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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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세기는 서기 101년부터 200년까지의 기간으로, 로마 제국, 후한, 한반도 등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로마 제국은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시대에 트라야누스 황제 치세 동안 최대 영토를 확장했으나, 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동방 속주를 포기하고 하드리아누스 장벽 등을 건설했다. 후한은 황건의 난으로 쇠퇴기에 접어들어 삼국 시대의 시작을 알렸으며, 채륜의 제지법 개량, 장형의 천구의 발명 등의 기술적 발전도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마한, 변한, 진한이 존재했고, 주요 인물로는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후한의 채륜, 장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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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세기 - 후한말
후한말은 184년 황건적의 난부터 220년 헌제 양위까지 후한 왕조 권위가 붕괴된 혼란기로, 군벌 할거, 중앙 조정 약화, 조조의 세력 확장, 유비와 손권의 기반 다지기 등 삼국시대의 기틀이 마련된 시기이다. - 날짜 - 12세기
12세기는 서기 1101년부터 1200년까지의 기간으로, 유럽, 아시아, 중동 등지에서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으며, 잉글랜드의 알턴 조약 체결, 십자군 전쟁, 12세기 르네상스, 북송과 남송의 교체, 가마쿠라 막부 성립 등의 주요 사건이 발생했다. - 날짜 - 14세기
14세기는 유럽과 아시아의 정치적, 사회적 변동, 즉 흑사병의 유행, 백년 전쟁, 명나라와 조선의 건국, 티무르 제국의 부상, 일본의 남북조 시대 등의 주요 사건들을 포함하며, 몽골 제국의 쇠퇴와 함께 새로운 지역 강국들이 등장하여 유라시아 대륙의 정치 지형을 재편하고 흑사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겪은 시기이다.
2. 주요 사건
2세기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사건들이 있었다.
- 한반도에서는 마한이 54개국, 변한과 진한이 각각 12개국으로 나뉘어 있었다.[1] 신라에서는 134년 일성이사금이, 154년 아달라이사금이 즉위하였다.[4][5]
- 중국에서는 184년 황건의 난이 일어나 후한이 멸망하기 시작했고, 결국 삼국시대가 시작되었다.
- 로마 제국에서는 5현제 시대가 이어졌고, 여러 전쟁과 건축 사업이 진행되었다.
- 기타 지역에서는 티칼이 세워졌고,[2] 악숨 왕국이 등장했다. 132년 중국 연대기에 자바와 중국 간의 외교 관계가 기록되었으며, 192년에는 일남군의 구련이 봉기하여 임읍을 건국하였다.
2. 1. 로마 제국
96년부터 180년까지 로마는 5현제 시대였다. 5현제는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말한다.[1]101년 – 102년, 105년 – 106년에는 다키아 전쟁이 있었다. 두 차례의 전쟁 후, 다키아는 로마 속주로 병합되었다.[3]
114년 – 116년에는 파르티아와 전쟁을 벌여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를 일시적으로 로마 제국에 병합했다.[4]
115년 – 117년에는 키토스 전쟁이 있었다. 이 전쟁은 유대-로마 전쟁의 일부였다.
122년 – 132년에는 현재 영국 북부에 하드리아누스 장벽을 건설했다.
132년 – 135년에는 로마에 대한 바르 코크바의 난이 있었다.
142년 – 154년에는 현재의 스코틀랜드 중부에 안토니누스 장벽을 건설했다.
144년에는 마르키온이 마르키온파를 창시했으나, 로마 교회는 이를 배척했다.
161년 – 166년에는 161년-166년 로마-파르티아 전쟁이 있었다.
165년 – 180년에는 로마에 안토니누스 역병이 발생했다.
166년 – 180년에는 마르코만니 전쟁이 있었다.
180년 – 192년에는 코모두스가 로마 황제로 통치했다.
193년은 로마의 5황제의 해였다. 페르티낙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황제 자리를 두고 다퉜다.
193년 – 211년에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로마 황제로 통치했다.

2. 2. 후한
184년에 황건의 난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후한은 멸망하기 시작했고, 결국 중국은 삼국시대가 시작되었다.[1] 184년에서 205년까지, 중국 한나라에서 황건적의 난이 발생했다.[2] 184년에서 189년까지는 중국 북서부에서 량주 반란이 있었다.[3] 189년부터 220년까지는 한나라의 멸망 시기였다.[4]190년에서 191년 사이, 중국 전역의 군벌들이 동탁 토벌을 시작했다.[5]
- 101년 - 파르티아 왕 파코루스 2세가 후한에 사신을 파견했다.
- 105년 - 후한의 채륜이 제지법을 개량했다.
- 107년 - 왜 왕 수승 등이 후한 안제에게 생구 160명을 헌상했다.(후한·영초 원년, 정미; 『후한서』 안제기, 동이전). 이 무렵, 왜는 고조선의 변한·진한의 철을 활발히 수입했다(『삼국지』 위서 한전).
- 121년 - 후한에서 등태후(鄧太后)가 죽자, 안제가 등씨(鄧氏) 일족인 등철(鄧騭) 등을 소탕하고, 채륜(蔡倫)도 연좌되었다.
- 125년 - 후한에서 소제 의가 죽자, 손정(孫程) 등이 염현(閻顯) 등 염씨(閻氏) 일족을 소탕하고, 순제를 옹립했다.
- 126년 - 서역장사 반용(班勇)이 북흉노의 호연왕(呼衍王)을 격파했다.
- 132년 - 후한의 장형이 세계 최고(最古)의 지진계인 지동의를 발명했다.
- 146년 - 후한의 질제가 양기에 의해 독살되었다.
- 148년 - 파르티아 출신의 불교 승려 안세고가 후한의 낙양을 방문했다.
- 159년 - 후한의 환제(桓帝)의 명령으로 외척 양기(梁冀)가 주살되었다. 환제는 공로자인 환관 단초(單超) 등을 후(侯)에 봉하고 이후 외척을 대신하여 환관의 세력이 확대되었다.
- 166년 - 후한에서 제1차 당고의 금(黨錮の禁)이 일어나 환관들이 이영(李膺) 등 청류파 관료들을 탄압했다. 일남군(日南郡)(후한)에 대진왕(大秦王) 안둔(安敦)(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의 사자가 도착했다.
- 169년 - 후한에서 제2차 당고의 금이 일어났다.
- 175년 - 낙양 태학 문밖에 유학 칠경의 석경인 「희평석경」의 설치가 시작되다( - 183년)
- 178년 - 189년 - 낙양에서 월지 출신의 지루가참에 의한 최초의 대승 경전 한역이 이루어졌다.
- 184년 - 후한(後漢)에서 황건의 난(黄巾の乱)이 일어났다. 왜국이 혼란스러워 서로 공격하고 싸우며(왜국대란), 오랫동안 맹주가 없었다고 전한다 (『위지왜인전(魏志倭人伝)』). 이후, 히미코(卑弥呼)가 추대되어 왕(王)이 된다 (『위지왜인전(魏志倭人伝)』). 나라현(奈良県) 천리시(天理市)의 도다이지야마 고분(東大寺山古墳)에서 "중평□년(中平□年)"(중평(中平)은 184년 - 189년)의 기년명(紀年銘)을 가진 대도(大刀)가 출토되었다.
- 188년 - 후한(後漢)의 영제(靈帝)가 서원팔교위(西園八校尉) 설치 등 군제 개혁을 실시했다.
- 189년 - 후한(後漢)에서 영제(靈帝)가 사망하고, 소제(少帝)가 즉위했다. 하진(何進)과 원소(袁紹) 등의 환관 숙청 혼란으로, 동탁(董卓)이 소제(少帝)를 폐하고 헌제(獻帝)를 옹립했다.
- 191년 - 양인의 싸움에서 반동탁연합군이 동탁에게 승리하고, 동탁은 낙양에서 장안으로 천도하였다.
- 192년 - 동탁이 왕윤과 결탁한 여포에게 살해당했다. 동탁의 부하였던 곽사와 이각 등이 장안을 탈취하고 왕윤을 살해했다. 후한의 지배하에 있던 일남군의 구련이 봉기하여 독립하여 임읍( 참파 왕국)을 건국했다.
- 196년 - 후한의 헌제가 낙양으로 귀환하고, 더 나아가 조조의 보호를 받아 허로 천도했다. 조조가 한호와 조지의 제언에 따라 둔전제를 도입했다.
- 鄧騭(등질)(? - 121년) - 후한의 정치가. 여동생은 鄧太后(등태후)(화제 황후)이며, 鄧太后의 죽음과 함께 안제의 친정으로 인해 일족이 멸망하였다.
- 채륜(채륜)(50년? - 121년?) - 후한의 환관. 기존의 제지법을 개량하여 만든 "채후지(蔡侯紙)"를 화제에게 바쳤다.
- 양진(양진)(52년 - 124년) - 후한의 정치가. "관서의 공자"로 불렸으며, 간언이 외면당하고 참언으로 인해 자결하였다. 홍농양씨(弘農楊氏) "사세삼공(四世三公)"의 시조이다.
- 손정(손정)(? - 132년) - 후한의 환관. 소제의 뒤를 이을 사람으로 제음왕(濟陰王)을 순제로 추대하고 閻顯(엄현) 등 외척들을 숙청하였다.
- 허신(허신)(58년? - 147년?) - 후한의 유학자이자 문자학자. 최초의 한자 사전인 『설문해자』의 저자이다.
- 장형(장형)(78년 - 139년) - 후한의 정치가, 천문학자, 수학자, 지리학자. 혼천의와 지동의를 발명하였다.
- 마융(마융)(79년 - 166년) - 후한의 학자이자 정치가. 훈고학의 입장에서 경서에 주석을 달았다. 정현은 그의 제자이다.
- 조등(조등)(100년 - 159년) - 후한의 환관. 대장추를 역임하며 순제부터 질제까지 궁중을 지배하였다. 조조의 의리상의 조부이다.
- 양기(양기)(? - 159년) - 후한의 정치가. 순제부터 환제까지 외척으로서 정치를 장악하며 "발호장군(跋扈將軍)"이라 불렸다.
- 안세고(안세고)(생몰년 미상) - 후한에 서역에서 온 역경승. 파르티아의 왕자라고 전해지며 여러 나라를 유랑한 후 낙양에 왔다.
- 두무(두무)(? - 168년) - 후한의 정치가. 환제의 외척으로서 청류파의 진번 등과 함께 환관의 숙청을 모의하였으나 실패하였다(건녕의 정변).
- 이응(이응)(? - 169년) - 후한의 관료이자 장군. 환관의 전권에 대항하여 명성을 얻었으나 당고의 금(黨錮之禁)으로 처형되었다.
- 왕부(왕부)(83년 - 170년) - 후한의 문인. 관직에는 오르지 못하고 은거하며 『잠부론(潛夫論)』을 저술하여 시세를 비판하였다.
- 정현(정현)(127년 - 200년) - 후한 말의 학자이자 관리. 마융의 제자이며, 당고의 금 이후에는 저술에 전념하였다.
- 魏伯陽(위백양)(생몰년 미상) - 후한 말의 도사. 가장 오래된 연단술 저서인 『주역참동계』를 저술하였다.
- 장각(장각)(? - 184년) - 후한 말의 종교가. 태평도의 교주이며, 황건의 난을 일으켜 후한을 뒤흔들었다.
- 장릉(장릉)(생몰년 미상) - 후한 말의 종교가. 오두미도(천사도)의 교주이며, 현재까지 남아있는 정일교의 시조이다.
- 황포숭(황포숭)(? - 195년) - 후한 말의 장군. 황건의 난을 진압하였으며, 동탁과 대립하였으나 굴복하였다.
- 채옹(채옹)(132년/133년 - 192년) - 후한 말의 정치가, 유학자, 서예가. 희평석경의 필사로 알려져 있다.
- 하진(하진)(? - 189년) - 후한 말의 정치가. 영제의 외척으로 환관의 숙청을 모의하고 지방의 장군들에게 상락(上洛)을 명령하였으나 살해되었다.
- 장양(장양)(135년? - 189년) - 후한 말의 환관. 십상시로서 조충 등과 함께 궁정에서 권력을 잡았으나 원소에 의해 숙청되었다.
- 동탁(동탁)(139년? - 192년) - 후한 말의 무장이자 정치가.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추대하여 장안으로 천도하는 등 전권을 행사하였다.
- 여포(여포)(? - 198년) - 후한 말의 무장. 군웅 중 한 명으로, 동탁에게 중용되어 양자로 삼아졌다. 후에 동탁을 배신하고 암살하였다.
- 왕윤(왕윤)(137년 - 192년) - 후한 말의 정치가. 여포와 공모하여 동탁을 살해하였으나, 동탁의 부하에게 살해되었다.
- 화타(화타)(? - 208년) - 후한 말의 의사. 약학과 침구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조조를 섬겼다.
- 장중경(장중경)(150년? - 219년) - 후한 말의 관료이자 의사. 『상한론』과 『금궤요략방론』을 저술하였다.
- 원소(원소)(154년? - 202년) - 후한 말의 무장이자 정치가. 궁정의 환관 세력을 섬멸하였으나, 관도의 전투에서 조조에게 패배하였다.
- 조조(조조)(155년 - 220년) - 후한 말의 호족. 헌제를 추대하여 승상이 되고 위의 기초를 닦았다(시호는 무제).
2. 3. 한반도
2. 4. 기타 지역
- 마한은 54개국, 변한은 12개국, 진한은 12개국으로 나뉜다.[1]
- 티칼이 세워졌다.[2]
- 2세기 초
- * 일본에서 석기가 소멸하고 철기가 보급되었다(야요이 시대 후기).[3]
- * 페루에서 나스카 문화가 발생하였다.[4]
- * 멕시코에서 테오티우아칸 도시 설계가 이루어졌다.[5]
- ** 달의 피라미드, 태양의 피라미드, 죽은 자의 길이 건설되었다.
- *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 있는 고대 로마식 등대인 「헤라클레스의 탑」이 건설되었다(21세기 현재에도 사용 중인 가장 오래된 등대).
- 107년
- * 왜 왕 수이승 등이 후한 안제에게 생구 160명을 헌상하였다. (영초 원년, 정미; 『후한서』 안제기, 동이전)
- * 이 무렵, 왜는 고조선의 변한·진한의 철을 활발히 수입하였다(『삼국지』 위서 한전).
- 132년: 중국 연대기에 자바와 중국 간의 외교 관계가 기록되었다.
- 192년: 후한의 지배를 받던 일남군의 구련이 봉기하여 독립하고 임읍(참파 왕국)을 건국하였다.
- 악숨 왕국이 등장하였다.
- 수이승(帥升)(생몰년 미상) - 왜(倭)의 왕. 중국 역사서 『후한서(後漢書)』에 기록된 고유명사를 가진 가장 오래된 일본인.
- 히미코(卑弥呼)(약 170년 ~ 248년) - 야마타이코쿠(邪馬台国)의 여왕(재위 약 188년 ~ 248년). 왜국 대란 이후 여왕으로 추대되었다. (귀도(鬼道)를 섬기고, 남편이 없었으며, 동생이 정치를 보좌했다고 한다. (『위지(魏志)』 왜인전))
3. 주요 인물
3. 1. 로마 제국
- 106년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가 다키아 전쟁에서 승리하여 다키아를 설치하였다.[1] 같은 해, 나바테아 왕 라벨 2세가 사망하자 트라야누스 황제는 나바테아 왕국을 정복하고 아라비아 속주를 설치하였다.[1]
- 114년, 115년, 116년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는 파르티아 원정을 통해 각각 아르메니아,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속주를 획득하였다.
- 117년 로마 제국의 영토가 최대가 되었다. 트라야누스 황제가 키리키아 속주 세레누스에서 사망하고, 양자인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즉위하였다. 하드리아누스는 트라야누스가 획득한 동방 속주(아르메니아,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를 포기하였다.
- 121년경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제국 순행을 시작하여 125년까지 이어졌다.
- 124년 재건된 판테온이 완성되었다.
- 125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트라키아에 하드리아누폴리스를 건설하였다.
- 128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다시 제국 순행을 시작하여 134년까지 이어졌다.
- 130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총애하던 청년 안티노우스가 사망하자, 그를 기념하여 이집트 나일 강 중류에 안티노폴리스(Antinoöpolis)를 건설하였다.
- 131년경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살비우스 유리아누스에게 법전 『영구 칙령록』 편찬을 명하였다.
- 135년 로마 제국이 바르 코크바의 난을 진압하고, 예루살렘을 '아이리아 카피톨리나'로 개명, 유대인의 출입을 금지하였다(디아스포라). 포로 로마노 동쪽 끝에 로마 제국 시대 최대의 신전인 비너스와 로마 신전이 완성되었다.
- 138년 나폴리 근교 바이아이(Baiae) 별장에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사망하고,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가 즉위하였다.
- 161년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가 사망하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가 즉위하였다.
- 162년 마르코만니 전쟁(Marcomannic Wars)이 발발하여 180년까지 지속되었다.
- 164년 로마 제국군이 안토니누스 장성에서 하드리아누스 장성까지 후퇴하였다.
- 165년 안토니누스 역병(Antonine Plague)이 발생하여 180년까지 지속되었다.
- 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가 빈둔둠(Vindobona)에서 사망하고, 아들 코모두스가 즉위하여 마르코만니 전쟁을 종식시키고 도나우 강 유역을 안정시켰다.
- 192년 코모두스 황제가 암살되고, 안토니누스 왕조가 단절되었다.
- 193년 내전으로 로마에서 다섯 황제가 즉위하는 혼란(다섯 황제의 해)이 발생했다. 이 내전을 진압한 세베루스 황제가 즉위하여 세베루스 왕조를 열었다.
3. 2. 후한
101년 - 파르티아 왕 파코루스 2세가 후한에 사신을 파견한다.[1]105년 - 후한의 채륜이 제지법을 개량한다.[2]
107년 - 왜 왕 수승 등이 후한 안제에게 생구 160명을 헌상한다.[3]
121년 - 후한에서 등태후(鄧太后)가 죽자, 안제가 등씨(鄧氏) 일족인 등철(鄧騭) 등을 소탕하고, 채륜(蔡倫)도 연좌되었다.[4]
125년 - 후한에서 소제 의가 죽자, 손정(孫程) 등이 염현(閻顯) 등 염씨(閻氏) 일족을 소탕하고, 순제를 옹립함.[5]
132년 - 후한의 장형이 세계 최고(最古)의 지진계인 지동의를 발명하다.
146년 - 후한의 질제가 양기에 의해 독살되다.
148년 - 파르티아 출신의 불교 승려 안세고가 후한의 낙양을 방문하다.
156년 - 선비의 단석괴가 북흉노를 격파하고 몽골 고원을 통일한다.
159년 - 후한의 환제(桓帝)의 명령으로 외척 양기(梁冀)가 주살된다. 환관 단초(單超) 등을 후(侯)에 봉하고 이후 외척을 대신하여 환관의 세력이 확대된다.
166년 - 후한에서 제1차 당고의 금(黨錮の禁)이 일어나 환관들이 이영(李膺) 등 청류파 관료들을 탄압하다. 일남군(日南郡)(후한)에 대진왕(大秦王) 안둔(安敦)(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의 사자가 도착하다.
169년 - 후한에서 제2차 당고의 금이 일어나다.
175년 - 낙양 태학 문밖에 유학 칠경의 석경인 「희평석경」의 설치가 시작되다( - 183년)
178년 - 189년 - 낙양에서 월지 출신의 지루가참에 의한 최초의 대승 경전 한역이 이루어지다.
184년 - 후한(後漢)에서 황건의 난(黄巾の乱)이 일어나다.
184년경 - 왜국이 혼란스러워 서로 공격하고 싸우며(왜국대란), 오랫동안 맹주가 없었다고 전한다 (『위지왜인전(魏志倭人伝)』). 이후, 히미코(卑弥呼)가 추대되어 왕(王)이 된다 (『위지왜인전(魏志倭人伝)』). 나라현(奈良県) 천리시(天理市)의 도다이지야마 고분(東大寺山古墳)에서 "중평□년(中平□年)"(중평(中平)은 184년 - 189년)의 기년명(紀年銘)을 가진 대도(大刀)가 출토되었다.
188년 - 후한(後漢)의 영제(靈帝)가 서원팔교위(西園八校尉) 설치 등 군제 개혁을 실시한다.
189년 - 후한(後漢)에서 영제(靈帝)가 사망하고, 소제(少帝)가 즉위. 하진(何進)과 원소(袁紹) 등의 환관 숙청 혼란으로, 동탁(董卓)이 소제(少帝)를 폐하고 헌제(獻帝)를 옹립한다.
191년 - 양인의 싸움에서 반동탁연합군이 동탁에게 승리하고, 동탁은 낙양에서 장안으로 천도하였다.
192년 - 동탁이 왕윤과 결탁한 여포에게 살해당하다. 동탁의 부하였던 곽사와 이각 등이 장안을 탈취하고 왕윤을 살해하다. 후한의 지배하에 있던 일남군의 구련이 봉기하여 독립하여 임읍( 참파 왕국)을 건국하다.
196년 - 후한의 헌제가 낙양으로 귀환하고, 더 나아가 조조의 보호를 받아 허로 천도하다. 조조가 한호와 조지의 제언에 따라 둔전제를 도입하다.
3. 3. 한반도
주어진 원본 소스에 한반도와 관련된 내용이 없으므로, 이 섹션은 작성할 수 없습니다.3. 4. 기타
- 101년 - 파르티아 왕 파코루스 2세가 후한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 103년 - 속주 파노니아가 상파노니아와 하파노니아로 분할되었다.
- 105년 - 후한의 채륜이 제지법을 개량하였다.
- 106년
- *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가 다키아 전쟁에서 승리하여 속주 다키아를 설치하였다.
- * 나바테아 왕 라벨 2세 사후, 트라야누스 황제가 나바테아 왕국을 정복하여 속주 아라비아를 설치하였다.
- 106년경 - 가우타미푸트라 사타카르니 왕이 즉위하여 사타바하나 왕조가 최성기를 맞이하였다.
- 107년
- * 서역도호가 폐지되었다.
- * 왜 왕 수승 등이 후한 안제에게 생구 160명을 헌상하였다.[1]
- * 이 무렵, 왜는 고조선의 변한·진한의 철을 활발히 수입하였다.[2]
- 112년 - 118년 - 세고비아 수도교가 건설되었다.
- 113년 - 트라야누스 포룸에 트라야누스 기념주가 건설되었다.
- 114년 -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원정( - 117년). 아르메니아 속주를 획득하였다.
- 114년경 - 로마 제국의 속주 아시아의 수도 에페소스에 켈수스 도서관이 건립되었다 ( - 117년경).
- 115년 -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가 메소포타미아 속주를 획득하였다.
- 116년 -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가 아시리아 속주를 획득하였다.
- 117년 - 이 무렵까지 로마 제국의 영토가 최대가 되었다.
- * 키리키아 속주 세레누스에서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가 사망하였다.
- * 양자인 하드리아누스 황제(트라야누스 황제의 사촌의 아들)가 즉위하였다.
- * 전 황제가 획득한 동방 속주(아르메니아,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를 포기하였다.
- 118년
- * 하드리아누스 황제 측근에 의한 4집정관 사건이 있었다.
- * 티볼리의 비야 아드리아나가 착공되었다.
- 130년 -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총애하던 청년 안티노우스가 사망하였다.
- * 하드리아누스는 그를 기념하여 이집트 나일 강 중류 지역에 안티노폴리스를 건설하였다.
- 130년경 - 인도의 쿠샨 제국에서 카니슈카 왕이 즉위하였다( ~ 170년경).
- * 카니슈카 왕의 통치 기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최근 발견된 「랍바탁 비문」에 의해 계보가 확정되었다.
- * 카니슈카 왕 즉위와 거의 동시기에 제작된 것이 「카니슈카 왕의 사리기」(페샤와르 박물관 소장)이다.
- 131년경
- * 인도의 마투라에서 「카니슈카 왕 재위 4년」이라는 명문이 있는 「킴벨의 보살좌상」(킴벨 미술관 소장)이 만들어졌다.
- *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살비우스 유리아누스에게 명하여 법전 『영구 칙령록』을 편찬하게 하였다.
- 132년
- * 아테네에 하드리아누스 도서관이 세워졌다.
- * 후한의 장형이 세계 최고(最古)의 지진계인 지동의를 발명하였다.
- 135년
- * 로마 제국이 유대인의 봉기를 진압하였다(바르 코크바의 난).
- ** 예루살렘은 「아이리아 카피톨리나」로 이름이 바뀌고, 유대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디아스포라).
- * 포로 로마노 동쪽 끝에 로마 제국 시대 최대의 신전인 비너스와 로마 신전이 완성되었다.
- 138년 - 나폴리 근교의 바이아이(Baiae) 별장에서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사망하였다.
- * 후계자인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가 즉위하였다.
- 139년 - 하드리아누스의 영묘(현 산탄젤로 성)가 완성되었다(135년 - ).
4. 발명, 발견, 과학사
- 105년: 후한의 환관 채륜이 종이를 발명했다.[1]
- 125년: 중국의 장형이 세계 최초의 수력 혼천의를 발명했다.
- 132년: 중국의 장형이 지진의 방위를 감지하는 최초의 지진계를 발명했다.
- 프톨레마이오스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별들의 목록을 편찬했다. 그는 또한 서구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세 권의 책을 편찬하였다.
- * 알마게스트는 중동 천문학을 포함한 서구 천문학의 기초가 되어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와 요하네스 케플러 시대까지 사용되었다.
- * 점성술 논문 테트라비블로스.
- * 지리학.
- 힌두-아라비아 숫자: 기원후 1세기에서 6세기 사이 인도 아대륙에서 개발되었다.
- 카드기: 카딩에 활 모양의 도구를 사용한 가장 초기의 증거는 인도에서 나온다.
참조
[1]
웹사이트
Five Good Emperors {{!}} Summary, Accomplishments, History, & Facts
https://www.britanni[...]
2019-07-18
[2]
웹사이트
Kallanai Dam (Grand Anicut) - TheCivilEngineer.org
https://www.thecivil[...]
2019-07-18
[3]
웹사이트
Trajan's Amazing Column
https://www.national[...]
2019-07-18
[4]
논문
Trajan's Parthian War and the Fourth-Century Perspective
1990
[5]
웹사이트
Aksum {{!}} ancient kingdom, Africa
https://www.britanni[...]
201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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