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경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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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순경태후는 고려 원종의 비이자 고려 충렬왕의 어머니이다. 경주 김씨 김약선의 딸로,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의 외손녀이다. 원종이 태자였을 때 입궐하여 경목현비가 되었고, 1235년 태자비에 책봉되었다. 1236년 충렬왕을 낳았으나, 1237년에 사망했다. 원종 즉위 후 정순왕후로 추존되었으며, 충렬왕 즉위 후 순경태후로 존호를 받았다. 능은 강화 가릉이며, 1992년 사적 제37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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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경태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작위 | 고려의 추존 왕후 |
별칭 | 경목현비(敬穆賢妃), 경순왕후(敬順王后) |
시호 | 정순왕후(靜順王后) |
배우자 | 원종 |
자녀 | 1남 1녀: 충렬왕, 공주 (요절) |
아버지 | 김약선 |
어머니 | 우봉 최씨 |
출생일 | 1222년 |
사망지 | 고려 사당리 사제 |
사망일 | 1237년 7월 29일 (음력) |
능묘 | 가릉(嘉陵) |
능묘 위치 |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
태자비 정보 | |
태자비 재위 기간 | 1235년 6월 24일 ~ 1237년 7월 29일 (음력) |
전임자 | 태자비 왕씨 |
후임자 | 태자비 유씨 (경창궁주) |
존호 | 순경태후(順敬太后) |
왕후 정보 (정순왕후 김씨) | |
한국어 | 정순왕후 김씨(靜順王后 金氏) |
기타 이름 | 경순왕후(敬順王后), 순경태후(順敬太后) |
생애 | |
출생 | 1220년, 고려 |
사망 | 1237년 7월 29일 |
사망 장소 | 사당리, 강화군, 고려 |
매장일 | 1244년 |
매장 장소 | 가릉 (San 16–2, Neungnae-ri, Yangdo-myeon, 강화군, 인천) |
배우자 정보 | |
결혼 | 원종 (1235–1237) |
자녀 정보 | |
자녀 | 충렬왕, 이름 없는 딸 |
가문 정보 | |
가문 | 전주 김씨 |
종교 | |
종교 | 불교 |
왕실 정보 | |
왕위 계승 | 고려의 왕세자 |
재위 기간 | 1235–1237 |
즉위 | 1235년 |
이전 | 임 왕세자비 |
이후 | 유 왕세자비 |
칭호 정보 | |
초수 | 가경목현비 (敬穆賢妃; 1235년) |
사후 칭호 | 원종에 의해 1262년에 내려짐: 정순왕후 (靜順王后) 충렬왕에 의해 1274년에 내려짐: 순경왕태후 (順敬太后) 원나라 무종에 의해 1310년에 내려짐: 고려 왕비 (高麗王妃) |
2. 생애
경주를 본관으로 하며, 장익공(莊翼公)에 추봉된 김약선의 딸이자 무신정권 시기 집권자였던 최우(최충헌의 아들)의 외손녀이다. 원종이 태자이던 시절에 입궐하여 경목현비(敬穆賢妃)라 불렸고, 1235년(고종 22년)에 정식으로 원종과 혼례를 올려 태자비에 책봉되었다. 1236년 아들(충렬왕)을 낳았으며, 이듬해인 1237년 음력 7월 29일 사당리 사제에서 죽었다.[4]
남편 원종이 왕위에 오른 후 1262년(원종 3년)에 왕후에 추존되어 '''정순왕후'''(靜順王后)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훗날 아들 충렬왕이 왕위에 오르자 태후에 추존되어 '''순경태후'''(順敬太后)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녀의 능은 가릉(嘉陵)[6]으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에 있다. 1992년 사적 제370호로 지정되었으며, 인천광역시 측에서 현재 세계문화유산의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7]
2. 1. 초기 생애
경주를 본관으로 하며, 장익공(莊翼公)에 추봉된 김약선의 딸이자 무신정권 시기 집권자였던 최우(최충헌의 아들)의 외손녀이다. 원종이 태자이던 시절에 입궐하여 경목현비(敬穆賢妃)라 불렸고, 1235년(고종 22년)에 정식으로 원종과 혼례를 올려 태자비에 책봉되었다. 1236년 아들(충렬왕)을 낳았으며, 이듬해인 1237년 음력 7월 29일 사당리 사제에서 죽었다.[4]2. 2. 왕비 책봉과 죽음
1235년(고종 22년) 원종이 태자이던 시절 입궐하여 경목현비(敬穆賢妃)라는 호를 받았고, 정식으로 원종과 혼례를 올려 태자비에 책봉되었다.[4] 1236년 아들(충렬왕)을 낳았으며, 1237년 음력 7월 29일 사당리 사제에서 죽었다.[4]남편 원종이 왕위에 오른 후 1262년(원종 3년) 왕후로 추존되어 '''정순왕후'''(靜順王后)라는 시호를 받았으며,[1] 아들 충렬왕이 왕위에 오르자 태후로 추존되어 '''순경태후'''(順敬太后)라는 시호를 받았다.[2]
1310년 원나라 무종 황제는 조서(制書)를 내려 순경태후에게 '''고려 왕비'''(高麗王妃)라는 칭호를 내렸다. 무종은 순경태후가 행동이 깨끗하고 신중하며, 불법(佛法)에 있어서 온화하고 아름다우며, 근면하고 겸손하다고 칭찬했다. 순경태후는 초창기 고려 시대의 선례처럼 시호를 받은 마지막 왕비가 되었다.
3. 무덤
1237년 음력 7월 29일 사당리 사제에서 사망하였고,1244년(고종 31년)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에 있는 가릉에 안장되었다.[4][3] 가릉은 대한민국에 있는 몇 안 되는 고려 왕릉 중 하나로, 1992년 사적 제370호로 지정되었다.[3] 인천광역시에서는 현재 가릉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7]
4. 가족 관계
5. 대중문화
참조
[1]
웹사이트
경목현비를 정순왕후로 추봉하다
http://db.history.go[...]
2022-01-04
[2]
웹사이트
왕의 모친 정순왕후를 순경태후로 추존하다
http://db.history.go[...]
2022-01-04
[3]
웹사이트
사적 강화 가릉 (江華 嘉陵)
http://www.heritage.[...]
2022-01-04
[4]
서적
동궁비주 애책문
동문선
[5]
서적
고려사 열전 - 김혼
고려사
[6]
문서
강화 가릉
[7]
뉴스
인천시, ‘강화ㆍ개성 고려왕릉’ 세계문화유산 지정 추진
http://news.heraldm.[...]
헤럴드경제
201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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