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및 지도자로, 1981년 제일은행 축구단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럭키금성 황소(현 FC 서울)에서 K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전향하여 LG 치타스, 수원 삼성 블루윙즈 등에서 코치로 활동했으며,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4강 진출에 기여했다. 이후 경남 FC, 전남 드래곤즈, 상주 상무 등을 거쳐 2017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2018 AFF 스즈키컵 우승, 2019년 동남아시아 경기대회 우승 등 베트남 축구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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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초등학교 동문 - 성낙송 성낙송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법원장, 사법연수원 원장을 역임하고 김정인 부인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는 등 인권 보호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재 법무법인 화현 대표변호사, 오뚜기 및 롯데정밀화학 사외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베트남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공오균 공오균은 대한민국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서, 선수 시절에는 대전 시티즌 등에서 활약했으며 지도자로서 대한민국 U-20 대표팀 코치로 FIFA U-20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었고 현재는 하노이 경찰을 지도한다.
1977년 제19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 대회에 참가하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었으며[104] 1978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 주장을 맡아 우승을 하였다.[105] 1979년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B팀인 충무에 선발되었다. 1981년에는 1진인 화랑팀에 선발되었다.[106]국가대표팀 소속 A매치 출전 기록은 1981년 3월 한·일 정기전 1경기이다.[107]
1981년 3월 8일, 박항서는 일본과의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7][8]
3. 지도자 경력
1988년 은퇴한 직후에 1996년까지 LG 치타스에서 코치로 재직하였으며 1996년 11월 5일 조영증 감독이 사퇴하자 감독 대행이 되어 1996년 FA컵에서 한 경기를 지휘하였다.[108] 1997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옮겨 2000년 2월까지 활동하였다. 1994년 FIFA 월드컵에는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약하였다.
2000년 10월 허정무 감독이 사퇴한 뒤 2000년 11월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발탁되었고, 12월 한·일 정기전에는 임시 감독을 맡았다. 거스 히딩크 전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선임되자 감독과 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선수단의 융화를 일궈내는 등 2002년 FIFA 월드컵 준결승을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월드컵이 끝나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떠나자 2002년 8월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으나[109] 이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가 정식 계약을 하지 않아 무보수 임시 감독이라는 논란이 나왔고[110][111] 대한축구협회가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을 고문 자격으로 벤치에 착석시키려고 하자 불만을 표출하여 엄중 경고를 받았다.[112] 결국 9월 정식 계약을 맺었지만[113]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는 데 그쳐 10월 아시안 게임 폐막 후 경질되었다.[114]
이후 2003년 포항 스틸러스에 코치로 입단하여 2004년까지 활동하였고[115] 그 뒤 잠시 전남 드래곤즈 기술 고문을 맡았다.
2005년 8월 새롭게 창단된 경남 FC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116] 2007년 정규 리그 4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나 포항 스틸러스와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부차기에서 패하여 5위로 마감하였다. 하지만 구단 내부 갈등으로 인하여[117][118][119] 11월 경남 FC에서 물러났다.[120][121]
박항서 (2018년)
2007년 12월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에 취임하여[122] 팀의 2008년 삼성 하우젠 컵 준우승과 2009 시즌 6위로 챔피언십 진출 및 최종 4위를 이끌었으나 2010 시즌에는 10위에 그쳐 그 해 11월 5일 자진 사임하였다.[123] 이후 고 이수철 감독의 후임으로 2011년 상주 상무의 감독직에 올라 1부 리그로 승격해서 1년만에 2부리그로 강등되기도 했으나 2013년 2부리그의 명칭 변경 후 2013년 K리그 챌린지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최초 K리그 챌린지 1위에 오르며 1년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승격하자마자 K리그 클래식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2014년 K리그 클래식 12위로 1년만에 재강등되는 등 강등의 아픔을 두번이나 겪었다. 하지만 강등되자마자 2013년과 마찬가지로 2015년 K리그 챌린지 1위를 거두며 재승격하였으며 2015시즌을 끝으로 계약 만료로 인해 상주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17년 창원시청 축구단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1년만에 현장으로 귀환하였고 프로팀 감독으로서의 경험이 풍부한 박항서의 취임은 큰 기대를 모았다. 전반기만 해도 창원시청은 중상위권을 유지하며 리그 3위까지 주어지는 플레이오프를 충분히 노려볼만 했으며, 6월에 개최한 내셔널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후반기가 접어들수록 여름 이적시장에서 전력 보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계를 드러내며 순위가 급하락하여 아쉬움을 남겼다.[124]
3. 1. 대한민국
박항서는 1988년 은퇴 후 1996년까지 LG 치타스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1996년 11월 조영증 감독 사퇴 후 감독 대행으로 1996년 FA컵 한 경기를 지휘했고,[108] 1997년부터 2000년 2월까지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로 활동했다. 1994년 FIFA 월드컵에는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참가했다.
2000년 10월 허정무 감독 사퇴 후, 11월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발탁되었고, 12월 한·일 정기전 임시 감독을 맡았다.[77]거스 히딩크 감독 부임 후에는 감독과 선수 간 가교 역할을 하며 2002년 FIFA 월드컵 준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월드컵 이후 2002년 8월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109]대한축구협회의 계약 문제로 무보수 임시 감독 논란이 있었고,[110][111][78]거스 히딩크 전 감독의 벤치 착석 문제로 협회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112] 9월 정식 계약을 맺었지만,[113]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에 그쳐 10월 경질되었다.[114][14]
2003년부터 2004년까지 포항 스틸러스 코치,[115] 잠시 전남 드래곤즈 기술 고문을 역임했다. 2005년 8월 창단된 경남 FC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어[116] 2007년 정규 리그 4위를 기록했으나,[16] 구단 내부 갈등으로 11월 사임했다.[117][118][119][120][121]
2007년 12월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취임하여[122] 2008년 삼성 하우젠 컵 준우승, 2009 시즌 6강 플레이오프 진출(최종 4위)을 이끌었으나, 2010 시즌 10위에 그쳐 11월 5일 자진 사임했다.[123][18] 이후 상주 상무 감독으로 2013년, 2015년 K리그 챌린지 우승을 이끌었지만, 2014년 K리그 클래식 12위로 강등되기도 했다. 2015 시즌 후 계약 만료로 상주를 떠났다.[19]
2017년 창원시청 축구단 감독으로 부임하여[20] 그해 내셔널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지만,[79] 리그에서는 후반기 부진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124]
3. 2. 베트남
2017년 9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고,[125] 10월 11일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과 베트남 U-23 축구 국가대표팀 겸임 감독으로 공식 취임하였다.[126] 데뷔전은 2017년 11월 14일 2019 AFC 아시안컵 예선 3라운드 아프가니스탄과의 경기로,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베트남은 12년 만에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했다.[127]
2018년 AFC U-23 챔피언십에서 베트남 U-23 대표팀을 결승에 진출시키는 파란을 일으켰으나, 우즈베키스탄에 패하며 준우승했다.[128] 이 대회로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별명을 얻었다.[128]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베트남을 56년 만에 아시안 게임 축구 준결승에 올려놓았고,[129] 2018년 AFF 스즈키컵에서는 베트남을 10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었다.[129]
2019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베트남을 12년 만에 아시안컵 8강으로 이끌었으며,[130] 2019 킹스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며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축구 최강국으로 만들었다.[130][131]
2019년 11월 7일 3년 재계약을 맺었고,[132] 다음날 아세안 축구 연맹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 베트남에 60년 만의 금메달을 안겨주었다.[133]
2021년 11월 10일, 베트남 축구 연맹(VFF)과 1년 계약 연장에 합의하여 2023년 1월 31일까지 계약이 연장되었다.[134] 2020년 AFF 스즈키컵 준결승에서 태국에 패하며 대회 2연속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2022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서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진출을 이끌었다.[135]중국과의 최종 예선 B조 8차전에서 베트남의 역사적인 월드컵 최종 예선 첫 승리를 이끌었으며, 일본과의 최종전 원정 경기에서도 1-1 무승부를 기록했다.[135][136]
2021년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 베트남의 2회 연속 금메달이자 전승 무실점 금메달을 이끌며 U-23 대표팀 감독 생활을 마무리했다.[137][138] 2022년 10월 17일, 베트남 축구 연맹(VFF)에 따르면 2023년 1월 만료되는 현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2022년 AFF 챔피언십까지 베트남 대표팀을 이끌게 되었다.[139][140]
2022년 AFF 챔피언십에서 베트남은 B조 무패 1위를 차지, 준결승에서 신태용의 인도네시아를 2-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지만, 태국에 패하며 준우승으로 5년간의 여정을 마쳤다.[141][142]
4. 수상 내역
박항서는 선수, 코치, 감독으로서 다양한 대회에서 우승 및 준우승을 기록하고, 여러 훈장과 상을 수상했다.
'''선수 경력'''
한양대학교 시절, 전국체전 준우승(1980)[60]과 대통령배 축구대회 우승(1977)[61]을 기록했다.
박항서는 선수 시절 전력을 다하는 근성으로 '악바리'라는 별명이 붙었다.[150] 2006년 4월에는 문근영과 함께 KTF CF를 찍었으며,[150] 2007년 'K-리그 올스타전'에서는 전남 드래곤즈의 허정무 감독을 제치고 남부팀 감독 부문 1위에 올랐다.[151] 그의 영어 인터뷰는 영국 BBC가 운영하는 러닝잉글리쉬닷컴의 스피킹 강좌에서 성공적인 영어 커뮤니케이션의 예로 소개되기도 했다.[152]
독실한 감리교 신자로,[40][87] 부인 최상아 씨가 권사로 섬기는 베트남 하노이 한인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경기를 치르기 전 교회를 찾아 기도하고, 베트남 선수들이 득점할 때마다 기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8월 28일 2018년 아시안 게임 축구 준결승전 대한민국과의 경기를 앞두고 훈련 중 기도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베트남 축구를 이끄는 믿음의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2002년 FIFA 월드컵 직후 4강 진출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2등급 체육훈장인 맹호장을 받았으며,[41] 2022년 12월에는 한국과 베트남 간의 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등급 외교훈장인 흥인장을 수훈했다.[42]
베트남 감독 재임 시절, 베트남에 패한 후 사임하거나 해고된 여러 유명 감독들 때문에 베트남 언론으로부터 "터미네이터 감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43][44] 이 별명은 베트남 언론에서 "코치 터미네이터"로 불리기도 한다.[88][89] 그가 베트남에서 패배시켜 해임되거나 사임하게 만든 감독에는 거스 히딩크 (U-23 중국 대표팀),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 (오스트레일리아 대표팀), 장 코시앙 (예멘 대표팀), 스벤 고란 에릭손 (필리핀 대표팀), 앙투안 컴부아레 (미얀마 대표팀), 사이먼 맥메나미 (인도네시아 대표팀), 시리삭 요티아닷타이 (태국 대표팀), 알렉산드레 가마 (U-23 태국 대표팀) 등이 있다.[43][44][88][89]
본관은 판남 박씨이다.[86]마쓰이 다이스케는 일본과의 경기 중계 방송에서 박항서가 일본을 정말 싫어하며, 일본에서 험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일본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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