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가이어 시스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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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맥과이어 시스터스는 오하이오주 출신의 3인조 여성 보컬 그룹으로,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활동하며 "Sincerely", "Sugartime", "May You Always" 등의 히트곡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1952년 코럴 레코드와 계약 후 아서 고프레이 쇼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여러 미국 대통령 앞에서 공연했다. 1968년 활동을 중단했으나, 1986년 재결합하여 공연을 이어갔다. 1994년 국립 방송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도로시 맥과이어는 2012년, 크리스틴 맥과이어는 2018년, 필리스 맥과이어는 2020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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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가이어 시스터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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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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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지 | 미들타운, 오하이오주, 미국 |
장르 | 전통 팝 |
활동 기간 | 1952–1968; 1986–2004 |
이전 구성원 | 크리스틴 맥과이어 도로시 "도티" 맥과이어 필리스 진 맥과이어 |
구성원 정보 | |
크리스틴 맥과이어 | 출생일: 사망일: , 라스베이거스, 네바다주, 미국 |
도로시 "도티" 맥과이어 | 출생일: 사망일: , 파라다이스 밸리, 애리조나주, 미국 |
필리스 진 맥과이어 | 출생일: 사망일: , 라스베이거스, 네바다주, 미국 |
2. 초기 생애
맥과이어 자매는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에서 아사 맥과이어와 릴리 (펄츠) 맥과이어[3][4]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들은 미애미즈버그에서 자랐으며, 데이턴 근처에서 성장했다. 어머니 릴리는 미애미즈버그 제일 하나님의 교회의 목사였고, 자매들은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결혼식, 장례식, 부흥회 등에서 노래를 불렀다. 1935년에 노래를 시작했을 당시, 막내인 필리스는 네 살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매들은 교회 밖의 행사에서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1949년에는 군사 기지와 재향 군인 병원에서 공연하며 교회에서 부르던 노래보다 더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다.[5]
맥과이어 시스터스는 1952년 코럴 레코드와 계약하고 아서 고프레이의 탤런트 쇼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쇼 비즈니스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7년간 고프레이의 여러 쇼에 고정적으로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활발하게 활동하며 "Sincerely", "Picnic", "Sugartime" 등 100만 장 이상 판매된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했다.[5]
3. 쇼 비즈니스 경력
이들은 세 자매가 동일한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정교하게 맞춘 안무를 선보이는 독특한 스타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에드 설리번, 딘 마틴, 대니 케이, 앤디 윌리엄스 등 당대 최고의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쇼에 자주 출연하며 대중과 만났다. 또한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등 다섯 명의 미국 대통령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앞에서 공연하는 등 높은 위상을 보여주었다. 1961년에는 런던에서 열린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 무대에 서기도 했다. 활동 초기에는 선배 그룹인 앤드루스 자매와 비교되기도 했으나, 점차 자신들만의 개성을 확립하며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나갔다.
3. 1. 전성기 활동
맥과이어 시스터스는 1952년 코럴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같은 해에 그들은 ''아서 고프레이의 탤런트 스카우트''에 출연했고, 아서 고프레이는 그들을 다른 쇼에도 고용하여 7년 동안 함께 활동했다. 1953년 11월 ''코스모폴리탄'' 잡지는 그들을 "고프레이의 즐거운 맥과이어스"라고 칭했다.
자매들은 종종 앤드루스 자매와 비교되었다. 앤드루스 자매의 맥센 앤드루스는 1979년 WOR (AM) 라디오에서 조 프랭클린과의 인터뷰 중 "맥과이어 시스터스는 앤드루스 시스터스를 모방하는 것을 그만두자 괜찮아졌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맥과이어 시스터스와 앤드루스 자매는 활동 기간 동안 여러 차례 만났으며, 필리스 맥과이어는 1990년대 샐리 제시 라파엘이 진행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맥센과 함께 출연하여 1950년대 초 뉴욕에서 앤드루스 자매를 만나 중요한 조언을 받았다고 밝혔다. 앤드루스 자매는 1940년대 영화에서 마이크 앞에 서서 노래하는 것 외에도 움직이며 공연하는 모습을 보여준 최초의 여성 보컬 그룹 중 하나였는데, 맥과이어 시스터스 역시 노래를 부를 때 움직였고, 여러 텔레비전 스페셜에서 화려한 무대 연출과 함께 댄스 루틴을 자주 선보였다.
자매들은 어릴 적 부모님의 거실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공연할 때부터 밀스 브라더스와 다이닝 시스터스의 스타일을 모방했다. 필리스 맥과이어에 따르면, 자매들은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대중적인 노래를 거의 몰랐고 주로 어머니가 가르쳐 준 찬송가를 불렀다고 한다. 이들은 성공하기 오래전부터 다른 노래 그룹들을 따라 하며 실력을 키웠다.[9]
아서 고프레이 쇼에서 활동하는 동안 맥과이어스 자매는 가수 루앤 심스와 친분을 쌓았고, 1956년 7월 그녀가 음악 출판업자 로링 버젤과 결혼할 때 결혼식에 참석했다.[6] 버젤의 음악 출판사 헤흐트-랭커스터 & 버젤 뮤직(해럴드 헤흐트와 버트 랭커스터가 공동 소유)는 맥과이어 시스터스에게 두 곡을 제공했는데, "May You Always"는 1959년 가장 많이 팔린 싱글 및 악보가 되었고,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주제가("The Need for Love")는 1960년에 또 다른 히트곡이 되었다.[7][8]
맥과이어 시스터스는 1955년 5월 29일 방영된 ''왓츠 마이 라인?''에 미스터리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프레드 앨런이 그들의 정체를 맞혔다. 1958년에는 그들의 어머니가 텔레비전 게임 쇼 ''투 텔 더 트루스''에 출연하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필 실버스 쇼'' 시즌 4의 에피소드 "빌코, 맥과이어 시스터스를 소개하다"에 직접 출연하여 공연했다.
그들은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등 다섯 명의 미국 대통령과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앞에서 공연하는 영예를 누렸다. 1961년에는 런던에서 열린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 무대에 섰다.
1960년대에도 자매들은 활발한 텔레비전 활동을 이어갔다. 에드 설리번, 딘 마틴, 대니 케이, 밀턴 버를, 앤디 윌리엄스, 페리 코모, 레드 스켈튼 등이 진행하는 당대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했다. 세 자매는 항상 똑같은 옷을 입고 동일한 헤어스타일을 했으며, 마치 군대처럼 정확하게 동기화된 몸짓과 손짓으로 무대를 꾸몄다. 그들의 대표곡인 "Sincerely", "Picnic", "Sugartime"은 각각 1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5]
4. 그룹 활동 중단과 재결합
맥가이어 시스터스는 1968년 에드 설리반 쇼 출연을 마지막으로 공식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필리스 맥과이어는 솔로 활동을 이어갔다. 그룹 해체의 배경에는 필리스와 갱스터 샘 지안카나의 관계로 인한 블랙리스트 등재설 등 여러 추측이 있었다.[9]
자매들은 18년 만인 1986년 토론토의 페어몬트 로열 요크 호텔 공연을 시작으로 재결합하여 활동을 재개했다.[10] 이후 라스베이거스 밸리, 애틀랜틱 시티, 뉴욕 등지에서 공연했으며, 2004년 PBS 스페셜 ''Magic Moments: Best of '50s Pop''에 출연하는 등 간헐적으로 활동을 이어갔다.[11][12]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창력과 화음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9] 은퇴 후에는 플로리다주 브래든턴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기도 했다.[13]
4. 1. 필리스 맥과이어와 샘 지안카나
맥가이어 시스터스는 1968년 에드 설리반 쇼 출연을 마지막으로 공식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필리스 맥과이어는 솔로 활동을 이어갔다. 그룹 해체의 배경에는 필리스와 갱스터 샘 지안카나의 오랜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 많다. 이 관계로 인해 그룹이 방송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소문도 있었다. 필리스는 오랫동안 지안카나와의 관계가 우정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9]1960년대 필리스가 법정에 소환되었을 때, 지안카나는 법원 밖에서 기자들에게 필리스가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의 사생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안카나는 1975년 신원 미상의 총잡이에게 살해당했는데, 그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도미닉 "부치" 블라시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필리스는 수십 년 동안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호화로운 저택에서 거주했다. 이 저택에는 개인 미용실, 백조가 있는 해자, 심지어 집 지붕을 뚫고 솟아 있는 에펠탑 복제본까지 갖추고 있었다. 1980년대 ABC 방송의 ''20/20'' 프로그램 인터뷰 중 바바라 월터스가 저택 건축 자금의 출처에 대해 지안카나와의 연관성을 묻자, 필리스는 이를 부인하며 자매들이 전성기 시절 석유에 투자해 번 돈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같은 인터뷰에서 그녀는 지안카나와의 관계가 실제로는 연인 관계였음을 인정하며 "그를 만났을 때 그가 누구인지 몰랐고, 그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저 역시 미혼이었습니다. 제가 자라온 환경에서는 그것이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이미 사랑에 빠진 후였습니다."라고 말했다.[9]
4. 2. 재결합과 이후 활동
1968년에 공식적인 활동을 중단하고, 그해 마지막 공연을 에드 설리반 쇼 (The Ed Sullivan Showeng)에서 가졌다. 이후 필리스 맥과이어는 한동안 솔로 가수로 활동을 이어갔다. 그룹의 해체는 종종 필리스가 갱스터 샘 지안카나 (Sam Giancanaeng)와 오랫동안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필리스는 수년간 그들의 우정이 엄격히 플라토닉 관계라고 주장했지만, 이 관계로 인해 그룹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소문도 있었다.1960년대 필리스가 법정에 출두했을 때, 지안카나는 법원 밖에서 기자들에게 "필리스는 존 F. 케네디 (John F. Kennedyeng)와 그의 동생 로버트 F. 케네디 (Robert F. Kennedyeng)의 소문난 비윤리적 행동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안카나는 1975년 신원 미상의 총격범에게 살해되었는데, 범인은 그의 최측근이자 오른팔이었던 도미닉 "부치" 블라시로 추정된다.
필리스는 수십 년 동안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유명한 저택에서 거주했다. 이 저택에는 개인 미용실, 백조가 있는 해자, 그리고 집 지붕을 뚫고 솟아 있는 에펠탑 복제품까지 있었다. 1980년대 ABC-TV의 ''20/20''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바바라 월터스 (Barbara Walterseng)가 호화로운 저택 건설에 지안카나의 돈이 사용되었는지 묻자, 필리스는 이를 부인하며 자매들이 인기를 누리던 시절 석유에 많은 투자를 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녀는 지안카나와의 관계가 사실 연애였음을 인정하며 "그를 만났을 때 그가 누구인지 몰랐고, 그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저는 미혼 여성이었습니다. 제가 자라온 방식에 따르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야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저는 이미 사랑에 빠져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9]
자매들은 1986년에 다시 뭉쳐 은퇴 후 처음으로 토론토의 페어몬트 로열 요크 호텔 (Royal York Hoteleng)에서 공연했다.[10] 이후 라스베이거스 밸리, 애틀랜틱 시티, 그리고 뉴욕 시의 레인보우 & 스타스 (Rainbow & Starseng) 등지에서 수많은 나이트클럽 공연을 이어갔다. 이 공연들에서 그룹은 히트곡을 불렀을 뿐만 아니라, 필리스가 페기 리 (Peggy Leeeng), 주디 갈랜드 (Judy Garlandeng), 펄 베일리 (Pearl Baileyeng), 에델 머먼 (Ethel Mermaneng), 심지어 루이 암스트롱 (Louis Armstrongeng)을 모창하는 모습도 선보였다.
공연의 일부로, 그들은 흥겨운 곡 "I Love a Violin" (I Love a Violineng), 아카펠라로 부르는 "Danny Boy" (Danny Boyeng), 그리고 필리스가 잠시 무대 뒤로 퇴장한 사이 크리스틴과 도로시가 두 대의 피아노로 "The Way We Were" (The Way We Wereeng)를 연주하는 특별 무대도 마련했다. 다른 주요 공연 내용으로는 코믹한 트리니다드 스타일의 곡, 브로드웨이 뮤지컬 캣츠 (Catseng)의 "Memory" (Memoryeng)를 감미롭게 부르는 것, 그리고 "Money Medley" (Money Medleyeng) 등이 있었는데, 이 "Money Medley"는 1994년 제리 루이스 (Jerry Lewiseng) MDA 텔레톤에서도 라이브로 공연했다. 이후 자매들은 가끔씩 함께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2004년에는 PBS 스페셜 ''Magic Moments: Best of '50s Pop'' (Magic Moments: Best of '50s Popeng)에 출연하여 공연하기도 했다.[11][12] 자매들의 뛰어난 가창력과 조화로운 화음은 시간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이전이나 이후의 어떤 트리오보다도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9]
경력이 마무리된 후, 그들은 플로리다주 브레이든턴 (Bradentoneng)에 맥과이어스 펍 (McGuire's Pubeng)이라는 레스토랑을 열었다.[13]
5. 유산
1994년 국립 방송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01년에는 보컬 그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또한 코카콜라 명예의 전당과 헤드라이너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으며[14], 2009년 히트 퍼레이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6. 사망
2012년 9월 7일, 도로시 맥과이어는 애리조나주 파라다이스 밸리에 있는 아들의 집에서 파킨슨병과 노인성 치매로 투병하다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8] 54년간 도로시의 남편이었던 로웰 윌리엄슨은 6개월 후인 2013년 2월 25일, 낙상으로 척추 골절을 입은 후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크리스틴 맥과이어는 2018년 12월 28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19]
세 자매 중 마지막 생존자인 필리스 맥과이어는 2020년 12월 29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자택에서 자연사로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 향년 89세였다.[20][21]
7. 음반 목록
맥가이어 시스터스는 다수의 싱글과 앨범을 발표하며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활발히 활동했다. 대표적인 히트곡으로는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기록한 "Sincerely"(1955)와 "Sugartime"(1957) 등이 있다.[22] 이들의 음반은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등 해외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자세한 음반 목록은 아래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7. 1. 싱글
표시된 경우를 제외하고 양면 모두 동일한 앨범 수록곡AC
[22]
b/w "One, Two, Three, Four"
b/w "Miss You"
b/w "Hey, Mister Cotton Picker"
b/w "You'll Never Know Till Monday"
b/w "Lonesome Polecat" (from Musical Magic)
b/w "Heavenly Feeling" (논앨범 트랙)
b/w "Not As a Stranger" (논앨범 트랙)
b/w "Give Me Your Heart for Christmas"
b/w "Melody of Love"
b/w "Hearts of Stone" (논앨범 트랙)
b/w "If It's a Dream"
b/w "If You Believe"
b/w "The Littlest Angel"
b/w "Tell Me Now" (논앨범 트랙)
b/w "Mommy" (from 'Childrens Holiday'')
b/w "Without Him"
b/w "He Got Time" (from Greetings from the McGuire Sisters'')
b/w"Drownin in Memories"
b/w "Rock Bottom"
b/w "Interlude"
b/w "Forgive Me"
b/w "Honorable Congratulations"
b/w "Banana Split"
b/w "Since You Went Away to School"
b/w "Do You Love Me Like You Kiss Me"
b/w "I'll Think of You"
b/w "Achoo-Cha-Cha"
b/w "Compromise" (논앨범 트랙)
b/w "Have a Nice Weekend" (논앨범 트랙)
b/w "Lovers Lullaby"
b/w "I Give Thanks" (논앨범 트랙)
b/w "Nine o'Clock" (논앨범 트랙)
b/w "I Don't Know Why (I Just Do)"
b/w "Really Neat" (논앨범 트랙)
b/w "Will There Be Space in a Space Ship" (논앨범 트랙)
b/w "I Can Dream, Cant I?" (논앨범 트랙)
b/w "More Hearts Are Broken That Way"
b/w "I Really Dont Want to Know"
b/w "Cordially Invited"
b/w "Never"
b/w "Dear Heart"
b/w "I'll Walk Alone"
b/w "Graz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