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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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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칠원군은 현재의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일대에 있었던 옛 행정 구역이다. 삼한 시대에는 변진접도국, 가야 시대에는 칠포국으로 불렸다. 신라 시대에는 칠토현, 칠제현으로 개칭되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칠원현으로 불렸다. 조선 시대에는 현감으로 변경되었고, 임진왜란 이후 창원도호부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현으로 복구되었다. 1895년 진주부 칠원군이 되었고, 1908년 함안군에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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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원군
지도
기본 정보
한자 표기漆原郡
위치경상남도 함안군 북부
역사
설치1895년 (23부제 시행)
폐지1914년 함안군에 통합
행정 구역
대산면
읍내면
이동면
장지면
북면
내동면
추가 정보
관련 링크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유래

칠원이라는 이름은 상고시대까지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삼한시대에 변진접도국(弁辰接塗國)이 있었는데, 우리 기록에서는 이를 칠포국(漆浦國)으로 기록하고 있고 나중에 신라에 편입되면서 칠토현(漆吐縣)으로 적고 있다. 경덕왕 때에 칠제현(漆堤縣)이라 했는데 접도의 '塗', 칠토의 '吐'는 칠제에서 보듯 "둑", 제방의 뜻을 가진다고 본다.[1]

3. 역사

칠원은 삼한 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여러 국가와 시대를 거치며 그 이름과 행정 구역이 변천해왔다.

삼한 시대에는 변진접도국, 가야 시대에는 칠포국, 가야 후기에는 구례모라(혹은 구례산수) 등으로 불렸다. 신라는 구례모라를 칠토현, 칠제현 등으로 개칭했고, 고려 시대에는 칠원현이라는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감무가 현감으로 변경되고, 임진왜란의 영향으로 창원도호부에 잠시 편입되었다가 복구되기도 했다. 1895년에는 23부제 시행으로 진주부 칠원군이 되었다가 1896년 13도제 환원으로 경상남도에 속하게 되었고, 1908년 행정구역 통합으로 함안군에 합병되어 함안군 칠원면, 칠북면, 칠서면창원부 구산면으로 편제되었다.[2]

3. 1. 삼한 및 가야 시대

삼한 시대에는 변진접도국이 위치해 있었다. 가야 시대에는 '''칠포국'''(漆浦國)으로 불렸으며, 2세기 후반~3세기포상팔국 중 하나로 가라국, 신라를 공격하기도 했다. 가야 후기에는 '''구례모라'''(久禮牟羅) 또는 구례산수(久禮山戍)라 불렸고, 아마도 창원의 탁순국 영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2]

3. 2. 신라 시대

531년 백제가 가야 지역을 세력권 아래 넣기 위해 구례모라(久禮牟羅)까지 진주하였다. 이에 탁순국이 신라에 투항했고, 이사부 휘하의 신라군은 구례모라의 백제군을 패퇴시키고 칠원 일대까지 점령했다.[2] 신라는 구례모라를 영토화하고 '''칠토현'''(漆吐縣)이라 하였다. 757년(경덕왕 16년) '''칠제현'''(漆堤縣)으로 개칭하고, 옛 탁순국이었던 의창군의 영현이 되었다.

3. 3. 고려 시대

고려 시대에는 지금의 이름인 칠원현(漆原縣)이 되었다.[2] 1018년(고려 현종 9년) 의안군 및 구 의안군 내 속현이 일괄 금주(金州)의 속군으로 편입되었다.[2] 1391년(공양왕 3년) 감무를 설치하고 독립했으며, 구산현(龜山縣)이 편입되었다. 이로써 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지역은 1906년까지 칠원의 월경지였다.[2]

3. 4. 조선 시대

1413년(조선 태종 13년) 감무가 현감으로 변경되었다.[2] 1601년 임진왜란의 후유증으로 인구 및 읍세가 격감되어 창원도호부에 편입되었다.[2] 1617년(광해군 9년) 현이 복구되었다.[2] 1759년(영조 35년) 당시 칠원현의 인구는 2,567호, 10,953명이었다.[2]

3. 5. 대한제국 및 일제강점기

1895년 23부제 시행으로 진주부 '''칠원군'''이 되었다.[2] 1896년 13도제 환원으로 경상남도에 속했다.[2] 1908년 행정구역 통합으로 함안군에 합병되었다.[2] 이때 칠원군 산하 면들은 함안군 칠원면, 칠북면, 칠서면창원부 구산면으로 편제되었다.[2]

참조

[1] 웹사이트 대동여지도를 인터넷 지도처럼 볼 수 있다. http://mirror.puzzle[...] 2018-09-04
[2] 서적 일본서기 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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