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벳푸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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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벳푸 온천은 일본 규슈 오이타현에 위치한 온천 지역으로, 벳푸 핫토라고 불리는 8개의 다양한 온천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지역은 독특한 온천의 성분과 분위기를 자랑하며, 벳푸역을 중심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벳푸는 단순 온천, 염화물천 등 다양한 수질의 온천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열을 이용한 발전과 온천 진흙을 활용한 미용 제품 개발 등 온천 자원을 다방면으로 활용하고 있다. 벳푸는 국제관광문화도시로 지정되었으며, 벳푸 지옥 순례와 같은 관광 명소와 함께 근대 건축물, 문화재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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벳푸 온천
개요
벳푸 타워를 배경으로 한 벳푸 온천 거리
벳푸 온천 거리 (오른쪽 앞은 벳푸 타워, 왼쪽 뒤는 쓰루미다케)
위치오이타현
온천 형태지열, 화산
일일 용출량130,000톤
온도40°C - 44°C
명칭
일본어(벳푸 온센)
어원불명
특징
온천수 종류10종류 (泉質 항목 참조)
원천 수 (공)2,217개
용출량83,058 리터/분
접근
교통액세스 항목 참조
외부 링크

2. 벳푸 핫토 (別府八湯)

벳푸에는 온천의 성분과 분위기가 다른 온천이 다수 있으며, 이들 온천을 각각 8개 지역으로 나누어 벳푸 핫토라고 부른다. 1996년(헤이세이 8년) 8월 8일 8시 8분 8초에 현지 관광산업 연구회가 "벳푸 팔탕 독립 선언"을 제창하여 정착되었다.[30]

매년 4월 초에 벳푸 핫토의 풍부한 온천의 혜택에 감사하는 벳푸 핫토 온천 축제가 개최된다. 또한, 2001년(헤이세이 13년)부터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개최되는 벳푸 핫토 온천 숙박 박람회(온팍(オンパク))와 벳푸 핫토에서 선정한 온천 시설 가운데 88탕에 입욕하여 온천 명인 인정을 목표로 하는 벳푸 팔탕 온천길이라는 체험형 이벤트가 있다.

쇼와 초기 벳푸 온천향은 주로 요양을 위한 철륜 온천과 명반 온천, 휴양적인 관해사 온천, 유흥가의 색채가 강한 하마와키 온천과 기타하마 온천(별푸 온천)으로 크게 나뉘어 있었다.[30]


  • '''벳푸 온천(別府温泉)'''은 JR 벳푸역 주변에 위치한 온천 마을이다. 역사적으로는 기타하마 온천(北浜温泉)으로 불렸다.[30] 단순온천, 식염천, 중조천, 중탄산토류천 등 다수의 온천이 솟아나며, 각 온천의 성분에 따라 효능이 있다. 온천 마을은 벳푸 핫토 중에서 가장 유흥적인 요소가 강하다. 에도 시대 후기의 온천번부에도 등장하며, 다케가와 온천은 온천 외에도 사탕(砂湯)(온천으로 데운 모래를 온몸에 덮는 것)을 즐길 수 있다.

  • '''하마와키(浜脇) 온천'''은 조견천의 하구 일대에 있는 온천 마을로, JR동벳푸역(하마와키역으로 개설됨) 앞 바닷가에 위치한다. 탄산수소염천, 염화물천 등. 1817년(분카 14년)에 쓰여진 온천 번부 ‘제국 온천 기능감’에서는 서쪽의 전두 3번째로 벳푸 온천보다 상위에 랭크되었다.

  • '''관해사(観海寺) 온천'''은 아사미가와(朝見川) 상류 산비탈의 옛 가에 위치한 온천 마을로, 벳푸만(別府湾)의 전망이 좋다. 단순 온천, 중탄산(含重曹) 나트륨 온천으로 신경통·류머티즘에 효능이 있다. 1931년(쇼와 6년) 10월 28일에는 화재가 발생하여 온천 마을이 거의 전소된 역사가 있다.[20]

  • '''호리타(堀田) 온천'''은 관해사 온천보다 더 안쪽, 유후인 온천으로 향하는 규슈 횡단도로(야마나미 하이웨이)변에 있는 온천 지대이며, 에도 시대에 개장한 조용한 산간의 온천 요양지이다. 수질은 약산성 저장성 고온천, 유황천이다.

  • '''명반(明礬) 온천'''은 벳푸(別府) 시가지에서 약간 떨어진 가람(伽藍)산 중턱, 해발 400미터 지점에 위치한 지열 지대에 있으며, 이름 그대로 에도 시대부터 명반( 유화(湯の花))과 광니(鉱泥)가 채취되어 온 산간 온천 마을이다. 천질은 산성 유황수소천(酸性硫化水素泉), 녹반천(緑ばん泉)으로 신경통, 류머티즘, 피부병에 효능이 있다. 콜로이드(コロイド) 황을 포함하여 백탁한 온천이 많다.

  • '''철륜(칸나와) 온천'''은 벳푸 시가지와 묘반 온천의 중간에 위치하며, 아직도 온천 요양지의 분위기를 간직한 온천 마을이다. 개탕 전설에 따르면, 가마쿠라 시대 광대한 지옥 지대였던 이곳을 일편이 불남불매 신사 의 인도로 처음으로 정비했다고 전해진다.

철륜온천 대여 여관에서 볼 수 있는 「지옥찜」시설(소요소)


철륜 온천 마을

  • '''시바세키(柴石) 온천'''은 혈의 연못 지옥과 용소 지옥이 있는 지역에 있는 유서 깊은 온천으로, 985년다이고 천황, 1044년고레이제이 천황이 입욕했다고 전해진다.[26][27] 온천수의 수질은 철분 함유 온천, 황산염 온천 등이다.

  • '''가메가와(亀川) 온천'''은 JR가메가와 역 바로 앞 바닷가에 있는 온천 마을로, 수질은 나트륨-염화물천이다. 다이쇼 시대에 개원한 일본 제국 해군 병원(현 국립병원기구 베푸 의료센터)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3. 역사

벳푸 온천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시대에 걸쳐 발전해 왔다.

자연 철 온천 (벳푸 지옥 중 하나)

  • 고대 ~ 쇼와 시대 (초기): 하위 섹션 내용 참조.

  • 쇼와 시대 (후기) ~ 현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벳푸 온천 마을은 급속도로 개발되어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다.[3] 1919년부터 1955년까지 농업과 소금 생산에 온천수를 많이 사용하면서 기존 온천이 고갈되고 수온이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1957년 지하 200~300m에서 새로운 온천층을 발견하여 사용하기 시작했고, 1964년부터는 소금 생산에 온천수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농업과 어류 양식에는 현재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에서 피해를 입지 않은 벳푸에는 전후 주둔군(연합국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이 주둔했다. 점령이 끝난 후 고도경제성장기에 신혼여행 및 수학여행 등으로 최성기를 맞이했다. 1950년에는 국제관광문화도시 제1호로 지정되었고, 1957년에는 벳푸온천관광산업대박람회가 개최되면서 벳푸 경륜장, 벳푸 타워, 쓰루미다케의 벳푸 로프웨이, 규슈횡단도로가 개통되는 등 관광시설 개발이 잇따랐고 숙박시설도 급격히 증가했다. 당시 오사카를 잇는 세토나이 항로는 최성기를 맞이했고, 1960년에는 "세토나이 해의 여왕"이라고 불린 크루즈선 '쿠레나이마루'가 취항하는 등 3000톤급 크루즈 여객선이 최대 6척 체제로 신혼여행객 등을 벳푸로 실어 날랐다.

테츠와, 묘반 온천, 시바세키 온천은 1985년 3월 19일에 국민보양온천지로 지정되었지만, 벳푸의 관광객은 1976년을 정점으로 이미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고, 1980년대까지는 1200만 명 전후로 유지되었으나,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에는 1000만 명대로 감소했다. 관광객 감소의 원인으로는 국내 각지의 테마파크 개원과 해외여행의 일반화 등 국민의 오락과 여가의 다양화, 단체여행에서 개인여행으로의 변화 등이 제기되고 있다.[32]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온천 군이 집중된 지역은 전국적으로도 드물며, 헤이세이 시대가 되면서 대한민국 등 해외 이용객이 증가했다. 인구 10만 명당 유학생 수가 일본 제일인 오이타현에서도, 리쓰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학 등을 갖춘 벳푸시는 특히 유학생이 많다.[35]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아프리카 각지의 유학생들도 벳푸 특유의 공동 온천을 중심으로 한 지역 공동체에도 적극적으로 녹아들어 생활하고 있다.

1996년 8월 8일 8시 8분 8초에 유지들이 「벳푸 팔탕 독립 선언」을 발표하고, 각 온천의 매력을 알리는 데 힘쓴 결과 「벳푸 팔탕」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42]

3. 1. 고대 ~ 중세

8세기 초 『이요노쿠니 지형(伊予国風土記)』에는 신(神)들의 시대에 스쿠나비코나와 오쿠니누시가 현재의 에히메현을 방문했을 때, 병에 걸린 스쿠나비코나를 위해 오쿠니누시가 도고 온천에서 벳푸까지 바다 밑으로 관을 설치하여 온천수를 공급해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다.[3] 또한, 『분고국(豊後国)』의 기록에는 치노이케 지옥에 대한 설명이 있다.[3]

가마쿠라 시대에는 벳푸, 칸나와, 하마와키 지역에 부상당한 사무라이들을 치료하기 위한 요양소가 설립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오토모 요리야스가 몽골의 일본 원정에서 부상당한 사무라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

985년 다이고 천황, 1044년 고레이제이 천황이 시바세키 온천에서 입욕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며[26][27], 시바세키 온천은 혈의 연못 지옥과 용소 지옥이 있는 유서 깊은 온천이다. 시영 온천인 "柴石 온천"은 시바이시가와(柴石川)를 따라 형성된 계곡에 위치하며, 온천수의 수질은 철분 함유 온천, 황산염 온천 등이다.

771년에 창사된 화남화매신사는 쓰루미 산의 두 봉우리를 카구츠치, 의 남녀 두 신으로 모시고 있으며, 베푸 팔탕(別府八湯)의 수호신으로서 숭배받고 있다.

에도 시대 겐로쿠 7년에는 카이바라 에키켄 박사가 번영하는 벳푸 온천에 대해 기록했다.[3]

3. 2. 에도 시대 ~ 메이지 시대

가마쿠라 시대에는 오토모 요리야스(大友頼泰)가 전쟁에서 부상당한 사무라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벳푸, 칸나와, 하마와키 지역에 요양소를 설립했다는 기록이 있다.[3] 에도 시대 겐로쿠 7년(1694년)에는 카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 박사가 번영하는 벳푸 온천에 대해 기록했다.[3]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가즈사에서 사용된 시추 기술을 이용하여 벳푸 온천이 개발되었으며, 메이지 시대 말까지 1000개가 넘는 우물이 완공되었다.[3]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벳푸 온천 마을이 급속도로 개발되어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다.[3]

1919년부터 1955년까지는 농업과 소금 생산에 온천수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기존 온천의 고갈과 수온 저하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온천수원을 찾던 중 1957년 지하 200~300m에서 새로운 온천층이 발견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1964년부터는 소금 생산에 온천수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지만, 농업과 어류 양식에는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3. 3. 다이쇼 시대 ~ 쇼와 시대 (초기)

메이지 시대에 벳푸에서는 1882년(메이지 15년) 아라가네 이오로쿠가 "유즈키(湯突き)"라고 불리는 온천 시추 기술을 도입하여, 자연 용출에 의존하던 온천원을 인위적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30]

교통면에서는 1871년(메이지 4년) 현령 마쓰가타 마사요시에 의해 벳푸항이 정비되었다.[30] 1873년(메이지 6년) 오사카 개상사에 의해 오사카 항로가 개설되어 증기선 "에키마루"(18t)가 취항했고, 2년 후에는 다른 회사의 "만주마루", "금도비라마루", "안전마루", "다이니시마루", "능파마루"도 취항하여, 오사카와 벳푸를 잇는 세토나이 항로는 경쟁 시대를 맞이했다.[30]

1900년(메이지 33년) 5월, 규슈 최초이자 일본에서 5번째로 개업한 노면전차 "벳푸다이센(別大線)"이 운행을 시작했다. 또한 그 운행을 위해 일본에서 두 번째로 화력발전소가 설치되어, 그 전력으로 가로등도 정비되면서 벳푸 중심부 유가와(流川) 일대는 밤에도 불야성의 활기를 보였다. 1911년(메이지 44년) 7월 16일에는 벳푸역이 개업했고, 1912년(메이지 45년) 5월에는 관광 개발을 목적으로 한 오사카 상선의 1000톤급 여객선 「くれないまる」|쿠레나이마루일본어가 한신-벳푸 항로에 취항하여, 야나기하라 하쿠렌과 관련된 적동궁전, 아사오 별장 등 재계 거물들의 별장도 많이 지어졌다.

점차 발전을 거듭한 벳푸에는 역과 항구 주변에 상점, 극장, 서커스장이 늘어선 유흥가가 형성되었고, 고온의 온천이 분출하는 벳푸 지옥 순례가 관광 시설로 정비되었다. 소녀가극을 특징으로 한 쓰루미엔(鶴見園)이나 당시 드물었던 케이블카(벳푸 락텐치 케이블선)가 화제를 불러일으킨 벳푸 유원(現 락텐치)과 같은 유원지도 만들어졌다. 한편, 대일본제국 해군 병원(現 국립병원기구 벳푸 의료센터, 국립병원기구 니시벳푸 병원)과 규슈대학 온천치료학연구소와 부속병원(現 규슈대학병원 벳푸병원), 교토대학 지구물리학 강좌 부속 지구물리학 연구소(現 교토대학 대학원 이학연구과 부속 지구열학 연구시설) 등 풍부한 온천 자원을 의료와 과학에 활용하는 시설도 잇따라 건설되었다.

벳푸 관광의 아버지 유야 쿠마하치의 등장으로 벳푸 온천의 명성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유행하던 조감도 화가 요시다 하츠사부로를 중용하여, 온천 마크와 "산은 후지, 바다는 세토나이, 온천은 벳푸"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한 벳푸 온천의 광고는 쿠마하치의 아이디어였다. 1928년(쇼와 3년) 1월에는 벳푸 지옥 순례 관광 버스를 운행하여, 일본 최초의 여성 버스 가이드의 안내로 둘러보는 지옥 순례는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무렵, 벳푸를 무대로 1928년(쇼와 3년) 4월에 개최된 중외산업박람회와 1937년(쇼와 12년) 3월에 개최된 벳푸 국제온천관광대박람회 등 큰 박람회가 개최되어 많은 입장객을 모았다.

헬렌 켈러, 프랑스의 시인 폴 클로델,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 등 유럽과 미국 유명인사들도 벳푸를 방문했다.[43]

1929년(쇼와 4년)부터 1940년(쇼와 15년)까지 구 일본 해군의 연합함대가 여러 차례 벳푸에 입항했다. 1933년(쇼와 8년) 기록에 따르면, 2월 9일에 "토리이(鳥海)", "마야(摩耶)", "타카오(高雄)", "아타고(愛宕)" 등 1만 톤급 최신예 중순양함을 중심으로 한 제2함대 29척이, 2월 21일에는 제1함대 기함인 "전함 "무쓰(陸奥)"" 이하 35척이 벳푸만에 정박하여, 해상에 늘어선 수많은 군함에서 상륙하는 수만 명의 장병들로 벳푸 시내는 해군 일색이 되었다.

3. 4. 쇼와 시대 (후기) ~ 현대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이후에는 가즈사(上総)에서 사용된 시추 기술을 이용하여 벳푸 온천이 개발되었으며, 메이지 시대 말까지 1000개가 넘는 우물이 완공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第二次世界大戦) 이후인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벳푸 온천 마을이 급속도로 개발되어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다.[3]

1919년부터 1955년까지는 농업과 소금 생산에 온천수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기존 온천의 고갈과 수온 저하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온천수원을 찾던 중 1957년 지하 200~300m에서 새로운 온천층이 발견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1964년부터는 소금 생산에 온천수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지만, 농업과 어류 양식에는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쇼와 초기 벳푸 온천향은 주로 요양을 위한 철륜 온천과 묘반 온천, 휴양적인 관해사 온천, 유흥가의 색채가 강한 하마와키 온천과 기타하마 온천(벳푸 온천)으로 크게 나뉘어 있었다.[30]

벳푸 팔탕에서는 매년 4월 초에 벳푸 팔탕의 풍부한 온천의 은혜에 감사하며 벳푸 팔탕 온천 축제가 개최된다. 2001년(헤이세이 13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벳푸 팔탕 온천 숙박 박람회(온팍)와 벳푸 팔탕의 엄선된 온천 시설 88탕에 입욕하여 온천 명인의 인증을 목표로 하는 벳푸 팔탕 온천길이라는 체험형 이벤트가 있다.

태평양 전쟁에서 전쟁 피해 없이 종전을 맞이한 벳푸에는 전후 주둔군(연합국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이 주둔했다. 점령 종료 후 고도경제성장기에 신혼여행 및 수학여행 등으로 최성기를 맞이했다. 1950년(쇼와 25년)에는 국제관광문화도시 제1호로 지정되었고, 1957년(쇼와 32년)에는 벳푸온천관광산업대박람회가 개최되면서 벳푸 경륜장, 벳푸 타워, 쓰루미다케의 벳푸 로프웨이, 규슈횡단도로가 개통되는 등 관광시설 개발이 잇따랐고 숙박시설도 급격히 증가했다. 당시 오사카를 잇는 세토나이 항로는 최성기를 맞이했고, 1960년(쇼와 35년)에는 "세토나이 해의 여왕"이라고 불린 크루즈선 '쿠레나이마루'가 취항하는 등 3000톤급 크루즈 여객선이 최대 6척 체제로 신혼여행객 등을 벳푸로 실어 날랐다.

테츠와, 묘반 온천, 시바세키 온천은 1985년(쇼와 60년) 3월 19일에 국민보양온천지로 지정되었지만, 벳푸의 관광객은 1976년(쇼와 51년)을 정점으로 이미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고, 1980년대까지는 1200만 명 전후로 유지되었으나,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에는 1000만 명대로 감소했다. 관광객 감소의 원인으로는 국내 각지의 테마파크 개원과 해외여행의 일반화 등 국민의 오락과 여가의 다양화, 단체여행에서 개인여행으로의 변화 등이 제기되고 있다.[32]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온천 군이 집중된 지역은 전국적으로도 드물며, 헤이세이 시대가 되면서 대한민국 등 해외 이용객이 증가했다. 인구 10만 명당 유학생 수가 일본 제일인 오이타현에서도, 리쓰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학 등을 갖춘 벳푸시는 특히 유학생이 많다.[35]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아프리카 각지의 유학생들도 벳푸 특유의 공동 온천을 중심으로 한 지역 공동체에도 적극적으로 녹아들어 생활하고 있다.

벳푸 온천에서는 1996년(헤이세이 8년) 8월 8일 8시 8분 8초에 유지들이 「벳푸 팔탕 독립 선언」을 발표하고, 각 온천의 매력을 알리는 데 힘쓴 결과 「벳푸 팔탕」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42] 최근에는 행정 주도로 노후화된 시영 온천의 리뉴얼과 거리 정비가 이루어지는 한편, 별부 알게리치 음악제, 벳푸 팔탕 온천도, 별부 팔탕 온천 박람회(온팍) 등 지역 활성화를 위해 자원과 인재를 활용한 새로운 모색과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온팍식 지역 활성화 방식은 같은 어려움을 가진 전국의 관광지로 수출되어 여러 곳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2008년(헤이세이 20년) 7월 9일자로 『벳푸시 중심 시가지 활성화 기본 계획』이 내각총리대신의 인정을 받게 되면서, 벳푸 온천(기타하마) 주변에는 빈 상가를 개조한 교류 시설 「platform」이 여러 곳 정비되었고, 일부에는 벳푸 죽세공 장인 공방(platform 07), 셀렉트숍(platform 04) 등 관광 교류 거점이 탄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platform」을 메인 회장으로 2009년(헤이세이 21년) 4월 11일부터 6월 14일까지 트리엔날레 형식으로 제1회 벳푸 현대미술 페스티벌 혼욕 온천 세계가 개최되었다.

온천 도시로 발전하여 전쟁 피해도 면한 벳푸에는, 나가세 쿄우조 설계의 교토 대학 지구물리학 연구소(현·교토 대학 대학원 이학연구과 부속 지구열학 연구시설) 본관과, 요시다 테츠로 설계의 벳푸시 공회당, 별부 우체국 전화업무실(현·벳푸시 아동관) 등 양질의 근대건축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관광 자원봉사 가이드가 벳푸 팔탕 각 지역의 거리 매력을 소개하며 안내하는 벳푸 팔탕 워크가 12코스 있으며, 코스에 따라 매일 거리 걷기 투어가 개최되는 것도 있다.

벳푸 관광의 역사를 전하는 엽서, 포스터, 레코드 등 약 2만 점의 자료가 사설 박물관 「히라노 자료관」에 소장되어 있다.[43] 1995년(헤이세이 7년)에 컨벤션 시설 비콘 플라자를 정비한 벳푸는 국제회의 관광도시로 인정받았으며, 2007년(헤이세이 19년) 12월에는 제1회 아시아태평양 물 정상회의가, 2010년(헤이세이 22년) 8월에는 2010년 일본 APEC 성장 전략 고위급 회의가 개최되었다.

4. 온천 자원 활용

벳푸시는 풍부한 온천 자원을 관광과 시민 생활뿐만 아니라, 명반 생산, 지열 발전, 의료, 화훼 재배, 양식업, 온천 진흙 미용 등 다양한 산업에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19]

1923년(다이쇼 12년) 교토대학은 지구물리학연구소를 설치했고, 1925년(다이쇼 14년)에는 일본 최초의 지열 발전이 이루어졌다.[37] 1952년(쇼와 27년) 오이타현 온천열 이용 농업 연구소가 설립되어 채소와 화훼의 온천열 이용 재배 및 육종 연구가 진행되었다.[37] 스기노이 호텔은 소비 전력의 약 절반을 부지 내 지열 발전으로 충당하고 있다.[37]

최근에는 오이타 대학 의학부 등 여러 기관이 공동으로 벳푸의 다채로운 온천에서 얻을 수 있는 온천 진흙을 이용한 미용 판고티카를 개발했다.[37]

의료 분야에서는 1912년(메이지 45년) 육군병원, 1925년(다이쇼 14년) 해군병원이 개원하여 온천 요법을 실천했다.[37] 1931년(쇼와 6년)에는 규슈대학 온천 치료학 연구소가 설치되어 온천 치료 연구가 이루어졌다.[37] 태평양 전쟁 후에는 원자폭탄 피폭자 벳푸 온천 요양 연구소가 설립되어 피폭자 구호에도 온천 요법 연구가 진행되었다.[37]

벳푸에서 온천 자원 활용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것은 메이지 시대 상총 굴착 기술 도입 덕분이다.[38][39][40] 1879년경 이 기술 도입으로 굴착 온천이 크게 증가했다.[38][39][40] 현재 벳푸에는 수백 곳의 공동 온천과 자가 온천을 가진 개인 주택이 많으며, 온천 공급 회사들이 일본 제일의 온천수와 용출량을 유지하고 있다.[41]

5. 벳푸 온천의 문제점과 과제

벳푸는 태평양 전쟁에서 전쟁 피해 없이 종전을 맞이하여, 전후 주둔군(연합국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이 주둔하였다. 점령 종료 후 고도경제성장기에 신혼여행 및 수학여행 등으로 최성기를 맞이했지만, 1976년을 정점으로 관광객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까지는 1200만 명 전후를 유지했으나,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에는 1000만 명대로 감소했다.[32]

관광객 감소의 원인으로는 국내 각지의 테마파크 개원과 해외여행의 일반화 등 국민의 오락과 여가의 다양화, 단체여행에서 개인여행으로의 변화 등이 제기되고 있다.[32]

하지만 헤이세이 시대에 들어서면서 대한민국 등 해외 이용객이 증가했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 관광객 유치에 힘썼으나, 2008년 10월을 기점으로 경제 위기와 대한민국 원화 폭락의 영향으로 한국인 관광객이 급감하여 긴급 대책 회의를 개최했다.[33] 한국인 관광객 유치 방안의 하나로 벳푸 시내 약 10곳의 호텔과 여관이 숙박비와 기념품 값 등을 원화로 결제하기 시작했다.[34]

최근에는 행정 주도로 노후화된 시영 온천의 리뉴얼과 거리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벳푸 알게리치 음악제, 벳푸 팔탕 온천도, 벳푸 팔탕 온천 박람회(온팍) 등 지역 활성화를 위해 자원과 인재를 활용한 새로운 모색과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온팍식 지역 활성화 방식은 같은 어려움을 가진 전국의 관광지로 수출되어 여러 곳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6. 교통

; 항공편

:* 오이타 공항에서 공항 연결 버스(오이타 교통 에어라이너)를 이용하면 40분 소요.

:* 기타큐슈 공항에서 고속버스(오이타 교통・카메노이 버스 Beppu Express)를 이용하면 90분 소요.[44]

:* 후쿠오카 공항 국제선 터미널에서 고속버스(토요노쿠니 고)를 이용하면 2시간 소요.

; 자동차

:* 후쿠오카 방면에서는 오이타 자동차도 경유 동규슈 자동차도 벳푸IC・현도 52호 이용.

:* 기타큐슈 방면에서는 동규슈 자동차도 벳푸IC・현도 52호 또는 국도 10호 이용.

:* 구마모토 방면에서는 야마나미 하이웨이(현도 11호) 이용.

; 해상

:* 벳푸 국제관광항에는 오사카 남항에서 페리 산후라와 , 에히메현 하치만하마항에서 우와지마 운수의 페리가 운항한다. 항구에서 벳푸 시 중심부(키타하마)까지는 버스로 10분 소요.

; 철도

:* 규슈 여객철도(JR규슈) 닛포 본선 벳푸역, 가메가와역, 벳푸대학역, 히가시벳푸역 하차.

; 버스

:* 토요노쿠니 고(후쿠오카 방면), 규슈 횡단 버스(유후인, 쿠로카와 온천, 아소, 구마모토 방면), 썬라이트 고(나가사키 방면), 벳푸 유케무리 고(히로시마 방면), SORIN 고(오사카·교토 방면).

7. 문화재 및 기타 지정 항목


  • 등록 유형 문화재
  • * 교토대학 대학원 이학연구과 부속 지구열학연구시설 본관 (1997년 6월 12일 등록)
  • * 다케가와 온천 (2004년 6월 9일 등록)
  • * 하마다 온천 자료관 (2006년 8월 3일 등록)
  • * 후지야 여관 본관·석축·석계단·정문 (2001년 11월 20일 등록)
  • 등록 유형 민속 문화재
  • * 별푸의 온천 뜨는 도구 (2020년 1월 17일 등록)
  • 중요 무형 민속 문화재
  • * 별푸 아카나 온천의 온천꽃 제조 기술 (2006년 3월 15일 지정)
  • 명승
  • * 별푸의 지옥 (2009년 지정)
  • 중요 문화적 경관
  • * 별푸의 온천 연기·온천 지경관 - 테츠와 온천, 아카나 온천 (2012년 9월 19일 선정)
  • 오이타현 지정 천연기념물
  • * 쓰루미의 보즈 지옥 (1959년 3월 20일 지정)
  • 국제관광온천문화도시
  • * 국제관광문화도시 제1호.
  • 국민보양온천지
  • * 가마도온천(鉄輪温泉), 묘반온천(明礬温泉), 시바이시온천(柴石温泉)
  • 일본 100명탕
  • * 가마도온천(鉄輪温泉), 묘반온천(明礬温泉)
  • 명탕 100선
  • * 가마도온천(鉄輪温泉), 묘반온천(明礬温泉), 시바이시온천(柴石温泉)
  • 일본 신팔경
  • 향기 풍경 100선
  • * 벳푸 팔탕의 온천 증기
  • 오이타 백경
  • * 벳푸온천, 가마도지옥지대(鉄輪地獄地帯), 카메가와온천(亀川温泉), 칸카이지온천·오토하라고다이(観海寺温泉・乙原高台)
  • 오이타 유산
  • * 묘반온천의 온천꽃 오두막(明礬温泉の湯の花小屋), 가마도온천의 온천 증기(鉄輪温泉の湯煙), 타케가와온천(竹瓦温泉)
  • 근대화 산업유산
  • * 근대화 산업유산군 속 33(대중관광여행) - 타케가와온천(竹瓦温泉), 타케가와코지 아케이드(竹瓦小路アーケード)(2009년 2월 6일 인정)
  • 미슐랭 가이드
  • * 가마도온천(鉄輪温泉)에 있는 "표주박 온천(ひょうたん温泉)"은 프랑스의 『미슐랭 실용여행가이드』에서 별 3개의 평가를 받았다. 또한, 해변 모래탕(海浜砂湯)도 별 2개의 평가를 받았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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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웹사이트 Mystery and History of Beppu Hot Spring https://www.city.bep[...] 2023-03-16
[4] 웹사이트 Hot Spring Baths (Onsen): About Beppu's various hot spring baths https://www.japan-gu[...] 2023-03-16
[5] 뉴스 Heaven in Beppu's hot spring hells https://www.japantim[...] The Japan Times 2000-02-23
[6] 웹사이트 Beppu Hatto Information https://www.city.bep[...] 202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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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웹사이트 Utopia Hamawaki https://www.city.bep[...] 2023-03-16
[14] 웹사이트 Oita's best onsen: a guide to bathing in Beppu and beyond https://www.lonelypl[...] 202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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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뉴스 温泉掘削「別府式」技術や歴史知って 市教委が冊子発行 http://www.oita-pres[...] 201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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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뉴스 宝守り育てるため 受け継がれる志(上) http://www.oita-pres[...] 大分合同新聞 201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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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문서 北九州空港-別府を結ぶ高速バスの運行事業について http://wp.oitakot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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