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시예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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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시예트 만은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 남단, 북한 및 중국 국경에 가까운 만이다. 수슬로프 곶과 가모프 곶 사이에 위치하며, 해안선이 굴곡져 비탸지 만 등 여러 작은 만들이 발달했다. 만의 크기는 동서 약 31km, 남북 약 33km이다. 주요 촌락으로는 포시예트 항, 자루비노, 크라스키노 등이 있다.
과거 발해의 영토였으며, 크라스키노 부근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발해사가 출항하기도 했다. 1852년 프랑스 해군에 의해 '단빌 만'으로 명명되었고, 1854년 러시아 해군에 의해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고, 1938년에는 소련이 군사 기지를 건설했다. 유엔 개발 계획을 통해 두만강 하구 일대 개발이 추진되었으나, 북한의 상황으로 인해 진척되지 않고 있다. 여름에는 관광객들이 해수욕을 즐기기 위해 포시예트 만을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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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시예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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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리
포시예트 만은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 최남단 하산스키 구역에 위치하며, 북한 및 중국과의 국경에 가깝다. 수슬로프 곶과 가모프 곶 사이에 있으며, 해안선은 울퉁불퉁하고 비탸지 만 등 여러 작은 만이 발달해 있다. 크기는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폭이 31km 정도,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깊이가 33km 정도이다. 주요 항구 도시로는 만 중앙부 반도의 서쪽 끝에 있는 포시예트 (포시예트항), 만의 동쪽 만인 트로이차 만에 있는 자루비노가 있으며, 만 안쪽에 있는 크라스키노 등도 중요한 촌락으로 꼽힌다.
포시예트만은 발해의 영토였으며, 현재 크라스키노 부근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발해사가 출항했던 곳이다. 이곳에는 발해 시대의 항만 유적인 크라스키노 토성(염주성으로 추정)이 남아있다.[1]
3. 역사
1852년 프랑스 해군의 코르벳함 카프리스 호(Caprice)가 당시 청나라 영토였던 이 만에 들어와, 18세기에 극동 지도를 제작한 장 바티스트 부르기뇽 단빌(Jean Baptiste Bourguignon d'Anville)을 기려 "단빌 만"(d'Anville)이라고 명명했다. 1854년에는 프리깃함 팔라다 호(Frigate "Pallada")를 타고 일본 개항을 요구하며 극동에 온 러시아 해군 군인 예핌 푸챠틴이 동해 북부 청나라 해안선을 조사하던 중 이 만에 들어와 해도를 만들고, 콘스탄틴 포시예트(Konstantin Posyet)의 이름을 따서 포시예트 만으로 개명했다.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프리모르스키 지방 일대가 청나라에서 러시아 제국에 할양되면서 포시예트 만은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이후 1862년과 1875년에도 러시아 해군이 만을 측량했다.
1938년 소련 붉은 군대가 만주와 조선과의 국경에 가까운 이곳에 활주로와 잠수함 기지를 건설하자, 일본군은 경계심을 높였다. 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된 결과, 같은 해 두만강 부근의 소련과 만주국 국경을 둘러싸고 장고봉 사건이 발생하여 군사 충돌이 벌어졌다.
3. 1. 발해 시대
고대에는 발해의 영토였으며, 현재 크라스키노 부근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발해사가 출항했다. 이곳은 발해 시대의 항만 유적으로, 크라스키노 토성(염주성으로 추정)이 있다.[1]
3. 2. 근대: 서구 열강의 탐사
1852년, 프랑스 해군의 코르벳함 카프리스 호(Caprice)가 당시 청나라의 영토였던 이 만에 들어와, 18세기에 극동의 지도를 제작한 지도학자 장 바티스트 부르기뇽 단빌(Jean Baptiste Bourguignon d'Anville)을 기려 "단빌 만"(d'Anville)이라고 명명했다. 1854년, 프리깃함 팔라다 호(Frigate "Pallada")에 승선하여 일본 개항을 요구하며 극동에 온 러시아 해군 군인 예핌 푸챠틴은, 동해 북부의 청나라에 속한 해안선을 조사하던 중 이 만에 들어와 해도를 만들고, 항해에 동행한 해군 군인 콘스탄틴 포시예트(Konstantin Posyet)를 기려 포시예트 만으로 개명했다.
3. 3. 러시아 제국 편입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프리모르스키 지방 일대가 청나라에서 러시아 제국에 할양되어 포시예트 만은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1862년과 1875년에도 러시아 해군이 만의 측량을 실시했다.
3. 4. 일제강점기 및 냉전 시대
1938년 소련 붉은 군대가 만주와 조선과의 국경에 가까운 이 만 주변에 활주로와 잠수함 기지를 건설하자, 일본군은 경계심을 높였다. 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된 결과, 같은 해 두만강 부근의 소련과 만주국 국경을 둘러싸고 장고봉 사건이 발생하여 군사 충돌이 벌어졌다.
4. 현대: 두만강 개발 계획
유엔 개발 계획(UNDP) 주도의 "두만강 개발 계획"은 중국의 훈춘 시, 북한의 라진·선봉 (라선특별시), 러시아의 포시예트 항을 잇는 두만강 하구 일대를 개발하여 무역 및 경제 활동의 거점으로 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북한의 혼란으로 인해 계획은 진척되지 않고 있다.
5. 관광
여름에는 연해주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이 해수욕과 휴가를 즐기기 위해 포시예트 만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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