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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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무문은 경복궁의 북문으로, 1433년(세종 15년)에 건립되어 경복궁의 사대문을 완성했다. 1475년(성종 6년) 서거정의 제안으로 '신무문'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865년(고종 2년)에 재건되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보존되었으나 군부대 주둔으로 폐쇄되었다가,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집옥재 권역과 함께 개방되었다. 평소에는 닫아두었다가 비상시나 왕의 비밀 행차에 사용되었으며, 신하들의 공훈을 기록한 회맹단이 있어 회맹제에 이용되기도 했다. 신무문 인근에는 암문인 계무문과 광무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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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문 | |
---|---|
지도 | |
개요 | |
위치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1 |
좌표 | 37°34′45.1″N 126°58′39.4″E |
종류 | 궁궐 문 |
별칭 | 숭지문(崇智門) |
역사 | |
건설 | 1469년 (성종 즉위년) |
창건자 | 성종 |
재건 | 1975년 ~ 1976년 |
구조 | |
양식 | 중층 문루 |
지붕 | 우진각 지붕 |
특징 | 경복궁 북문 |
기타 | |
문화재 지정 | 미지정 |
2. 역사
경복궁 건립 당시 북쪽 담은 목책으로 이루어졌고 북문은 없었는데, 1433년(세종 15년)에 신무문이 건립되면서 경복궁의 4대 문이 모두 갖추어졌다.[2][1]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신무문'''(神武門)이라는 이름은 1475년(성종 6년) 8월 23일 서거정이 후보로 올려 성종이 낙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3][4][5] "신무"라는 이름은 네 방향을 관장하는 동물신 중 북쪽을 담당하는 현무에서 따 온 것이며[6], "신묘하게 뛰어난 무용"으로 풀이되기도 한다.[7]
이후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소실되었다가[6] 1865년(고종 2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되었으며, 중건 당시 현판은 이현직이 썼다.[8][1] 신무문의 성벽에는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 천하가 태평한 봄날과 같다.)"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7] 현재의 신무문은 건춘문과 규모가 같다.[4]
일제강점기에도 신무문은 보존되었으나,[9]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군부대가 경복궁에 주둔하면서 폐쇄되었다. 이후 청와대 정문과 마주하고 있어 보안 및 경호 등의 이유로 비공개 상태였다가, 2006년 9월 29일 대통령이던 노무현의 의지에 따라 집옥재 권역과 함께 개방되었다.[6] 1963년 1월 21일 경복궁 전체가 대한민국의 사적 제117호로 지정될 때 신무문도 함께 포함되어 지정되었다.[21]
2. 1. 조선시대
경복궁 건립 당시 북쪽 담은 목책으로 이루어졌고 북쪽 문은 없었는데, 1433년(세종 15년)에 신무문이 건립되면서 경복궁의 4대 문이 모두 갖추어졌다.[2][1]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신무문'''(神武門)이라는 이름은 1475년(성종 6년) 8월 23일 서거정이 후보로 올려 성종이 낙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3][4][5] "신무"라는 이름은 네 방향을 관장하는 동물신 중 북쪽을 담당하는 현무에서 따 온 것이며[6], "신묘하게 뛰어난 무용"으로 풀이되기도 한다.[7]
이후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소실되었다.[6]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된 것은 1865년(고종 2년)이며, 중건 당시 현판은 이현직이 썼다.[8][1] 신무문의 성벽에는 온 세상이 태평성대를 누리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 천하가 태평한 봄날과 같다.)"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7] 한편 현재의 신무문은 건춘문과 규모가 같다.[4]
2. 2. 일제강점기 이후
신무문은 일제강점기에도 보존되었다.[9]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군부대(당시 30사단, 훗날의 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10])가 경복궁에 주둔하면서 폐쇄되었다. 이후 청와대 정문과 마주하고 있어 보안 및 경호 등의 이유로 비공개 상태였다가, 2006년 9월 29일 대통령이던 노무현의 의지에 따라 집옥재 권역과 함께 개방되었다. 신무문 개방으로 경복궁에는 비공개 권역이 사라지게 되었다.[6]1963년 1월 21일 경복궁 전체가 대한민국의 사적 제117호로 지정될 때 신무문도 함께 포함되어 지정되었다.[21]
3. 용도
신무문은 음기가 강하다는 이유로 평소에는 닫아두었다가, 비상시나 왕의 비밀 행차 때 사용되었다.[11] 또한 신하들의 공훈을 기록한 회맹단이 있어 왕이 회맹제[12]에 참석할 때 주로 이용되었고,[13][14][15] 영조가 생모 숙빈 최씨의 사당인 육상궁에 참배할 때 경복궁 터를 길로 삼으면서 신무문을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4]
1519년 기묘사화 당시 중종이 불러들인 훈구대신들이 신무문으로 입궐하였다. 그래서 "신무의 난"으로 칭해지기도 한다.[11]
4. 암문
신무문 주변에는 계무문과 광무문이라는 두 개의 암문이 있는데, 이들 암문의 이름에는 모두 "무(武)"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16].
4. 1. 계무문
경복궁 신무문 우측에 있는 암문으로, "계무"는 북쪽의 현무를 뜻한다. 1868년(고종 5년)에 건립되었으며, 돌로 만든 월문[17]의 형태이다. 융문당으로 향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건청궁 장안당 북행각의 서북쪽에 위치하며[18], 이 문을 들어서면 건청궁 무청문이 나온다. 실제로 신무문은 궐 밖에서 건청궁으로 바로 통하는 역할을 했던 문이었다. 그밖에 후원에서 문과 시험을 치를 때, 이와 관련한 관리들이 주로 이용하던 문이기도 하다.[19] 계무문의 현판은 전서체를 돌에 새긴 금석문의 형태이며, 그 중 "계(癸)"자는 소전으로 조각되어 알아보기가 어렵다.[7]4. 2. 광무문
계무문 우측에 있는 암문이며, 계무문처럼 돌로 만든 월문의 형태이다. "광무"란 "무용을 넓힌다."라는 뜻이며, 그 건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경농재로 향하는 통로이며, 건청궁 경화문 앞 녹산 언덕에 위치한다[18]. 광무문의 현판도 전서체를 돌에 새긴 금석문의 형태이다[7].5. 기타
신무문 좌측에는 713전투경찰대가 상주하는 경호상황실이 있다. 이 상황실은 31.36평 규모의 한식 건물이다.[2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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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신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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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답사여행의 길잡이: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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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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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경복궁 북문 '신무문' 45년만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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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06-09-29
[7]
웹사이트
문화재청 조선고궁 - 이야기로 만나는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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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2
[8]
실록
고종실록 2권, 고종 2년 9월 17일 기묘 2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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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출판사
200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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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반란의 음험한 그림자-신무문(神武門)
https://news.naver.c[...]
CBS노컷뉴스
201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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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연합칼럼> 신무문에 드리워진 모반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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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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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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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naver.c[...]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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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보 호외(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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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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