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다윈주의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신다윈주의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유전학적 지식을 통합하여 19세기 말에 등장한 진화론의 한 분파이다.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은 변이의 기원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지만, 신다윈주의는 멘델의 유전 법칙을 수용하여 유전적 변이가 자연 선택의 대상이 된다고 보았다. 20세기 초 집단 유전학의 발전과 함께 현대 종합설로 발전하였으며, 자연 선택을 진화의 주요 기전으로 강조한다. 현재는 진화 심리학, 진화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어 보편적 다윈주의로 이어지고 있으며, 공생, 중립설, 적응주의 등 다양한 비판과 논쟁이 존재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신다윈주의 | |
---|---|
현대 진화 이론 | |
다른 이름 | 종합 진화설, 현대 종합설 |
분야 | 진화생물학, 유전학 |
내용 |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진화론과 그레고어 멘델의 유전 이론을 통합한 진화 이론 |
역사 | |
형성 시기 | 1930년대 ~ 1940년대 |
주요 인물 | 로널드 피셔 J. B. S. 홀데인 시월 라이트 줄리언 헉슬리 에른스트 마이어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 조지 게일로드 심슨 |
주요 내용 | |
진화의 기본 단위 | 유전자 |
진화의 원동력 | 돌연변이 자연선택 유전적 부동 |
진화의 과정 | 점진적 진화 종분화 |
진화의 증거 | 화석 기록 비교 해부학 분자 생물학 |
2. 성립 배경
19세기 다윈의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론은 진화 메커니즘은 제시했지만, 형질 전달 메커니즘은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라마르크의 획득 형질의 유전은 여전히 유력한 대안이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트 바이스만과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는 획득 형질 유전을 부정했다.
바이스만은 생식세포(정자와 난자)를 생산하는 생식질이 신체 다른 조직을 만드는 체세포와 분리된다는 생식질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생식질과 체세포 간 소통이 어렵다고 보아 획득 형질 유전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바이스만 장벽으로 알려져 있다.
조지 로마네스는 바이스만의 생식질 이론과 자연 선택을 결합하여, 획득 형질 유전 없이 자연 선택만으로 진화가 일어난다는 개념을 "신다윈주의"라고 칭했다.
2. 1. 19세기
찰스 다윈은 1859년에 출판된 『종의 기원』에서 자연 선택을 통한 진화론을 제시하여 과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변이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발생 과정의 자극이나 음식에 의해 변이가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변이의 존재와 비융합적 유전만을 확인했을 뿐, 깊이 연구하지는 않았다.다윈 사후, 라마르크설, 정향 진화설, 도약설 등 다양한 대안 이론들이 등장했다. 알프레드 월리스와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은 다윈의 견해에서 라마르크적 진화를 인정했던 판게네시스 설을 제거한 새로운 버전의 진화론을 제안했는데, 다윈의 제자였던 조지 로마네스는 이를 신다윈주의라고 명명했다.
월리스와 바이스만은 획득 형질의 유전을 부정했다. 특히, 바이스만은 생식세포(정자와 난자)를 생산하는 생식질이 발달 초기에 신체 조직을 만드는 체세포와 분리된다고 보았다. 그는 생식질과 체세포 사이의 명확한 소통 수단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획득 형질의 유전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 바이스만 장벽)
2. 2. 20세기 초
그레고어 요한 멘델의 연구는 1900년에 위고 데 브리스와 카를 에리히 코렌스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영국의 유전학자 윌리엄 베이트슨은 이 소식을 런던 왕립원예협회에서 보고했다. 이 발견은 부모의 형질이 융합적으로 자손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형질이 독립성과 완전성을 유지한 채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초기의 멘델 학자들은 자연 선택과 상반되는 것으로 간주하여, 오히려 여러 유전적 변이가 동시에 일어난다는 도약설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칼 피어슨과 월터 웨들론이 이끄는 생물 측정학 교실은 이에 대해 경험적인 증거는 개체가 멘델의 설이 말하는 것처럼 불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존재임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멘델의 설과 진화의 관련성은 불분명한 채로 논쟁은 과열되었다. 특히 월터의 제자였던 베이트슨은 생물 측정학의 주장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생물 측정학과 멘델 유전학의 대립은 이후 20년 동안 지속되었다.
토머스 헌트 모건은 도약 진화론자로서 유전학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초파리로 돌연변이가 신종을 형성하는 것을 증명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초파리에 관한 그의 연구는 돌연변이가 한 번의 단계로 신종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자연 선택이 작용하는 데 필요한 집단 내의 유전적 변이를 증가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멘델 유전학과 염색체의 유전 이론의 합류를 돕기도 했다.
2. 3. 집단 유전학의 성립
로널드 피셔, J. B. S. 홀데인, 슈얼 라이트의 연구를 통해 집단 유전학이 발전하면서 멘델 유전학과 자연 선택이 통합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피셔는 1918년 논문에서 생물 측정학자에 의해 측정된 변이의 연속성이 개별적으로 분리된 유전자의 작용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논했고, 1930년 저서 《자연 선택의 유전적 이론》에서 멘델 유전학이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와 일관성이 있음을 보였다.1920년대에 홀데인은 일련의 논문에서 큰붉은밤나방의 산업 암화와 같은 현실 세계의 자연 선택 사례에 수학적 분석을 적용하여, 자연 선택이 피셔가 가정한 것보다 더 빠르게 작용함을 보였다.
슈얼 라이트는 고립된 소규모 교배 집단 연구를 통해 유전 부동을 발견했다. 1932년 논문에서는 소규모 개체군에서의 이종 교배와 유전 부동이 그들을 적응의 정점에서 밀어내고, 자연 선택이 새로운 적응의 정점으로 그들을 밀어 넣는 적응 경관(적응 지형)의 개념을 제안했다. 라이트의 모델은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나 에른스트 마이어와 같은 현장 연구자에게 영향을 주었다.
피셔, 홀데인과 라이트의 연구는 집단 유전학을 창설했다. 집단 유전학은 더 폭넓은 아이디어의 결정체인 종합설의 선구이다.
3. 현대적 종합
1918년부터 1947년까지 진화 생물학의 현대 종합이 발전하면서, 신다윈주의라는 용어는 그 당시의 진화 이론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에른스트 마이어는 1984년에 "신다윈주의"라는 용어가 20세기 초의 종합 이론을 지칭하는 데 잘못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같은 출판물에서는 "신다윈주의"를 현재 합의된 진화론을 지칭하며,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도 "신다윈주의"를 현대적인 형태의 진화 생물학을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는 모건 연구실에서 박사후 과정을 거친 러시아 출신 유전학자로, 유전학을 자연의 개체군에 적용한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이다. 1937년 저서 『유전학과 종의 기원』에서 피셔, 홀데인, 라이트의 수학적인 업적을 쉽게 제시하고, 자연 선택이 집단의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도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20년대 러시아 유전학자 세르게이 체트베리코프|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Четвериковru의 영향을 받았는데, 체트베리코프는 열성 유전자 역할을 밝혀냈지만 리센코주의로 인해 연구가 중단되었다.
에드먼드 포드는 생태 유전학 분야를 창시하여 자연 선택의 작용을 실험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유전적 다형성을 정의하고, 인간 혈액형 다형성이 질병 저항력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에른스트 마이어는 1942년 저서 『분류학 및 종의 기원』에서 이소적 종분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생물학적 종" 개념을 제안했다. 조지 게이로드 심슨은 1944년 저서 『진화의 속도와 양식』에서 고생물학이 종합설과 일치함을 보였다. 레드야드 스테빈스는 1950년 저서 『식물의 변이와 진화』에서 교잡과 배수성이 식물 진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줄리언 헉슬리는 자연 선택설을 옹호하고 진화론을 대중화했으며, 『진화: 현대적 종합』을 통해 다양한 분야 이론가들을 결집시켰다.
3. 1. 현대 종합설의 개념
현대 종합설의 주요 개념은 다음과 같다.[1]# 모든 진화적 현상은 알려진 유전적 메커니즘과 자연 속 증거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 진화는 점진적이다. 작은 유전적 변화가 자연 선택에 의해 누적되어 일어난다. 종 간, 계통 간 불연속성은 생식 격리에 의한 종분화와 절멸에 의한 점진적인 진화의 결과이다.
# 자연 선택은 변화를 설명하는 주요 메커니즘이다. 장기간 지속되고 누적될 때 약간의 유리함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전적 부동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작다. 처음에는 도브잔스키가 유전적 부동을 지지했지만, 나중에 생태 유전학에 의해 그 중요성이 낮아졌다.
# 자연 개체군의 유전적 다양성은 진화의 핵심 요인이다. 자연에서의 자연 선택의 강도는 예상보다 컸다. 생태적 지위 경쟁과 같은 생태학적 요인과 유전자 확산을 방해하는 요인이 중요하다.
# 소진화에서 대진화까지 역사적 관찰을 통해 추론을 이끌어내는 접근 방식이 고생물학에서 제안된다. 진화 역사의 우연성은 서로 다른 수준의 선택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점진주의는 진화가 일정한 속도로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체군이 생식 격리됨으로써 종분화가 일어난다는 생각은 격렬하게 논의되었다. 식물에서는 어떤 종 형성의 관점에서도 배수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세대를 거치면서 집단 내 대립 유전자의 빈도가 변화한다"는 진화의 공식은 얼마 후에 정의되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발생학은 종합설에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굴드에 의한 개빈 드 비어의 연구 보고서는 예외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4. 개량 및 세련화
동물행동학은 동물 행동 연구에 정량적 접근 방식을 도입하고, 현장 연구를 세련화했다. 니코 틴버겐은 근접 요인과 궁극 요인 개념을 통해 생리학이나 신경학과 같은 분야와 진화학의 관련성을 명확히 했다. 데이비드 락은 생활사 전략 개념을 도입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W.D. 해밀턴, 존 메이너드 스미스, G.C. 윌리엄스 등은 유전자 중심 진화관을 발전시키고, 적응주의적 접근 방식을 세련화했다. 이들의 이론은 "종의 보존을 위한 행동"이라는 낡은 개념을 뒤엎고, 생물 행동의 진화도 같은 맥락에서 다룰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자기 조직화 이론과 기무라 모토의 분자 진화 중립설도 자연 선택의 역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현대 종합설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DNA나 수학적인 현대 유전학, 혈연 선택, 이타적 행동, 종분화와 같은 현상의 분석 등 다윈이 알 수 없었던 개념의 해명과 과학적 발견으로 다윈의 자연 선택 아이디어는 확장되었다.
5. 보편적 다윈주의
보편적 다윈주의는 진화의 개념과 틀을 생물 진화 이외의 영역으로 확대하여 적용하는 분야, 학문, 사상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었다.
- 밈(meme)학: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 11장에 등장하는 '밈' 개념을 인간 행동 이해에 적용한 것이다.[1] 이와 유사한 생각은 이전에도 있었으며, 가브리엘 타르드의 『모방의 법칙』(2007년, 원저는 1890년) 등이 있다.
- 진화경제학: 상품, 기술, 행동, 제도, 조직, 시스템, 지식 등 경제의 여러 중요한 범주를 진화의 관점에서 살펴본다.[2]
- 진화심리학: 감정, 선택, 인지 능력이 생물학적 자연 선택의 결과라고 가정한다.
- 진화인류학: 영장류에서 인간으로의 생물학적 진화뿐만 아니라 문화 형성까지 포함하여, 특히 '유전자·문화 공진화'라는 지도 이념을 가진 흐름이 있다.[3] 이중 상속 이론이라고도 한다.
- 진화 인지론
- 진화 언어학 또는 언어 진화론
- 진화 게임 이론: 존 메이너드 스미스의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SS) 개념을 바탕으로 발전한 게임 이론이다. 일반적인 게임 이론과 달리 플레이어의 합리성을 거의 또는 전혀 가정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4]
6. 신다윈주의에 대한 비판
린 마굴리스는 진화의 주요 원동력은 공생이며, 경쟁을 강조하는 신다윈주의는 오류라고 주장했다.[5] 이마니시 킨지도 공생의 관점에서 신다윈주의를 비판했다. 요모 테츠야는 대장균을 이용한 실험에서 유리한 돌연변이를 가진 대장균이 일반적인 대장균을 완전히 도태시키지 않고 공생 관계를 유지함을 보였다.
키무라 모토의 중립설은 한때 자연 선택설과 대립하는 이론으로 여겨졌으나, 키무라 모토는 중립설이 자연 선택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현재는 종합설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적응주의를 비판하며, 적응 외의 요인이나 개체 발생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생 생물학자 브라이언 굿윈은 발생적 제약이 강력하기 때문에 자연 선택이 작용할 여지는 없다고 주장했다. 구조주의 생물학의 입장에서는 "돌연변이의 우연성이나 자연 선택의 원리만이 진화의 본질은 아니다", "DNA = 생물은 아니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참조
[1]
서적
ミーム—心を操るウイルス
講談社
1998
[2]
서적
進化経済学ハンドブック
共立出版
2006
[3]
서적
ヒトはどのように進化してきたか
ミネルヴァ書房
2011
[4]
서적
進化とゲーム理論―闘争の論理
産業図書
1985
[5]
웹사이트
実験室で進化を作る。定説に挑む!
http://www.athome-ac[...]
[6]
논문
Evolution beyond neo-Darwinism: a new conceptual framework
2015
[7]
논문
"[논단] 현대 진화생물학의 현황과 발전 전망"
http://www.dbpia.co.[...]
범양사
2005-0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