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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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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종군 간호사는 전쟁이나 재난 상황에서 부상자 및 환자를 간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간호사를 의미한다. 고대부터 군 간호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근대 간호의 선구자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한국은 대한제국 시기 서양식 간호 교육 도입으로 군 간호가 시작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적십자사의 영향으로 간호부 양성 제도가 운영되었다. 대한민국 국군 창설 이후 한국 전쟁을 거치며 군 간호의 중요성이 커졌고, 국군간호사관학교를 통해 체계적인 인력 양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각국은 군 간호병단을 운영하며, 전시뿐 아니라 재난 구호 활동에도 참여한다. 군 간호사는 전/평시 군 의료 시스템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간호학 학위 취득 후 군 간호 장교로 임관할 수 있다. 그러나 열악한 근무 환경, 심리적 스트레스, 성폭력 위험 등 어려움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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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 간호사

2. 역사

군 간호의 역사는 고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초기에는 주로 남성 종교인이나 종군 인력들이 부상병을 돌보는 역할을 맡았다.

근대 간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크림 전쟁 당시 헌신적인 간호 활동을 통해 열악했던 야전 병원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고 사망률을 크게 낮추는 데 기여하며 군 간호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

미국 남북 전쟁 시기에는 클라라 바턴과 같은 인물들이 활약했다. 바턴은 전쟁터에서 간호 활동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전후에는 미국 적십자를 창설하고 행방불명된 병사들을 찾는 데 힘쓰며 미국 군 간호 체계 발전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편,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히메유리 학도대나 백매 학도대와 같이 어린 여학생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간호 활동을 하다 희생되는 비극적인 사례도 있었다. 이는 전쟁의 참상과 함께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반인륜적 행위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후 군 간호는 점차 전문화되고 체계화되어 각국 군대 내에 정식 간호 부대가 창설되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미국 육군 간호병단(United States Army Nurse Corpseng), 영국 알렉산드라 여왕 친위 육군 간호병단(Queen Alexandra's Royal Army Nursing Corpseng), 호주 육군 간호병단(Royal Australian Army Nursing Corpseng), 이탈리아 적십자 자원 간호사단(Corpo delle infermiere volontarie della Croce Rossa Italianaita) 등이 있다.

3. 각국의 군 간호

군 간호는 여러 나라 군대에서 의료 체계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종군 간호사들은 전쟁터는 물론 평시에도 다양한 환경에서 전문적인 간호 활동을 수행하며 군의 전투력 유지와 장병들의 건강 관리에 기여한다.

미국1775년부터 군 간호 인력을 운용해 온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 육군 간호병단을 비롯한 여러 조직을 통해 체계적인 군 간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등 주요 전쟁에서 많은 간호사들이 활약했으며, 이후에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등 다양한 분쟁 지역과 재난 현장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6][7]

일본의 경우, 메이지 시대1890년대부터 일본 적십자사를 중심으로 종군 간호사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청일 전쟁러일 전쟁을 거치며 그 역할이 확대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해외 파견도 이루어졌다.[14][15][16][17][18]

이 외에도 영국, 호주, 인도 등 많은 국가들이 군 간호 조직을 운영하며 자국의 군 의료 시스템을 지원하고 있다.

3. 1. 미국

미국에서는 군 소속으로 활동하는 여러 간호 부대가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육군 간호병단(U.S. Army Nurse Corps)은 미국 육군 의무국(Army Medical Department (United States))의 특별 부서이며, 이 외에도 미국 해군 간호병단(U.S. Navy Nurse Corps)과 미국 공군 간호병단(U.S. Air Force Nurse Corps)이 있다.

미국 육군에서는 1775년부터 남녀 종군 간호사가 활동해 왔다. 특히 미서 전쟁에서 종군 간호사의 활약이 중요하게 평가되면서, 1901년에는 육군 간호대(Army Nurse Corps)가 정식으로 창설되어 현재까지 종군 간호사를 관리하고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이 참전한 1917년에는 약 4,000명의 종군 간호사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전쟁이 끝난 1918년 11월에는 그 수가 21,000명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들 중 절반가량은 프랑스 전선이나 병원선 등 해외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약 270명의 미군 간호사가 임무 중 사망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1941년 말 미국 참전 시점에 약 7,000명의 종군 간호사가 현역이었으며, 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 총 57,000명 이상이 복무했다. 이들은 부상자 후송을 위한 구호용 항공기에 탑승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노력 덕분에 항공 후송 1만 회당 환자 사망률을 5건으로 크게 낮추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전쟁 중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았다. 필리핀 전투에서는 코레히도르 섬 요새가 함락되면서 67명의 미군 종군 간호사가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또한 이탈리아 전선의 안치오 전투에서는 종군 간호사들이 직접 방공호를 파서 환자들을 보호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총 215명의 미군 간호사가 전사했다. 한편, 당시 미군 기지 내에서 간호사가 동료 미군 병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여, 기지 밖으로 외출할 때는 권총 휴대가 권장되기도 했다.[6][7]

이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등에서도 미군 종군 간호사들은 현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군사 활동 외에도 자연재해 발생 시 구호 활동과 같은 인도적 지원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3. 2. 영국

알렉산드라 여왕 육군 간호병단 Queen Alexandra's Royal Army Nursing Corps|알렉산드라 여왕 육군 간호병단eng영국 육군 의무부 소속의 전문 부대이다.

3. 3. 호주

호주 육군 간호병단(Royal Australian Army Nursing Corps)

3. 4. 인도


  • 인도 군 간호병단

3. 5. 일본

일본의 종군 간호사 제도는 메이지 시대인 189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890년 4월, 일본 적십자사 간호부 양성소에 1기생 10명이 입소하며 본격적인 양성이 시작되었다. 양성 기간은 3년이었으며, 졸업 후 초기에는 20년간 전시 소집에 응할 의무가 부과되었다. 이 의무 기간은 이후 15년, 12년으로 단축되었으나, 소집 규칙 자체는 구 일본군 해체 후인 1955년 1월 16일까지 효력을 유지했다.

일본 적십자사 간호부 양성소 졸업생은 평시에는 적십자 병원 등에서 근무하다가, 전시 소집장이 발부되면 개인적인 사정과 관계없이 전지로 향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갓 태어난 아기를 두고 소집에 응한 간호부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1891년에는 니이지마 야에가 독지 간호부(자원 간호사)가 되었고, 1894년 청일 전쟁 발발 시 적십자 교토 지부가 구호원을 파견할 때 간호부 책임자로서 히로시마 예비 병원에서 활동했다[8]。 당시 독지 간호부는 상류 계급 여성이 많았다.

청일 전쟁은 적십자 간호부가 처음으로 육군 및 해군 병원에 소집되어 활동한 전쟁이다. 당시 언론은 이들의 활동을 "종군 간호부"로 칭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하여 국민적 인지도를 높였다. 이 전쟁에서 구호원 25명이 순직했으며, 그중 4명이 간호부였으나, 모두 국내 근무 중 전염병으로 사망한 경우였다[9]。 전쟁 후 논공행상에서 소집 간호부들이 서훈 대상이 되면서, 간호부는 여성의 새로운 전문 직업으로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청일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1901년 12월 일본 적십자사 조례(칙령 제223호)가 개정되어, 적십자사와 군의 관계가 명확히 규정되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육군 및 해군의 전시 위생 근무 보조
  • 육군대신 및 해군대신의 적십자사 감독권
  • 구호원의 군 규율 준수 및 명령 복종 의무
  • 간호부장 및 간호사장(看護師長)은 하사관 대우, 간호부 및 간호인(看護人)은 병사 대우


러일 전쟁에서는 총 2,160명의 적십자 간호부가 종군했으며, 39명(간호부장 2명, 간호부 37명)이 희생되었다. 이들 역시 모두 국내 근무 중 병사했으며, 1907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다[10]。 러일 전쟁 당시 히로시마 적십자 병원에서 활동한 니이지마 야에의 사진이 남아 있다[11]

제1차 세계 대전시베리아 출병 시기에는 처음으로 병원선에 탑승하여 해외 근무를 시작했다.

1919년에는 육군 병원에서 간호부를 시범적으로 채용했는데, 결과가 좋아 1920년부터 모든 육군 위수 병원에서 "육군 간호부"를 채용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적십자 간호부 양성소 졸업생 중에서만 선발했으나, 점차 일반 간호사 자격 소지자도 채용했다. 육군 간호부의 신분은 고용인이었지만, 군 내부에서는 부장이 상등병 상당, 간호부가 이등병 상당의 대우를 받았다. 전시에는 이들도 적십자 간호부처럼 해외 근무에 투입되었다.

중일 전쟁 발발 후 전선이 확대되면서 간호부 부족 문제가 심화되었다. 이에 적십자는 기존 3년이던 양성 기간을 2년 반으로 단축했다[12]태평양 전쟁 발발 후인 1942년에는 기존 간호부(고등 여학교 졸업자)를 '갑종 간호부'로, 고등 소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2년간 교육하는 '을종 간호부' 제도를 신설했다. 채용 연령 하한선도 만 18세에서 만 16세로 낮추었다.

만주 사변,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동원된 적십자 출신 종군 간호부는 연인원 35,000명(960개 반 규모)에 달했으며, 이 중 1,120명이 전사하거나 순직했다. 전쟁 종결 시점에는 육군 간호부 20,500명이 군적에 있었고(해외 근무 6,000명), 소집 중인 적십자 간호부는 15,368명이었다. 해군에서도 병원선 등에서 간호부가 활동했으나 구체적인 자료는 부족하다.

패전 직후, 구 해군이 일본인 위안부를 군 병원의 간호 보조원으로 고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13]

이 외에도 일본 적십자 간호부들은 1890년 와카야마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에르투으롤호 조난 사고 구조 활동[14], 1892년 지시마호 충돌 사고 구호[15], 1900년 의화단 운동 당시 부상 프랑스인 치료[16], 러일 전쟁 당시 바랴크호 부상병 치료[17],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 포로 치료[18]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현대 자위대에도 간호사 자격을 가진 자위관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자위대 중앙 병원 고등 간호 학원에서 간호 학생으로 양성되며, 국가시험 합격 후 2등 육조 계급을 부여받고 각지의 자위대 병원 등에 배치된다. 또한, 간호조무사 자격을 가진 자위관도 육상·해상·항공 자위대별로 양성되며, 이들은 각각 3등 육조, 해사장, 공사장 계급이 된다. 별도로 자격 보유자를 기술조로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2014년에는 방위의과대학교에 간호학과가 신설되었다. 자위관 과정 합격자는 조장 계급을 받으며, 기술 행정직(技官) 채용도 이루어진다.

4. 군 간호사의 역할 및 훈련

군에서 간호 장교로 복무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간호학 학사(BSN)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공군 방위군과 같은 일부 조직에서는 개인이 병사로 입대하여 항공 의료 후송 기술자로 근무하면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군은 학비 지원을 통해 BSN 취득을 돕고, 졸업 후 간호사는 국가 간호사 시험에 합격하면 소위 계급으로 임관할 수 있다.[3]

역사적으로 간호 인력 양성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1911년 일본 적십자에서는 구호원 학생들을 위한 교육 자료를 발행했는데, 여기에는 수신(修身)의 요령, 적십자 사업, 육해군 근무 요령, 인체 구조, 붕대법, 다양한 환자 간호법, 응급 처치, 위생, 약제 지식 등 광범위한 내용이 포함되었다.[19]

현대 군대에서도 자체적인 간호 인력 양성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일본육상자위대는 자위대 중앙 병원에 설치된 고등 간호 학원에서 간호 학생을 양성한다. 이들은 재학 중 간호사 국가 시험에 응시하며, 합격 후에는 2등 육조(하사관에 해당)로 임관하여 각지의 자위대 병원 등에서 근무하게 된다. 또한, 간호사 자격자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간호조무사 자격을 가진 자위관도 육상, 해상, 항공 자위대별로 양성하고 있으며, 이들은 각각 3등 육조, 해사장, 공사장 계급을 부여받는다. 별도로 간호사 자격자를 기술조(기술 부사관)로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2014년에는 방위의과대학교에 간호학과가 신설되어 자위대 간호 장교(자위대 코스의 경우 조장 임관) 및 기술관을 양성하고 있다.

5. 군 간호의 어려움

군 간호사는 일반적인 병원 환경과 달리 물품, 의약품, 장비 등이 부족한 상태에서 환자를 돌봐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4]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했던 영국 군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가족의 지원 부족, 정신 건강 문제, 분리 불안, 가족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 준비 부족, 심각한 부상자나 말기 환자를 돌보는 데 따르는 감정적 부담 등 다양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5]

전쟁 상황에서는 신체적 위험에도 직접 노출된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필리핀 전투에서는 67명의 미국 육군 간호사가 포로가 되었으며, 이탈리아의 안치오 전투에서는 간호사들이 직접 방공호를 파서 환자를 보호해야 했다.

또한, 여성 군 간호사의 경우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군 간호사가 동료 미군 병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여, 기지 밖 외출 시 권총 휴대가 장려되기도 했다.[6][7]

6. 위령비


  • 구마모토 현 호국 신사에는 종군 간호사 위령비가 있다. 위령비 기록에 따르면, 1937년 발발한 중일 전쟁부터 태평양 전쟁 종결까지 일본 적십자사가 파견한 구호반은 960반, 연인원 33,156명에 달하는 "전시 구호 간호사"를 전선에 보냈으며, 이 과정에서 적의 습격, 병원선 어뢰 공격, 병원 근무 중 공습, 원자 폭탄 투하 등으로 순직한 구호원은 1,143명, 부상자는 4,689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종군한 것은 적십자 간호사뿐만 아니라 육군·해군의 징집 간호사, "히메유리 학도대" 등 여학생까지 포함되었으며, 이들의 희생을 합하면 순직자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이 위령비는 구마모토 현 호국 신사 숭경회와 만주·소련 순난자 위령 현창회가 2012년 10월 10일에 건립했다.[20]
  • 일본 적십자사 이바라키 현 지부에는 적십자 구호 간호사상 위령비 "사랑의 등불"이 있다. 이 위령비는 1974년에 설립되었으며, 2003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21]

참조

[1] 웹사이트 Nursing Sisters https://www.thecanad[...] Historica Canada 2022-02-16
[2] 웹사이트 QARANC - Our History http://www.army.mod.[...]
[3] 간행물 Military Nursing: One Guardsman's Perspective 2020-07
[4] 간행물 Military Nursing: One Guardsman's Perspective 2020-07
[5] 간행물 The challenges and psychological impact of delivering nursing care within a war zone.
[6] 서적 リンドバーグ第二次大戦日記(下) 新潮社 1974
[7] 서적 沖縄戦と民衆 大月書店 2001
[8] 문서 2013
[9] 문서 2013
[10] 문서 2013
[11] 문서 2013
[12] 웹사이트 看護師養成の歴史 http://www.jrc.or.jp[...] 日本赤十字社
[13] 뉴스 https://web.archive.[...] 共同通信 2008-06-19
[14] 문서 2013
[15] 문서 2013
[16] 문서 2013
[17] 문서 2013
[18] 문서 2013
[19] 문서 2013
[20] 웹사이트 熊本県 護国神社 http://kumamoto-goko[...]
[21] 웹사이트 http://www.jrci.j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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