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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트 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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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쿠르트 뵈스는 오스트리아의 지휘자이다. 1914년 린츠에서 태어나 빈 음악 아카데미에서 작곡, 바이올린, 음악학을 공부했으며, 펠릭스 바인가르트너에게 지휘를 배웠다. 1938년부터 빈 음악 아카데미 교수로 재직했고, 1946년 빈 톤퀸스틀러 관현악단의 수석 지휘자가 되었다. 1951년부터 1954년까지 NHK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를 역임하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정 교향곡 등을 일본 초연했고, 1976년에는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의 한국 초연을 지휘했다. 1987년 드레스덴 필하모니 관현악단과의 브루크너 교향곡 2번 리허설 중 심근 경색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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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트 뵈스
기본 정보
이름쿠르트 뵈스
원어 이름Kurt Wöss
출생지린츠
직업지휘자, 음악학자
장르클래식 음악
학력빈 국립 음악 대학

2. 생애

쿠르트 뵈스는 1914년 린츠에서 태어나 빈 대학교와 빈 음악 아카데미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펠릭스 바인가르트너에게 지휘를 배웠으며, 1938년 빈 음악 아카데미 교수가 되기 위해 나치에 가입했다.[1]

1946년 빈 통퀸스틀러 관현악단의 수석 지휘자가 되었고, 1951년부터 1954년까지 NHK 교향악단 수석 지휘자를 맡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정 교향곡 등을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이후 빈 통퀸스틀러 관현악단에 복귀했고, 멜버른 교향악단과 린츠 브루크너 관현악단 수석 지휘자를 역임했다.

1976년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한국 초연했으며, 1987년 서울 시립 교향악단과 브루크너교향곡 8번을 지휘했다.[1][2] 1987년 드레스덴 필하모니 관현악단과 브루크너 교향곡 리허설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2. 1. 초기 생애

1914년 린츠에서 태어났다. 차일렌(Zeillernde)에서 자란 후 그라츠김나지움을 다녔다. 1938년까지 빈 국립 음악원에서 막스 슈프링어(Max Springerde)와 요제프 마르크스에게 작곡을 배웠고, 개인 교습으로 펠릭스 바인가르트너에게 지휘를 배웠다. 직후 빈 대학교에서 로베르트 하스, 에곤 벨레스 등에게 음악학을 배웠다.

2. 2. 경력

1914년 린츠에서 태어났다. 빈 음악 아카데미에서 요제프 막스에게 작곡, 에른스트 모라베츠에게 바이올린을 배웠고, 빈 대학교에서 로베르트 하스, 에곤 벨레스에게 음악학을 공부했다. 그라츠 음악원에서는 펠릭스 바인가르트너에게 지휘를 배웠다.[1] 1938년부터 빈 음악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고, 이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 나치에 가입했다.[1]

1946년, 빈 통퀸스틀러 관현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취임했다. 1951년부터 1954년까지 NHK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를 맡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정 교향곡 등 일본 초연을 했다.[1] 그 후 빈 통퀸스틀러 관현악단에 복귀하는 한편 멜버른 교향악단과 린츠 브루크너 관현악단의 수석 지휘자가 되었다.[1]

1976년 10월 내한해서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의 한국 초연을 했다.[1] 1987년 10월 서울 시립 교향악단과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지휘했다.[2]

뵈스는 NHK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시절, 빈 왈츠 연주로 호평을 받았다. 1952년 1월 특별 연주회에서 빈 왈츠 프로그램이 대호평을 받은 이후, 퇴임까지 연주회나 방송에서 여러 번 연주되었다. 만년에는 빈 요한 슈트라우스 관현악단과 두 차례 내한 공연을 했다.

1952년 5월, 헬렌 트라우벨과 "바그너의 밤"을 개최했고, 7월에는 게르하르트 휘슈와 연주회를 가졌다. 1953년에는 발터 기제킹, 마리안 앤더슨, 아이작 스턴 등과 협연했다.[1] 1953년 5월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 전곡 연주회에서는 오가 노리오와 협연했다.[1]

1983년 도쿄 필하모니 교향악단에 객원 출연하여 브람스 교향곡 2번을 지휘했다. 1985년 빈 요한 슈트라우스 관현악단을 이끌고 방일했고, 같은 해 가을 빈 통퀸스틀러 관현악단 방일 공연에도 동행했다. 1986년에도 방일했다.

1987년 드레스덴 필하모니 관현악단브루크너교향곡 8번 리허설 중 심근 경색을 일으켜 드레스덴에서 사망했다.[2]

2. 3. 한국과의 인연

쿠르트 뵈스는 1976년 10월 내한하여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의 한국 초연을 지휘했다.[1] 1987년 10월에는 서울 시립 교향악단과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지휘했다.[2]

1972년 9월 29일 국립 교향악단을 지휘하기 위해 방한한 뵈스는 빈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행자들에게 독일어로 모차르트 동상의 위치를 질문받았고, 한국말로 "부탁합니까"라고 답하자 여행자들이 깜짝 놀랐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뵈스는 그들을 직접 모차르트 동상으로 안내하고 집으로 초대까지 했다고 한다.[3]

2. 4. 사망

1987년 10월 서울 시립 교향악단과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지휘하고[2] 두 달이 못 되어, 드레스덴 필하모니 관현악단과의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 리허설 중에 심근경색을 일으켜 드레스덴에서 사망했다.[1]

3. 주요 협연 및 활동

뵈스는 독일-오스트리아 계열의 악곡을 레퍼토리로 삼았는데, 그 중에서도 빈 왈츠 연주가 청중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1952년 1월 특별 연주회에서 빈 왈츠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선보여 큰 호평을 받은 후, 퇴임할 때까지 연주회나 방송에서 여러 차례 연주했다. 만년에는 빈 요한 슈트라우스 관현악단과 두 차례 내한하여 왕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빈에서 객원 연주자 4명(Vn: 파울 클링, Cl: 롤프 아이힐러, ob: 위르크 셰프트라인, hrp: 요제프 몰나르)을 초청하여 NHK 교향악단(N響)의 앙상블 개선을 도모했다. 이들은 앙상블의 주축이자 솔리스트로도 출연하여 악단의 수준 향상에 기여했다. 이 중 몰나르는 일본에 남아 일본 하프 연주자 육성에 크게 공헌했다(주요 제자로 다케마츠 마이 외).[1]

NHK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로 재직하던 시절, 전후 혼란이 끝나고 외국 음악가들이 일본을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뵈스 & NHK 교향악단도 여러 음악가들과 협연할 기회를 가졌다. 1952년 5월에는 전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바그너 소프라노로 활약한 헬렌 트라우벨과 "바그너의 밤"을 개최했고, 같은 해 7월에는 바리톤 게르하르트 휘슈와 연주회를 가졌다. 1953년에는 발터 기제킹(3월 제345회 정기 연주회 등), 마리안 앤더슨(5월), 아이작 스턴(9월 제349회 정기 연주회)과 협연했다.[1]

외국 음악가 외에도, 일본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레오니트 크로이처나 일본인 성악가들과도 협연했다. 1953년 5월 제347회 정기 연주회(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 전곡)에서는 오가 노리오와 협연했는데, 그는 훗날 소니 회장이 된다. 이 연주회에서는 하프 연주자 몰나르도 베이스 가수로 출연했다.[1]

NHK 교향악단 외 활동으로는 아쿠타가와 야스시에게 현악 삼악장 "트립티크" 작곡을 의뢰하여 1953년 뉴욕 필하모닉 연주회에서 초연하게 한 것을 들 수 있다.[1]

4. 음반 및 영상

NHK 교향악단을 지휘한 뉴스 영상(음성 없음)이 있다.

레코딩은 NHK 교향악단과 협연한 것으로는 크로이처, 트라우벨, 기제킹과의 협연 라이브 녹음이 있다(크로이처와의 라이브 녹음은 크로이처의 마지막 녹음이기도 하다. 기제킹과의 라이브 녹음은 사적 음반). 해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음반으로는 젊은 시절의 이브리 기틀리스와 협연한 니콜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1950년)과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 초고판(세계 초연 녹음), 마찬가지로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1984년, 뷔르템베르크 국립 관현악단), 미셸 오클레르의 반주를 맡은 레코드가 있다.

또한 2007년 현재, 유니버설 뮤직에서 발매하고 있는 "어디선가 들은 클래식 2/애절한 멜로디" 안에, 파블로 데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을 지휘한 것이 있으며, 인터넷 배포도 가능하다.

5. 수상 및 영예


  • 교수[1]
  • 오스트리아 과학예술 훈장 1등급[1]
  • 안톤 브루크너 해석상[1]
  • 오스트리아 공화국 공로 금훈장[1]
  • 린츠 시 문화 메달[1]
  • 프란츠 슈미트 협회 명예 회원[1]

6. 일화

1972년 9월 27일, 쿠르트 뵈스는 대한민국 국립 교향악단을 지휘하기 위해 내한했다. 9월 29일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3] 비엔나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행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독일어모차르트 동상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뵈스는 한국말로 "부탁합니까"라고 답했고, 여행자들은 깜짝 놀랐다. 그는 모차르트 동상을 직접 안내해주고 그들을 집으로 초대까지 했다.

참조

[1] 뉴스 경향신문 1976-10-15
[2] 뉴스 매일경제 1987-11-09
[3] 뉴스 동아일보 197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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