작할 때까지 제한적인 비행 테스트만 거쳤다. 특히, 날개 끝 탱크가 항공기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철저히 연구되지 않았다. 이는 나중에 문제가 되었다. 1947년 국가 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 of 1947)에 의해 미국 공군이 창설된 후 "추격" 지정은 "전투기"로 대체되었고 P-84는 F-84가 되었다.

F-84B는 YP-84A와는 다르게 더 빠르게 발사되는 M3 기관총을 장착했고(이후 F-84는 또한 8개의 약 12.70cm 고속 항공기 로켓(HVAR)를 날개 아래에 장착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1947년 12월 도우 비행장(메인주 방고어)의 제14 전투 비행단에서 실전 배치되었다. 즉시 비행 제한이 뒤따랐는데, 이는 제어 반전으로 인해 최대 속도가 마하 0.8로 제한되었고 동체 외피의 주름으로 인해 최대 가속도가 5.5 중력 (54 m/s2)로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부품 부족과 유지 보수의 어려움으로 인해 이 항공기는 "정비사의 악몽"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48년 5월 24일, 항공기 날개의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F-84B 전체 기종의 운행이 중단되었다. F-84C는 F-84B가 사용한 A-15-C와 동일한 출력을 가진 다소 더 신뢰할 수 있는 J35-A-13C 엔진을 특징으로 했으며, 연료 및 전기 시스템도 개량되었다. 이러한 개조 외에는 F-84C는 F-84B와 거의 동일했으며 동일한 결함으로 고통받았다.

1948년 F-84 프로그램 검토 결과 F-84B 또는 F-84C 항공기 중 어느 것도 작전을 수행할 수 없거나 의도한 임무의 어떠한 측면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프로그램은 생산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F-84D가 주요 결함을 만족스럽게 해결했기 때문에 취소되지 않았다. F-80과의 비교 비행에서 슈팅 스타는 이륙 거리가 짧고 저고도 상승률이 더 좋으며 기동성이 우수했지만, F-84는 더 큰 폭탄 탑재량을 운반할 수 있었고, 더 빠르며, 고고도 성능이 더 좋고, 항속 거리가 더 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타협안으로, 미국 공군은 1949년에 모든 F-84B 및 F-84C에 1.08억달러를 투자하여 100개 이상의 업그레이드를 구현했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F-84D와 유사한 수준으로 날개를 보강한 것이다. 그 결과 개선에도 불구하고 F-84B와 F-84C는 1952년에 모두 운용에서 제외되었다.

구조적 개선은 1949년에 실전 배치된 F-84D에 공장에서 구현되었다. 날개는 더 두꺼운 알루미늄 외피로 덮였고, 연료 시스템은 동절기용으로 개조되어 JP-4 연료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5000lbf의 출력을 가진 더 강력한 J35-A-17D 엔진이 장착되었다. 테스트되지 않은 날개 팁 연료 탱크가 고-g 기동 중에 과도한 비틀림을 유발하여 날개 구조적 결함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수정하기 위해 작은 삼각 핀이 탱크 외부에 추가되었다. F-84D는 1952년에 미국 공군에서 단계적으로 퇴역했고, 1957년에 공군 방위군(ANG)에서 퇴역했다.

최초의 효과적이고 완전한 기능을 갖춘 썬더제트는 1950년에 실전 배치된 F-84E 모델이었다. 이 항공기는 J35-A-17 엔진, 날개 보강, 날개 앞 약 30.48cm 동체 연장 및 조종석과 항공전자 베이를 넓히기 위해 날개 뒤 약 7.62cm 연장, AN/APG-30 거리 측정 레이더가 장착된 A-1B 조준경, 그리고 날개 아래 파일런에 230USgal 연료 탱크 한 쌍을 더 장착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후자는 전투 반경을 약 1367.94km에서 약 1609.34km 이상으로 늘렸다.

원래 F-84 설계의 한 가지 개선점은 5인치 HVAR 로켓 발사 후 날개와 평행하게 접히는 로켓 랙이었는데, 이는 이전의 고정 장착 랙보다 항력을 줄였다. 이 혁신은 다른 미국 제트 전투 폭격기에 의해 채택되었다.

1960년대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 중 루안다 공군 기지에서 무장을 장착하는 포르투갈 F-84


개선에도 불구하고 F-84E의 운용률은 1950년 4월에 항공기의 절반만 운용되면서 여전히 좋지 않았다. 이는 주로 앨리슨 엔진의 심각한 부품 부족 때문이었다. F-84E는 매달 25시간 비행하여 엔진 정비 사이에 100시간을 축적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한국 전쟁 및 NATO 배치에 대한 실제 비행 시간은 새로운 엔진을 제조하는 앨리슨의 공급 및 능력보다 빠르게 초과했다. F-84E는 1956년에 미국 공군에서 퇴역했으며, 1957년까지 공군 예비군에서, 1959년까지 ANG 부대에서 사용되었다.

최종 직선 날개 F-84는 F-84F의 후퇴익이 실전 배치될 때까지 임시 방편으로 설계되었지만, NATO 공군을 구축하기 위해 대량으로 주문된 F-84G였다. 이는 왼쪽 날개에 급유 붐 리셉터클, 자동 조종 장치, 계기 착륙 장치, 5560lbf의 추력을 가진 J35-A-29 엔진, 독특한 프레임 캐노피 (이전 유형에도 개조됨), 단일 Mark 7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기능을 도입했다. F-84G는 1951년에 실전 배치되었지만, 엔진 부족으로 인해 인도가 지연되었다. 1953년 7월까지 생산이 계속되어 3,025대의 F-84G가 인도되었으며, 이 중 789대는 미국 공군에, 2,236대는 미국 군사 원조의 일환으로 미국 동맹국에 인도되었다. F-84G는 1960년 중반에 미국 공군에서 퇴역했다.

XP-84A (앞쪽) 및 YP-84A

  • XP-84: 최초의 프로토타입 2대. 3750lbf J-35-GE-7 엔진 장착, 4정의 12.7mm (.50 in) 기관총 장착.
  • XP-84A: 더 강력한 (4000lbf) J35-GE-15 엔진을 장착한 세 번째 프로토타입.
  • YP-84A: J35-A-15 엔진과 6정의 총기를 장착한 시험용 항공기; 15대 제작.
  • P-84B (F-84B): 최초 양산형, J35-A-15 엔진; 226대 제작.
  • F-84C: 더 신뢰성이 높은 J35-A-13 엔진으로 복귀, 연료, 유압 및 전기 시스템 개선; 191대 제작.
  • F-84D: J35-A-17 엔진, 다양한 구조적 개선. 피토관이 수직미익에서 공기 흡입구의 분할기로 이동했으며, 날개 끝 연료 탱크에 핀이 추가됨; 154대 제작.


F84 E&G 썬더제트 프랑스 공군 1951–1955

  • EF-84D: EF-84D 48-641과 EF-84D 48-661 두 대의 F-84D가 B-29 폭격기의 날개 끝과 공중에서 연결하여 전투기의 항속거리를 늘릴 수 있도록 날개 끝 연결 장치를 장착하도록 개조되었다. B-29와 EF-84 중 한 대는 1953년 4월 24일 사고로 손실되었는데, 이는 F-84의 자동 비행 제어 장치가 연결 후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 F-84E: J35-A-17D 엔진, 스페리 AN/APG-30 레이더 거리 측정 조준기, RATO 병 부착 장치, 추가 한 쌍의 230USgal을 운반할 수 있도록 동체 내 날개 하드포인트가 "습식"으로 개조됨. 동체 연장 및 조종석 확대. 대부분의 항공기는 F-84G 스타일의 강화 캐노피로 개조되었다. 843대 제작.
  • EF-84E: 테스트를 위해 개조된 F-84E - 예시에는 공중 급유 시스템 테스트, B-36 호스트를 이용한 FICON 시험 항공기 및 MGM-1 마타도르(MGM-1 Matador) 순항 미사일의 부스터 로켓을 사용하여 핵 공격에 취약한 비행장으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ZELMAL(Zero-length launch, Mat landing) 실험을 위한 시험 항공기로 사용.
  • F-84G: LABS를 사용하여 Mark 7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단좌 전투 폭격기, J35-A-29 엔진, 자동 조종 장치, 붐(날개 앞전의 수용기)과 드로그(날개 끝 연료 탱크에 장착된 프로브)를 모두 사용하여 공중 급유 가능, 이후 직선형 F-84에 개조된 다중 프레임 캐노피를 도입했다. 총 3,025대가 제작되었으며(미국 공군용 789대, MAP를 통해 다른 사용자에게 제공).
  • F-84KX: 전 미국 해군의 표적 드론으로 전환된 전직 미국 공군 F-84B. 80대의 항공기가 개조되었다고 주장하지만, 프로그램은 항공기의 개조 또는 사용 전에 취소되었을 수 있다.
  • Tip-Tow: 위의 EF-84D 참조, 실용화되지 않음. FICON 프로젝트 참조
  • Tom-Tom: 두 대의 RF-84K와 B-36 날개 끝 연결 실험, 실용화되지 않음. FICON 프로젝트 참조
  • FICON: F-84E 및 GRB-36D 트래피즈 시스템, 실용화됨. FICON 프로젝트 참조

4. 2. 후퇴익 변형

F-84 썬더제트는 초기에는 직선익 형태로 개발되었으나, 이후 후퇴익을 적용한 다양한 파생형이 등장했다. 주요 후퇴익 파생형은 다음과 같다.

; YF-96A (YF-84F, YRF-84K)

: F-84E 49-2430 기체를 후퇴익 형태로 개조하고 J35-A35 엔진을 장착한 기체이다. F-84F 썬더스트릭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으로 불린다.[1]

; YF-84F

: 라이트 J65 엔진을 장착하고 동체를 더 깊게 개량한 프로토타입이다. 2대가 제작되었다.

; F-84F 썬더스트릭

: 후퇴익과 J65 엔진을 장착한 양산형 모델이다.

; RF-84F 썬더플래시

: F-84F의 정찰기 버전으로, 총 715대가 제작되었다.

; RF-84K FICON 계획

: 콘솔리데이티드 B-36 피스메이커 폭격기에 매달 수 있도록 개조된 정찰기 버전이다. 25대가 제작되었다.

; XF-84H 썬더스크리치

: 실험용 초음속 터보프롭 버전이다.

; YF-84J

: 제너럴 일렉트릭 J73 엔진으로 개조된 2대이다.

5. 운용 국가


  • 중화민국 공군은 1953년부터 미국 공군으로부터 잉여 F-84G를 인수받았으며,[1] 1958년 제2차 타이완 해협 위기 동안 F-84는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의 MiG-15와 MiG-17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여 양측 모두 손실을 입었다. 중화민국은 그해 말부터 썬더제트를 F-100으로 교체했다.
  • F-84는 미국 공군 썬더버드가 1953년부터 1955년까지 F-84G 썬더제트를, 1955년부터 1956년까지 F-84F 썬더스트릭을 운용한 최초의 항공기였다. F-84E는 또한 미국 유럽 공군 (USAFE)의 スカイブレイザーズ|스카이블레이저스일본어 팀에 의해 운용되었다.


아래는 F-84를 운용한 네덜란드 공군 비행대대 목록이다.

비행대대기종
306 비행대대F-84E[1]
311 비행대대F-84E[1]
312 비행대대F-84G[1]
313 비행대대F-84E[1]
314 비행대대F-84G[1]
315 비행대대F-84G[1]
316 비행대대F-84G[1]


6. 대한민국에서의 F-84

2013년 기준으로 한국 공군이 사용중인 제공호는 최대이륙중량 11톤, F-50은 최대이륙중량 13톤이다. 리퍼블릭 F-84 썬더제트는 최대이륙중량 10톤, 리퍼블릭 F-84F 썬더스트릭은 최대이륙중량 12톤으로, 오늘날 제공호, F-50과 무게가 거의 같다. 군용 비행기는 최대무장을 한 최대이륙중량, 군함은 최대무장을 한 만재배수량이 무기성능의 핵심 기준이다. 보통 군함의 경우에는 정확한 만재배수량이 군사비밀로 되어 있고, 대략의 만재배수량만 공표된다.

7. 제원 (F-84G 썬더제트)

F-84G 썬더제트 제원
항목내용
승무원1명
전장약 11.58m
전폭약 10.97m
전고약 3.66m
날개 면적약 24.15m2
공허 중량약 5032.60kg
적재 중량약 8457.22kg
최대 이륙 중량약 10670.75kg
연료 용량450USgal (내부 연료)
엔진앨리슨 J35-A-29 터보제트 엔진 1기, 5600lbf
최대 속도622mph (해수면 기준)
순항 속도483mph (약 10668.00m에서)
항속 거리약 1078.26km (내부 연료)
최대 항속 거리약 3218.68km (외부 연료 탱크 포함)
상승 한도약 12344.40m
상승 시간약 10668.00m까지 7.9분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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