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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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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부 전선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군사 작전을 지칭하며, 소련에서는 대조국전쟁으로 불린다. 이 전선은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시작되어, 독일, 헝가리, 루마니아, 이탈리아, 핀란드 등 추축국과 소련을 비롯한 연합국 간의 대규모 전투로 이어졌다. 동부 전선은 레벤스라움 확보와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배경으로, 바르바로사 작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쿠르스크 전투 등 주요 전투를 포함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치열하며 잔혹한 전장으로 기록된다. 이 전선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독일은 패배했으며, 소련은 승리했지만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전쟁 이후 유럽의 지도가 바뀌고 냉전의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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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 - [전쟁]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분쟁 명칭동부 전선
일부 명칭대조국 전쟁
독소 전쟁
독일-소련 전쟁
독일-소비에트 전쟁
관련 전쟁제2차 세계 대전
시기1941년 6월 22일 – 1945년 5월 8일
장소독일 동쪽 유럽 지역
중앙유럽
동유럽
북유럽
독일
오스트리아
결과소비에트 연방의 승리
나치 독일의 멸망
냉전의 시작
동구권 및 철의 장막 형성
반공주의 저항 운동의 시작
교전 세력
추축국
주요 국가나치 독일
루마니아 왕국 (1944년까지)
헝가리 왕국
핀란드 (1944년까지)
이탈리아 왕국 (1943년까지)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독립국
지원 세력프랑코 스페인 (청색 사단 파견, 1944년까지)
교전 세력
연합국
주요 국가소련
폴란드군 (1943년부터)
체코슬로바키아군 (1943년부터)
유고슬라비아군 (1944년부터)
과거 추축국루마니아 왕국 (1944년부터)
불가리아 왕국 (1944년부터)
핀란드 (1944년부터)
헝가리 왕국 (1945년부터)
지원 세력미국 (렌드리스 및 북극 수송선단 지원)
영국 제국 (북극 수송선단 및 제151 비행단 지원)
자유 프랑스 (노르망디-니에멘 전투 비행대 파견, 1943년부터)
몽골 인민 공화국
투바 인민 공화국
지휘관
추축국
주요 지휘관아돌프 히틀러
빌헬름 카이텔
알프레트 요들
발터 폰 브라우히치
프란츠 할더
쿠르트 차이츨러
헤르만 괴링
한스 예쇼네크
빌헬름 폰 레프
페도어 폰 보크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귄터 폰 클루게
게오르크 폰 퀴흘러
빌헬름 리스트
막시밀리안 폰 바이흐스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에리히 폰 만슈타인
에른스트 부슈
발터 모델
요하네스 프리스너
게오르크 린데만
페르디난트 쇠르너
로타르 렌둘리치
하인리히 힘러
이온 안토네스쿠
요시프 야코비치
일리에 슈테플레아
페트레 두미트레스쿠
호리아 마첼라리우
미클로시 호르티
페렌츠 살러시
페렌츠 좀바트헤이
카롤리 베레그피
리스토 뤼티
C.G.E. 만네르헤임
악셀 아이로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로 가리볼디
기타 지휘관빅토르 파비치치
보리스 3세
지휘관
연합국
주요 지휘관이오시프 스탈린
게오르기 주코프
보리스 샤포시니코프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알렉세이 안토노프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세묜 티모셴코
세묜 부됸니
니콜라이 쿠즈네초프
이반 이사코프
파벨 지가레프
알렉산드르 노비코프
세르게이 후디아코프
마르키안 포포프
표도르 쿠즈네초프
드미트리 파블로프
미하일 키르포노스
이반 툴레네프
안드레이 에레멘코
파벨 쿠로치킨
이반 코네프
야코프 체레비첸코
로디온 말리노프스키
키릴 메레츠코프
필리프 골리코프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레오니트 고보로프
니콜라이 바투틴
막심 푸르카예프
바실리 소콜로프스키
표도르 톨부킨
이반 페트로프
이반 바그라먄
이반 체르냐홉스키
볼레스와프 비에루트
미하우 롤라 지미에르스키
지그문트 베를링
미하이 1세
콘스탄틴 서너테스쿠
니콜라에 러데스쿠
키몬 게오르기에프
기타 지휘관카를 레나르트 외쉬
루드비크 스보보다
병력 규모
추축국
1941년3,767,000명
1942년3,720,000명
1943년3,933,000명
1944년3,370,000명
1945년1,960,000명
병력 규모
연합국
1941년 (전선)2,680,000명
1942년 (전선)5,313,000명
1943년 (전선)6,724,000명
1944년6,800,000명
1945년6,410,000명
사상자
추축국
총 사상자510만 명 사망
450만 명 전사 또는 실종
60만 명 포로 사망
450만 명 포로
사상자
연합국
총 사상자870만 ~ 1000만 명 사망
650만 ~ 670만 명 전사 또는 실종
220만 ~ 330만 명 포로 사망
410만 명 포로
사상자
민간인
민간인 사망자1800만 ~ 2400만 명
점령 지역
소련 점령
기타 정보
관련 정보동부 전선 작전 목록
동부 전선에서의 전쟁 범죄
독소 전쟁의 인명 피해
소비에트 연방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대조국 전쟁 (용어)
제2차 세계 대전 중의 군사 작전
제2차 세계 대전 중의 소련군
동부 전선 박물관
소비에트 연방의 제2차 세계 대전 중 민간인
제2차 세계 대전 중 폴란드군
이미지 정보
동부 전선
시계 방향으로 왼쪽 위부터: 1945년, 포즈난을 공격하는 소련 T-34 전차; 1943년, 쿠르스크 전투 중인 독일 티거 1 전차; 1943년, 동부 전선에 있는 독일 슈투카 급강하 폭격기; 1942년,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을 살해하는 독일 아인자츠그루펜 죽음의 부대; 1945년, 독일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빌헬름 카이텔; 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소련군

2. 명칭

구소련 지역에서는 "대조국전쟁"(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벨리카야 오테체스트벤나야 보이나ru)이라고 부르며, 독일에서는 "동부 전선"(die Ostfront|디 오스트프론트de)[240], "동부 전역"(''der Ostfeldzug''), "러시아 전역"(''der Rußlandfeldzug'')[241][242]이라고 부른다. 전쟁 당사자국이 아닌 지역에서는 "독일-소련 전쟁"[243]이라고 불리며, 대한민국일본 등에서는 이를 축약해 "독소전쟁" (한국 한자: 獨蘇戰爭) 또는 "독소전"(獨蘇戰|독소센일본어)이라고 부른다.

3. 배경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과 소련베르사유 조약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인해 영토를 상실하고 국제적 지위가 약화되는 등 불만이 컸다.[244] 특히 소비에트 러시아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동유럽의 상당한 영토를 잃었다. 볼셰비키는 독일의 요구에 따라 발트 3국핀란드, 폴란드 등을 동맹국에 할양해야 했다.[244] 이후 독일이 연합국에 항복하고 파리 강화 회의에서 이 지역들이 해방될 때, 러시아 내전 중이었던 소비에트 러시아는 대표를 파견할 수 없었다.[244]

1939년, 독일과 소련은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245] 이 조약에는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중앙유럽의 상태를 회복하고, 양국이 이 지역을 분할하는 내용의 비밀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245] 핀란드발트 3국은 소련, 폴란드루마니아는 분할 점령하기로 합의했다.[245]

아돌프 히틀러는 1939년 8월 11일 국제 연맹 고등판무관 카를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에게 소련 침공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 제가 하는 모든 일은 러시아를 겨냥한 것입니다. 서방이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저는 러시아와 협정을 맺고 서방을 격파한 후, 모든 힘을 소련에 집중할 것입니다. 지난 전쟁처럼 우리를 굶주리게 하지 않도록 우크라이나가 필요합니다.[246]

이후 독일과 소련은 1939년 9월 폴란드 침공을 감행하여 폴란드를 분할 점령했다. 소련은 1939년 11월 겨울 전쟁을 일으켜 핀란드를 공격했고, 1940년 6월에는 발트 3국을 병합했다.[247] 서방 국가들은 소련의 발트 3국 점령을 인정하지 않았다.[247] 독일은 소련의 발트 3국루마니아 북부 병합이 조약 위반이라고 주장했지만, 표면적으로는 이 지역 점령이 소련의 안보에 기여했다. 소련은 병합한 루마니아 영토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분할했다.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 독일인을 위한 "생존권" 확보, 즉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고 독일인을 정착시킬 필요성을 언급했다.[181] 나치즘 이념에 따르면, 독일인은 "지배 인종"이며, 기존 주민들을 몰살하거나 시베리아로 이주시키고 나머지는 노예 노동자로 만들어야 했다.[182] 히틀러는 1917년 이미 러시아인을 열등 인종으로 간주했고, 10월 혁명으로 유대인이 슬라브 민중을 지배하게 되었다고 믿었다.[183]

하인리히 힘러를 비롯한 나치 고위층은 소련과의 전쟁을 나치즘과 유대인 볼셰비즘 간의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보았다.[184] 그들은 이 전쟁을 통해 우등 민족인 아리아 인종이자 초인인 게르만인이 열등 민족인 슬라브인을 희생시켜 영토를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184] 독일군 장교들은 부하들에게 "유대인 볼셰비키 열등 민족", "몽골의 유목민", "아시아인의 쇄도", "붉은 짐승" 등으로 묘사되는 이들을 공격하도록 지시했다.[185] 대부분의 독일 병사들은 이러한 나치 관점에 따라 소련군을 열등한 존재로 여겼다.[186]

히틀러는 이 전쟁을 "절멸 전쟁"(Vernichtungskrieg)이라 칭하며, 이데올로기 전쟁이자 인종 전쟁으로 규정했다. 나치는 "동방 총력 계획"을 통해 동유럽의 미래상을 구체화했다. 점령지의 주민들은 서시베리아로 이주되거나 노예화, 또는 몰살될 예정이었고, 정복 지역에는 독일인이나 "독일화"된 주민들이 이주할 계획이었다.[187] 또한 나치는 홀로코스트의 일환으로 중앙 및 동유럽의 유대인들을 제거하려 했다.[188][189]

1941년 키예프 전투에서 초기 승리를 거둔 히틀러는 소련이 군사적으로 약하며 곧 정복될 것이라 믿었다. 그는 10월 3일 연설에서 "문을 걷어차기만 하면 썩은 건물 전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190] 독일은 폴란드 침공이나 프랑스 침공에서처럼 단기간의 전격전을 예상했으나,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소련의 전략적 승리로 상황이 역전되자, 나치는 이 전쟁을 서유럽 문명을 "볼셰비키" 유목민들의 파괴로부터 지키는 전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4. 이데올로기

요시프 스탈린 지도 아래 소련은 1930년대에 대규모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경험했다. 스탈린의 중심 원칙인 일국사회주의론은 1929년부터 시작된 일련의 전국적인 중앙 집중식 5개년 계획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소련 정책의 이념적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국제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소련의 약속에서 벗어나 1943년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 조직 해산으로 이어졌다. 소련은 1928년에 공식적으로 시작된 제1차 5개년 계획으로 군사화 과정을 시작했지만, 군사력이 소련 산업화의 주요 초점이 된 것은 1930년대 중반 제2차 5개년 계획이 끝날 무렵이었다.[27]

1936년 2월 스페인 총선 결과, 인민 전선 정부에 많은 공산주의 지도자들이 참여했지만, 몇 달 후 우익 군사 쿠데타스페인 내전이 발발했다. 이 갈등은 소련과 여러 국가 출신의 좌익 자원봉사자들이 주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지도하의[28] 제2 스페인 공화국[29] 편에서 참전하는 대리 전쟁의 특징을 띠게 되었다. 반면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포르투갈의 에스타두 노보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군사 반란 세력인 스페인 국민군 편을 들었다.[30] 이 전쟁은 독일군과 적군 모두에게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더 광범위하게 사용할 장비와 전술을 실험할 수 있는 유용한 시험장이 되었다.

반공주의 정권이었던 나치 독일은 1936년 11월 25일 일본 제국과 반코민테른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이념적 입장을 공식화했다.[31]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1년 후 이 협정에 가입했다.[29][32] 소련은 독일의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프랑스 및 체코슬로바키아와 상호 원조 조약을 체결했다.[33] 1938년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과 체코슬로바키아 해체(1938-1939)는 유럽에서 집단 안보 체제를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34] 이는 막심 리트비노프가 이끄는 소련 외교부가 주장한 정책이었다.[35][36] 영국과 프랑스 정부가 소련과의 대독일 정치·군사 동맹을 체결하려는 주저함[37]은 1939년 8월 말 소련과 독일 간의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으로 이어졌다.[38] 세 주요 추축국이 된 국가들 간의 별도의 삼국 동맹 조약은 반코민테른 조약 체결 후 약 4년이 지나서야 체결될 것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과 소련은 1922년 라팔로 조약으로 국교를 회복했다. 당시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과도한 배상금 부담과 군비 제한에 시달렸고, 경제는 불황이었으며 자원이 부족했다. 소련 또한 공산주의 국가로서 고립되어 시베리아 출병 등 군사적 간섭을 받았다. 독일은 자원과 영토가 부족했고, 소련은 자원과 영토는 풍부했지만 기술이 부족했다. 양국은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협력 관계를 맺었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 집권 이후 나치당은 반공을 주장했고, 소련은 나치를 “파시스트”라 비판했다. 양국 독재자는 서로를 “인류의 적”, “악마” 등으로 폄하했지만, 이해관계를 위해 이용하기도 했다. 스페인 내전에서 양국은 대리전 형태로 대결했다. 대숙청의 원인 중 하나로 SD(친위대 정보부) 장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음모가 거론되기도 한다.

이후 스탈린은 영국의 유화 정책을 보고 영국과 독일이 대소 포위망을 맺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고, 히틀러는 두 전선 작전을 피하고자 1939년 8월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 이 기간 동안 소련은 독일에 군용기, 전차 부대 기술 제휴, 발트해 연안 항구 사용, 영국 공습을 위한 레이더 기술 제공, 망명해 온 독일 공산주의자 강제 송환 등 편의를 제공했다. 또한 소련에서 독일로 자원이 수출되었고, 전쟁 시작 직전까지 철도를 통한 수송이 계속되었다. 독일의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외무장관은 소련과 더 강력한 연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일독이에 소련을 더한 4국 동맹을 구상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영국 본토 항공전 실패로 전쟁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소련이 분쇄되면 영국의 마지막 희망도 꺾일 것이다”라고 하며, 동방 생존권 확보를 위해 소련 침공을 고려했다. 1940년 7월 중순에는 “유럽의 마지막 전쟁”인 독소전 개전 의지를 국방군 수뇌부에 알리고, 침공 계획 수립을 지시했다. 이후에도 양국 관계는 표면적으로 온화했지만, 소련에서 물자가 순조롭게 유입되었음에도 독일의 지불은 지연되었고, 공작 기계의 소련 인도가 방해되기도 했다.

한편, 소련도 군비 증강을 진행했다. 1941년 3월부터 4월에 걸쳐 기계화 보병 20개 사단을 편성하고, 암호 체계를 변경했다. 독일 국방군 정보부는 이를 개전 준비로 간주했다. 서유럽에서도 대규모 항공기 공장이 존재했고, 숙련도 면에서도 높은 수준이라고 독일 공군 기술 시찰단이 보고했다. 히틀러는 “이 보고서가 최종적으로 소련 즉시 공격을 결심하게 된 요인이 되었다”고 회고했다.[203] 1940년 12월, 히틀러는 대소 침공 작전인 바르바로사 작전의 작전 준비를 공식적으로 지시했다. 소련에는 독일의 전쟁 준비를 알리는 정보가 영국 정부와 군 정보부 등으로부터 다양하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스탈린을 비롯한 소련 상층부는 이러한 정보를 기만 정보로 치부했다. 독일군에 대한 도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독소 국경에서의 방어 준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4. 1. 독일의 이데올로기

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나치오날조치알리스티셰 도이체 아르바이터파르타이|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de (나치당)의 이념은 아돌프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에 잘 나타나 있다. 히틀러는 이 책에서 동유럽, 특히 러시아에서 독일인을 위한 "생존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81] 그는 나치 이데올로기에 따라 독일인이 "지배 인종"을 구성하며, 원주민 대부분을 시베리아로 추방하거나 노예 노동자로 만들고, 독일인을 이주시키는 구상을 했다.[182] 히틀러는 1917년에 이미 러시아인을 열등 인종으로 보았고, 볼셰비키 혁명으로 유대인이 슬라브 민중을 지배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슬라브인 등이 자립할 능력이 없어 유대인에게 지배받게 되었다고 여겼다.[183]

하인리히 힘러 등 나치 고위층은 소련과의 전쟁을 나치즘과 유대인 볼셰비즘 간의 이데올로기 투쟁이자, 아리아 인종인 게르만인이 슬라브인을 희생시켜 영토를 확장하는 전쟁으로 보았다.[184] 독일군 장교들은 부하들에게 "유대인 볼셰비키 열등 민족", "몽골의 유목민", "아시아인의 쇄도", "붉은 짐승" 등으로 묘사되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으라고 지시했다.[185] 독일 병사 대부분은 나치적 관점으로 전쟁을 인식했고, 소련군을 열등 인종으로 여겼다.[186]

히틀러는 이 전쟁을 "절멸 전쟁"(Vernichtungskrieg)이라 부르며, 이데올로기 전쟁이자 인종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동유럽의 미래에 대한 나치의 견해는 "동방 총력 계획"에 명확히 나타나 있다. 점령지 주민 일부는 서시베리아로 이주, 노예화된 후 몰살되고, 독일인 또는 "독일화"된 주민이 이주하는 계획이었다.[187] 나치는 유대인 대량 학살 계획의 일환으로 중앙 및 동유럽 유대인을 제거하려 했다.[188][189]

1941년 키예프 전투에서 독일이 승리하자, 히틀러는 소련이 군사적으로 약해 곧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월 3일 베를린 스포츠 궁전 연설에서 히틀러는 "우리가 문을 차고 들어가면 부패한 건물 전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190] 독일은 폴란드 침공이나 프랑스 침공처럼 단기간의 전격전을 예상했고, 장기전은 경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군이 승리하고 독일군이 비참해지자, 나치는 이 전쟁을 서유럽 문명을 "볼셰비키" 유목민들로부터 방어하는 전쟁으로 묘사했다.

4. 2. 소련의 이데올로기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자서전 《나의 투쟁》(1925)에서 특히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에서 독일인을 위한 '생활권'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했다.[15] 그는 나치 이데올로기에 따라 게르만 민족이 "마스터 레이스"를 구성하는 반면, 기존 주민 대부분을 시베리아로 추방하거나 말살하고 나머지는 강제 노동에 사용하면서 독일인들을 그곳에 정착시킬 것을 구상했다.[16]

히틀러는 1917년 초기에 이미 러시아인들을 열등하다고 언급했는데, 볼셰비키 혁명이 유대인들을 슬라브 대중의 지배자로 만들었다고 믿었고, 히틀러의 견해에 따르면 슬라브인들은 스스로 통치할 능력이 없어 유대인 지배자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고 생각했다.[17]

하인리히 힘러[18]를 포함한 나치 지도부는 소련에 대한 전쟁을 나치즘유대 볼셰비즘 이데올로기 간의 투쟁으로 간주하여, 나치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아리아 ''헤렌폴크''("마스터 레이스")인 게르만 ''위버멘쉬'' (초인)의 영토 확장을 슬라브 ''운터멘쉬'' (하등 인간)의 희생으로 확보하려 했다.[19] 독일 국방군 장교들은 부대원들에게 "유대 볼셰비키 하등 인간", "몽골리안 무리", "아시아의 홍수", "붉은 짐승"으로 묘사된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으라고 지시했다.[20] 대다수의 독일군은 나치의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보았고, 소련의 적을 하등 인간으로 여겼다.[21]

히틀러는 이 전쟁을 이데올로기적이자 인종적인 전쟁인 "말살 전쟁"(Vernichtungskrieg|페어니히퉁스크리크de)이라고 극단적인 용어로 언급했다. 동유럽의 미래에 대한 나치의 비전은 일반계획 동방|게네랄플란 오스트de에 가장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점령된 중앙 유럽과 소련의 인구는 일부가 서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되고, 노예로 만들어져 결국에는 말살될 것이며, 정복된 영토는 독일인 또는 "독일화된" 정착민들이 식민지화할 것이었다.[22] 또한 나치는 모든 유럽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중앙 및 동유럽의 많은 유대인 인구를 제거하려고 했다.[23][24]

5. 양국 병력

이 섹션은 원본 소스에 '양국 병력'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직접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지침에 따라 작성이 불가능합니다. 원본 소스에는 전쟁의 기간 구분, 히틀러의 전략, 렌드리스 지원 내용 등은 있지만, 양국 병력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6. 작전의 실시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은 소비에트 연방(소련)에 선전포고를 하고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했다. 이탈리아 왕국, 루마니아 왕국 등도 뒤이어 선전포고를 했다.[204] 독일군은 독소 국경에서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초기 침공은 5월로 예정되었으나, 유고슬라비아 왕국 정변으로 유고슬라비아 침공이 실시되면서 1개월 이상 연기되었다. 히틀러는 개전 직전, 적군에 배속된 정치장교의 즉결 처형을 명령하고(코미사르 지령), “이데올로기 전쟁”으로서의 성격을 인식하도록 군 지휘부에 전달했다.

개전 초기에는 기습으로 독일군이 소련 적군을 거의 압도했다. 북방군 집단은 레닌그라드 포위전에 돌입했고, 중앙군 집단은 개전 1개월 만에 스몰렌스크를 점령했다. 적군은 각지에서 분단되었고 많은 부대가 항복했다. 소련 공군은 독일 공군의 폭격과 공중전으로 큰 타격을 입어 제공권은 독일군이 장악했다. 그러나 남방군 집단은 투입 병력에 비해 작전 지역이 넓어 진격이 다소 지연되었다. 독일 측 피해도 막대하여, 1주일 만에 1939년부터 1940년 6월까지의 독일군 사상자 수를 웃돌기도 했다.

8월, 스몰렌스크를 함락시킨 중앙군 집단의 주력 부대는 남부로 방향을 돌려 남방군 집단을 지원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지방에 전개하고 있던 수십만의 소련 적군 부대가 궤멸되었고, 키예프, 하르키우 등이 함락되었다. 이 지원으로 중앙군 집단의 모스크바 진격은 약 1개월 지연된 후, 9월 모스크바 공략(타이푼 작전)이 시작되었다.

독일군은 크렘린에서 불과 10여 킬로미터까지 접근했지만, 이른 겨울로 인한 진창과 강설, 적군의 저항으로 공세가 좌절되었다. 단기 결전을 예상했던 독일의 계획은 어긋나 장기전 양상을 띠게 되었다. 보급로가 길어지고 동계 장비 배송이 지연된 독일군은 각지에서 진격이 정지되었다.

소련 측은 리하르트 조르게 등의 정보를 통해 일본군의 참전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하고, 10월 이후 만주시베리아 지구의 정예 부대를 모스크바 주변에 투입했다. 11월에는 몽골 기병 사단이 전선에 투입되었으나, 전황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궤멸되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1년 11월 7일, 모스크바가 함락 위기를 벗어났다고 확인된 시점에 소련에 대한 무기·물자 원조(렌드리스법 적용)를 시작했다.

독일군의 피해는 투입 병력의 35%인 100만 명에 달했고, 이 해에만 전사자는 20만 명에 달했다. 국방군 지휘부는 모스크바 전면에서의 철수를 주장했지만, 히틀러의 엄명으로 전선은 유지되었다. 히틀러는 육군 총사령관 발터 폰 브라우히치 등 많은 장군을 해임하고, 스스로 육군 총사령관에 취임하여 독소전 지휘에 더욱 간섭했다. 소련 측은 12월 초부터 동계 대반격을 개시하여 독일군을 모스크바 근교에서 후퇴시켰다. 히틀러의 사수 명령으로 철수할 수 없었던 독일군의 저항과 소련군의 서투른 작전으로 소련 적군은 각개 격파되어 공세는 실패했고, 독일군은 간신히 전선 붕괴를 피했다.

소련 측은 초토화 작전으로 독일군의 현지 조달 수단을 빼앗고, 점령 지역 주민에게 빨치산을 조직시켜 후방 교란으로 독일군의 보급을 방해했다. 또한, 군사적으로 중요한 공장과 노동자를 화물 열차로 독일의 손이 닿지 않는 동쪽으로 소개시켰다. 이로 인해 일시적으로 생산력은 저하되었지만, 곧 안전한 곳에서 대량의 전차가 생산되었다.

스탈린은 독일군의 피해를 과대평가하고 1942년을 "히틀러 독일의 붕괴의 해이자, 적군의 승리의 해"라고 선포하며, 적군 참모본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 전선에서의 총반격"을 명령했다. 그러나 독일군과 그 동맹군을 격파하기에는 적군의 전력이 질적, 양적으로 충분하지 않았고, 봄에는 총반격이 실패하여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적군은 독일군을 후퇴시킴으로써 자신감을 회복했고, 독일 육군의 무적 신화는 깨졌다.[206] 스탈린은 "독일군은 결착을 짓기 위해 일거에 수도 모스크바 침공을 노릴 것이다"라고 착각하고, 모스크바 서부 및 남쪽 방면의 방비 강화와 예상되는 모스크바 진격 작전을 견제하기 위한 반격을 하르키우 방면에서 개시하도록 명령했다(하르키우 전투 (1942년)). 그러나 독일군의 이번 주 공세 방향은 소련 남부였다.

1942년 독일군 하계 공세는 제한된 전력에 의존하는 위험을 수반하는 작전이었다. 6월 28일, 남부 전선에서 볼가 강에 도달하고 코카서스 지방의 석유 자원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청색 작전이 개시되었다. 작전 초기에는 신속한 진격이 계속되어 7월 23일에는 히틀러가 "(청색 작전의 목표는) 대부분 달성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적군의 후퇴 속도는 빨랐고, 포위 섬멸이 이루어지지도 않았으며, 중화기의 포기나 적군의 병력 및 장비 손실도 없었다. 7월 28일, 스탈린은 『소련 국방인민위원령 제227호』를 발표하고, 전 전선에서의 저항을 명령했다. 코카서스의 유전 지대를 향한 독일의 A 집단군은 유전이 있는 마이코프를 점령했지만, 유전은 이미 소련군에 의해 불태워졌다. A 집단군은 유전이 있는 동쪽의 그로즈니를 향했지만, 보급로가 길어지고 연료 부족과 소련군의 저항으로 진군이 중단되었다.[207]

스타링라드를 향한 독일의 B 집단군은 도시의 대부분을 장악했지만, 소련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겨울이 와도 시가전을 계속했다(스타링라드 전투). 소련은 비밀리에 대규모 반격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격 작전은 11월 19일에 시작되었고, 스타링라드의 독일군은 보급로가 차단되어 포위되었다. 공군 총사령관 괴링이 공중 보급을 약속했기에, 히틀러는 스타링라드의 독일군의 후퇴를 허락하지 않고, 방어 진지를 구축하여 싸우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공군에 의한 물자 보급은 필요량을 제공할 수 없었고, 포위된 독일군은 쇠약해져 갔다. 독일군은 포위망 밖에서 육로를 통한 구출 작전도 수행했지만, 소련군의 포위망을 돌파할 수 없었다.[208]

1943년 1월 하순, 스타링라드에 포위되었던 약 10만 명의 추축군은 제6군 사령관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의 결단에 따라 항복했다. 코카서스에서 진군이 멈춘 A 집단군도 소련군이 대규모 반격을 개시했기 때문에 후퇴로가 끊길 위험에 처했지만, 히틀러로부터 후퇴를 허가받아 2월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간신히 퇴각에 성공했다[209]. 브라운 작전의 목표는 모두 달성하지 못했고 독일은 막대한 병력과 자재만을 잃었다. 스타링라드 공방전의 패배는 동맹국에 큰 영향을 주었다.

스타링라드의 승리는 소련군에게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했다. 소련의 장군 게오르기 주코프는 “독일군도 무적이 아니었다. 우리도 독일군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210]

독일군에서는 브라운 작전과 스타링라드에서의 시가전의 교훈에 따라 다양한 전투 차량이 생산되었다. 주력 전차의 교체(3호 전차판터 전차), 자주포의 등장, 슈투르름게슈츠 IV(브룸베어)와 같은 시가전을 상정한 대구경 돌격포등이 생산되었다.

1943년 하계 공세에서 독일군은 공세와 방어 후 공세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히틀러가 주장한 적극적인 공세가 실시되어 쿠르스크 돌출부를 남북에서 포위하는 작전이 실행되었다(쿠르스크 전투). 정보 활동을 바탕으로 충분히 사전 준비된 소련군의 대전차 방어선에 진격이 저지되고, 독일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같은 시기에 미영에 의해 실시된 시칠리아 상륙 작전의 소식에 작전은 결전을 기다리지 않고 중지된다. 이후, 독일군은 동부 전선의 주도권을 완전히 잃고, 가을 이후 압도적인 물량을 무기로 한 소련군의 맹공에 패퇴를 거듭하게 된다. 전선은 드니프르 강을 넘어 서쪽으로 이동하고 우크라이나 지방의 대부분은 소련군에 의해 탈환되었다.

6. 1. 주요 작전

바르바로사 작전은 1941년 6월 22일에 시작되었다. 독일은 소련 침공을 개시하여 각 관구의 통신 네트워크를 파괴했다.[272] 190개 독일 사단 중 99개 기갑사단이 발트와 흑해에서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10개 루마니아 사단, 9개 루마니아 및 4개 헝가리 여단도 있었다.[273] 같은 날, 발트 군관구, 서부 특별 군관구와 키예프 특별 군관구는 북서부 전선군과 서부 전선군, 남서부 전선군으로 각각 이름이 바뀌었다.[272]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독일 공군은 소련 비행장에 대한 즉각적인 폭격을 시작하며 소련의 비행기는 66개 기지에 1,200여 대가 파괴되는 등 대부분 이륙 전에 파괴되었다.[274]

1941년 6월 22일의 우크라이나 전선군.


한 달 동안, 3 방향에서의 공세는 기갑 사단이 포위된 후 느리게 이동하는 보병이 처리하며 수십만의 소련군을 물리치는 전격전 군사 교리를 이용했다. 9월까지 2백만 명 이상의 소련군이 전사하였다. 이 시기 소련과 독일의 병력 손실비는 20대 1에 달했다.

북부 집단군의 목표는 발트 3국의 레닌그라드였다. 16 군, 18 군 및 4 기갑군단으로 되어있는 집단군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를 지나 러시아의 프스코프주, 노브고로드주까지 진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에서는 저항군으로 참가하여 독일군이 진군하기 전 발트 지역은 "해방"되었다.[275][276]

중앙 집단군은 두 개의 기갑군(2 기갑군과 3 기갑군)이 남부와 북부로 브레스트-리토브스크와 민스크로 진격하며 후방에서 2 군, 4 군, 9 군이 진격했다.

남부 집단군의 1 기갑군단, 6 군, 11 군, 17 군은 갈리치아우크라이나 부근으로 전진했다.

모스크바 점령을 목표로 한 태풍 작전은 9월 30일에 시작되었다.

태풍 작전이 진행되던 중, 러시아의 날씨가 독일군을 괴롭게 했다. 10월 2주째에 비가 내렸고, 얼마 안 되는 도로가 끊임없는 진흙탕으로 변하면서 독일군의 각종 차량과 말, 병사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모스크바까지는 여전히 160킬로미터 남은 상황에서, 기온이 급강하하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283]

12월 6일, 독일 국방군은 공격 기세를 계속 유지하며 모스크바를 점령하기에는 너무 전력이 약해진 것이 분명해졌다고 판단했다. 소련군의 주코프는 그가 계획한 반격 작전을 12월 5일부터 시작했다. 반격 작전의 주축은 잘 훈련된 시베리아 방면군 예하 병력이었다.[284]

이 시기 주요 전투는 다음과 같다.

카렐리야 지협에서 소련군은 1944년 6월 9일 핀란드 전선에 대한 비보르크-페트로자보츠크 공세를 시작했다.

폴란드에서는 소련군이 접근함에 따라 폴란드 지하군(AK)이 폭풍 작전을 시작했다. 바르샤바 봉기 동안 소련군은 비스툴라 강에서 정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슬로바키아에서는 1944년 8월부터 10월까지 독일군과 반란군 슬로바키아군 사이의 무장 투쟁인 슬로바크 국민봉기가 시작되었다.

소련군은 1945년 1월 17일, 독일군에 의해 파괴되고 버려진 바르샤바에 마침내 진입했다.

1945년 5월 7일 오전 2시 41분, SHAEF 본부에서 독일 참모총장 알프레트 요들 장군은 프랑스 랭스에서 모든 독일군의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동부 전선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마지막 전투인 슬리비체 전투는 5월 11일에 발발하여 12일에 소련군의 승리로 끝났다.

1945년 5월 13일, 모든 소련군의 공세가 중단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동부 전선의 전투가 종식되었다.

7. 점령과 탄압

1941년 독일은 광대한 새 영토를 획득하면서 지키고 관리해야 할 방대한 지역을 가지게 되었다. 일부 소련 시민, 특히 최근에 소련에 강제 병합된 서부 우크라이나와 발트해의 새로운 영토의 주민은 정복자를 소련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해방자로 환영했다.[132] 그렇지만 우크라이나인과 코삭 사이에 있었던 초기 해방 운동은 히틀러의 의심만 샀다. 정복지 어디에서도 자치권은 부여되지 않았다. 독립을 되찾는다는 희망을 가졌던 발트 3국에는 독립 정부 대신 나치의 동방 국가판무관부(Reichskommissariat Ostland)가 설치되고 힌리히 로제(Hinrich Lohse)가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대신에 인종차별주의 나치 이데올로기는 토착민을 죽이거나 추방하였고, 또는 노예 노동으로 감소시켜 동방을 독일의 식민지 정착지로(Generalplan Ostde) 삼으려고 했다. 일부(특히 발트 3국 사람들)는 추축군 군대와 협력했지만, 다른 일부는 잔인한 진압을 당했다.[132]

독일이 점령한 폴란드 지역인 뎅블린의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소련인 사람들이 묻힌 소련 포로 대용량 무덤.


1943년 1월 공개 처형당한 소비에트 파르티잔.


1942년 독일 점령 러시아 지역의 노숙자 어린이.


전선과 가까운 지역에서는 군대가 관할했으며, 1940년에 소련에 병합되었었던 발트 국가들 같은 지역에서는 “국가판무관부”(Reichcommissariat)가 설립되었다. 일반적으로 대규모 약탈이 행해졌다. 1941년 9월, 새로 설치된 우크라이나 국가판무관부의 총독으로 임명된 동프로이센 대관구장 에리히 코흐(Erich Koch)는 로브노(Rovno)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위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그의 개회사는 독일의 대동방 정책을 명확하게 설명해주었다.

점령지 유대인에 대한 탄압은 전쟁 발발 직후 특별행동부대가 배치되면서 곧바로 시작되었다. 이들의 임무는 유대인을 몰아다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이었다. SS특별임무부대는 자신들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반유대주의를 선동하여 포그롬을 부추겼다. 1941년 7월, 에리히 폰 뎀 바흐의 SS부대가 바비야르에서 33,771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사건을 비롯하여 체계적인 살인을 시작했다.[333] 바비야르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오데사에서도 7만 5천에서 8만 명으로 추정되는 유대인이 죽었다. 오데사 학살에는 SS특별임무부대뿐만 아니라 루마니아군도 가세했다.[334] 1941년 7월 1만 1천여 명이던 그의 부대는 1941년 말에 일반 경찰 6천여 명과 지역 보조부대원 3만 3천여 명을 포함하여 5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 부대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정신이나 육체가 불구인 사람도 죽였지만, 희생자의 압도적 다수는 유대인이었다.[333] 이 유대인 학살에는 반(反)유대 감정이 있던 지역 주민도 가담했으며, 독일은 이들을 대상으로 밀고(密告) 조직을 만들었다. 크림 지역에서는 지역 유지들이 유대인을 직접 죽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독일 점령군 당국에 요청하기도 했다.[335] 학살을 보다 체계적인 공업 방식을 도입하여 효율적으로 추진하려는 이른바 최종 해결책(Final Solution)이 강구되어, 절멸 수용소 계획인 라인하르트 작전이 수립되었다. 절멸 수용소는 나치 강제 수용소의 일부로서 홀로코스트를 수행하는 기관이 되었다. 3년의 점령 기간 동안, 100만 명에서 200만 명 사이의 소련 거주 유대인이 살해되었다. 다른 인종도 절멸 대상이 되었는데, 여기에는 집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대인 및 기타 열등 인종에 대한 학살은 나치 점령기에 자행된 살인의 일부일 뿐이다. 수십만의 소련 민간인이 처형되었고, 수백만 명이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이 기아는 독일군이 병사들과 군마(軍馬)들을 먹이기 위해 식량 공급을 장악하고, 식량을 강제 징발했기 때문에 발생했다.[336] 1942년 키예프 시민들은 필요한 최소 식량의 1/3만을 공급받았다. 그러나 농민들이 수탈당한 곡식은 소비에트 시절의 2배가 넘었다.[336] 독일군이 1943년과 1944년에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서 철수할 당시, 독일 점령군은 체계적으로 초토화 작전을 벌여, 마을과 도시를 불태우고, 각종 사회 기반 시설을 파괴했으며, 시민들을 굶주림이나 죽음의 위험에 방치해 버렸다. 또, 독일군은 많은 마을에서 소련 시민을 마을 중앙에 가둬둔 채 소련군과 정면으로 싸웠고, 전투 와중에 많은 민간인이 죽었다. 전쟁 중에 죽은 소련 민간인의 추정치는 700만 명(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1700만 명(리처드 오버리)까지 폭이 큰 편이다.

나치 이데올로기와 지역 주민 및 소련군 포로에 대한 학대는 최전선 후방에서 파르티잔 활동을 고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심지어 반공산주의자와 비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조차 반 나치를 위해 소련과 손을 잡기까지 했으며, 이로 인해 소련군 전쟁 포로 출신들로 이루어진 독일 동맹군 사단의 편성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빚기도 했다.[337] 이러한 빨치산 활동의 결과, 독일군은 후방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독일 국방군(Wehrmacht)의 패배에 공헌했다. 보급품 운송뿐만 아니라 사기마저 떨어졌다. 독일군은 빨치산에 대해 잔인한 보복으로 응수했지만,[338] 이는 오히려 반감만을 불러 일으켰다.

러시아 역사가 바딤 에를리크만은 전쟁으로 인해 죽은 소련 사람을 2650만 명으로 추산했다. 여기에는 전투 중 전사하거나 실종된 760만 명과 전쟁 포로가 되었다가 사망한 260만 명의 군인 수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40만 명의 준 군사 조직과 소비에트 파르티잔 손실도 역시 포함된 수치다. 민간인 사망자는 군사 작전 중 사망한 150만 명을 포함해서 1590만 명으로 집계했으며, 나치가 자행한 집단 학살 희생자 710만 명, 강제노동을 위해 독일로 이송된 180만 명, 기아재난으로 인한 550만 명 등이다. 1946년부터 1947년까지 기근으로 죽은 100만 명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런 인명 피해는 1939년부터 1940년 사이에 병합한 영토를 포함하여 소련 전국에서 발생했다.[339]

벨라루스는 사실상 모든 지식인 계층을 포함하여 전쟁 전 인구의 1/4을 잃었다. 피비린내 나는 포위전 이후 벨라루스는 1941년 8월 말에 독일군에 점령당했다. 나치는 노예 노동을 위해 38만 명의 젊은이를 강제 이주시키고 수십만의 시민을 학살하며 잔인한 통치를 했다. 하틴 마을처럼 600개 이상의 촌락이 촌락민 모두와 함께 불태워졌다.[340] 도시와 마을 270개 중에서 209개 이상과 9천 개 이상의 촌락이 파괴되었다. 하인리히 힘러는 벨라루스 인구의 3/4을 박멸하고, 푸른 눈과 금발 머리를 가진 인종적으로 순수한 1/4은 노예로서 독일에 봉사시키는 계획을 표명했다. 몇몇 최근 연구에서는 전쟁 중에 죽은 벨라루스인의 수를 이전의 220만 명에서 365만 명으로 올렸다. 이는 전쟁 전 벨라루스 인구의 1/4이 아니라 거의 40%가 죽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 수치는 현재의 벨라루스 국경을 고려한 것이다.[341]

독일의 소련군 전쟁 포로의 60%는 전쟁 중에 죽었으며, 전쟁 포로와 강제 노동에 동원되어 독일로 강제 이송된 사람들 상당수는 소련으로 돌아오자[342] 조국으로부터 반역자와 탈영병 취급을 당했다. 이들은 독일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계속 유지했던 사람들이었지만, 러시아 해방군에 가담한 사람들과 큰 차이 없는 대우를 받았다. 그들 역시 코사크처럼 반역자로서 처형되거나 소비에트 강제 수용소(굴라그)로 보내졌다.[343]

1947년에 발행된 폴란드 정부의 전쟁 중 인명 피해에 대한 공식 보고서는 폴란드인과 유대인 2700만 7천 명 중 전쟁 희생자를 602만 8천 명으로 보고했다. 이 보고에서 우크라이나인벨라루스인은 제외되었다.

8. 공업 생산

소련의 승리는 광대한 영토와 인구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경제를 능가한 소련의 공업 생산 능력이 기여한 바가 컸다(물론 전쟁의 승패는 여러 가지 요인이 결정한다). 스탈린이 1930년대에 추진한 5개년 계획은 우랄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산업화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1941년, 전선으로 병력을 수송한 기차들은 벨로루시우크라이나로부터 수천 개의 공장을 해체하여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지역으로 수송하는 데 사용되었다.[344]

소련의 인적 자원이 1943년부터 점점 고갈 상태가 되어가자, 소련의 대규모 공세는 점점 기계 장비인 전차와 대포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다.[344] 전쟁 물자 생산량의 증대는 민간 생활수준의 희생[345]으로 얻어졌고, 영국미국으로부터 전시 물자 대여 및 원조도 기여했다.[346] 반면 독일은 정복 국가와 소련 전쟁 포로 중에서 차출한 대규모 노예 노동에 의존했다.

독일의 기초 자원 생산은 소련보다 많았고, 노동력도 소련보다 많았으나, 소련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소련의 차량은 생산비 및 유지비·보수비가 낮은 반면에 독일은 생산비 및 유지비·보수비가 높았다.

독일은 생산비가 비싸고 복잡한 차량 생산을 선택했고, 소련의 생산량을 따라갈 수 없었다. 1943년에 소련이 전차 24,100대를 생산한 반면, 같은 시기 독일은 19,800대를 생산했다. 소련은 기존 설계를 변경하고 단순화하거나 생산 공정을 개선하여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반면 독일 산업은 판터나 킹타이거, 엘레판트 구축전차 같은 중후 장대한 보다 진보했지만 설계는 복잡한 기갑차량 개발을 독려 받았다. 그러나 당시 독일은 영국 공군과 미국 8육군 항공대의 밤낮없이 계속되는 전략 폭격에 대응하기 위해 상당한 양의 자원을 대공포 및 전투기 생산에 돌려야 했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 절대적인 비교는 하기는 힘든 상황이며, 이러한 당시 독일의 기갑 차량 생산 체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소련과 독일의 전쟁 중 기본 자원 생산 통계[347] (단위 : 만 톤)
연도석탄강철알루미늄석유
독일소련독일소련독일소련독일소련이탈리아헝가리루마니아일본
1941년31,55015,1402,8201,79023.36?5703,3001240550-
1942년31,7907,5502,87081026.405.176602,200170570180
1943년34,0409,3103,06085025.006.237601,800180530230
1944년34,76012,1502,5801,09024.538.275501,820-100350100
1945년2?14,930?1,230?8.631301,940---10



전쟁 중 추축국 및 소련의 전차 및 자주포 생산량[348]
(단위 : 대)
연도전차 및 자주포
소련독일이탈리아헝가리일본
1941년6,5905,200[349]595-595
1942년24,4469,3001,252500557
1943년24,08919,800336558
1944년28,96327,300-353
1945년[350]15,400?--137



항공기 생산량 통계[348]
(단위 : 대)
연도항공기
소련독일이탈리아헝가리루마니아일본
1941년15,73511,7763,503-1,0005,088
1942년25,43615,5562,81868,861
1943년34,84525,52796726716,693
1944년40,24639,807-77328,180
1945년[350]20,0527,544--8,263



독일 및 소련의 산업 노동자 통계[351] (단위 : 만 명)
연도산업 노동자외국인 노동자총 노동자
소련독일소련독일소련 총계독일 총계
1941년1,1001,290-3501,1001,640
1942년7201,16054607251,620
1943년7501,110205707701,680
1944년8201,040807609001,800
1945년950?290-1,240-



추축 동맹국인 이탈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도 독일의 수에 포함되어 있다. 군사 물자 생산에 필요한 독일의 철광석 2/3는 스웨덴에서 수입한 것이었다. 소련의 생산력은 미국과 영국의 전시 물자 대여 및 원조 계획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스탈린그라드 패배 후, 요제프 괴벨스가 스포츠 궁전 연설(Sportpalast speech)에서 명확히 제시하였듯이 독일은 전시 경제로 완전히 돌입했고, 알베르트 슈페어의 헌신적인 지도로 연합군의 계속되는 폭격에도 불구하고 다음 해에는 생산량이 증대되었다.

9. 피해

동부 전선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가장 격렬하고 잔혹한 전장이었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단일 전선이었다. 추축군 500만 명, 소련군 1,060만 명이 전사했으며, 포로 생활 중 260만 명의 소련 병사가 사망했다. 소련의 민간인 피해는 1,500만에서 최대 2,500만 명에 달했다.[352]

이러한 막대한 피해는 전쟁 포로와 파르티잔에 대한 가혹한 처우, 독일과 소련 양측의 민간인에 대한 잔학 행위, 격렬한 전투와 초토화 작전 전술 사용 등 여러 요인에 기인했다.

독일 및 그 동맹국의 동부 전선의 군사 피해[353] (단위 : 만 명)
추축군
총 사상전사/실종소련군 측 독일군 포로수감 중 사망한 포로
독일430.0310.0330.047.4967 ~ 120.0
독일군에 가담한 소련인21.5 이상21.5100.0알려지지 않음
루마니아28.18.150.020.0
헝가리30.010.050.020.0
이탈리아8.23.27.05.0
총계517.8 이상352.8545.0165.0



소련 및 그 동맹국의 동부 전선의 군사 피해[354] (단위 : 만 명)
소련군
총 피해전사 및 실종추축군 포로수감 중 사망한 포로
소비에트 연방1,060.0760.0520.0260.0
폴란드2.42.4알려지지 않음알려지지 않음
루마니아1.71.78.0알려지지 않음
불가리아1.01.0알려지지 않음알려지지 않음
총계1,065.1765.1528.0260.0



소련의 전체 손실에는 파르티잔 25만여 명과 민병 15만여 명이 포함되었다. 폴란드 동부에서 소련의 다른 지역으로 탈출한 폴란드인으로 편성된 소련군 소속의 폴란드군은 1943년부터 소련군 측에서 전투에 참가했으며, 1944년에서 1945년 사이에 폴란드 영토가 해방되면서 규모가 늘어났다.

중앙유럽 국가들이 소련군에게 해방될 때, 그들은 편을 바꾸어 독일에 선전 포고할 것을 강요받았다.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핀란드가 그런 경우였다.

일부 소련 시민들은 독일 편에 가담하기도 했다. 안드레이 블라소프 장군의 러시아 해방군(Русская Освободительная Армия|러시아 해방군ru)에 가담한 대부분은 공산주의를 증오하고 나치를 공산주의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보았다.

나치 지도부는 소련과의 전쟁을 나치즘유대 볼셰비즘 이데올로기 간의 투쟁으로 간주했으며, 슬라브 ''운터멘쉬''(하등 인간)을 희생시켜 게르만 ''위버멘쉬''(초인)의 영토 확장을 꾀했다.[19] 독일군은 소련의 적을 하등 인간으로 여겼으며,[21] 히틀러는 이 전쟁을 "말살 전쟁"()이라고 칭했다.

아인자츠그룹에 의한 유대인 학살 우크라이나 이바노호로드, 1942년


전선에 가까운 지역은 지역 군사력이 관리했고, 1940년 소련에 합병된 발트 국가와 같은 다른 지역에서는 제국 총독령이 설치되었다. 정복 지역의 유대인에 대한 만행은 ''아인자츠그루펜''(임무 부대)이 유대인을 체포하여 총살하도록 파견되면서 거의 즉시 시작되었다.[132]

나치 이데올로기와 지역 주민 및 소련 포로에 대한 학대는 전선 뒤에서 싸우는 파르티잔을 고무했다. 이는 반공산주의자나 비러시아 민족주의자조차도 소련과 동맹을 맺도록 동기를 부여했으며, 소련 포로로 구성된 독일 연합 사단의 편성을 크게 지연시켰다.

바딤 에를리크만은 소련의 전쟁 관련 사망자 수를 총 2,650만 명으로 추산했다. 여기에는 군사 손실 1,060만 명(전사/실종 600만 명, 포로 사망 360만 명, 준군사 및 소련 파르티잔 손실 40만 명)과 민간인 사망자 1,590만 명(군사 행동 150만 명, 나치 대량 학살 및 보복 희생자 710만 명, 강제 노동 180만 명, 기아 및 질병 550만 명)이 포함된다.

벨라루스는 전쟁 전 인구의 4분의 1을 잃었으며, 그중에는 사실상 모든 지식인 엘리트가 포함되었다.

소련 포로의 60%가 전쟁 중 사망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많은 수의 소련 포로, 강제 노동자 및 나치 협력자가 특별 NKVD "정화" 수용소로 보내졌다.

1947년에 작성된 공식 폴란드 정부의 전쟁 손실 보고서에는 2,700만 7,000명의 폴란드와 유대인 인구 중 602만 8,000명의 희생자가 보고되었는데, 이 보고서에는 우크라이나계와 벨라루스계의 손실은 제외되었다.

소련은 제네바 협약 (1929)에 서명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헤이그 협약의 조항에 구속된다고 간주했다.[139]

소련의 탄압 또한 동부 전선의 사망자 수에 기여했다. 대량 탄압은 폴란드 점령 지역뿐만 아니라 발트 국가와 베사라비아에서도 발생했다. 독일 침공이 시작된 직후, NKVD는 서부 벨라루스와 서부 우크라이나의 대부분 감옥에서 수많은 수감자를 학살했고, 나머지는 사망 행군으로 대피되었다.[141]

10. 결과

동부 전선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가장 크고 치열했던 전장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분쟁 중 하나로 꼽힌다. 약 3천만 명이 사망했으며,[315] 독일군 사망자의 80% 이상이 동부 전선에서 발생했다.[316] 이 전장은 다른 모든 전장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전투를 치렀으며,[7] 양측의 잔혹 행위와 이념 충돌이 극심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소련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독일군을 밀어붙였다. 1943년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군의 마지막 대규모 공세가 실패한 후, 소련군은 베를린을 향해 진격했다.

베를린 공방전은 1945년 4월 16일에 시작되어 5월 2일 베를린 함락으로 끝났다. 4월 30일, 아돌프 히틀러는 자살했고, 5월 8일 독일은 무조건 항복했다. 5월 9일은 소련의 승전 기념일로, 러시아와 구소련 국가들에서 기념되고 있다.

종전 직후의 나치 독일의 영토.


소련은 얄타 회담의 결과에 따라 독일인들을 추방했다.

소련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수많은 도시와 마을이 파괴되었고, 민간인 피해도 막대했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추축국의 침공으로 인한 소련의 피해는 약 6억 7900만 루블로 추정되었다.

동부 전선은 격렬함, 광포함, 잔인성에서 어떤 전쟁과도 견줄 바가 없었다. 수백만의 독일군과 소련군이 광범위한 전선에서 전투를 치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단일 전선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다. 추축군 500만 명이 전사했으며, 소련군은 1060만 명의 병사가 전사했다. 포로 생활 중 260만 명의 소련 병사가 죽었다. 소련의 민간인 피해는 1500만에서 최대 2500만 명에 달했다.

독일 및 그 동맹국의 동부 전선의 군사 피해[353] (단위 : 만 명)
추축군
총 사상전사/실종소련군 측 독일군 포로수감 중 사망한 포로
독일430.0310.0330.047.4967 ~ 120.0
독일군에 가담한 소련인21.5 이상21.5100.0알려지지 않음
루마니아28.18.150.020.0
헝가리30.010.050.020.0
이탈리아8.23.27.05.0
총계517.8 이상352.8545.0165.0



소련 및 그 동맹국의 동부 전선의 군사 피해[354] (단위 : 만 명)
소련군
총 피해전사 및 실종추축군 포로수감 중 사망한 포로
소비에트 연방1,060.0760.0520.0260.0
폴란드2.42.4알려지지 않음알려지지 않음
루마니아1.71.78.0알려지지 않음
불가리아1.01.0알려지지 않음알려지지 않음
총계1,065.1765.1528.0260.0


11. 지도 체제

소련과 나치스 독일은 각각 소비에트 공산주의와 나치즘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움직이는 국가였으며, 최고 정치 지도자들은 전체주의에 가까운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 따라서 이 전쟁의 성격은 제2차 세계 대전의 다른 어떤 전장보다 정치 지도자들과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훨씬 더 크게 결정되었다.

11. 1. 독일

아돌프 히틀러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을 이끌었다.


히틀러는 독일의 전쟁 수행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행사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지휘소 벙커(동프러시아 라스텐부르크, 우크라이나 비니차, 베를린 총통 관저 지하)에서 보냈다. 전쟁의 중요한 시기에 그는 매일 상황 회의를 주재했고, 뛰어난 연설 능력으로 장군들과 OKW 참모들의 반대를 수사학으로 압도했다.[321]

프랑스 전투에서 예상치 못한 독일의 성공으로 인해, 히틀러는 자신이 전쟁 수행의 전반적인 이해를 장군들이 능가하지 못하는 군사 천재라고 믿었다. 1941년 8월, 발터 폰 브라우히치와 페도르 폰 보크가 모스크바 공격을 요청했을 때, 히틀러는 우크라이나의 농지, 산업 및 천연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포위 및 점령을 명령했다. 일부 역사가들은 이 결정을 전쟁에서 승리할 기회를 놓친 것으로 간주한다.

1941년에서 1942년 겨울, 히틀러는 독일군의 후퇴를 허용하지 않은 자신의 완고함이 중앙군집의 붕괴를 막았다고 믿었다. 그는 에르하르트 밀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42년 6월, 독일 점령 우크라이나 폴타바에서 히틀러와 장교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페도르 폰 보크.


모스크바 외곽 고슴도치 방어의 성공으로 히틀러는 군사적으로 의미가 없을 때도 영토 유지를 고집했고, 명령 없이 후퇴한 장군들을 해임했다. 주도적인 장교들은 아첨꾼이나 광신적인 나치당원으로 대체되었다. 스탈린그라드, 코르순-체르카시 포위망 등에서 발생한 재앙적인 포위는 히틀러의 명령에서 비롯되었다. 히틀러가 후퇴를 승인하거나 정복지를 자발적으로 포기하지 않아 많은 사단이 "요새" 도시에서 고립되거나 부차적인 전장에서 쓸모없이 낭비되었다.

1944년 7월 20일 음모 실패 후, 히틀러는 육군과 장교단을 의심하고 친위대와 나치당원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히틀러의 전쟁 지휘는 독일군에게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왔지만, 장교와 병사들의 기술, 충성심, 전문성, 인내심 덕분에 독일은 끝까지 싸울 수 있었다. F. W. 윈터보텀은 벌지 전투 중 히틀러가 게르트 폰 룬드슈테트에게 서쪽으로 계속 공격하라고 명령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독일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나치 정권은 붕괴되어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연합군 군정기 (독일)). 이후 동서 진영의 대립으로 독일 연방 공화국(서독)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으로 분단되었다. 이러한 분단 상태는 1990년 독일 재통일까지 지속되었다.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의 구 독일 동부 영토를 상실했고, 이 지역과 동유럽에 살던 독일인들은 독일 본국으로 추방되었다(독일인 추방). 전쟁 배상으로 독일 국내 원료와 생산 설비가 현물 징수되었고, 소련군 포로가 된 독일군 병사들은 노무 배상을 부담해야 했다.

독소전은 연합국의 대 나치 독일 전쟁 중 가장 큰 전투 지역이었으며, 소련은 막대한 손실을 보면서 승리하여 전후 질서에서 초강대국 지위를 확립했다.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와 그 주변 지역, 커존 선 동쪽의 구 폴란드 영토를 확보했다. 소련은 점령한 동유럽 지역 정권을 사회주의화했고, 자유 선거를 통해 정체를 결정한다는 연합국 간 합의는 파기되었다. 미국, 영국과의 마찰은 커져 냉전으로 이어졌다.

독일 항복일은 유럽 전승 기념일로 기념되고 있다. 2004년 국제연합 총회는 5월 8일과 9일을 제2차 세계 대전 중 목숨을 잃은 모든 사람을 추모하는 날로 정했다.

독일 정부 내부에서는 승리 시 전후 구상에 대해 여러 방안이 있었다. 히틀러는 발트 3국을 독일에 병합하고, 우랄 산맥을 게르만인과 슬라브인의 국경으로 삼아,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의 광대한 지역에 독일인을 이주시켜 식민지로 확립하려 했다. 우랄 산맥 동쪽에는 농촌화된 약한 국가를 만들고, 강제 노동에 필요 없는 슬라브계 생존자들이 살게 할 예정이었다. 소련 도시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는 핀란드, 베사라비아(몰도바)와 우크라이나 도시 오데사루마니아에 할양할 방침이었다.

알프레트 로젠베르크는 동방에 친독일적인 민족 국가를 만들고 싶어했고, 독일 침략을 해방이라고 표현했다. 소련을 4개 국가로 분할하려 했다. 모스크바 주변 러시아 북서부, 북극 지방에서 투르키스탄까지 뻗은 지역은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카프카스, 우크라이나, 발트 3국·벨라루스 주변은 「오스트란트(동방 지역)」이었다. 이들 국가는 식민지 총독 권위를 가진 독일 전권대표에 의해 통치될 예정이었고, 우크라이나와 오스트란트에서는 실현되었다(동방영토). 크리미아 반도, 바투미(조지아)는 독일령으로 할 예정이었다.[212][213]

11. 2. 소련

이오시프 스탈린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소련을 이끌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전쟁 초기 대재앙에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이후 소련군의 승리에도 그에 못지않은 공헌을 했다. 소련군 재건은 스탈린이 1930년대 내내 최우선 순위로 추진했던 급속한 중공업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1927년 시작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28년 430만 톤이던 철강 생산량은 1938년에 1810만 톤으로 421% 증가했고, 화물차는 700대에서 18만 2천 대로 26,000%(260배) 증가했다. 1926년 소련 인구의 80%가 농업에 종사했지만 1939년에는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인구 통계에도 변화가 있었다.[322] 이러한 중공업 발전에 힘입어 소련의 군사력, 특히 무기 생산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1928년 소련군에는 전차가 98대뿐이었지만, 1935년 1월에는 10,180대로 늘었다. 1930년부터 1934년 사이 전투기 생산량은 4배, 폭격기 생산량은 5배 증가하여, 1928년 1,394대였던 군용기는 1935년에 6,672대로 증가했다.[323] 그러나 이러한 무기 생산은 생활수준을 희생하여 얻은 결과였다. 군수 부문에 투입된 국민 생산 비율은 제정 러시아 시절인 1913년 5.25%에서 1932년 9%, 1940년에는 19%로 증가했는데, 이는 평화 시에는 비정상적으로 많은 수치이다.[323]

전쟁 초기 소련을 힘들게 했던 요인 중 하나는 대숙청이었다. 1930년대 스탈린의 명령으로 진행된 붉은 군대의 대숙청은 많은 군 지휘관을 고발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사형이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기갑부대를 이용한 종심타격전술을 고안한 미하일 투하체프스키도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군대 내 반(反)스탈린 음모의 실재 여부는 역사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것이 대숙청의 이유가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1937년 6월 11일, 보로실로프의 고발로 시작된 군부 대숙청의 첫 희생자는 투하체프스키였다. 투하체프스키가 최초 숙청 대상이 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324] 투하체프스키 체포를 시작으로 대령부터 원수까지 837명 중 720명을 포함, 육군·해군 및 정치 장교를 포함한 전체 장교단의 45%가 처형 또는 면직되었다.[325] 1936년부터 1938년까지 41,218명이 면직되었다. 스탈린은 군대 기계화와 전차 생산에 반대한 그리고리 쿨리크 같은 개화반대론자(Obscurantism)를 승진시켰으나, 적백 내전 시기부터 자리를 지킨 늙은 지휘관들을 제거하고 젊은 장교들에게 기회를 주었고, 이들 중 상당수는 훌륭한 지휘관으로 성장했다. 많은 장교가 숙청되었지만, 1937년과 1938년의 순손실은 약 1만 명이었으며,[326] 숙청된 장교들도 1941년까지 80%가 복직되었다.

1939년부터 1940년 사이, 소련은 폴란드 동부, 발트 국가들, 베사라비아를 점령하면서 국경선과 소련군을 서쪽으로 이동시켰다. 이로 인해 소련군은 서쪽으로 돌출되어 포위에 취약해졌다. 스탈린은 독일과의 전쟁을 협상으로 피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전쟁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소련군은 새로운 국경에 전진 배치되었고, 소련군 공병대는 독일군이 보는 앞에서 국경 요새화 작업에 착수했다.[327] 이는 다가올 전쟁이 소련 국경 밖에서 벌어질 것이라는 가정하에 방어 계획을 수립한 결과였다. 소련군은 1940년 가을부터 독일과의 전쟁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었다.[327] 1941년 봄, 긴장이 고조되자 스탈린은 히틀러에게 공격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이 때문에 독일군이 국경 지대에 집결하고 독일 정찰기가 군사 시설을 정찰한다는 경고를 무시했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소련 공군은 전쟁 첫날 비행장에 있던 공군기를 대량으로 잃었다. 독일 침공 당일, 소련 공군은 국경 지대 66개 공군 기지에서 1,200대 이상을 상실했다.[328]

스탈린이 준비되지 않은 반격을 주장하면서 1941년 소련군은 전차 군단 대부분을 잃었고, 많은 전차가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기동했다. 일부에서는 스탈린의 공세 전략을 소련의 적극적인 전략 계획에 대한 논쟁거리로 삼기도 한다.

히틀러와 달리 스탈린은 교훈을 얻고 전쟁에 대한 입장을 바꾸었다. 그는 불충분한 준비의 위험성과 세묜 티모셴코, 게오르기 주코프 등이 포함된 스타브카(Stavka) 같은 유능한 지휘 통제 기구의 필요성을 점차 깨달았고, 무능한 지휘관은 제거했다.

1942년 가을 위기 상황에서 스탈린은 군대에 많은 양보를 했다. 인민위원(Commissars)을 지휘 계통에서 배제하여 단일 지휘 체계를 복원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된 반격 작전 천왕성 작전(우라노스 작전)은 주코프, 바실렙스키, 바투틴 등의 집단 작품이었고, 스탈린은 이전처럼 고집을 부리지 않고 장군들에게 맡겼다.[329]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모든 계급에 어깨 견장이 도입되었다. 이는 10월 혁명 이래 구체제의 상징물로 간주되었던 견장을 복원한 상징적인 조치였다. 1941년 가을부터 전투에서 뛰어난 부대에는 "근위" 칭호가 부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양보는 무자비한 기율과 함께 시행되었다. 1941년 7월 28일 발표된 명령 227호는 명령 없이 후퇴하는 지휘관을 군사 재판에 회부하겠다고 위협했다. 군 장교와 정치 장교가 명령을 어기면 형벌부대로 보내졌고, NKVD와 형벌 중대가 도주자를 사살했다.

소련의 승리가 분명해지자 스탈린은 선전물에 자신의 전쟁 지도력을 언급하도록 했다. 승리한 장군들은 밀려났고, 정치적 경쟁자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견제받았다. 스탈린과 다른 당 지도자들은 군부를 소비에트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330] 스탈린은 전쟁 전 소비에트 체제로 복원을 추진했다. 전쟁 후 소련군은 다시 숙청되었고, 게오르기 주코프, 로디온 말리놉스키, 이반 코네프 등 많은 성공한 장교들이 한직으로 밀려났다. 자신의 전공을 자랑했던 주코프는 1946년 4월 군사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혐의로 고발당했다. 1943년부터 주코프를 비롯한 고위급 장성들은 NKVD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주코프는 명성과 스탈린의 호의 덕분에 오데사 군관구 사령관이라는 한직으로 전출되었고, 이후 우랄 군관구로 다시 전출되었다.[331] 주코프뿐만 아니라 전쟁 영웅으로 칭송받던 많은 장군들이 한직으로 좌천되거나 숙청되었다.

참조

[1] 서적 War and Revolution in Yugoslavia, 1941-1945: Occupation and Collaboration Stanford University Press
[2] 서적 Joining Hitler's Crusade Cambridge University Press
[3] 서적 Иностранные войска, созданные Советским Союзом для борьбы с нацизмом Центрполиграф
[4] 서적 Stalins Fremde Heere Bernard & Graefe Verlag
[5] 서적 The Eastern Front: The Germans and Soviets at War in World War II https://books.google[...] Rowman & Littlefield 2018-08-15
[6] 서적 That conflict, which ended sixty years before this book's completion, was a decisive component – arguably the single most decisive component – of the Second World War. It was on the eastern front, between 1941 and 1945, that the greater part of the land and associated air forces of Nazi Germany and its Axis partners were ultimately destroyed by the Soviet Union in what, from 1944, its people – and those of the fifteen successor states – called, and still call, the Great Patriotic War
[7] 서적 Victory at Stalingrad Ro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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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문서 Year of 1941
[272] 서적 Vospominaniya i razmyshleniya Agenstvo pechati Novosti
[273] 서적 Velikaya Otechestvennaya voyna Izdatelstvo politicheskoi literatury
[274] 서적
[275] 웹사이트 Tartu in the 1941 Summer War http://www.bdcol.ee/[...] 2009-03-19
[276] 서적 Estonia 1940–1945: Reports of the Estonian International Commission for the Investigation of Crimes Against Humanity
[277] 논문 Hitler's Late Summer Pause in 1941
[278] 논문 Barbarossa Revisited: A Critical Reappraisal of the Opening Stages of the Russo-German. Campaign (June–December 1941)
[279] 간행물 밀리터리 리뷰
[280] 서적
[281] 서적 Estonia 1940–1945: Reports of the Estonian International Commission for the Investigation of Crimes Against Humanity
[282] 서적 Lenin, Stalin, and Hitler: The Age of Social Catastrophe Knopf
[283] 문서 스탈린이 6월에 독일이 침략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284] 논문 The Creation of Soviet Reserves and the 1941 Campaign 1986-01-00
[285] 문서
[286] 문서
[287] 서적
[288] 문서
[289] 문서
[290] 서적
[291] 문서 1943년 5월 13일, 튀니지의 추축군이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북아프리카 전역이 끝났다. 다음 차례가 유럽 본토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292] 문서 그러나 소련도 병력 자원이 마냥 무한대인 것은 아니어서 전쟁 말기에 이르면 각 사단의 실제 병력은 정원의 60~70퍼센트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병력 부족에 시달렸고, 모자란 병력을 전차와 대포의 화력으로 메웠다.
[293] 문서
[294] 서적 독소전쟁사
[295] 서적 독소전쟁사
[296] 서적 독소전쟁사
[297] 서적 독소전쟁사,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298]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299] 서적 독소전쟁사
[300] 서적 독소전쟁사
[301] 서적 독소전쟁사
[302] 서적 독소전쟁사
[303] 서적 독소전쟁사
[304] 서적 독소전쟁사
[305] 서적 독소전쟁사
[306] 문서 스탈린그라드에서 전멸한 6군이 아니라 그 뒤에 새로 편성된 부대다.
[307] 서적 독소전쟁사
[308] 서적 독소전쟁사
[309] 서적 독소전쟁사
[310] 서적 독소전쟁사
[311] 서적 독소전쟁사
[312]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13]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14]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15] 서적 Soviet Casualties and Combat Losses Greenhill
[316] 서적 Contemporary World History Cengage Learning
[317] 뉴스 Remembering a Red Flag Day http://www.time.com/[...] 2008-05-23
[318] 서적 Rulers and victims: the Russians in the Soviet Union http://books.google.[...] Harvard University Press
[319] 뉴스 The New York Times 1946-02-09
[320] 참고문헌 # Harvnb 템플릿은 일반적으로 참고문헌 스타일을 나타냅니다.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2007
[321] 문서 동프로이센의 것은 보통 켕트신|라슈텐부르크로 잘 알려져 있다
[322]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23]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24]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25]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26]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27]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28]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29]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30]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31]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32]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33]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34]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35]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36]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37] 문서 러시아 해방군
[338]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39] 웹사이트 대조국전쟁 중 소련의 사망자 통계 http://findarticles.[...]
[340] 웹사이트 Khatyn WWI Memorial in Belarus http://www.belarusgu[...]
[341] 웹사이트 제2차 세계 대전 중 벨라루스의 빨치산 저항 운동 http://www.belarusgu[...]
[342]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43]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44] 문서 이때의 경험으로 구소련은 전후에 세계 최초로 보병전투차(Infantry Fighting Viecle)인 BMP-1을 개발했으며, 독일 역시 마더 보병전투차를 개발했다.
[345] 문서 총력전 개념의 가장 철저한 응용
[346] 문서 전차나 전투기 등의 원조도 있었지만, 열차, 4륜 구동, 트럭, 반 궤도 차량 등의 지원도 많았다. 소련이 전차 생산에 집중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전차 외의 차량을 미국이 원조해준 일을 꼽는 경우도 있다.
[347] 서적 Russia's War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48] 서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349] 문서 1941년에서 1942년까지 독일 측 통계는 전차만 포함되어 있다. 돌격포와 같은 자주포는 회전식 포탑이 없었기 때문에 전차에 비해 생산비가 2/3 수준이었다(4호 전차의 경우 대당 단가가 10만 마르크였지만, 4호 돌격포는 8만 5천 마르크 정도였다). 이들 자주포들은 방어 임무에 더 적합했다. 그런 덕분에 독일은 전쟁 후반기에는 이러한 종류의 자주포 생산에 더 호의적이었다.
[350] 문서 1945년 통계는 명확한 수치가 없다. 소련 측의 1945년 통계는 전쟁이 끝난 후까지 포함한 1945년 전체의 것이다.
[351] 서적 The Dictators: Hitler's Germany, Stalin's Russia
[352] 서적 Voices from the Third Reich: An Oral History http://books.google.[...] Da Capo Press
[353] 서적 Deutsche militarische Verluste im Zweiten Weltkrieg Oldenbourg
[354] 서적 Poteri narodonaseleniia v XX veke: spravochnik Moscow
[354] 서적 Third Axis Fourth Ally Arms and Arm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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