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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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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리스토퍼 래시는 미국의 역사가이자 사회 비평가로, 1932년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나 1994년 사망했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아이오와 대학교, 노스웨스턴 대학교, 로체스터 대학교 등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했다. 래시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지식인들의 역할과 사회악의 근원들을 탐구했으며, 주요 저서로는 《자기애적 문화》, 《진실하고 유일한 천국》, 《엘리트의 반란》 등이 있다. 그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 특히 나르시시즘 문화, 엘리트주의, 진보주의와 여성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포퓰리즘과 공동체주의적 가치를 강조했다.

2. 생애

크리스토퍼 래시는 1932년 오마하에서 외동으로 태어나 강한 진보 성향을 띠는 정치적인 집안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 로버트 래시는 세인트 루이스 출신으로 시카고 선과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의 저명한 편집자이자 저널리스트였다.

그는 베트남 전쟁을 비판하는 사설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래시의 어머니, 조라 래시는 심리학 박사학위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사회복지사이자 선생님이었다.

래시는 어릴 적부터 미술과 문장에 관심을 보였다.

초등학교 시절에 지역 신문을 출판하거나 단편 소설을 시도하는 등에서 일찍이 글을 쓰는 직업을 고려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54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졸업한 후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에서 그의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 윌리엄 로이텐버그와 리처드 홉슈테터의 제자로써 공부하였다.

1932년 6월 1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퍼 래시는 좌파에 뿌리를 둔 세속적이고 매우 정치적인 집안에서 자랐다.[11][12] 그의 아버지 로버트 래시는 로즈 장학생 출신으로 저널리스트였으며,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동안 베트남 전쟁을 비판하는 사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10][13] 그의 어머니 조라 래시(쇼프/née Schaupp영어)는 철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사회복지사 및 교사로 일했다.[14][15][16]

래시는 일찍이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활동하여 초등학교 때 동네 신문을 발행하고, 13세에 완전한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룸펠슈틸츠킨, D 장조 오페라"를 작곡했다.[10] 이 무렵 로버트 래시는 시카고 선 타임스의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가족을 시카고 교외로 이사했다. 래시는 배링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1]

2. 1. 유년 시절과 교육

크리스토퍼 래시는 1932년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외동으로 태어났으며, 진보적인 성향의 가정에서 성장했다.[1] 그의 아버지 로버트 래시는 세인트 루이스 출신의 저명한 언론인으로, 시카고 선과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베트남 전쟁 반대 사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1] 그의 어머니 조라 래시는 철학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사회복지사이자 교사로 활동했다.[1]

어린 시절 래시는 예술과 문학에 재능을 보였다. 초등학교 때 지역 신문을 발행하고 단편 소설을 썼으며, 13세에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다.[1] 1954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존 업다이크와 기숙사를 함께 사용했다.[1] 이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윌리엄 로이텐버그와 리처드 홉슈테터의 지도를 받아 역사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17][18] 홉슈테터는 래시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래시는 홉슈테터의 저서 ''미국 정치 전통''의 후기 판 서문을 쓰고, 1973년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그에 관한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1]

2. 2. 학문 및 사회 활동

크리스토퍼 래시는 아이오와 대학교, 노스웨스턴 대학교, 로체스터 대학교 등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했다.[1] 1970년부터 1994년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로체스터 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했다.[1]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윌리엄 로이첸버그와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지도를 받아 역사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1][17][18]

1960년대에 래시는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미국 사회를 비판했으며, C. 라이트 밀스, 드와이트 맥도널드,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의 영향을 받았다.[20][21]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21]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래시는 진보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회 비판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사회 보수주의적 관점을 결합하여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분석했다.[22] 특히 전통적인 제도에 대한 깊은 의구심을 드러냈다.

래시는 저술 활동과 더불어 활발한 대중 강연과 토론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널리 알렸다. 러셀 제이코비는 "그의 세대에서 이처럼 강력하게 공론장에 나선 역사가를 찾기 힘들다"라고 평가했다.[15] 1986년에는 채널 4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및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와 토론을 벌였다.[19]

2. 3. 죽음

1992년 암 수술을 받았으나 1993년 전이성 암 진단을 받았다.[10] 그는 항암치료를 받으면 글쓰기와 가르치는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항암 화학 요법을 거부했다.[10] 래시는 "삶을 위한 삶에 대한 비겁한 집착을 혐오하며, 그것은 미국인의 기질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10] 1994년 2월 14일, 뉴욕주 피츠퍼드에 있는 자택에서 6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25]

3. 주요 사상

래시는 명망있는 미국 역사가이자 사회 비평가로서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지식인들의 역할과 사회악의 근원들을 탐구하였다.

== '나르시시즘 문화' 비판 ==

래시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지식인들의 역할과 사회악의 근원들을 탐구한 명망있는 미국 역사가이자 사회 비평가였다.[1] 그의 대표작인 《자기애적 문화: 기대가 줄어드는 시대의 미국 생활》(1979)은 현대 자본주의와 필립 라이프가 이론화한 '치료적' 사고방식이 사회와 가정생활에 침투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1]

래시는 20세기에 일어난 사회 발전(2차 세계 대전과 그 이후 소비 사회로의 변화)이 개인의 약한 자아 개념을 갖게하고, 지속적인 관계 유지에 대한 두려움, 노화에 대한 두려움, 명성과 유명인사들에 대한 끝없는 찬양으로 사회를 변화시켰다고 주장했다.[1] 즉, 나르시시즘적 성격 구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성격 유형이 직업 구조의 변화(미국의 농업 및 제조업 쇠퇴, '정보화 시대'의 등장)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발전은 필연적으로 의존성과 같은 '치료적' 감성을 생겨나게 했고, 자립심과 자주성이라는 오래된 가치를 약화시켰다.[1]

《나르시시즘 문화》는 1980년 전미 도서상을 수상했지만, 래시는 이 상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으며, 출판상이 업계의 "가장 나쁜 경향"을 반영한다고 말했다.[1]

한국 사회 역시 과도한 경쟁, 외모 지상주의, 개인주의 심화 등 나르시시즘 문화의 부정적 측면을 경험하고 있으며, 래시의 분석은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 포퓰리즘과 공동체주의 ==

래시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지식인들의 역할과 사회악의 근원들을 탐구한 미국의 역사가이자 사회 비평가였다.[28] 1980년대 래시는 현대 미국의 주요 정치 사상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진보주의와 페미니즘을 공격하여 자유주의자들을 분노하게 했다.[30]

그는 《진실하고 유일한 천국》(1991)에서 미국 중산층의 몰락과 "포퓰리즘"의 쇠퇴를 분석하고, 포퓰리즘적 전통의 복원을 주장했다.[28] 래시가 말하는 포퓰리즘은 사회 전체의 구원보다는 공동체의 자율성과 참여 민주주주의, 전통 가치 존중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그는 "미래에 대한 진정한 희망을 제시하는 어떤 운동이든, 과거의 평민 급진주의... 생산자들의 세계관에 의해 형성된 인식에서 도덕적 영감을 얻어야 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29]

래시는 진보주의보수주의의 양 극단을 비판하며, 공동체주의적 가치와 연대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당시 신우파의 자유지상주의적 요소를 비판하고 자본주의 시장이 미국 사회 전반에 침투하는 것을 혐오했다. 또한, 윌리엄 F. 버클리 주니어러셀 커크가 만들어낸 보수 이데올로기와 아미타이 에치오니로 대표되는 공동체주의에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28]

래시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초기 사상을 미국 포퓰리즘의 본보기로 칭찬했지만, 말년의 킹이 관료주의적인 해결책을 받아들였다고 비판했다.[28] 그는 성 평등 자체는 바람직한 목표이지만,[32] 여성이 기업 경제의 요구에 따라 운영되는 직업을 갖는 것은 진정한 해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33]

== 엘리트주의 비판 ==

래시는 《엘리트의 반란》(1995)에서 현대 사회의 엘리트들이 능력주의를 명분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정당화하고, 사회적 책임을 회피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엘리트들이 대중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집단을 형성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래시는 미국 사회 엘리트 계층의 도덕적 해이와 권위주의적 행태, 그리고 그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래시는 지역 단위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으며, 국제 환경에서 팽창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이기까지 하는 미국의 행태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 진보주의와 여성주의 비판 ==

래시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대 주류 미국 정치 사상의 모든 스펙트럼에 비웃음을 퍼부으며 진보주의와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자유주의자들을 분노하게 했다.[30] 그는 현대 진보주의와 여성주의 운동이 전통적인 가치와 가족 제도를 경시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을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래시는 여성의 사회 진출과 경제적 독립을 긍정하면서도, 가정과 양육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래시는 다음과 같이 썼다.

과거 여성의 업적을 존중하는 페미니스트 운동은 가사, 모성, 무보수 시민 봉사 및 이웃 봉사를 폄하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급여를 성취의 유일한 상징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 그것은 사람들이 높은 급여를 받지만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화려한 경력이 아닌, 자존심 있고 존경할 만한 소명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30]


저널리스트 수잔 팔루디는 낙태 권리 운동에 대한 그의 비판과 이혼 반대를 이유로 그를 명백한 반페미니스트라고 칭했다.[31] 그러나 래시는 로널드 레이건의 보수주의를 전통과 도덕적 책임의 정반대라고 보았다. 래시는 당시 신우파로 알려진 주의, 특히 그 플랫폼에서 가장 두드러진 자유지상주의 요인에 일반적으로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 시장이 미국 생활의 모든 측면에 침투하는 것을 혐오했다.

그는 ''최소한의 자아''(The Minimal Self)에서 "성 평등 그 자체는 여전히 매우 바람직한 목표로 남아있다 ..."라고 설명했다.[32] ''여성과 공동 생활''(Women and the Common Life)에서 래시는 여성에게 가정을 버리고 직장에서 경제적 의존 상태를 강요하는 것은, 이러한 경력이 기업 경제의 요구에 따라 운영되는 한, 전문적인 경력의 중요성을 지적하더라도 해방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했다.[33]

3. 1. '나르시시즘 문화' 비판

래시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지식인들의 역할과 사회악의 근원들을 탐구한 명망있는 미국 역사가이자 사회 비평가였다.[1] 그의 대표작인 《자기애적 문화: 기대가 줄어드는 시대의 미국 생활(The Culture of Narcissism: American Life in an Age of Diminishing Expectations)》(1979)은 현대 자본주의와 필립 라이프가 이론화한 '치료적' 사고방식이 사회와 가정생활에 침투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1]

래시는 20세기에 일어난 사회 발전(2차 세계 대전과 그 이후 소비 사회로의 변화)이 개인의 약한 자아 개념을 갖게하고, 지속적인 관계 유지에 대한 두려움, 노화에 대한 두려움, 명성과 유명인사들에 대한 끝없는 찬양으로 사회를 변화시켰다고 주장했다.[1] 즉, 나르시시즘적 성격 구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성격 유형이 직업 구조의 변화(미국의 농업 및 제조업 쇠퇴, '정보화 시대'의 등장)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발전은 필연적으로 의존성과 같은 '치료적' 감성을 생겨나게 했고, 자립심과 자주성이라는 오래된 가치를 약화시켰다.[1]

《나르시시즘 문화》는 1980년 전미 도서상을 수상했지만, 래시는 이 상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으며, 출판상이 업계의 "가장 나쁜 경향"을 반영한다고 말했다.[1]

한국 사회 역시 과도한 경쟁, 외모 지상주의, 개인주의 심화 등 나르시시즘 문화의 부정적 측면을 경험하고 있으며, 래시의 분석은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3. 2. 포퓰리즘과 공동체주의

래시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지식인들의 역할과 사회악의 근원들을 탐구한 미국의 역사가이자 사회 비평가였다.[28] 1980년대 래시는 현대 미국의 주요 정치 사상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진보주의와 페미니즘을 공격하여 자유주의자들을 분노하게 했다.[30]

그는 《진실하고 유일한 천국》(1991)에서 미국 중산층의 몰락과 "포퓰리즘"의 쇠퇴를 분석하고, 포퓰리즘적 전통의 복원을 주장했다.[28] 래시가 말하는 포퓰리즘은 사회 전체의 구원보다는 공동체의 자율성과 참여 민주주주의, 전통 가치 존중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그는 "미래에 대한 진정한 희망을 제시하는 어떤 운동이든, 과거의 평민 급진주의... 생산자들의 세계관에 의해 형성된 인식에서 도덕적 영감을 얻어야 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29]

래시는 진보주의보수주의의 양 극단을 비판하며, 공동체주의적 가치와 연대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당시 신우파의 자유지상주의적 요소를 비판하고 자본주의 시장이 미국 사회 전반에 침투하는 것을 혐오했다. 또한, 윌리엄 F. 버클리 주니어러셀 커크가 만들어낸 보수 이데올로기와 아미타이 에치오니로 대표되는 공동체주의에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28]

래시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초기 사상을 미국 포퓰리즘의 본보기로 칭찬했지만, 말년의 킹이 관료주의적인 해결책을 받아들였다고 비판했다.[28] 그는 성 평등 자체는 바람직한 목표이지만,[32] 여성이 기업 경제의 요구에 따라 운영되는 직업을 갖는 것은 진정한 해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33]

3. 3. 엘리트주의 비판

래시는 《엘리트의 반란》(1995)에서 현대 사회의 엘리트들이 능력주의를 명분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정당화하고, 사회적 책임을 회피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엘리트들이 대중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집단을 형성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래시는 미국 사회 엘리트 계층의 도덕적 해이와 권위주의적 행태, 그리고 그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래시는 지역 단위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으며, 국제 환경에서 팽창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이기까지 하는 미국의 행태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3. 4. 진보주의와 여성주의 비판

래시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대 주류 미국 정치 사상의 모든 스펙트럼에 비웃음을 퍼부으며 진보주의와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자유주의자들을 분노하게 했다.[30] 그는 현대 진보주의와 여성주의 운동이 전통적인 가치와 가족 제도를 경시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을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래시는 여성의 사회 진출과 경제적 독립을 긍정하면서도, 가정과 양육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래시는 다음과 같이 썼다.

```quote

과거 여성의 업적을 존중하는 페미니스트 운동은 가사, 모성, 무보수 시민 봉사 및 이웃 봉사를 폄하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급여를 성취의 유일한 상징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 그것은 사람들이 높은 급여를 받지만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화려한 경력이 아닌, 자존심 있고 존경할 만한 소명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30]

```

저널리스트 수잔 팔루디는 낙태 권리 운동에 대한 그의 비판과 이혼 반대를 이유로 그를 명백한 반페미니스트라고 칭했다.[31] 그러나 래시는 로널드 레이건의 보수주의를 전통과 도덕적 책임의 정반대라고 보았다. 래시는 당시 신우파로 알려진 주의, 특히 그 플랫폼에서 가장 두드러진 자유지상주의 요인에 일반적으로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 시장이 미국 생활의 모든 측면에 침투하는 것을 혐오했다.

그는 ''최소한의 자아''(The Minimal Self)에서 "성 평등 그 자체는 여전히 매우 바람직한 목표로 남아있다 ..."라고 설명했다.[32] ''여성과 공동 생활''(Women and the Common Life)에서 래시는 여성에게 가정을 버리고 직장에서 경제적 의존 상태를 강요하는 것은, 이러한 경력이 기업 경제의 요구에 따라 운영되는 한, 전문적인 경력의 중요성을 지적하더라도 해방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했다.[33]

4. 저서

래시는 다음과 같은 저서를 저술했다.


  • 1962년: ''미국 자유주의자와 러시아 혁명''(The American Liberals and the Russian Revolution).[1] 이 책에서 래시는 러시아 혁명에 대한 미국 자유주의자들의 반응을 다루면서, 당시 지식인들의 사상 분석을 중심으로 외교 정책에 대한 여론과 미국의 냉전 체제 형성의 기원을 살폈다.
  • 1965년: ''1889-1963년 미국의 신 급진주의: 사회적 유형으로서의 지식인''(The New Radicalism in America, 1889-1963: the intellectual as a social type). 래시는 이 책에서 지식인들이 관습적인 정치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삶의 방식에 대항하여 "지식인들의 별거"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 1969년: ''미국 좌파의 고뇌''(The Agony of the American Left).[1]
  • 1973년: ''국가의 세계''(The World of Nations).
  • 1977년: ''냉혹한 세상 속의 안식처: 포위된 가족''(Haven in a Heartless World: the family besieged). 래시는 이 책에서 중세부터 시작된 서유럽과 미국의 결혼 및 가족의 역사를 연구하여 가족과 관련된 문화적 맥락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 1979년: ''자기애의 문화: 기대가 줄어드는 시대의 미국 생활''(The Culture of Narcissism: American Life in an Age of Diminishing Expectations).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래시는 이 책으로 인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헤게모니가 사회 및 가족 생활에 침투한 "치료적" 사고방식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 1984년: ''최소한의 자아: 불안한 시대의 정신적 생존''(The Minimal Self: Psychic Survival in Troubled Times).
  • 1991년: ''진실하고 유일한 천국: 진보와 그 비판자''(The True and Only Heaven: Progress and Its Critics). 래시는 이 책에서 진보가 바람직하며 불가피하다는 통념에 질문을 던지며, "지구의 유한한 자원은 산업 문명의 무한한 팽창을 지원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 1994년: ''엘리트의 반란: 그리고 민주주의의 배신''(The Revolt of the Elites: and the Betrayal of Democracy).[26] 래시는 사후 출간된 이 책에서 현대 사회의 실패를 엘리트주의와 연관시켜 비판한다.
  • 1997년: ''여성과 공동 생활: 사랑, 결혼, 그리고 페미니즘''(Women and the Common Life: Love, Marriage, and Feminism).
  • 2002년: ''평이한 문체: 글쓰기 안내서''(Plain Style: A Guide to Written English).


래시는 가족에 대한 기본적인 주장을 1965년에 처음 표현하고 평생 탐구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또한, 그는 칼 마르크스와 지그문트 프로이트로부터 이어져 오는 지적 전통을 계승하여, 가치 체계와 권력 구조를 포함한 문화의 본질을 경제 질서와 관련시키는 관점을 제공하였다.[28][29]

참조

[1] 논문 Revolution and Democracy: The Russian Revolution and the Crisis of American Liberalism, 1917–1919 Columbia University
[2] 간행물 The Historian as a Social Critic: Christopher Lasch and the Uses of History
[3] 잡지 An Oracle for Trump's America? https://www.chronicl[...] 2017-03-31
[4] 백과사전 Christopher Lasch https://biography.yo[...] Gale Research 2019-11-19
[5] 서적 Creating a Democratic Public: The Struggle for Urban Participatory Democracy During the Progressive Era 1st Edition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6] 웹사이트 National Book Awards – 1980 https://www.national[...] 2012-03-09
[7] 문서
[8] 문서
[9] 문서
[10] 서적 Hope in a Scattering Time: A Life of Christopher Lasch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1] 뉴스 Christopher Lasch 1994-02-26
[12] 간행물 Christopher Lasch and Prairie Populism https://digitalcommo[...] University of Nebraska–Lincoln 2023-05-19
[13] 웹사이트 Cold War Without End http://www.theameric[...] The American Conservative 2009-08-01
[14] 서적 Hope in a Scattering Time: A Life of Christopher Lasch https://books.google[...] Wm. B. Eerdmans 2010-04-16
[15] 간행물 Christopher Lasch (1932-1994)
[16] 간행물 On Christopher Lasch http://www.mmisi.org[...]
[17] 뉴스 Christopher Lasch Is Dead at 61; Wrote About America's Malaise https://www.nytimes.[...] 2022-08-12
[18] 서적
[19] 웹사이트
[20] 서적 The True and Only Heaven: Progress and its Critics https://archive.org/[...] Norton
[21] 서적 The True and Only Heaven: Progress and its Critics https://archive.org/[...] Norton
[22] 문서
[23] 간행물 David F. Noble, 22 July 1945 to 27 December 2010 2011-04
[24] 웹사이트
[25] 뉴스 The Radical Lasch https://www.theameri[...] 2022-08-13
[26] 서적
[27] 서적
[28] 간행물 An interview with Christopher Lasch
[29] 간행물 Liberalism and Civic Virtue
[30] 웹사이트
[31] 서적
[32] 서적
[33] 서적
[34] 간행물 Hope in a Scattering Time: A Life of Christopher Lasch. By Eric Miller. (Grand Rapids: Eerdmans, 2010. xx, 394 pp. $32.00, ISBN 978-0-8028-17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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