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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현의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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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키나와현의 철도는 현재 나하시의 모노레일이 유일한 철도 수단이다. 과거에는 오키나와섬 각지에 철도와 산업용 철도가 존재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과 미군정 시대를 거치며 대부분 사라졌다. 메이지 시대에 미나미다이토 섬에 최초의 철도가 부설되었고, 다이쇼 시대에는 오키나와 전기 궤도가 노면 전차를 개통하는 등 철도 운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쇼와 시대에는 자동차 교통 발달로 철도가 버스와 경쟁하며 쇠퇴했고, 전쟁으로 인해 철도 시설이 파괴되었다. 2003년에는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유이 레일)이 개통되었으며, 2019년에는 우라소에시까지 연장되었다. 향후 나고시까지의 철도 건설 계획과, 오키나와시, 도미구스쿠시 등지에서 새로운 교통 시스템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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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키나와현의 철도 -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유이레일)은 나하 공항역에서 테다코우라니시역까지 17.1km 구간을 운행하는 19개 역의 모노레일 노선으로, 교통난 해소를 위해 2003년 개통 후 2019년 연장되었으며, 관광객 수송 및 통학 수요 증가로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오키나와현의 철도
오키나와현 철도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 노선도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 노선도
현황오키나와현에는 현재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유이레일)만이 운행되고 있음.
노선
영업 거리12.9 km
궤간1435mm
역수19개 역
복선 구간전 노선 복선
전철화 구간전 노선 전철화 (직류 750V)
개업2003년 8월 10일
운영 주체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 주식회사
계획 및 구상
나하시-나고시 철도나하시나고시를 잇는 철도 계획이 구상 중임.
기타 구상과거에 여러 철도 부설 구상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함.
과거의 철도
오키나와현영 철도오키나와현이 운영했던 철도로, 1945년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폐지됨.
케이빈 블루 라인1960년대에 가데나 기지와 화이트 비치를 잇는 군용 철도 계획이 있었으나 취소됨.
구미지마 경편철도구미지마에 존재했던 경편철도로, 사탕수수 운반 등에 사용됨.
관련 정보
아와세 경편철도아와세 지역에 존재했던 사탕수수 운반용 경편철도.
타이완 사탕수수 주식회사 이헤야 섬 사탕수수차 궤도이에 섬에 존재했던 사탕수수 운반용 궤도.
기타
비고오키나와현은 일본에서 유일하게 JR 노선이 없는 현이었으나,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 개통으로 철도가 부활함.

2. 역사

나하시모노레일은 현재 오키나와의 유일한 철도 수단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오키나와섬에는 다른 철도들이 존재했다. 사탕수수 운반 등을 위한 산업용 철도도 미나미다이토 섬을 비롯한 오키나와 각지에 있었다.

메이지 시대 중기부터 민간 철도 계획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좌절되었다. 1910년 오키나와 전기 궤도(후의 오키나와 전기)가 궤도 부설 특허를 받아 1914년 오키나와 최초의 노면 전차(다이몬마에 - 슈리)를 개업했다. 같은 해, 오키나와 인력차 궤도(후의 오키나와 마차 궤도)도 요나바루 - 오나하 구간을 개업했다.

쇼와 시대에는 도로 정비로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면서 철도는 버스와 경쟁했다. 현영 철도는 기동차를 투입했으나, 오키나와 전기 노면 전차와 이토만 마차 궤도는 이용객 감소로 폐지되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 오키나와 전투 직전(1944년 - 1945년) 운행이 중단되었고, 철도 시설은 오키나와현영철도 수송 탄약 폭발 사고와 오키나와 전투의 공습・지상전으로 파괴되었다.[5]

종전 직후 오키나와 민정부 지사 시키야 고신이 미국 군정청에 철도 복구를 진정했으나,[5] 1948년 이후 도로 정비 우선 정책으로 실현되지 못했다.[5]

1972년 오키나와 반환 이후 나하시 중심 궤도계 대중교통 기관 도입 구상이 제기되었다. 1975년-1976년 오키나와 국제 해양 박람회에서는 신교통 시스템이 도입되어 기간 한정 여객 운송을 실시했다.

2003년 8월, 전후 최초의 운수 영업용 철도인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유이 레일)나하공항역 - 슈리역 구간을 개업했다.

2005년 12월, 정부는 후텐마 비행장의 캠프 슈와브 연안부(헤노코) 이전과 함께 오키나와 본섬 북부 신진흥책으로 나하시 - 나고시 간 철도(오키나와 철도 궤도)를 구상했다.

2019년 10월 1일, 유이 레일의 슈리역 - 테다코우라니시역 구간이 연장 개업하여 우라소에시에 약 75년 만에 철도가 부활했다.

2. 1. 메이지 시대

오키나와현에 최초로 철도가 부설된 것은 메이지 시대1902년으로, 미나미다이토에서 손수레를 이용한 노선이 개통되면서부터였다.[1] 오키나와 본섬의 첫 철도는 1910년에 사탕수수 운송을 위해 개통되었다.[1]

2003년에 개업한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유이 레일)이 현재 오키나와현의 유일한 궤도계 공공 교통 기관이지만,[1] 전쟁 전 오키나와 본섬에는 경편철도, 노면전차, 마차 철도가 존재했다.[1] 또한, 미나미다이토섬을 비롯한 각지에는 사탕수수 운반 등을 위한 산업용 철도도 있었다.[1]

오키나와현은 일본에서 유일하게 국철선이나 JR선이 과거를 포함하여 전혀 다니지 않은 도도부현이다.[1] (국철에 관해서는 자동차선의 현내 영업 경력도 없다).[1] 다만, 2017년까지는 큐슈 여객철도(JR 큐슈)가 나하시에 오키나와 지점을 설치했었다.[1]

오키나와현에서 처음으로 철도 레일이 깔린 곳은 미나미다이토 섬으로, 1902년(메이지 35년)에 손수레 트로크 철도가 완성되었다.[1] 1910년(메이지 43년)에는 오키나와 본섬에서도 사탕수수 운반용 철도가 도입되었다.[1]

운송 영업용의 본격적인 철도 노선은 1894년(메이지 27년)부터 현외의 자본가 등이 오키나와 본섬 내에서 잇달아 사업을 출원했지만, 대부분은 기각되거나 자금력 부족으로 계획이 무산되었다.[1]

산업용 철도를 포함하면, 오키나와현에서 처음으로 철도 레일이 부설된 곳이 미나미다이토 섬이다.[1] 현재는 '''미나미다이토 섬 설탕 철도'''나 '''미나미다이토 섬의 슈가 트레인''' 등으로 불리고 있다.[1] 섬 내를 환상으로 순환하는 선로와 항구 등을 연결하는 선로로 구성되어 있으며, 궤도 연장은 약 30km에 달했다.[1] 사탕수수 외에 여객도 편승 취급으로 운송했다.[1]

미나미다이토 섬은 메이지 중기까지 무인도였으나, 1900년(메이지 33년)에 타마키 상회가 동 섬의 사업권을 얻어 개척이 시작되었고, 1902년(메이지 35년)에는 제당의 시작과 함께 트로코용 철도가 완성되었다.[1] 동 섬의 사업권은 1917년(다이쇼 6년)에 토요 제당으로 양도되었으며, 이때 762mm영어 궤간으로 개궤하여 본격적인 사탕수수 운반 철도가 되었다.[1] 또한, 토요 제당은 1927년(쇼와 2년)에 다이닛폰 제당과 합병했다.[1]

미나미다이토 섬은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의 공습과 함포 사격에 노출되어 철도도 파괴되었지만, 종전 후 1950년(쇼와 25년)에 발족한 '''다이토 제당'''이 철도를 복구하여 다시 철도에 의한 사탕수수 수송이 이루어지게 되었다.[1] 그러나, 1983년(쇼와 58년) 봄의 제당기를 마지막으로 철도 사용을 중지하고, 1984년(쇼와 59년)부터는 트럭 수송으로 전환되었다.[1]

차량은 762mm영어 개궤 시에 증기 기관차를 도입했고, 종전 후 1956년(쇼와 31년)에 디젤 기관차를 도입했다.[1] 현재, 미나미다이토 섬에는 증기 기관차와 디젤 기관차, 객차, 화차가 보존되어 있으며, 오키나와 본섬에서도 나하시 츠보가와 히가시 공원(오키나와 현영 철도 요나바루선 나하 - 코하구라 간의 선로 부근을 재개발한 지점)에 디젤 기관차가 보존되어 있다.[1]

섬 밖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사람은, 전 판사이자 시민 옴부즈만·작가인 이시다 죠이치이다.[1]

전전에는 미나미다이토 섬 외에도 산업용 철도가 각지에 다수 존재했지만, 모두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1]

오키나와 본섬에서는 현재의 니시하라정, 가데나정, 이토만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사탕수수 운반 철도가 부설되었으며, 이 중 니시하라정의 것은 후의 오키나와 궤도의 원형이 되었다.[1] 사키시마 제도에서는 이시가키 섬과 미야코 섬에 사탕수수 운반 철도가 있었고, 이리오모테 섬의 탄광에도 트롤리가 있었다.[1] 또한, 다이토 제도에서는 전술한 미나미다이토 섬 외에 기타다이토 섬과 오키다이토 섬에 린광석 운반용 트롤리가 존재했다.[1]

2. 2. 다이쇼 시대

다이쇼 시대에 철도 운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10년에 이 노선에 대한 독점권을 받은 오키나와 전기(오키나와 전기)는 다이몬마에와 슈리 사이(5.7km, 1067mm 궤간, 500V)에 섬 최초의 노면 전차 노선을 개통했다. 몇 달 후, 니시하라의 사탕수수 노선의 확장을 위해, 요나바루와 코나하 사이(762mm 궤간)에 인력 운송 서비스를 도입했다.[1]

이 노선은 나중에 말로 끄는 서비스로 변경되었다. 노선 연장을 통해 현재의 오키나와의 일부인 아와세까지 철도가 연결되었다(17.7km). 한편, 현 정부는 민간의 실패를 인식하고 자체 노선을 준비하여 1914년 12월에 나하와 요나바루 사이에 오키나와 현립 철도 노선을 개통했다.[1]

다이쇼 시대 말기에 현은 나하에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세 개의 노선으로 구성된 철도 시스템을 완성했다. 하나는 가데나, 다른 하나는 요나바루, 그리고 하나는 이토만으로 향했다.[1]

오키나와 전기는 또한 노선을 확장했다. 나하와 이토만을 연결하는 말로 끄는 전차도 운행을 시작했다. 이것이 오키나와 철도 시스템의 정점이었다.[1]

2. 3. 쇼와 시대 (전쟁 전/전쟁 중)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오키나와 본섬에서는 도로 정비로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여 철도는 버스와 경쟁하게 되었다. 현영 철도는 기동차 (가솔린카)를 투입하는 등 대항했지만, 오키나와 전기의 노면 전차와 이토만 마차 궤도는 이용자 감소로 폐지되었다. 그 결과, 오키나와 본섬 내 철도는 오키나와현영철도와 오키나와 궤도 (구 오키나와 마차 궤도)만 남았다.

하지만, 양쪽 모두 태평양 전쟁 말기의 오키나와 전투 직전인 1944년 (쇼와 19년) - 1945년 (쇼와 20년)에 운행을 중지했으며, 철도 시설은 실수로 인한 인화 사고 (오키나와현영철도 수송 탄약 폭발 사고 참조)와 오키나와 전투에서의 공습・지상전에 의해 파괴되었다.

2. 4. 미군정 시대

미국 점령 하에서 오키나와의 도로 시스템이 현저히 발전하면서, 현 철도와 오키나와 트롤리 노선은 사라졌다.[5] 산업 철도 시스템 또한 사라졌으며, 미나미다이토 사탕수수 노선만 1983년까지 운행을 재개하여 계속 운영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졌다. 미군정청 측도 초창기에는 철도 복구를 지향했지만, 1948년 이후에는 도로 정비 추진으로 정책을 전환했기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다.[5]

1975년 7월 20일부터 1976년 1월 18일까지 엑스포 '75 오키나와 국제 해양 박람회 부지 내에서 사람 수송기가 운행되었다.[1] 이 1.4km 노선은 북문역과 남문역을 연결했으며, 국제 플라자역에 중간 정차했다.[2][3]

산업용 철도를 포함하면, 오키나와현에서 처음으로 철도 레일이 부설된 곳이 미나미다이토섬이다. 현재는 '''미나미다이토 섬 설탕 철도'''나 '''미나미다이토 섬의 슈가 트레인''' 등으로 불리고 있다. 섬 내를 환상으로 순환하는 선로와 항구 등을 연결하는 선로로 구성되어 있으며, 궤도 연장은 약 30km에 달했다. 사탕수수 외에 여객도 편승 취급으로 운송했다.

미나미다이토섬메이지 중기까지 무인도였으나, 1900년(메이지 33년)에 타마키 상회가 동 섬의 사업권을 얻어 개척이 시작되었고, 1902년(메이지 35년)에는 제당의 시작과 함께 트로코용 철도가 완성되었다. 동 섬의 사업권은 1917년(다이쇼 6년)에 토요 제당으로 양도되었으며, 이 때 762mm 궤간으로 개궤하여 본격적인 사탕수수 운반 철도가 되었다. 또한, 토요 제당은 1927년(쇼와 2년)에 다이닛폰 제당과 합병했다.

미나미다이토섬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의 공습과 함포 사격에 노출되어 철도도 파괴되었지만, 종전 후 1950년(쇼와 25년)에 발족한 '''다이토 제당'''이 철도를 복구하여 다시 철도에 의한 사탕수수 수송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1983년(쇼와 58년) 봄의 제당기를 마지막으로 철도 사용을 중지하고, 1984년(쇼와 59년)부터는 트럭 수송으로 전환되었다.

차량은 762mm 개궤 시에 증기 기관차를 도입했고, 종전 후 1956년(쇼와 31년)에 디젤 기관차를 도입했다. 현재, 미나미다이토섬에는 증기 기관차와 디젤 기관차, 객차, 화차가 보존되어 있으며, 오키나와 본섬에서도 나하시 츠보가와 히가시 공원(오키나와 현영 철도 요나바루선 나하 - 코하구라 간의 선로 부근을 재개발한 지점)에 디젤 기관차가 보존되어 있다.

섬 밖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사람은, 전 판사이자 시민 옴부즈만·작가인 이시다 죠이치이다.

전전에는 미나미다이토섬 외에도 산업용 철도가 각지에 다수 존재했지만, 모두 소멸된 것으로 여겨진다.

오키나와 본섬에서는 현재의 니시하라정, 가데나정, 이토만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사탕수수 운반 철도가 부설되었으며, 이 중 니시하라정의 것은 후의 오키나와 궤도의 원형이 되었다. 사키시마 제도에서는 이시가키섬미야코섬에 사탕수수 운반 철도가 있었고, 이리오모테섬의 탄광에도 트롤리가 있었다. 또한, 다이토 제도에서는 전술한 미나미다이토섬 외에 기타다이토섬오키다이토섬인광석 운반용 트롤리가 존재했다.

2. 5. 본토 복귀 후

미국 점령 하에서 오키나와의 도로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현 철도와 오키나와 트롤리 노선은 사라졌다. 산업 철도 시스템 또한 사라졌지만, 미나미다이토 사탕수수 노선은 1983년까지 운행을 재개하여 계속 운영되었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 행정으로 반환된 후, 현은 철도 노선 개발을 계획하여 2003년 8월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유이 레일)을 개통했다.

1975년 7월 20일부터 1976년 1월 18일까지 오키나와 국제 해양 박람회 부지 내에서 사람 수송기가 운행되었다.[1] 1.4km 노선은 북문역과 남문역을 연결했으며, 국제 플라자역에 중간 정차했다.[2][3]

1972년(쇼와 47년) 오키나와현이 일본에 복귀한 무렵부터 나하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궤도계 대중교통 기관을 도입하려는 구상이 제기되었다.

1975년(쇼와 50년) - 1976년(쇼와 51년)에 개최된 오키나와 국제 해양 박람회에서는 회장 내의 교통 기관으로 신교통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오키나와 국제 해양 박람회 협회가 기간 한정으로 궤도법에 의거하여 여객 운송을 실시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2003년(헤이세이 15년) 8월에 운수 영업용 본격적인 철도로는 전후 처음으로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유이 레일)로서 나하시 내의 나하공항역 - 슈리역 구간이 개업했다.

2005년(헤이세이 17년) 12월, 정부는 후텐마 비행장의 캠프 슈와브 연안부(헤노코)로의 이전에 맞춰, 오키나와 본섬 북부의 신진흥책을 수립하는 방침을 정하고, 나하시 - 나고시 간을 1시간 정도로 연결하는 본격적인 철도(오키나와 철도 궤도)가 구상되었다.

2019년 (레이와 원년) 10월 1일, 유이 레일의 슈리역 - 테다코우라니시역 구간이 연장 개업했다. 우라소에시 내에도 오키나와현영철도 이래 약 75년 만에 철도가 부활했다.

3. 과거에 존재했던 철도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오키나와섬에는 오키나와현영 철도, 오키나와 전기, 오키나와 궤도, 이토만 마차 궤도 등 여러 철도 노선이 존재했다. 또한, 미나미다이토섬을 비롯한 오키나와 각지에는 사탕수수 운반 등을 위한 산업용 철도가 있었다.

1910년(메이지 43년), 오키나와 본섬에 사탕수수 운반용 철도가 도입되었다. 민간 철도 계획은 메이지 시대 중기부터 여러 차례 있었으나 좌절되었고, 1910년 오키나와 전기 궤도가 유일하게 실현되어 1914년(다이쇼 3년) 오키나와 최초의 노면 전차가 개업했다. 같은 해 오키나와 궤도의 전신인 오키나와 인력차 궤도가 개업했고, 오키나와현영 철도도 개통되었다.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여 철도는 버스와 경쟁하게 되었고, 오키나와 전기와 이토만 마차 궤도는 폐지되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오키나와현영 철도와 오키나와 궤도마저 운행을 중지하고 시설이 파괴되었다.

전후, 류큐 정부는 철도 복구를 시도했으나, 미국 군정청의 도로 정비 우선 정책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 미군 통치 하에 도로 정비가 진행되면서 철도 부지는 도로 및 미군 기지 건설에 사용되었고, 남은 레일도 회수되어 오키나와현영 철도와 오키나와 궤도는 복구되지 못했다.

미나미다이토섬의 사탕수수 운반 철도는 1902년(메이지 35년)에 시작되었고, 1983년(쇼와 58년)까지 유일하게 복구되어 사용되었다. 그 외 산업용 철도는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오키나와 본섬에는 니시하라정, 가데나정, 이토만시를 중심으로 사탕수수 운반 철도가 있었고, 사키시마 제도에는 이시가키섬미야코섬, 이리오모테섬에, 다이토 제도에는 기타다이토섬오키다이토섬에 산업용 철도가 존재했다.

1975년에는 오키나와 국제 해양 박람회 부지 내에서 신교통 시스템이 운행되기도 했다.

1939년 미야코섬의 사탕수수 트램

3. 1. 오키나와현영 철도

1914년(다이쇼 3년) 12월, 요나바루선 나하-요나바루 구간이 개통되었다. 이후 다이쇼 시대 말기까지 가데나선 (나하-가데나)과 이토만선 (나하-이토만)도 개통되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쇼와 20년) 3월, 운행이 중지되었고 전후 복구되지 않은 채 소멸되었다.

3. 2. 오키나와 전기 궤도 - 오키나와 전기

1910년(메이지 43년) 3월, 오키나와 전기 궤도(후의 오키나와 전기)가 궤도 부설 특허를 받았다.[1] 1914년(다이쇼 3년) 5월, 오키나와 최초의 노면 전차가 다이몬마에 - 슈리 구간을 개통했다.[1]

교토의 사이카 후지키치는 1909년(메이지 42년)에 오키나와 전기를, 1911년(메이지 44년)에는 오키나와 전기 궤도를 설립하여 나하와 슈리를 잇는 노면 전차를 계획했다.[4] 1914년(다이쇼 3년) 5월 다이몬마에 - 슈리, 1917년(다이쇼 6년) 9월 다이몬마에 - 통도 구간이 개업했다.[4] 그러나 버스와의 경쟁으로 수송 인원이 감소하여 1933년(쇼와 8년) 3월 휴지, 같은 해 8월에 정식 폐지되었다.[4]

3. 3. 오키나와 인력차 궤도 - 오키나와 마차 궤도 - 오키나와 궤도

다이쇼 시대에 들어서면서 오키나와현에서는 철도 운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10년 3월, 오키나와 전기 철도는 다이몬마에와 슈리 사이에 섬 최초의 노면 전차 노선을 개통했다. 몇 달 후, 니시하라의 사탕수수 운반 철도를 확장하는 형태로, 요나바루와 코나하 사이에 인력 운송 서비스가 도입되었다.

1914년 11월, 니시하라의 제당 공장에 사탕수수를 운반하기 위해 계획되었던 이 노선은, 비수기에 여객 운송을 위해 별도 회사를 설립하여 요나바루와 코나하 사이를 운행했다.[3] 1916년에는 노선을 아와세까지 연장했다.[1] 이후 이 노선은 말로 끄는 마차 궤도로 변경되었으며, 노선 연장을 통해 현재의 오키나와의 일부인 아와세까지 연결되었다.

1944년, 전쟁이 격화되면서 운영이 중단되었다.[1]

3. 4. 이토만 마차 궤도

나하시이토만시를 직선으로 연결했던 마차철도로, 1919년(다이쇼 8년) 6월에 가키하나 - 지나 구간이 개통되었고, 1920년(다이쇼 9년) 5월까지 전 노선이 개통되었다. 그 후 버스의 등장으로 경쟁력을 잃어 1935년(쇼와 10년) 10월에 운행을 중단했고, 1939년(쇼와 14년) 11월에 정식으로 폐지되었다.

3. 5. 오키나와 해양 박람회 신교통 시스템

1975년 7월 20일부터 1976년 1월 18일까지 오키나와 국제 해양 박람회 부지 내에서 사람 수송기가 운행되었다.[1] 이 1.4km 노선은 북문역과 남문역을 연결했으며, 국제 플라자역에 중간 정차했다.[2][3]

같은 기간 동안 고베 제강(고베 제강소)이 건설한 자동 안내 수송 시스템이 EXPO '75 부지 내에서 운행되었다. 이 노선은 일본에서 운행된 최초의 자동 안내 수송 시스템 노선이었다.[1]

통상산업성이 중심이 되어 개발한 "CVS"(Computer-controlled Vehicle System)도 회장 내의 교통 수단으로 도입되었다.[6][7] 재단법인 오키나와 국제 해양 박람회 협회가 궤도법에 따라 기간 한정 여객 운송을 실시했으며, 이것은 전후 처음으로 오키나와에서 철도 법규가 적용된 철도 노선이자, 일본 최초의 신교통 시스템 영업 노선이었다.

;KRT선(Expo 뉴 시티 카)[7][8][9][10]

남북 게이트를 잇는 간선 수송 시설로 건설되었다.[10]

노선 개요



차량



기타



;CVS선(Expo 미래 카)[7][8][9]

노선 개요



차량



기타


3. 6. 다이토 제당 미나미다이토 사업소의 설탕 운반 전용 궤도

미나미다이토 섬에서 운행된 노선은 여러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에는 南大東島砂糖鉄道|미나미다이토지마 설탕 철도일본어와 南大東島のシュガートレイン|미나미다이토지마의 슈가 트레인일본어이 있다.[5] 오키나와에서 최초로 부설된 철도로, 섬을 둘러싸는 노선과 항구로 교통을 중계하는 노선이 포함되었다. 철도의 총 연장은 30km를 넘었다. 사탕수수를 운반하는 것 외에도, 여객과 우편물도 수송했다.[5]

메이지 시대에는 미나미다이토 섬에 사람이 살지 않았지만, 1900년, 타마키 상회가 섬을 개발하기 시작하여, 1902년에 제당 공장과 인력차 철도를 시작했다. 1917년에는 상업적 권리가 토요 제당으로 넘어갔다. 철도는 궤간 762mm로 개조되었고, 본격적으로 사탕수수를 수송하기 시작했다. 1927년, 토요 제당은 다이닛폰 제당과 합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공습으로 철도가 파괴되었지만, 1950년, '''다이토 제당'''이 철도를 복구하여 운행을 재개했다. 1983년 봄까지 운행되었고, 그 이후에는 트럭이 철도를 대신하여 사탕수수를 운송했다.

궤간을 762mm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증기 기관차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1956년에는 디젤 기관차가 도입되었다. 현재, 미나미다이토 섬에는 증기 기관차와 디젤 기관차, 객차와 화물차가 보존되어 있다.

나하시에는 현립 요나바루 선에서 사용되던 디젤 기관차도 있다.

3. 7. 기타 산업용 철도

나하시모노레일이 오키나와의 유일한 철도 수단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전의 오키나와섬에는 다른 철도가 존재했다. 사탕수수 운반 등을 목적으로 한 산업용 철도도 미나미다이토 섬을 비롯한 오키나와 각지에 존재했다.

오키나와현에서 처음으로 철도 레일이 깔린 곳은 미나미다이토 섬으로, 1902년(메이지 35년)에 손수레 트로크 철도가 완성되었다. 1910년(메이지 43년)에는 오키나와 본섬에서도 사탕수수 운반용 철도가 도입되었다.

산업용 철도를 포함하면, 오키나와현에서 처음으로 철도 레일이 부설된 곳은 미나미다이토 섬이다. 현재는 '''미나미다이토 섬 설탕 철도'''나 '''미나미다이토 섬의 슈가 트레인''' 등으로 불린다. 섬 내를 환상으로 순환하는 선로와 항구 등을 연결하는 선로로 구성되어 있으며, 궤도 연장은 약 30km에 달했다. 사탕수수 외에 여객도 편승 취급으로 운송했다.

미나미다이토 섬은 메이지 중기까지 무인도였으나, 1900년(메이지 33년)에 타마키 상회가 섬의 사업권을 얻어 개척이 시작되었고, 1902년(메이지 35년)에는 제당 시작과 함께 트로코용 철도가 완성되었다. 섬의 사업권은 1917년(다이쇼 6년)에 토요 제당으로 양도되었으며, 이때 762mm 궤간으로 개궤하여 본격적인 사탕수수 운반 철도가 되었다. 토요 제당은 1927년(쇼와 2년)에 다이닛폰 제당과 합병했다.

미나미다이토 섬은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의 공습과 함포 사격에 노출되어 철도도 파괴되었지만, 종전 후 1950년(쇼와 25년)에 발족한 '''다이토 제당'''이 철도를 복구하여 다시 철도에 의한 사탕수수 수송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1983년(쇼와 58년) 봄의 제당기를 마지막으로 철도 사용을 중지하고, 1984년(쇼와 59년)부터는 트럭 수송으로 전환되었다.

차량은 762mm 개궤 시에 증기 기관차를 도입했고, 종전 후 1956년(쇼와 31년)에 디젤 기관차를 도입했다. 현재 미나미다이토 섬에는 증기 기관차와 디젤 기관차, 객차, 화차가 보존되어 있으며, 오키나와 본섬에서도 나하시 츠보가와 히가시 공원(오키나와 현영 철도 요나바루선 나하 - 코하구라 간의 선로 부근을 재개발한 지점)에 디젤 기관차가 보존되어 있다.

섬 밖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사람은 전 판사이자 시민 옴부즈만·작가인 이시다 죠이치이다.

과거에는 미나미다이토 섬 외에도 산업용 철도가 각지에 다수 존재했지만, 모두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오키나와 본섬에서는 현재의 니시하라정, 가데나정, 이토만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사탕수수 운반 철도가 부설되었으며, 이 중 니시하라정의 것은 후의 오키나와 궤도의 원형이 되었다. 사키시마 제도에서는 이시가키 섬과 미야코 섬에 사탕수수 운반 철도가 있었고, 이리오모테 섬의 탄광에도 트롤리가 있었다. 다이토 제도에서는 미나미다이토 섬 외에 기타다이토 섬과 오키다이토 섬에 린광석 운반용 트롤리가 존재했다.

또한, 유람 철도가 멕시코 공원 사라반다, 요나바루 테크, 토미구스쿠 성터 공원에 존재했다.

4. 현재의 철도

현재 나하시모노레일이 오키나와의 유일한 철도 수단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전의 오키나와섬에는 다른 철도가 존재하고 있었다. 또, 사탕수수 운반 등을 목적으로 한 산업용 철도도 미나미다이토 섬을 시작으로 오키나와 각지에 존재했다.

오키나와현은 일본에서 유일하게 국철선이나 JR선이 과거를 포함하여 전혀 다니지 않은 도도부현이다(국철에 관해서는 자동차선의 현내 영업 경력도 없다). 다만, 2017년까지는 큐슈 여객철도(JR 큐슈)가 나하시에 오키나와 지점을 설치했었다.

1975년부터 1976년까지 개최된 오키나와 국제 해양 박람회에서는 회장 내의 교통 기관으로 신교통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오키나와 국제 해양 박람회 협회가 기간 한정으로 궤도법에 의거하여 여객 운송을 실시했다.

2005년 12월, 정부는 후텐마 비행장의 캠프 슈와브 연안부(헤노코)로의 이전에 맞춰, 오키나와 본섬 북부의 신진흥책을 수립하는 방침을 정하고, 나하시 - 나고시 간을 1시간 정도로 연결하는 본격적인 철도(오키나와 철도 궤도)가 구상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도로 정체가 두드러지게 되자 그 대책으로 2003년 8월에 나하시 내에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이 운영하는 궤도법 준거의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유이 레일)이 개통되었다.

4. 1.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유이 레일)2003년 8월에 개통된 오키나와현의 유일한 궤도계 공공 교통 기관이다. 나하시 내의 교통 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1996년에 건설이 시작되었다.

2019년 10월 1일, 유이 레일의 슈리역 - 테다코우라니시역 구간이 연장 개업하면서 우라소에시에도 철도가 부활했다.[4] 모노레일은 현과 민간 기업의 합작 사업으로 운영되며, 노선에는 19개의 역이 있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후, 나하시를 중심으로 궤도계 대중교통 기관 도입 구상이 제기되었다. 1975년부터 1976년까지 개최된 오키나와 국제 해양 박람회에서는 신교통 시스템이 도입되어, 박람회 협회가 기간 한정으로 여객 운송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03년에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이 개통되었다.

5. 실현되지 못한 철도 계획

2003년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유이 레일)이 개통되기 전까지 오키나와현에는 철도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다. 오키나와현은 국철이나 JR 노선이 전혀 다니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기도 하다. 1902년 미나미다이토섬에 최초로 트롤크 철도가 설치되었고, 1910년에는 오키나와 본섬에 사탕수수 운반용 철도가 도입되었다.

1894년부터 운송 영업을 위한 본격적인 철도 노선이 여러 차례 계획되었으나, 대부분 자금 부족 등의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 '''오키나와 철도''': 1894년 나하-슈리-요나바루 간 철도 부설 출원 (기각)[1]
  • '''오키나와 전기 철도''': 1896년 나하-슈리 간 전기 철도 부설 출원 (허가 후 사업 폐지)[1]
  • '''오키나와 기업''': 1906년 나하-슈리 간 전기 철도 부설 출원 (허가 후 특허 실효)[1]
  • '''국두 마차 궤도''': 1918년 나고-나카오지 간 마차 철도 계획 (특허 후 실효)

5. 1. 오키나와 철도

일본 철도에 관여한 오쿠보 토시카즈 등은 1894년(메이지 27년) 나하 - 슈리 - 요나바루 간 철도 부설을 출원했다. 이는 오키나와현 내 최초의 운수 영업 철도 계획으로 여겨진다.[1] 1895년(메이지 28년) 나하 - 슈리 - 요나바루 - 사시키 간으로 건설 구간을 확대해 재출원했으나, 1898년(메이지 31년) 기각되었다.[1]

5. 2. 오키나와 전기 철도

오쿠보 도시카즈 등은 나하 - 슈리 간의 전기 철도 부설을 1896년에 출원하여, 1897년 12월에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자금난으로 착공하지 못하고, 1900년 9월에 사업 폐지를 신고했다.[1]

5. 3. 오키나와 기업

1906년(메이지 39년)에 나하 - 슈리 간 전기 철도 부설을 출원했다. 이어서 슈리 - 요나바루 간과 나하 - 기타야 간도 출원하여 1907년(메이지 40년)에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자금 부족으로 인해 특허가 실효되었다.[1]

5. 4. 국두 마차 궤도

1910년(메이지 43년) 오키나와 본섬에 사탕수수 운반용 철도가 도입되었다.

1894년(메이지 27년)부터 현 외부 자본가 등이 오키나와 본섬 내에서 운송 영업용 철도 노선 사업을 잇달아 출원했지만, 대부분 기각되거나 자금 부족으로 계획이 무산되었다.

나고 - 나카오지 간 5.6km를 잇는 마차 철도 계획은 1918년(다이쇼 7년) 3월에 궤도 부설이 출원되었고, 1920년(다이쇼 9년) 1월에 특허를 받았지만, 자금 부족으로 1921년(다이쇼 10년) 4월에 특허가 실효되었다.

6. 미래

2003년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유이 레일) 개통 이후, 오키나와현에서는 철도 추가 계획이 논의되었다. 2005년 12월, 일본 정부는 후텐마 비행장의 헤노코 이전과 함께 오키나와 본섬 북부 발전을 위해 나하시와 나고시를 1시간 내로 연결하는 철도(오키나와 철도 궤도) 건설을 구상했다.

2019년 10월 1일, 유이 레일 슈리역 - 테다코우라니시역 구간이 연장 개통되어 우라소에시에 약 75년 만에 철도가 부활했다.

네오파크 오키나와, 오키나와 어린이의 나라, 미하마 타운 리조트 아메리칸 빌리지 등에는 유람 철도가 설치되어 있고, 나고 파인애플 파크, 코우리 섬 오션 타워, 미야코지마 열대 과수원 "마이파리"에는 전자 유도식 카트가 운행 중이다.

2015년 10월 27일, 미야코지마시 시기라 리조트에 남서 낙원 리조트가 운영하는 더 시기라 리프트 오션 스카이가 운행을 시작했다.[12] 이는 오키나와현 최초로 철도사업법에 준거하는 삭도이다.[14]

참조

[1] 웹사이트 沖縄:沖縄国際海洋博覧会KRT http://www.kobelco.c[...]
[2] 논문 海洋博を終って https://www.jstage.j[...] 1976
[3] 논문 第2章 新交通システム https://www.jstage.j[...] 1976
[4] 웹사이트 Now operational: Monorail extension into Urasoe adds four new stations http://english.ryuky[...] 2024-02-03
[5] 뉴스 沖縄の鉄道再建、米が計画 48年公文書で着工打診 https://ryukyushimpo[...] 2015-06-15
[6] 웹사이트 神戸製鋼 エンジニアリング事業 製品紹介 新交通システム https://web.archive.[...]
[7] 논문 海洋博を終って https://doi.org/10.3[...] 映像情報メディア学会 1976
[8] 서적 沖縄国際海洋博覧会公式ガイドブック 沖縄国際海洋博覧会協会 1975
[9] 논문 交通とエレクトロニクス II.新しい交通システム 第2章新交通システム https://doi.org/10.1[...] 電気学会 1976
[10] 문서 沖縄国際海洋博覧会公式記録(総合編)第III章 会場施設 輸送サービス施設 沖縄国際海洋博覧会協会
[11] 웹사이트 ゆいレール延伸区間の開業日 10月1日に決定 https://www.traicy.c[...] 2019-05-24
[12] 웹사이트 沖縄初のペアリフト「ザ シギラリフト オーシャンスカイ」 http://www.unimat.co[...] ユニマットグループ 2016-04-06
[13] 웹사이트 ザ シギラリフト オーシャンスカイ https://shigira.com/[...]
[14] 웹사이트 沖縄県初の索道事業を認可 http://ogb.go.jp/oki[...] 沖縄総合事務局 2014-08-22
[15] 뉴스 政府、沖縄鉄道構想の支援を検討 普天間跡地に駅 http://sankei.jp.msn[...] 産業経済新聞社 2023-01-29
[16] 뉴스 利点いろいろ 次世代交通システムの可能性を探る 豊見城市と業者協定 https://www.okinawat[...] 沖縄タイムス 2023-10-14
[17] 뉴스 南大東村が鉄道“シュガートレイン”の復活を計画 2013-09-22
[18] 뉴스 島の誇り「シュガートレイン」復活断念 沖縄・南大東島 https://www.asahi.co[...] 201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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