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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순시선 괴선박 격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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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순시선 괴선박 격침 사건은 2001년 12월 동중국해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정체불명의 괴선박을 추격하여 발생한 사건이다. 일본은 이 선박을 북한 공작선으로 보고, 경고 사격 후 총격전을 벌여 침몰시켰다. 사건 이후, 일본은 선체를 인양하여 조사한 결과 북한 공작선임을 확인했고, 일본 내에서는 자위대법 개정 및 특수부대 창설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이 사건은 일본과 북한 간의 긴장을 고조시켰으며, 관련자들의 추가 범죄 혐의가 드러나기도 했다. 현재 인양된 공작선은 요코하마 해상보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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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순시선 괴선박 격침 사건 - [전쟁]에 관한 문서
전투 개요
명칭아마미오 섬 해전 (일본), 규슈 남서 해역 공작선 사건 (일본)
영어 명칭Battle of Amami-Ōshima
발생일2001년 12월 22일
위치동중국해, 가고시마현아마미오 섬 해역
결과일본 승리, 공작선 자폭 후 침몰
교전 세력
교전 1조선인민군 해군
교전 2일본 해상보안청, 일본 해상자위대 (지원)
지휘관
조선인민군 해군미상
일본 해상보안청/자위대미상
전력
조선인민군 해군공작선 1척, 15명
일본 해상보안청순시선 2~4척, 70명
피해 규모
조선인민군 해군15명 사망, 공작선 1척 침몰
일본 해상보안청3명 부상, 순시선 1~3척 손상
사건 상세
종류해상 전투, 간첩선 격침
원인불법 조업 및 간첩 활동 의심 선박 단속
대응해상보안청의 불심 검문 및 추격, 자위대 지원, 교전 후 공작선 자침
이미지
북한 공작선에 탑재된 ZPU-2 대공포
북한 공작선에 탑재된 ZPU-2 대공포
격침된 공작선
사건으로 침몰한 공작선 (현재 요코하마 해상방재기지에 전시 중)
관련 정보
관련 법규어업법 위반, 살인미수죄
수사 결과피의자 사망으로 불기소 처분

2. 배경

1990년대 후반부터 북한의 잠수정과 괴선박이 대한민국과 일본 주변 해역에 빈번하게 출몰하면서 양국은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1998년에는 대한민국 주변에서 수 차례 북한의 잠수정이 목격되었다. 6월 22일에는 속초 부근 해상에서 유고급 잠수함이 어부의 신고로 수습 도중 침몰, 예인되었고,[37] 11월 20일 새벽에는 강화도 장곶 부근 해상에서 10톤 규모의 특수 간첩선으로 추정되는 괴선박이 목격되었다.[38] 12월 17일 밤에서 다음날 새벽 사이에는 대한민국 해군이 여수부근에서 이동하는 반잠수정을 추격하여 교전 끝에 침몰시키고, 인양하였다. 이 교전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와 해상보안청의 함정과 초계기가 일본 영해를 감시하는 한일 양국의 공조가 이루어졌다.[39] 12월 22일에는 거제도 부근에서 대한민국의 해군 함정이 괴선박을 발견, 함포를 쏘며 추격을 하였으나, 일본 어선으로 밝혀졌다.[40]

1999년 3월 23일, 동해상에서 순시 중이던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선박에 2척의 괴선박이 발견되어 추격전이 벌어졌다. 일본 해상보안청에 의하면, 괴선박들은 일장기와 일본식 이름으로 일본 어선을 위장하고 있었다.[41] 다음날까지 계속된 20여 시간의 추격전에서 동원되었던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해상자위대 소속 함정과 초계기 등이 기관총 사격과 폭탄 투하 등으로 괴선박에 경고하였는데, 이는 훈련 이외의 발포로서는 일본 해상자위대 창설 이래 최초의 것으로 보도되었다.[42] 괴선박은 북한 영해로 이동하여 24일 8시경 일본의 방공식별권을 넘었고, 더 이상의 추격을 포기한 일본 정부는 북한측에 도주한 선박과 승조원에 대한 인도를 요청하였으나,[43] 북한은 이를 자작극이라 주장하였다.[44] 하지만, 괴선박들은 나진항 앞바다에 머무르다가 25일 청진항에 입항한 것으로 확인되었다.[45]

이 사건으로 일본 내에서는 자위대의 출동과 발포가 적절하였는지의 여부가 지적되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미국과 일본간의 신방위협력지침 심의와 관련하여 일본의 군사적 활동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였다.[46][47] 일본은 첩보선이라고 주장했지만, 북한은 이를 부인했다.[6]

2000년 2월 일본에서는 괴선박에 대한 자위대의 사격을 허용하도록 자위대법 개정이 추진되었고,[51] 2001년 3월에 개정안이 마련되었다.[52] 괴선박에 대응하기 위해 3개의 특수부대가 창설되었으며,[53] 2001년 후반에는 일본 해상보안관의 괴선박에 대한 선체 사격을 허용하는 법안이 마련되었다.[54]

1998년 8월 31일에는 북한이 대포동 1호를 발사하였고,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2. 1. 1998년: 괴선박 대응 한일 공조 해상 작전

1998년에는 대한민국 주변에서 수 차례 북한의 잠수정이 목격되었다. 6월 22일에는 속초 부근 해상에서 유고급 잠수함이 어부의 신고로 수습 도중 침몰, 예인되었고,[37] 11월 20일 새벽에는 강화도 장곶 부근 해상에서 10톤 규모의 특수 간첩선으로 추정되는 괴선박이 목격되었다.[38] 12월 17일 밤에서 다음날 새벽 사이에는 대한민국 해군이 여수부근에서 이동하는 반잠수정을 추격하여 교전 끝에 침몰시키고, 인양하였다. 이 교전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와 해상보안청의 함정과 초계기가 일본 영해를 감시하는 한일 양국의 공조가 이루어졌다.[39] 12월 22일에는 거제도 부근에서 대한민국의 해군 함정이 괴선박을 발견, 함포를 쏘며 추격을 하였으나, 일본 어선으로 밝혀졌다.[40]

2. 2. 1999년: 일본의 괴선박 2척 추적

1999년 3월 23일, 동해상에서 순시 중이던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선박에 2척의 괴선박이 발견되어 추격전이 벌어졌다. 일본 해상보안청에 의하면, 괴선박들은 일장기와 일본식 이름으로 일본 어선을 위장하고 있었다.[41] 다음날까지 계속된 20여 시간의 추격전에서 동원되었던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해상자위대 소속 함정과 초계기 등이 기관총 사격과 폭탄 투하 등으로 괴선박에 경고하였는데, 이는 훈련 이외의 발포로서는 일본 해상자위대 창설 이래 최초의 것으로 보도되었다.[42] 괴선박은 북한 영해로 이동하여 24일 8시경 일본의 방공식별권을 넘었고, 더 이상의 추격을 포기한 일본 정부는 북한측에 도주한 선박과 승조원에 대한 인도를 요청하였으나,[43] 북한은 이를 자작극이라 주장하였다.[44] 하지만, 괴선박들은 나진항 앞바다에 머무르다가 25일 청진항에 입항한 것으로 확인되었다.[45]

이 사건으로 일본 내에서는 자위대의 출동과 발포가 적절하였는지의 여부가 지적되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미국과 일본간의 신방위협력지침 심의와 관련하여 일본의 군사적 활동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였다.[46][47] 일본은 첩보선이라고 주장했지만, 북한은 이를 부인했다.[6]

2. 3. 2000년: 자위대법 개정, 특수부대 창설

2000년 2월 일본에서는 괴선박에 대한 자위대의 사격을 허용하도록 자위대법 개정이 추진되었고,[51] 2001년 3월에 개정안이 마련되었다.[52] 괴선박에 대응하기 위해 3개의 특수부대가 창설되었으며,[53] 2001년 후반에는 일본 해상보안관의 괴선박에 대한 선체 사격을 허용하는 법안이 마련되었다.[54]

2. 4. 기타 관련 사건

1998년 8월 31일에는 북한이 대포동 1호를 발사하였고,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3. 사건 발생 및 경과

2001년 12월 18일경, 주일 미군으로부터 불심선에 관한 정보가 방위청에 제공되었다. 각 통신소에 북한 관련 무선 감청을 지시했고, 12월 19일기카이섬 통신소가 수상한 통신 전파를 포착, 해상자위대기는 기카이섬 근해 해역을 초계했다. 12월 21일 16시 32분, 가노야 항공 기지 소속의 록히드 P-3C 대잠 초계기가 동중국해의 큐슈 남서 해역(아마미오섬의 북북서 150킬로미터)에서 선체에 "'''장어 3705'''"라고 적힌 어선과 비슷한 의심 선박을 발견했다. 보고는 17시 30분에 나카타니 겐방위청 장관에게, 18시경에는 내각총리대신 비서관, 내각관방장관비서관, 내각관방 부장관비서관에게도 전달되었다.

방위청은 18시 30분경에 가노야 항공 기지로 귀환한 P-3C가 촬영한 화상을 분석하고, 대상 선박은 북한 공작선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다음날 12월 22일 1시에 방위청 장관에게 "공작선의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결과가 보고되었으며, 1시 10분, 내각총리대신 비서관, 내각관방장관 비서관, 내각관방 부장관 비서관, 해상보안청에 통보했다. 통보를 받은 이노우에 요시유키 내각관방 부장관 비서관은 아베 신조내각관방 부장관 등과 총리 관저 별관에 있는 위기 관리 센터에서 대응책을 협의한 결과, 특수경비대 (SST)의 투입이 검토되었다[21]

해상보안청은 통보를 받고 이를 포착하기 위해 추적하기로 결정하고, 제10관구 (가고시마), 제11관구 (나하) 본부의 가동 가능한 항공기 및 순시선정을 출동시켰다. 해상보안청은 사건 발생 직후 제10관구 (가고시마) 및 가고시마 해상보안부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수사를 시작했다[16]。또한 제7관구(기타큐슈), 제8관구(마이즈루) 등에도 경계 태세를 취하게 했다. 현장으로 향한 순시선정은 24척, 항공기는 14기에 달했다[22]

해상자위대도 정보를 받고 사세보 지방대 일부에 긴급 출항을 명령했다. 11시 20분에 사세보 기지에서 호위함 "곤고", "야마기리" (제2호위대군 소속)를 현장으로 향하게 했다. 일본국 정부로부터 해상자위대의 특별 경비대(SBU)에 출동 대기 명령이 발령되었다.

2001년 12월 22일 6시 20분경,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은 가고시마현 아마미 오시마 서북서쪽 224 km 해상에서 괴선박을 발견하고 추격을 시작했다.[36] 16시경, 위협사격과 함께 20mm 기관포로 공격했다. 괴선박은 일본 순시선의 공격으로 갑판에 불이 붙은 채 EEZ 중간선을 넘어 중국 해역으로 도주했다. 해상보안청은 해상보안청법 제20조에 따라, "조준 성능이 높은 RFS가 장착된 기관포라면, 승무원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고 선체 사격이 가능하다"는 판단으로 선체 사격을 실시했다.[22] 16시 13분부터 "이나사"가 불심선의 엔진으로 추정되는 선미부분을 사격했고, 이후 "미즈키"가 선수부분을 사격했을때, 예광탄이 선수 갑판 위 드럼통의 예비 연료에 맞아 화재가 발생, 17시 24분 불심선은 정선했다.[23]

22시, 저속 도주하는 괴선박에 대해 순시선 "아마미", "키리시마"가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강행 접현하여 임검을 시도하던 중, 괴선박 선원들이 PK 계열 경기관총 및 AKS-74로 총격을 가했다.[22] 순시선 "아마미"는 64식 7.62mm 소총, "이나사"는 20mm 기관포로 정당방위 사격을 실시했다.[24] 괴선박 승무원은 ZPU-2 기관포와 소화기로 공격, RPG-7 2발을 발사했으나 명중하지 않았다.[25] 방탄 처리되지 않은 "아마미"는 함교가 100발 이상 관통, 승무원 3명이 부상당했다.[24] "이나사"는 21발을 피탄당했고, 우현 기계 냉각 계통 피탄으로 기관이 정지했다.[26]

22시 13분, 괴선박은 총격전 끝에 폭발, 동중국해 중국 EEZ 내에서 침몰했다.[20] 폭발 직전 괴선박에서 북한 본국으로 "이여, 이 아이는 영원히 당신의 충신이 되리라", "만세"라는 메시지가 발신되어, 자폭으로 추정된다. 괴선박 침몰 후 선원 15명은 행방불명되었다.[36]

총격으로 손상된 "아마미"의 함교


총격으로 손상된 "아마미"의 전방 마스트 등과 갑판 감시 TV


북한 간첩 어선의 선미에서 발견된 이중 해치

3. 1. 불심선 발견 및 추격

2001년 12월 22일 6시 20분경,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이 가고시마현 아마미 오시마 서북서쪽 224 km 해상에서 괴선박(불심선)을 발견하고 추격을 시작하였다.[36] 12월 21일 16시 32분, 가노야 항공 기지 소속의 록히드 P-3C 대잠 초계기가 동중국해의 큐슈 남서 해역(아마미오섬의 북북서 150킬로미터)에서 선체에 "'''장어 3705'''"라고 적힌 어선과 비슷한 의심 선박을 발견했다. 보고는 17시 30분에 나카타니 겐방위청 장관에게, 18시경에는 내각총리대신 비서관, 내각관방장관비서관, 내각관방 부장관비서관에게도 전달되었다.

방위청은 18시 30분경에 가노야 항공 기지로 귀환한 P-3C가 촬영한 화상을 분석하고, 대상 선박은 북한 공작선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다음날 12월 22일 1시에 방위청 장관에게 "공작선의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결과가 보고되었으며, 1시 10분, 내각총리대신 비서관, 내각관방장관 비서관, 내각관방 부장관 비서관, 해상보안청에 통보했다. 통보를 받은 이노우에 요시유키 내각관방 부장관 비서관은 아베 신조내각관방 부장관 등과 총리 관저 별관에 있는 위기 관리 센터에서 대응책을 협의한 결과, 특수경비대 (SST)의 투입이 검토되었다[21]

해상보안청은 통보를 받고 이를 포착하기 위해 추적하기로 결정하고, 제10관구 (가고시마), 제11관구 (나하) 본부의 가동 가능한 항공기 및 순시선정을 출동시켰다. 해상보안청은 사건 발생 직후 제10관구 (가고시마) 및 가고시마 해상보안부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수사를 시작했다[16]。또한 제7관구(기타큐슈), 제8관구(마이즈루) 등에도 경계 태세를 취하게 했다. 현장으로 향한 순시선정은 24척, 항공기는 14기에 달했다[22]

해상자위대도 정보를 받고 사세보 지방대 일부에 긴급 출항을 명령했다. 11시 20분에 사세보 기지에서 호위함 "곤고", "야마기리" (제2호위대군 소속)를 현장으로 향하게 했다. 일본국 정부로부터 해상자위대의 특별 경비대(SBU)에 출동 대기 명령이 발령되었다.

16시경에는 위협사격과 함께 20 mm 기관포로 공격하였다. 괴선박은 일본 순시선의 공격으로 갑판에 난 불을 끄고 EEZ 중간선을 넘어 중국쪽 해역으로 도주하였다.[36] 다음 날 이른 아침, 그 배는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선박 4척의 추격을 받았고, 정지 명령을 무시하자 경고 사격 25발을 가했다.[7] 6시간에 걸친 교전이 벌어졌고, 양측에서 1,000발 이상의 기관총탄이 발사되었으며[8] 북한 선원들은 어깨 발사식 로켓 발사기를 사용했다고 한다.[9]

3. 2. 총격전 및 괴선박 침몰

2001년 12월 22일 6시 20분경,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은 가고시마현 아마미 오시마 서북서쪽 224 km 해상에서 괴선박을 발견하고 추격을 시작했다.[36] 16시경, 위협사격과 함께 20mm 기관포로 공격했다. 괴선박은 일본 순시선의 공격으로 갑판에 불이 붙은 채 EEZ 중간선을 넘어 중국 해역으로 도주했다. 해상보안청은 해상보안청법 제20조에 따라, "조준 성능이 높은 RFS가 장착된 기관포라면, 승무원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고 선체 사격이 가능하다"는 판단으로 선체 사격을 실시했다.[22] 16시 13분부터 "이나사"가 불심선의 엔진으로 추정되는 선미부분을 사격했고, 이후 "미즈키"가 선수부분을 사격했을때, 예광탄이 선수 갑판 위 드럼통의 예비 연료에 맞아 화재가 발생, 17시 24분 불심선은 정선했다.[23]

22시, 저속 도주하는 괴선박에 대해 순시선 "아마미", "키리시마"가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강행 접현하여 임검을 시도하던 중, 괴선박 선원들이 PK 계열 경기관총 및 AKS-74로 총격을 가했다.[22] 순시선 "아마미"는 64식 7.62mm 소총, "이나사"는 20mm 기관포로 정당방위 사격을 실시했다.[24] 괴선박 승무원은 ZPU-2 기관포와 소화기로 공격, RPG-7 2발을 발사했으나 명중하지 않았다.[25] 방탄 처리되지 않은 "아마미"는 함교가 100발 이상 관통, 승무원 3명이 부상당했다.[24] "이나사"는 21발을 피탄당했고, 우현 기계 냉각 계통 피탄으로 기관이 정지했다.[26]

22시 13분, 괴선박은 총격전 끝에 폭발, 동중국해 중국 EEZ 내에서 침몰했다.[20] 폭발 직전 괴선박에서 북한 본국으로 "이여, 이 아이는 영원히 당신의 충신이 되리라", "만세"라는 메시지가 발신되어, 자폭으로 추정된다. 괴선박 침몰 후 선원 15명은 행방불명되었다.[36]

4. 인양 및 조사 결과

2003년, 일본 정부는 괴선박의 기원과 의도를 확인하기 위해 인양을 실시했다.[28] 고이즈미 정권은 중국 정부와 협상을 거듭하여 2002년 6월 18일 구두 합의서를 교환했고, 중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확인되었다.[28] 중국 측에 "수사 협력금" 명목으로 1억 5,000만 엔을 지급했다.[28]

인양 및 조사 결과, 해당 선박은 북한에서 제작된 침투 및 첩보용 공작선으로 확인되었다.[29] 선체는 중국 또는 일본 어선으로 위장되어 있었으며, 상업용 어선보다 훨씬 빠른 33노트(약 61km/h)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또한 쾌속정 출구용 이중 해치가 선미에 존재했다.

요코하마 해상보안 박물관에 전시된 인양된 선박


2002년 9월 11일 침몰한 공작선의 선체와 유류품이 해중에서 회수되어 가고시마현의 항구로 옮겨져 분석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배는 북한 공작선이며, 시신으로 회수된 승무원은 북한의 공작원으로 단정되었다.[29] 시신은 행려사망자로 취급되어 화장된 뒤 가고시마시의 무연고 위령비 소무타 묘지 내 무연고 납골당에 매장되었다.

선체 인양으로 공작선의 약점에 관한 사실이 발견되었다. 해상보안대학교 연구팀은 정밀 모형을 제작, 실험 결과 파도 높이가 3미터를 넘으면 공작선의 속력이 대폭 저하된다는 것을 확인했다.[30] 이는 사건 당시 공작선이 악천후 속에서 저속으로 도주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4. 1. 발견된 무장

사건 당시 침몰한 공작선은 고유 무장으로 ZPU-2 대공 기관포와 82mm 무반동포를 갖추고 있었다.[36] ZPU-2는 과거 대전차 소총용 탄환을 사용하여 관통력이 뛰어나, 방탄복을 착용한 사람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고 순시선이나 항공기 외피를 관통할 위험이 높았다.[36] 82mm 무반동포는 비장갑 순시선에 명중하면 상부 구조물 전체를 관통하여 격파할 수 있었다.

공작선에 장비된 ZPU-2


회수된 휴대 화기류


또한, 공작선에는 조선인민군 일선에도 많이 배치되지 않은 최신예 휴대 화기들이 적재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AKS-74 자동소총, 82식 기관총, RPG-7 대전차 로켓, 9K310 이글라-1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등이 포함되었다.[36] AKS-74가 발사하는 소구경 고속탄이나 82식 기관총이 사용하는 기관총탄은 당시 해상보안관에게 지급되었던 방탄복을 관통하여 살상할 능력이 있었다. 9K310 이글라-1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은 5km의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어, 채프나 플레어와 같은 군용 방어 장비를 갖추지 못한 당시 해상보안청 항공기에 큰 위협이 되었다.

5. 사회적 여파 및 논란

일본 순시선이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서 사격을 한 것은 국제 관례와 일본 국내법에 어긋남이 지적되었고, 일본 내에서도 과잉 대응의 논란이 일었다.[55] 중국은 괴선박이 중국의 것이 아님을 밝히면서 괴선박에 대한 무력 사용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였다.[56]

2003년 일본은 이 어선의 기원과 의도를 확인하기 위해 인양했다. 선체를 검사한 결과, 북한에서 제작된 침투 및 첩보 선박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선박은 중국 또는 일본 어선으로 위장되었으며, 상업용 어선보다 훨씬 빠른 속도인 33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선박에는 쾌속정의 출구로 사용하기 위한 선미에 숨겨진 이중 해치가 있었다.

조사가 완료된 후, 선체는 요코하마의 요코하마 해상보안 박물관에 전시되었고, 이 어선은 인기 있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5. 1. 일본

일본 순시선이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서 사격을 한 것은 국제 관례와 일본 국내법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았고, 일본 내에서도 과잉 대응이라는 논란이 있었다.[55] 중국은 괴선박이 자국의 것이 아님을 밝히면서도 괴선박에 대한 무력 사용에 우려를 표했다.[56]

이 사건은 소련의 라즈에즈노이 호 사건 이후 48년 만에 타국 선박에 대한 선체 사격을 가한 사건이었다. 납치 사건으로 흔들리는 일본 여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해상자위대는 해상 경비 행동을 발동하지 않았지만, 해상보안청과 협력하여 대응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상보안청은 순시선 방탄화, 고성능 기관포 탑재, 선박 고속화, 수산청의 어업 단속선과의 연계 강화, 항공기의 수송력 증대 등을 추진했다.[32] 또한, 해상 보안관에게 성능 좋은 방탄복을 지급하고 대테러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재단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해상보안협회와 함께 해상보안청 공인의 방범 자원봉사 조직 "바다 지킴이"를 결성했다. 와다 하루키는 "어업법 위반"이라는 명목으로 시작된 초동 수사와 "선제 공격적"으로 선체 사격을 가한 것을 "법 해석의 오류"나 "불법적인 전투 행위"라고 비판했다.[33] 일본 공산당은 이 사건에서 해상보안청의 대응을 긍정했지만, 당시 당 의장이었던 후와 테츠조는 "중국은 '해상보안청이 과잉 대응했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공산당 견해 발표를 묵살했다고 한다.[34]

해상 치안 연구회에 따르면, 본 사건에서는 RFS가 장착된 무기 사용으로 인해, 위해 사격 요건을 규정한 해상보안청법 제20조에 저촉되지 않고, 승무원의 사상자를 피한 사격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선체 사격을 실시했다고 한다.[35]

5. 2. 대한민국

대한민국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었다. 또한, 이 사건을 통해 일본이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었다.

5. 3. 중국

중국은 괴선박이 중국의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괴선박에 대한 무력 사용에 우려를 표명하였다.[56] 일본의 순시선이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서 사격을 한 것은 국제 관례와 일본 국내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었고, 일본 내에서도 과잉 대응이라는 논란이 있었다.[55]

일본 공산당은 이 사건에서 해상보안청의 대응을 긍정했지만, 당시 당 의장이었던 친중파 후와 테츠조는 "중국은 '해상보안청이 과잉 대응했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공산당 견해 발표를 묵살했다고 전해진다.[34]

5. 4. 북한

북한은 이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55][56] 침몰 직전, 괴선박은 북한 본국에 "조선로동당이여, 이 아이는 영원히 당신의 충신이 되리라", "만세"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일본은 이 어선의 기원과 의도를 확인하기 위해 인양했다. 선체를 검사한 결과, 북한에서 제작된 침투 및 첩보 선박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선박은 중국 또는 일본 어선으로 위장되었으며, 상업용 어선보다 훨씬 빠른 속도인 33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선박에는 쾌속정의 출구로 사용하기 위한 선미에 숨겨진 이중 해치가 있었다.

6. 관련자 및 추가 범죄

수사 결과, 침몰한 공작선은 1998년에 남서 제도 앞바다의 동중국해에서 일본 폭력단에게 각성제를 판매했던 배로 확인되었다.[31] 이 공작선에서 각성제를 받은 폭력단원은 이후 '고치현 앞바다 각성제 밀수 사건'을 일으켜 검거되었다.

압수된 유류품 중에는 일본 국내용 휴대 전화(J-PHONE 선불 휴대 전화 'J-T03')가 있었는데, 메모리에는 일본 내 반사회적 세력과 밀접하게 교제하며 신분을 위조하기 위해 재일본대한민국민단에 위장 재적했던 특별 영주자 재일 한국인 남성 'U'와의 수십 차례에 걸친 통화 기록이 남아 있었다.

'U'는 무직임에도 불구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해왔으며, 공안 경찰 조사 결과 다양한 범죄에 관여한 사실이 밝혀졌다. 2004년, 'U'는 2001년에 도난 차량 8대를 북한에 부정 수출하려 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또한 'U'는 2002년 10월 '쓰루본 1호 사건'을 일으킨 혐의로도 체포되었다. 이 사건은 'U'가 일본인 어부를 협박하여 빼앗은 어선을 이용하여 돗토리현 앞바다에서 북한 화물선 '쓰루본 1호'와 만나 230kg의 각성제를 밀수한 사건이다. 1심에서는 'U'에게 무기 징역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현재 경찰청에서는 조선학교 전 교장 조규성(통칭: 나츠카와 큐우세이, 이명: 소우케이세이)을 인터폴에 국제 수배하고 있다. 조규성은 2000년 북한 원산에서 각성제 약 250kg을 구입하여 시마네현 해안에서 밀수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7. 현재

인양된 공작선은 요코하마 해상보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29] 이 공작선은 원래 스크랩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일본재단이 모든 경비를 부담하여 도쿄도로 이송, 전시되었다. 배의 과학관에서의 공개 종료 후 스크랩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등의 반대와 기부로 인해 요코하마시로 이송되어 요코하마 해상 방재 기지 내의 「해상 보안 자료관 요코하마관」(공작선 전시관)에서 전시되고 있다.[29] 선체는 열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보강용 와이어를 추가하는 등의 대책을 강구하며 공개가 지속되고 있다.[29]

요코하마 해상 방재 기지 내의 「공작선 전시관」


한편, 공작선으로부터의 총격으로 파괴된 순시선 아마미의 함교 부분은 해상보안대학교에 전시되어 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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