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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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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도 김씨는 경순왕의 후예인 김지대를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김지대는 1217년 거란군 침입 시 공을 세워 오산군에 봉해졌으며, 후손들이 청도를 관향으로 삼아 명문으로 성장했다. 주요 인물로는 김지대의 6세손 김점, 조선 후기 실학자 김정호 등이 있으며, 인구는 2015년 기준 91,293명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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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도 김씨 - 김정호
    김정호는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이자 지도 제작자로,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여러 지도와 지리지를 제작하여 조선 시대 지리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소행성 95016 김정호가 명명되었다.
  • 청도 김씨 - 김윤정 (1869년)
    김윤정은 대한제국 시기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주미공사관에서 요직을 지냈으나 이승만과의 갈등 이후 귀국하여 군수와 부윤을 역임했고, 한일 병합 후에는 조선총독부 참여관과 도지사를 지내며 친일 관료로 활동한 인물로,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청도 김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청도 김씨 문양
청도 김씨 문양
한자 표기淸道金氏
국가한국
관향경상북도 청도군
시조김지대(金之岱)
원시조김알지(金閼智)
집성촌경상북도 경산시
경상북도 군위군
경상북도 영주시
경상북도 영천시
경상북도 청도군
경상남도 거창군
경상남도 밀양시
대구광역시 달성군
부산광역시 기장군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울산광역시 울주군
전라북도 고창군
전라북도 정읍시
전라남도 해남군
전라남도 화순군
충청남도 부여군
주요 인물김선장
김한귀
김점
숙공궁주
김난상
김희방
김정호
김윤정
김동휘
김재영
김석규
김호복
김경진
통계 (2015년)91,293명

2. 역사

시조 김지대(金之岱, 1190년 ~ 1266년)는 경순왕의 후예로, 1217년(고종 4) 거란군이 침입하자 아버지를 대신하여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웠다. 1218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중서시랑평장사에 이르렀다. 오산군(鰲山君)에 봉해지고 영헌공(英憲公)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후손들은 청도를 본관으로 삼았다.

청도는 경상북도 남쪽에 위치하며, 신라 유리왕 때 신라에 병합되었다. 경덕왕밀성군의 영현으로 삼았다가 고려 초에 청도군이 되었다.

2. 1. 시조 및 본관

김지대(金之岱, 1190년 ~ 1266년)는 경순왕의 후예로, 처음 이름은 김중룡(金仲龍)이다. 1217년(고종 4) 거란(契丹)군이 침입하자 "충효쌍수(忠孝雙修)"라는 시(詩)를 남기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웠다.

1218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도안찰사,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 정당문학이부상서(政堂文學吏部尙書),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를 거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치사(致仕)하였다.

오산군(鰲山君: 鰲山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에 봉해지고 영헌공(英憲公)의 시호가 내려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청도(淸道)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그곳에 살면서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명문(名門)으로 명성을 떨쳤다.

청도(淸道)는 경상북도 남쪽 중앙에 위치한 고장으로 본래 이서소국(伊西小國)의 땅이었으나 신라 유리왕 때 신라에 병합되었다. 이후 구도성(仇刀城) 경내(境內) 솔이산(率伊山)ㆍ경산(驚山)ㆍ오도산(烏刀山)의 3성(城)을 합하여 대성군(大城郡)을 두었다. 경덕왕 때 구도(仇刀)를 오악현(烏岳縣)으로, 경산(驚山)을 형산현(荊山縣)으로, 솔이산(率伊山)을 소산현(蘇山縣)으로 고쳐 밀성군(密城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가 고려 초(高麗初)에 3성(三城)을 합하여 청도군(淸道郡)이 되었다.

2. 2. 고려 시대

1217년(고종 4) 거란군이 침입하자 시조 김지대(金之岱, 1190년 ~ 1266년)는 「충효쌍수(忠孝雙修)」라는 시(詩)를 남기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웠다.

1218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도안찰사,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 정당문학이부상서(政堂文學吏部尙書),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를 거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치사(致仕)하였다.

오산군(鰲山君: 鰲山은 지금의 청도)에 봉해지고 영헌공(英憲公)의 시호가 내려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청도를 관향(貫鄕)으로 삼아 그곳에 살면서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명문(名門)으로 명성을 떨쳤다.

고려 시대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이름설명
김선장(金善莊)김지대의 아들. 1340년(충혜왕 복위1) 조적(曺頔)의 난으로 왕이 원나라에 불려갈 때 호종하여 일등공신에 책록됨.
김한귀(金漢貴)김지대의 증손. 공민왕 때 동경도병마사로 홍건적을 토벌한 공으로 최영과 함께 일등공신에 책록됨.
김한룡(金漢龍)김한귀의 아우. 홍건적의 침입 때 공민왕을 호종하고 흥룡사(興龍寺)로 갔다가 중신 김용(金鏞)이 난을 일으켜 환관 안도치(安都赤)와 우정승 홍언박(洪彦博) 등을 살해할 때 함께 순절함.


2. 3. 조선 시대


  • 김점(金漸) : 김지대의 6세손이며, 김한귀의 손자로 조선 태종 때 공조참의·예조참의·참찬을 지냈으며, 딸이 조선 태종의 후궁 숙공궁주 김씨이다. 조선 세종 때 형조·호조판서와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호강공(胡剛公)이다.
  • 김차산(金次山) : 관찰사 김호우의 5세손으로 세조 때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능주(綾州)의 천태산(天台山)에 은거하였다.
  • 김난상(金鸞祥) :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을사사화로 남해(南海)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 선조 때 직제학을 거쳐 대사성에 올랐다. 경상북도 영주시 오산서원(梧山書院)에 배향되었다.
  • 김몽룡(金夢龍)·김희방(金希邦) :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하여 임란공신에 책록되었다.
  • 김응하(金應夏) : 순조 때 성리학자로 문하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3. 주요 인물


  • 김선장(金善莊): 김지대의 아들로 1340년(충혜왕 복위 1년) 조적의 난 때 왕이 원나라에 불려갈 때 호종하여 일등공신에 책록되었다.
  • 김한귀(金漢貴): 김지대의 증손으로 공민왕 때 동경도병마사로 홍건적을 토벌한 공으로 최영과 함께 일등공신에 책록되었다.
  • 김한룡(金漢龍): 김한귀의 아우로 홍건적의 침입 때 공민왕을 호종하고 흥룡사로 갔다가 중신 김용이 난을 일으켜 환관 안도치와 우정승 홍언박 등을 살해할 때 함께 순절하였다.
  • 김점: 조선 태종 때 공조참의, 예조참의, 참찬을 역임하고, 조선 세종 때 형조판서, 호조판서,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딸은 조선 태종의 후궁 숙공궁주이다. 시호는 호강공이다.
  • 김차산: 관찰사 김호우의 5세손으로,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 운동을 도모하다 능주의 천태산에 은거하였다.
  • 김난상: 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을사사화남해에 유배되었다 풀려나와 조선 선조 때 직제학, 대사성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영주시 오산서원에 배향되었다.
  • 김몽룡(金夢龍), 김희방(金希邦):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임란공신에 책록되었다.
  • 김응하(金應夏): 조선 순조 때 성리학자로 문하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 김정호: 고산자라는 호를 썼으며, 36여 년간 전국을 돌며 청구도대동여지도를 완성하여 우리나라 문화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 김규일: 동학 농민 운동 당시 무장지역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52세의 나이로 효수되었다.

3. 1. 김정호 (金正浩)

김정호는 고산자(古山子)라는 호를 썼으며,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학문에 힘써 정밀한 지도 제작에 뜻을 두었다. 36여 년간 전국을 돌며 청구도대동여지도를 완성하여 우리나라 문화사에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3. 1. 1. 생애와 업적


  • 김점 : 김지대의 6세손이며 김한귀의 손자로, 조선 태종 때 공조참의, 예조참의, 참찬을 지냈으며, 딸이 조선 태종의 후궁 숙공궁주이다. 조선 세종 때 형조판서, 호조판서와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호강공이다.
  • 김차산 : 관찰사 김호우의 5세손으로,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능주의 천태산에 은거하였다.
  • 김난상 : 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을사사화로 남해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 조선 선조 때 직제학을 거쳐 대사성에 올랐다. 경상북도 영주시 오산서원에 배향되었다.
  • 김몽룡, 김희방 :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임란공신에 책록되었다.
  • 김응하 : 조선 순조 때 성리학자로 문하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 김정호 : 고산자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학문에 진력하여 정밀한 지도 작성에 뜻을 두고 36여 년간 전국을 돌며 「청구도」와 「대동여지도」를 완성하여 우리나라 문화사상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 김규일 : 1843~1894. 본관은 청도. 자는 자범, 별호는 병운. 전라북도 고창 출생. 동학 농민 전쟁 당시 무장지역에서 크게 활동하다 체포되어 1894년 12월 12일 52세의 나이로 효수되었다.

3. 1. 2. 논란과 비판

청도 김씨와 관련하여 직접적인 논란이나 비판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자료는 없으나, 일부 인물들의 행적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을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다.

  • 김점: 딸이 조선 태종의 후궁 숙공궁주 김씨라는 점은 왕실과의 관계를 통해 권력을 강화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 김차산: 세조 때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당시 정치적 격변기에 논란의 중심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 김난상: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남해에 유배되었다는 점은 당시 정치적 상황에서 비판을 받았을 수 있음을 나타낸다.
  • 김규일: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하여 처형당했다는 사실은 당시 지배층에게는 비판의 대상이었을 수 있다.

3. 2. 김규일 (金圭一)

김규일(金圭一, 1843년 ~ 1894년)은 조선의 동학 농민 운동 지도자이다. 본관은 청도, 자는 자범(子範), 별호는 병운(丙云)이다. 전북 고창 출생으로, 동학 농민 운동 당시 무장지역에서 크게 활동하다 체포되어 1894년 12월 12일 52세의 나이로 효수 되었다.

4. 항렬자

21세22세23세24세25세26세27세28세29세30세31세32세33세34세35세36세
口萬|구만중국어희(熙)口時|구시중국어진(鎭)口浩|구호중국어
口承|구승중국어
재(載)
재(在)
식(植)
동(東)
口善|구선중국어
口鎭|구진중국어
口燦|구찬중국어
口昌|구창중국어
영(永)
윤(潤)
훈(勳)
口植|구식중국어
口鍾|구종중국어
병(丙)
대(大)
순(淳)
口基|구기중국어
口純|구순중국어
口相|구상중국어
口秉|구병중국어
종(鍾)
노(魯)
걸(杰)
口淳|구순중국어
口恭|구공중국어
口在|구재중국어
동(東)
정(程)
현(鉉)
口燮|구섭중국어희(喜)


5. 인구

연도인구
1985년64,383명
2000년75,567명
2015년91,29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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