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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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키 국은 일본해에 위치한 오키 제도를 관할했던 일본의 옛 행정 구역이다. 7세기 후반 율령제에 따라 행정 구역으로 편제되었으며, 헤이안 시대 후기에는 정치적 유배지로 사용되었다. 가마쿠라 시대부터 센고쿠 시대까지 여러 씨족의 지배를 받았으며, 에도 시대에는 쇼군의 직할령인 텐료로 지정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오키 현으로 바뀌었다가 시마네 현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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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칭
평성궁(헤이조쿄) 목간에는 "은기국(隠伎国)"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육국사의 표기 과정을 살펴보면, 『속일본기』(794년)에는 "은기(隠伎)" 또는 "온기(隠岐)"로 표기되고, 『일본후기』(840년) 이후에는 "온기(隠岐)"로 통일되어 있다.[4]
오키 제도는 일본해에 있는 시마네현 소속 섬들이다. 시마네 반도에서 북동쪽으로 약 65km 떨어진 일본해에 있으며, 크고 작은 18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이다. 니시노시마(西ノ島), 나카노시마(中ノ島)(島根県), 치부리스지마(知夫里島), 도고시마(島後)의 4개 섬에 사람이 살고 있으며, 도고시마를 제외한 나머지 3개의 섬을 도젠(島前)이라고 부른다.
오키 국은 일본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조몬, 야요이, 고분 시대의 수많은 유적을 통해 지속적인 인간의 거주와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7세기 후반 율령 개혁에 따라 행정 구역으로 편제되었고, 나라의 황궁에서 발견된 목간에 "오키노쿠니(Oki-no-kuni)"라는 이름이 등장한다.[4]
3. 지리
4. 역사
헤이안 시대 후기, 오키 국은 외딴 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에 고토바 천황, 고다이고 천황 등 정치범들의 유배지로 알려지게 되었다.[2][3] 1332년 고다이고 천황은 오키로 유배되었는데, 니시노시마정의 구로키 고쇼 터와 국분사가 있었던 오키노시마정에 행재소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가마쿠라 시대부터 오키 국은 주로 이즈모국의 수호가 통치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사사키 씨, 야마나 씨, 쿄고쿠 씨가 차례로 이 지역을 다스렸다. 센고쿠 시대에는 아마고 씨가 오키 국을 지배했다. 아마고 씨가 몰락하고 도쿠가와 막부가 수립된 후, 오키 국은 shōgun의 직할령인 tenryō로 지정되었고, 마쓰에 번의 daimyō인 마쓰다이라 씨가 지사로 임명되었다.
오키 국 전체의 안정적인 수입은 1만 8천 koku였지만, 실제 수입은 1만 2천 koku에 가까웠다. 에도 시대에는 Kitamaebune 연안 무역선이 자주 기항하는 곳이었다. 오키 국의 국청(국부)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 오키노시마 마을 도고지마의 스키 군(郡) 어딘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오키 국의 행정 구역 변천 과정은 다음과 같다.
4. 1. 고대
오키 제도는 일본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조몬, 야요이, 고분 시대의 수많은 유적은 지속적인 인간의 거주와 활동을 보여준다. 7세기 후반 율령 개혁에 따라 행정 구역으로 편제되었고, 나라의 황궁에서 발견된 목간에 "오키노쿠니(Oki-no-kuni)"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고분 시대(응신 천황 때) 천팔현진언명의 후예가 오키 국조에 임명되었고, 그 지배 영역은 7세기의 율령제 오키 국에 계승되었다.[4]
4. 2. 중세
헤이안 시대 후기, 오키국은 외진 곳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유배지로 알려졌다. 1221년 고토바 천황이 오키로 유배되어 섬에서 사망했다.[2] 1332년 고다이고 천황도 오키로 유배되었지만, 나중에 탈출하여 다시 권력을 되찾았다.[3]
가마쿠라 시대부터 오키 국은 주로 이즈모국의 수호에 의해 통치되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사사키 씨, 야마나 씨, 쿄고쿠 씨가 차례로 지배했다. 센고쿠 시대에는 아마고 씨가 이 지역을 지배했다. 아마고 씨가 몰락하고 도쿠가와 막부가 성립된 후, 오키 국은 쇼군의 직할령인 tenryō로 선포되었다. 마쓰에번의 다이묘 (마쓰다이라 씨)가 지사로 임명되었다.
니시 가문은 오키의 수호대에서 수호가 되어 오키를 지배했지만, 니시 가문의 멸망과 함께 오키국은 모리 가문 일문의 요시카와 모토하루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후, 셋째 아들 요시카와 쓰네토키에게 오키 일국이 분여되었으나, 후에 쓰네토키(히로이에로 개명)가 요시카와 가문을 상속했기 때문에 다시 요시카와 종가의 영지에 흡수되었다.
4. 3. 근세
헤이안 시대 후기, 오키 국은 외딴 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에 정치범들의 유배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1221년 고토바 천황이 오키로 유배되어 섬에서 생을 마감했다.[2] 1332년에는 고다이고 천황도 오키로 유배되었으나, 이후 탈출하여 다시 권력을 잡았다.[3]
가마쿠라 시대부터 오키 국은 주로 이즈모 국의 shugo(守護)가 통치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사사키 씨, 야마나 씨, 쿄고쿠 씨가 차례로 이 지역을 다스렸다. 센고쿠 시대에는 아마고 씨가 오키 국을 지배했다. 아마고 씨가 몰락하고 도쿠가와 막부가 수립된 후, 오키 국은 shōgun의 직할령인 tenryō로 지정되었고, 마쓰에 번의 daimyō인 마쓰다이라 씨가 지사로 임명되었다.
오키 국 전체의 안정적인 수입은 1만 8천 koku였지만, 실제 수입은 1만 2천 곡에 가까웠다. 에도 시대에는 Kitamaebune 연안 무역선의 잦은 기항지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 오키 국은 1869년 2월부터 6월까지 오키 현이었다가, 1876년까지 돗토리현에 속했다가 시마네현으로 편입되었다.
메이지 초기 오키 지역의 행정 구역 변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오키는 마쓰에 번(호리오 가, 교쿠가쿠 가)의 분국(分國)이었으나, 1638년 이후로는 덴료가 되었다.
4. 4. 근대
헤이안 시대 후기, 오키 국은 외딴 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에 정치범들의 유배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1221년 고토바 천황이 오키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2] 1332년에는 고다이고 천황이 오키로 유배되었으나, 이후 탈출하여 다시 권력을 잡았다.[3]가마쿠라 시대부터 오키 국은 주로 이즈모 국의 shugo(守護)가 통치하였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사사키 씨, 야마나 씨, 쿄고쿠 씨가 차례로 이 지역을 다스렸다. 센고쿠 시대에는 아마고 씨가 오키 국을 지배했다. 아마고 씨가 몰락하고 도쿠가와 막부가 수립된 후, 오키 국은 쇼군(shōgun)의 직할령인 tenryō로 지정되었고, 마쓰에 번의 daimyō인 마쓰다이라 씨가 지사로 임명되었다.
오키 국의 안정적인 수입은 1만 8천 koku이었지만, 실제 수입은 1만 2천 koku에 가까웠다. 에도 시대에는 Kitamaebune 연안 무역선이 자주 기항하는 곳이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오키 국은 1869년 2월부터 6월까지 오키 현이 되었다가, 1876년까지 돗토리현에 속했다가 시마네현으로 편입되었다.
메이지 초기 오키 국의 행정 구역 변화는 다음과 같다.
4. 5. 행정 구역 변천
오키 국은 원래 네 개의 군(郡)으로 나뉘어 있었다. 1969년 4월 1일, 이들 군은 모두 시마네현 오키 군으로 통합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오키 국의 행정 구역 변천 과정은 다음과 같다.
5. 행정 구역
오키국은 원래 네 개의 군(郡)으로 나뉘어 있었다. 1969년 4월 1일에 모든 군이 시마네현 오키군(隠岐郡)으로 통합되었다.
- 아마군 (海士郡)
- 치부군 (知夫郡)
- 오치군 (穏地郡)
- 스키군 (周吉郡)
6. 주요 시설
오키 국에는 여러 주요 시설들이 있었다.
6. 1. 국부(国府)
와명류취초에 따르면, 국부는 주길군에 있었다. 현재 오키군 오키노시마정의 이네마스·요코타(오오타), 고노하라 유적, 하라다 지역으로 추정되지만, 유구는 발견되지 않았다.6. 2. 국분사(国分寺)
국분사(国分寺)는 오키노시마에 진언종 사찰로 현재도 존재하며, 부지 내에는 원래 건물의 기초석이 많이 남아있지만, 완전한 고고학적 조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키 국분사터 (소재지 불명)
- 후계 사찰인 젠비산 국분사 (오키군 오키노시마정 이케다) 경내에 위치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2009년(헤이세이 21년)부터 실시된 발굴 조사에서 뿌리 감은 기와를 가진 기둥 구멍 열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옛 국분사의 유구일 가능성이 있다.[5] 현 국분사 경내에는 옛 국분사의 것으로 전해지는 초석이 있다. 불전은 젠비산 국분사가 계승하고 있으며, 젠비산 국분사의 경내 지역은 "오키 국분사 경내"로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 오키 국분니지터 (오키군 오키노시마정 아리키)
- 시마네현 지정 사적. 현 국분사의 남동쪽 약 500미터에 위치한다. 사찰 부지는 1정(약 109미터) 사방으로 추정된다. 금당, 강당, 중문으로 보이는 건물터 등이 발견되었지만, 금당과 강당이 동서로 나란히 배치되는 등 일반적인 것과 다른 가람 배치이므로 국분니지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6] 후계 사찰은 없다.
6. 3. 신사(神社)
이 지역에는 국내 최고의 신사라는 칭호인 이치노미야를 주장하는 신사가 두 곳 있는데, 오키노시마의 水若酢神社|미즈와카스 신사일본어와 니시노시마의 由良比女神社|유라히메 신사일본어이다.'''엔기시키내사'''
엔기시키신묘초(『延喜式神名帳』)에는 대사 4좌 4사, 소사 12좌 11사의 총 16좌 15사가 기록되어 있다(「오키국의 식내사 일람」 참조). 대사는 아래와 같으며, 모두 명신대사이다.
- 지부군 유라히메신사(由良比女神社)
- * 비정사: 유라히메신사(오키군 니시노시마정 우라고)
- 카이부군 우케가미신사(宇受加命神社)
- * 비정사: 우케가미신사(오키군 아마정 우케가)
- 오치군 미즈와카스미신사(水若酢命神社)
- * 비정사: 미즈와카스신사(오키군 오키노시마정 군)
- 오치군 이세미신사(伊勢命神社)
- * 비정사: 이세미신사(오키군 오키노시마정 쿠미)
'''총사·일궁 이하'''
중세 제국 일궁제의 기초 연구(『中世諸國一宮制の基礎的研究』)에 근거한 일궁 이하의 목록[7]
- 총사: 타마와카스미신사(오키군 오키노시마정 시모니시)
- 일궁: 미즈와카스신사(오키군 오키노시마정 군)
대일본국일궁기(『大日本国一宮記』)에서는 유라히메신사를 일궁으로 하지만, 실태로 보아 미즈와카스신사가 일궁이었다고 여겨진다[7]. 이궁 이하는 없다.
7. 인물
오키국은 고대부터 에도 시대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통치하거나 유배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키국과 관련된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 율령제 하의 지방관 (고쿠시): 733년부터 1227년까지 오키국에 파견된 지방관들로, 이누카이 오오마토, 민고마로, 쿠사카베 오토마로 등이 있다.
- 가마쿠라 막부 및 무로마치 막부 시대의 슈고:
- 가마쿠라 막부 시대 (1193년 ~ 1333년): 사사키 사다쓰나, 사사키 히로쓰나 등 사사키 씨 일족이 주로 통치했다.
- 무로마치 막부 시대 (1336년 ~ 1561년): 염야 다카사다, 야마나 토키우지, 쿄고쿠 타카우지 등 사사키 씨, 야마나 씨, 쿄고쿠 씨 및 아마고 씨가 번갈아 가며 통치했다.
- 오키노카미(隠岐守):
- 에도 시대 이전: 이시다 마사쓰구 (이시다 미쓰나리의 아버지), 고토 모토지 (고토 마타베에로 유명) 등
- 에도 시대: 가메이 요리치카, 큐세 테루유키, 니시오 요시쓰구, 마쓰다이라 사다카쓰 등 여러 번주 가문
- 정치적 유배지로서 오키섬으로 유배된 인물: 고토바 상황(1221년), 고다이고 천황(1332년) 등[2][3]
겐코 2년(1332년) 고다이고 천황의 행재소는 니시노시마정의 구로키 고쇼 터와 오키노시마정 두 곳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7. 1. 국사(国司)
国司|고쿠시일본어는 율령제 하에서 오키국에 파견된 지방관을 말한다.다음은 오키노쿠니의 역대 国司|고쿠시일본어 목록이다.
7. 2. 수호(守護)
가마쿠라 막부 시대부터 오키 국은 주로 이즈모 국의 수호(守護, shugo)에 의해 통치되었다.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는 사사키 씨, 야마나 씨, 쿄고쿠 씨가 차례로 이 지역을 다스렸으며, 센고쿠 시대에는 아마고 씨가 지배했다.7. 2. 1. 가마쿠라 막부
7. 2. 2. 무로마치 막부
7. 3. 오키노카미(隠岐守)
다음은 오키 국의 역대 오키노카미(隠岐守) 목록이다.
7. 4. 유배된 인물
헤이안 시대 후기, 오키 국은 외딴 곳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유배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1221년 고토바 천황이 오키로 유배되어 섬에서 사망했다.[2] 1332년 고다이고 천황도 오키로 유배되었지만, 나중에 탈출하여 다시 권력을 되찾았다.[3]겐코 2년(1332년)에 고다이고 천황은 오키로 유배되었다. 오키에서 고다이고 천황의 행재소로 전해지는 땅은 두 곳이 있는데, 니시노시마정의 천황산에는 천황의 행재소로 전해지는 구로키 고쇼 터와 구로키 신사, 총희인 아노 렌시의 삼위국 영지 터, 감시를 했던 미츠케지마 등의 사적이 존재하며, 고문서도 보관되어 있다. 한편 국분사가 있었던 오키노시마정에도 행재소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오키섬으로 유배된 인물은 다음과 같다.
참조
[1]
서적
Japan Encyclopedia
https://books.google[...]
Google Books
2005
[2]
서적
A History of Japan
1972
[3]
서적
Annales des empereurs du japon
https://books.google[...]
1834
[4]
서적
日本古代の宮都と木簡
日本史学研究叢書
1997
[5]
간행물
禅尾山国分寺 境内説明板
[6]
간행물
隠岐国分尼寺跡 説明板
[7]
서적
中世諸国一宮制の基礎的研究
岩田書院
2000
[8]
서적
明月記
嘉禄3年3月21日
[9]
서적
隠岐古記集
[10]
서적
吾妻鏡
125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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