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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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화산은 중화인민공화국 안후이성 칭양 현에 위치한 산으로, 지장보살의 성지이자 중국 4대 불교 명산 중 하나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이 지은 시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신라의 승려 김교각이 이곳에서 수행하며 사찰을 세우고 열반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주화산은 자연 경관 또한 뛰어나 1979년 개방 이후 관광지로 명성을 얻었으며, 2019년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화성사, 육신보전, 백세궁 등 다수의 사찰과 유적이 있으며, 최고봉은 해발 1342m의 시왕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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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화산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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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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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정보 | |
다른 이름 | 구화산 (九華山) |
위치 | 중국 안후이성 츠저우시 |
설명 | 구화산은 중국 안후이성 츠저우시에 있는 불교 성지이다. |
지리 | |
높이 | 알 수 없음 |
좌표 | 30°28′56″N 117°48′16″E |
역사 및 문화 | |
종교적 중요성 | 구화산은 중국 불교의 사대명산 중 하나로, 특히 지장보살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찰과 암자가 있으며, 불교 신자들의 순례지이다. |
기타 |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이 승인한 제1차 국가중점풍경명승구 중 하나이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2. 역사
신라 왕자 김교각이 이곳에서 지장보살로 받들어지던 시기에는 300여 개의 사찰이 있었으나, 현재는 93개의 사찰만 남아 있다. 그 중에는 국가중요사찰 9개, 성급중요사찰 30개와 불상 등 중요 문화재가 있다.
신라 김교각이 지장보살로 받들어지던 전성기에는 300여 개의 사찰이 있었으나, 현재는 93개의 사찰만 남아 있다.[1] 그 중에는 국가중요사찰 9개, 성급중요사찰 30개와 불상 등 중요 문화재가 있다.[1]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는 360개에 달하는 사찰과 4,000명에서 5,000명의 승려가 있을 정도로 불교 문화가 융성했다.[4]
주화산은 한나라 때 링양산(陵阳山)으로, 남조 양·진 때는 구자산(九子山)으로 불렸다.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이 방문하여 지은 시(妙有分二气,灵山开九华)에서 주화산이라고 불렸다.
신라 성덕왕의 첫 번째 왕자인 김교각 스님은 719년 이곳에 와서 수행하며 사찰을 세우고 99세의 나이로 열반에 들었다. 그는 유언에서 자신의 시신을 3년간 함 속에 넣어두고 그래도 썩지 않거든, 등신불로 만들라고 남겼다. 안휘성은 비가 많아 고온 다습하여 불가능한 유언이었으나, 3년 뒤 열반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등신불이 되었다고 한다.
김교각은 살아 생전에 높은 도행으로 김지장왕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사후에 그러한 신앙이 더욱 굳어졌다.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는 360개에 달하는 사찰과 4,000명에서 5,000명의 승려가 있을 정도로 흥성하였다.[1]
이후 국가 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고, 아시아 태평양 지질공원 네트워크 지역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후, 2019년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인정되었다.[2]
3. 기후
월 최고 기온(°C) 평균 기온(°C) 최저 기온(°C) 강수량(mm) 습도(%) 강수 일수 일조 시간 일조율(%) 적설 일수 1월 5.4 1.6 -1.0 102.6 76 13.2 103.1 32 7.8 2월 8.3 4.2 1.4 106.6 76 13.7 101.7 32 4.9 3월 13.2 8.7 5.3 173.0 73 16.2 121.1 33 2.4 4월 19.3 14.8 11.1 194.5 72 15.6 142.9 37 0.1 5월 23.7 19.4 16.0 219.7 74 15.0 156.4 37 0 6월 26.0 22.5 19.6 315.7 81 16.6 122.2 29 0 7월 29.3 25.8 23.1 305.5 78 15.4 174.8 41 0 8월 28.4 24.8 22.0 289.3 82 17.4 156.2 39 0 9월 24.3 20.7 17.9 143.2 82 12.7 134.2 37 0 10월 19.7 15.7 12.7 110.9 74 10.8 148.4 42 0 11월 14.3 10.0 7.1 97.0 73 11.5 130.6 41 0.6 12월 8.3 4.0 1.3 76.6 70 10.9 129.6 41 3.7
주화산(해발 647m)의 1991~2020년 평균 기후는 위와 같으며, 중국 기상청의 자료를 참고하였다.[3][4]
4. 주요 사찰 및 유적
주화산에 위치한 주요 사찰은 다음과 같다.사찰 이름 감로사(주화산) 천태사(주화산) 지원사(주화산) 첨단림 백세궁사 기원사 천지사 대비루사
4. 1. 화성사(化城寺)
김교각이 세웠다고 알려진 사찰이다. 김교각의 유물인 40cm 신발과 신라에서 가져왔다는 흰 삽살개 모양을 한 황금견이 있다.[1]
4. 2. 육신보전(肉身寶殿)
신라 성덕왕의 첫 번째 왕자인 김교각 스님은 719년 이곳에 와서 수행을 하면서 사찰을 세우고 99세의 나이로 열반에 들었다. 그는 유언에서 자신의 시신을 3년간 함 속에 넣어두고 그래도 썩지 않거든, 등신불로 만들라고 남겼다. 이곳 안휘성은 비가 많아 고온 다습하여 불가능한 유언이었으나 3년 뒤 열반 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어, 등신불이 되었다고 한다.[1]
김교각은 이미 살아 생전에 그의 높은 도행으로 말미암아 김지장왕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죽은 후에도 그러한 신앙이 더욱 굳어졌다.[1] 그는 99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그의 육신은 신성한 사리(舍利)로 훼손되지 않은 채 보존되었다. 그는 외모가 지장보살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에, 그곳의 승려들은 그가 지장보살의 화신 중 하나라고 믿었고, 그 결과 주화산은 지장보살에게 헌정된 성지가 되었다.[4]
신라의 김교각(지장, 696년 - 794년)이 이 지역의 화성사(化城寺)에서 수행하던 중, 99세로 입적했을 때 3년 뒤 관을 열어 탑에 모시려 하자 그 얼굴이 생전과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으로 인해, 지장보살과 이 승려를 동일시하는 신앙이 생겨났고, 지장왕보살(불교의 지장보살이, 불교 도교 혼합의 시왕사상과 결합하여 염마왕과 일체가 되어 죽은 자를 심판한다고 여겨짐)의 성지가 되었다.[6]
4. 3. 고배경대(古拜經臺)
김교각 스님이 고행을 한 곳이다.
4. 4. 천대봉(天臺峰)
이백의 시 묘유분이기, 영산개구화(妙有分二气,灵山开九华)에서 주화산(九華山)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1]
김교각 스님은 성덕왕의 첫째 아들로, 719년 이곳에 와서 수행하며 사찰을 세우고 99세에 열반에 들었다.[1] 그는 열반에 들기 전, 자신의 시신을 3년간 함에 넣어두고 썩지 않으면 등신불로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1] 안후이성은 비가 많이 오고 고온 다습하여 시신이 썩기 쉬운 환경이었으나, 3년 후에도 김교각 스님은 열반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등신불이 되었다.[1]
김교각 스님은 살아생전 높은 도행으로 김지장왕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열반 후에는 이러한 신앙이 더욱 굳어졌다.[1]
4. 5. 백세궁(百歲宮)
신라 성덕왕의 첫 번째 왕자인 김교각 스님은 이곳에서 수행을 하다가 99세의 나이로 열반에 들었다.[1] 김교각은 자신의 시신을 3년간 함 속에 넣어두고 그래도 썩지 않거든, 등신불로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1] 안후이성은 비가 많아 고온 다습하여 등신불이 되기 어려우나, 3년 뒤 김교각은 열반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어 등신불이 되었다고 한다.[1]
5. 문화
이백이 지은 시()에서 주화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1]
신라 성덕왕의 아들 김교각 스님이 719년 이곳에서 수행하며 사찰을 세우고 99세에 열반하였다.[1] 김교각은 열반 후에도 모습이 그대로 남아 등신불이 되었다고 전해진다.[1] 그는 생전에 김지장왕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사후에도 이러한 신앙이 더욱 굳어졌다.[1]
주화산은 지장보살 신앙의 중심지로서, 김교각이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지면서 더욱 중요한 성지가 되었다.[4]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는 360여 개의 사찰과 4,000~5,000명의 승려가 있을 정도로 번성하였다.[4] 주화산은 불교 문화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도 유명하다.[4]
1979년 개방된 이후 주화산은 불교 문화와 자연 경관으로 동남아시아, 대한민국, 일본 등지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6]
6. 갤러리
7. 중국 4대 불교 명산
신라 성덕왕의 첫 번째 왕자인 김교각 스님은 719년 이곳에 와서 수행하며 사찰을 세우고 99세의 나이로 열반에 들었다. 김교각은 외모가 지장보살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에, 그곳의 승려들은 그가 지장보살의 화신 중 하나라고 믿었고, 그 결과 주화산은 지장보살에게 헌정된 성지가 되었다.[1] 살아생전에 그의 높은 도행으로 말미암아 김지장왕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사후에 더욱 그러한 신앙이 굳어졌다. 김교각 화상이 화성사(化城寺)에서 수행하던 중, 99세로 입적했을 때 3년 뒤 관을 열어 탑에 모시려 하자 그 얼굴이 생전과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으로 인해, 지장보살과 이 승려를 동일시하는 신앙이 생겨났고, 지장왕보살(불교의 지장보살이, 불교 도교 혼합의 시왕사상과 결합하여 염마왕과 일체가 되어 죽은 자를 심판한다고 여겨짐)의 성지가 되었다.[3]
주화산은 산서성의 오대산, 사천성의 아미산, 절강성의 보타산과 함께 중국의 4대 불교 명산으로 불린다.[1]
참조
[1]
웹사이트
Jiuhuashan
http://www.hceis.com[...]
[2]
웹사이트
九华山概况-九华山风景区
http://www.jiuhuasha[...]
2020-01-04
[3]
웹사이트
中国气象数据网 – WeatherBk Data
http://data.cma.cn/d[...]
China Meteorological Administration
2023-09-24
[4]
웹사이트
中国气象数据网
https://experience.a[...]
China Meteorological Administration
2023-09-24
[5]
웹사이트
国务院批转城乡建设环境保护部等部门关于审定第一批国家重点风景名胜区的请示的通知
http://fgcx.bjcourt.[...]
北京法院法規検索
1982-11-08
[6]
웹사이트
池州市九华山风景区
https://www.mct.gov.[...]
中华人民共和国文化観光部
2021-07-22
[7]
웹사이트
JIUHUASHAN UNESCO GLOBAL GEOPARK (China)
https://en.unesco.or[...]
202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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