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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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모는 고대 일본에서 유래된 전통적인 격투 스포츠이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스모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신화 속 신들의 싸움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스모는 도효라는 원형 경기장에서 두 선수가 마와시를 착용하고, 상대방을 도효 밖으로 밀어내거나 발바닥 이외의 신체 부위를 땅에 닿게 하여 승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프로 스모는 일본 스모 협회에서 주관하며, 선수들은 6개의 등급으로 나뉘어 1년에 여섯 번의 대회를 통해 승급 및 강등된다. 스모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신도 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다양한 의식과 규칙을 통해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 스모 연맹을 통해 국제적으로도 보급되고 있으며, 아마추어 스모의 활성화와 외국인 선수들의 참여도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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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모 - 요코즈나
요코즈나는 일본 스모의 최고 등급으로, 뛰어난 실력과 품격, 막중한 사회적 책임감을 갖춘 인물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지위이며 스모계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 스모 - 하쿠호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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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도는 일본의 전통적인 궁술로 정신 수양과 예의범절을 중시하며, 선사 시대부터 시작되어 무사 계급의 등장과 함께 발전했고, 다양한 유파와 전일본궁도연맹을 중심으로 현대 스포츠화되었으며, 사법팔절을 기본 동작으로 수련하고, 도구와 기술 단계를 거쳐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고 있다. - 일본에서 시작된 스포츠 - 거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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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 | |
---|---|
구글 지도 | |
기본 정보 | |
이름 | 스모 (相撲) |
로마자 표기 | sumo |
한자 표기 | 相撲 |
설명 | '서로 치다'라는 의미 |
종류 | 씨름 |
국가 | 일본 |
생성 | 불명 |
무술 정보 | |
초점 | 클린치 파이팅 |
강도 | 풀 컨택트 |
창시자 | 불명 |
유래 | 테고이 |
파생 무술 | 유술 자위대격투술 |
올림픽 참가 여부 | 아니오, IOC에서 인정 |
스포츠 정보 | |
국제 연맹 | 국제 스모 연맹(아마추어), 일본 스모 협회(프로) |
시작 시기 | 일본, 17세기 중반 (에도 시대) |
프로 무대 | 일본 |
아마추어 무대 | 전 세계 |
성별 구분 | 아마추어 (남성, 여성 구분), 프로 (남성만) |
경기 유형 | 그래플링 스포츠 |
장비 | 마와시 |
경기장 | 도효 |
올림픽 | 아니오 |
패럴림픽 | 아니오 |
월드 게임 | 2001년 월드 게임 (시범 종목), 2005년 월드 게임–2022년 월드 게임 |
용어 | 스모 용어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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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
공식 웹사이트 | 일본 스모 협회 |
2. 스모의 역사
고대 일본의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스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나타난다.[6] 고사기에는 다케미카즈치(武甕槌)와 타케미나카타(建御名方) 두 신의 싸움에서 일본 열도의 소유권이 결정되었다는 내용이 있다.[7][8] 다케미카즈치는 이자나기(伊邪那岐)가 불의 악마 가구츠치(火産靈)를 죽였을 때 흘린 피에서 만들어진 천둥, 검술, 정복의 신이었고, 타케미나카타는 물, 바람, 농업, 사냥의 신이자 폭풍의 신 스사노오(素戔嗚)의 후손이었다. 다케미카즈치가 이즈모(出雲) 땅을 정복하려고 하자, 타케미나카타는 힘겨루기로 맞섰고, 이 싸움에서 다케미카즈치가 승리하여 이즈모를 차지했다.[7][8]
일본서기에는 기원전 23년, 노미노스쿠네(野見宿禰)라는 남자가 스이닌 천황(垂仁天皇)의 요청으로 타이마노쿠에하야(太佔之獲耶)와 싸워 그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6][9] 일본서기에 따르면 노미노스쿠네는 타이마노쿠에하야의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등을 걷어차서 죽였다고 한다.[7] 이는 인간끼리의 스모로서 가장 오래된 기록이며, 노미노스쿠네는 스모의 신화적인 조상으로 여겨진다.[6][9]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당시의 스모는 타격을 주로 하는 격투기였고, 이미 승패가 결정된[65] 상대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여 목숨까지 빼앗았고, 그것이 칭찬받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적어도 현대의 스모와는 규칙도 의식도 다른 것이며, 무예(武芸)·고무술(古武道)이었던 것은 명확하다.[65]
고분 시대(300~538년)에는 스모 선수의 하니와(埴輪)가 만들어졌다.[10] 642년 고교쿠 천황(孝恭天皇)의 궁정에서 한국 사절단을 즐겁게 하기 위해 최초의 스모 시합이 열렸고,[6] 이후 궁정 내에서 스모의 인기가 높아져 의례적이고 종교적인 중요성이 커졌다.
나라 시대(奈良時代)부터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에 걸쳐, 궁중 행사로서 '''스모 세츠카이(相撲節会)'''가 매년 7월경에 열렸다. 매년 약 40명의 강자가 근위부(近衛府)에 의해 선발되어 궁중에서 천람 스모(天覧相撲)를 붙였다.[71] 처음에는 칠석(七夕)의 궁중 행사의 여흥이었지만, 후에 건이(健児) 제도가 시작되면서 궁중 경호원 선발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12세기에 들어서면서 율령제(律令制)의 쇠퇴와 함께 스모 세츠카이는 침체되기 시작하여, 조안 4년(1174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된다.[72] 한편, 신사(神社)에서 제사로서 스모를 하는 풍습이 생겨났는데, 이를 '''신사 스모(神事相撲)'''라고 한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스모가 의례적인 싸움에서 사무라이들의 군사 훈련 형태로 바뀌었다.[6][9]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특히 스모를 좋아하여, 가마쿠라를 중심으로 스모가 성행하였다.
무로마치 시대가 되자 스모는 궁중의 은둔에서 완전히 벗어나 대중적인 행사가 되었고, 다이묘들 사이에서는 스모 선수를 후원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 다이묘의 총애를 얻기 위해 성공적으로 싸운 스모 선수(스모토리, ''sumotori'')들은 후한 지원과 사무라이의 지위를 받았다. 특히 스모를 좋아했던 오다 노부나가는 1578년 2월 1,500명의 스모 선수가 참가하는 대회를 열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성 안에서 여러 경기가 동시에 열리도록 하기 위해 원형 경기장(도효, ''dohyō'')이 설치되어 진행 속도를 높이고 관객의 안전을 유지했다. 이 행사는 도효의 발명을 의미하며, 18세기까지 현재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6] 오다 노부나가의 대회 우승자는 승리의 표시로 활을 받았고, 감사의 표시로 춤을 추었다.[7]
무로마치 막부는 스모 장려에는 소극적이었지만, 전국 다이묘는 열심히 스모 선수 양성에 힘썼다. 오닌의 난 이후 도읍을 떠난 귀족들과 함께 교토의 스모 문화가 지방에 전해지면서, 민중들 사이에 스모가 정착하고, 스모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것을 '''토지스모'''(土地相撲) 또는 “쿠사스모”(草相撲)라고 한다.
에도 시대(1603~1867)에는 스모가 일시적으로 금지되기도 했으나, 1684년 신사(神社) 부지에서 자선 행사를 위한 스모가 허용되면서 다시금 인기를 얻게 되었다.[11] 최초의 공식 대회는 도미오카 하치만 신사(富岡八幡宮)에서 열렸으며, 에도 행정부의 지휘를 받는 프로 스모 단체가 설립되었다. 도효이리(土俵入り), 헤야(部屋) 시스템, 교지(行司), 마와시(廻し) 등 오늘날 스모의 여러 요소들이 이 시기에 정착되었다.[11]
무가 스모가 쇠퇴하면서, 지방 스모는 흥행화되어 민간에 널리 퍼졌다. 이를 권진스모(勧進相撲)라 칭했으며, 무가 스모 또한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장수를 다이묘의 가신으로 삼았다. 에도 시대에는 권진스모가 신사나 사찰의 건립·수선 자금을 모으기 위한 흥행에서, 프로 스모로서의 영리적 흥행으로 변화했다.[62]
명화・안영기(1764년-1781년)에는 맹인이나 여성 스모가 성황을 이루는 등 볼거리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73] 11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나리 시대에는 장군이 관람하는 "상람스모"를 계기로 서민의 오락으로 더욱 번성했고, 특히 관정 3년(1791년) 6월 11일에 열린 상람스모는 스모 열기를 한층 고조시켰다.[62]
관정 연간에는 제4대 요코즈나 다니가제 가지노스케와 제5대 요코즈나 오노가와 키사부로, 라이덴 타메에몬과 같은 스타 역사들이 등장하여 에도 스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62] 덴포 4년(1833년)에는 권진대스모가 료고쿠를 정례 장소로 삼았다.[74]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스모는 쇠퇴할 위기에 처했으나, 메이지 천황(明治天皇)이 1884년에 스모 대회를 개최하면서 인기를 회복했다.[7] 메이지 천황의 천람 스모(天覧相撲)는 스모를 국가적 상징으로 만들었으며, 일본 스모 협회(日本相撲協会)는 1925년 12월 28일에 재결합하여 연간 대회 횟수를 늘리고 대회 기간을 연장했다.[7]
메이지(明治) 시대의 문명개화(文明開化)로 인해 위기에 처했던 스모는 메이지 천황(明治天皇)의 천람 스모(天覧相撲)가 반복됨으로써 명맥을 유지했다.[75] 다이쇼(大正) 14년(1925년)에는 천황배(天皇杯)가 수여되었고, 도쿄 스모와 오사카 스모가 합병되어 일본 스모 협회(日本相撲協会)가 탄생하면서 '''대일본 스모 협회(大相撲)'''로 통합되었다.
헤이세이(平成) 시대에는 일본 비치 스모 연맹(日本ビーチ相撲連盟)과 같은 아마추어 스모 단체가 결성되었다. 또한 의무교육(義務教育)의 필수과목(必修科目)으로 스모가 채택되기도 하였다. 2020년 이후 SARS 코로나바이러스-2(SARSコロナウイルス2) 감염 확대로 인해 스모 경기가 중단되는 사례도 발생했다.[76]
프로 스모가 정립되기 전, 일본 일부 지역에서는 온나즈모/女相撲일본어라는 여성 스모가 존재했다.[32] 현대에는 여성이 프로 스모 경기에 참가하거나 도효(土俵)에 들어가는 것이 전통적으로 금지되어 있다.[29][30][31]
2. 1. 고대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스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나타난다.[6] 고사기에는 다케미카즈치(武甕槌)와 타케미나카타(建御名方) 두 신의 싸움에서 일본 열도의 소유권이 결정되었다는 내용이 있다.[7][8] 다케미카즈치는 이자나기(伊邪那岐)가 불의 악마 가구츠치(火産靈)를 죽였을 때 흘린 피에서 만들어진 천둥, 검술, 정복의 신이었고, 타케미나카타는 물, 바람, 농업, 사냥의 신이자 폭풍의 신 스사노오(素戔嗚)의 후손이었다. 다케미카즈치가 이즈모(出雲) 땅을 정복하려고 하자, 타케미나카타는 힘겨루기로 맞섰고, 이 싸움에서 다케미카즈치가 승리하여 이즈모를 차지했다.[7][8]일본서기에는 기원전 23년, 노미노스쿠네(野見宿禰)라는 남자가 스이닌 천황(垂仁天皇)의 요청으로 타이마노쿠에하야(太佔之獲耶)와 싸워 그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6][9] 일본서기에 따르면 노미는 타이마의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등을 걷어차서 죽였다고 한다.[7] 이는 인간끼리의 스모로서 가장 오래된 기록이며, 노미노스쿠네는 스모의 신화적인 조상으로 여겨진다.[6][9]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당시의 스모는 타격을 주로 하는 격투기였고, 이미 승패가 결정된[65] 상대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여 목숨까지 빼앗았고, 그것이 칭찬받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적어도 현대의 스모와는 규칙도 의식도 다른 것이며, 무예(武芸)·고무술(古武道)이었던 것은 명확하다.[65]
고분 시대(300~538년)에는 스모 선수의 하니와(埴輪)가 만들어졌다.[10] 642년 고교쿠 천황(孝恭天皇)의 궁정에서 한국 사절단을 즐겁게 하기 위해 최초의 스모 시합이 열렸고,[6] 이후 궁정 내에서 스모의 인기가 높아져 의례적이고 종교적인 중요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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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시대(奈良時代)부터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에 걸쳐, 궁중 행사로서 '''스모 세츠카이(相撲節会)'''가 매년 7월경에 열렸다. 매년 약 40명의 강자가 근위부(近衛府)에 의해 선발되어 궁중에서 천람 스모(天覧相撲)를 붙였다.[71] 처음에는 칠석(七夕)의 궁중 행사의 여흥이었지만, 후에 건이(健児) 제도가 시작되면서 궁중 경호원 선발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12세기에 들어서면서 율령제(律令制)의 쇠퇴와 함께 스모 세츠카이는 침체되기 시작하여, 조안 4년(1174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된다.[72] 한편, 신사(神社)에서 제사로서 스모를 하는 풍습이 생겨났는데, 이를 '''신사 스모(神事相撲)'''라고 한다.
2. 2. 중세
가마쿠라 시대에는 스모가 의례적인 싸움에서 사무라이들의 군사 훈련 형태로 바뀌었다.[6][9]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특히 스모를 좋아하여, 가마쿠라를 중심으로 스모가 성행하였다.무로마치 시대가 되자 스모는 궁중의 은둔에서 완전히 벗어나 대중적인 행사가 되었고, 다이묘들 사이에서는 스모 선수를 후원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 다이묘의 총애를 얻기 위해 성공적으로 싸운 스모 선수(스모토리, ''sumotori'')들은 후한 지원과 사무라이의 지위를 받았다. 특히 스모를 좋아했던 오다 노부나가는 1578년 2월 1,500명의 스모 선수가 참가하는 대회를 열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성 안에서 여러 경기가 동시에 열리도록 하기 위해 원형 경기장(도효, ''dohyō'')이 설치되어 진행 속도를 높이고 관객의 안전을 유지했다. 이 행사는 도효의 발명을 의미하며, 18세기까지 현재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6] 노부나가의 대회 우승자는 승리의 표시로 활을 받았고, 감사의 표시로 춤을 추었다.[7]
무로마치 막부는 스모 장려에는 소극적이었지만, 전국 다이묘는 열심히 스모 선수 양성에 힘썼다. 오닌의 난 이후 도읍을 떠난 귀족들과 함께 교토의 스모 문화가 지방에 전해지면서, 민중들 사이에 스모가 정착하고, 스모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것을 '''토지스모'''(土地相撲) 또는 “쿠사스모”(草相撲)라고 한다.
2. 3. 근세
에도 시대(1603~1867)에는 스모가 일시적으로 금지되기도 했으나, 1684년 신사(神社) 부지에서 자선 행사를 위한 스모가 허용되면서 다시금 인기를 얻게 되었다.[11] 최초의 공식 대회는 도미오카 하치만 신사(富岡八幡宮)에서 열렸으며, 에도 행정부의 지휘를 받는 프로 스모 단체가 설립되었다. 도효이리(土俵入り), 헤야(部屋) 시스템, 쿄지(行司), 마와시(廻し) 등 오늘날 스모의 여러 요소들이 이 시기에 정착되었다.[11]무가 스모가 쇠퇴하면서, 지방 스모는 흥행화되어 민간에 널리 퍼졌다. 이를 권진스모(勧進相撲)라 칭했으며, 무가 스모 또한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장수를 다이묘의 가신으로 삼았다. 에도 시대에는 권진스모가 신사나 사찰의 건립·수선 자금을 모으기 위한 흥행에서, 프로 스모로서의 영리적 흥행으로 변화했다.[62]
명화・안영기(1764년-1781년)에는 맹인이나 여성 스모가 성황을 이루는 등 볼거리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73] 11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나리 시대에는 장군이 관람하는 "상람스모"를 계기로 서민의 오락으로 더욱 번성했고, 특히 관정 3년(1791년) 6월 11일에 열린 상람스모는 스모 열기를 한층 고조시켰다.[62]
관정 연간에는 제4대 요코즈나 다니가제 가지노스케와 제5대 요코즈나 오노가와 키사부로, 라이덴 타메에몬과 같은 스타 역사들이 등장하여 에도 스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62] 덴포 4년(1833년)에는 권진대스모가 료고쿠를 정례 장소로 삼았다.[74]
2. 4. 근대 이후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스모는 쇠퇴할 위기에 처했으나, 메이지 천황이 1884년에 스모 대회를 개최하면서 인기를 회복했다.[7] 메이지 천황의 천람 스모(天覧相撲)는 스모를 국가적 상징으로 만들었으며, 일본 스모 협회(日本相撲協会)는 1925년 12월 28일에 재결합하여 연간 대회 횟수를 늘리고 대회 기간을 연장했다.[7]메이지(明治) 시대의 문명개화(文明開化)로 인해 위기에 처했던 스모는 메이지 천황(明治天皇)의 천람 스모(天覧相撲)가 반복됨으로써 명맥을 유지했다.[75] 다이쇼 14년(1925년)에는 천황 하사배(天皇賜杯)가 수여되었고, 도쿄 스모와 오사카 스모가 합병되어 일본 스모 협회(日本相撲協会)가 탄생하면서 '''대일본 스모 협회(大相撲)'''로 통합되었다.
헤이세이(平成) 시대에는 일본 비치 스모 연맹(日本ビーチ相撲連盟)과 같은 아마추어 스모 단체가 결성되었다. 또한 의무교육(義務教育)의 필수과목(必修科目)으로 스모가 채택되기도 하였다. 2020년 이후 코로나바이러스(新型コロナウイルス) 감염 확대로 인해 스모 경기가 중단되는 사례도 발생했다.[76]
프로 스모가 정립되기 전, 일본 일부 지역에서는 온나즈모/女相撲일본어라는 여성 스모가 존재했다.[32] 현대에는 여성이 프로 스모 경기에 참가하거나 도효(土俵)에 들어가는 것이 전통적으로 금지되어 있다.[29][30][31]
3. 스모의 규칙 및 방식
스모 경기는 도효(土俵)라고 불리는 원형 경기장 안에서 마와시(廻し)를 착용한 두 선수가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84] 상대방을 도효 밖으로 밀어내거나, 발바닥 이외의 신체 부위를 땅에 닿게 하면 승리한다.[84]
스모 경기는 전통적으로 선수의 나이, 신장, 체중에 관계없이 무차별급으로 진행된다. 기량이 비슷할 경우 체중이 무겁거나 신장이 큰 쪽이 유리하기 때문에, 오즈모의 리키시들은 150킬로그램이 넘는 체중이 보통이다.
스모의 기본 원칙은 한 선수가 먼저 원형의 도효 밖으로 밀려나거나, 발바닥 이외의 신체 부위가 링 안의 땅에 닿으면 승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12] 선수들은 밀치고, 던지고, 치고, 종종 상대방을 제압하여 이를 달성하려고 한다.[12] 일본스모협회는 82가지의 키마리테(승리 기술)를 구분하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유도에서 유래한 것이다.[13] 불법적인 기술은 킨지테라고 하며, 교살, 머리카락 잡아당기기, 손가락 굽히기, 사타구니 부위 잡기, 발차기, 눈 찌르기, 주먹질, 그리고 상대방의 양쪽 귀를 동시에 치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12] 가장 일반적인 기본 형태는 상대방의 마와시(샅바)를 잡고 밀어내는 yotsu-zumō/四つ相撲일본어 스타일 또는 단단히 잡지 않고 상대방을 링 밖으로 밀어내는 oshi-zumō/押し相撲일본어 스타일이다.
요비다시가 제작 및 관리하는 도효는 높이 올라온 받침대 위에 지름 4.55m의 원이 짚단으로 구획되어 있다. 원의 중앙에는 두 개의 시작선(''시키리센'')이 있으며, 선수들은 이 선 뒤에 서서 시합을 시작하는 동시 돌진인 ''타치아이''를 한다.[14][15] 시합의 진행은 교지(行司)의 책임이며, 다섯 명의 심판(판정)의 지원을 받는다. 심판은 모노이라고 하는 회의를 소집하여 교지의 결정을 재검토할 수 있다. 두 선수 모두 동시에 땅에 닿거나 링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 비디오를 검토하기도 한다. 결정이 내려지면, 수석 심판은 결정을 발표하고, 시합을 재개하거나 교지의 결정을 유지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때때로 심판은 교지의 판정을 뒤집고 시합을 다른 선수에게 줄 수 있다. 드물지만 심판은 먼저 땅에 닿은 선수에게 승리를 줄 수 있는데, 두 선수가 거의 동시에 땅에 닿았고 두 번째로 땅에 닿은 선수에게는 승리할 기회가 없었으며, 상대방의 우수한 스모 실력이 그를 회복 불가능한 위치에 놓았다고 판단되는 경우이다. 이 경우 패배한 선수는 ''시니타이''("시체")라고 한다.[16]
시합의 최대 시간은 체급에 따라 다르다. 최상위 체급에서는 제한 시간이 4분이지만, 시합은 보통 몇 초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할당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시합이 끝나지 않으면 ''미즈이리''(물 타임)를 취한 후 선수들은 이전 위치에서 계속 싸움을 한다. 또 다른 4분 후에도 승자가 나오지 않으면, 또 다른 ''미즈이리'' 후 ''타치아이''에서부터 시합을 재개한다. 그래도 결정이 나지 않으면 결과는 ''히키와케''(무승부)로 간주된다. 이는 매우 드문 결과이며, 마지막 무승부는 1974년 9월에 선언되었다.[17]
스모의 특별한 매력 중 하나는 수 세기 동안 변하지 않고 스포츠와 함께 발전해 온 다양한 의식과 의례이다. 각 대회 첫날 시작 시 선수들이 정교한 케쇼마와시를 입고 링에 나타나는 링 입장식(''도히요이리'')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링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링을 상징적으로 정화),[16] 시합 전에 로 입을 헹구는 행위(신사에 들어가기 전 의식과 유사) 등이 있다.[16] 또한, 시합이 시작되기 전에 두 선수는 ''시키리''라고 하는 워밍업 루틴을 수행하고 반복한다. 최상위 체급은 ''시키리''에 4분이 주어지고, 두 번째 체급에는 3분이 주어지며, 시간이 다 되면 시간 측정 심판이 교지에게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린다.[16]
전통적으로 스모 선수들은 거대한 체격과 체중으로 유명하며, 이는 종종 스모에서 승리 요인이 된다. 프로 스모에는 체급이 없으므로 선수는 때때로 자기 체중의 두 배에 달하는 상대와 겨룰 수도 있다. 그러나 뛰어난 기술을 가진 작은 선수들은 훨씬 더 큰 상대를 제압하고 이길 수 있다.[18]
시작 시, 두 스모 선수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두 주먹으로 도효(土俵)의 표면에 닿은 후 웅크린 자세에서 동시에 뛰어올라야 한다. 심판(行司, 교지)은 동시에 닿지 않을 경우 경기를 재개할 수 있다.[16]
경기가 끝나면 심판은 즉시 군배(軍配)를 승자 쪽으로 향하게 하여 판정을 알린다. 그런 다음 승자의 승리 기술(決まり手, 기마리테)이 관중에게 알려진다. 스모 선수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 서로에게 절을 한 후 물러난다.
심판의 결정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며, 도효 주위에 앉아 있는 다섯 명의 심판(審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심판들은 도효 중앙에 모여 모노이(物言い)를 한다. 합의에 도달하면 심판의 결정을 유지하거나 번복하거나, 또는 토리나오시(取り直し)라고 하는 재경기를 명령할 수 있다.
최고 등급의 승자는 경기가 후원을 받은 경우 심판으로부터 봉투에 담긴 추가 상금을 받을 수 있다. 요코즈나(横綱)가 하위 등급의 선수에게 패배하면 관중들이 자신의 자리 쿠션을 도효 (그리고 선수들 위로)에 던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예상되는 일이지만, 이러한 행위는 기술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경기 준비 시간과는 대조적으로, 경기 자체는 일반적으로 매우 짧으며, 보통 1분 미만(대부분 몇 초)이다. 극히 드물게 몇 분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 준비과정-시키리(仕切り)
선수들은 도효 안에 들어서서 서로 마주 보고 허리를 낮춰 준비 자세를 취한다. 이를 '''시키리(仕切り)'''라고 하며, 다치아이(立ち会い)가 시작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다. 횟수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지만, 제한 시간이 있을 경우 그 범위 안에서 반복해야 한다.[16] 심판(교지(行司))은 동시에 닿지 않을 경우 경기를 재개할 수 있다.[16]
1928년 1월 12일부터 일본방송협회의 라디오 중계로 대상투 중계가 시작되면서, 방송 시간 내에 모든 경기를 끝내기 위해 마쿠우치(幕内)는 10분, 주료(十両)는 7분의 제한 시간이 설정되고 시키리선(仕切り線)이 설치되었다. 이후 제한 시간은 마쿠우치(幕内) 4분, 주료(十両) 3분으로 변경되었다.
; 맞붙기-다치아이(立ち会い)
주먹을 쥐어 바닥에 댄 상태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양쪽이 동시에 일어나 서로를 향해 돌진해 부딪친다.[16] 보통은 정면으로 부딪치나, 반드시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아도 된다. 이 과정부터 스모의 경기가 시작 된 것이며, 이를 '''다치아이'''(다치아이/立ち会い일본어)라고 한다.[85]
심판의 신호가 없이 서로 암묵적으로 합의를 하여 시작을 결정 하는 방식은 세계의 비슷한 경기들 가운데 스모의 독특한 시작 방식이라 할 수 있다.[85] 시키리를 반복하는 가운데, 서로 기합이 올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판단되는 순간에 경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교지는 단지 이 과정을 확인 하는 것 뿐이다.[85]
단, 최근에는 시간 제한이 설정되어 있다. 1928년 1월 12일 NHK의 라디오 방송이 시작 된 이래, 방송 시간 내에 승부를 보기 위해, 마쿠노우치는 10분, 주료는 7분의 제한 시간이 설정되며, 그 전에는 없었던 도효 위의 시키리 선이 설치가 되며 현재와 같은 다치아이의 과정이 생겼다. 그전까지는 그 당시의 사진 자료를 살펴 보면, 다치아이의 거리 제한이 없고, 머리와 머리를 서로 붙인 상태에서 개시 하는 경우가 많았다.[85]
현재 오즈모에서 적용되고 있는 시간 제한은 마쿠노우치 4분, 주료 3분, 마쿠시타 이하는 2분 이내로 적용되고 있다.[85]
; 승부의 판정
스모 경기는 상대방의 발바닥 이외의 신체 부위가 땅에 닿거나, 도효(土俵) 밖으로 나가면 패배한다.[16] 상대의 머리카락이 닿아도 패배로 결정된다. [16] 이러한 규칙은 부흐, 씨름, 세네갈 스모 등에서도 나타나는데, 시합장 밖으로 나가는 것을 즉시 패배로 인정하는 경우는 스모가 더 민감하다.
경기 시작 시 두 선수는 주먹으로 도효 표면에 닿은 후 웅크린 자세에서 동시에 뛰어올라야 하며, 심판(行司, 교지)은 이 규칙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경기를 재개할 수 있다.[16] 경기 후 심판은 군배(軍配)를 이용해 승자를 알리고, 승리 기술(決まり手, 기마리테)을 발표한다.[16]
심판(교지, 行司)의 판정에 이의가 제기될 경우, 도효 주위에 앉아 있는 다섯 명의 심판(審判)들이 모노이(物言い)라는 회의를 통해 판정을 재검토한다.[16] 회의를 통해 심판의 결정을 유지, 번복하거나 재경기(토리나오시, 取り直し)를 명령할 수 있다.[16] 최고 등급의 승자는 추가 상금을 받을 수 있고, 요코즈나(横綱)가 패배하면 관중들이 자리 쿠션을 던지기도 하지만 이는 금지되어 있다.[16] 스모 경기는 보통 1분 미만으로 매우 짧게 진행되지만, 드물게 몇 분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16]
; 공격법
서로 떨어진 상태에서, 상대의 가슴을 머리나 양 손으로 밀거나, 손을 펴 상대의 목을 밀어내거나 뺨을 치거나, 다리를 후리는 등의 공격법을 사용하여, 상대방보다 우위의 상황을 만든다.[80] 마와시를 움켜잡아 당기거나 끌며 기술을 시도한다.[80] 양쪽 모두 마와시를 움켜잡았을 때, 서로 팔이 교차하게 되는데, 이때 안쪽에 위치한 팔을 시타테(下手), 바깥쪽에 있는 팔을 우와테(上手)라 부른다.[80]
맞닿은 상태에서 가슴에 손바닥을 대거나, 허리띠를 잡고 밀어낸다.[80] 허리띠를 잡고 서로 끌어당기는데, 양쪽이 같은 쪽(오른쪽과 왼쪽)에서 허리띠의 뒤쪽을 잡았을 경우 서로의 손이 교차하며, 그때 바깥쪽에 있는 손을 상手, 안쪽에 있는 손을 하수라고 한다.[80] "상수는 얕게, 하수는 깊게"가 허리띠 잡는 방법의 기본이다.[80] 갑자기 뒤로 물러서거나, 몸을 젖히는 등으로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기도 한다.[80]
스모에서는 우선 미는 것을 좋다고 여기며, 많은 스모 훈련장과 도장에서는 초심자는 미는 기술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한다.[80] 허리띠를 잡은 손은 당기지만, 그 경우에도 몸 전체로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중시한다.[80] "당기면 밀고, 밀면 밀라(상대가 당기든 밀든 밀라)"라는 말도 있다.[80] 실제로는 끌어넘기기 등 당기는 기술도 있지만 칭찬받지 못한다.[80] 또, 당겨졌을 경우에도 당겨진 것 이상의 속도로 앞으로 나가서 공세를 취하는 것이 좋다고 여겨진다.[80]
; 승부 기술(기마리테, 決まり手)
일본스모협회는 스모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기본기, 던지기, 걸기, 비틀기, 젖히기 등의 분류에 따라 82가지 기술과 5가지의 승부효과(기술이 아님)를 규정하고 있으며, 일반 아마추어 스모에서도 이 기술을 인정하고 있다. 승부가 결정되었을 때, 그것이 어떤 기술에 의한 것인지를 판단한 것이 결まり手(결정 기술)이다.
옛날에는 '''사십팔수'''(四十八手, しじゅうはっしゅ)라고 불렸지만, 나중에 일본 스모 협회가 82개의 기술 명칭과 기술이 아닌 결정 기술 5가지(勇み足(용미족) 등)를 정하고 있으며, 그 중 어느 하나로 분류된다. 四十八手라는 명칭은 게이초(慶長) 연간에는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81] 에도 시대부터 『相撲強弱理合書』(스모 강약이합서), 『角力秘要録』(각력비요록), 『相撲之圖式』(스모지도식), 『相撲鬼拳』(스모귀권), 『相撲大全』(스모대전) 등에 기록되어 있지만, 책에 따라 내용이 다르다.
『相撲強弱理合書』에는 笈撕(오이사기), 繋なげ(츠나게나게), 波離間なげ(하리마나게), 胸なげ(무나게), 腹なげ(하라나게), 腕なげ(우데나게)등의 기술이 기록되어 있다. 『相撲圖式』에는 大腰のひしぎ(오오고시노히시기), 磯之波(이소노나미), 引廻之入身(히키마와시노이리미)(相引廻不變), 逆繋(갸쿠츠나기), 四手崩(욧테쿠즈레)등이 기록되어 있다. 『相撲大全』에는 かものいれくび(가모노이레쿠비), むかふづき(무카후즈키), さかてなげ(사카테나게), すくひなげ(스쿠이나게), ぎゃくなげ(갸쿠나게)등이 기록되어 있다.
3. 1. 준비과정-시키리(仕切り)
선수들은 도효 안에 들어서서 서로 마주 보고 허리를 낮춰 준비 자세를 취한다. 이를 '''시키리(仕切り)'''라고 하며, 다치아이(立ち会い)가 시작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다. 횟수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지만, 제한 시간이 있을 경우 그 범위 안에서 반복해야 한다.[16] 심판(교지(行司))은 동시에 닿지 않을 경우 경기를 재개할 수 있다.[16]1928년 1월 12일부터 일본방송협회의 라디오 중계로 대상투 중계가 시작되면서, 방송 시간 내에 모든 경기를 끝내기 위해 마쿠우치(幕内)는 10분, 주료(十両)는 7분의 제한 시간이 설정되고 시키리선(仕切り線)이 설치되었다. 이후 제한 시간은 마쿠우치(幕内) 4분, 주료(十両) 3분으로 변경되었다.
3. 2. 맞붙기-다치아이(立ち会い)
주먹을 쥐어 바닥에 댄 상태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양쪽이 동시에 일어나 서로를 향해 돌진해 부딪친다.[16] 보통은 정면으로 부딪치나, 반드시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아도 된다. 이 과정부터 스모의 경기가 시작 된 것이며, 이를 '''다치아이'''(다치아이/立ち会い일본어)라고 한다.[85]심판의 신호가 없이 서로 암묵적으로 합의를 하여 시작을 결정 하는 방식은 세계의 비슷한 경기들 가운데 스모의 독특한 시작 방식이라 할 수 있다.[85] 시키리를 반복하는 가운데, 서로 기합이 올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판단되는 순간에 경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교지는 단지 이 과정을 확인 하는 것 뿐이다.[85]
단, 최근에는 시간 제한이 설정되어 있다. 1928년 1월 12일 NHK의 라디오 방송이 시작 된 이래, 방송 시간 내에 승부를 보기 위해, 마쿠노우치는 10분, 주료는 7분의 제한 시간이 설정되며, 그 전에는 없었던 도효 위의 시키리 선이 설치가 되며 현재와 같은 다치아이의 과정이 생겼다. 그전까지는 그 당시의 사진 자료를 살펴 보면, 다치아이의 거리 제한이 없고, 머리와 머리를 서로 붙인 상태에서 개시 하는 경우가 많았다.[85]
현재 오즈모에서 적용되고 있는 시간 제한은 마쿠노우치 4분, 주료 3분, 마쿠시타 이하는 2분 이내로 적용되고 있다.[85]
3. 3. 승부의 판정
스모 경기는 상대방의 발바닥 이외의 신체 부위가 땅에 닿거나, 도효(土俵) 밖으로 나가면 패배한다.[16] 상대의 머리카락이 닿아도 패배로 결정된다. [16] 이러한 규칙은 부흐, 씨름, 세네갈 스모 등에서도 나타나는데, 시합장 밖으로 나가는 것을 즉시 패배로 인정하는 경우는 스모가 더 민감하다.경기 시작 시 두 선수는 주먹으로 도효 표면에 닿은 후 웅크린 자세에서 동시에 뛰어올라야 하며, 심판(行司, 교지)은 이 규칙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경기를 재개할 수 있다.[16] 경기 후 심판은 군배(軍配)를 이용해 승자를 알리고, 승리 기술(決まり手, 기마리테)을 발표한다.[16]
심판(교지, 行司)의 판정에 이의가 제기될 경우, 도효 주위에 앉아 있는 다섯 명의 심판(審判)들이 모노이(物言い)라는 회의를 통해 판정을 재검토한다.[16] 회의를 통해 심판의 결정을 유지, 번복하거나 재경기(토리나오시, 取り直し)를 명령할 수 있다.[16] 최고 등급의 승자는 추가 상금을 받을 수 있고, 요코즈나(横綱)가 패배하면 관중들이 자리 쿠션을 던지기도 하지만 이는 금지되어 있다.[16] 스모 경기는 보통 1분 미만으로 매우 짧게 진행되지만, 드물게 몇 분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16]
3. 4. 공격법
서로 떨어진 상태에서, 상대의 가슴을 머리나 양 손으로 밀거나, 손을 펴 상대의 목을 밀어내거나 뺨을 치거나, 다리를 후리는 등의 공격법을 사용하여, 상대방보다 우위의 상황을 만든다.[80] 마와시를 움켜잡아 당기거나 끌며 기술을 시도한다.[80] 양쪽 모두 마와시를 움켜잡았을 때, 서로 팔이 교차하게 되는데, 이때 안쪽에 위치한 팔을 시타테(下手), 바깥쪽에 있는 팔을 우와테(上手)라 부른다.[80]맞닿은 상태에서 가슴에 손바닥을 대거나, 허리띠를 잡고 밀어낸다.[80] 허리띠를 잡고 서로 끌어당기는데, 양쪽이 같은 쪽(오른쪽과 왼쪽)에서 허리띠의 뒤쪽을 잡았을 경우 서로의 손이 교차하며, 그때 바깥쪽에 있는 손을 상手, 안쪽에 있는 손을 하수라고 한다.[80] "상수는 얕게, 하수는 깊게"가 허리띠 잡는 방법의 기본이다.[80] 갑자기 뒤로 물러서거나, 몸을 젖히는 등으로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기도 한다.[80]
스모에서는 우선 미는 것을 좋다고 여기며, 많은 스모 훈련장과 도장에서는 초심자는 미는 기술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한다.[80] 허리띠를 잡은 손은 당기지만, 그 경우에도 몸 전체로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중시한다.[80] "당기면 밀고, 밀면 밀라(상대가 당기든 밀든 밀라)"라는 말도 있다.[80] 실제로는 끌어넘기기 등 당기는 기술도 있지만 칭찬받지 못한다.[80] 또, 당겨졌을 경우에도 당겨진 것 이상의 속도로 앞으로 나가서 공세를 취하는 것이 좋다고 여겨진다.[80]
3. 5. 승부 기술(기마리테, 決まり手)
일본스모협회는 스모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기본기, 던지기, 걸기, 비틀기, 젖히기 등의 분류에 따라 82가지 기술과 5가지의 승부효과(기술이 아님)를 규정하고 있으며, 일반 아마추어 스모에서도 이 기술을 인정하고 있다. 승부가 결정되었을 때, 그것이 어떤 기술에 의한 것인지를 판단한 것이 결まり手(결정 기술)이다.옛날에는 '''사십팔수'''(四十八手, しじゅうはっしゅ)라고 불렸지만, 나중에 일본 스모 협회가 82개의 기술 명칭과 기술이 아닌 결정 기술 5가지(勇み足(용미족) 등)를 정하고 있으며, 그 중 어느 하나로 분류된다. 四十八手라는 명칭은 게이초(慶長) 연간에는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81] 에도 시대부터 『相撲強弱理合書』(스모 강약이합서), 『角力秘要録』(각력비요록), 『相撲之圖式』(스모지도식), 『相撲鬼拳』(스모귀권), 『相撲大全』(스모대전) 등에 기록되어 있지만, 책에 따라 내용이 다르다.
『相撲強弱理合書』에는 笈撕(오이사기), 繋なげ(츠나게나게), 波離間なげ(하리마나게), 胸なげ(무나게), 腹なげ(하라나게), 腕なげ(우데나게)등의 기술이 기록되어 있다. 『相撲圖式』에는 大腰のひしぎ(오오고시노히시기), 磯之波(이소노나미), 引廻之入身(히키마와시노이리미)(相引廻不變), 逆繋(갸쿠츠나기), 四手崩(욧테쿠즈레)등이 기록되어 있다. 『相撲大全』에는 かものいれくび(가모노이레쿠비), むかふづき(무카후즈키), さかてなげ(사카테나게), すくひなげ(스쿠이나게), ぎゃくなげ(갸쿠나게)등이 기록되어 있다.
4. 스모의 등급
오즈모(大相撲)는 일본스모협회에서 주관하며, 선수들의 순위를 매겨 반즈케(番付)라는 순위표를 발표한다.[25] 아마추어 스모는 일본 스모 연맹에서 주관하며, 급 및 단 제도를 두고 있다.
'''프로 스모의 등급'''
프로 스모는 일본 스모 협회에서 주관하며, 엄격한 서열에 기반한 6개의 부문으로 나뉜다.[17] 선수들은 1년에 여섯 차례 열리는 공식 대회(''혼바쇼'')에서의 성적에 따라 승급 또는 강등되며, 각 대회가 끝난후 ''반즈케''라는 순위표가 발표된다.
스모의 여섯 부문은 다음과 같다.
- 幕内]]/
- 十両]]/
- 幕下]]/
- 三段目]]/
- 序二段]]/
- 序ノ口]]/
선수들은 최하위 ''조노쿠치'' 부문에서 시작하여 능력이 허락하는 한 최상위 부문으로 올라간다. 최상위 두 부문(''마쿠우치'', ''주료'')의 선수를 関取/세키토리일본어라고 하며, 나머지 네 개의 하위 부문 선수들을 力士/리키시일본어라고 한다.[26]

최상위 ''마쿠우치'' 부문은 가장 복잡한 계층 구조를 가지며, 대부분의 선수는 에 속한다. ''마에가시라'' 위에는 ''산야쿠''라고 불리는 세 개의 챔피언 등급, 즉 小結]]/마쿠우치#코무스비일본어, 関脇/마쿠우치#세키와케일본어, 大関/마쿠우치#오제키일본어가 있다. 순위 시스템의 정점에는 横綱/
기준으로, 상위 두 등급의 월급은 다음과 같다.[44]

- '''요코즈나'''(横綱): 300만 엔
- '''오제키'''(大関): 250만 엔
- '''산야쿠'''(三役): 180만 엔
- '''마에가시라'''(前頭): 140만 엔
- '''쥬료'''(十両): 110만 엔
두 번째로 높은 등급보다 낮은 등급의 선수들은 수련생으로 간주되어 소액의 수당만 받는다. 세키토리급 선수들은 기본 급여 외에도 경력 누적 성적에 따라 ''모치큐킨''(報奨金)이라는 추가 보너스 수입을 받는다.[45] 또한, 각 등급 우승자에게는 상금이 지급되며, 최상위 등급 우승자는 1000만 엔의 상금을 받는다. 개별 최상위 등급 경기는 기업이 후원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상금은 켄쇼킨(懸賞金)이라고 한다.[16]
4. 1. 프로 스모의 등급
프로 스모는 일본 스모 협회에서 주관하며, 엄격한 서열에 기반한 6개의 부문으로 나뉜다.[17] 선수들은 1년에 여섯 차례 열리는 공식 대회(''혼바쇼'')에서의 성적에 따라 승급 또는 강등되며, 각 대회가 끝난후 ''반즈케''라는 순위표가 발표된다.[25]스모의 여섯 부문은 다음과 같다.
- 幕内]]/
- 十両]]/
- 幕下]]/
- 三段目]]/
- 序二段]]/
- 序ノ口]]/
선수들은 최하위 ''조노쿠치'' 부문에서 시작하여 능력이 허락하는 한 최상위 부문으로 올라간다. 최상위 두 부문(''마쿠우치'', ''주료'')의 선수를 関取/세키토리일본어라고 하며, 나머지 네 개의 하위 부문 선수들을 力士/리키시일본어라고 한다.[26]
최상위 ''마쿠우치'' 부문은 가장 복잡한 계층 구조를 가지며, 대부분의 선수는 에 속한다. ''마에가시라'' 위에는 ''산야쿠''라고 불리는 세 개의 챔피언 등급, 즉 小結]]/마쿠우치#코무스비일본어, 関脇/마쿠우치#세키와케일본어, 大関/마쿠우치#오제키일본어가 있다. 순위 시스템의 정점에는 横綱/
기준으로, 상위 두 등급의 월급은 다음과 같다.[44]
- '''요코즈나''(横綱): 300만 엔
- '''오제키''(大関): 250만 엔
- '''산야쿠''(三役): 180만 엔
- '''마에가시라''(前頭): 140만 엔
- '''쥬료''(十両): 110만 엔
두 번째로 높은 등급보다 낮은 등급의 선수들은 수련생으로 간주되어 소액의 수당만 받는다. 세키토리급 선수들은 기본 급여 외에도 경력 누적 성적에 따라 ''모치큐킨''(報奨金)이라는 추가 보너스 수입을 받는다.[45] 또한, 각 등급 우승자에게는 상금이 지급되며, 최상위 등급 우승자는 1000만 엔의 상금을 받는다. 개별 최상위 등급 경기는 기업이 후원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상금은 켄쇼킨(懸賞金)이라고 한다.[16]
5. 스모의 주요 용어
스모의 주요 용어는 다음과 같다.
- '''도리쿠미(도리쿠미/取組일본어)''': 스모 경기의 한 시합을 의미한다. 승패 계산, 중요 경기, 결과 계산, 포상금 산정 등의 단위로 사용된다.
- '''도효(도효/土俵일본어)''': 스모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이다. 흙을 쌓아 만들며, 원래 '흙(土일본어)을 잔뜩 넣은 가마니(俵일본어)'를 의미한다.
- '''리키시(리키시/力士일본어)''' 또는 '''스모토리(스모토리/相撲取り일본어)''': 스모 선수를 지칭한다.
- '''마와시(마와시/廻し,回し,まわし일본어)''': 스모 선수가 몸에 착용하는 훈도시의 일종인 일본 전통 샅바이다. 마쓰리에서도 사용되며, 한국 씨름의 샅바와 유사하게 선수가 서로 붙잡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 '''시로보시(시로보시/白星일본어), 구로보시(구로보시/黒星일본어)''': 스모 경기의 승패를 나타내는 말로, 각각 흰색 동그라미(○)와 검은색 동그라미(●)로 호시토리효(星取表일본어)에 표시된다.
- '''헤야(헤야/部屋일본어)''': 직업 스모 선수들이 오야카타(親方|오야카타일본어)와 함께 합숙하며 훈련하는 도장 및 수련장이다. 선수들의 연습은 게이코(稽古|게이코일본어)라고 한다.
프로 스모 선수는 엄격한 생활 방식을 따른다. 스모 협회는 선수들의 자동차 운전 금지[37] 등 행동을 상세하게 규정하며, 규칙 위반 시 벌금이나 출장 정지가 부과될 수 있다.
스모 선수는 존마게를 위해 머리를 길게 기르고, 공공장소에서는 전통 의상을 착용해야 한다. 의복 종류와 질은 계급에 따라 다르며, 조니단 이하는 겨울에도 유카타와 게타를 착용해야 한다. 마쿠시타 및 산단메 등급은 조리를 신을 수 있고, 세키토리는 비단 로브를 입을 수 있다.
스테이블 생활도 계급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하위 선수들은 새벽 5시부터 훈련을 시작하고, 세키토리는 오전 7시경에 시작할 수 있다. 훈련 후 목욕 및 식사 순서도 계급에 따라 정해진다. 선수들은 보통 아침을 먹지 않고 점심 식사 후 낮잠을 자며, 점심은 주로 찬코나베를 밥과 함께 먹는다.[16] 이러한 방식은 체중 증가를 돕기 위한 것이다.
스모 선수들의 평균 수명은 65세 정도로, 일반 일본 남성보다 약 15년 짧다.[41] 이는 식단과 운동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며, 제2형 당뇨병, 고혈압, 관절염, 만성 외상성 뇌병증 등의 건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38][39][41][43][40] 21세기에는 선수 건강 증진을 위해 체중 증가 기준이 완화되기도 했다.[41][42][43]
스모 선수들은 길이 9m의 허리띠인 '마와시'를 착용하고, 대회에서는 상위 등급 선수는 실크, 하위 등급 선수는 검은색 목면 마와시를 착용한다.[57][58] 또한, 머리카락을 상투로 틀고 왁스를 발라 모양을 유지하며, 이는 에도 시대 사무라이 헤어스타일의 일종이다.[59] 일상생활에서는 항상 일본 전통 의복을 착용해야 하며, 착용 가능한 의복 종류는 계급에 따라 다르다.[60]
新田一郎에 따르면 “相撲(스모)”는 처음에는 다투거나 저항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격투나 기예를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한자어였다고 한다.[63] “스모(すもう)”라는 명칭은 고대의 “스마히(すまひ)”가 변화한 것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는 “스모(すもう)”를 “角力”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64]
대스모를 하는 사람은 정식 명칭은 “力士(리키시)”이며, 또 “相撲取り”, 친근하게 “お相撲さん(오스모상)”이라고도 불린다. 스모의 세계를 “角界(각계)”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옛날 스모의 한자 표기를 “角力” 또는 “捔力”, “角觝”으로 했던 것에 유래한다. 영어로는 “sumo(스모)” 또는 “sumo-wrestling(스모 레슬링)”이라고 표기된다.
6. 스모와 신토(神道)와의 관계
스모는 신에게 바치는 의식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신사(神事)로서의 성격이 강하다.[63] 스모와 신사의 관계는 스모가 신사에 봉납되는 경우와, 스모의 동작이 신사의 필수 요소에 포함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63] 에히메현오시마오야마즈미 신사의 일인각력처럼 벼의 영과 스모를 겨루어 벼의 영이 이기면 풍년이 된다고 믿어 항상 지는 경우도 있다.
당문산 신사 스모(이시카와현하구키시 하구키 신사), 연방 스모(이바라키현시오라이시 연방 가시마요시다 신사), 琴平 스모 (이바라키현키타소마군토네정 누노카와 琴平 신사) 등이 신사 스모의 예시이다.
에도 중기 이후의 대相撲는 특히 신도의 영향이 강하다.[63] 력사의 토비라이 때 박수를 치고, 요코즈나가 주련縄을 감게 된 것은 요시다씨가의 허가에 따른 것이다. 도쿄에서의 본장소 전날에는 도쿄도 스미다구의 노미스쿠네 신사에서 일본스모협회 간부, 심판부 간부 및 스모차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즈모타이샤쿄의 신관에 의해 신사가 거행된다.
도비오마쓰리는 본장소 전일에 입행사가 제주가 되어 행하는 제사이다. 관정 3년(1791년) 정이대장군 · 도쿠가와 이에나리의 상람 스모 때, 19세 요시다 추후(요시다 젠자에몬)가 "방옥개"로 시작한 것이다.
메이지 중기까지 스모장은 여자금제였고, 메이지 시대까지 여자는 관전할 수 없었으며, 현재도 도효 위에 여성이 오르는 것을 꺼린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관습에 대해서는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77][78][79]
7. 스모의 국제화
국제스모연맹(IFS)은 1992년에 설립되어 스모 세계 선수권 대회와 유럽 스모 선수권 대회와 같은 국제 선수권 대회 개최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스모의 발전을 장려하기 위해 설립되었다.[53][54][55][56] 연맹의 주요 목표는 스모가 올림픽 종목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따라서 아마추어 토너먼트는 체급으로 나뉜다(남자: 85kg 이하 경량급, 115kg 이하 중량급, 115kg 초과 헤비급, 그리고 체급 제한 없는 오픈급). 그리고 여자 선수를 위한 경기도 있다(65kg 이하 경량급, 80kg 이하 중량급, 80kg 초과 헤비급, 그리고 체급 제한 없는 오픈급). 스모는 2001년부터 2022년까지 올림픽에서 인정하는 비올림픽 종목 대회인 세계 게임의 종목이었으나, 운동정신과 조직력 부족으로 인해 향후 세계 게임 프로그램에서 제외되었다.[53][54][55][56] 또한 2010년 창설 이후 세계 격투 게임의 종목이기도 하다.
씨름과 비슷한 격투기는 세계 여러 곳에 존재한다.
이 외에도, 일본계 사람들이 해외에 전파하거나, 대일본 스모 협회의 해외 순회 공연이나, 외국인 스모 선수들의 활약에 자극받아 생겨난 일본식 스모 문화도 볼 수 있다.
7. 1. 일본 국외의 스모
세계 각지에는 씨름과 유사한 격투기가 존재하며, 일본계 사람들이 해외에 전파하거나, 대일본 스모 협회의 해외 순회 공연, 외국인 스모 선수들의 활약에 자극받아 생겨난 일본식 스모 문화도 볼 수 있다.[51][52]일본에서는 아마추어 스포츠로도 스모가 행해지며, 대학생, 고등학생, 초등학생 또는 직장 팀의 회사원들이 참가한다.[47] 공개 아마추어 토너먼트도 개최되며, 이 수준의 스포츠는 대부분의 의식이 생략된다. 프로 스모에 새로 진입하는 대부분은 중학교 졸업생이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스포츠에서 대학 배경을 가진 선수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47] 일본스포츠과학대학과 일본대학은 가장 많은 프로 스모 레슬러를 배출한 대학이며, 일본대학은 1973년 최초이자 유일하게 대학 배경을 가진 레슬러로서 요코즈나 계급에 오른 와지마 히로시를 배출했다.[48] 가장 성공적인 아마추어 레슬러는 마쿠시타 츠케다시 또는 산단메 츠케다시 자격으로 마쿠시타(3부 리그) 또는 산단메(4부 리그)에서 프로 스모에 진입할 수 있다.
아마추어 스모는 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전국 주요 도시에서 정기적으로 대회가 열린다.[50] 이 스포츠는 오랫동안 서부 해안과 하와이에서 인기가 많았으며, 일본계 이민자들의 축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계 이민자 사회를 넘어 다양한 민족, 문화, 스포츠 배경을 가진 선수들이 참가하고 있다.

아마추어 스모는 유럽에서 특히 강세다. 많은 선수들이 유도, 프리 스타일 레슬링 또는 삼보와 같은 다른 그래플링 스포츠 배경에서 이 스포츠에 참여한다. 일부 동유럽 선수들은 일본 프로 스모에 스카우트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는 일본 아마추어 선수들과 마찬가지다. 현재까지 가장 주목할 만한 선수는 불가리아 출신의 고토오슈로, 과거 아마추어 스모 선수 출신으로 최고 순위의 외국인 선수이다.
국제스모연맹(IFS)은 1992년에 설립되어 스모 세계 선수권 대회와 유럽 스모 선수권 대회와 같은 국제 선수권 대회 개최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스모의 발전을 장려하기 위해 설립되었다.[53][54][55][56] 아마추어 토너먼트는 체급별로 나뉘며, 여자 선수를 위한 경기도 있다. 스모는 2001년부터 2022년까지 세계 게임의 종목이었으나, 운동정신과 조직력 부족으로 인해 향후 세계 게임 프로그램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2010년 창설 이후 세계 격투 게임의 종목이기도 하다.
스모는 일본 이민자들과 함께 브라질로 건너가 남아메리카에도 전파되었다. 브라질에서의 첫 스모 대회는 1914년 8월 31일, 천황탄생일을 기념하여 상파울루주 과다바라 농장에서 개최되었다.[51] 후쿠오카현, 구마모토현 출신의 3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참가하여 일본식 본격적인 도효에서 진행되었다. 1962년에는 브라질 스모 연맹이 결성되었고, 1966년에는 브라질 정부로부터 공인된 스포츠 단체가 되었다. 1983년에는 일본과 브라질 양국 스모 연맹이 발기인이 되어 국제 스모 협의회를 발족시켰으며, 1985년에는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의 스모 연맹이 국제 스모 협의회에 가입했다. 1986년에는 파라과이로의 일본 이민 50주년 기념 사업으로 전파라과이 스모 대회가 개최되어 일본,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의 4개국에서 선수들이 참가했다. 일본에서의 원정은 1951년에 시작되어, 대스모에서 아마추어 스모의 선발 선수들이 원정을 계속 이어갔다.
7. 2. 외국인 스모 선수
1900년대 이후 외국 출신 스모 선수의 수가 증가했다.[50][51][52] 특히 몽골 출신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아마추어 스모는 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전국 주요 도시에서 정기적으로 대회가 열리고 있다.[50] 2007년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US 스모 오픈에는 3,000명의 관객이 참석했다.[50] 이 스포츠는 오랫동안 서부 해안과 하와이에서 인기가 많았으며, 일본계 이민자들의 축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계 이민자 사회를 넘어 다양한 민족, 문화, 스포츠 배경을 가진 선수들이 참가하고 있다.아마추어 스모는 유럽에서 특히 강세다. 많은 선수들이 유도, 프리 스타일 레슬링 또는 삼보와 같은 다른 그래플링 스포츠 배경에서 이 스포츠에 참여한다. 일부 동유럽 선수들은 일본 프로 스모에 스카우트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는 일본 아마추어 선수들과 마찬가지다. 현재까지 가장 주목할 만한 선수는 불가리아 출신의 고토오슈로, 과거 아마추어 스모 선수 출신으로 최고 순위의 외국인 선수이다.
브라질은 또 다른 아마추어 스모 중심지이다. 20세기 전반에 일본 이민자들이 도입했다. 첫 번째 브라질 스모 토너먼트는 1914년에 열렸다.[51] 스모는 브라질 남부, 특히 상파울루의 이민자 중심지에 뿌리를 내렸으며, 현재는 일본 외 유일한 스모 전용 훈련 시설이 있다.[52] 1990년대부터 브라질 스모 단체들은 일본계 브라질인이 아닌 브라질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고, 2000년대 중반에는 참가자의 약 70%가 일본계 브라질인 사회 외부에서 왔다.[51] 브라질은 여성 스모의 중심지이기도 하다.[52] 소수의 브라질 선수들이 류코 고(Ryūkō Gō)와 카이세이 이치로(Kaisei Ichirō)를 포함하여 일본 프로 스모로 진출했다.
조지아는 원래 레슬링이나 유도 등 격투기가 성행했던 나라이다. 조지아 출신인 토치노진 다카후미(栃ノ心剛史)의 대일본 프로레슬링(大相撲)에서의 활약이 알려지면서, 그의 팬클럽이 설립되거나, 스모를 배우거나, 역사로 일본에 건너가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83]
8. 기타
8. 1. 스모 선수의 생활
프로 스모 선수는 매우 엄격한 생활 방식을 따른다. 스모 협회는 선수들의 행동을 매우 상세하게 규정하며, 규칙 위반은 해당 선수와 그의 스테이블 마스터 모두에게 벌금 및/또는 출장 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37] 예를 들어, 협회는 선수들이 자동차 운전을 금지하는데, 이는 많은 선수들이 너무 커서 운전대 뒤에 앉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37]스모에 입문하면 사무라이의 에도 시대 머리 모양과 유사한 톱노트 또는 ''ちょんまげ''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이 예상된다. 또한, 공공장소에서는 ''ちょんまげ''와 전통 일본 의상을 착용하여 자신이 스모 선수임을 즉시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복의 종류와 질은 선수의 계급에 따라 다르다. ''조니단'' 이하의 ''力士''는 겨울에도 ''유카타''라고 하는 얇은 면 로브만 입을 수 있다. 또한, 외출 시에는 ''게타''라고 하는 나무 샌들의 일종을 신어야 한다.[37] ''마쿠시타'' 및 ''산단메'' 등급의 선수는 ''유카타'' 위에 전통적인 짧은 외투를 입을 수 있으며 ''조리''라고 하는 짚 샌들을 신을 수 있다. 고위급 ''세키토리''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비단 로브를 입을 수 있으며, 의복의 질이 상당히 향상된다. 또한 공식 행사에서는 ''大銀杏''(큰 은행나무 잎)이라고 하는 더 정교한 형태의 톱노트를 착용해야 한다.
스테이블 생활에서도 유사한 차이가 있다. 하위 선수들은 훈련을 위해 오전 5시경에 가장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세키토리''는 오전 7시경에 시작할 수 있다. ''세키토리''가 훈련할 때, 하위 선수들은 점심 요리 보조, 청소, 목욕 준비, ''세키토리''의 수건을 들거나 땀을 닦는 등의 잡일을 할 수 있다. 훈련 후 목욕 순서와 점심 식사 순서에도 계급에 따른 위계가 유지된다.
선수들은 일반적으로 아침 식사를 하지 않으며, 많은 점심 식사 후에 ''낮잠''과 같은 낮잠을 자도록 되어 있다.[16] 가장 일반적인 점심 식사는 탁상에서 다양한 고기와 채소를 넣어 끓인 전통 스모 요리인 ''찬코나베''이며, 일반적으로 밥과 함께 먹는다.[16] 스모 선수들은 또한 많은 양의 맥주를 마신다.[41]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많은 점심 식사 후 잠을 자는 이러한 방식은 선수들이 더 많은 체중을 증가시켜 더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오후에는 하위 선수들이 다시 청소나 다른 잡일을 하는 반면, ''세키토리''는 휴식을 취하거나 팬 클럽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어린 선수들은 수업에도 참석하지만, 그들의 교육은 스모가 아닌 또래의 일반적인 교육 과정과 다르다. 저녁에는 ''세키토리''가 후원자들과 외출할 수 있지만, 하위 선수들은 일반적으로 스테이블에 머무르며, 스테이블 마스터 또는 ''세키토리''가 외출할 때 그의 ''付き人''(시중드는 사람)으로 동행하는 경우를 제외한다. 고위급 스테이블 구성원의 ''付き人''이 되는 것은 일반적인 의무이다. ''세키토리''는 스테이블의 크기 또는 경우에 따라 ''세키토리''의 크기에 따라 여러 명의 ''付き人''을 둔다. 하위 선수들은 스테이블 청소, 심부름, 심지어는 매우 큰 ''세키토리''의 세탁이나 마사지 등 가장 단순한 일을 맡고, 고위급 ''付き人''만이 ''세키토리''가 외출할 때 동행한다.
''세키토리''는 스테이블에 자신의 방을 가지거나 기혼 선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파트에 살 수 있는 반면, 하위 선수들은 공동 기숙사에서 잠을 잔다. 따라서 스모 선수의 세계는 봉사하는 하위 선수와 봉사를 받는 ''세키토리''로 크게 나뉜다. 최악의 일을 맡는 신입 선수들에게는 생활이 특히 고되며, 이 단계에서 중퇴율이 높다.
스모 생활의 부정적인 건강 영향은 나중에 나타날 수 있다. 스모 선수들의 평균 수명은 65세이며,[41] 이는 평균 일본 남성보다 약 15년 짧은데, 이는 식단과 운동이 선수의 신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체질량이 높은 사람은 사망 위험이 더 높다.[38][39] 많은 선수들이 제2형 당뇨병이나 고혈압을 앓고 있으며, 축적된 엄청난 체질량과 지방으로 인해 심장마비에 걸리기 쉽다. 과도한 알코올 섭취는 간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며, 과도한 체중으로 인한 관절에 대한 스트레스는 관절염을 유발할 수 있다.[41] 스모 선수들이 받는 반복적인 머리 충격은 권투 선수에게서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하게 장기적인 인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43][40] 21세기에 들어 체중 증가 기준이 완화되어 선수들의 건강을 증진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41][42][43]
8. 2. 스모 관련 용어
무거운 체급의 역사를 앙코, 가벼운 체급의 역사를 소프라고 부른다. 가벼운 체급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불리하다고 여겨지지만, 가벼운 체중을 이용한 민첩한 기술로 큰 앙코 역사를 쓰러뜨리는 경기는 큰 볼거리가 된다. 최근에는 근력 훈련을 중시한 치요노후지 貢이나 초대 기리시마와 같이 소프 체형의 유명한 요코즈나(横綱), 오제키(大関)가 등장하고 있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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