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바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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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바란족은 대만에 거주했던 원주민으로, "평야 사람들"을 의미하며, 현재의 이란시 지역에 정착했다. 1632년 스페인 선박의 기록을 통해 처음 등장하며, 1650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기록에도 등장한다. 1768년 한족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1796년 한족의 정착이 성공하면서 크바란족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 1878년에는 청나라와 크바란족 간의 갈등으로 가례완 사건이 발생했다. 크바란족은 농경과 어업을 주로 했으며, 독특한 의복과 정신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타이완의 이란(宜蘭) 지명은 크바란족의 명칭을 음역한 '가마란'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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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바란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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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언어별 명칭 | ckv: zh: ckv: |
인구 | 1,460명 (2018년 기준) |
거주 지역 | 타이완 |
사용 언어 | 카발란어 표준중국어 대만어 |
종교 | 애니미즘 기독교 |
관련 민족 | 다른 타이완 원주민 (특히 바사이족, 카우카우트족) |
언어 정보 | |
추가 정보 | |
언어 | 쿠바란어 국어 타이완어 |
종교 | 기독교 쿠바란족의 전통 신앙 |
2. 역사
전설에 따르면 크바란족은 바다를 통해 동쪽에서 왔으며,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풍요로운 땅에 정착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새로 도착한 크바란족은 지역 아타얄족과의 수많은 전투를 벌였고, 결국 크바란족은 아타얄족을 산으로 몰아냈다. 그들의 이름 "크바란"은 "평야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이후 "하말란"으로 바뀌었고, 결국 현대의 이란시가 되었다. 그들은 '''36개 크바란 부족'''(蛤仔難三十六社)이라고 불렸지만, 실제로는 60개 이상이었다. 과거에는 란양강 북쪽 부족은 사이-세-호안(西勢番)이라고 불렸고, 강 남쪽 부족은 탕-세-호안(東勢番)이라고 불렸다.
크바란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1632년에 스페인 선박이 태풍으로 인해 이 지역으로 표류했을 때 처음 나타났다. 더 명확한 기록은 1650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에 의해 남겨졌다. 보고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한때 카바란/Cabaránes이라는 스페인령이 있었다. 한족은 1768년에 이 지역에 정착하려 했지만, 1796년 가 최초의 마을(현재의 터청)을 건설하면서 정착이 성공했다. 결국, 더 많은 한족이 이 지역으로 유입되었고, 크바란족의 삶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1830년에서 1840년 사이에 베이푸 마을(화롄현 신청향)로 이주했다.
전설(구전)에 따르면, 대만 이외의 남쪽 섬에서 건너왔다고 하며, 모리구치 코이치의 『크바란족, 그 현재와 역사 - 대만의 한 어촌(신사)의 조사로부터 -』(『계간 인류학 8-2 1977』 고단샤 pp.184 - 207에 수록)의 고찰에 따르면, 남쪽 섬 Sinasai→란위섬→그린섬→리우시 계곡→이란 평원으로 이어졌다고 한다(같은 책 p.204).
2. 1. 전설과 기원
전설에 따르면 크바란족은 바다를 통해 동쪽에서 왔으며, 이란 평원에 정착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평야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크바란"이라 불렀으며, 이는 "하말란"을 거쳐 현대의 이란시가 되었다. 크바란족은 아타얄족과의 전투를 통해 영역을 확보했다. 크바란족은 "감자난 36사"로 불렸으나 실제로는 70개 이상의 부족이 존재했다. 란양강을 경계로 북쪽은 "서세번", 남쪽은 "동세번"으로 불렸다.크바란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1632년에 스페인 선박이 태풍으로 인해 이 지역으로 표류했을 때 처음 나타났다. 1650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이 지역에 Cabaránes이라는 스페인령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2. 2. 외부 세력과의 접촉
전설에 따르면 크바란족은 바다를 통해 동쪽에서 왔으며,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풍요로운 땅에 정착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새로 도착한 크바란족은 지역 아타얄족과의 수많은 전투를 벌였고, 결국 크바란족은 아타얄족을 산으로 몰아냈다. 그들의 이름 "크바란"은 "평야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이후 "하말란"으로 바뀌었고, 결국 현대의 이란시가 되었다. 그들은 '''36개 크바란 부족'''(蛤仔難三十六社)이라고 불렸지만, 실제로는 60개 이상이었다.크바란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1632년에 스페인 선박이 태풍으로 인해 이 지역으로 표류했을 때 처음 나타났다. 1650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는 크바란족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보고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한때 가마란/Cabaránes이라는 스페인령이 있었다.
2. 3. 한족 이주와 갈등
전설에 따르면 크바란족은 바다를 통해 동쪽에서 왔으며,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풍요로운 땅에 정착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새로 도착한 크바란족은 지역 아타얄족과의 수많은 전투를 벌였고, 결국 크바란족은 아타얄족을 산으로 몰아냈다. 그들의 이름 "크바란"은 "평야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이후 "하말란"으로 바뀌었고, 결국 현대의 이란시가 되었다. 그들은 '''36개 크바란 부족'''(蛤仔難三十六社)이라고 불렸지만, 실제로는 60개 이상이었다. 과거에는 란양강 북쪽 부족은 사이-세-호안(西勢番)이라고 불렸고, 강 남쪽 부족은 탕-세-호안(東勢番)이라고 불렸다.크바란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1632년에 스페인 선박이 태풍으로 인해 이 지역으로 표류했을 때 처음 나타났다. 더 명확한 기록은 1650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에 의해 남겨졌다. 보고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한때 카바란/Cabaránes이라는 스페인령이 있었다. 1768년, 한족인 임한생(林漢生)이 처음으로 크바란족 거주지에 들어왔으나 원주민에게 살해되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한족의 진출이 시작되었고, 1796년 오사/吳沙중국어가 최초의 마을(현재의 터청)을 건설하면서 정착이 성공했다. 결국, 더 많은 한족이 이 지역으로 유입되었고, 크바란족의 삶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1830년에서 1840년 사이에 베이푸 마을(화롄현 신청향)로 이주했다. 한족과의 동화를 거부한 크바란족의 일부는 남천을 강요받아 화롄 평원 북부로 이주하게 되었다.
2. 4. 가례완 사건 (1878)
1878년, 카발란족과 그들의 동맹인 사키자야족은 청나라 관리와의 분쟁으로 인해 지역 봉기가 일어나면서 청나라 침략자들과 치명적인 전투를 벌였다.[6] 이 사건은 타코보완 사건/加禮宛事件중국어[7] (일명 "갈리완 사건"[9] 또는 "칼리야완 전투")으로 알려져 있으며[8], 두 공동체 모두에게 재앙으로 끝났다. 많은 구성원이 학살당했고, 다른 이들은 한족 정착민에 의해 쫓겨났다.[9] 한편, 남은 사키자야족은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아미스족과 같은 다른 민족과 융합해야 했다.[10] 가례완 사건은 청나라의 강압적인 통치에 맞선 원주민들의 저항이었으나, 결과적으로 크바란족과 사키자야족 사회에 큰 상처를 남긴 비극적인 사건이다.2. 5. 현대
3. 문화
宜란 평원 시대부터 논과 소를 이용한 경작이 이루어졌다. 어업은 크바란족의 주요 생계 수단 중 하나였으며, 해안가를 중심으로 한 해양 부족의 특징을 보였다. 아미족이 산간부와 바다 중간에서 화전 경작을 한 것과 달리, 크바란족은 해안가를 거점으로 삼았다.
크바란족은 스스로를 어리석다고 평했지만, "비 올 때 쓰는 밀짚옷과 삿갓을 사용하여 크바란은 춤을 출 정도로 어리석지만, 그보다 더 어리석은 부족이 있다. 그것이 아미족이다. 왜냐하면, 이 어리석은 크바란조차 논을 만들고 소를 이용하여 경작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 아직도 화전 경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구전을 통해 아미족보다 정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여겼다.
3. 1. 농경과 어로
宜란 평원 시대부터 논과 소를 이용한 경작이 이루어졌다. 어업은 크바란족의 주요 생계 수단 중 하나였으며, 해안가를 중심으로 한 해양 부족의 특징을 보였다. 아미족이 산간부와 바다 중간에서 화전 경작을 한 것과 달리, 크바란족은 해안가를 거점으로 삼았다.크바란족은 스스로를 어리석다고 평했지만, "비 올 때 쓰는 밀짚옷과 삿갓을 사용하여 크바란은 춤을 출 정도로 어리석지만, 그보다 더 어리석은 부족이 있다. 그것이 아미족이다. 왜냐하면, 이 어리석은 크바란조차 논을 만들고 소를 이용하여 경작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 아직도 화전 경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구전을 통해 아미족보다 정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여겼다.
3. 2. 의복
크바란족 남성은 과거에 짧은 옷을 입거나 가슴과 등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족의 영향으로 면 의류가 도입되었다.[1]크바란족은 중요한 전통 공연이나 의례 행사에만 전통 의상을 착용한다.[2] 이 전통 의상은 남녀 공용이며 단순하고, 주로 검은색이나 흰색을 사용한다. 상의는 흰색 셔츠에 둥근 목, 긴 소매, 중앙에 중국식 단추가 있고 앞면에 검은색 천으로 장식되어 있다.[1] 하의는 보통 치마이며 검은색이나 흰색이다.[3] 추장, 장로, 샤먼은 검은색 바지와 검은색 셔츠를 입는다.[4]
바나나 섬유는 크바란족 의류 제작의 중요한 재료이다. 이 섬유로 삼베를 엮어 전통 의상뿐만 아니라 벨트, 짚 망토, 토트백 같은 일상 용품도 만든다.[5]
3. 3. 정신 문화
이란 시대 구전에서 크바란족은 스스로를 교활하고 어리석다고 평가했다. 화롄 시대 이후에는 아미족과 비교하며 자신들이 정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밀짚옷과 삿갓의 구전"에는 크바란족이 춤을 출 정도로 어리석지만, 아미족은 화전 경작을 하는 더 어리석은 부족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3. 4. 제례
4. 이란(宜蘭) 지명의 유래
타이완의 이란 지구는 과거 크바란족의 명칭을 타이완어 음역한 '''가마란''', '''합자난''' 혹은 '''갑자난''' 등으로 불렸다. "Kavalan"은 "평원의 사람"을 의미하며, 산악부에 거주했던 타이루코족과 구별하기 위한 호칭이었다. 스페인인이 타이완 북부를 점령했을 때 이란 지구에는 "가마란성"(Cabarán)이 설치되었다. 청나라 시대에는 "제라현"(현재의 자이)의 관할이었다가, 1723년 "창화현"으로, 1730년에는 "단수청"으로 이관되었다. 당시 청나라는 이란 지구를 명목상으로만 관할했고, 실질적인 행정권은 미치지 못하여 해적들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이후 여러 차례 행정 조직 개편을 거쳐 1810년 "가마란청"이 설치되었다. 1875년 현이 설치되면서, '가마란'의 '란(蘭)'에 '의(宜)'를 더해 이란현(宜蘭縣)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졌고, 이후 "이란"이 해당 지구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참조
[1]
논문
台灣原住民的服飾藝術研究
https://student.hlc.[...]
Fine Arts Department, Master's Program, College of Arts Chinese Culture University
2014
[2]
웹사이트
Culture
https://tour.taitung[...]
[3]
웹사이트
Kavalan
https://en.tacp.gov.[...]
[4]
논문
The Making of Ethnicity in Postwar Taiwan: a case study of Kavalan ethnic identity
https://www.research[...]
University of London
2020
[5]
간행물
Exploring Indigenous Craft Materials and Sustainable Design—A Case Study Based on Taiwan Kavalan Banana Fibre
https://doi.org/10.3[...]
Sustainability
[6]
서적
In Search of the Hunters and Their Tribes
Shung Ye Museum of Formosan Aborigines Publishing
[7]
웹사이트
Sakizaya Becomes the 13th Indigenous Group
http://taiwanjournal[...]
2007-05-05
[8]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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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203.64.79.89/[...]
2008-03-02
[9]
웹사이트
Sakizaya Geographic Distribution
http://www.apc.gov.t[...]
2008-02-28
[10]
뉴스
Taiwan Recognises 'Lost' People
http://news.bbc.co.u[...]
2007-01-19
[11]
웹사이트
原住民人口數統計資料(每月一次)
https://www.cip.gov.[...]
中華民國原住民族委員會
2022-12-16
[12]
웹사이트
Kavalan Whisky
http://www.kavalanwh[...]
202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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