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사 미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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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즈사 미치요는 일본의 가수이자 배우로, 1943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2020년 사망했다. 1962년 "보사 노바 데 키스"로 데뷔하여, 1963년 발표한 "곤니치와 아카찬"으로 제6회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탱고에서 제이팝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발표했으며, 1974년 "후타리데 오사케오"로 제16회 일본 레코드 대상 대중음악상을, 1976년 "메란코리"로 제18회 일본 레코드 대상 최우수 편곡상을 수상했다. 또한 뮤지컬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하며 배우로도 활동했다. 1979년에는 레코드 회사를 옮기고, 198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앨범을 발매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2020년 심부전으로 사망했으며, 사후 제62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특별 공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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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사 미치요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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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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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하야시 미치요 |
출생 | 1943년 6월 4일 |
출생지 |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하카타구 |
사망 | 2020년 1월 29일 |
사망지 | 도쿄도 |
국적 | 일본 |
혈액형 | O형 |
직업 | 배우, 가수 |
활동 기간 | 1962년 - 2020년 |
장르 | 가요곡, 팝 음악 |
레이블 | 킹레코드 (1962년 - 1979년) CBS 소니 (1979년 - 2020년) |
소속사 | 아라베스크 |
배우자 | 와다 코지 |
2. 경력
아즈사 미치요는 다카라즈카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와타나베 프로덕션에 합류하여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1963년, 에이 로쿠스케가 작사하고 나카무라 하치다이가 작곡한 노래 〈안녕하세요 아기〉를 발매하여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3] 이후 30년 간 탱고에서 J-pop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발표했다. 1974년에는 〈둘이서 술을〉로 일본 레코드 대상 인기 음악상을,[9] 1976년에는 요시다 타쿠로가 작곡한 〈멜랑콜리〉로 일본 레코드 대상 최우수 편곡상을 받았다.[7]
가수 활동 외에도 뮤지컬 영화와 텔레비전에 출연하며 배우로도 활동했다. 1983년에는 드라마 《여름에 사랑하는 여자들》에 출연했다. NHK 홍백가합전에 자주 참가했으며, 1992년에는 11번째 출연에서 〈안녕하세요 아기〉를 불러 작곡가 나카무라 하치다이를 기렸다.[1]
2. 1. 가수 데뷔 및 초기 활동 (1960년대)
아즈사 미치요(본명 하야시 미치요)는 1943년 5월 4일 일본 규슈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7]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재학 중 와타나베 프로덕션 오디션에 합격하여 상경, 계약 후 학교는 중퇴하였다.[7][15][5] 약 1년간 레슨을 거쳐 1962년 "보사노바 소녀"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킹 레코드에서 "보사 노바 데 키스"로 데뷔, 가수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예명은 와타나베 프로덕션 창업자 와타나베 신[6]이 아즈사 유미처럼 유연하면서 강해지길 바란다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6]1963년 7월, 『꿈에서 만나요』 이달의 노래로 발표된[7] "안녕하세요 아기"(작사·나가후쿠 롯포, 작곡·나카무라 하치다이)가 크게 히트하여 같은 해 12월 제5회 일본 레코드 대상 대상을 받았다.[3] 『제14회 NHK 홍백가합전』에 첫 출전하여 인기 가수 지위를 얻었다. 이 곡은 다음 해 1964년 3월 제36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 개회식 입장 행진곡으로 채택되었다. 1964년 5월 도쿄도 분쿄구 춘산장에서 열린 가쿠슈인 초등과 동창회에 초대되어 쇼와 천황 앞에서 이 노래를 선보여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 연예계 최초 천람 가요곡이 되었다.[8]
이후 1969년 『제20회 NHK 홍백가합전』까지 7년 연속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했으나, 1970년부터 1973년까지 4년간 출연하지 못했다.
2. 2. 이미지 변신과 재도약 (1970년대)
1974년, 아즈사 미치요는 바닥에 앉아 노래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곡 〈둘이서 술을〉(작사: 야마가미 미치오, 작곡: 히라오 마사아키)을 발표하여 오랜만에 큰 인기를 얻었다.[9] 이 곡으로 제5회 일본 가요 대상 방송 음악상과 제16회 일본 레코드 대상 대중상을 수상했고, 제25회 NHK 홍백가합전에 5년 만에 복귀하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1976년에는 요시다 타쿠로가 작곡한 〈멜랑콜리〉(작사: 키타조 타다시, 작곡: 요시다 타쿠로)가 1977년까지 롱런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이 곡으로 1976년 제18회 일본 레코드 대상 편곡상(편곡: 하기타 미츠오)을 수상하고, 제27회 NHK 홍백가합전에 3년 연속 출연했다.[7]
1975년 제26회 NHK 홍백가합전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유행했던 독일 가요 〈릴리 마를렌〉을 일본어 가사로 불렀다. 1979년에는 CBS 소니(현재의 소니 뮤직 레이블스)로 이적하여, 일본 전매 공사(현재의 일본 담배 산업) '파트너'의 CM송으로 채택된 〈괜찮으시다면〉(작사: 아키 요코, 작곡: 츠츠미 쿄헤이)이 히트했다.
2. 3. 폭넓은 활동 (1980년대 ~ 2020년)
아즈사는 노래뿐만 아니라 배우로서도 활동하며 뮤지컬 영화와 텔레비전에 출연했다. 예를 들어, 마쓰바야시 슈에이의 1964년 영화 《작은 중매쟁이》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는 아즈사의 히트곡인 안녕하세요 아기와 같은 제목으로 일본에서 개봉되었다.[1] 1983년에는 일본 텔레비전 드라마 여름에 사랑하는 여자들에 출연했다. NHK 홍백가합전에도 자주 참가했으며, 1992년에는 11번째로 출연하여 그해 사망한 작곡가를 기리기 위해 안녕하세요 아기를 불렀다.[1]1979년 CBS 소니(현재의 소니 뮤직 레이블스)로 레코드 회사를 이적했다. 같은 해 일본 전매 공사(현재의 일본 담배 산업) "파트너"의 CM송으로 채택된 "괜찮으시다면"이 히트했다. 1982년에는 전년인 1981년 5월에 37세로 사망한 싱어송라이터 오오츠카 하쿠도의 "토마토 주스로 돌려보낼까"를 커버했다.
1992년 제43회 NHK 홍백가합전에 16년 만에 11번째로 홍백가합전에 복귀하여, 같은 해 6월에 사망한 작곡가 나카무라 하치다이를 기리며 "안녕하세요 아기"를 불렀다.
아즈사는 자신의 대표곡인 "안녕하세요 아기"를 스스로 봉인하고 오랫동안 콘서트에서 부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노래는 지금, 나에게 너무 무겁다", "이제 와서 이 노래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등이었지만, 2002년 40주년 기념 콘서트 앙코르 때 "처음으로, 마음에서 이 노래의 훌륭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노래를 지금까지 부르지 않았다니, 한심하다"라고 말하며 봉인을 풀고 불렀다. 2006년에는 "이 곡은 나에게 세상에 나오게 된 계기이자, 가장 소중한 보물이니, 소중히 하자. 40년이 걸려 그런 마음이 들었으니, 앙코르 마지막에 겨우 부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무대에서도 반드시 부르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아기"의 봉인을 푼 이유에 대해, 아즈사 본인은 "미국에서 일본계 1세, 2세 분들 앞에서 (안녕하세요 아기를) 불렀을 때 모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후회했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10]
만년에는 "좋은 노래는 옛날 노래든 후배의 노래든 관계없이 부르고 싶다"며 J팝, 가요에서 탱고, 샹송 등 폭넓은 장르의 노래를 불렀다.
2020년 2월 3일, 도쿄도 내 자택에서 1월 말에 사망한 것이 공표되었다. 소속 사무소에 따르면, 출연 프로그램 회의를 위해 1월 29일에 방문한 매니저가 침대 위에서 사망한 아즈사를 발견했다고 한다.[11][12] 매니저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사건성은 없었고, 그 자리에서 사망이 확인되었다.[13][14] 사인은 심부전이었다.
2020년 2월 9일, BS 텔레토쿄에서 "긴급 특별 프로그램 감사합니다! 아즈사 미치요 씨"가 방송되었다. 사회는 고다 미치토와 미즈하라 에리가 맡았다.
3. 연기 활동
아즈사 미치요는 뮤지컬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며 배우로 활동했다. 1964년 마츠바야시 슈에이 감독의 영화 《작은 중매쟁이》(안녕 아기)에 출연했고,[1] 1969년에는 《드리프터즈예요! 전원 돌격》에 출연했다.[1]
1983년에는 TBS 드라마 여름에 사랑하는 여자들에 출연했다.[1]
3. 1. 영화
- 1964년 《안녕 아기》 (도호) - 아이다 미치요 역 (주제가 담당)[1]
- 1969년 《드리프터즈예요! 전원 돌격》 (도호) - 인어 후코 역[1]
- 1962년 《꿈에서 만나요》 (도호) - 호시노 요코 역
- 1963년 《젊은 친구들 우리들은 기온의 마이코》 (도호) - 마키 미치루 역
- 1965년 《무지개를 잡는 연인들》 (토에이)
- 1966년 《테나몽야 도카이도》 (도호) - 오소메 역
- 1970년 《앗 하고 놀라운 타메고로》 (쇼치쿠)
3. 2. TV 드라마
- 보우야 (1963년 4월 15일 ~ 9월 30일, 니혼 TV)
- 마쓰모토 세이초 시리즈 만요 비취 (1966년 3월, 간사이 TV) 주연
- 신부 (1) (1966년 6월 ~ 12월, 후지 TV) 주연 · 야마가타 마치코 역 (주제가도 담당)
- 여름에 사랑하는 여자들 (1983년 8월 5일 ~ 9월 30일, TBS) 아오야마 사나에 역[1]
- 은하 TV 소설 남자아이 육아 일기 (1987년 6월 8일 ~ 7월 3일, NHK 종합)
- 투명 인간 제5화 (1996년 5월 11일, 니혼 TV)
- 뷰티 7 제10화 (2001년 9월 5일, 니혼 TV) 타우라 세츠 역
- 미토 고몬 제39부 제11화 "젊은 아내의 말 못할 비밀? - 아마쿠사 -"(2008년 12월 22일, TBS) 오세 역
4. 사생활
아즈사 미치요는 1972년 4월 배우 와다 코지와 결혼했으나, 와다의 외도, 경제적 어려움, 아즈사와 와다 가족 간의 갈등으로 1973년 10월 4일 이혼했다.[20] 이후 아즈사는 재혼하지 않았다. 2020년 1월 29일 도쿄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76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사후 제62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였다.[19]
- 아카시야 산마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산마의 만마에 출연했을 때, 아카시야 산마의 무례한 언동에 화가 나서 샴페인을 뿌리고, 며칠 후 사과하며 팔찌를 선물했다.[15]
- 나가 롯쿠스케가 사망하자, 안녕하세요 아기를 작사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며 명복을 빈다는 추모 코멘트를 발표했다.[16]
5. 논란
6. 수상 경력
연도 | 상 | 노래 | 부문 |
---|---|---|---|
1963년 | 제5회 일본 레코드 대상 | 안녕하세요 아기 | 일본 레코드 대상 |
1967년 | 제9회 일본 레코드 대상 | 해변의 시뇨리나 | 작곡가상 |
1974년 | 제16회 일본 레코드 대상 | 둘이서 술을 | 대중상 |
1976년 | 제18회 일본 레코드 대상 | 멜랑콜리 | 편곡상 |
2020년 | 제62회 일본 레코드 대상 | - | 특별 공로상 |
7. NHK 홍백가합전 출전 기록
연도/방송 회 | 횟수 | 곡목 | 출연 순서 | 대전 상대 | 비고 |
---|---|---|---|---|---|
1963년 (쇼와 38년) / 제14회 | 첫 출전 | 안녕 아기 | 20/25 | 사카모토 큐 | 첫 출장 |
1964년 (쇼와 39년) / 제15회 | 2 | 린덴바움의 노래 | 09/25 | 보니 잭스 | |
1965년 (쇼와 40년) / 제16회 | 3 | 잊어버렸을 텐데 | 06/25 | 다크 덕스 | |
1966년 (쇼와 41년) / 제17회 | 4 | 포캉포캉 | 22/25 | 마이크 마키 | |
1967년 (쇼와 42년) / 제18회 | 5 | 해변의 세뇨리나 | 06/23 | 미타 아키라 | |
1968년 (쇼와 43년) / 제19회 | 6 | 달밤과 배와 사랑 | 18/23 | 듀크 에이세스 | |
1969년 (쇼와 44년) / 제20회 | 7 | 안녕 아기 (2번째) | 16/23 | 미즈하라 히로시 | |
1974년 (쇼와 49년) / 제25회 | 8 | 둘이서 술을 | 07/25 | 토노사마 킹스 | 5년 만에 복귀 |
1975년 (쇼와 50년) / 제26회 | 9 | 릴리 마를렌 | 19/24 | 사와다 켄지 | |
1976년 (쇼와 51년) / 제27회 | 10 | 멜랑콜리 | 10/24 | 스가와라 요이치 | |
1992년 (헤이세이 4년) / 제43회 | 11 | 안녕 아기 (3번째) | 08/28 | 듀크 에이세스 | 16년 만에 복귀, 생애 마지막 출장[17] |
- 대전 상대 가수 이름 옆 괄호 안의 숫자는 해당 가수와의 대전 횟수를 나타낸다.
- 곡명 뒤의 (○번째)는 홍백가합전에서 해당 곡을 선보인 횟수를 나타낸다.
- 출연 순서는 '(출연 순서) / (출장자 수)' 형태로 나타낸다.
8. 디스코그래피
아즈사 미치요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발표하며 오랜 기간 활동한 일본 가수이다. 1963년 발표한 안녕하세요 아기는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1974년에는 《둘이서 술을》이 제16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대중음악상을 수상했고, 1976년에는 《멜랑콜리》가 제18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최우수 편곡상을 받았다.[1]
8. 1. 싱글
N.Sherman레코드
J.K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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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 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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