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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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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도는 고구려와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승려이다. 374년 고구려에 건너와 불교를 포교했으며, 375년 소수림왕에 의해 이불란사에 머물렀다. 여러 기록을 통해 신라 불교 전래와 관련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신라 불교는 아도에 의해 시작되어 고구려 불교의 영향을 받았고, 양나라 사신의 도래를 계기로 국가 공인에 이르렀다고 여겨진다. 그는 한국 불교 발전에 기여했으며, 고구려의 불교 수용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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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
기본 정보
이름아도
한자 표기阿道
출생지중국동진
종교불교
소속 사찰이불란사(伊弗蘭寺)
생애
활동 시기미상
주요 활동불교 전파
스승미상
제자미상
기타
관련 기록삼국사기
삼국유사
참고 자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9369)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https://ko.wikisource.org/wiki/글로벌_세계_대백과사전/동양사상/동양의_사상/인도의_사상/인도의_정치·경제사상#인도_불교문화의_우리나라_전래)

2. 기록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등 여러 문헌에 아도와 관련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아도는 다음과 같은 승려로 전해진다.



528년 (신라 법흥왕 14년)에 처음으로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의 묵호자는 아도와 동일인물이라고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그러나 372년에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인물과 528년에 신라에 불교를 전한 인물이 동일하다고 생각하기 어려워, 아도에 대한 전승은 혼란스럽다.

전진순도고구려에 처음 불교를 전한 2년 후인 374년 (고구려 소수림왕 4년), 동진의 승려 아도도 고구려에 건너와 불교를 포교했다. 375년 (고구려 소수림왕 5년), 소수림왕은 성문사(省文寺)를 창건하여 순도를 머물게 하고,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창건하여 아도를 머물게 했는데, 이것이 한국 불교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2. 1. 신라 불교 전래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불교는 눌지왕묵호자고구려에서 일선군으로 오면서 시작되었다.[5] 일선군의 모례는 묵호자에게 굴실을 제공했고, 묵호자는 양나라 사신이 가져온 향의 용도를 알려주고 왕녀의 병을 고쳐주었다.[5]

소지왕 때 아도가 모례의 집에 왔으며, 수년 후 병 없이 죽었지만, 3명의 시자가 경률을 강의하여 신자가 생겼다.[5] 법흥왕은 불교를 신봉하려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하게 되었다.[5]

3. 고증

여러 학자들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고승전》의 기록을 비교 분석하여 신라 불교 전래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마쓰모토 야스카즈는 신라 불교 전래의 핵심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5]

# 신라 불교의 전래자는 아도였다.

# 신라 불교의 기원적 연대는 대통 원년= 법흥왕 정미년(527년)에 찾을 수 있다.

# 신라 불교는 고구려 불교의 전래로 토대가 닦아졌고, 양나라 사신의 도래를 계기로 국가 공인에 이르렀다.

소노다 교는 마쓰모토 야스카즈의 연구를 보충하며 다음을 지적했다.[5]

# 신라 불교의 전래자 아도는 고구려에서 신라 일선군으로 와서 군인 모례의 집에 머물렀다는 것은 여러 전승에 일치한다. 일선군은 지금의 경상북도 선산읍 부근으로, 한강에 이르는 간선 도로에 면해 있어 지리적으로도 납득할 수 있다.

# 아도의 도래 연대를 소지왕 시대나 미추왕 시대로 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 법흥왕 초년(520년경)의 도래로 하는 것이 타당하며, 곧 신라 불교의 초전 연대이다.

# 신라 불교의 기원적 연대를 법흥왕 15년(528년)으로 하는 것은 《삼국사기》의 연대 오기이며, 정미년(527년)이 맞는다는 것은 마쓰모토 야스카즈가 고증한 바와 같다.

# 신라 불교는 고구려 불교의 사적 전래로 시작되었지만, 양나라 사신(승려 원표)의 도래를 계기로 공인에 이르렀다는 것은 여러 전승에 공통된다. 특히 양나라 사신이 가져온 분향에 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문제시되고 있으며, 역사적 사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양나라 사신이 도래한 기록은 없지만, 조공 사신의 귀국에 따랐을 것으로 보이며, 521년 혹은 522년으로 보인다.

4. 공적

아도는 동진에서 고구려로 불교를 전한 승려이다. 374년(고구려 소수림왕 4년)에 고구려에 건너와 불교를 포교했다. 375년(고구려 소수림왕 5년) 소수림왕은 소문사(省文寺)를 창건하여 순도를,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창건하여 아도를 머물게 했다.

고구려 소수림왕태학이 설치되어 유교 교육이 이루어졌는데, 전진순도가 고구려에 불교를 전래한 것은 낙랑군·대방군을 통해 한문화를 수용할 수 있었던 사회적 발전과 관련이 있다.[6] 순도의 고구려 입국 3년 후, 소문사와 이불란사가 건립되어 각각 순도와 아도가 거주했으며, 신라와 달리 불교 수용을 둘러싼 갈등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6] 이는 불교를 신봉하던 낙랑군·대방군 민을 통해 불교 수용의 토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6]

참조

[1] 뉴스 묵호자(墨胡子) http://encykorea.aks[...]
[2] 서적 인도 불교문화의 우리나라 전래 https://ko.wikisourc[...] グローバル世界大百科事典
[3] 문서 三國史記/卷18
[4] 문서 三國遺事/卷第三#興法第三
[5] 뉴스 東アジアにおける仏教の伝来と受容 関西大学東西学術研究所 1989-03
[6] 뉴스 5호16국·남북조 상쟁기 이주민과 고구려·백제 http://contents.nahf[...] 国史編纂委員会
[7] 서적 삼국사기 1145
[8] 문서 한국사 > 고대사회의 발전 > 삼국의 성립과 발전 > 고대문화의 발전 > 아도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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