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염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정철염은 경기도 수원 출신의 천주교 신자이며, 1846년 순교한 인물이다. 유아세례를 받았거나 16세 또는 18세에 천주교 신자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세에 미신 행사를 거부하여 고문을 당했다. 이후 한양으로 피신하여 김대건 신부의 가사도우미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순교했다. 1925년 복자,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846년 사망 - 김대건
김대건 안드레아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이자 순교자로, 천주교 신앙을 가진 가문에서 태어나 사제의 길을 걸으며 마카오와 필리핀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26세에 순교하였고, 그의 순교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 1846년 사망 - 현석문
현석문은 신유박해로 아버지를 잃은 후 조선 천주교 발전에 헌신하며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기해일기》를 편찬했고, 병오박해 때 순교하여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 1817년 출생 - 헨리 데이비드 소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미국의 작가이자 철학자, 자연주의자로서, 월든 연못에서의 자급자족 생활을 담은 『월든』과 시민 불복종 사상으로 미니멀리즘, 비폭력 저항 운동, 환경 보호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 1817년 출생 - 영온옹주
영온옹주는 조선 순조와 숙의 박씨의 외동딸이자 효명세자의 이복 여동생으로, 11세에 옹주로 책봉되었으나 병약하여 13세에 요절하였으며 효명세자의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 - 김효주 (종교인)
김효주 아녜스는 1816년 밤섬에서 태어나 언니 김효임 콜룸바와 함께 신앙 생활을 하다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순교자이며,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 - 김대건
김대건 안드레아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이자 순교자로, 천주교 신앙을 가진 가문에서 태어나 사제의 길을 걸으며 마카오와 필리핀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26세에 순교하였고, 그의 순교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정철염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정철염 가타리나 |
출생일 | 1817년 |
사망일 | 1846년 9월 20일 |
축일 | 9월 20일 |
교파 | 로마 가톨릭교회 |
출생지 | 경기도 수원 |
사망지 | 서울 |
직업 | 순교자 |
시복일 | 1925년 7월 5일 |
시복인 | 교황 비오 11세 |
시성일 | 1984년 5월 6일 |
시성인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상징 | 해당 없음 |
수호 | 해당 없음 |
매장지 | 해당 없음 |
성당 | 해당 없음 |
기도 | 해당 없음 |
2. 생애
정철염은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유아세례를 받았다는 기록과 16세 또는 18세 경에 신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함께 전해진다. 온화한 성품을 지녔으나 신앙에 있어서는 매우 용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세 무렵, 주인으로부터 미신적인 동지 행사에 참여할 것을 강요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여 심한 박해를 겪었다. 이후 박해를 피해 한양으로 올라가 교우의 집에 숨어 지내다가 1845년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자, 정철염은 현석문 가롤로의 집으로 피신했으나 7월 11일 다른 신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체포 후 두 달 넘게 옥에 갇혀 혹독한 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켰으며, 마침내 1846년 9월 20일 장살형 또는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30세였다.
2. 1. 출생과 신앙
정철염은 경기도 수원에서 천주교 신자인 한 하녀에게서 태어났다. 그녀의 천주교 입교 시기에 대해서는 기록이 엇갈리는데, 유아세례를 받았다는 기록과 16세 혹은 18세 경에 신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성격은 온화했지만, 신앙심은 매우 굳건하고 용감했다.그녀가 20세 되던 해, 주인은 미신적인 동지 행사에 참여하라고 강요했지만 정철염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격분한 주인은 그녀의 팔을 뒤로 묶고 불로 지진 뒤 기절할 때까지 심하게 때렸다. 다음 해 봄에도 비슷한 박해를 받아 그녀는 다시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얼굴이 핼쑥해질 정도로 쇠약해져 고된 노동을 하기 어려워졌다.
상처가 어느 정도 회복된 후, 정철염은 한양으로 올라가 한 교우의 집에 숨어 지냈다. 1845년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가사도우미로 일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자 그녀는 현석문 가롤로가 새로 이사한 집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7월 11일, 현석문과 우술임 수산나, 김임이 테레사, 이간난 아가타와 함께 결국 체포되었다. 관찬 기록에 따르면, 체포된 신자들은 가혹한 고문을 받았으나 아무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정철염과 동료들은 두 달 넘게 감옥에 갇혀 있었다. 1846년 9월 20일, 그녀를 포함한 일곱 명의 순교자들은 혹독한 심문과 고문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결국 그들은 장살형 또는 교수형으로 순교했으며, 이때 정철염의 나이는 30세였다.
2. 2. 박해와 고난
정철염이 20세가 되던 해, 그녀의 주인은 동지날에 미신적인 행사에 참여하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천주교 신앙을 지키려 했던 정철염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이에 격분한 주인은 그녀의 팔을 뒤로 묶고 불로 지지는 등 잔혹하게 고문했으며, 기절할 때까지 심하게 매질했다. 이러한 박해는 다음 해 봄에도 반복되었다. 거듭된 고문으로 정철염은 온몸에 상처를 입었고, 얼굴은 핼쑥해졌으며 고된 노동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그녀는 주인의 박해를 피해 한양으로 올라가 다른 천주교 신자의 집에 숨어 지내게 되었다.2. 3. 김대건 신부와의 만남
정철염은 20세 되던 해, 주인이 강요한 미신적인 동지 의식 참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당했다. 팔이 뒤로 묶인 채 불로 지져지고 기절할 때까지 매질을 당했으며, 이듬해 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어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더 이상 고된 노동을 할 수 없게 된 그녀는 상처가 아물자 한양으로 피신하여 한 교우의 집에 숨어 지냈다.[1]1845년, 정철염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가사도우미가 되어 그를 도왔다.[1] 그러나 이듬해인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면서 그녀의 삶은 다시 위태로워졌다. 정철염은 현석문 가롤로가 새로 이사한 집으로 피신했으나, 7월 11일 현석문을 비롯하여 우술임 수산나, 김임이 테레사, 이간난 아가타 등 다른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1] 관찬 기록에 따르면, 체포된 신자들은 가혹한 고문을 받았지만 아무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1]
2. 4. 체포와 순교
정철염은 1845년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가사도우미가 되었다. 이듬해인 1846년 5월 김 신부가 체포되자, 정철염은 현석문 가롤로가 새로 이사한 집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7월 11일에 현석문을 비롯하여 우술임 수산나, 김임이 테레사, 이간난 아가타와 함께 체포되었다.관찬 기록에 따르면, 체포된 신자들은 가혹한 고문을 받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두 달 이상 감옥에 갇혀 있었다. 1846년 9월 20일, 정철염을 포함한 일곱 명의 순교자들은 혹독한 심문과 고문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끝까지 천주교 신앙을 지켰다. 결국 그들은 장살형 또는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정철염이 순교했을 때의 나이는 30세였다.
3. 시복 및 시성
정철염 카타리나는 1925년 7월 5일 시복되어 복자품에 올랐고[2][3], 1984년 5월 6일 시성되어 성인품에 올랐다.[3]
3. 1. 시복
정철염 카타리나는 1925년 7월 5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2] 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다.[3]3. 2. 시성
정철염 카타리나는 1925년 7월 5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2] 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3]참조
[1]
웹사이트
http://newsaints.fai[...]
[2]
백과사전
103위 성인 (百三位聖人)
http://preview.brita[...]
2015-01-04
[3]
뉴스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https://web.archive.[...]
평화방송
2014-07-24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