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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관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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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관양식은 서양식 건물에 일본식 지붕을 결합한 건축 양식으로,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 일본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초기에는 시모다 기쿠타로가 제국 호텔 재건 설계를 통해 이 양식을 제안했으나, 이후 가나가와현 청사, 나고야시 청사 등의 설계 공모전을 거치며 점차 확산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일본 파시즘과의 연관성으로 인해 쇠퇴했으나, 현재까지 도쿄 국립 박물관, 가나가와현 청사 등 다양한 건축물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양식은 만주국, 대만, 러시아 사할린 등 일본의 식민지 및 영향권에서도 나타났으며, 각 지역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독특한 형태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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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관양식
개요
도쿄 국립 박물관 혼관
데이칸 양식은 일본의 건축 양식 중 하나이다.
아이치 현청
아이치현청
가나가와 현청 본관
가나가와현청 본관
나라역
나라역
교토시 미술관 별관
교토시 미술관 별관
나고야 시청
나고야 시청
대만 사법원
대만 사법원
데이칸 양식
유형일본 건축 양식
활동 시기1919년–1945년
국가아시아 태평양
주요 인물기쿠타로 시모다
주타 이토
도시카타 사노
고이치 다케다
영향자포네스크
예술적 절충주의
신고전주의 건축
영향 받은 양식초기 근대 일본 건축

2. 역사적 배경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서는 고전주의 건축이 세워진 마지막 시기에 해당한다. 규칙에 따라 틀에 박힌 조형만 허용되는 고전주의 건축이 쇠퇴하면서 시대를 규율할 통일적인 양식이 사라지고, 표현파라이트 양식・모더니즘 등 다양한 양식이 혼재하게 되었다. 또한, 장식을 간소화한 신고전주의 건축이나 여러 양식을 조합한 절충주의 건축도 나타났다.[3]

일본에서는 일본풍의 요소를 도입한 일본 취미의 건물이 1920년대 후반부터 보급되었다.[3] 1919년 제국 의회(현 국회의사당)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경기 설계가 진행되었는데, 입선 안은 모두 르네상스 양식이었다. 이에 반대했던 시모다 기쿠타로는 의장 변경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두 번에 걸쳐 의회에 제출했다. 시모다는 클래식 벽체에 일본식 지붕을 얹은 '제관 병합식'이라고 칭하는 안을 제출하고, 각 방면에 팸플릿을 배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당시 건축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묵살되었다.[3][4]

시모다 기쿠타로의 제국 의회 설계안 「제관 병합식」


1926년에 가나가와현 청사, 1930년에 나고야시 청사의 경기 설계가 진행되었고, 일본식 지붕을 얹은 안이 입선했다. 두 곳 모두 모집 규정에 일본 취미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가나가와현 청사는 요코하마라는 입지에서 외국인을 의식하여[3], 나고야시 청사는 나고야 성 근처에 있다는 이유로[3], 일본식 지붕이 얹어졌다. 이어진 일본생명관, 대례 기념 교토 미술관, 군인회관의 경기 설계에서는 모집 규정에 일본 취미가 포함되었다.[3] 입선 안에서의 일본식 지붕의 비율도 늘어나, 나고야시 청사에서는 8안 중 3안이었던 것이 군인회관에서는 입선 10안 전부가 되었다.[3]

2. 1. 초기 발전

1911년, 시모다 기쿠타로(George)(下田 菊太郎)는 도쿄의 제국 호텔 총지배인 하야시 아이사쿠(林愛作)로부터 제국 호텔 재건을 위한 예비 연구를 요청받았다.[14] 시모다는 동아시아 입모야 지붕 (入母屋, ''Irimoya'') 양식과 뵤도인의 평면도를 지진에 강한 건물에 통합하여 서양 건축 양식을 모방하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14] 그러나 1916년 3월, 제국 호텔 건축가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로 변경되었고, 시모다는 자신의 작품이 표절되었다고 주장하며 보상을 요구했다.[9][16][14]

기쿠타로 시모다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모두 설계에 고용된 제국 호텔 모형


제국 호텔 프로젝트에서 விலகி, 시모다는 1919년 제국 의회(현 국회의사당) 건물 설계 공모전에 '제관 병합식' 안을 제출했다.[3] 이 안은 클래식 벽체에 일본식 지붕을 얹은 형태였다.[3][14] 시모다는 의장 변경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의회에 제출하고 팸플릿을 배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지만, 당시 건축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묵살되었다.[3][14]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서는 고전주의 건축이 세워진 마지막 시기에 해당한다. 규칙에 따라 틀에 박힌 조형만 허용되는 고전주의 건축이 쇠퇴하면서 시대를 규율할 통일적인 양식이 사라지고, 표현파라이트 양식・모더니즘 등 다양한 양식이 혼재하게 되었다. 또한, 장식을 간소화한 신고전주의 건축이나 여러 양식을 조합한 절충주의 건축도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일본풍의 요소를 도입한 일본 취미의 건물이 1920년대 후반부터 보급되었다. 1926년에 가나가와현 청사, 1930년에 나고야시 청사 설계 공모전에서 일본식 지붕을 얹은 안이 당선되었다. 두 곳 모두 모집 규정에 일본 취미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가나가와현 청사는 요코하마라는 입지에서 외국인을 의식하고, 나고야시 청사는 나고야성 근처에 있다는 이유로 일본식 지붕이 얹어졌다. 이후 일본생명관, 대례 기념 교토 미술관, 군인회관 설계 공모전에서는 모집 규정에 일본 취미가 포함되었다. 입선작에서 일본식 지붕 비율도 증가하여, 나고야시 청사에서는 8개 안 중 3개였던 것이 군인회관에서는 입선 10개 안 전부가 되었다.

2. 2. 모더니즘 건축과의 갈등

2. 3. 쇠퇴와 종말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철강 구조물 건조 허가 규제'가 공포되어, 50톤 이상의 철재를 사용하는 건축은 군수 관계 외에는 제한되었다. 더 이상 장식을 동반하는 양식 건축을 지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되어, 제관 양식은 쇠퇴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전후 민주주의와 함께 일본 파시즘을 부정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전후 건축계를 제압한 모더니즘 건축가들은 일본의 모더니즘이 파시즘과 싸운 적은 없었지만, 대립 관계에 있어 일본 회귀를 연상하기 쉬운 일본 취미 건축을 일본 파시즘에 가담한 것으로 비난했다. 한편, 일본 취미를 추진했던 건축가들은 완전히 힘을 잃었고, 이러한 낙인찍기에 반론을 할 수 없었다.

3. 발전 과정

1911년, 시모다 기쿠타로(下田 菊太郎)는 제국 호텔 재건을 위한 예비 설계를 맡아, 동아시아 입모야 지붕 양식과 뵤도인의 평면도를 통합한 설계를 제시했다.[14] 그러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자로 변경되면서 시모다는 자신의 설계가 표절되었다고 주장하며 저작권 분쟁을 제기했다.[16] 아키타현립미술관의 연구 결과, 라이트는 시모다의 디자인 대부분을 유지했지만 일본식 지붕을 프레리 스타일 지붕으로 대체한 것으로 밝혀졌다.[14]

일본 사찰의 건축 도면으로 여러 개의 경사진 지붕이 파란색으로 강조 표시되어 있습니다
뵤도인의 정면도에서 기쿠타로 시모다가 제국식 통합 양식에 통합한 지붕 구성 요소


두 개의 동일한 대형 시립 건물 그림이 있는데, 하나는 고전적인 지붕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하나는 경사진 일본식 지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국식 통합 양식으로 된 시모다 기쿠타로의 국회의사당 설계 도면 (1919)


시모다는 제국 의회 건물 설계 공모전에도 참여하여 '제국식 통합 양식'을 제안했으나, 최종 설계에는 반영되지 않았다.[3][14] 1930년대에 들어서야 군인회관이 제관 양식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가나가와현청은 군인회관보다 먼저 건설되었지만, 시모다의 원래 스타일에서 벗어난 형태였다.[3] 이후 다양한 건축가들에 의해 더 많은 제관 양식 건물들이 지어지면서, 이 양식은 ''천황관 양식''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3. 1. 군인회관

군인회관(현 구단회관 테라스)은 일본 불교 사찰 건축의 전통적인 곡선 지붕 요소와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결합한 제관 양식 건축의 대표적인 예이다.[11] 도쿄 국립 박물관 본관 역시 제관 양식의 대표작으로 꼽히지만, 일본 건축 학자들은 외벽 디자인이 서양 건축 양식을 따르지 않아 제관 양식의 전형적인 예가 아니라고 주장한다.[19][20][21]

4. 건축적 특징

제관 양식은 서양식 건물 본체에 일본식 지붕을 얹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군인회관, 유즈노사할린 박물관, 아이치현청에서 사용되는 시로코 야네/錣屋根일본어 양식 지붕은 부드럽게 경사진 지붕 마루 무네/棟일본어가 자주 사용된다. 나고야 시청, 가나가와현청, 서울도서관, 사법원 건물, 만주국 국무원 청사에서 볼 수 있는 호교조/宝形造일본어와 같은 4면 또는 6면 다각형 텐트 지붕도 사용된다. 텐트 지붕을 사용할 때는 전통적으로 불교 사찰 건축에서 사용되는 소린 장식으로 덮는 경우가 많다.

치도리 하후/千鳥破風일본어(시로코 양식 지붕과 함께 사용됨), 이리모야 하후/入母屋破風일본어, 교토 시립미술관 별관에서 볼 수 있는 가라하후/唐破風일본어를 포함한 다양한 유형의 일본식 박공도 사용된다.

로쿠요 부속품로쿠요 노 가나구/六葉の金具일본어, 탑 소린, 신토 장식 등 전통적인 장식용 부속품도 제관양식 건축물에 통합되었다.

4. 1. 지붕 양식

군인회관, 유즈노사할린 박물관, 아이치현청에서 사용되는 시로코 야네/錣屋根일본어 양식 지붕은 부드럽게 경사진 지붕 마루 무네/棟일본어가 자주 사용된다. 나고야 시청, 가나가와현청, 서울도서관, 사법원 건물, 만주국 국무원 청사에서 볼 수 있는 호교조/宝形造일본어와 같은 4면 또는 6면 다각형 텐트 지붕도 사용된다. 텐트 지붕을 사용할 때는 전통적으로 불교 사찰 건축에서 사용되는 소린 장식으로 덮는 경우가 많다.

치도리 하후/千鳥破風일본어(시로코 양식 지붕과 함께 사용됨), 이리모야 하후/入母屋破風일본어, 교토 시립미술관 별관에서 볼 수 있는 가라하후/唐破風일본어를 포함한 다양한 유형의 일본식 박공도 사용된다.

4. 2. 기타 장식 요소

로쿠요 부속품로쿠요 노 가나구/六葉の金具일본어, 탑 소린, 신토 장식 등 전통적인 장식용 부속품도 제관양식 건축물에 통합되었다.

5. 쇼와 시대 일본의 국가주의와의 관계

전후 건축 비평가들은 제관 양식이 천황제 파시즘과 동의어라고 주장했다.[3][4] 그러나 이러한 비평은 나치 건축을 시행하고 홍보한 나치 독일과 달리, 일본의 전시 건축 규정은 건축 자재 사용만 제한했을 뿐 기와 지붕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3] 디자인 규정 지침은 공중 위장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담고 있었지만, 기와 지붕을 포함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은 없었다.

제관 양식은 상부가 일본풍이고 하부가 서양풍인 점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전후 건축 평론가들은 제관 양식 = 파시즘론을 정설처럼 여겼다. 그러나 조형 통제의 결여는 제3제국 양식을 추진한 독일과 비교하면 명백하며, 통제는 건설 자재의 제한에 국한되었다. 건축 의장에 대한 지도는 방공 위장 정도였고, 건물에 기와 지붕을 얹으라는 지도는 없었다. 일본 건축가들은 조형 통제가 없는 것에 열등감을 느껴, 오히려 독일, 이탈리아처럼 조형 통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은 건축 의장에 대해 통일된 의지가 없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지어진 군의 건축에서 전통적인 일본 취미를 도입한 예는 유슈칸(1931년)이나 군인회관 등 일부에 국한된다.

오사카성혼마루에 건설된 구 제4사단 사령부 청사(1931년)는 오사카성 천수각 재건 공사와 동시에 건설되었는데, 당시 혼마루에는 와카야마성 니노마루 어전을 이전한 기슈고텐도 있었다. 오사카시로부터 일본 취미를 도입하도록 요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4사단 경리부는 이를 거부하고 중세 영국의 성곽을 본뜬 로마네스크 양식 디자인을 채택했다. 당시 오사카성은 니노마루, 니시노마루에서 외곽에 걸쳐 육군의 벽돌 건축을 주로 하는 서양식 건축군으로 채워져 있었고, 육군은 이러한 서양식 건축군과의 조화를 우선시하여 기슈고텐이나 오사카성 천수각과의 조화는 고려하지 않았다. 오사카성 교바시구치에 인접한 오사카 군인회관(1937년)도 모더니즘 디자인을 채택했다.

오사카성 천수각(좌)과 로마네스크 건축의 제4사단 사령부 청사(우)

6. 제관 양식 건축물 목록

(현・다카시마야 니혼바시점)1930용모는 침착하고 품위가 있으며 스스로 대중의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동양 취미를 기조로 한 현대 건축의 창안에 힘쓴 자는 이를 중시한다.이토 추타, 사토 코이치, 타케다 고이치, 카타오카 야스시, 츠카모토 야스시, 이타노 카네미치, 이이다 나오지로, 타나카 테이네이, 히로세 칸타로다카하시 테이타로1933국가의 중요문화재|200px]]대례기념 교토미술관(현・교토시 교세라미술관)1930주변 환경에 따라 일본 취미를 기조로 할 것이토 추타, 사토 코이치, 오카다 신이치로, 카타오카 야스시, 타케다 고이치, 이시이 츠네오, 오타 키지로, 키쿠치 칸지, 시미즈 로쿠베, 야스카와 카즈지마에다 켄지로1933군인회관
(현・구단회관 테라스)1930용모는 국수의 기품을 갖추고 장엄 웅대한 특색을 표현할 것이토 추타, 사토 코이치, 오쿠마 요시쿠니, 우치다 쇼조, 츠카모토 야스시, 나이토 타로, 나카무라 탓타로, 이이다 히사츠네, 이나가키 사부로, 오카 나카지로, 츠지무라 난조오노 타케오1934제관 양식의 대표작으로 꼽힌다.도쿄 제실 박물관(현・도쿄 국립 박물관 본관)1931건축 양식은 내용과 조화를 유지할 필요가 있으므로 일본 취미를 기조로 한 동양식으로 할 것이토 추타, 사토 코이치, 우치다 쇼조, 타케다 고이치, 츠카모토 야스시, 키타무라 코조, 키시다 히데토, 오시마 요시마사, 카와다 레츠, 쿠로이타 카츠미, 류 세이이치, 오기노 나카사부로, 호소카와 모리타츠와타나베 히토시1937제관 양식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벽체의 의장이 서양식과 다르기 때문에 제관 양식으로 분류해야 하는지에 대해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국가의 중요문화재도쿠가와 미술관1931주변 환경과 조화될 것오에 신타로, 와타나베 히토시, 후지무라 아키라, 오시마 요시마사, 야마와키 하루키사노 토키헤이1934국가의 등록 유형 문화재아이치현청사1931일반 설계 경쟁은 아님사노 토시키, 츠치야 준이치와타나베 히토시
니시무라 요시토키1938위의 나고야시청사 남쪽에 인접.
국가의 중요문화재시즈오카현청사1935특별히 없음사노 토시키, 오쿠마 요시쿠니, 우치다 쇼조, 카사하라 토시로, 나카무라 요시히라, 아다치 오사무, 키무라 켄시치로타이 이타루1938국가의 등록 유형 문화재


6. 1. 일본

와타나베 히토시가 설계한 도쿄 국립 박물관(1937년)과 나고야 시청, 아이치 현청과 같이 일본식 지붕을 가진 것이 제관양식 건물의 특징이다.

제관 양식으로 어떤 건물을 할지는 여러 설이 있지만, 대체로 공통적으로 제관 양식이라고 불리는 건물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사진명칭선정 연도양식 규정심사위원설계자건축 연도비고
가나가와현청1926항구 밖의 선박에서 쉽게 인식 가능할 것사노 토시키, 사토 코이치, 오카다 신이치로, 오쿠마 요시쿠니, 우치다 쇼조, 카타오카 야스시, 코야나기 마키에오비 요시로1928국가의 중요문화재
나고야시청사1930특별히 없음사노 토시키, 사토 코이치, 스즈키 테이지, 타케다 고이치, 츠치야 준이치, 미사와 칸이치히라바야시 킨고1933국가의 중요문화재
일본생명관
(현・다카시마야 니혼바시점)
1930용모는 침착하고 품위가 있으며 스스로 대중의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동양 취미를 기조로 한 현대 건축의 창안에 힘쓴 자는 이를 중시한다.이토 추타, 사토 코이치, 타케다 고이치, 카타오카 야스시, 츠카모토 야스시, 이타노 카네미치, 이이다 나오지로, 타나카 테이네이, 히로세 칸타로다카하시 테이타로1933국가의 중요문화재[33]
|200px]]
대례기념 교토미술관(현・교토시 교세라미술관)1930주변 환경에 따라 일본 취미를 기조로 할 것이토 추타, 사토 코이치, 오카다 신이치로, 카타오카 야스시, 타케다 고이치, 이시이 츠네오, 오타 키지로, 키쿠치 칸지, 시미즈 로쿠베, 야스카와 카즈지마에다 켄지로1933
군인회관
(현・구단회관 테라스)
1930용모는 국수의 기품을 갖추고 장엄 웅대한 특색을 표현할 것이토 추타, 사토 코이치, 오쿠마 요시쿠니, 우치다 쇼조, 츠카모토 야스시, 나이토 타로, 나카무라 탓타로, 이이다 히사츠네, 이나가키 사부로, 오카 나카지로, 츠지무라 난조오노 타케오1934제관 양식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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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제실 박물관(현・도쿄 국립 박물관 본관)1931건축 양식은 내용과 조화를 유지할 필요가 있으므로 일본 취미를 기조로 한 동양식으로 할 것이토 추타, 사토 코이치, 우치다 쇼조, 타케다 고이치, 츠카모토 야스시, 키타무라 코조, 키시다 히데토, 오시마 요시마사, 카와다 레츠, 쿠로이타 카츠미, 류 세이이치, 오기노 나카사부로, 호소카와 모리타츠와타나베 히토시1937제관 양식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벽체의 의장이 서양식과 다르기 때문에 제관 양식으로 분류해야 하는지에 대해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국가의 중요문화재
도쿠가와 미술관1931주변 환경과 조화될 것오에 신타로, 와타나베 히토시, 후지무라 아키라, 오시마 요시마사, 야마와키 하루키사노 토키헤이1934국가의 등록 유형 문화재
아이치현청사1931일반 설계 경쟁은 아님사노 토시키, 츠치야 준이치와타나베 히토시
니시무라 요시토키
1938위의 나고야시청사 남쪽에 인접.
국가의 중요문화재
시즈오카현청사1935특별히 없음사노 토시키, 오쿠마 요시쿠니, 우치다 쇼조, 카사하라 토시로, 나카무라 요시히라, 아다치 오사무, 키무라 켄시치로타이 이타루1938국가의 등록 유형 문화재


6. 2. 한국

1920년대 조선건축회가 건설한 서울특별시립도서관(구 경성부청사)을 포함하여 한국에서도 제관양식 건축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29] 서울특별시립도서관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제관 양식은 아니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적인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었다.

6. 3. 대만

대만에는 다수의 제관양식 건물들이 있으며, 이 건물들은 일본 제국의 일부였던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인 건축가들이 설계하여 건설되었다. 이 양식의 예로는 타이베이의 사법원 청사, 옛 가오슝 기차역, 화롄 지방 법원 청사 및 가오슝 역사 박물관 등이 있다.[7]

사법원 청사는 일본인 건축가 이데 가오루가 설계하여 1934년에 완공되었으며, 절충주의 양식으로 팔각형 중앙 탑에 중국풍의 "코아" 지붕이 얹혀 있다. 입구 홀의 세 개의 둥근 아치와 아치형 창문은 아랍 및 이슬람 건축 요소들을 반영한다.[22] 이데 가오루는 행정원 청사 및 중산 홀을 포함하여 대만의 많은 중요한 구조물을 설계했다.[23]

가오슝 역사 박물관은 원래 옛 가오슝 시청이었으며, 1939년에 일본인 건축가 오노 요네지로가 설계하여 완공되었다. 박물관 중앙 탑의 형태는 "가오슝 시"(高雄)라는 이름의 일부를 구성하는 한자 "高"를 연상시키며, 이는 일본인들이 도시에 붙인 "높은 영웅"을 의미한다.[24] 건물의 부지는 대칭적인 "日"자 형태의 한자를 통합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 제국의 최남단 정치 중심지를 상징한다. "日"은 태양(권위의 기원과 정당성을 상징)을 의미하는 동시에, 신토의 태양 여신 아마테라스의 후손으로 구성된 일본 제국의 초기 "日本帝國"으로서의 이념적 이미지를 의미한다.[24] 1990년대에 정부는 이 건물을 철거할 계획을 발표했지만, 학계와 일반 대중의 로비 활동으로 보존되었고, 1998년에 복원되어 박물관으로 개관했다.[25]

현재 가오슝 비전 박물관인 옛 가오슝 기차역 건물의 디자인 역시 한자 "高"를 통합하고 있으며, 시미즈 건설에 의해 1941년에 완공되었다.[28] 1990년대에 새로운 철도 터널을 굴착하기 위해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대중과의 협의 후, 정부는 이를 보존하기로 결정했다.[26] 2002년에는 원래 위치에서 80미터 이상 떨어진 곳으로 통째로 옮겨졌으며, 향후 몇 년 안에 터널 공사가 완료되면 원래 위치로 다시 옮겨져 현대적인 철도 허브의 일부를 형성할 것이다.[27]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탈일본화'(중국어: qu Ribenhua) 과정의 일환으로 반일 감정으로 인해 일본 건축의 일부 사례가 철거되거나 더 '중국식' 스타일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1982년 문화 유산 보존법이 통과되어 이러한 유물을 국가 자산으로 보존하도록 규정했다.[28]

6. 4. 중국 (만주국)

1930년대 만주국에서는 일본 제국의 만주 침략 이후 제관 양식의 건물들이 건설되었다.[30] 신징에 건설된 만주국 국무원 청사와 만주국 최고 법원, 관동군 사령부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 건물들은 현재까지 남아있으며, 일부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관동군 사령부 건물은 현재 중국 공산당 지린 위원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6. 5. 러시아 (사할린)

한때 러시아의 유즈노사할린스크 지역은 일본 제국의 일부였으며, ''토요하라''로 알려졌다.[32] 유즈노사할린스크 박물관을 포함하여 일부 일본 건물들이 남아있으며, 이 박물관은 제관양식으로 지어졌다.[32][32]

참조

[1] 서적 Inheritance of Loss: China, Japan, and the Political Economy of Redemption after Empire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6-11-28
[2] 간행물 Museums in Japan http://sainsbury-ins[...] Sainsbury Institute for the Study of Japanese Arts and Culture 2018-08-09
[3] 서적 戦時下日本の建築家 Asahi Shinbunsha 1995-01-01
[4] 서적 神奈川県庁本庁舎と大正昭和初期の神奈川県技術者に関する建築史的研究 2006-01-01
[5] 논문 建築における「日本的なもの」と「新興写真」 http://subsites.icu.[...] 2017-07-12
[6] 서적 The architecture of Tôkyô : an architectural history in 571 individual presentations https://books.google[...] Edition Axel Menges 2017-07-17
[7] 서적 Heteroglossic Asia: The Transformation of Urban Taiwan https://books.google[...] Taylor & Francis 2015-01-09
[8] 서적 Designing Worlds National Design Histories in an Age of Globalisation https://books.google[...] New York Berghahn Books 2017-07-18
[9] 서적 Grand hotels : reality and illusion : an architectural and social history https://books.google[...] Reaktion Books 1998-01-01
[10] 서적 Japan-ness in architecture http://www.f.waseda.[...] MIT Press 200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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