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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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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복식은 전한 무제 시대의 인물로, 재산을 기부하고 관직에 나아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친 인물이다. 그는 동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양을 키우며 생활하다가, 흉노와의 전쟁에 재산을 기부하여 무제의 관심을 받았다. 이후 관직에 임명되어 현령, 제나라 태부, 국상을 역임하며 민생 안정에 힘썼다. 어사대부로 재직하며 염철 전매 정책의 폐지를 주장하다가 무제의 미움을 사 태자태부로 좌천되었으며, 저서로는 《양양법》, 《양저법》, 《월정축목재종법》 등이 있다.

2. 생애

복식은 전한 무제 시대의 인물로, 농업과 축산을 생업으로 삼았다. 동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양을 치며 재산을 불린 후, 흉노와의 전쟁과 빈민 구제를 위해 재산을 기부하여 관직에 올랐다. 현령, 태부, 국상, 관내후, 어사대부 등의 관직을 거쳤으나, 소금과 철의 전매, 선박세 폐지를 주장하다 태자태부로 좌천되었다. 이후 천수를 누리고 사망했다.

복식의 일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시기사건
초기농사와 목축에 종사. 동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양을 치며 재산을 불림.
흉노 전쟁 시기재산의 절반을 변방에 보내 전쟁 비용으로 기부.
원수 2년(기원전 121년)200000전을 하남태수에게 바쳐 빈민 이주 비용으로 기부. 중랑, 좌서장 작위, 밭 10경을 받음.
상림원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음.
현령에 임명되어 치적을 쌓음.
제나라태부·국상을 지냄.
원정 5년(기원전 112년)남월 토벌에 종군을 자처하여 관내후 작위를 받음.
원정 6년(기원전 111년)석경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가 됨.
소금·철 전매와 선박세 폐지를 주장하다 무제의 미움을 사 태자태부로 좌천됨.
천수를 누리고 죽음.


2. 1. 초기 생애와 재산 기부

복식은 본래 농사와 목축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장성한 동생 복기(卜奇)[1]에게 모든 재산을 넘기고 자신은 양 백여 마리만을 이끌고 집을 나갔다. 십수 년 후, 양은 천여 마리로 늘어났고, 복식은 집과 밭을 다시 샀다. 그 사이에 복기는 파산하였기 때문에, 복식은 다시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당시 전한은 흉노와 전쟁 중이었다. 복식은 재산의 절반을 변방에 보내 전쟁 비용으로 써줄 것을 조정에 청원하였다. 무제는 사람을 보내 복식에게 관직을 원하는지 물었다. 복식은 젊을 때부터 양을 쳐왔기 때문에 다른 직업은 필요치 않다고 답했다. 또한 집에 누명을 쓴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다른 사람과 원수를 지지 않았고, 가난한 이는 도와주고, 나쁜 이는 계도하니 사람들은 자신을 따르므로 누명 같은 것은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현인은 절의를 위하여 죽고 부자는 재물을 바친다면 흉노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제가 승상 공손홍에게 복식의 일을 이야기하니, 공손홍은 이는 인간의 감정이 아니며, 윗사람을 따르지 않는 신하는 법을 어지럽힐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였다. 무제는 복식의 의견에 답하지 않고 여러 해를 내버려 두었고, 복식은 집으로 돌아갔다.

한 해 남짓 지난 원수 2년(기원전 121년), 흉노의 혼야왕 등이 항복하고 빈민 이주 정책 때문에 조정에서는 많은 경비를 지출하여 국고가 텅 비었다. 복식은 200000전을 하남태수에게 바쳐 빈민의 이주 비용으로 충당하게 하였다. 태수의 보고를 받은 무제는 복식이 한 일임을 알아차렸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4백 명분의 요역 면제권을 그에게 주었으나 복식은 그것 또한 사절하였다. 이 즈음에 다른 부호들은 모두 각자의 재산을 불리기에 급급하였고, 오로지 복식만이 나라의 경비를 보조하려 하였기 때문에 무제는 그를 중랑(中郞)에 임명하고 좌서장 작위와 밭 10경을 내려주는 한편 천하에 포고하여 다른 이들의 본보기가 되게 하였다.

2. 2. 관직 생활과 민생 안정 노력

복식은 본래 농사와 목축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장성한 동생 복기[1]에게 모든 재산을 넘기고 자신은 양 백여 마리만을 이끌고 집을 나갔다. 십수 년 후 양은 천여 마리로 늘어났고, 복식은 집과 밭을 다시 샀다. 그 사이에 복기는 파산하였기 때문에, 복식은 다시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이때 전한은 흉노와 한창 싸우고 있었다. 복식은 재산의 절반을 변방에 보내 전비로 써줄 것을 조정에 청원하였다. 무제는 사람을 보내 복식에게 관직을 원하는지 물었으나, 복식은 젊을 때부터 양을 쳐왔기 때문에 다른 직업은 필요치 않다고 대답했다. 또한 집에 누명을 쓴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다른 사람과 원수를 지지 않았고, 가난한 이는 도와주고, 나쁜 이는 계도하니 사람들은 자신을 따르므로 누명 같은 것은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현인은 절의를 위하여 죽고 부자는 재물을 바친다면 흉노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제가 승상 공손홍에게 복식의 일을 이야기하니, 공손홍은 이는 인간의 감정이 아니며, 윗사람을 따르지 않는 신하는 법을 어지럽힐 것이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건의했다. 무제는 복식의 의견에 답하지 않고 여러 해를 내버려 두었고, 복식은 집으로 돌아갔다.

한 해 남짓 지난 원수 2년(기원전 121년), 흉노의 혼야왕 등이 항복하고 빈민 이주 정책 때문에 조정에서는 많은 경비를 지출하여 국고가 텅 비었다. 복식은 20만 전을 하남태수에게 바쳐 빈민의 이주 비용으로 충당하게 하였다. 태수의 보고를 받은 무제는 복식이 한 일임을 알아차렸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4백 명분의 요역 면제권을 그에게 주었으나 복식은 그것 또한 사절하였다. 이 즈음에 다른 부호들은 모두 각자의 재산을 불리기에 급급하였고, 오로지 복식만이 나라의 경비를 보조하려 하였기 때문에 무제는 그를 중랑(中郞)에 임명하고 좌서장 작위와 밭 10경을 내려주는 한편 천하에 포고하여 다른 이들의 본보기가 되게 하였다.

복식은 중랑 자리를 원치 않았으나, 무제는 상림원(上林苑)의 양을 치는 일을 맡기겠다는 핑계로 자리를 내려주었다. 이에 복식은 양뿐만 아니라 백성도 마찬가지로, 시기적절하게 나쁜 이들을 물리쳐 무리 전체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제는 복식을 현령에 임명하였고, 복식은 치적을 쌓아 제나라태부·국상을 지냈다.

원정 5년(기원전 112년), 조정에서 남월 토벌을 준비하니 복식은 종군을 자처하였다. 무제는 복식을 기특하게 여겨 관내후로 작위를 올려주고 천하에 포고하였으나, 백여 명이 넘는 열후들 중 종군을 자처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주금 사건이 일어나 상당수의 열후들이 작위를 빼앗겼다.

원정 6년(기원전 111년), 석경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가 되었다. 그러나 소금·철의 전매와 선박에 매긴 세금으로 지역 곳곳에서 고통스러워하자 이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여 무제의 심기를 거슬렀고, 이듬해에 태자태부로 좌천되었다. 이후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2. 3. 어사대부 시절과 좌천

원정 6년(기원전 111년), 복식은 석경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가 되었다.[1] 그러나 소금과 철의 전매, 선박에 매기는 세금으로 각 지역 백성들이 고통스러워하자, 이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여 무제의 심기를 거슬렀다.[1] 이듬해 태자태부로 좌천되었으며, 이후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1]

3. 저서

양나라 때까지 《양양법》(養羊法) 1권, 《양저법》(養豬法) 1권, 《월정축목재종법》(月政畜牧栽種法) 1권이 있었으나, 수나라 때 소실되었다.[2]

참조

[1] 서적 태평어람 권420
[2] 서적 수서 권34 지제29 경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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