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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총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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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로동당 총비서는 조선로동당의 최고 지도자 직책으로, 1949년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시작하여 여러 차례 명칭이 변경되었다. 1949년 김일성이 초대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1966년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1997년 당 총비서로, 2012년 제1비서로, 2016년 위원장으로 변경되었다가, 2021년 현재의 총비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0년 개정된 당 규약에 따르면 당대회에서 추대되며, 당을 대표하고 전당을 령도하며,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한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역임했으며, 현재 김정은이 총비서직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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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총비서
직위 정보
직위조선로동당 총비서
소속 정당조선로동당
영문 명칭General Secretary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한자 표기朝鮮
로마자 표기Joseon Rodongdang Chongbiseo
휘장
조선로동당 총비서의 문장
개요
담당 부서조선로동당
현직김정은
취임일2012년 4월 11일
경칭동지
직위 종류당대표
최고지도자
관저평양직할시 1호 청사
소재지평양
임명 방식당대회
임기5년 (사실상 종신직)
설립일1949년 6월 24일
창설자김두봉
임명권자당대회
부관비서국
전임 직책조선로동당 위원장 (2016–2021)
역사
직책 변천중앙위원회 위원장 (1946년 8월 28일)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6년 10월 12일)
제1비서 (2012년 4월 11일)
조선로동당 위원장 (2016년 5월 9일)
총비서 (2021년 1월 10일)
구성
구성원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2. 조선로동당 최고 지도자 직책의 역사

1949년 6월 30일 조선로동당 창당과 함께 당의 최고 지도 기관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수반으로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설치되었다. 초대 위원장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던 김일성이 선출되었다. 김일성은 당내 반대파를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하여, 당내에서 확고한 지위를 쌓았다.

1966년 당 기구 개편으로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직이 폐지되고 중앙위원회 총비서직이 신설되었으며, 김일성이 총비서로 선출되었다.[31] 이후 김일성은 1970년1980년 당대회에서 총비서로 재선되었다. 김일성 시대에는 김일성에 대한 신격화가 진행되었으며, 1972년 제정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는 주체사상을 국가 활동의 지도 지침으로 명시하고[32], 당 총비서가 사실상의 최고 지도자 지위를 갖게 되었다. 김일성은 국가주석에도 취임하여 명실상부한 국가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3년상'을 이유로 총비서직에 취임하지 않았다.[33] 1997년 '탈상' 이후 김정일은 당 총비서에 취임했지만, 이는 당 중앙위원회 총회가 아닌 각급 당대표자회의 추대 형식으로 이루어졌다.[34][35][36] 일본의 북한 연구자 타마키 모토는 이를 당 규약에 없는 '편의상의 임시 직위'로 해석했다.[37]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은 당 총비서로 재추대되었고, 당 규약 개정을 통해 총비서 선출 방식이 변경되었다. 2011년 김정일 사망 이후, 2012년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은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되었고, 김정은은 당 제1비서에 취임했다.[29]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 당 제1비서직이 폐지되고 당 위원장직이 신설되었으며, 김정은이 당 위원장에 취임했다.[25] 2021년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당 규약 개정으로 총비서 직책이 부활하였고, 김정은이 총비서로 추대되었다.[26][27]

직함시작일폐지일제정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1945년 9월 14일1946년 4월 10일조선공산당 결성대회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비서1945년 10월 13일1946년 4월 10일5도 연합대회
북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1946년 4월 10일1946년 8월 30일북조선분국 집행위원회 제5차 확대집행위원회
남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1946년 4월 10일1946년 11월 24일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4월 전원회의
북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1946년 8월 30일1949년 6월 24일북조선로동당 제1차 당대회
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1946년 11월 24일1949년 6월 24일남조선로동당 제1차 당대회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1949년 6월 24일1966년 10월 12일조선로동당 제2차 중앙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1966년 10월 12일1997년 10월 8일조선로동당 제4차 중앙위원회 제14차 전원회의
조선로동당 총비서1997년 10월 8일2012년 4월 11일조선로동당 제6차 중앙위원회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공동 발표
조선로동당 제1비서2012년 4월 11일2016년 5월 9일조선로동당 제4차 당대표자회
조선로동당 위원장2016년 5월 9일2021년 1월 10일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조선로동당 총비서2021년 1월 10일현직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참고 문헌:


2. 1. 중앙위원회 위원장 (1949년 - 1966년)

1949년 6월 30일 조선로동당 창당과 함께 당의 최고 지도 기관인 중앙위원회의 수반으로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설치되었다.[14] 위원장에는 북한의 총리이자 소련의 지원을 받았던 김일성이 선출되었다. 김일성은 당내 반대파를 숙청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확고한 지위를 구축했다.

1966년 10월에 개최된 제2차 당 대표자회에서 당 기구 개편이 이루어졌다.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직이 폐지되었고, 중앙위원회의 최고 직위로 중앙위원회 총비서, 그리고 총비서 아래에 당의 일상 업무를 처리하고 인사와 조직을 장악하는 중앙위원회 서기국이 설치되었다. 제2차 당 대표자회 마지막 날인 10월 12일, 제4기 당 중앙위원회 제14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이 총비서로 선출되었다.[15]

2. 2.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6년 - 1997년)

1966년 10월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당 기구를 개편했다.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직을 폐지하고 중앙위원회의 최고 직위로 중앙위원회 총비서, 그리고 총비서 아래에 당의 일상 업무를 처리하는 인사와 조직을 장악하는 중앙위원회 비서국을 설치하였다. 당대표자회 마지막 날인 10월 12일 제4기 당중앙위원회 제14회 총회를 개최하여 김일성을 총비서로 선출하였다.[31]

이후, 김일성은 1970년의 제5기 당중앙위원회 제1회 총회, 1980년의 제6기 당중앙위원회 제1회 총회에서 총비서로 재선되었다. 또한 김일성의 독재화가 나타났고, 김일성에 대한 신격화도 진행되었다. 1972년에 제정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서는 조선로동당의 주체사상을 국가 활동의 지도 지침한다고 정했으며[32], 조선로동당의 최고 지도자인 총비서가 북한의 사실상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더불어 김일성은 이 헌법에 근거하여 설치된 국가원수직인 국가주석에도 취임하여, 명실공히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 자리 매김했다.

김일성은 당중앙위원회 총비서와 국가 주석에 재임 중이던 1994년 7월 8일에 사망했다. 총비서직은 김정일이 승계할 것으로 보였으나, 김정일은 ‘3년상(喪)’이라는 기간 동안 총비서직에 취임하지 않았다.[33] 이 기간 동안 당 최고 직위인 총비서직은 공석이 되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당내 서열 1인자가 된 김정일은 최고 지도자로써 북한을 통치했다.

2. 3. 당 총비서 (1997년 - 2012년)

1997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 사망 3주년 중앙추도대회에서 '탈상'이 선언되면서, 김정일은 당 총비서 취임 정치 일정을 시작했다. 1980년 조선로동당 제6차당대회에서 채택한 당 규약에 따르면 총비서는 당중앙위원회 총회에서 선출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김일성 사후 당중앙위원회 총회는 소집되지 않았다. 김정일은 중앙위원회 총회 선거라는 정규적인 방법으로 총비서 지위를 얻지 않았다.

1997년 9월 21일 평안남도 도당 위원회 대표자회를 시작으로 10월 초순까지 각 지역에서 당대표자회를 개최하여 김정일을 당 총비서로 '추대'하는 결의를 했다. 9월 22일에는 조선인민군 내 당대표자회에서도 김정일 총비서 추대를 결의했고, 이후 정무원 사무국이나 각 부처에서도 당대표자회를 개최하여 김정일 총비서 추대 결의를 했다.[34] 즉, 군, 중앙정부, 지방 당 조직이 각각 별도 대표자회를 열어 개별적으로 추대 결정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형태를 취했고, 이를 '전당의 의사'로[35] 10월 8일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가 연명으로 김정일 총비서 추대를 선언했고, 김정일은 총비서로 취임했다.[36]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가 김정일 총비서 추대를 선포한 '특별 보도'에서 김정일을 '당의 총비서', '조선로동당의 공인된 당총비서'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일본의 북한 연구자 다마기 모도이(玉城素)는 김정일이 취임한 총비서직은 기존 중앙위원회에서 선출하던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아니고, 당 규약상 존재하지 않는 '편의상의 임시 직위'인 '당 총비서'라고 분석했다.[37]

2010년 9월 28일 조선로동당 제3차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당 총비서직에 재추대했다. 그리고 당 규약을 개정하여 총비서 선출을 당중앙위원회 총회 선거에서 당대회 선거의 '추대'로 변경함과 동시에, 당대표자회의 당 최고지도기관 선거에서도 선출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또 신 규약에서는 1980년 당 규약에서 명확하지 않았던 총비서 지위를 '당의 수반'이라고 규정하여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과의 겸직 규정도 마련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3남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었다. 2012년 4월 11일 조선로동당 제4차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대신에 김정은을 '조선로동당 제1비서'로 추대했다.[29]

2. 4. 당 제1비서 (2012년 - 2016년)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하자, 셋째 아들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었다. 김정일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당 총비서 지위를 김정은이 승계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22] 2012년 4월 11일에 개최된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당 규약을 개정하여 총비서직을 폐지하였다. 그리고 새롭게 최고 직위로 당 제1비서를 신설하여,[23] 김정은이 취임하였다.[24]

2. 5. 당 위원장 (2016년 - 2021년)

2016년 5월 제7차 당 대회에서 당 규약 개정과 당 기구 개편이 이루어졌다. 당 제1비서 지위는 폐지되었고, 새롭게 당 최고 직위로 위원장이 설치되었다. 서기국은 정무국으로 개편되었다. 5월 9일, 김정은이 당 위원장에 취임했다.[25]

2. 6. 당 총비서 (2021년 - 현재)

2021년 1월 10일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당 규약 개정으로 총비서 직책이 부활하였고, 김정은이 총비서로 추대되었다.[26][27] 이와 함께 비서국이 다시 부활하였다. 김정은 총비서 아래에는 김정은의 위임을 받아 회의를 주재할 수 있는 '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 직책이 신설되었는데,[27][28] 이 직책은 사실상 당내 2인자로 여겨진다. 제1비서에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조직 담당 비서인 조용원이 임명된 것으로 추정된다.[28]

3. 조선로동당 최고 지도자 선출 및 임기

1949년 6월 30일 조선로동당 창당과 함께 당의 최고 지도 기관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수반으로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설치되었고, 김일성이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30] 김일성은 당내 반대파를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하며 확고한 지위를 구축했다.

1966년 10월 제2차 당 대표자회에서 당 기구 개편으로 중앙위원회 위원장직이 폐지되고 중앙위원회 총비서직이 신설되었다. 10월 12일 제4기 당 중앙위원회 제14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이 총비서로 선출되었다.[15] 이후 김일성은 1970년1980년 당대회에서 총비서로 재선되었다. 김일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제정을 통해 주체사상을 국가 지도 지침으로 규정하고,[16]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에 취임하여 명실상부한 국가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김정일은 '3년상'을 이유로 총비서직에 취임하지 않았다.[17] 1997년 '탈상' 선언 후, 김정일은 각급 당 조직의 추대 형식으로 총비서에 추대되었다.[34][35][36]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이 총비서로 재추대되었고, 당 규약 개정을 통해 총비서 선출 방식이 당대회 추대로 변경되었다.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2012년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김정은이 제1비서에 취임했다.[29]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 당 제1비서직이 폐지되고 당 위원장직이 신설되어, 5월 9일 김정은이 당 위원장에 취임했다.[25] 2021년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당 규약 개정으로 서기국이 부활하면서, 김정은이 총비서로 추대되었다.

3. 1. 선출

Rules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조선로동당 규약영어에 따르면, 총비서는 당대회에서 추대된다. 당대회가 열리지 않을 때에는 당대표자회에서 총비서를 선출할 수 있다. 임기나 재선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30][31][32][33][34][35][36][37][29]

김정일은 당 중앙위원회 총회가 아닌 각급 당 조직의 추대 형식으로 총비서에 선출되기도 하였다.[34][35][36]

3. 2. 임기

2010년에 개정된 Rules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조선로동당 규약영어에 따르면, 총비서는 당 대회에서 추대된다. 또한, 당 대회 폐회 중에 소집된 당 대표자회에서도 총비서 선출이 가능하다. 임기, 재선에 대한 규정은 없다.

4. 조선로동당 총비서의 권한

2010년에 개정된 당 규약에 따르면 총비서는 다음과 같은 권한을 갖는다.



이러한 규정에 따라 총비서는 사실상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최고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31]

5. 역대 조선로동당 최고 지도자

번호[8]초상화이름한글취임일퇴임일재임 기간출생사망
1--김일성김일성1949년 6월 24일1994년 7월 8일1912년1994년
2
김정일김정일1997년 10월 8일2011년 12월 17일1941년2011년
3
김정은김정은2012년 4월 11일현직1983년



조선로동당1949년 창당 이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 최고 지도자 직위를 세습하고 있다. 당 최고 직위 명칭은 중앙위원회 위원장, 총비서, 제1비서, 위원장, 총비서 등으로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2021년 1월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당 규약이 개정되면서 김정은이 총비서로 추대되었고, 서기국이 부활하였다.[26] 김정은 총비서 아래에 김정은의 위임을 받아 회의를 주재할 수 있는 "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 직책이 신설되었고, 조용원이 취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7][28]

5. 1. 중앙위원회 위원장

1949년 6월 30일, 조선로동당 창당과 함께 당의 최고 지도 기관인 중앙위원회의 수반으로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설치되었다.[14] 위원장에는 북한 총리이자 소련의 지원을 받던 김일성이 선출되었다. 김일성은 당내 반대파를 숙청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확고한 지위를 구축했다.

1966년 10월, 제2차 당 대표자회에서 당 기구 개편으로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부위원장이 폐지되고, 중앙위원회 총비서와 중앙위원회 서기국이 설치되었다. 김일성10월 12일 제4기 당 중앙위원회 제14차 전원회의에서 총비서로 선출되었다.[15]

5. 2. 중앙위원회 총비서

1949년 6월 30일 조선로동당 성립[30] 이후, 당의 최고 지도기관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수반은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었다. 38선 이북의 수상으로 소련의 지원을 받고 있던 김일성이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김일성은 당내 반대파를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하여 확고한 지위를 쌓았다.

1966년 10월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2차당대표자회에서 당 기구를 개편했다.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직을 폐지하고, 중앙위원회의 최고 직위로 중앙위원회 총비서, 그리고 총비서 아래에 당의 일상 업무를 처리하는 인사와 조직을 장악하는 중앙위원회 비서국을 설치하였다. 당대표자회 마지막 날인 10월 12일 제4기 당중앙위원회 제14회 총회를 개최하여 김일성을 총비서로 선출하였다.[31]

이후, 김일성은 1970년 제5기 당중앙위원회 제1회 총회, 1980년 제6기 당중앙위원회 제1회 총회에서 총비서로 재선되었다. 김일성의 독재화와 신격화가 진행되었고, 1972년 제정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서는 조선로동당의 주체사상을 국가 활동의 지도 지침으로 규정했으며[32], 조선로동당의 최고 지도자인 총비서가 북한의 사실상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김일성은 이 헌법에 근거하여 설치된 국가원수직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주석에도 취임하여, 명실공히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김일성은 당중앙위원회 총비서와 국가 주석에 재임 중이던 1994년 7월 8일에 갑자기 사망했다. 총비서와 국가 주석의 지위는 김일성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국방위원장, 당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비서국 비서인 김정일이 승계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김정일은 ‘3년상(喪)’이라는 기간 동안 총비서직과 국가 주석직에 취임을 하지 않았다.[33] 이 기간 동안 당 최고 직위인 총비서직과 국가원수인 국가 주석직은 공석이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당내 서열 1인자가 된 김정일은 최고 지도자로써 북한을 통치했다.

1997년 7월 8일에 개최된 ‘김일성 주석 사망 3주년 중앙추도대회’에서 ‘탈상’을 선언하면서, 김정일은 당 총비서에 취임하는 정치 일정을 개시했다. 1980년 조선로동당 제6차당대회에서 채택한 당 규약에 의하면, 총비서는 당중앙위원회 총회에서 선출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김일성 사후 당중앙위원회 총회를 소집하지 않았으며, 김정일은 중앙위원회 총회의 선거라는 정규적인 방법으로 총비서 지위를 얻지 않았다. 1997년 9월 21일 평안남도 도당 위원회 대표자회를 시작으로 10월 초순까지 각지에서 당대표자회를 개최하여 김정일을 당 총비서로 ‘추대’하는 결의를 했다. 9월 22일에는 조선인민군 내 당대표자회에서도 김정일에 대한 총비서 추대를 결의하였고, 이후 정무원(내각) 사무국이나 각 부처에서도 당대표자회를 개최하여 김정일을 총비서로 추대하는 결의를 했다.[34] 즉, 군(軍)과 중앙정부 그리고 지방의 당 조직이 각각 별도 대표자회를 열어 개별적으로 추대 결정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형태를 취하고, 이것을 ‘전당의 의사에 따라’[35], 10월 8일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가 연명으로 김정일의 총비서 추대를 선언하였고, 김정일은 총비서로 취임했다.[36]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가 김정일 총비서 추대를 선포한 ‘특별 보도’에서 김정일을 ‘당의 총비서’, ‘조선로동당의 공인된 당총비서’라고 표현한 것에 대하여, 일본의 북한 연구자인 다마기 모도이(玉城素)는 김정일이 취임한 총비서직은 기존 중앙위원회에서 선출하던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아니고, 당 규약상 존재하지 않는 ‘편의상의 임시 직위’인 ‘당 총비서’라고 분석했다.[37]

2010년 9월 28일 개최된 제3차당대표자회는 김정일을 당총비서직에 재추대하였다. 당 규약을 개정하여 총비서 선출을 당중앙위원회 총회 선거에서 당대회 선거의 ‘추대’로 변경함과 동시에, 당대표자회 당 최고지도기관 선거에서도 선출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신 규약에서는 1980년 당 규약에서 명확하지 않았던 총비서 지위를 ‘당의 수반’이라고 규정하여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과의 겸직 규정도 마련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하여, 3남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었다. 2012년 4월 당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대신에 김정은을 ‘조선로동당 제1비서(朝鮮勞動黨 第一秘書)’로 추대했다.[29]

2016년 5월 9일 열린 제7차 조선로동당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조선로동당 위원장에 취임함에 따라 새로운 당의 최고권력직책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2021년 1월 10일에 열린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추대되면서 조선로동당은 정무국 대신 비서국이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5. 3. 당 총비서

1966년 10월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2차당대표자회에서 당 기구를 개편하면서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직을 폐지하고 중앙위원회의 최고 직위로 중앙위원회 총비서를 설치하였다. 당대표자회 마지막 날인 10월 12일 제4기 당중앙위원회 제14회 총회를 개최하여 김일성을 총비서로 선출하였다.[31]

김일성은 1970년의 제5기 당중앙위원회 제1회 총회, 그리고 1980년의 제6기 당중앙위원회 제1회 총회에서 총비서로 재선되었다. 1972년에 제정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서는 조선로동당의 주체사상을 국가 활동의 지도 지침한다고 정했으며[32], 조선로동당의 최고 지도자인 총비서가 북한의 사실상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한 후, 3년상(喪) 기간 동안 총비서직은 공석이었다. 1997년 10월 8일, '전당의 의사'에 따라[35]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가 연명으로 김정일의 총비서 추대를 선언하였고, 김정일은 총비서로 취임했다.[36]

2010년 9월 28일에 개최된 제3차당대표자회는 김정일을 당총비서직에 재추대하였다. 그리고 당 규약을 개정하여 총비서의 선출을 당중앙위원회 총회 선거에서 당대회 선거의 ‘추대’로 변경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후, 2012년 4월 당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김정은을 ‘조선로동당 제1비서’로 추대했다.[29]

2016년 5월 9일 열린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김정은이 조선로동당 위원장에 취임하면서 당의 최고권력직책은 위원장이 되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2021년 1월 10일에 열린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추대되면서, 조선로동당은 정무국 대신 비서국이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5. 4. 당 제1비서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셋째 아들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었다. 김정일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당 총비서 지위를 김정은이 승계할 것으로 여겨졌지만[22], 2012년 4월 11일에 개최된 제4차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칭하고, 당 규약을 개정하여 총비서직을 폐지했다. 그리고 새롭게 최고 직위로 당 제1비서를 설치하여[23], 김정은이 취임했다.[24]

5. 5. 당 위원장

1949년 6월 30일 조선로동당 창당 당시 당의 최고 지도 기관인 중앙위원회의 수반으로서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설치되었다.[14] 위원장에는 북한의 총리로, 소련의 지원을 받았던 김일성이 선출되었다. 김일성은 자신에 대한 당내 반대파를 숙청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당내에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했다.

1966년 10월에 개최된 제2차 당 대표자회에서 당 기구 개편이 이루어졌다. 중앙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이 폐지되었고, 중앙위원회의 최고 직위로 중앙위원회 총비서와, 총비서 아래에서 당의 일상 업무를 처리하고, 인사, 조직 문제까지 장악하는 중앙위원회 서기국이 설치되었다. 제2차 당 대표자회 마지막 날인 10월 12일, 제4기 당 중앙위원회 제14차 전원회의가 개최되어, 김일성이 총비서로 선출되었다.[15]

이후, 김일성은 1970년 제5기 당 중앙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 1980년 제6기 당 중앙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에서 총비서로 재선되었다. 이 기간 동안, 김일성의 독재화는 진행되었고, 신격화되어 갔다. 1972년에 제정된 신 헌법에서는 조선로동당의 주체사상을 국가 활동의 지도 지침으로 할 것을 규정하고[16], 최고 지도자인 총비서가 북한의 사실상 최고 지도자로서의 직위를 갖게 되었다. 또한, 김일성은 이 헌법에 의거하여 설치된 국가원수 직인 국가 주석에도 취임하여, 명실상부하게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총비서 및 국가 주석의 지위는 김일성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국방위원장,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서기국 수석서기인 김정일이 승계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김정일은 "3년 상을 치른다"라며 총비서 및 국가 주석에 취임하지 않았다.[17] 상중 기간 동안 당의 최고 직위인 총비서와 국가원수인 국가 주석은 공석이었지만, 아버지의 사망으로 당내 서열 1위가 된 김정일이 최고 지도자로서 북한을 통치했다.

1997년 7월 8일에 개최된 "김일성 주석 서거 3주년 중앙 추도 대회"에서 "상 종료"가 선언되자, 김정일의 당 총비서 취임이 정치 일정에 올랐다. 1980년 제6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당 규약에 따르면, 총비서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선출되도록 되어 있었지만, 김일성 사망 후,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소집되지 않았고, 김정일은 정규 절차로는 총비서의 지위에 오르지 않았다. 1997년 9월 21일 평안남도 당위원회의 대표회를 시작으로 10월 초순까지 각지에서 당 대표회가 개최되었고, 그 자리에서 김정일을 당 총비서로 "추대"하는 결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9월 22일에는 조선인민군 내의 당 대표회에서 김정일의 총비서 추대가 결의되었고, 이후 정무원(내각) 사무국 및 각 행정 기관에서도 당 대표회가 개최되어 김정일 총비서 추대를 결의했다.[18] 즉, 군, 중앙 정부, 지방의 당 조직이 각각 대표회를 열어 개별적으로 추대 결정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형식을 취하여, 이를 "전 당의 의사"로[19], 10월 8일, 당 중앙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연명으로 김정일의 총비서 추대를 선언했고, 김정일은 총비서에 취임했다.[20] 일본의 북한 연구자인 타마키 모토는, 김정일이 취임한 총비서 직위는 정규 절차로 중앙위원회에 의해 선출된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아니라, 당 규약상 존재하지 않는 "편의상 가구된 직위"로서의 "당 총비서"로 보고 있다.[21]

2010년 9월 28일 제3차 당 대표자회가 개최되어, 김정일은 당 총비서로 다시 "추대"되었다. 그리고, 당 규약의 개정이 이루어져, 총비서의 선출이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의 선거에서 당 대회에서의 "추대"로 변경됨과 동시에, 당 대표자회에서의 당 최고 지도 기관 선거에서도 실시하도록 규정되었다. 또한, 새로운 당 규약에서는 1980년의 당 규약에서는 명확하지 않았던 총비서의 지위를 "당의 수반"으로 규정하고,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과의 겸직 규정도 마련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했고, 셋째 아들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었다. 김정일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당 총비서의 지위를 김정은이 승계할 것으로 여겨졌지만[22], 2012년 4월 11일에 개최된 제4차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로 칭하고, 당 규약이 개정되어 총비서의 지위는 폐지되었다. 그리고, 새롭게 최고 직위로 당 제1비서가 설치되어[23], 김정은이 취임했다.[24]

2016년 5월에 개최된 제7차 당 대회에서 당 규약의 개정과 당 기구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당 제1비서의 지위는 폐지되었고, 새롭게 당의 최고 직위로 위원장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서기국은 정무국으로 개편되었다. 제7차 당 대회 마지막 날인 5월 9일, 김정은은 당 위원장에 취임했다.[2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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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4th Party Conference To Convene in "mid-April" http://nkleadershipw[...] North Korea Leadership Watch 201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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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웹사이트 【北朝鮮党大会】 金正恩氏、党委員長に就任 『核武力強化』の決定書採択し閉幕 政治局常務委員に崔氏ら選出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16-05-10
[26] 뉴스 조선로동당규약(2021년 1월 9일 개정·발췌역) 1/3 https://www.koreawor[...] 코리아월드타임즈 2021-06-05
[27] 뉴스 【独自】北朝鮮、後継構図を念頭に「金正恩代理人」新設 http://japan.hani.co[...] ハンギョレ 2021-06-02
[28] 뉴스 異例出世の側近、ナンバー2に? 北朝鮮が第1書記復活 https://www.asahi.co[...] 朝日新聞デジタル 2021-06-01
[29] 뉴스 北 당대표자회, 김정일 '영원한 총비서' 추대 http://www.tongilnew[...] 통일뉴스 2012-04-11
[30] 문서 조선로동당의 역사
[31] 서적 平井久志(2010)
[32] 문서 1992년 헌법 개정
[33] 서적 平井久志(2010)
[34] 서적 平井久志(2011)
[35] 서적 玉城素(2009)
[36] 서적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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