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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테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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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엘 테무르는 킵차크 출신으로, 원나라 말기 권신이었다. 퀼리그 칸 카이산의 총애를 받아 좌군지휘사에 임명되었고, 예순테무르 치세에는 첨추밀원사에 올랐다. 예순테무르 사후 투그테무르를 옹립하여 황위 쟁탈전에서 승리하게 했고, 쿠살라를 독살한 후 투그테무르의 아들 토곤 테무르를 양육하며 권력을 장악했다. 린친발을 옹립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토곤 테무르를 즉위시켰다. 엘 테무르 사후 그의 가문은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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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테무르
인물 정보
이름엘 테무르
로마자 표기El Temür
생애
사망일1333년 5월
자녀다나시리
탕기치

2. 생애

킵차크 부족 출신의 군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토토가크와 아버지 총얼은 각각 쿠빌라이 칸카이산 휘하에서 활동하며 몽골 제국의 여러 전투와 반란 진압에 참여했다. 엘 테무르 역시 소년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카이산의 군대에서 활약하며 그의 신임을 얻었고, 카이산이 황제(원 무종)로 즉위하자 원나라 조정에서 관직을 받았다.

1328년 예순테무르가 사망하자, 엘 테무르는 수도 대도에서 군사 정변을 일으켜 카이산의 아들 투그테무르를 황제로 옹립했다. 이는 상도에서 예순테무르의 아들 라기바그를 추대한 세력과의 내전, 즉 천력의 내란으로 이어졌고, 엘 테무르는 이 내전에서 대도 측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 공로로 그는 태평왕(太平王)에 봉해지고 다르칸 칭호를 받는 등 최고 실력자로 부상했다.

내전 이후 차가타이 칸국에서 돌아온 투그테무르의 형 쿠살라카라코룸에서 황제로 즉위했으나, 투그테무르와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정사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엘 테무르가 쿠살라를 독살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다. 쿠살라의 죽음으로 투그테무르가 복위하면서 엘 테무르는 다시 권력의 정점에 섰다.

1332년 투그테무르가 사망하자, 엘 테무르는 황위 계승 문제에 깊이 개입했다. 그는 투그테무르의 유언을 명분 삼아 쿠살라의 어린 아들 린친발을 황제로 추대했으나, 린친발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이후 쿠살라의 장남인 토곤 테무르가 있었지만, 엘 테무르는 그의 즉위를 미루며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1333년 엘 테무르가 병으로 사망하면서 그의 권력은 막을 내렸다.

엘 테무르 사후, 그의 아들 텡기스 등이 권력을 유지하려 했으나 바얀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여 몰락했다. 엘 테무르의 권력 장악과 사후의 혼란은 원나라 말기의 정치적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2. 1. 초기 생애

엘 테무르는 킵차크의 부족장 가문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 토토가크는 몽케 칸의 동생인 쿠빌라이 칸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쿠빌라이 치세 말기에 발생한 시리기의 난과 나얀, 카다안의 반란 등 몽골 제국 내부의 여러 반란을 진압하는 데 참여했다. 아버지 총얼은 훗날 카이산이 즉위하기 전 그를 도와 오고타이 칸국의 카이두와 교전하는 데 공을 세웠다.

소년 시절의 엘 테무르 역시 아버지를 따라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여, 카이산의 휘하에서 활약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카이산의 신임을 얻었다. 이후 킵차크 칸국의 친위대 사령관을 지냈으며, 자신을 총애하던 카이산이 원나라의 황제(원 무종)로 즉위하자 원나라 조정의 좌친군도지휘사(左親軍都指揮使)로 임명되었다. 이후 원 태정제가 황제로 즉위하자, 엘 테무르는 추밀원의 요직 중 하나인 첨추밀원사(僉樞密院事)에 임명되었다.

2. 2. 천력의 내란

1328년 여름, 예순 테무르가 여름 수도 상도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당시 엘 테무르는 자신의 기반 세력인 킵차크 군단과 함께 겨울 수도 대도에 머물며 유수(留守)를 맡고 있었다. 과거 카이산에게 발탁되었던 엘 테무르는 예순 테무르의 측근인 다우라트 샤 등의 전횡에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예순 테무르의 죽음을 기회로 삼아 카이산의 아들을 황제로 옹립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대도에서 군사 행동을 일으켜 주요 정부 기관을 장악했다.

엘 테무르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도의 군대와 관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카이산의 둘째 아들로 당시 강릉에 유배되어 있던 투그 테무르대도로 불러들였다. 투그 테무르는 중앙아시아에 있던 형 쿠살라가 돌아오면 그에게 칸의 자리를 양보하려 했으나, 엘 테무르의 설득으로 결국 1328년 대도에서 황제로 즉위했다. 투그 테무르를 옹립한 공으로 엘 테무르는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상주국(上柱國), 녹군국중사(錄軍國重事), 중서우승상, 감수국사(監修國史), 지추밀원사 등 여러 고위 관직에 임명되었고, 태평왕(太平王)이라는 작위와 함께 다르칸(答剌罕, Tarkhan)이라는 칭호를 받고 세습 지위까지 보장받으며 투그 테무르 정권의 최고 실력자로 부상했다.

한편, 상도에 있던 다우라트 샤 등 예순 테무르의 측근들은 그의 어린 아들 라기바그(아리기바)를 황제로 추대했다. 이로써 원나라대도투그 테무르상도라기바그 사이에 내전 상태에 돌입하게 되었는데, 이를 천력의 내란이라고 부른다. 엘 테무르는 대도로 진격해 온 상도 측 군대를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이후 요동 지역의 몽골 왕족들이 대도 측에 가담하여 상도를 포위 공격했고, 결국 라기바그와 다우라트 샤는 항복했다.

대도 측이 승리하면서 투그 테무르와 엘 테무르의 권력 기반은 공고해지는 듯했으나, 차가타이 칸국에 망명해 있던 투그 테무르의 형 쿠살라가 몽골 고원으로 들어와 옛 수도 카라코룸에서 몽골 왕족과 귀족들의 지지를 확보하고 칸의 자리를 요구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천력 2년(1329년) 4월, 엘 테무르는 직접 몽골 고원으로 가서 쿠살라를 만나 옥새를 바치며 칸으로 추대하는 형식을 취했다. 쿠살라는 엘 테무르의 공을 인정하여 군권을 총괄하는 태사(太師) 칭호를 내리고 동생 투그 테무르를 황태제로 삼았다. 그러나 그 해 8월, 상도 근교에서 형제가 만난 지 불과 4일 만에 쿠살라는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이는 쿠살라의 측근들에게 권력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 엘 테무르가 독살한 것이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다.

황태제였던 투그 테무르는 즉시 칸으로 복위했으며, 쿠살라를 따르던 세력은 엘 테무르에 의해 숙청되었다. 투그 테무르가 다시 칸이 되면서 엘 테무르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그는 칸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원나라 조정을 장악했으며, 예순 테무르의 미망인을 아내로 삼고, 투그 테무르의 아들 엘 테구스를 자신의 집에서 양육하는 등 황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했다. 그의 아들 역시 칸의 양자로서 궁궐에서 자랐다. 또한 쿠살라의 맏아들인 토곤 테무르에 대해서는 쿠살라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구실을 내세워 고려로 추방하였다.

2. 3. 권력 장악과 몰락

1328년 예순테무르가 사망하자, 당시 첨추밀원사(僉樞密院事)였던 엘 테무르는 투그테무르대도에서 황제로 옹립했다. 이는 투그테무르의 형인 쿠살라가 멀리 중앙아시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예순테무르의 아들 라기바그는 상도에서 즉위하여 황위 쟁탈전이 벌어졌으나, 엘 테무르가 지지한 투그테무르가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투그테무르를 옹립한 공로로 엘 테무르는 다르칸(答拉罕)이라는 칭호와 함께 세습 지위를 인정받았고, 태평왕(太平王)에 봉해지며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원나라차가타이 칸국의 군대를 모아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쿠살라카라코룸으로 진격해오자, 위협을 느낀 투그테무르는 형에게 황위를 양보하겠다고 선언했다. 엘 테무르는 이 소식을 쿠살라에게 전했고, 쿠살라는 카라코룸에서 즉위하여 투그테무르를 황태제로 삼았다. 하지만 쿠살라는 대도로 향하던 중 투그테무르와 만난 지 4일 만에 갑자기 사망했는데, 정사 기록은 없지만 야사에서는 엘 테무르가 쿠살라를 독살했다고 전해진다. 이로 인해 투그테무르는 다시 황제로 복위했다.

엘 테무르는 쿠살라의 아들인 토곤 테무르를 자신의 집에서 키웠다. 1332년 투그테무르가 29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자신의 아들 엘 테구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 쿠살라의 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일설에는 투그테무르의 황후 부다시리가 아들이 너무 어려 황제가 되기에는 이르다고 사양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엘 테무르는 토곤 테무르 대신 쿠살라의 다른 아들이자 당시 7세였던 린친발을 1332년 10월 황제로 추대하고 스스로 섭정이 되었다. 그러나 린친발은 즉위한 지 불과 43일 만인 그해 12월에 갑자기 사망했다.

린친발이 사망하자 엘 테무르는 다시 부다시리에게 엘 테구스를 황제로 세우자고 제안했지만, 부다시리 카툰은 남편의 유지를 지켜야 한다며 계속 거절했다. 결국 엘 테무르는 광시로 유배되어 있던 토곤 테무르를 불러들이는 데 동의했다. 토곤 테무르가 대도에 도착하자 엘 테무르는 그를 맞이하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지만, 토곤 테무르는 엘 테무르를 두려워하여 침묵을 지켰다. 엘 테무르는 토곤 테무르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즉위식을 미루었으나, 3개월 뒤인 1333년 4월에 병으로 사망했다.[7]

엘 테무르가 죽은 후에도 그의 동생 사톤과 아들 탕키스가 연이어 중서좌승상에 오르고, 딸 다나시리가 토곤 테무르의 황후가 되면서 엘 테무르 가문의 권세는 잠시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중서성의 우승상 자리는 엘 테무르의 협력자였던 군벌 바얀이 차지하며 정권의 실세로 부상했다. 1335년, 좌승상 탕키스는 바얀에게서 권력을 되찾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바얀에게 진압되었다. 이 사건으로 탕키스를 비롯한 엘 테무르의 일족은 황후 다나시리까지 모두 처형당했고, 원나라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엘 테무르 가문은 그의 사후 불과 2년 만에 완전히 몰락했다.[8][9] 엘 테무르 사후 원나라 조정은 바얀, 토크토 등 군벌들의 권력 다툼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3. 가족 관계

엘 테무르는 원래 몽골 제국몽케에게 정복된 킵차크 부족장의 가문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 토토가크는 몽케의 동생인 쿠빌라이를 섬기며 실리기의 난이나 나얀・카다안의 난과 같은 몽골 제국 내의 내란 진압에 활약했다. 아버지 총울 역시 쿠빌라이의 증손자인 카이산이 왕족 시절일 때 그를 도와 오고타이 울루스의 카이두를 격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때 소년이었던 엘 테무르도 아버지를 따라 카이산의 휘하에 들어가 그의 총애를 받았고, 카이산이 즉위하자 지선휘원사를 거쳐 좌친군도지휘사로 승진했다. 이후에도 킵차크 군벌의 사령관으로서 군대 내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으며, 태정제 예순 테무르 치세에는 군정 기관인 추밀원의 요직인 첨추밀원사에 올랐다.

엘 테무르에게는 아들 텡기스와 타라카이, 그리고 딸 다나슈리가 있었다. 다나슈리는 훗날 토곤 테무르의 황후가 된다.

엘 테무르 가문의 상세 계보는 다음과 같다.


  • '''흠차 국왕 쿠르스만''' (Qurusman|忽魯速蛮mn)
  • * 흠차 국왕 발투차크 (Baltučaq|班都察mn)
  • ** '''승왕 토토가크''' (Tudγaγ|土土哈mn, توتقاق|tūtqāqfa)

정원대장군・북정원수 타가찰 (Taγačar|塔察児mn)
어위하 박아적 타이・부카 (Tai buqa|太不花mn)
'''구용군왕 총울''' (Čong'ur|牀兀児mn, جونكقور|jūnkqūrfa)
* 무략장군 세빈추・부카 (Sevinču buqa|小雲失不花mn)
* 자덕대부 엘치・부카 (Elči buqa|燕赤不花mn)
* '''태평왕 엘 테무르''' (El temür|燕帖木児mn)
** '''중서좌승상 텡기스''' (Tangkiš|唐其勢mn)
** 타라카이 (Taraqai|塔剌海mn)
** '''황후 다나슈리''' (Današiri|答納失里mn)
* 선휘원사 사둔 (Sadun|撒敦mn)
* 란유소감 엘・투칼 (El tuqar|燕禿哈児mn)
* 태희종인원사 다리 (Dari|答里mn)
* 부베칸 (Bübeqan|潑皮罕mn)
무략장군 베르케・부카 (Berke buqa|別里不花mn)
무덕장군 테무르・부카 (Temür buqa|帖木児不花mn)
무략장군 카르치 (Qarči|歓差mn)
무덕장군 요리크・테무르 (Yoliγ temür|岳里帖木児mn)
소용대장군 달구르반 (Dalgurban|断古魯班mn)

4. 엘 테무르가 등장한 작품

참조

[1] 서적 A Short History of the Mongols Bloomsbury Publishing 2018
[2] 서적 Eurasian Influences on Yuan China https://books.google[...] 2013-05-23
[3] 서적 Encyclopedia of Mongolia and the Mongol Empire https://archive.org/[...]
[4] 웹사이트 Empress Ki: Character Introductions https://www.thetalki[...] 2013-11-03
[5] 간행물 Le chapitre CVIII du Yuan che : les fiefs attribués aux membres de la famille impériale et aux ministres de la cour mongole d'après l'histoire chinoise officielle de la dynastie mongole 1954
[6] 문서 1971
[7] 문서 1971
[8] 문서 1971
[9] 문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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