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사벨리우스주의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사벨리우스주의는 3세기에 사벨리우스가 주창한 기독교 이단으로,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고 신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양태론적 군주신론의 한 형태이다. 사벨리우스주의는 하나님을 한 인격으로 보고, 아버지, 아들, 성령은 신의 다양한 현현 방식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로고스 신학에 반대하며, 예수의 인성을 경시하여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사벨리우스주의는 3세기 로마에서 제피리누스 교황과 갈리스토 1세 교황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히폴리투스의 비판으로 인해 파문당했다. 현대에는 단일성 오순절주의가 사벨리우스주의와 유사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2. 군주신론과 양태론

사벨리우스주의는 3세기에 사벨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그는 로마에서 이 형태를 가르쳤다. 그의 저작은 남아 있지 않으며, 그에 대해 알려진 모든 것은 그의 반대자들로부터 나오는데, 이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료는 아니다.[1]

군주신론은 노에투스와 프락세아스의 가르침을 통해 사벨리우스에게 전해졌다.[1] 노에투스는 교회에서 파문되었고,[2] 프락세아스는 그의 양태론적 견해를 철회했다고 한다.[3] 사벨리우스 역시 알렉산드리아의 회의에서 파문되었으며, 로마에서 열린 두 번째 회의에서도 사벨리우스주의에 반대하는 판결이 내려졌다.[4][5]

요한 로렌츠 폰 모스하임은 사벨리우스가 하느님을 어떤 의미에서는 셋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하나라고 묘사했다고 주장했다. 사벨리우스는 하느님의 인격과 본질의 단순한 통일성을 옹호했지만,[7] 아버지, 아들, 성령이 단순히 동일한 실체에 대한 세 가지 이름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그는 "성경에 묘사된 아버지, 아들, 성령의 구별이 단순한 지칭이나 명목상의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구별이라고 믿었다."[8] 그는 마치 한 사람이 한 인격이지만 몸, 영혼,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은 한 인격이지만 그 인격 안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을 구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로마의 히폴리투스는 사벨리우스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그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벨리우스를 훈계했는지 기록했다. 그는 사벨리우스가 삼위일체 신학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양태론적 군주신론을 사벨리우스의 것이 아닌 노에투스의 이단이라고 불렀다.

사벨리우스주의는 키레나이카의 기독교인들에게 받아들여졌으며,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는 이 신념에 반대하는 편지를 썼다. 히폴리투스는 스미르나 출신인 누에투스의 제자 에피고누스와 클레오메네스가 로마에서 이 이단을 퍼뜨렸다고 기록했다.[12][13]

테르툴리아누스는 양태론이 외부에서 새로운 생각으로 교회에 들어와 계승을 통해 받아들여진 교리에 반대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는 "단순한 사람들"이 한 분이신 하나님이 세 분 안에 존재한다는 생각에 놀라고 "신앙의 규칙"에 반대한다고 설명했다.[14][15]

양태론과 사벨리우스주의에 따르면, 하나님은 '하나님' (πρόσωπαgrc, prosopa; personaela)의 다른 방식, '얼굴', '측면', '역할' 또는 '가면' (πρόσωπαgrc, prosopa; personaela)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한 분의 인격이라고 한다. 이는 '믿는 자'가 인식하는 방식이며, '세 영원한 인격'은 '신성' 안에 있거나, 또는 "동등한 삼위일체"가 아니다.[16] 양태론자들은 구약에서 하나님께 명시적이고 반복적으로 부여된 유일한 숫자가 ''하나''이며, 콤마 요한눔을 제외하면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어떤 정경 경전에도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17][18][19]

신명기 6:4-5, 이사야 45:5-7 등과 같은 구절들은 하나님의 존재가 확고하게 단일하며, 여러 방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성한 공존의 개념을 배제한다고 주장하는 양태론자들에 의해 언급된다. 히폴리투스는 누에투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비슷한 논리를 폈다고 묘사했다.[2]

하나됨 오순절주의자는 일부 현대 양태론자들이 사용하는 식별자이며,[20][21] 골로새서 1:12-20과 요한복음 14:10을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한다.

삼위일체 기독교인들은 골로새서 1:12-20과 같은 구절들이 하나님의 말씀이신 아들이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것을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삼위일체론적 관점에서 볼 때, 요한복음 14:10은 요한복음 1:14 및 요한복음 1:18과 같은 평행 구절에 의해 알려져 있으며, 아들과 그의 아버지의 영원한 연합을 확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양태론자와 삼위일체론자 사이의 많은 교리적 교환은 위와 유사하다. 창세기 1:26-27, 마태복음 3:16-17 등과 같은 구절들은 삼위일체론자들에 의해, 한 분이신 하나님의 존재가 아버지, 아들, 성령의 영원하고 개인적이며 상호 내재적인 '''교제'''임을 확증하는 것으로 언급된다.

히폴리투스는 누에투스의 교리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설명하며, 진리가 아리우스주의와 사벨리우스주의의 두 상호 대립적인 견해보다 더 명백하다고 주장했다.[2]

테르툴리아누스는 프락세아스의 추종자들이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을 파괴하지 않고 유지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들을 연합하기보다는 분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비판했다.[23]

대위임령 마태복음 28:16-20의 19절에 나타나는 주의 이름 형태는 역사적으로 기독교 세례 중에 말해져 왔으며, 삼위일체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세 인격이 예수님의 세례로 증언을 받았다고 믿는다. 많은 양태론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이 형태를 사용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3:16-17과 같이 성경의 구절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이 텍스트에서 분리되어 증언하는 경우, 양태론자들은 이 현상을 하나님의 편재성과 그가 전능하신 대로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능력으로 본다.

하나됨 오순절주의자들과 다른 양태론자들은 로마 카톨릭, 그리스 정교회, 그리고 대부분의 다른 주류 기독교인들에 의해 이단으로 간주된다.[5]

많은 유니테리언들이 아리우스주의자이지만, 양태론자들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긍정함으로써 아리우스주의자 또는 준 아리우스주의자 유니테리언들과 구별된다. 로마의 주교 디오니시우스는 아리우스주의와 사벨리우스주의 모두에 관한 전통적인 기독교의 이해를 제시했다.[5]

아리우스주의와 사벨리우스주의는 정반대로 보일 수 있지만, 둘 다 그리스도가 '''그의 인성 안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삼위일체론적 믿음을 공통적으로 부인한다.[30]

누에투스의 파문에 대한 히폴리투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2]

오늘날 하나됨 오순절주의 조직들은 오순절 지도자들의 회의가 공식적으로 삼위일체론을 채택했을 때 그들의 원래 조직을 떠났고,[31] 이후 학교를 설립했다.

에피파니우스는 375년경에 사벨리우스의 추종자들이 메소포타미아와 로마 모두에서 여전히 많은 수로 발견되었다고 기록했다.[32] 381년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제1차 공의회에서 7조와 680년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제3차 공의회에서 95조는 사벨리우스의 세례가 무효라고 선언했는데, 이는 사벨리우스주의가 여전히 존재했음을 나타낸다.[32]

2. 1. 로고스 신학과의 대립

군주신론은 로고스 신학에 반대했다. 2세기 후반부터 비유대교 기독교는 로고스 신학이 지배했는데, 로고스 신학은 로고스의 두 단계 존재, 즉 로고스는 항상 하느님 안에 존재했지만, 하느님이 창조하기로 결정했을 때 별개의 존재, 즉 뚜렷한 실체가 되었다고 가르쳤다. 군주신론자들은 "변증가들의 신학은 하느님의 존재와 통일성을 분열시키는 것이며, 이는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로고스 신학이 두 창조주와 두 하느님(이신론)을 가르치며 "일신론과 모순된다"고 주장했다.[1]

군주신론에서 "성부와 성자는 동일 존재의 다른 표현일 뿐, 그들 사이에는 어떠한 인격적 구별도 없다. 즉, '''성부는 그 자신이 성자'''이며, 따라서 성자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경험한다." 노에투스에 따르면 "성부는... 스스로 자신의 아들이 되었다." "따라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분은 하느님이었고, 자신을 인류에게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했다. 십자가에서 하느님은 자신의 영을 자신에게 맡겼으며, 죽은 척했지만 실제로는 죽지 않았고, 3일째에 스스로를 부활시켰다."[1]

테르툴리아누스는 로고스 신학자 중 한 명으로 군주신론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프락세아스 반박』은 삼위일체에 관한 테르툴리아누스의 가장 위대한 저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돌프 폰 하르낙의 『교의사』(1897)에 프락세아스가 가르쳤던 견해가 '양태론'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단순히 그의 반대자를 '군주신론자'라고 불렀다."[1]

아돌프 폰 하르낙은 이 2세기 교리에 대해 '양태론'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이는 삼위일체가 '하나의 신적 존재의 세 가지 양태 또는 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언급했다.[1]

테르툴리아누스를 따라 "라틴 교부들은... 그들을 '성부수난설'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들이 성부와 성자를 동일시하여 성부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1]

2. 2. 성부수난설

사벨리우스주의는 2세기에 군주신론의 형태로 처음 나타났다. 군주신론자들은 로고스 신학이 하느님의 존재와 통일성을 분열시킨다고 주장하며, 성부와 성자가 동일 존재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고 보았다. 즉, '''성부는 그 자신이 성자'''이며, 따라서 성자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경험한다는 것이다.[2] 이러한 관점은 "성부가 스스로 자신의 아들이 되었다"는 노에투스의 말에서도 나타난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러한 군주신론에 강력하게 반대했으며, 그의 저서 《프락세아스 반박》은 삼위일체에 관한 그의 가장 위대한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아돌프 폰 하르낙은 이 2세기 교리를 '양태론'이라고 칭했는데, 이는 삼위일체가 '하나의 신적 존재의 세 가지 양태 또는 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테르툴리아누스를 따라 라틴 교부들은 이들을 '성부수난설'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성부와 성자를 동일시하여 성부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벨리우스주의의 주요 비판자는 테르툴리아누스로마의 히폴리투스였다. 테르툴리아누스는 프락세아스가 예언을 몰아내고 이단을 들여왔으며, 보혜사를 내쫓고 아버지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비판했다.[3] 히폴리투스 역시 성부가 곧 그리스도이며, 아들이며, 스스로 일어나셨다는 주장은 경솔하고 무모한 교리라고 지적했다.[2]

"아버지"를 뜻하는 라틴어 ''pater''와 "고난을 받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passus''에서 유래한 "성부수난설"이라는 용어는 이 운동에 붙여졌는데, 이는 아버지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았다는 것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벨리우스주의에 대한 자료는 비판자들의 기록뿐이므로, 사벨리우스나 프락세아스가 정확히 무엇을 가르쳤는지에 대해서는 오늘날 학자들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테르툴리아누스와 히폴리투스가 반대자들의 의견을 왜곡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33]

3. 사벨리우스와 그의 가르침

사벨리우스(활동: 서기 215년경)는 3세기로마에서 자신의 신학을 가르쳤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사벨리우스주의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그의 저작은 남아 있지 않아 그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반대자들의 기록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는 가장 신뢰할 만한 자료는 아니다.

사벨리우스는 삼위일체에서 성부, 성자, 성령이 동일한 실체의 세 가지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는 "성경에 묘사된 아버지, 아들, 성령의 구별이 단순한 지칭이나 명목상의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구별이라고 믿었다."[8] 그는 마치 한 사람이 한 인격이지만 몸, 영혼,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은 한 인격이지만 그 인격 안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을 구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벨리우스주의는 양태(모두스)적 군주신론에 속한다.[44] 사벨리우스주의자들은 "삼위일체란 세 인격이 아니라 현현하는 양태이다. 즉, 신만이 유일한 위격(프로소폰)이며, 아버지, 아들, 성령의 구분은 양태가 보이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신학 용어에 그리스어 "프로소폰", 라틴어 "페르소나"를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사벨리우스주의자는 신의 유일성을 강조하여 예수의 인성을 경시하거나 부정했기 때문에 이단으로 여겨졌지만, 그들이 사용한 용어는 후에 정통 신학에 사용되었다.

3. 1. 파문과 논쟁

노에투스와 프락세아스의 가르침을 통해 사벨리우스에게 군주신론이 전해졌다.[1] 노에투스는 회의에서 심문을 받은 후 교회에서 파문되었고,[2] 프락세아스는 저술을 통해 자신의 양태론적 견해를 철회하고 이전의 신앙을 다시 가르쳤다고 한다.[3] 사벨리우스 역시 알렉산드리아 회의에서 파문되었으며, 이에 대한 불만이 로마에 제기된 후 로마에서 두 번째 회의가 소집되어 사벨리우스주의에 반대하는 판결을 내렸다.[4][5]

3세기에 활동한 사벨리우스는 북아프리카 키레나이카(현 리비아 동부) 출신으로, 로마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쳐 한때 로마 주교(감독) 제피리누스와 갈리스토 1세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신학자 히폴리투스가 사벨리우스 사상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갈리스토 1세는 그를 파문했다. 히폴리투스는 사벨리우스를 이해했던 두 교황 또한 양태론적 군주신론을 지지했다고 비판했다.[44]

사벨리우스는 키레나이카로 돌아가 지지자들을 모아 동부 지역 기독교회의 분열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로마 주교 디오니시우스에게 사태 해결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는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 디오니시우스가 소집한 지방 교회 회의에서 사벨리우스의 사상은 다시 이단으로 확인되었다.

로마의 히폴리투스는 사벨리우스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저서 《모든 이단 반박(Refutation of All Heresies)》에서 그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벨리우스를 훈계했는지 기록했다. 히폴리투스는 사벨리우스가 삼위일체 신학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양태론적 군주신론을 사벨리우스의 것이 아닌 노에투스의 이단으로 규정했다.

요한 로렌츠 폰 모스하임(Johann Lorenz von Mosheim)은 실용주의적 교회사가 학파를 창시한 독일 루터교 신학자로,[6] 사벨리우스가 하느님을 어떤 의미에서는 셋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하나라고 묘사했다고 주장했다. "사벨리우스는 하느님의 인격과 본질의 단순한 통일성을 옹호했다."[7] 그러나 사벨리우스가 가르친 사벨리우스주의는 군주신론과 동일하지 않다. 그는 아버지, 아들, 성령이 단순히 동일한 실체에 대한 세 가지 이름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는 "성경에 묘사된 아버지, 아들, 성령의 구별이 단순한 지칭이나 명목상의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구별이라고 믿었다."[8] 그는 마치 한 사람이 한 인격이지만 몸, 영혼,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은 한 인격이지만 그 인격 안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을 구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벨리우스주의에는 양태(모두스)적 군주신론과 역량(뒤나미스)적 군주신론의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 사벨리우스주의는 전자의 대표이다.[44]

사벨리우스주의자들은 "삼위일체란 세 인격이 아니라 현현하는 양태이다. 즉, 신만이 유일한 위격(프로소폰)이며, 아버지, 아들, 성령의 구분은 양태가 보이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덧붙여, 신학 용어에 그리스어 "프로소폰", 라틴어 "페르소나"를 처음 도입한 것은 그들이었다.

사벨리우스주의자는 신의 유일성을 강조한 나머지 예수의 인성을 경시하거나 부정했기 때문에 이단으로 여겨졌지만, 그들이 사용한 용어는 후에 정통 신학에 사용되었다.

그 외에 사벨리우스주의와 같은 양태적 군주신론을 주장한 인물로는 3세기 초 스미르나의 주교 노에토스, 동시대 소아시아 출신의 프락세아스 등이 있었다.

3. 2. 히폴리투스의 비판

로마의 히폴리투스는 사벨리우스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그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벨리우스를 《모든 이단 반박》에서 훈계했는지 기록했다. 그는 사벨리우스가 삼위일체 신학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양태론적 군주신론을 사벨리우스의 것이 아닌 노에투스의 이단이라고 불렀다.[44] 히폴리투스는 사벨리우스를 이해했던 제피리누스와 갈리스토 1세 두 교황도 또한 양태론적 군주신론을 가졌다고 비판했다.[44]

4. 호모우시오스(동일본질)

사벨리우스는 그리스어 용어 '''호모우시오스(ὁμοούσιος)'''('같은 본질', '동일 실체')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니케아 신경에서도 사용된다.[9] 이 용어는 성부와 성자 간의 관계를 설명한다. 아타나시우스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용어에 대해 불안감을 느꼈다. 그들의 반대는 이 용어가 비성경적이고 의심스러우며 "사벨리우스주의 경향"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9] 사벨리우스에게 이 용어는 성부와 성자가 서로 다른 현현 또는 양식으로 활동하는 하나의 본질적인 인격임을 의미했다.

5. 다른 경쟁적 견해들

3세기에 로마에서 이 형태를 가르친 사벨리우스(활동: 서기 215년경)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그의 저작은 남아 있지 않으며, 그에 대해 알려진 모든 것은 그의 반대자들로부터 나오는데, 이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료는 아니다.

군주신론은 노에투스와 프락세아스의 가르침을 통해 사벨리우스에게 전해졌다.[1] 노에투스는 회의에서 심문을 받은 후 교회에서 파문되었고,[2] 프락세아스는 그의 양태론적 견해를 저술로 철회하고, 다시 이전의 신앙을 가르쳤다고 한다.[3] 사벨리우스 역시 알렉산드리아의 회의에서 파문되었으며, 이에 대한 불만이 로마에 제기된 후, 로마에서 두 번째 회의가 소집되어 역시 사벨리우스주의에 반대하는 판결을 내렸다.[4][5]

요한 로렌츠 폰 모스하임은 실용주의적 교회사가 학파를 창시한 독일 루터교 신학자인데,[6] 사벨리우스는 하느님을 어떤 의미에서는 셋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하나라고 묘사했다고 주장했다. "사벨리우스는 하느님의 인격과 본질의 단순한 통일성을 옹호했다."[7] 그러나 사벨리우스가 가르친 사벨리우스주의 형태는 군주신론과 동일하지 않다. 그는 아버지, 아들, 성령이 단순히 동일한 실체에 대한 세 가지 이름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는 "성경에 묘사된 아버지, 아들, 성령의 구별이 단순한 지칭이나 명목상의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구별이라고 믿었다."[8] 그는 마치 한 사람이 한 인격이지만 몸, 영혼,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은 한 인격이지만 그 인격 안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을 구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로마의 히폴리투스는 사벨리우스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그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벨리우스를 《모든 이단 반박》에서 훈계했는지 기록했다. 그는 사벨리우스가 삼위일체 신학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양태론적 군주신론을 사벨리우스의 것이 아닌 노에투스의 이단이라고 불렀다.

시모네티는 아리우스주의를 "당시 동방에서 만연했던 사벨리우스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반작용"으로 본다.[10] 아리우스주의는 세 개의 위격을 옹호했다. 삼위일체 관점 또한 신성 안에 세 개의 별개의 위격을 제시하지만,[11] 아리우스주의가 세 개의 별개의 실체를 가르친 반면, 삼위일체 교리는 세 위격이 하나의 실체 안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6. 역사와 발전

사벨리우스주의는 2세기에 군주신론의 형태로 처음 나타났다. 군주신론은 로고스 신학에 반대했는데, 2세기 후반부터 비유대교 기독교는 로고스 신학이 지배적이었다. 로고스 신학은 로고스가 항상 하느님 안에 존재했지만, 하느님이 창조하기로 결정했을 때 별개의 존재, 즉 뚜렷한 실체가 되었다고 보았다. 군주신론자들은 이러한 신학이 하느님의 존재와 통일성을 분열시키며, 두 창조주와 두 하느님(이신론)을 가르쳐 일신론과 모순된다고 주장했다.[1]

군주신론에서 "성부와 성자는 동일 존재의 다른 표현일 뿐, 그들 사이에는 어떠한 인격적 구별도 없다. 즉, '''성부는 그 자신이 성자'''이며, 따라서 성자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경험한다."[1] 테르툴리아누스를 비롯한 라틴 교부들은 성부와 성자를 동일시하여 성부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었다고 믿는 군주신론을 '성부수난설'이라고 불렀다.[1]

3세기에 사벨리우스(활동: 서기 215년경)는 로마에서 군주신론의 한 형태를 가르쳤는데, 그의 저작은 남아 있지 않아 그에 대한 정보는 주로 반대자들의 기록에 의존한다. 노에투스와 프락세아스의 가르침이 사벨리우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1] 노에투스는 교회에서 파문되었고,[2] 프락세아스는 자신의 견해를 철회했다고 한다.[3] 사벨리우스 역시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서 열린 회의에서 파문되었다.[4][5]

요한 로렌츠 폰 모스하임에 따르면, 사벨리우스는 하느님을 어떤 의미에서는 셋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하나라고 묘사했다.[7] 그는 성부, 성자, 성령의 구별이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실제적인 구별이라고 믿었다.[8] 로마의 히폴리투스는 사벨리우스를 개인적으로 알았으며, 그가 삼위일체 신학에 반대했지만 양태론적 군주신론은 노에투스의 이단이라고 불렀다고 기록했다.

사벨리우스주의는 키레나이카의 기독교인들에게 받아들여졌으며,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는 이에 반대하는 편지를 썼다.

6. 1. 초기 기독교의 반응

사벨리우스주의는 2세기에 군주신론의 형태로 처음 나타났다. 군주신론자들은 로고스 신학이 하느님의 통일성을 분열시키고, 두 명의 창조주를 가르친다며 비판했다.[1] 이들은 성부와 성자가 동일한 존재의 다른 표현일 뿐이며, 성부는 스스로 성자가 되어 인간적인 연약함을 경험한다고 주장했다.[1]

테르툴리아누스는 군주신론에 강력하게 반대하며, 이를 '성부수난설'이라고 불렀다. 그는 성부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었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1] 로마의 히폴리투스 역시 사벨리우스를 비판하며, 그의 가르침을 스미르나 출신 노에투스의 이단이라고 불렀다.[12]

군주신론은 노에투스와 프락세아스의 가르침을 통해 사벨리우스(활동: 서기 215년경)에게 전해졌다.[1] 노에투스는 교회에서 파문되었고,[2] 프락세아스는 자신의 견해를 철회했다고 한다.[3] 사벨리우스 역시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서 열린 회의에서 파문되었다.[4][5]

요한 로렌츠 폰 모스하임에 따르면, 사벨리우스는 하느님을 어떤 의미에서는 셋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하나라고 묘사했다.[7] 그는 성부, 성자, 성령의 구별이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실제적인 구별이라고 믿었다.[8]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는 키레나이카의 기독교인들에게 사벨리우스주의에 반대하는 편지를 썼다.[12] 테르툴리아누스는 양태론이 외부에서 들어온 새로운 생각이며, 교회가 받아들인 신앙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14] 그는 "단순한 사람들"이 한 분이신 하나님이 세 분 안에 존재한다는 생각에 놀란다고 언급했다.[15]

양태론과 사벨리우스주의는 하나님이 'prosopa'(다른 방식, '얼굴', '측면', '역할' 또는 '가면')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한 분의 인격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믿는 자'가 인식하는 방식이며, '세 영원한 인격'은 '신성' 안에 있지 않다고 본다.[16]

하나됨 오순절주의자는 일부 현대 양태론자들이 사용하는 식별자이며,[20][21] 이들은 골로새서 1:12-20과 요한복음 14:10을 근거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러나 삼위일체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구절들이 하나님의 말씀이신 아들이 하나님 아버지, 성령과 함께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히폴리투스는 누에투스의 파문에 대해 설명하면서, 장로들이 그를 심문하고 교회에서 쫓아냈다고 기록했다.[2]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는 375년경에 사벨리우스의 추종자들이 메소포타미아와 로마에서 여전히 많이 발견되었다고 기록했다.[32] 콘스탄티노폴리스 제1차 공의회(381년)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제3차 공의회(680년)는 사벨리우스의 세례가 무효라고 선언했다.[32]

사벨리우스주의의 주요 비판자는 테르툴리아누스로마의 히폴리투스였다. 테르툴리아누스는 프락세아스가 보혜사를 내쫓고 아버지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비판했다.[3] 히폴리투스 역시 비슷한 비판을 했다.[2]

6. 2. 후대의 영향

사벨리우스주의는 키레나이카의 기독교인들에게 받아들여졌으며,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는 이 신념에 반대하는 편지를 썼다.[5] 로마의 히폴리투스는 스미르나 출신인 누에투스가 이 이단을 도입했으며, 로마에 도달하여 클레오메네스에 의해 채택되었고, 그의 후계자들 사이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고 기록했다.[13]

테르툴리아누스는 양태론이 외부에서 새로운 생각으로 교회에 들어와 계승을 통해 받아들여진 교리에 반대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는 "단순한 사람들"이 한 분이신 하나님이 세 분 안에 존재한다는 생각에 종종 놀라고 "신앙의 규칙"에 반대한다고 설명했다.[15]

양태론과 사벨리우스주의에 따르면, 하나님은 '하나님'(그리스어: πρόσωπα ''prosopa''; 라틴어 ''personae'')의 다른 방식, 즉 '얼굴', '측면', '역할', '가면'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한 분의 인격이라고 한다. 이는 '믿는 자'가 인식하는 방식이며, '세 영원한 인격'은 '신성' 안에 있거나, "동등한 삼위일체"가 아니다.[16]

하나됨 오순절주의는 일부 현대 양태론자들이 사용하는 식별자이며,[20][21] 골로새서 1:12-20이 하나님의 다른 역할이라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관계를 언급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됨 오순절주의자들은 또한 요한복음 14:10에서 사도 빌립의 아버지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그리스도의 답변을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한다.

양태론자와 삼위일체론자 사이의 교리적 논쟁은 창세기 1:26-27, 창세기 16:11-13, 창세기 32:24,30, 사사기 6:11-16, 이사야 48:16, 스가랴 2:8-9, 마태복음 3:16-17, 마가복음 13:32, 누가복음 12:10, 요한복음 5:18-27, 요한복음 14:26-28, 요한복음 15:26, 요한복음 16:13-16, 요한복음 17:5, 20-24, 사도행전 1:6-9, 히브리서 1:1-3, 8-10과 같은 구절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나됨 오순절주의 조직들은 오순절 지도자들의 회의가 공식적으로 삼위일체론을 채택했을 때 그들의 원래 조직을 떠났고,[31] 이후 학교를 설립했다.

에피파니우스는 375년경에 사벨리우스의 추종자들이 메소포타미아와 로마 모두에서 여전히 많은 수로 발견되었다고 기록했다.[32] 381년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제1차 공의회 7조와 680년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제3차 공의회 95조는 사벨리우스의 세례가 무효라고 선언했는데, 이는 사벨리우스주의가 여전히 존재했음을 나타낸다.[32]

7. 양태론적 군주신론과 예수 그리스도

양태론적 군주신론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다. 양자론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인간일 뿐이다. 사벨리우스주의에는 양태적 군주신론과 역량적 군주신론의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 사벨리우스주의는 전자의 대표이다.[44]

사벨리우스주의자들은 삼위일체가 세 인격이 아니라 현현하는 양태라고 주장했다. 즉, 신만이 유일한 위격(프로소폰)이며, 성부, 성자, 성령의 구분은 양태가 보이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학 용어에 그리스어 "프로소폰", 라틴어 "페르소나"를 처음 도입한 것은 사벨리우스주의자들이었다.

사벨리우스주의자는 신의 유일성을 강조한 나머지 예수의 인성을 경시 · 부정했기 때문에 이단으로 여겨졌지만, 그 용어는 후에 정통 신학에 사용되었다.

8. 현대의 추종자들과 반대 의견

사벨리우스주의의 주요 비판자는 테르툴리아누스로마의 히폴리투스였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저서 《프락세아스를 반박하며》 1장에서 "프락세아스는 로마에서 악마를 위해 두 가지 봉사를 했다. 그는 예언을 몰아냈고 이단을 들여왔다. 그는 보혜사를 내쫓았고, 아버지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고 썼다.[3] 히폴리투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보시오, 그는 성경이 한 분의 하나님을 선포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분명히 드러나고, 이 구절들이 그것에 대한 증거가 되기에, 저는 한 분을 인정했으니, 이 한 분이 고난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셨고,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으며, 그분 자신이 아버지이시기에,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형제들이여, 그들이 부끄러움 없이 아버지가 곧 그리스도이시며, 곧 아들이시며, 곧 태어나셨고, 곧 고난을 받으셨으며, 곧 스스로 일어나셨다고 말할 때, 그들이 얼마나 경솔하고 무모한 교리를 도입했는지 보십시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2]


"아버지"를 뜻하는 라틴어 'pater'와 "고난을 받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passus'에서 유래한 "성부수난설"이라는 경멸적인 용어가 이 운동에 붙여졌는데, 이는 아버지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았다는 것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사벨리우스주의에 대한 이해는 주로 그 비판자들의 기록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오늘날 학자들은 사벨리우스나 프락세아스가 정확히 무엇을 가르쳤는지에 대해 합의하지 않는다. 테르툴리아누스와 히폴리투스가 적어도 때때로 반대자들의 의견을 왜곡했을 가능성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33]

오늘날의 단일신론 오순절주의자들은 자신들을 고대 사벨리우스주의와 구별하려 하지만, 제임스 R. 화이트나 로버트 모리와 같은 현대 신학자들은 고대 이단 사상인 사벨리우스주의와 현재의 단일신론 교리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이는 단일신론 오순절주의자들이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 어떠한 구별도 없다고 믿는 것에 근거한다.[42] 이러한 신학자들은 사벨리우스주의, 부친수난설, 양태론적 군주신론, 기능주의, 예수 유일주의, 성부 유일주의, 단일신론 오순절주의가 모두 하느님은 분리될 수 없는 단일체이며 별개의 위격으로 구별될 수 없다는 플라톤 철학에서 파생되었다고 본다.[43]

8. 1. 단일성 오순절주의

1913년, 캐나다 복음 전도사 R.E. 맥앨리스터는 로스앤젤레스 근처 아로요 세코 월드 와이드 캠프 회의에서 세례식 때 사도들이 아버지, 아들, 성령의 삼위일체 이름이 아닌 예수의 이름으로만 세례를 베풀었다고 주장했다.[35] 그날 밤 늦게 독일 이민자인 존 G. 샤에페는 예수에 대한 환상을 보고 예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고 외치며 캠프를 깨웠다. 그 시점부터 프랭크 J. 이와트는 삼위일체 형식을 사용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은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단일 인격에 대한 믿음, 즉 서로 다른 양식 또는 직무로 활동하는 믿음이 함께 퍼졌다.[35]

하나님의 성회 총회는 삼위일체 정통 교리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1916년 10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소집되었다. 단일성 진영은 삼위일체 세례 형식과 삼위일체 정통 교리를 받아들이거나 교단을 떠나야 하는 다수의 사람들과 마주했다. 결국 목사들의 약 4분의 1이 탈퇴했다.[36]

단일성 오순절주의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아버지(영)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사람)와 연합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단일성 오순절주의는 순차적인 양태론을 거부하고, 영원히 잉태된 것이 아니라, 사람 예수였고 태어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아들의 잉태된 인성을 완전히 받아들임으로써 약간 다르며, 신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사벨리우스주의가 일반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선재적 양식으로서 아들의 선재를 직접적으로 반대한다.

단일성 오순절주의자들은 예수는 땅에서 육신이 되었을 때만 "아들"이었고, 사람이 되기 전에는 아버지였다고 믿는다. 그들은 아버지를 "영"이라고 부르고 아들을 "육신"이라고 부르지만, 예수와 아버지는 서로 다른 "나타남" 또는 "양식"으로 활동하지만 본질적으로 한 분이라고 믿는다. 단일성 오순절주의자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이교적이고 비성경적이라고 보고 거부하며, 세례에 관해 예수의 이름 교리를 고수한다. 그들은 종종 "양태론자" 또는 "오직 예수"라고 불린다. 단일성 오순절주의는 사벨리우스주의와 비교할 수 있거나, 둘 다 비삼위일체론이고, 둘 다 예수가 "육신으로 오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믿기 때문에 사벨리우스주의의 한 형태를 고수하는 것으로 묘사될 수 있지만, 서로 완전히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단일성 교리로 가르쳐지는 양태론을 사벨리우스가 완전히 가르쳤는지 여부는 확신할 수 없는데, 그의 저술의 단편만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에 대한 모든 것은 그의 비판가들의 저술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이다.[37]

고대 사벨리우스주의자들의 알려진 교리적 특징을 보여주는 다음 발췌문은 현대 단일성 운동의 교리와 비교될 수 있다.

  • 키프리아누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알지 못하고, 심지어 모독하기까지 하는 이단자들 사이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자들이 어떻게 죄의 용서를 얻었다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38]
  • 히폴리투스 (A.D. 170–236)는 그들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노에티안의 이단에 동의하며, 아버지 자신이 아들이라고 주장한다..."[39]
  • A.D. 259–269년 로마의 주교였던 교황 디오니시우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 "사벨리우스는... 아들 자신이 아버지이고 그 반대라고 말하면서 신성 모독을 한다."[40]
  • 테르툴리아누스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 "그는 그들에게 한 분의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안에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세 번, 세 명의 인물에 담겨 있으며, 각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그렇게 한다."[41]

8. 2. 비판적 시각

사벨리우스주의는 양태론의 일종으로,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의 신적 존재의 다른 "양태" 또는 "측면"일 뿐이라는 주장에서 비롯되었다.[1] 이러한 관점은 성부와 성자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따라서 성자는 성부 자신이 인간적인 연약함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1] 이는 성부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었다는 믿음으로 이어져 성부수난설이라는 비판을 받았다.[1]

테르툴리아누스로마의 히폴리투스는 사벨리우스주의의 주요 비판자였다.[3] 테르툴리아누스는 프락세아스가 예언을 몰아내고 이단을 들여왔으며, 보혜사를 내쫓고 아버지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비판했다.[3] 히폴리투스는 사벨리우스주의자들이 성경이 한 분의 하나님을 선포한다는 점을 들어 성부 자신이 고난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을 경솔하고 무모한 교리라고 비판했다.[2]

사벨리우스주의에 대한 이해는 주로 그 비판자들의 기록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33] 오늘날 학자들은 사벨리우스나 프락세아스가 정확히 무엇을 가르쳤는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며, 테르툴리아누스와 히폴리투스가 반대자들의 의견을 왜곡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33]

단일성 오순절주의는 사벨리우스주의와 유사하게 하나님이 한 분이며, 예수와 아버지는 서로 다른 "나타남" 또는 "양식"으로 활동하지만 본질적으로 한 분이라고 믿는다.[35] 그러나 단일성 오순절주의는 순차적인 양태론을 거부하고, 아들의 잉태된 인성을 완전히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사벨리우스주의와 차이가 있다.[35] 일부 현대 신학자들은 단일성 오순절주의와 사벨리우스주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보기도 한다.[42]

참조

[1] 서적 "A History of Christianity: Volume I: Beginnings to 1500" https://books.google[...] HarperCollins 1975
[2] 웹사이트 Against the Heresy of Noetus http://www.ccel.org/[...] 2017-05-29
[3] 웹사이트 Against Praxeas, Chapter 1 http://www.ccel.org/[...] 2017-05-29
[4] 웹사이트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ume II https://www.ccel.org[...] 2017-05-29
[5] 웹사이트 Against Sabellians http://www.earlychur[...] 2017-05-28
[6] 웹사이트 Johann Lorenz von Mosheim {{!}} German theologian {{!}} Britannica https://www.britanni[...] 2021-12-08
[7] 서적 HISTORICAL COMMENTARIES ON THE STATE OF CHRISTIANITY https://play.google.[...] S. Converse 1854
[8] 서적 HISTORICAL COMMENTARIES ON THE STATE OF CHRISTIANITY https://play.google.[...] S. Converse 1854
[9] 서적 "Select Treatises of St. Athanasius" Longmans, Green, and Co. 1911
[10] 서적 The Search for the Christian Doctrine of God: The Arian Controversy, 318-381 T. & T. Clark
[11] 간행물 Sabellianism John Murray 1877–1887
[12] 웹사이트 The Refutation of All Heresies, Book 9 http://www.earlychri[...] 2017-05-29
[13] 웹사이트 The Refutation of All Heresies, Book 10 http://www.earlychri[...] 2017-05-29
[14] 웹사이트 Against Praxeas, Chapter 2 http://www.ccel.org/[...] 2017-05-29
[15] 웹사이트 Against Praxeas, Chapter 3 http://www.ccel.org/[...] 2017-05-29
[16] 서적 The Mystical Theology of the Eastern Church https://books.google[...] SVS Press 1997
[17] 웹사이트 Moss, C. B., ''The Christian Faith: An Introduction to Dogmatic Theology'' http://www.katapi.or[...] The Chaucer Press, London 1943
[18] 문서 A Textual Commentary on the Greek New Testament Deutsche Bibelgesellschaft 1994
[19] 웹사이트 Trinity, or not? http://www.focusonth[...] focusonthekingdom.org 2003-07
[20] 웹사이트 The Oneness of God http://www.apostolic[...]
[21] 웹사이트 A rebuttal to Bernard http://thereforegode[...] 2022-07-06
[22] 웹사이트 Colossians 1:12-20 (ESV) http://www.biblestud[...]
[23] 웹사이트 Against Praxeas https://www.ccel.org[...] 2017-05-29
[24] 웹사이트 The God Head http://www.theaposto[...] 2017-05-29
[25] Youtube Answering Oneness Pentecostals: Colossians 2:9 https://web.archive.[...] 2017-05-29
[26] 웹사이트 Contra Gentes Part III https://www.ccel.org[...] 2017-05-28
[27] 웹사이트 The Incarnation of the Word https://www.ccel.org[...] 2017-05-28
[28] 웹사이트 The End of the "Son" http://www.christian[...] 2017-05-28
[29] 웹사이트 Avoiding the Achilles Heels... http://www.onenesspe[...] 2017-05-28
[30] 웹사이트 Athanasian Creed http://www.reformed.[...] 2017-05-29
[31] 웹사이트 Dividing Over Oness http://www.christian[...] 1998-04
[32] 웹사이트 Views of Sabellius https://books.google[...]
[33] 웹사이트 Monarchians http://www.newadvent[...]
[34] 서적 The Mystical Theology of the Eastern Church SVS Press 1997
[35] 웹사이트 The Arroyo Seco Camp Meeting - 1913 https://www.apostoli[...] The M. E. Golder Library and Research Center 2020-11-07
[36] 서적 The Holy Trinity Logion Press 2007
[37] 서적 The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s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49
[38] 서적 "The Epistles of Cyprian" Christian Literature Company 1886
[39] 서적 "The Refutation of All Heresies" Christian Literature Company 1886
[40] 서적 "Against the Sabellians" Christian Literature Company 1886
[41] 서적 The New Schaff-Herzog Encyclopedia of Religious Knowledge: Embracing Biblical, Historical, Doctrinal, and Practical Theology and Biblical, Theological, and Ecclesiastical Biography from the Earliest Times to the Present Day Funk & Wagnalls 1908–1914
[42] 서적 The Forgotten Trinity Bethany House Publishers 1998
[43] 서적 The Trinity: Evidence and Issues World Pub. 1996
[44] 서적 『初代教会史論考』
[45] 서적 The works of John Owen. https://www.worldcat[...] Banner of Truth Trust 1965-68
[46] 서적 A new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faith https://www.worldcat[...] T. Nelson 1998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