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카와 홍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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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시카와 홍문관은 1839년 창업자 요시카와 한시치가 설립한 일본의 출판사이다. 1857년 서적 중개업을 시작하여, 1870년 도쿄에 서점을 열고 서양 문화 번역서와 학술서를 출판했다. 1900년 '홍문관' 상호를 사용했으며, 1904년 합자회사로 설립되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었으나, 1949년 재발족하여 현재까지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출판하고 있다. 특히 이진희의 《광개토대왕비의 연구》와 안휘준의 《한국회화사》 일본어 번역본을 출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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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카와 홍문관 - [회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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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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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명 | 주식회사 요시카와 홍문관 |
종류 | 주식회사 |
본사 우편번호 | 113-0033 |
본사 소재지 | 東京都文京区본고 7丁目 2番 8号 |
설립 | 1857년(안세이 4년) |
주식회사 발족 | 1949년(쇼와 24년) |
업종 | 5250 |
사업 내용 | 역사학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 도서의 출판 |
대표자 | 이사회 사장 요시카와 미치오 |
자본금 | 4800만 엔 |
직원 수 | 30명 |
관계 인물 | 요시카와 한시치 (창설자) |
외부 링크 | 요시카와 홍문관 공식 웹사이트 |
2. 역사
창업자인 요시카와 한시치는 1839년(덴포 10년) 오미 국(시가현)에서 태어나 에도니혼바시 가키가라초의 서점 와카바야시야 키헤이에 봉사했다. 1857년(안세이 4년) 19세에 독립하여 자영을 허락받아 서적 중매를 시작했다. 1863년(분큐 3년)에는 친누나의 시댁에서 고지마치의 대본집 오미야를 잇고, 오미야 요시카와 한시치라고 칭했다. 1864년(겐지 원년), 에도・교토・오사카를 왕래하며 서적을 거래했다.
1870년(메이지 3년) 도쿄부 교바시 미나미덴마초(현재의 주오구교바시 1초메)의 큰 길에 신 점포(요시카와 서방)를 열었다. 취급한 서적은, 신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화한서 외에, 후쿠자와 유키치・나카무라 마사나오 등의 서양 문화 번역류도 다수 갖추었으며, 특히 가미가타판의 상비 판매는 다른 점포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 있었다. 1872년(메이지 5년)에는, 요시카와 서방의 2층에 "대본집"의 대혁신을 시도하여, 유료(1시간 반전)의 서적 전람소를 설치, 널리 내외의 서적을 모아 공개하고 "내독대관소"라고 칭했다. 오쓰키 죠덴은 "일본에서의 도서관의 시작이다"라고 칭찬하고 있다( 1876년(메이지 9년) 11월 화재로 인해 폐쇄). 1877년(메이지 10년)경부터 출판을 겸업하여, 처음에는 "분옥포" "오미야" 등의 호도 사용했지만, 대부분은 "요시카와 한시치"의 개인 명의로 발행소를 했다. 1879년(메이지 12년)에는 내각 서기관 오카 미하시(모리세쓰・서예가)의 추천으로 궁내성 어용 서사가 되어, 『만엽집고의』『유학강요』『부녀감』 등, 다수의 궁내성장본의 출판을 맡았고, 1887년(메이지 20년)경부터, 시대의 추세에 감안하여 출판에 전업하여, 주로 학술서의 간행에 종사했다.
1900년(메이지 33년) "홍문관"의 상호를 내걸고, 대규모 총서의 발행이나, 예약 출판을 했다. 1902년(메이지 35년) 요시카와 한시치가 63세로 사망. 2대 요시카와 한시치가 1904년(메이지 37년) 자본금 10만 엔으로 합자회사 요시카와 홍문관을 설립했다. 1905년(메이지 38년), 국서간행회의 편집소를 요시카와 홍문관 창고의 2층에 두고, 이 해부터 발행한 간행회본(국서간행회총서)의 인쇄・배본을 맡아, 1922년(다이쇼 11년)까지 총 8기, 57부, 260권을 간행. 1923년(다이쇼 12년) 간토 대지진으로 점포나 자료를 모두 소실했다. 1929년(쇼와 4년) 『신정증보 국사대계』의 간행을 시작했다. 1943년(쇼와 18년) 태평양 전쟁 중의 "출판 사업령"에 의해, 기업 합병을 하여 잠시 사업을 휴지. 이 해까지 국사대계 58권을 간행했다.
전시 중의 휴업을 거쳐, 1949년 5월 7일, 요시카와 게이조 외 3명이 출자하여, 신생 "주식회사 요시카와 홍문관"으로 재발족하여, 현재에 이른다. 한편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가 일본 참모본부에 의해 그 탁본이 제작되는 과정에서 참모본부가 일부러 비문에 석회를 발라 날조된 내용을 삽입, 비문을 변조했다고 주장해 화제를 모았던 자이니치 사학자 이진희의 저서 《광개토대왕비의 연구》가 1972년 요시카와 홍문관에서 출판되었다. 또한 한국의 서울대학교 미술사 안휘준 교수가 지은 《한국회화사》가 요시카와 홍문관에서 일본어 번역본이 발행되었는데, 이 책은 1987년 일본 번역가협회 선정 '87번역문학상 수상 저서'로 선정되었다.
2. 1. 창업과 초기 활동 (1839년 ~ 1900년)
요시카와 홍문관의 창업자 요시카와 한시치는 1839년(덴포 10년) 오미 국(시가현)에서 태어나 에도(현재의 도쿄) 니혼바시 가키가라 정의 책방에서 일했다. 1857년(안세이 4년) 19세에 독립하여 서적 중개업을 시작했고, 1863년(분큐 3년)에는 기쿠 정에서 책 대여점 '오미야'를 인수하여 '오미야 요시카와 한시치'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1864년(겐지 원년)에는 에도와 교토, 오사카를 오가며 서적을 교역하였다.1870년 (메이지 3년), 도쿄 교바시 남쪽 덴마 정(현재의 주오구 교바시 1초메)에 '요시카와 서방'을 개점하였다. 이 서점에서는 일본과 중국 서적 외에도 후쿠자와 유키치, 나카무라 마사나오 등 서양 문화 서적의 번역본도 다수 취급하였으며, 특히 가미가나판(上方版)의 상비 판매는 다른 점포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1872년(메이지 5년), 요시카와 서방 건물 2층에 유료 서적 전람소 '내독화관소'를 설치하여 널리 서적을 공개하였다. 이는 오쓰키 죠덴에 의해 "일본 도서관의 발원지"라 칭찬받았다. (1876년 11월 화재로 폐쇄). 1877년경부터 출판업을 겸업하였고, 1879년에는 궁내성 어용 서점으로 지정되어 궁내성 소장판 출판 사업을 인수하였다. 1887년경부터는 출판업에 전념하여 학술서 간행에 주력하였다.
1900년 '홍문관'이라는 상호를 사용하며 대규모 총서 발행 및 예약 출판을 시작하였다.
2. 2. 요시카와 홍문관 설립과 발전 (1900년 ~ 1945년)
1839년 오미 국(시가현)에서 태어난 요시카와 한시치는 에도의 서점에서 일하다 1857년 독립, 1863년에는 책 대여점 오미야(近江屋)를 이어받았다. 1870년 도쿄 주오구 교바시에 요시카와 서방(吉川書房)을 열고, 후쿠자와 유키치, 나카무라 마사나오 등 서양 문화 서적 번역류를 다수 취급했다. 1872년에는 서적 전람소를 설치, 오쓰키 겐덴은 이를 "일본 도서관의 시작"이라 칭찬했다. 1879년 궁내성 어용 서점이 된 후, 1887년경부터 출판업에 전업, 주로 학술서를 간행하였다.1900년 '홍문관'(弘文館)이라는 상호를 사용하며 총서 간행 및 예약 출판을 시작했다. 1902년 요시카와 한시치 사망 후, 1904년 합자회사 요시카와 홍문관(合資会社吉川弘文館)이 설립되었다. 1905년부터 1922년까지 국서간행회 총서의 인쇄 및 배본 사업을 인수했다. 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점포 및 자료가 소실되었으나, 1929년 《신정증보 국사대계》(新訂増補国史大系) 간행을 시작했다. 1943년 태평양 전쟁 중 '출판사업령'으로 사업이 일시 중단되었다.
2. 3. 재건과 현재 (1945년 ~ 현재)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1949년 5월 7일 요시카와 게이조(吉川圭三) 외 3인이 출자하여 신생 "주식회사 요시카와 홍문관"(株式会社吉川弘文館)으로 재발족하였다.요시카와 홍문관은 고대사부터 근현대사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서, 문화사, 미술사, 고고학, 민속학, 종교학, 일본어, 일본 문학 서적을 출판하고 있다. 《인물총서》, 《일본 역사 총서》, 《역사 문화 라이브러리》, 《일본의 시대사》 등을 출판하였으며, 1963년에는 《인물총서》 간행으로 제11회 기쿠치 간 상을 수상하였다.[1]
1972년에는 이진희의 《광개토대왕비의 연구》를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가 일본 참모본부에 의해 그 탁본이 제작되는 과정에서 참모본부가 일부러 비문에 석회를 발라 날조된 내용을 삽입, 비문을 변조했다고 주장하여 화제를 모았다. 1987년에는 안휘준의 《한국회화사》 일본어 번역본이 일본 번역가협회 선정 '87번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10년에는 디지털판 《국사대사전》을 인터넷 백과사전 '재팬 너리지'에 공개하였다. 또한 《도호쿠의 고대사》, 《간토의 명성을 걷다》, 《오키나와 기지 문제를 아는 사전》 등 지역 연구 관련 서적도 출판하고 있다.
현재 요시카와 홍문관은 일본 역사학회 월간 학술지 《일본역사》 및 격월간 PR지 《본향》을 간행하고 있다.
3. 주요 출판물
3. 1. 사전 및 자료집
3. 2. 총서 및 시리즈
3. 3. 기타 주요 저작
4. 한국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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