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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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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는 1974년 3월 3일, 터키항공 DC-10-10 여객기가 프랑스 파리 근교 에르므농빌 숲에 추락하여 탑승자 346명 전원이 사망한 사고이다. 이스탄불을 출발해 파리를 경유, 런던으로 향하던 중, 이륙 후 화물칸 문의 설계 결함으로 인해 문이 떨어져 나가면서 급격한 감압과 기체 제어 불능 상태에 빠져 추락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화물칸 문의 설계 결함과 잠금 장치의 불량으로 밝혀졌으며, 이로 인해 DC-10 기종의 안전 문제가 제기되어 항공 안전 기준이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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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사고 개요
사고 유형화물칸 문 결함으로 인한 폭발적인 감압 및 조종 불능
발생일1974년 3월 3일
발생 위치에르메농빌 숲
퐁텐-샤알리스, 오아즈, 프랑스
항공기 종류맥도널 더글러스 DC-10-10
항공기 등록번호TC-JAV
항공기 이름'앙카라'
운영사터키항공
편명TK981/THY981
출발지예실쾨이 공항
이스탄불, 터키
경유지오를리 공항
파리, 프랑스
목적지런던 히스로 공항
런던, 영국
탑승객346명
승객335명
승무원11명
사망자346명
생존자0명
이미지
사고기의 TC-JAV. 사고 1년 전인 1973년 5월에 촬영됨.
사고기의 TC-JAV (1973년 5월 촬영)
추가 정보
IATA 코드TK981
ICAO 코드THY981
콜사인Turkish 981

2. 사고 항공기 및 승무원

1973년 여름 런던 히드로 공항을 출발하는 TC-JAV


사고 항공기는 DC-10 시리즈 10(제작 명칭 ''Ship 29'') 기종으로, 제조사 테스트 항공기 등록 번호 N1337U로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제작되었다. 1972년 12월 10일 터키 항공에 등록 번호 TC-JAV로 임대되었다.[8] 이 항공기는 3개의 제너럴 일렉트릭 CF6-6D 터보팬 엔진으로 구동되었다.

원래 이 항공기는 미쓰이가 소유한 5대의 DC-10-10 중 하나로, 일본전일본공수에 판매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일본공수는 록히드 뇌물 사건의 영향으로 록히드 L-1011 트라이스타 기종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 기체를 포함한 3대의 DC-10은 터키 항공으로, 나머지 2대는 영국의 레이커 항공으로 넘어갔다. 더글러스사는 재고가 된 기체의 처리에 곤란을 겪어 터키 항공에 파격적인 조건으로 판매한 것이었다.

사고 항공기는 6열의 일등석 좌석 12개와 9열의 이코노미석 333개를 갖추어 총 345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었다. 사고 당시 일등석에는 2명이 탑승했고, 이코노미석은 만석 상태였다. 조종실 승무원은 모두 터키 국적이었다. 981편의 기장은 네자트 베르쾨즈(44세)로 7,000시간의 비행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부기장 오랄 울루스만은 5,600시간, 항공 기관사 에르한 외제르는 2,120시간의 비행 경험을 보유하고 있었다.[9]

3. 사고 경위

981편은 현지 시각 07시 57분에 이스탄불에서 출발하여 약 4시간 비행 후, 현지 시각 오전 11시 02분에 오를리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당시 항공기에는 167명의 승객과 11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이 중 50명의 승객이 파리에서 내렸다. 파리에서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구간은 평소 예약이 많지 않았으나, 당시 영국 유럽 항공 직원들의 파업과 1974년 영국 총선의 영향으로 런던행 승객들이 981편에 몰리면서 만석에 가까웠고, 출발이 30분 지연되었다.[9]

항공기는 12시 32분에 런던 히드로 공항을 향해 이륙하여 고도 약 7010.40m까지 상승하던 중, 모 마을 상공에서 후방 좌측 화물칸 문이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급격한 감압이 발생하고 객실 바닥 일부가 파괴되면서 조종 케이블이 절단되어 항공기는 조종 불능 상태에 빠졌다.[9] 결국 화물칸 문이 떨어진 지 약 77초 후, 항공기는 프랑스 우아즈주 상리스 근교의 에르므농빌 숲에 추락했다.[9] 이 사고로 탑승자 346명 전원이 사망했다.

사고기인 TC-JAV는 원래 1972년 맥도넬 더글러스사가 일본전일본공수를 위해 제조했으나, 록히드 사건의 여파로 전일본공수가 록히드 L-1011 트라이스타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주문이 취소된 기체였다. 이후 터키항공이 이 기체를 인수하게 되었다.

이 사고는 당시까지 발생한 항공 사고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였으며,[26] 1977년 테네리페 항공 참사 발생 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항공 사고였다. 또한, 단일 항공기 사고로는 1985년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발생 전까지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했다. 현재 사고 현장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3. 1. 급감압 및 조종 불능

오를리 국제공항을 이륙한 지 약 10분 후, 항공기가 프랑스 모 마을 근처 생파튀스 상공을 지나며 고도 약 3505.20m (약 3500m)에 도달했을 때 이상 사태가 발생했다.[9] 폐쇄가 불완전했던 후방 좌측 화물칸 문이 객실 내부와 외부의 압력 차이(36kPa)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9] 이로 인해 화물칸 내부에서 급격한 감압이 발생했으며, 압력 차이로 인해 화물칸 바로 위의 객실 바닥 일부가 파괴되었다.

파괴된 바닥 부분에 부착되어 있던 6개의 승객 좌석이 탑승객과 함께 열린 화물칸 해치를 통해 기체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9] 이 6명의 승객은 모두 일본인이었으며, 이들의 시신은 추락 지점에서 남쪽으로 약 15km 떨어진 생파튀스 근처 순무밭에서 발견되었다.[9] 당시 항공 교통 관제사는 레이더에서 981편 뒤쪽으로 분리된 물체(떨어져 나간 화물칸 문으로 추정)를 잠시 포착하기도 했다.[9]

객실 바닥이 파괴되면서 바닥 아래를 지나던 주요 조종 케이블(승강타, 방향타 제어)과 예비 조종 케이블 두 세트가 모두 절단되었다. 또한 비행 기록 장치(FDR)에는 문이 떨어져 나갈 때 2번 엔진(꼬리 엔진)의 추력이 줄어든 것이 기록되어, 해당 엔진의 제어 케이블 역시 손상되었음을 시사했다.[9] 이로 인해 조종사들은 항공기의 상승/하강, 좌우 방향 전환, 꼬리 엔진 추력 조절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여 사실상 조종 불능 상태에 빠졌다.

항공기는 즉시 기수가 20도 아래로 숙여지며 급강하하기 시작했고 속도가 급격히 증가했다. 네지프 베르쾨즈 기장과 오랄 울루스만 부기장은 항공기 제어력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조종실 내의 혼란스러운 대화와 경보음이 조종실 음성 녹음 장치(CVR)에 기록되었고, 승무원 중 한 명이 마이크 버튼을 눌러 이 소리가 잠시 동안 항공 교통 관제 주파수로 송출되기도 했다. 관제사들은 왜곡된 송신 내용 속에서 조종사들의 터키어 대화와 함께 가압 경고 및 과속 경고음을 들었으며, 부조종사가 "동체가 터졌다!"(Gövde patladı!|괴브데 파틀라드!tr)라고 외치는 소리도 녹음되었다. 항공기 속도가 계속 증가하자 양력이 발생하여 기수가 잠시 들리기도 했으나, 통제 불능 상태는 계속되었다. 베르쾨즈 기장은 속도를 줄이기 위해 "속도!"라고 외치며 엔진 추력을 조절하려 했지만 이미 제어 케이블이 절단된 상태였다.

화물칸 문이 떨어져 나간 지 약 77초(다른 자료에서는 1분 17초) 후, 항공기는 시속 약 423kn(약 783km/h)의 매우 빠른 속도로 프랑스 우아즈주 상리스 근교의 에르므농빌 숲(Forêt d'Ermenonville) 내 Bosquet de Dammartin|보스케 드 다마르탱프랑스어에 추락했다.[9] 충돌 당시 항공기는 약간 왼쪽으로 기운 상태였으며,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기체는 수천 개의 파편으로 산산조각 났다. 잔해가 너무 심하게 파손되어 사고 조사 초기에는 추락 전에 다른 부품이 떨어져 나갔는지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추락 후 화재가 발생했으나, 기체 파편이 워낙 작게 흩어져 큰 화재로 번지지는 않았다.[9] 탑승자 346명 중 신원이 확인된 시신은 188구에 불과했으며, 구조대는 총 2만여 개의 신체 조각을 수습했다.[9]

에르므농빌 숲의 추락 현장

3. 2. 추락

이륙 후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향하기 위해 고도 약 7010.40m까지 상승하던 중, 이륙 약 10분 뒤 마을 상공을 지날 때 후방 좌측 화물칸 문이 갑자기 떨어져 나갔다.[9] 이로 인해 발생한 급격한 기압 차이(36kPa)는 열린 해치 바로 위의 객실 바닥 일부를 파괴시켰고, 해당 부분에 부착되어 있던 6개의 승객 좌석이 탑승객과 함께 기체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튕겨 나간 승객은 모두 일본인이었으며, 이들의 시신은 나중에 추락 지점에서 남쪽으로 약 15km 떨어진 생파튀스 근처 순무밭에서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었다.[9] 항공 교통 관제사는 당시 레이더에서 981편 뒤쪽에 잠시 두 번째 반향(떨어져 나간 화물칸 문으로 추정)을 포착했다고 보고했다.[9]

화물칸 문과 객실 바닥이 떨어져 나가면서 바닥 아래를 지나던 주요 조종 케이블과 예비 조종 케이블이 모두 절단되었다. 이로 인해 조종사들은 항공기의 승강타와 방향타를 조종할 수 없게 되었고, 2번 엔진의 추력 조절 능력도 상실했다. 비행 기록 장치에는 문이 고장 났을 때 2번 엔진의 스로틀이 닫힌 것으로 기록되었다.[9] 핵심적인 조종 능력을 상실한 항공기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기체는 즉시 기수를 20도 아래로 숙이며 급강하하기 시작했고 속도가 빠르게 증가했다. 베르쾨즈 기장과 울루스만 부기장은 필사적으로 조종간을 당기며 기체를 통제하려 애썼다. 이 과정에서 조종석의 다급한 대화와 경고음이 무선 통신을 통해 관제탑에 그대로 전달되었는데, 터키어로 된 기내 감압 및 과속 경고음과 함께 부조종사가 "동체가 터졌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녹음되었다. 항공기 속도가 증가하자 양력이 발생해 기수가 잠시 들리기도 했으나,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베르쾨즈 기장은 "속도!"라고 외치며 스로틀을 밀어 수평을 유지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9]

화물칸 문이 떨어져 나간 지 불과 77초 후, 현지 시각 오후 12시 40분경, 981편은 파리 북동쪽 약 37km 지점인 우아즈 상리스 근교의 국유림, 에르므농빌 숲 내 ''Bosquet de Dammartin|다마르탱 숲fra''에 추락했다.[9] 추락 당시 항공기는 왼쪽으로 약간 기운 채 시속 약 430kn의 매우 빠른 속도로 지면과 충돌했다.[9] 충격으로 기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났으며, 100m x 700m 넓이에 걸쳐 나무들을 쓰러뜨렸다. 잔해가 너무 심하게 파손되어 추락 전에 다른 부품이 유실되었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추락 후 화재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이미 기체가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다.[9] 탑승자 346명 전원이 사망했으며, 시신 훼손이 극심하여 188구만 신원이 확인되었고(이 중 육안 식별은 40구), 구조대는 약 20,000여 개의 시신 조각을 수습해야 했다.[9]

4. 희생자

이 사고로 승객 335명과 승무원 11명, 총 346명 전원이 사망했다.

4. 1. 국적별 승객

이스탄불에서 파리로 가는 초기 비행편에는 167명의 승객이 탑승했으며, 이 중 50명은 파리에서 내렸다. 당시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의 전신인 영국 유럽 항공(British European Airways)과 팬아메리칸 월드 항공(Pan American World Airways)의 파업으로 인해 다른 항공편 예약이 어려워지자, 많은 승객들이 터키항공(Turkish Airlines) 981편으로 몰렸다.[9] 에어 프랑스, 영국 유럽 항공, 팬 아메리칸 항공을 이용하려던 승객을 포함하여 총 216명의 새로운 승객이 파리에서 탑승했으며, 이 과정에서 출발이 예정보다 30분 지연되었다.[9]

사고기에는 총 346명(승객 335명, 승무원 11명)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포함되었다. 국적별 탑승객 수는 다음과 같다.[10][11]



탑승객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것은 영국인으로, 서퍽주 베리 세인트 에드먼즈의 아마추어 럭비 팀 선수들이 프랑스와의 5개국 선수권 대회 경기를 관람하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또한 1964년 도쿄 하계 올림픽 육상 400m 허들 및 4x400m 계주 은메달리스트인 존 쿠퍼와 영국 아말가메이티드 엔지니어링 및 일렉트리컬 유니언의 사무총장 짐 콘웨이도 영국인 희생자에 포함되었다.[13]

일본 국적자도 48명이나 탑승했는데, 이들 중 다수는 도카이 은행(16명), 토멘(15명), 미쓰이 신탁 은행(6명), 치요다 생명 보험(1명) 등 일본 기업에 입사 예정이던 내정자들이었다. 이들은 유럽 연수 여행 중 참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27][28]

대한민국 국적의 승객도 2명 포함되어 있었다.

에르메농빌 숲(Ermenonville Forest) 사고 현장에 세워진 희생자 추모비


사고 충격이 워낙 커서 희생자들의 유해는 심하게 손상되었다. 수습된 유해는 화장 처리되었고, 유골과 소독된 현장 흙이 각 유족에게 전달되었다.[29] 현장에서는 약 2만 점의 신체 조각이 수습되었으나, 외형으로 신원 식별이 가능했던 시신은 40구에 불과했으며, 최종적으로 9명은 신원 확인이 불가능했다. 일본인 희생자 48명 중에서는 33명의 신원이 확인되었고, 나머지 15명은 확인되지 않은 유해를 화장하여 유족에게 분골하는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4. 2. 한국인 희생자

(내용 없음 -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해당 섹션 제목과 관련된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4. 3. 신원 확인 및 유해 수습



이 사고로 승무원 12명과 승객 334명, 총 346명 전원이 사망했다. 희생자 중에는 일본인 48명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도카이 은행 (16명), 토멘 (15명), 미쓰이 트러스트 은행 (6명), 치요다 생명 (1명) 등에 취업이 예정된 이들로, 유럽 연수 여행 중 참변을 당했다.[27][28]

또한 1964년 도쿄 올림픽 육상 400m 허들 및 400m 릴레이 은메달리스트인 영국의 존 쿠퍼도 이 사고로 희생되었다.

희생자들의 유해는 항공기가 고속으로 숲에 충돌하면서 매우 심하게 손상되었다. 이 때문에 유족들에게는 유품만이 전달되었으며, 수습된 유해는 다비에 처한 후 유골과 소독된 현장의 흙을 각 유족에게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처리되었다.[29] 현장에서는 약 2만 점의 신체 조각들이 수습되었으나, 외관상 신원 확인이 가능했던 것은 40구에 불과했고, 최종적으로 9명은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일본인 희생자 48명 중에서는 33명의 신원이 확인되었고, 확인되지 않은 15명에 대해서도 미확인 유해를 화장한 후 유족에게 분골되었다.

5. 사고 원인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륙 후 상승 과정에서 좌측 후방 화물칸 문이 잠금 장치의 결함으로 인해 기내외 압력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로 인해 화물칸 내부가 급격히 감압되었고, 이 충격으로 객실 바닥 구조물이 파괴되었다. 파괴된 바닥 아래를 지나가던 방향타, 승강타, 꼬리 엔진의 조종 케이블과 유압 라인이 절단되면서 항공기는 완전히 조종 불능 상태에 빠져 추락했다.[9]

DC-10의 화물칸 문은 바깥쪽으로 열리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비행 중 잠금 장치가 고장 나면 내부 압력에 의해 문이 열릴 위험이 내재되어 있었다. 제조사인 맥도넬 더글러스는 이러한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근본적인 설계 변경 대신 잠금 시스템 보강과 같은 미흡한 조치만 취했다. 특히, 문이 제대로 잠기지 않아도 잠금 핸들을 무리하게 닫을 수 있었고, 조종석의 경고등마저 꺼지는 설계 및 배선 결함이 존재했다.

이러한 설계 결함은 이미 1972년 아메리칸 항공 96편 화물 도어 파손 사고를 통해 드러난 바 있었다. 당시 미국 국가 교통 안전 위원회(NTSB)는 미국 연방 항공국(FAA)에 설계 개선을 포함한 내공성 개선 통지(AD) 발행을 권고했지만, FAA는 이를 강제하지 않고 제조사와의 합의를 통해 일부 개수만 진행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외압 의혹도 제기되었다.[14] 사고기 TC-JAV는 서류상으로는 개선 작업이 완료된 것으로 기록되었으나, 실제로는 필요한 개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14]

또한 사고 당일, 파리 오를리 공항의 지상 근무자가 화물칸 문을 닫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조작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해당 직원은 문에 부착된 영어 및 터키어로 된 주의사항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잠금 상태를 확인하는 절차에 대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결국 설계 결함, 제조사의 안전 불감증, 규제 당국의 미흡한 관리 감독, 현장 작업자의 실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참사로 이어졌다.

5. 1. 화물칸 문 설계 결함

DC-10 여객기의 여객실 문은 안쪽으로 열리는 플러그 도어 방식으로, 기내 압력이 가해진 상태에서는 열리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화물칸 문은 반경이 커서 안쪽으로 열 경우 귀중한 화물 공간을 차지하게 되므로, 바깥쪽으로 열리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바깥쪽 열림 방식은 비행 중 래치(걸쇠)가 고장 나면 내부 압력에 의해 문이 열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14]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DC-10에는 "오버센터 개념"(over-center concepteng)을 적용한 래칭 시스템이 사용되었다. 이 시스템은 공통 토크 샤프트에 장착된 4개의 'C'자형 래치가 동체에 고정된 래칭 핀("스풀") 위로 회전하여 문을 고정하는 방식이다. 토크 샤프트는 전기 액추에이터와 크랭크축이 포함된 링크를 통해 회전하며, 이 구조는 래치가 올바른 위치에 있을 때 내부 압력이 가해지더라도 문이 열리지 않고 오히려 더 안전하게 잠기도록 설계되었다. 백업용 수동 크랭크도 마련되어 있었다.

래치가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별도의 잠금 핀 메커니즘이 있었다. 이 핀들은 외부의 작동 핸들에 의해 움직이며, 래치를 구동하는 잠금 토크 튜브의 플랜지 뒤로 미끄러져 들어가 래치의 추가적인 회전을 막는다. 만약 래치가 제대로 닫히지 않으면, 핀이 토크 튜브 플랜지에 걸려 더 이상 들어가지 않고 작동 핸들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상태로 남아 시각적인 경고 역할을 했다. 또한, 핸들은 외부 해치 패널의 통풍구 마개를 움직여, 통풍구가 완전히 막히지 않으면 기내 여압이 형성되지 않도록 했다. 조종석에는 잠금 핀과 연결된 스위치로 제어되는 표시등이 있어, 문이 제대로 잠겼을 때만 꺼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설계에는 여러 결함이 존재했다. 1972년 6월 12일, 아메리칸 항공 96편 화물 도어 파손 사고에서도 유사한 후방 화물칸 문 탈락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객실 바닥 일부가 함몰되고 조종 계통이 손상되었으나, 조종사가 비상 착륙에 성공하여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사고 조사 후 미국 국가 교통 안전 위원회(NTSB)는 맥도넬 더글러스사에 설계 변경을 권고했고, 미국 연방 항공국(FAA)은 내공성 개선 통지(AD) 발표를 준비했다. 하지만 당시 리처드 닉슨 행정부와 맥도넬 더글러스사 간의 정치적 관계로 인해 FAA 상층부에서 이를 묵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14]

맥도넬 더글러스사는 이미 항공기 생산 초기 여압 시험 단계에서부터 화물칸 문의 결함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근본적인 설계 변경 없이 간단한 개수만 진행하며 판매를 계속했다. 아메리칸 항공 96편 사고 이후 모든 DC-10의 화물칸 문을 개수했다고 주장했지만, 터키항공 981편 사고기는 제조 기록 서류상으로는 개수가 완료된 것으로 처리되었음에도 실제로는 개수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맥도넬 더글러스사는 제품 결함을 알면서도 안전보다 영업 실적을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미국 연방 의회에서도 조사를 받게 되었다.

로이즈 오브 런던 보험사의 의뢰로 실패 분석 협회(Failure Analysis Associates, 현재 Exponent, Inc.)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터키 지상 근무자가 화물칸 문을 닫는 데 어려움을 겪자 잠금 핀을 약 0.64cm 미만으로 갈아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후속 조사에서 해당 문은 300psi의 압력을 견디도록 설계되었으나 실제로는 약 15psi의 압력에서 파손된 것으로 드러났다.[14]

결국 터키항공 981편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다음과 같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 화물칸 문 작동 모터의 토크 부족으로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을 가능성
  • 문이 완전히 잠기지 않았음에도 조종실 확인등이 소등되는 배선 결함
  • 잠금 장치의 강도 부족으로 완전히 잠기지 않아도 핸들을 닫을 수 있는 문제
  • 이전 사고에서 지적된 결함들이 제대로 개선되지 않은 점
  • 지상 근무자가 영어로 된 주의사항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적절하게 문을 닫은 점

5. 2. 아메리칸 항공 96편 사고와의 유사성

1972년 6월 12일, 터키항공 981편 사고 발생 약 2년 전에 아메리칸 항공 소속의 DC-10-10 항공기(아메리칸 항공 96편)가 유사한 사고를 겪었다. 이 항공기는 후방 화물칸 문이 비행 중 떨어져 나가면서 객실 바닥 일부가 내려앉고 조종 계통(컨트롤 라인)이 손상되는 사고(아메리칸 항공 96편 화물 도어 파손 사고)를 당했다.[16] 다행히 승객 수가 적었고 조종사가 제한적인 조종 능력을 유지할 수 있어 희생자 없이 디트로이트에 비상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감압 과정에서 조종 계통이 완전히 절단되어 조종 불능 상태에 빠진 981편 사고와는 대조적이다.[16]

이 사고 이전부터 화물칸 문 설계의 결함과 감압 시 객실 바닥이 파손될 위험성은 지적되고 있었다. 컨베어의 엔지니어였던 댄 애플게이트는 1972년 작성한 메모에서 이러한 문제를 경고하며, 유사한 사고가 다른 DC-10에서 발생할 경우 훨씬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15]

NTSB는 아메리칸 항공 96편 사고 조사 결과, 수하물 처리 직원이 잠금 손잡이를 무리하게 닫았고 전기 시스템 문제로 래치가 완전히 잠기지 않았음을 밝혀냈다. 조사관들은 잠금 핀과 손잡이를 연결하는 막대가 약해 반복적인 힘에 의해 구부러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핀이 제대로 걸리지 않아도 작업자가 힘을 주어 손잡이를 닫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잠금 손잡이가 닫히면 통풍구 덮개와 조종석 경고등이 문이 제대로 잠긴 것으로 표시되는 구조적 문제도 발견되었다.[16]

NTSB는 사고 조사 후 몇 가지 중요한 권고 사항을 제시했다. 화물칸 감압 시 객실 바닥에 가해지는 압력 차이를 줄이기 위해 객실 후방 바닥에 통풍구를 추가하고, 잠금 장치와 전기 시스템의 개선을 의무화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당시 FAA은 이러한 권고를 강제하는 항공 안전 지침(AD)을 발행하지 않았다. 대신 제조사인 맥도넬 더글러스와 일종의 '신사 협정'을 맺어 화물칸 문에 약간의 수정만 가하고 객실 바닥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도록 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맥도넬 더글러스사로부터의 정치 자금 지원을 기대했기 때문에 FAA 상층부에서 NTSB의 권고를 묵살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맥도넬 더글러스는 이미 DC-10 1호기 생산 중 여압 시험 단계에서부터 화물칸 문의 결함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근본적인 설계 변경 없이 간단한 개수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아메리칸 항공 96편 사고 이후 모든 DC-10의 화물칸 문을 개선했다고 주장했지만, 터키항공 981편 사고기는 제조 기록상으로는 개선 작업이 완료된 것으로 되어 있었음에도 실제로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는 기록 누락 또는 의도적인 조작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결국 맥도넬 더글러스는 자사 제품의 심각한 결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하고 판매를 강행했다는 비판에 직면했으며, 이는 미국 연방 의회에서도 문제로 다루어졌다.

터키항공 981편 사고기의 경우, NTSB가 권고한 개선 사항(잠금 핀 연결 막대의 휨 방지를 위한 지지판 설치)이 적용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잠금 핀의 이동 거리가 부적절하게 조정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래치가 제대로 잠기지 않은 상태에서도 큰 힘을 들이지 않고(조사관 추산 약 50lbf) 잠금 손잡이를 닫을 수 있었다. 이는 사고 당일 화물칸 문을 닫았던 수하물 처리 직원이 특별한 힘을 줄 필요가 없었다고 진술한 내용과 일치한다. 또한, 경고등 스위치 역시 변경되어 래치가 완전히 잠기지 않아도 조종석의 경고등이 꺼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맥도넬 더글러스는 아메리칸 항공 96편 사고 이후, 작업자가 핀의 잠금 상태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작은 확인 창을 추가하고 관련 안내문을 부착했지만, 981편의 수하물 처리 직원은 이 창의 용도에 대해 교육받지 못했다. 그는 잠금 손잡이가 제대로 닫히고 통풍구 덮개가 닫히면 문이 안전하게 잠긴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더구나 안내문은 영어와 터키어로 작성되어 있었는데, 알제리 출신으로 다른 언어에 능통했던 이 직원은 두 언어를 읽을 수 없었다. 사고 조사관들은 훈련 부족과 언어 장벽 문제를 지적하며, 저임금 수하물 처리 직원에게 항공기 안전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결론지었다.

5. 3. 제조사의 책임 문제

아메리칸 항공 96편 사고가 발생하기 약 2년 전부터 DC-10의 화물칸 문 설계 결함과 비행 중 감압 시 객실 바닥이 파손될 위험성은 이미 지적되고 있었다. 1972년 컨베어의 엔지니어 댄 애플게이트(Dan Applegate)는 메모를 통해 이러한 위험성을 경고했다.[15] 그는 아메리칸 항공 96편 사고와 유사하게 후방 화물칸 문 고장으로 폭발적 감압 사고가 다른 DC-10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그 결과는 훨씬 심각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실제로 아메리칸 항공 96편은 조종사들의 노력으로 비상 착륙에 성공했지만[16], 이는 일부 조종 케이블이 완전히 절단되지 않은 덕분이었다.

미국 국가 교통 안전 위원회(NTSB)는 아메리칸 항공 96편 사고 조사 후 몇 가지 중요한 권고 사항을 발표했다. NTSB는 화물칸 문 잠금 장치와 전기 시스템의 개선, 그리고 감압 시 객실 바닥의 파손을 막기 위해 객실 후방 바닥에 통풍구를 추가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 항공청(FAA)은 이러한 권고를 강제하는 항공 안전 지침을 발행하는 대신, 제조사인 맥도넬 더글러스(McDonnell-Douglas)와 신사 협정을 맺어 화물칸 문에 대한 일부 수정만 진행하고 객실 바닥 통풍구 설치는 의무화하지 않았다. 이는 당시 닉슨 행정부와 맥도넬 더글러스사 간의 정치적 관계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맥도넬 더글러스는 이미 DC-10 1호기 생산 중 여압 시험 단계에서부터 화물칸 문의 결함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설계 변경 없이 간단한 개수만으로 판매를 지속했다. 아메리칸 항공 96편 사고 이후 모든 DC-10의 화물칸 문을 개수했다고 주장했지만, 터키항공 981편 사고기의 경우처럼 제조 기록 서류상으로는 개수가 완료된 것으로 처리되었으나 실제로는 필요한 조치(특히 잠금 손잡이 링키지 지지판 설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례가 발견되었다.[14] 또한, 사고기에서는 잠금 핀 이동 거리를 줄이는 부적절한 조정이 이루어져 있었고, 경고등 스위치 역시 래치가 완전히 잠기지 않아도 조종석 경고등이 꺼지도록 변경되어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잠재적인 위험을 더욱 증폭시켰다.

결국 맥도넬 더글러스는 자사 제품의 심각한 결함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 조치를 철저히 이행하기보다는 영업 실적과 생산 일정을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문제는 미국 연방 의회에서도 다루어졌으며, 기업의 안전 불감증과 당국의 미흡한 관리 감독이 결합하여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6. 사고 후 대책 및 영향



사고 이후 제작사인 맥도넬 더글라스는 희생자 가족 등으로부터 여러 건의 소송에 직면했다. 재판 과정에서 맥도넬 더글라스는 안전 지침 미비에 대해 FAA를, 화물칸 도어 잠금 장치 수정에 대해 터키항공을, 그리고 잘못된 설계에 대해 부품 공급사인 제너럴 다이내믹스를 비난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결국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자, 맥도넬 더글라스와 터키 항공 및 기타 관련 당사자들은 총액 약 1억달러에 달하는 금액으로 합의에 이르렀다.[19] 이 중 맥도넬 더글라스가 부담한 금액은 8000만달러였으며,[24] 보험사인 로이즈 오브 런던이 1800만달러를 지급했다.[20]

이 사고는 항공기 설계 결함의 심각성을 드러내며 항공 안전 기준 강화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DC-10의 화물칸 문 잠금 시스템은 전면적으로 재설계되었으며,[21] FAA는 유사 사고 방지를 위해 객실 바닥 강도 보강 및 압력 조절을 위한 통풍구 설치 등 광범위한 안전 개선 조치를 명령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DC-10뿐만 아니라 다른 광동체 항공기에도 적용되었다.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는 당시까지 발생한 항공 사고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참사였다.[26] 1977년 3월 27일 발생한 테네리페 항공 참사 이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항공 사고였으며, 1985년 8월 12일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발생 전까지 단일 항공기 사고로는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한 사고였다.

사고 현장인 프랑스 에르메농빌 숲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한편, 터키항공은 사고 편명인 '981편'을 2023년 현재에도 다른 노선(에르잔-안탈리아)에 계속 사용하고 있다.[22]

6. 1. 항공 안전 기준 강화



맥도넬 더글라스 DC-10 기종의 화물칸 문 잠금장치(래치) 설계 결함은 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후방 화물칸 문이 비행 중 열리면서 폭발적인 감압 현상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객실 바닥이 파괴되면서 바닥 아래에 설치된 조종 케이블들이 절단되었다.[17] 특히 방향타와 승강타, 꼬리 엔진의 제어 케이블이 손상되어 항공기는 조종 불능 상태에 빠졌다.

이러한 설계상의 문제는 이미 1969년에 처음 발견되었고, 1970년 지상 테스트에서도 실제로 문제가 발생했으나, 제작사인 맥도넬 더글라스는 이를 인지하고도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18] 1972년 작성된 내부 메모("애플게이트 메모")에서도 이 문제가 지적되었지만, 맥도넬 더글라스는 설계 변경이 항공기 인도 일정을 지연시키고, 경쟁 기종인 록히드 L-1011 트라이스타보잉 747과의 경쟁에서 불리해질 것을 우려하여 문제 해결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안전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터키항공 981편의 비극적인 추락 사고 이후, 항공 안전 기준은 대폭 강화되었다.

  • 화물칸 문 잠금장치 재설계: 기존 래칭 시스템은 잠금 핀이 제대로 걸리지 않아도 손잡이가 닫힌 것처럼 보일 수 있었으나, 이를 방지하도록 완전히 재설계되었다. 새로운 시스템은 잠금 핀이 정확히 제자리에 위치해야만 손잡이가 닫히도록 기계적으로 개선되었고, 환기 도어 역시 손잡이가 아닌 잠금 핀 자체의 상태를 표시하도록 변경되었다.[21]
  • FAA의 추가 조치 명령: FAA는 DC-10뿐만 아니라, 바깥쪽으로 열리는 문을 가진 모든 광동체 항공기(록히드 L-1011, 보잉 747 포함)에 대해 객실 바닥에 환기구를 설치하도록 명령했다. 이는 화물칸 등에서 급격한 감압이 발생하더라도 객실과의 압력 차이로 인해 바닥 구조물이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 DC-10 기체 개선: 사고 이후 생산된 DC-10 및 기존 운용 기체에 대해 객실 바닥의 함몰이 발생하더라도 제어 케이블이 절단되지 않도록 동체 측면으로 케이블 배치를 변경했다. 또한, 객실 바닥의 강도를 높이고 화물칸과 객실 사이의 압력 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공기 배출 구멍(vent)을 추가로 설치했다.


이 사고는 항공기 설계, 특히 비행 안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안전 규정을 강화하고, 제조사의 책임 의식을 강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6. 2. 유사 사고

DC-10 외에 다른 항공기에서도 치명적인 화물칸 해치 고장이 발생한 사례가 있다. 보잉 747 기종 역시 유사한 문제를 겪었으며,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1989년 2월 발생한 유나이티드 항공 811편 사고이다. 이 사고에서는 화물칸 해치 고장으로 동체 일부가 파열되어 승객 9명이 기체 밖으로 튕겨나가 사망했다.[23]

NTSB는 터키항공 981편 사고 이전에 발생했던 96편 사고 이후 해치 고장 위험을 줄이기 위한 권고안을 발표했지만, 당시 항공사들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현재 NTSB는 안전 개선 권고 사항을 FAA에 직접 전달하고 있으며, FAA는 이를 바탕으로 감항성 개선 지시를 발부할 수 있다. 다만 FAA가 NTSB의 권고를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7. 기타

(내용 없음)

7. 1. 사고를 다룬 작품

터키 항공 981편 추락 사고는 캐나다의 항공 사고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메이데이! : 항공 사고의 진실과 진상 시즌 5의 3화 "Behind Closed Doors"(밀실)에서 다루어졌다.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1972년에 발생한 유사 사고인 아메리칸 항공 96편 사고도 함께 조명했다.[24]

사고 이후의 영상은 프레드 워쇼프스키 감독의 1979년 재난 다큐멘터리 영화 ''데이즈 오브 퓨리''(Days of Fury)에 포함되었다.[25]

7. 2. 위령비

사고가 발생한 프랑스 우아즈주 상리스 근교의 에르므농빌 숲에는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ASN Aircraft accident McDonnell Douglas DC-10-10 TC-JAV Bois d'Ermenonville https://aviation-saf[...] Flight Safety Foundation 2019-03-07
[2] 웹사이트 McDonnell Douglas DC-10 https://aviation-saf[...] Flight Safety Foundation 2020-01-21
[3] 웹사이트 France air safety profile https://aviation-saf[...] Flight Safety Foundation 2020-01-21
[4] 뉴스 WAS FAA LAX ON CARGO-DOOR HAZARDS? https://www.washingt[...] 2024-06-04
[5] 간행물 Aircraft Accident Report: American Airlines, Inc. McDonnell Douglas DC-10-10, N103AA. Near Windsor, Ontario, Canada. 12 June 1972. https://www.ntsb.gov[...] 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 2009-03-22
[6] 뉴스 The cheap door that cost 346 lives https://www.nytimes.[...] 2024-06-04
[7] 뉴스 Design Negligence Alleged In Jet Crash Fatal to 346 https://www.nytimes.[...] 2024-06-04
[8] 뉴스 Sabotage Hinted at in Air Crash https://news.google.[...] 2010-02-18
[9] 웹사이트 Accident to Turkish Airlines DC-10 TC-JAV in the Ermenonville Forest on 3 March 1974 Final Report http://www.aaib.gov.[...] French State Secretariat for Transport 2011-02-13
[10] 웹사이트 Passenger manifest - Path to Ermenonville, Paris https://turkishdc10.[...]
[11] 뉴스 Crash - Path to Ermenonville, Paris https://turkishdc10.[...]
[12] 서적 The Complete Book of the Olympics. Penguin Books
[13] 뉴스 Search for clues to air disaster 1974-03-05
[14] 웹사이트 Failure Analysis https://www.chicagot[...] Chicago Tribune 2010-06-09
[15] 서적 Destination Disaster Hart-Davis
[16] 문서
[17] 논문 Airplane loss of control problem: Linear controllability analysis
[18] 뉴스 Engineer's Warning on DC-10 Reportedly Never Sent https://www.nytimes.[...] 2020-05-03
[19] 뉴스 Turkish Airlines Offers $10-Million in Crash Suits https://www.nytimes.[...] 2020-05-03
[20] 서적 Destination disaster: From the Tri-Motor to the DC-10 https://archive.org/[...] Quadrangle/New York Times Book Co.
[21] 뉴스 The cheap door that cost 346 lives https://www.nytimes.[...] 1976-10-10
[22] 웹사이트 Turkish Airlines flight TK981 https://www.flightra[...]
[23] 웹사이트 Aircraft Accident Report, Explosive Decompression—Loss of Cargo Door in Flight, United Airlines Flight 811, Boeing 747-122, N4713U, Honolulu, Hawaii, February 24, 1989 https://www.ntsb.gov[...] 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 2016-01-14
[24] AV media Behind Closed Doors Cineflix 2008-04-16
[25] AV media Days of Fury https://archive.org/[...] Markwood Productions Ltd.
[26] 문서
[27] 뉴스 東海銀行の16人も犠牲 パリ北方のエアバス墜落 1974-03-04
[28] 뉴스 日本人死者 新卒生ら49人 1974-03-04
[29] 웹사이트 飛行機事故2 「ジャンボ墜落」 http://www.osoush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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