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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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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싱은 1983년부터 1984년까지 NHK에서 방영된 일본의 연속 TV 소설로,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성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오싱이 갖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과정을 통해, 인내와 끈기를 보여주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이 작품은 일본 내에서 큰 인기를 얻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68개국에서 방영되어 아시아, 중동, 미주 등 다양한 국가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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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싱 - [TV프로그램]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포스터/DVD 커버 아트
장르텔레비전 드라마
방송 국가일본
방송사NHK
방송 시간월요일 - 토요일 08:15 - 08:30
방송 분량15분
방송 기간1983년 4월 4일 - 1984년 3월 31일
방송 회수297화
시대 배경1907년 (메이지 40년) - 1983년 (쇼와 58년)
촬영 방식4:3 SDTV
제작진
원작하시다 스가코
각본하시다 스가코
제작 총괄오카모토 유키코
음악사카타 고이치
나레이션나라오카 도모코
출연진
주요 배우고바야시 아야코
다나카 유코
오토와 노부코
이즈미 핑코
이토 시로
나카무라 마사토시
와타세 쓰네히코
기타 정보
언어일본어
문자 다중 방송자막 방송 (1983년 10월 3일부터 시험 방송)
이전 작품요이동
다음 작품로망스

2. 줄거리

1983년 일본 이세. 체인 수퍼마켓 다노쿠라 상점의 설립자이자 부사장인 오싱 할머니가 가출하는 일이 벌어진다. 가족들은 서로를 탓하며 대립하는데, 이때 오싱 할머니가 키운 손자 게이(八代圭일본어)는 할머니의 추억이 담긴 야마가타현의 긴잔온천을 찾아가 할머니를 만난다. 게이는 사업 때문에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에 감동하여 야마가타현, 도쿄, 이세 등을 함께 여행하며 추억을 되새긴다.

이야기는 1983년에 시작된다. 17번째 매장 개점 축하 행사에 참석하는 대신, 타노쿠라 신(오싱)은 기차 여행을 떠난다. 가족들은 오싱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몰라 난리가 나고, 오싱의 손자 케이는 코케시 인형 이야기를 기억하고 야마가타에서 오싱을 찾는다. 그들은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을 시작하여, 오싱이 수년 전 살았던 일본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그녀가 인생에서 겪었던 힘든 시간들을 기억하기 시작한다.

연속 TV 소설의 전형적인 작품인 “전쟁 중과 전후 혼란기를 씩씩하게 살아낸 한 여자의 일대기” 중 하나로, 아침 드라마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1983년부터 1984년까지 평균 시청률은 52.6%, 최고 시청률은 1983년 11월 12일 방송된 제186회의 62.9%(비디오리서치 조사, 간토 지방·세대)로 일본 TV 드라마 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17] 고바야시 아야코가 어린 시절 오싱 역, 타나카 유코가 청년기·성년기 오싱 역, 오토하 노부코가 중년기 오싱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오싱의 어린 시절 고생뿐 아니라, 의리와 주변을 돌보지 않고 남을 밀어내 돈을 벌어도 결국 자신을 망하게 한다는 점, 인간으로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메시지를 오싱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난 많은 은인들의 말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오싱은 더부살이, 첫사랑, 결혼, 시집살이, 류조자살, 어머니죽음, 전쟁 등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2. 1. 더부살이 편

1901년 야마가타현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오싱은 1908년, 불과 7살의 어린 나이에 제재소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한다.[17]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을 아끼기 위해 채 썬 무로 무을 지을 정도였으니, 입 하나라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싱은 주인집 돈을 가져간 도둑으로 몰려 매질을 당하자 서러움을 느껴 제재소를 뛰쳐나온다.

눈밭에서 쓰러진 오싱은 러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쟁의 잔혹함에 회의를 느껴 탈영한 쥰사쿠(俊作일본어)에게 구조된다. 오싱은 쥰사쿠에게서 글과 산수를 배우며 비폭력주의를 배운다. 제재소에서 어깨너머로 가타가나를 익혔지만 히라가나를 몰랐던 오싱에게 쥰사쿠는 히라가나와 산수를 가르쳐 준 것이다. 어린 나이에도 오싱은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쥰사쿠가 헌병들에게 사살당하면서 행복은 깨지고, 오싱은 비폭력주의자를 비겁한 자로 잘못 여기는 마을 사람들의 무지에 상처받는다. 더 힘든 일은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빼고 모두 일을 하는데도 집안이 점점 더 기울어진다는 것이었다.

결국, 엄마가 술집 여자로 긴잔온천에 일하러 가게 되자, 오싱은 동네 아줌마 리키의 소개로 해안 도시 사카타의 쌀 도매상 카가야(加賀屋|가가야일본어)에서 둘째 딸 사요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된다. 오싱은 자신과 동갑인데 학교를 다니고 가야금 공부도 하는 첫째 딸 가요를 보며 의문을 가지기도 하고, 거대한 창고에 각 지역 지주들에게 산 들을 쌓아놓을 정도로 부유한 카가야의 모습에 충격을 받기도 하지만, 자신의 일을 열심히 찾아서 하는 성실함으로 적응해 간다. 그리고 상업으로 많은 돈을 버는 카가야의 활기찬 모습을 보면서 상업에 눈을 뜨게 된다.

2. 1. 1. 가출

1983년 일본 이세(伊勢일본어)에서 체인 수퍼마켓 다노쿠라 상점의 설립자이자 부사장인 오싱 할머니가 가출하는 일이 벌어진다. 가족들은 혹시라도 어머니를 섭섭하게 해드린 것은 없는지 걱정하면서도 서로의 탓을 하며 대립한다. 이때 두 살 때 오싱이 데려다가 키운 양자인 노조미(八代希望일본어)의 아들이자 오싱 할머니의 손자인 게이는 할머니의 추억이 담겨 있는 산촌 야마가타현의 긴잔온천(銀山温泉)을 찾아간다. 예상대로 야마가타현의 강물을 바라보는 할머니를 찾을 수 있었다. 게이(八代圭일본어)는 그동안 사업을 하느라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줍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에 감동받아 야마가타현, 도쿄, 이세 등을 돌아다니며 추억 여행에 동참한다.

게이는 코케시 인형 이야기를 기억하고, 그 이야기에 대한 직감으로 야마가타에서 오싱을 찾는다. 그들은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을 시작하여, 오싱이 수년 전 살았던 일본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그녀가 인생에서 겪었던 힘든 시간들을 기억하기 시작한다.

2. 1. 2. 더부살이

1907년, 야마가타현의 산골 마을에 사는 오싱은 7살의 어린 나이에 제재소로 더부살이를 가게 된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쌀을 아끼기 위해 무밥을 지어 먹을 정도였으니, 오싱이라도 나가서 입을 덜어야 했다. 하지만 오싱은 주인집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매질까지 당하자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제재소를 뛰쳐나온다.[17]

눈밭을 헤매다 쓰러진 오싱은 러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쟁의 참혹함에 회의를 느껴 탈영한 쥰사쿠(俊作일본어)에게 구조된다. 오싱은 쥰사쿠에게서 글과 산수를 배우며 비폭력주의 사상을 접하게 된다. 제재소에서 어깨너머로 가타가나를 익혔지만 히라가나를 몰랐던 오싱에게, 쥰사쿠는 히라가나와 산수를 가르쳐 준 것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싱은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17]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쥰사쿠는 헌병들에게 발각되어 사살당하고, 오싱은 비폭력주의자를 비겁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마을 사람들의 무지에 또 한 번 상처를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제외하고 온 가족이 열심히 일해도 집안 형편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갔다.[17]

오싱은 며칠 동안 눈보라 속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하려 하다가 거의 동사할 뻔했지만, 쥰사쿠에게 구조되어 목숨을 건진다. 쥰사쿠는 일본 제국 육군 병사 출신의 탈영병으로, 오싱은 눈이 녹을 때까지 그와 함께 지내며 읽고 쓰는 능력을 더욱 향상시킨다. 그러나 눈보라가 가라앉자 군 부대에 발견되고, 쥰사쿠는 총에 맞아 죽는다. 오싱은 군인들에게 심문을 받지만, 고위 장교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오싱은 군인들의 호송 제안을 거절하고 혼자 힘으로 집으로 돌아간다.[17]

2. 1. 3. 카가야

오싱은 동네 아줌마 리키의 소개로 해안 도시 사카타의 쌀 도매상 카가야(加賀屋|가가야일본어)에서 카가야의 둘째 딸 사요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된다. 오싱은 자신과 동갑인데 학교를 다니고 가야금 공부도 하는 첫째 딸 가요를 보면서 의문을 가지기도 하고, 거대한 창고에 각 지역 지주들에게서 산 을 쌓아놓을 정도로 부유한 카가야의 모습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열심히 찾아서 하는 성실함으로 적응해 간다.[21] 그리고 상업으로 많은 돈을 버는 카가야의 활기찬 모습을 보면서 상업에 눈을 뜨게 된다.[21]

오싱은 카가야에서 베이비시터 일을 하게 되었는데, 자신과 같은 나이의 가가야의 장녀이자 후계자인 카요(加代)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가가야의 어머니이자 주인인 야시로 여사(八代夫人)는 오싱을 카요가 좀 더 현명해지고 버릇없는 행동을 덜 하도록 만들기 위한 모범으로 여겼다. 카요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결국 두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되었다. 야시로 여사는 오신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주판을 이용하여 직접 읽기, 쓰기, 산수를 가르쳤다. 카요의 어머니는 오신이 받는 관심에 불만을 느꼈고, 하인에게 그런 대우를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신이 넘어지는 전봇대에서 카요를 구해주자 그녀는 오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오신은 16살이 될 때까지 8년 동안 가가야에 머물렀다.

2. 2. 첫사랑 편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고우타는 민중운동을 하다가 쫓기던 중 해변에서 오싱과 만났다. 처음에는 서로 경계했지만, 오싱은 고우타를 이해하면서 가까워졌다. 가요 또한 고우타에게 호감을 느껴, 오싱 대신 약속 장소에 나가 고우타와 도쿄로 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가가야 집이 발칵 뒤집히자, 오싱은 마음의 부담을 느껴 가가야를 떠나 집으로 돌아온다.

오싱은 더부살이 기간 동안 여걸(女傑)답게 여자도 배워서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고 믿는 큰방마님 구니(國일본어)의 배려로 주산, 회계, 서예, 다도, 꽃꽂이, 요리를 배운다.

어느 날 오싱의 큰 언니 하루가 제사공장에서 혹사당하다 폐결핵에 걸려 집으로 온 뒤에 그녀를 보살피고 아버지의 의견과 다르게 사카다에 있는 후지에게 전보를 해 하루를 만나게 한다. 오싱은 아버지에게 수 차례 맞고 그 오빠 쇼지는 돈없다라는 한탄만 늘어놓는다. 그녀가 마음속으로 연모하던 히라노를 하루에게 데리고 와서 하루의 깊은 연모의 사정을 풀게하고 히라노가 가져온 꽃을 단 한 송이라도 좋으니 말려 관에 넣어달라 한다. 그런데 아버지 사쿠조가 중개인 가츠지에게 야마가다의 큰 음식점으로 오싱을 팔려하자, 속뜻을 알아차린 하루는 "창녀로 팔려가서 우는 아이들이 많다...도망가라! 더부살이를 가려던 집이다. 제사공장이나 더부살이같은 단순노무직으로는 삶이 나아질 희망이 없다. 기술을 배워서 장사를 해야 한다."라면서 오싱을 죽을 힘을 다해 설득하고 그 날 새벽 죽는다. 하루의 장례식 이후 오싱은 언니의 유언이니 가야한다고 어머니 후지에게만 얘기 후 도쿄로 향한다.

2. 2. 1. 첫사랑과의 만남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고우타는 민중운동을 하다가 쫓기던 중 해변에서 오싱과 만났다. 처음에는 서로 경계했지만, 오싱은 고우타를 이해하면서 가까워진다. 카요 또한 고우타에게 호감을 느껴, 오싱 대신 약속 장소에 나가 고우타와 도쿄로 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32] 이 때문에 가가야 집이 발칵 뒤집히자, 오싱은 마음의 부담을 느껴 가가야를 떠나 집으로 돌아온다.

어느 날, 수수께끼의 남자 고타 타카쿠라(高田孝太郎)가 사카타를 방문했다. 오싱이 해변에 있던 카요를 찾고 있을 때, 고타는 경찰을 피하기 위해 오싱을 여자친구로 이용했다. 카요와 오싱의 삶은 부유한 지주가의 아들이자 사회주의 신봉자인 이상주의자 고타에 의해 바뀌었다. 고타는 정치적 선동과 토지 개혁을 통해 빚에 시달리는 소작농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했다. 고타는 오싱에게 자신의 정치적 동원 노력을 밝히고 그의 이상과 열정으로 그녀의 마음을 얻었다. 불행히도 카요와 오싱 모두 고타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고타는 단순한 열정이라고 생각하며 카요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싱에 대한 사랑을 선언했다.

한편 야시로 여사는 오싱에게 일본 다도와 다른 여성 예술을 가르쳐 좋은 결혼을 할 가능성을 높였다. 그녀는 오싱을 사카타의 부유한 집안의 둘째 아들과 맺어주려고 했지만, 오싱이 고타를 몰래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은 무산되었다. 그림과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워온 카요는 가가야를 물려받을 생각도, 결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여성 예술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믿었다. 반항적인 카요는 예비 신랑을 만나기로 한 날 집을 나와 마지못해 고타와 함께 도쿄로 도망쳤다. 카요가 가출한 것에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하며, 고타에 대한 진실을 가가야 가족에게 밝힐 수 없었던 오신은 죄책감에 시달려 가가야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2. 2. 2. 다카 미용실

언니 하루가 죽은 후, 오싱은 도쿄의 다카 전통미용실에서 일하게 된다. 일본의 전통적인 직업 교육 방식에 따라, 오싱은 청소, 요리, 바느질 등 막일부터 시작한다. 가가야에서 배운 가사 및 장사 경험 덕분에 오싱은 모든 일을 훌륭하게 해낸다. 꼼꼼한 성격으로 먼지 하나 없이 청소하고, 알뜰하게 식재료를 구매하여 단무지만 먹던 초라한 저녁 밥상을 채소 유부 볶음생선 조림이 있는 맛있는 밥상으로 바꾼다.

다카는 오싱의 능력을 눈여겨보고, 마침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본 전통 미용이 단순한 서양 미용에 밀려 쇠퇴하자 오싱에게 서양 미용을 권한다. 오싱은 기술을 배워 까페 웨이트리스들의 머리를 만져주는 출장 미용사로 독립한다. 웨이트리스들은 바쁜 삶 속에서도 오싱에게 하숙 살림살이를 구해줄 만큼 정이 많았고, 오싱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87]

2. 3. 시집살이 편

오싱은 긴자의 커피숍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가가야 가문의 장녀 가요를 통해 류조를 만난다. 사가 가문의 셋째 아들인 류조는 오싱에게 반해, 양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은 결혼한다.

류조의 사업은 전후 대공황과 그의 부족한 경영 능력으로 인해 기울기 시작한다. 가계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오싱은 이쇼의 미용실에서 다시 일하기 시작한다. 가장 역할을 맡게 된 오싱과 달리, 류조는 점점 낙담하고 술과 여자에게 의지한다. 오싱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는 것을 깨닫고 류조를 떠나기로 결심하지만,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오싱은 야시장에서 갱 두목 켄의 도움으로 류조와 함께 서양식 아동복을 판매하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여 성공한다. 그러나 관동 대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은 류조와 오싱 부부는 류조의 본가가 있는 사가현으로 간다. 오싱은 그곳에서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게 된다.

2. 3. 1. 결혼

오싱은 순수한 성정의 타노쿠라 류조와 신사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한 오싱은 남편을 어려서부터 보살펴온 겐지 할아범의 도움[89]상인으로서의 안목과 재능[90] 그리고 열정[91]으로 남편의 아동복 사업을 돕는다. 류조의 사업은 전후 대공황과 그의 부족한 경영 능력으로 인해 기울기 시작했지만, 오싱이 디자인한 서양식 아동복을 판매하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여 성공한다. 덕분에 사업은 빚을 내서 아동복 공장을 지을 정도로 번창했지만, 간토 대지진의 발생으로 몰락하고 만다. 미용 스승인 하세가와 타카와 미용사 시절 단골손님이었던 아테네의 소메코 무리들을 초대한 공장 개업식 날,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부랴부랴 집에 돌아오니 겐지 할아범은 그해 태어난 아들 다노쿠라 유(田倉雄일본어)를 무사히 지켜낸 채 시체로 발견되고, 집은 잿더미가 되었다.

2. 3. 2. 시집살이

관동 대지진과 그에 따른 화재로 공장과 집이 파괴되는 불행을 겪었다. 충실한 가신이었던 겐지는 유를 보호하다 목숨을 잃었지만, 유는 무사했다.[41]

꿈은 산산조각 나고 빚만 남은 채, 류조사가의 가족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결정한다. 오싱은 시어머니에게 받을 학대를 두려워하며 류조에게 도쿄에서 다시 삶을 꾸려갈 것을 권한다. 그러나 거듭된 실패에 류조는 재기할 의지를 잃었다. 오싱은 유와 함께 도쿄에 남고 싶어했지만, 가가야 가문이 오싱을 찾기 위해 도쿄로 보낸 후지는 아들을 위해 류조와 함께 있으라고 오싱을 설득한다.

사가에 도착하자 류조의 아버지 다이고로는 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그러나 기요는 류조에게 닥친 모든 재앙과 겐지의 죽음까지도 오싱 탓이라며 맹렬히 비난한다. 류조의 형 후쿠타로는 류조가 집을 나설 때 상속분을 받았으니 더 이상 가족에게서 한 푼도 받을 수 없다고 못 박는다. 기요는 생계를 위해 농사일을 해야 한다고 알린다. 오싱이 집을 나왔을 때 벗어나고자 했던 바로 그 삶이었다.

기요는 지나치게 통제적인 인물로, 오싱을 끊임없이 비판하며 류조에게는 아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쏘아붙인다. 류조와 오싱은 돈이 없어 비누, 바늘, 실과 같은 간단한 물건조차 살 수 없었다. 오싱은 마을 사람들에게 미용 서비스를 제공하려 했지만, 류조와 기요는 가문에 수치를 안긴다며 허락하지 않았다. 류조가 기요에게 돈을 요구하자, 기요는 류조에게 불평하는 오싱을 꾸짖어 부부 사이에 갈등을 일으킨다.

오싱은 가까운 마을이나 도쿄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류조는 돈이 없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며 망설인다. 그는 10년 후 자신이 소유하게 될 바다를 매립하는 사업에 참여하기로 한다. 오싱은 위험한 사업에 대해 걱정하지만, 류조는 계속 추진한다. 오싱이 계속 가족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동안, 류조는 오싱의 불평에 지쳐 기요 편을 들기 시작한다. 심지어 기요의 기쁨 속에 다른 방으로 옮겨가고, 기요는 류조에게 오싱과 이혼하라고 부추긴다.

어느 날, 오싱은 지진 후 도쿄로 돌아와 몇 달 뒤 미용실을 다시 열 거라는 이쇼의 편지를 받는다. 오싱은 때가 되면 이쇼가 있는 도쿄로 가기로 결심한다. 도망칠 계획을 세우던 중, 오싱은 둘째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도쿄행 기차를 타는 날, 류조는 이 사실을 알고 오싱을 막는다. 오싱이 남을 생각이 없자 아들을 빼앗으려 오싱과 몸싸움을 벌인다. 오싱은 넘어져 머리를 다치고 오른쪽 반신이 마비된다. 결국 류조의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싱의 손이 부분적으로 마비되어 요리, 바느질, 유를 돌볼 수 없게 되자, 기요가 유를 돌보게 된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손이 아닌 머리였기에 류조를 포함한 가족들은 오싱이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것을 아는 오싱은 임신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류조는 오싱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둘은 다시 가까워진다.

불행히도 기요는 오싱이 도망칠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알고 집에서 쫓아내려 한다. 류조는 오싱이 임신했으므로 가족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밝힌다. 하지만 기요는 오싱과, 역시 임신한 딸 리츠코가 같은 집에서 동시에 출산하는 것은 불길하다고 여긴다. 둘 중 하나의 출산은 좋지 않을 거라는 속설 때문이었다. 오싱은 기요가 미신이 현실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헛간으로 옮기는 데 동의한다.

리츠코는 힘겨운 진통 끝에 건강한 아기를 출산한다. 오싱도 동시에 진통을 겪지만, 영양실조와 강제 노동으로 인해 아기는 너무 약해 살아남지 못한다.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오싱의 정신은 무너진다.

리츠코에게는 아기를 위한 모유가 충분하지 않자, 기요는 류조에게 오싱에게 아기에게 모유를 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에는 그 생각에 놀랐지만, 오싱을 위로하고 정신을 회복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동의한다. 아기에게 젖을 먹인 후 오싱은 정신을 차리고 아기에게 계속 젖을 주기로 한다. 기요는 크게 감동하고 감사하며 오싱을 더 잘 대해주겠다고 약속한다.

한 달 뒤, 리츠코는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가족은 모르지만, 오싱은 사가에서 평생 농사일만 해야 하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미 집을 나가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이제 자신의 임무를 다했으니, 오싱은 가족에게 도쿄로 떠날 것이라고 알린다. 류조는 사랑의 표시로 그녀를 보내주고,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헤어진다. 류조의 아버지와 형은 도쿄에서 도움이 될 돈을 준다. 그러나 기요는 격분하며 오싱이 유를 데려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떠날 준비를 하던 중, 류조의 올케 가스미가 자신이 유를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기요가 유를 넘겨주기를 거부하자, 오싱은 올케를 믿을 수밖에 없다. 가스미는 약속을 지켜 기요가 외출한 사이 유를 몰래 데리고 나와 오싱과 함께 도쿄로 떠난다.

2. 4. 유랑 편

사가에서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한 오신은 도쿄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류조는 오신을 보내주고,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류조의 아버지와 형은 오신에게 도쿄에서 도움이 될 돈을 준다. 하지만 시어머니 키요는 격분하여 오신이 아들 유를 데려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류조의 올케인 카스미는 자신이 유를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키요가 유를 넘겨주기를 거부하자, 오신은 올케를 믿을 수밖에 없다. 카스미는 약속을 지켜 키요가 외출한 사이 유를 훔쳐 오신과 함께 도쿄로 떠난다.

오신은 도쿄에서 이쇼에게 따뜻하게 환영받지만, 손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미용 일을 재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목 켄은 오신이 밤시장에 음식 노점을 열고 자신의 집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켄의 파트너였던 여자가 나타나 켄이 오신과 바람을 피우고 돈을 모두 오신에게 썼다고 비난한다. 켄은 오신을 사랑한다고 인정하지만, 잘못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오신은 자신 때문에 다른 여자가 슬픔에 잠겼다는 사실에 충격과 슬픔을 느끼며, 켄의 마음에 불편함을 느낀다. 이쇼가 오신에게 함께 있자고 간청했지만, 오신은 이쇼에게 짐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아 노점을 정리하고 야마가타의 친정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2. 4. 1. 밥집

4년 만에 딸 오신을 만난 후지는 기뻐하지만, 오신이 머물겠다는 것을 알게 된 오신의 오빠는 차갑게 대한다. 그들은 오신과 유를 위해 충분한 음식이 없었다. 후지가 오신을 보호하려는 시도는 오빠와 그의 아내와의 불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오신은 다른 농부들을 도와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어느 날, 오신은 가가와 여주인이 중병에 걸려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오신은 여주인과 최후의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가가와를 방문한다. 가요의 남편 마사오가 을 들고 오지만, 가요는 다른 여자와 아이를 낳은 것을 용서할 수 없어 그를 내쫓으려 한다. 오신은 가가와에 상속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가요에게 마사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라고 설득한다. 마사오가 가가와 집으로 돌아오는 계획이 세워진다.

가요는 오신의 상황을 알게 되고, 오신에게 사카타에 남아 가게를 열 것을 설득한다. 오신은 가가와로부터 융자를 받아 간단한 식당을 열기로 한다.

오신의 식당은 첫날 손님이 없었다. 3일 동안 광고를 한 후, 식당은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한다. 가요의 아버지와 남편이 이제 가게를 인수했기 때문에, 가요는 오신의 식당을 돕기로 한다. 마사오가 가요가 식당을 돕는 것을 허락하자 가요는 놀라고 감동한다.

어느 저녁, 술에 취한 손님이 식당에 와서 사케를 요구한다. 오신은 사케를 팔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에게 떠날 것을 요구한다. 손님은 점점 더 공격적으로 변하고, 결국 가요가 사케를 가져와 오신에게 그렇게 하면 더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오신은 식당이 술집으로 변하는 것을 원치 않아 망설인다.

결국, 현지 야쿠자들이 오신의 낮은 가격이 다른 술집들의 사업을 해치고 있다며 사케 판매를 중단하라고 식당에 나타난다. 그들이 가게를 부수기 시작하자, 가요는 겁에 질려 야쿠자들에게 따르겠다고 말하지만, 오신은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들에게 문제를 밖으로 가져가라고 주장하며, 오신이 도쿄 켄의 집 야쿠자 인사를 하자 야쿠자들은 놀란다. 곧, 그들은 모두 오신의 식당에서 따뜻한 사케를 즐기고 있으며, 현지 야쿠자들은 오신을 누이라고 부르며 보호를 약속한다. 오신은 나중에 가요에게 사실 자신은 켄의 야쿠자 집단에 속하지 않고 켄에게서 인사를 배웠다고 고백한다.

오신의 식당은 이제 류조, 오신, 유를 부양할 만큼 장사가 잘된다. 오신은 1년 동안 류조에게 편지를 꾸준히 썼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 오신은 기요가 오신의 편지를 가로채고 있었기 때문에 류조는 오신이 어디에 사는지조차 몰랐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오신은 류조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쓰기로 한다. 류조가 답장을 하지 않으면, 그를 포기할 것이다.

2. 4. 2. 생선장사

어촌 이세의 히사(神山일본어)아줌마 집에서 생선 장수를 시작한다.[92] 유랑을 끝내고 정착한 오싱은 도매상인 히사 아줌마에게 생선을 사서 장사를 시작하는데, 상술[92]과 성실함, 그리고 해박한 생선 지식[93]으로 마을 사람들의 신용을 얻는다. 간척 사업이 천재지변으로 실패한 남편과 다시 새 출발을 한 것은 더 큰 기쁨이었다. 남편은 만주로 떠나려고 했다가 아내가 고생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서 생선 장사에 동참했고, 오싱이 그동안 모은 돈으로 생선 가게를 열자 열심히 일한다. 오싱은 한때 도쿄의 멋쟁이였던 남편이 장사를 배워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든든함과 행복을 느낀다.

2. 5. 통곡 편

오싱은 어머니 후지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슬픔을 겪는다. 얼마 후, 불경기로 가가야가 망하고 매춘부로 전락한 가요의 아들 노조미를 입양한다. 농민운동을 하던 고우타는 가요의 묘 앞에서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몇 년 후 사상 전향을 하고 출옥한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큰아들 유가 필리핀에서 전사하고, 수양딸 하쓰코가 가출하는 일도 있었다. 가장 큰 슬픔은 남편 류조가 전쟁에 가담한 죄책감으로 자살한 것이었다.[17]

오신은 슬픔을 딛고 작은 아들 히토시, 수양딸 하쓰코, 딸 데이와 함께 식료품가게를 운영하며 여러 지점을 둔다. 히토시는 부잣집 딸 미치코와 결혼하지만, 미치코는 시어머니 속을 썩인다. 다행히 노조미와 하쓰코는 도공과 수예품가게 주인의 길을 걸으며 삶을 개척한다.[17]

사가에서 류조의 아버지 다이고로는 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반기지만, 키요는 모든 재앙이 오신 탓이라며 비난한다. 류조의 형은 상속분을 받았으니 더 이상 돈을 받지 못할 것이라 하고, 키요는 생계를 위해 농사일을 해야 한다고 알린다.

키요는 지나치게 통제적인 인물로, 오신을 비판하며 류조에게는 아내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나무란다. 오신은 미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하지만, 류조와 키요는 가문에 수치를 준다며 허락하지 않는다.

오신은 도쿄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류조는 돈이 없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10년 후 바다를 매립하는 사업에 참여하기로 한다. 오신은 걱정하지만, 류조는 추진한다. 류조는 오신의 불평에 지쳐 어머니 편을 들고, 키요는 류조에게 오신과 이혼하라고 부추긴다.

오신은 이쇼에게서 미용실을 다시 열 것이라는 편지를 받고 도쿄로 갈 결심을 한다. 그러나 도망치기 전,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도쿄행 열차를 타는 날, 류조는 임신 사실을 알고 오신을 막는다. 몸싸움 끝에 오신은 머리를 부딪혀 오른쪽이 마비되고, 류조의 집으로 돌아간다.

오신이 부분 마비로 집안일을 할 수 없게 되자, 키요가 유를 돌본다. 가족들은 오신이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하지만, 류조는 오신의 임신을 알고 다시 가까워진다.

키요는 오신이 도망칠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알고 내쫓으려 한다. 류조는 오신의 임신을 밝히지만, 키요는 오신과 딸 리츠코의 동시 출산이 불길하다고 여겨 오신을 헛간으로 보낸다.

리츠코는 건강한 아기를 낳지만, 오신은 영양실조와 강제 노역으로 아기를 잃는다. 리츠코의 모유가 부족하자, 키요는 류조에게 오신에게 모유 수유를 허락해 달라고 부탁한다. 오신은 아기에게 젖을 먹이며 정신을 차리고, 키요는 오신을 더 잘 대해주겠다고 약속한다.

한 달 후, 오신은 사가에서 평생 농사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도쿄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류조는 사랑의 표시로 보내주고, 류조의 아버지와 형은 돈을 준다. 키요는 오신이 유를 데려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지만, 류조의 올케 카스미가 유를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카스미는 약속대로 키요가 외출한 사이 유를 훔쳐 오신과 함께 도쿄로 떠난다.

2. 5. 1. 어머니의 죽음과 가요의 몰락

후지는 나이가 들어 밭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아들과 며느리는 무능한 노모를 부담스러워했다. 오신이 어머니를 이세로 초대하는 편지를 쓰자, 오신의 오빠는 어머니가 오신과 영원히 함께 살기를 바랐다. 오신 부부가 어머니를 설득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오신은 셋째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후지는 부담이 될까 걱정했지만, 오신 부부의 간절한 설득에 오신이 아기를 낳을 때까지만 함께 지내기로 한다. 오신은 가가야의 후계자를 임신한 가요의 소식에 기뻐한다.

오신은 건강한 사내아이 히토시(자비)를 낳지만, 출산 직후 후지는 쓰러진다. 검사 결과 치료 불가능한 백혈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된다. 오신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약해진 어머니를 업고 야마가타의 집으로 데려간다. 후지는 자신의 집에서 오신의 품에 안겨 죽는다.[16]

오신은 가요의 남편 마사오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타가 나타나 도쿄에 사는 가요에게 100엔을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류조는 주소를 보더니, 지진 전에는 매춘 업소가 많은 나쁜 동네였다고 말한다. 오신은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가요가 매춘부가 될 리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지만, 류조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고 경고한다.

오신은 켄의 도움으로 도쿄의 요정에서 가요를 찾는다. 매춘부가 된 가요는 마사오가 가가야의 전 재산을 쌀 파생상품 투기에 탕진하여 실패했다고 털어놓는다. 가요와 부모는 도쿄로 왔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마저 병에 걸려, 가요는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매춘부가 되었다. 부모의 유골을 사카타로 돌려보내 제대로 장례를 치를 수도 없게 된 가요는 아들 노조미를 위해 살아간다.[17]

오신은 가요를 매춘부 생활에서 빼내는 데 필요한 1,000엔을 마련할 수 없어, 노조미만이라도 이세로 데려가기로 한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켄과 함께 요정으로 돌아왔을 때 가요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요는 평소 위가 약했는데 전날 술을 많이 마시고 토혈하여 질식사했다.[18]

오신은 가요의 유품에서 편지를 발견한다. 가요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신을 다시 만난 후 노조미를 오신에게 맡길 수 있게 되었다. 오신은 그날부터 노조미를 자신의 아들로 여기겠다고 맹세한다.[18]

2. 5. 2. 고우타의 체포와 전쟁의 비극

일본은 군부 통치 시대에 접어들었다. 류조는 어업과 병행하여 군부와 관계를 맺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했지만, 오신은 반대했다. 그러나 류조의 뜻을 헤아리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결국 승낙한다. 당시 군부의 선전으로 인해 유는 군부에 동조하고 중일전쟁을 지지하기 시작한다.

유가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면서 류조에게 군사학교 진학 허락을 요청한다. 군인이 되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한 교육을 받는 곳이었다. 오신은 이 대화를 엿듣고 류조가 허락하려는 순간 개입한다. 평화주의 신념을 가진 오신은 유가 군사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다. 유가 자신의 결정을 고수하자, 하츠코는 유에게 어린 시절 유가 힘든 시기를 겪을 때 오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상기시킨다. 오신의 뜻을 존중하여 유는 군사학교 대신 교토의 학교에 인문학을 공부하기로 한다.

1940년이 되자 전쟁 수행을 위한 식량 배급이 강화된다. 암시장이 생겨 배급품이 불법적으로 거래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암시장에서 불법 수입 어류가 판매되자 오신은 문제를 피하기 위해 가게 문을 닫게 된다. 어부 부족과 배급 문제로 히사는 도쿄로 이사 간다. 이후 오신의 가족은 이전에 군인이 살던 평양으로 이주한 사람의 집으로 이사한다. 유가 방문했을 때 유와 하츠코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지만, 류조는 이를 반대한다. 류조는 군 위원회에 참여하여 지역 소년들의 입대를 독려하고 군복 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1943년 유가 다시 방문할 때까지 생활은 평소와 같이 이어진다.

유는 류조에게 학생 징집 면제가 폐지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한 달 안에 입대해야 한다는 소식을 오신에게 전한다. 충격받은 오신은 유 앞에서 울면서 어린 시절 평화주의를 심어준 탈영병 순사쿠를 배신한 기분이라고 말한다. 한 달 후 유는 군복을 입고 떠난다.

공습의 공포가 시작되자 류조는 테이를 시골로 보내 공습 피해를 막을지 고민한다. 류조는 공장 직원의 집에 테이를 보내지만, 테이는 학대와 방치를 당한다. 일본이 패색이 짙어지자 유의 부대는 일본의 공습으로부터 안전한 필리핀으로 파병된다. 히토시는 전쟁에 동참하겠다며 가미카제 특공대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하지만, 오신과 류조는 반대한다. 그러나 히토시는 몰래 가미카제에 합류한다.

오신의 가족은 첫 공습을 경험하고, 오신은 방공호로 대피하는 대신 집이 불타는 것을 막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 폭탄이 불길에 휩싸이기 전에 노조미와 하츠코는 물통을 준비하고 열심히 불을 끄려고 하지만, 자신들이 운영하는 공장이 불타는 것을 목격한다. 공습 후 오신은 유가 필리핀에서 전사했다는 전보를 받는다. 오신은 유의 시신을 보거나 그의 절친으로부터 유가 말라리아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곧 일본의 항복이 1945년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류조는 곧 자신의 회사가 완전히 파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에 두려움, 실망, 분노를 느낀 류조는 오신과 그의 가족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에서 자살하는 것이 발견된다.

2. 5. 3. 가족의 성장과 새로운 시작

4년 후, 켄이 오사카로 가는 길에 이세에 들러 야마가타 출신의 9살 소녀 하츠코를 데려온다. 켄은 하츠코를 오사카의 매춘굴에 팔려고 했으나, 오신과 류조는 50JPY을 지불하고 하츠코를 데려와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교육시킨다. 하츠코는 오신의 아들들과 가깝게 지내며, 유의 시험 합격을 위해 마을 미신에 따라 찬물 끼얹는 기도를 할 정도로 가족을 생각한다.

히토시와 노조미의 입학 전날, 오신은 노조미에게 친부모가 야시로 부부임을 알린다. 노조미는 학교에서 고아라고 놀림을 받고 가출하지만, 오신은 가요의 묘소에서 노조미를 찾아 뺨을 때리며 인생의 어려움에 맞서라고 가르친다. 노조미는 다시 학교에 가기로 약속하고, 오신은 가족 모두가 그를 사랑한다고 다독인다.

오신은 다시 임신하고, 류조는 기뻐하지만 하츠코를 친부모에게 돌려보내는 것을 고민한다. 오신은 망설이고, 결국 하츠코는 스스로 가족에게 짐이 될까 봐 걱정하지만, 류조와 오신은 하츠코의 진심을 알고 기쁘게 가족으로 맞이한다. 오신은 딸 테이를 낳는다.

전쟁 후 10년, 55세가 된 오신은 히토시와 함께 수산물과 채소를 파는 가게를 운영한다. 켄은 하츠코가 도쿄의 매음굴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오신은 하츠코를 찾아 설득하여 집으로 데려온다. 히토시는 사업가가 되기 위해 도쿄로 떠났다가 돌아와 부유한 사업가의 딸 미치코와 결혼하려 하고, 이에 오신은 크게 반대한다.

2. 6. 완결 편

오싱은 노조미를 이세로 데려와 류조의 도움을 받는다. 그들은 가요와 그녀의 부모 유골을 이세에 묻어 노조미가 그들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고, 노조미가 원한다면 언젠가 사카타로 모실 수 있게 한다.

어느 날, 고타가 이세에 온다. 그는 아침에 조문하기 위해 가요의 묘소 위치를 오신에게 묻는다. 오신은 노조미를 보여주기 위해 그곳에서 만나겠다고 하지만, 고타는 경찰의 추격을 우려하여 거절한다. 다음 날 아침, 오신은 노조미와 히토시와 함께 묘소에서 고타를 기다리지만, 고타가 도착하자 모스크바로 탈출을 계획했다는 혐의로 특별 경찰에게 체포된다. 경찰은 고타가 가요에게 향을 피우도록 한 후 그를 데려간다. 고타는 오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모른다고 가장하지만, 오신은 고타가 끌려가는 것을 보고 비통해한다.

4년 후, 켄이 오사카로 가는 길에 이세를 방문한다. 그는 야마가타 출신의 9살 소녀 하츠코를 동행하는데, 그는 하츠코를 오사카의 매춘굴에 청소부로 팔려고 한다. 켄은 하츠코의 부모와 관련이 있는데, 그들은 소작농이며 올해 흉작으로 딸을 50JPY에 팔아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하츠코의 힘든 운명과 밝은 적응력은 오신에게 어린 시절의 자신과, 살았다면 하츠코와 같은 나이였을 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부부는 50JPY을 지불하고 하츠코를 데려온다. 류조와 오신은 하츠코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그녀의 교육까지 챙긴다.

하츠코는 오신의 아들들과 가까워진다. 곧 유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다. 유는 어머니가 자신을 돌보기 위해 항상 열심히 일했기에 시험에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고 하츠코에게 말한다. 시험 전날 밤, 오신과 류조는 흐르는 물소리에 잠에서 깬다. 마당으로 나가보니 하츠코가 유의 시험 합격을 기원하며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는 마을의 미신이다. 가족들은 그녀의 진심 어린 행동에 감동한다.

히토시와 노조미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날, 오신은 노조미에게 그가 입양아이며 그의 친부모가 야시로 부부임을 알려준다. 그녀는 그를 친부모의 묘소에 데려간다. 노조미는 그 사실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첫 등교일에 괴롭힘을 당하고 가출한다. 가족들은 밤낮으로 노조미를 찾고, 괴로워하던 오신은 가요의 묘소에서 노조미를 발견한다. 그녀는 노조미를 보고 괴롭힘에 맞설 만큼 강하지 못하다며 뺨을 때린다. 그리고 인생은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노조미는 다시 학교에 가겠다고 약속하고, 오신은 가족 모두가 그를 가족으로 여긴다고 다시 한번 말한다. 오신은 노조미를 집으로 데려오고, 그는 모두에게 따뜻하게 환영받는다.

오신은 자신이 다시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류조는 기뻐하지만, 생계가 걱정되어 하츠코의 3년 계약이 끝나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돌려보내자고 제안한다. 어쨌든 하츠코의 부모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신은 하츠코를 보내는 것을 망설이고, 때가 되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신은 건강한 여자아이를 낳고, 테이(禎|테이일본어, 행복)라고 이름 짓는다. 계약 기간이 끝난 하츠코는 아기가 생겼으니 가족에게 짐이 될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류조와 오신은 하츠코가 사실은 남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고, 기쁘게 그녀를 가족으로 맞이한다.

2. 6. 1. 히토시의 사업 실패와 가족의 위기

돈에 눈이 어두워 자신의 명의까지 도용해가며 땅을 사들인 아들 히토시. 결국 17호점을 개점하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회사는 망할 위기에 처한다.[94] 하지만 오싱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아들이 정신 차리기를 바라면서 일부러 부도를 막지 않았다. 친구 고우타에게 부탁하면 도울 수 있었지만, 아들을 위해 돕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처음에는 이혼 등으로 어려움을 피하려 했던 가족들이 집을 부동산에 내놓고 작은 집으로 이사할 생각을 할 만큼 의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한때 연인이자 친구였던 고우타의 친구가 무리하게 개업한 가게를 인수하면서 재기할 수 있게 되었다.

2. 6. 2. 오싱의 가출과 과거로의 여행

1983년 일본 이세. 체인 수퍼마켓 다노쿠라 상점의 설립자이자 부사장인 오싱 할머니가 가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가족들은 서로를 탓하며 대립하는데, 이때 오싱 할머니가 키운 손자 게이(八代圭일본어)는 할머니의 추억이 담긴 야마가타현의 긴잔온천을 찾아가 할머니를 만났다. 게이는 사업 때문에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에 감동하여 야마가타현, 도쿄, 이세 등을 함께 여행하며 추억을 되새겼다.

2. 6. 3. 재기와 새로운 희망

돈에 눈이 어두워 자신의 명의를 도용하면서까지 땅을 사들인 아들 히토시는 결국 17호점을 개점하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회사가 망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오싱은 물질 숭배에 빠진 아들이 정신 차리기를 바라면서 부도를 방관한다. 친구 고우타[94]에게 부탁하면 도울 수 있었지만, 아들을 위해 일부러 돕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도 처음에는 이혼 등으로 어려움을 회피하려 했던 가족들이 집을 부동산에 내놓고 작은 집으로 이사할 결심을 할 만큼 의연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또한, 한때 연인이자 친구였던 고우타의 친구가 무리하게 개업한 가게를 인수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3. 제작

'오싱'은 연속 TV 소설의 전형적인 작품으로, 전쟁 중과 전후 혼란기를 꿋꿋하게 살아낸 한 여자의 일대기를 다룬다. 이 작품은 아침 드라마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1983년부터 1984년까지 평균 시청률은 52.6%, 최고 시청률은 1983년 11월 12일 방송된 제186회의 62.9%( 비디오리서치 조사, 간토 지방·세대)로 일본 TV 드라마 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17]

주인공 오신 역은 고바야시 아야코(어린 시절), 타나카 유코(청년기·성년기), 오토하 노부코(중년기 이후)가 맡았다. 고바야시 아야코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고, 타나카 유코와 오토하 노부코는 직접 캐스팅되었다. 한 명의 주인공을 세 명의 배우가 릴레이 형식으로 연기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20]

이 작품은 오신의 어린 시절 고생뿐만 아니라, 의리와 주변을 돌보지 않고 남을 밀어내고 돈을 벌어도 결국 자신을 망하게 된다는 점, 인간으로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메시지를 오신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난 많은 은인들의 말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NHK 연속 TV 소설에서 처음으로 크레딧 롤에 방언 지도자가 명시된 작품이다(정착된 것은 『いちばん太鼓』부터). 타나카 유카리는 『오신』을 “‘본격 방언 드라마’의 시초”라고 평가하고 있다.[18] 1983년 10월 3일 방송된 제151회부터 일본 최초의 자막 방송 시험 방송이 진행되었다(본 방송은 『いちばん太鼓』부터).[19]

3. 1. '오싱' 탄생

おしん일본어은 야오한(Yaohan) 슈퍼마켓 체인을 남편 와다 료헤이(和田良平)와 함께 공동 설립한 와다 가츠(和田加津)를 모델로 한 일본 여성의 허구적인 전기이다. 이야기의 구조는 하시다 스가코(橋田壽賀子)가 모은 익명의 편지 모음을 통해 개발되었다. 하시다 스가코는 "그것은 메이지 시대 여성의 말할 수 없는 과거이며, 죽음을 앞두고 쓴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저는 그녀가 견습생으로 일하고 매음굴에 팔린 고난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 세대가 지켜야 할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주제가 너무 가혹하고 어두워서 모든 일본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거부했습니다. NHK조차도 반대했습니다." 하시다 스가코는 "메이지 시대의 문제에 맞설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당시 방송국장인 카와구치 미키오(川口幹夫, Kawaguchi Mikio)가 승인을 내리면서 결정되었다.[1]

3. 2. 캐스팅

고바야시 아야코가 연기한 소녀 시절 오싱 역은 5차례에 걸친 오디션 끝에 선발되었다.[51] 당초 제작진은 10세 전후의 아역을 찾고 있었으나, 오디션에는 대부분 초등학교 1, 2학년(만 6~8세) 정도의 아역들이 몰려왔다. 제작진은 난항을 겪던 중, TV 드라마에 출연한 경험이 있던 당시 초등학교 4학년(만 9~10세)이었던 고바야시 아야코를 발견하고 발탁했다.[51]

성인 오싱 역의 타나카 유코는 이전 드라마에서 하시다 스가코가 각본을 맡은 작품에 출연한 경험이 있었고, 시어머니 역의 오토와 노부코하시다 스가코가 각본을 맡은 NHK 대하드라마에 여러 번 출연한 경험이 있었다.[51]

3. 3. 드라마 촬영

연속 TV 소설의 전형적인 작품인 “전쟁 중과 전후 혼란기를 씩씩하게 살아낸 한 여자의 일대기” 중 하나로, 아침 드라마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주인공 오신 역은 고바야시 아야코(어린 시절), 타나카 유코(청년기·성년기), 오토하 노부코(중년기 이후)가 맡았다. 고바야시 아야코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고, 타나카 유코와 오토하 노부코는 직접 캐스팅되었다. 한 명의 주인공을 세 명의 배우가 릴레이 형식으로 연기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20]

4. 등장인물



드라마 오싱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 '''오싱'''(おしん):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고바야시 아야코(어린 시절), 타나카 유코(청년기·성년기), 오토하 노부코(중년기·노년기)가 연기했다. 한 사람의 주인공을 세 명의 다른 여배우가 릴레이 형식으로 연기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20] 오싱은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고생했지만, 씩씩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그 외 등장인물'''

이름설명배우
남자오싱이 항구에서 길거리 판매하던 오니기리를 받은 지 며칠 후, 가가야(加賀屋)라는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온다.가지 켄타로
손님오싱이 항구에서 길거리 판매하던 오니기리를 받은 지 며칠 후, 가가야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온다.시시도 큐이치로
남자오싱이 항구에서 길거리 판매하던 오니기리를 받은 지 며칠 후, 가가야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온다.오사카 켄, 오야 타카토시, 호리 타카히로
남자싸고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가가야 식당에 온다.에노키 헤이에
남자가가야 식당에 온 취객. 오신에게 술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1병에 15전에 마신다.미에마치 코지
다른 손님가가야 식당의 손님. 위의 취객에 휩쓸려 자신도 술을 주문한다.나카무라 슈
남자가가야 식당의 단골손님. 가게에 나타난 히데와 테츠에게 음식을 엎질러지게 하고 놀란다.시마무라 타쿠시, 타카하시 마사오, 하라 테이코, 시로 겐타
히데(秀) / 테츠(鉄)조폭 두목.레이젠 키미히로 / 미야구치 지로
손님가가야 식당의 손님. 가게를 나선 후, 코타가 가게에 들어온다.나카무라 타케미, 오가와 긴지, 우나바라 슌스케
손님가가야 식당의 손님. 가게 안에서 싸움을 시작했지만, 말리러 들어온 오신에게 위압감을 느껴 포기하고 돌아간다.오카다 마사노리, 나카지마 쓰기오, 쿠로다 이쿠마, 마치다 유키오, 고토 요시아키
덕조(德造) / 가네(カネ)오신이 이발사로서 처음 독립했을 때의 첫 하숙집 주인 부부.신다 마사오(神田正夫) / 하시모토 키쿠코(橋本菊子)
로쿠(ロク) / 사브(サブ)나카자와 켄(中沢健)의 부하.오본(おぼん) / 코본(こぼん)
키다(木田)다쿠라 상회(田倉商会) 개점을 위한 빚의 채권자.키시모토 이사오(岸本功)
야마구치 미사(山口ミサ)미싱 기술 지도원. 오신에게 미싱 사용법을 지도한다.와타나베 야스코(渡辺康子)
나카모토(中本)여성 의류 재봉사. 오신은 그에게 패턴 제작을 의뢰하거나 기술 지도를 받았다.코이케 사카에(小池栄)
토메키치(留吉)목수. 다쿠라 상회를 아동복 봉제소로 개조하는 일을 맡았다.나카지마 겐(中島元)
옷감 가게 남자류조(竜三)의 주문으로 다쿠라 상회에 옷감을 배달한다.아키모토 가쿠(秋本学)
타치하라(立原) / 나가노(長野)오노야(大野屋)의 매입 담당자.오야 케네오미(大矢兼臣) / 카가야 준이치(加賀谷純一)
운송업자오노야의 업체.히다 미노루(桧田稔), 타카하시 켄이치(高橋匤一)


4. 1. 오싱의 형제, 부모 (타니무라 가)


  • '''사쿠조'''(作造): 오싱의 아버지이다. 지주의 착취로 인한 가난 때문에 가족들을 고생시켰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무지하여 계급투쟁을 할 생각은 못하고 오히려 지주에게 고마워하는 노예 근성을 보였다. 이는 20세기일본 소작인들의 현실을 반영한다. 오싱은 훗날 손주 케이에게 당시 소작인들이 무지하여 지주에게 착취당했다고 이야기한다.
  • '''후지'''(ふじ): 오싱의 어머니이다. 가난 속에서도 오싱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도록 묵묵히 응원했다. 배움은 없지만 지혜로워 오싱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였다.
  • '''하루'''(はる): 오싱의 언니이다. 제사공장에서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다 19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사망했다. 오싱은 언니의 유언에 따라 미용사가 되기 위해 도쿄로 떠난다.
  • '''쇼지'''(正治): 오싱의 오빠이다. 지주의 착취로 인한 가난한 가정환경 때문에 여동생 오싱에게까지 박대하는 이기주의자가 되었다. 하지만 늙어가는 오싱이 자신과 아내 토라를 돌보자 미안함을 느꼈다.
  • '''나카'''(なか): 오싱의 할머니이다. 고생만 하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며느리 후지와의 관계는 친모녀처럼 각별했다.

4. 2. 카가야


  • '''쿠니''': 쌀 도매상 카가야의 실제 경영자이다. 명목상 경영자는 아들이지만, 경영이 미숙하다고 생각하여 쿠니 할머니가 직접 경영한다. 여장부에 대한 존중의 뜻으로 가족들과 임금노동자들에게 큰방마님이라고 불린다. 소작인과 도매상은 서로 도와야 한다는 현실적인 계산으로 오싱을 고용한다. 쿠니는 여자도 배워야 한다는 앞선 생각으로 오싱에게 서예, 한문, 수학, 다도, 꽃꽂이, 회계 등을 가르친다.[96] 큰 손녀 카요의 가출과 작은 손녀 사요의 요절을 겪으면서 돈과 재물에 대한 욕심이 헛됨을 깨닫는다.[96] 오싱에게 "너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겨라. 시시한 일로 기가 죽지 말고 자신의 미래를 만드는데 욕심을 내야 한다."라고 조언하며 오싱이 여장부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
  • '''미노, 키요타로''': 쿠니의 아들과 며느리이다. 자신의 딸을 전봇대에 깔릴 위험에서 구해준 오싱을 딸처럼 대한다. 자비로운 성정으로 하인과 하녀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오싱이 어려울 때마다 돕는다. 불경기와 사위의 주식투자로 카가야가 망하자 병으로 죽고, 카요마저 죽는 불행을 겪지만, 오싱이 일본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불교 승려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러 안식을 누리게 된다.[96]
  • '''카요''': 쿠니의 손녀이자 미노와 키요타로의 큰 딸이다. 카가야의 후계자로 곱게 자랐지만, "오싱은 너와 동갑이지만, 할머니와 동생들의 생활비를 벌려고 노동한다"라는 할머니의 말씀에 자극받아 스스로 공부하며 성장한다. 소득 불평등이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불평등 사회를 진지하게 생각할 정도로 생각이 깊다.[97] 서양화를 배워 화가가 되려는 꿈을 꾸지만, 보수적인 시대와 어른들의 강요로 좌절된다. 억지로 결혼하고 불행한 결혼 생활과 배우자의 주식투자로 인한 카가야 몰락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97] 그의 아들 노조미는 오싱이 키운다.

4. 3. 도쿄의 사람들


  • '''다카''' : 일본의 전통 미용을 하는 미용사이자 하세가와 미용원의 원장이다. 오싱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미용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독립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등 오싱에게 큰 힘이 되어준 인물이다.[1] 오싱이 솜씨가 부족해도 뭐든지 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을 제자로 삼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실제로 오싱에게 서양 미용 기술을 가르쳐 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1]
  • '''리쓰''' : 다카 원장의 제자로, 오싱을 처음에는 경쟁자로 여겼지만, 오싱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하여 친언니처럼 따르게 된다.[2] 1923년 지진 이후 독립하여 자신의 미용원을 차렸다.[2]
  • '''겡''' : 데키야(テキヤ)의 두목으로, 본명은 나카자와 겡(中沢健일본어)이다. 오싱이 무허가 노점상을 차렸을 때 싸움이 붙었지만, 오싱의 배짱에 감탄하여 돕게 된다.[3] 이후 오싱이 도쿄에 올 때마다 도움을 주었으며, 오싱에게 노점상 간의 인사 방식인 '진기'(仁義)를 가르쳐주기도 했다.[3]
  • '''소메코''' : 카페 '아테네'의 종업원으로, 오싱의 첫 손님이었다.[4] 처음에는 오싱의 미용 실력에 불만족했지만, 이후 단골이 되면서 오싱과 친해졌다.[4] 오싱과 류조의 만남을 주선하고 결혼을 축하해주는 등 오싱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소식이 끊겼다.[4]

4. 4. 다노쿠라 가 (오싱의 남편과 시댁 가족들)

인물설명
기요오싱의 시어머니. 혹독하게 시집살이를 시키지만, 류조와 오싱이 생선장사를 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에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오싱이 류조와 재회한 후 이세에서 보낸 편지를 찢을 때 오싱과 류조 사이에 끼어들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41]
다이고로오싱의 시아버지. 겡 할아범과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으며 오싱을 며느리로 인정한다. 오싱에게 혹독하게 대하는 아내를 자주 타이른다.
겡 할아범이마무라 겡에몽(今村源右衛門일본어)의 애칭. 류조를 어릴 때부터 섬긴 청지기. 류조와 오싱의 사업에 큰 도움을 준다. 오싱의 주산, 다도, 요리, 붓글씨, 회계 실력과 세상 물정에 밝음을 알고 류조의 배우자로 존중한다.
류조오싱의 배우자.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착한 사람. 오싱과 연애결혼을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가담에 죄의식을 느끼고 자살한다.
후쿠타로류조의 맏형. 집안 내분에 소극적이다.
쓰네코후쿠타로의 아내. 오싱을 몰래 도와준다.
가메지로류조의 둘째 형. 육군 장교.
사와소작농 코조의 아내. 전 시마바라의 창녀로 마을에서 따돌림받는다. 오싱과 함께 도쿄로 도망치려 했으나, 오신의 임신 사실을 알고 류조에게 알린다.



오신과 룡삼 부부를 위해 카페 아테네에서 결혼 축하 파티가 열렸다. 그 와중에 다쿠라 라샤점 직원이 라샤를 납품하는 대형 의류점이 내일 파산 선고를 받을 것이라고 알리러 왔지만, 룡삼과 겐에몬은 술에 취해 있었다. 정신을 차린 사람은 오신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오신은 독단으로 납품했던 천을 의류점에서 회수한다. 그것은 가가야의 쿠니의 가르침이었다. 룡삼은 회수에서 돌아온 오신을 격노하여 때린다. 하지만 곧바로 동업자가 와서 의류점이 파산했다는 것을 알리고, 다쿠라 상회가 가장 빨리 대응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의류점이 도산한 것은 전후 불황이 근본 원인이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룡삼이 의류점에 추천하고 투자한 봉제 공장 때문이었다. 룡삼은 자신의 판단 미숙을 후회하며 침울해한다.

다이쇼 10년(1921년) 연말, 이발소 하세가와에서는 갑자기 일본식 머리 손님이 늘어 손이 부족해지자, 오신은 도와주러 간다. 타카는 오신에게 50JPY의 보수를 지불한다. 전후 불황은 계속되고, 룡삼의 라샤점도 경영이 위태로워지자, 겐에몬은 가게를 접고 사가(佐賀)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오신은 이발소 하세가와로 달려가 일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타카는 양장을 할 생각도 없고 가게를 접을까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오신의 제안에 가게를 재개업하기로 결심한다. 오신의 타고난 재능으로 이발소 하세가와는 양장점으로 번성하지만, 신나게 돈을 벌러 나가는 오신에게 룡삼은 남자로서 체면이 구겨진다고 생각한다.

룡삼의 노력 덕분에 오랜만에 대량 주문이 들어와 대량으로 납품했지만, 주문은 사기였고 라샤를 속여 빼앗긴다. 오신은 룡삼을 위해 이발 일에 열중하지만, 심야에 만취한 룡삼이 접대부를 데리고 돌아온다. 접대부는 고액의 외상 값을 요구하지만, 오신은 룡삼을 이해하고 외상 값을 지불한다. 이발소 하세가와는 번성하여 오신과 타카, 리츠 외에 새로운 이발사를 고용할 정도가 되었다. 다쿠라 라샤점은 문을 닫은 상태가 계속되고, 룡삼은 완전히 장사에 대한 의욕을 잃고, 오신이 번 돈으로 놀러 다니게 된다. 타카는 오신에게 너무 감싸주지 말라고 하지만, 오신은 룡삼을 위해 일한다. 어느 날 밤, 룡삼이 접대부를 데리고 카페 아테네로 나가자, 분노한 솜코가 룡삼을 심하게 꾸짖고, 집으로 돌아온 룡삼은 오신에게 불합리하고 제멋대로인 울분을 터뜨린다. 오신은 자신의 행동이 룡삼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면 헤어질 마음이 생기지만,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타카는 이발사 남편과 헤어진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여자의 벌이가 남자를 망친다는 말을 들은 오신은 그 자리에서 이발 일을 그만두겠다고 제안한다. 룡삼은 겐에몬과 오신을 데리고 사가로 돌아갈 것을 제안하지만, 오신은 거절한다. 사직한 것과 아이가 생긴 것을 알리고, 도쿄에서 살자며 룡삼을 격려한다.

오신이 이발 일을 그만둔 지 2개월이 지나고, 마침내 쌀 한 톨도 없어지지만 오신은 느긋하게 있었다. 안타까워한 타카가 찾아와 돈을 건네지만, 오신은 룡삼이 밑바닥부터 다시 일어서기를 바란다며 거절한다. 갑자기 우나쥬(장어덮밥) 배달이 온다. 룡삼은 예전에 사가에서 돌본 소작농의 아들에게 머리를 숙여 빌린 돈을 오신에게 건네주고, 생활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선언하며 오신을 감동시킨다. 룡삼은 지인에게 아동복 수요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동복 장사를 권유받는다. 개업 자금을 위해 오신은 불량 재고 라샤를 노점상에서 팔 생각을 한다. 룡삼은 망설이며, 지인의 의류점에 취직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오신은 라샤의 매입가를 조사하고, 룡삼과 겐에몬이 없는 사이에 혼자 라샤를 가지고 나가 아사쿠사의 노점에 내다 판다. 생각대로 라샤는 불티나게 팔리지만, 야쿠자 남자들이 와서 무허가로 출점하는 오신에게 돌아가라고 협박하고, 오신과 몸싸움을 벌인다. 거기에 야쿠자 두목 나카자와 켄이 나타나 중재한다. 부상을 입고 귀가한 오신은 룡삼에게 꾸중을 듣고, 매출이 들어 있는 가방을 잊은 것을 알고 후회한다. 다음 날, 다쿠라 라샤점에 켄이 찾아온다. 속이 상한 오신은 켄에게 따지지만, 켄은 매출이 들어 있는 가방을 오신에게 건네준다. 오신은 켄이 같은 고향 출신임을 알고 친해진다. 켄은 오신에게 야쿠자의 의리를 끊는 방법을 가르치고, 노점상 허가증도 발급해 준다. 오신은 노점에서 다쿠라의 라샤를 10일 남짓 만에 팔아 치우고, 장사 자금 확보에 성공한다.

오신은 미싱 구입, 패턴 주문 등 아동복 장사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지만, 의류점에 다니는 룡삼은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오신이 아동복 한 벌을 만들자 돌변하여 적극적으로 협력하게 된다. 다이쇼 11년(1922년) 9월 1일, 다쿠라 상회는 아동복 전문점으로 재출발한다. 그러나 10일이 지나도 전혀 팔리지 않았다. 오신은 실패라고 생각하고 그만둘까 생각했지만, 옷감 가게 오오노야의 매입 담당자가 와서 아동복 납품을 부탁한다. 룡삼의 영업 성과였다. 오오노야에 납품한 아동복이 불티나게 팔리고 룡삼은 완전히 자만하여, 오신에게 무단으로 재봉사와 발판 미싱을 3대에서 6대로 늘리고, 더 큰 작업장도 짓겠다고 말하며 다니던 의류점도 그만둔다. 게다가 뒷마당에 작은 작업장을 짓고 미싱 5대를 더 늘린다. 임신한 오신을 무시하고 룡삼은 완전히 자만하여 놀러 다닌다. 대량 주문을 따온 룡삼은 밤에도 재봉사를 고용하여 미싱을 돌리겠다고 하지만, 오신은 제사 공장에서의 무리 때문에 요절한 언니 하루의 이야기를 한다. 겐에몬도 룡삼의 안이한 사업 확장을 만류한다.

오신의 첫째 출산이 임박하고, 룡삼은 오신 몰래 야마가타(山形)에서 후지를 불러들인다. 쇼지 부부는 난산이지만 첫째가 태어난다. 룡삼과 겐에몬은 후지를 관광과 외식으로 접대하고, 오신은 드디어 효도를 할 수 있다며 두 사람에게 감사한다. 다이쇼 12년(1923년) 1월, 오신에게 장남이 태어난다. 오칠야 축하로 룡삼은 유(雄)라고 이름 짓는다. 전쟁을 싫어하는 오신은 군인이 될 것 같은 이름이라고 말한다. 오신은 후지에게 그대로 다쿠라 집에 있어 달라고 생각했지만, 후지는 양보하지 않고 야마가타로 돌아간다.

사가에서 다이고로가 태어난 아기를 보러 온다. 다이고로는 작업장을 보고 돈을 대출해 주겠다고 한다. 룡삼으로부터 대출 이야기를 들은 오신은 만약의 사태를 생각하여 다이고로에게 대출을 거절하고 싶다고 하지만 룡삼은 승낙하고, 곧 신축할 작업장 부지가 발견된다. 사카타(酒田)에서 출산 축하로 카요가 온다. 재봉사 이토코가 부상을 입고, 처우 문제로 룡삼과 오신은 말다툼을 한다. 카요는 그것을 보고 진짜 부부라고 부러워한다. 카요는 오신에게 가가야에서의 생활을 버리고 사카타에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도쿄 친가에 있는 코타의 소식을 알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다시 시작하겠다고 고백한다. 카요는 코타를 만나지만 코타는 사과만 반복했다. 코타가 오신을 좋아했던 것이라고 마침내 깨달은 카요는 하룻밤 오신의 집에서 운 후, 자신의 피를 나눈 가가야의 후계자를 낳기로 결심하고 사카타로 돌아간다.

다쿠라 상회는 지금까지의 가게 수익을 전부 쏟아붓고 빚을 지면서 숙원이던 작업장을 신축한다. 9월 1일, 부재중과 육아를 위해 겐에몬과 유는 라샤점에 남고, 오신과 룡삼은 공장 준공 축하 준비를 하고 있는 정오 2분 전, 관동 대지진이 다쿠라 상회와 오신 등을 덮친다. 흔들림이 멈추고 룡삼과 오신은 라샤점 쪽으로 향한다. 가게는 붕괴되고, 겐에몬은 몸을 던져 유를 감싸 안고 죽어 있었다. 잔해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불길이 다가온다. 유를 안은 룡삼은 겐에몬의 시체에 매달리는 오신을 떼어내 우에노 공원으로 향한다.

우에노 공원에서 이틀 밤을 지내고 화재가 진정된 것을 듣고 가게를 보러 가는 길에 타카리츠를 만난다. 타카로부터 공장 근처는 잿더미가 되었다고 들은 룡삼은 놀라서 달려간다. 무사했던 켄이 와서 오신 일가의 뒷바라지를 하게 된다. 룡삼이 멍하니 돌아온다. 신축한 공장은 지진에서는 전파되지 않았지만, 그 후 화재로 전소했다. 룡삼은 사가로 돌아가는 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신은 사가 시어머니에게 며느리로 아직 인정받지 못한 것도 있어 도쿄에 남아 다시 시작하자고 룡삼에게 제안한다. 후지가 가가야의 도움을 받아 문병을 온다. 오신은 절대로 사가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하지만, 후지에게 뺨을 맞는다. 아이가 생겼으니 남편을 따라 사가에 가라고 설득당한 오신은 사가행을 승낙한다. 유를 데리고 사가로 향했다.

오신이 마침내 도착한 다쿠라 집의 문턱은 높았다. 다이고로는 지진을 피한 룡삼과 유의 무사를 기뻐하지만, 룡삼의 형 후쿠타로는 빚까지 진 도쿄 장사 실패에 대해 비판한다. 겐에몬의 죽음에 대해 키요는 오신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오신을 공격한다. 상의 없이 룡삼에게 돈을 준 다이고로도 다쿠라 집 안에서 입지가 없다. 오신과 룡삼은 창고 같은 한 방을 할당받는다. 룡삼이 유의 기저귀를 빨면 키요가 끼어들어 며느리를 너무 감싸주지 말라고 꾸짖는다.

룡삼 일가 무사의 축하가 열리지만, 오신과 후쿠타로의 아내 츠네코의 밥상이 없다. 기저귀 때문에 키요는 오신에게 잔소리를 한다. 츠네코에게 여자는 남자들이 식사를 마친 후에 먹는 것이 이 근처의 풍습이라고 말해진다. 오신은 토마에서 식사하고, 목욕도 남은 물을 쓴다. 오신은 부엌 일을 도와주겠다고 하지만, 츠네코는 본가 며느리의 일이라며 오신의 도움을 거절한다. 키요는 후쿠타로 앞에서 오신을 손님 대접할 수 없다고 말하며, 룡삼과 함께 개간 농사일을 하라고 시킨다.

다쿠라 집은 원래 지주였지만 룡삼은 밭일을 한 적이 없었다. 다이고로 대에서 사업에 실패하여 몰락해 버렸다. 사가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오신은 세탁 비누가 어디에 있냐고 츠네코에게 묻지만, 비누는 각 가정마다 따로 있으며, 살 돈은 키요에게 받는다며, 유의 기저귀를 빨면서 비누를 썼다고 불평한다. 키요는 오신에게 야마가타 친가는 이렇게 딸이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보내주지 않느냐고 비꼬고, 아침 식사 때 오신이 밥통에 손을 뻗으면 "마른 체구에 식성이 좋다"며 조롱한다.

룡삼과 오신은 소작농 코조와 그의 아내 사와와 개간을 시작한다. 사와는 시골 농부의 아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미인이었다. 개간은 힘든 노동이지만 도시락은 주먹밥 두 개뿐이다. 룡삼은 불만을 토로하지만 코조와 사와는 작은 고구마 한 개를 나눠 먹고 있었다. 쌀밥은 소작농과 농사꾼은 축제 때만 먹는다. 코조의 집에는 어머니와 시누이가 셋이나 있기 때문에 사와가 고생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집으로 돌아와 코조의 이야기를 하면, 사와는 전 시마바라의 창녀로 마을에서 따돌림을 받고 있으며, 사와와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지만, 오신은 전 창녀가 뭐가 나쁘냐고 반박하자, 키요는 분개한다. 키요가 룡삼에게 떡을 건네주자 룡삼은 오신의 몫도 달라고 한다. 그러자 키요는 오신에게 여자는 배가 고파도 자신의 몫까지 남편에게 주는 것이라고 꾸짖는다.

오신은 사와의 머리가 아름다워서 농사일에서 한 번 일본식 머리를 틀어 준다.[41] 코조와 사와는 매우 기뻐했지만, 귀가한 오신에게 키요는 다쿠라 집에 흙을 묻혔다고 격노한다. 사와의 머리를 보고 다쿠라 집에 오신에게 머리를 틀어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들은 오신은 이발 일을 하고 싶다고 바라지만, 가문의 이름과 칼을 찬다 가문을 자랑하는 키요가 허락할 리가 없었다. 오신은 룡삼에게 왜 이발 일을 해서는 안 되는지 불만과 불평을 털어놓는다. 오신이 이발 일을 하고 싶은 것은 자유롭게 쓸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알게 된 룡삼은 오신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머니 키요에게 잡비를 위해 돈을 요구하지만, 오신은 키요에게 아무런 불편도 주지 않고 있다고 잔소리를 듣는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부부 관계는 악화일로다. 밭에서 오신은 사와로부터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 코조는 사와의 신청을 위해 밭을 팔고 소작농이 되었기 때문에 사와도 집에서는 가시방석이라고 한다.

오신은 룡삼에게 다쿠라 집을 나가 마을로 나가자고 하지만, 장사에 질린 룡삼은 좋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룡삼도 친가의 농사일에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룡삼은 다이고로가 하고 있는 아리아케해의 간척에 참여하여 자신의 땅을 얻는 것을 생각한다. 간척 사업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키요는 좋게 보지 않는다. 밭이 될 때까지 10년이나 걸린다고 하지만, 다이고로의 주선으로 룡삼은 조에 들어간다. 오신은 어떻게든 환심을 사려고 다시 집안일을 도와주겠다고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형의 아이들이 게으름뱅이라고 놀린다. 키요가 오신을 그렇게 말한다고 알려준다. 후쿠타로와 키요는 간척은 큰 태풍이 오면 물거품이 되는 사업이라고 불평한다. 키요는 룡삼의 간척 참여를 오신 탓으로 돌린다. 그것을 들은 오신은 간척 사업을 걱정하지만, 룡삼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오신은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야마가타와 사카타, 도쿄로 보내는 편지에는 힘든 일은 전혀 쓰지 않고, 평소 말수도 줄어들었다.

다이쇼 13년(1924년) 정월. 도쿄의 타카로부터 연하장이 온다. 3월에도 이발소 하세가와를 재개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적혀 있고, 오신은 도쿄로 돌아가 타카 밑에서 다시 일하는 것을 꿈꾸게 된다. 그 이후로 마음속으로 3월까지 참고 견디자고 주문처럼 되뇌게 되었다. 오신은 다시 룡삼에게 다쿠라 집을 나갈 생각이 없냐고 묻지만 간척에 매달리는 룡삼의 의지는 확고하다. 룡삼과 오신은 충돌하고, 결국 가정 내 별거를 하게 된다.

오신이 겐에몬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으면, 누군가가 도랑에 투신했다고 한다. 가보니 그것은 사와였다. 후일, 오신은 목숨을 건진 사와를 찾아가면, 사와는 헛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들어보니 사와는 자신이 창녀였던 것과, 신청을 위해 땅을 잃은 것 등으로 남편과 시어머니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이 미안해져서, 정신을 차려 보니 뛰어들었다고 한다. 사와의 사정을 불쌍히 여긴 오신은 사와에게 함께 도쿄로 도망가자고 권한다. 타카로부터 도쿄에서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는 편지가 오고, 오신은 기뻐한다.

오신은 추분 중일에 떠나기로 하고, 사와에게 기차표를 건넨다. 사와는 오신이 임신한 것을 알아챈다. 계획 당일, 룡삼의 차남이자 육군 대위 가메지로가 와서 인사한다. 여동생 아츠코도 귀향하여 임신 사실을 고백한다. 오신은 잡목림에서 기차 시간을 기다리지만, 사와는 임신한 오신의 몸을 걱정하여 간척에 나가 있는 룡삼을 불러 계획을 누설한다. 오신은 룡삼에게 발각되고, 도쿄에 간다면 유를 두고 가라고 한다. 오신은 유를 빼앗으려는 룡삼에게 달려들지만 뿌리쳐 쓰러지고, 나뭇가지가 찔러 출혈하며 기절한다.

룡삼에게 간호를 받고 의식을 되찾은 오신은 도쿄에 간다고 울면서 저항하지만, 사와에게 달래져 룡삼의 수레로 다쿠라 집으로 돌아온다. 룡삼은 키요에게 부상에 이르게 된 경위를 숨긴다. 오신의 부상은 심각하여 목에서 오른쪽 어깨까지 살이 크게 찢어져 있었다. 게다가 심한 출혈 후 쇠약과 상처로 인한 발열로 3일 정도 혼수상태가 된다. 키요는 돈이 많이 들고 역병 신이라고 욕한다. 10일이 지나 오른손은 쓸 수 없지만 걸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키요가 돌보는 유는 만나게 해주지 않는다. 오신은 룡삼에게 부상 치료비를 가지고 있던 100JPY 중에서 내주면 좋겠다고 전하지만, 룡삼은 키요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느냐며 오신을 꾸짖는다. 오신은 "피를 나눈 어머니인데 당신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군요"라고 불평하는 것이었다.

아츠코의 이와타 오비 전날, 오신은 퇴원하지만 오른손이 저리고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신의 부상은 살뿐만 아니라 말초 신경도 손상되어 있었다. 축하하는 날, 오신은 おはぎ(오하기)도 쥘 수 없고 작은 접시도 깨뜨린다. 룡삼은 부상이 목과 오른쪽 어깨이므로 손이 자유롭지 않을 리가 없다고 한다. 키요는 바느질을 가져오지만 오신은 바늘을 잡을 수 없었다. 다시 개간에 나가게 된다. 밭에서 사와는 도쿄에 갈 예정이었던 돈을 오신에게 돌려주겠다고 하지만, 오신은 배신당한 원망과 함께 그것을 거절한다. 사와는 임신한 것을 룡삼에게만 말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오신은 거절한다.

부상 후 1개월이 지났지만, 오른손은 여전히 불편하여 제대로 일할 수 없다. 그 때문에 키요뿐만 아니라 룡삼에게도 미움을 받는다. 안타까워한 다이고로는 오신을 시내 의사에게 보여주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었다. 룡삼은 다이고로, 키요에게 불려가 오신을 친가로 돌려보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키요는 룡삼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오신이 사와로부터 받은 배대기를 룡삼에게 보이고 임신 사실이 발각된다. 룡삼은 고향에 돌아가 낳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오신은 타니무라 가는 이미 형의 대이므로 다쿠라 집에 있겠다고 한다. 오신의 각오를 알게 된 룡삼은 오신에게 배대기를 매주고, 키요에게 오신과 헤어지지 않겠다고 알린다.

오신이 사와와 도망치려고 했던 것이 코조의 어머니로부터 키요에게 알려지고, 키요는 오신을 추궁한다. 사와의 시누이가 오신이 준 기차표 30JPY[42]을 찾아내 무슨 돈이냐고 사와는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다시 매춘부가 된 돈인가 의심받고, 오신에게 받았다고 실토했다. 오신이 밖으로 뛰쳐나가자 방황하는 코조가 "사와를 돌려줘"라고 오신에게 따진다. 사와는 이미 사가를 도망쳐 나가 있었다. 룡삼은 다이고로와 키요에게 오신의 임신과 오신에게 부상을 입힌 것은 자신이라고 고백하고, 오신은 이 집에서 출산하겠다고 선언한다.

키요는 룡삼에게 한 집에 출산이 두 번이나 있다면 어느 한쪽이 부족해진다고 하며, 꺼려하므로 오신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한다. 다이고로는 그런 풍습은 단순한 미신이라고 일축하지만 츠네코도 걱정한다. 룡삼과 부부의 유대감을 되찾은 오신은 큰 배를 하고 농사일을 하는 날들이지만 키요에게 말을 걸 수 없다. 어느 날, 사가에서는 임산부에게 좋다고 하는 미꾸라지가 준비되지만, 미꾸라지를 먹은 것은 귀향한 아츠코뿐이었다. 룡삼은 오신의 미꾸라지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지만 키요는 상대하지 않는다. 안타까워한 츠네코는 오신을 불러 출산 미신에 대해 가르쳐주고, 이대로는 키요에게 죽임을 당한다며 야마가타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풍습을 믿는 키요는 오신이 두 아이를 낳을 때까지 맡아줄 곳을 찾아 혼자 옮기라고 하지만, 오신은 미신에 동의하지 않고 거절하고, 키요는 격노하여 결렬한다. 키요는 룡삼에게 자신은 한 번도 시어머니에게 거역한 적이 없다고 울먹인다. 오신,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田植えの最盛期。おしんは身重の体で田植えをする。清는身重의 篤子(아츠코)를 連れ帰り、ぜんざいを食べさせ、一番風呂に入れる。 같은 妊婦의 おしん을 こき使い、自分の娘を甘やかす清に憤る竜三(りゅうぞう)をおしんは止める。おしんは「文句を言われるのは結局私なのだから」と宥めるが、竜三はおしんから頼られていないのかと拗ね、以後口出ししなくなる。ふじから手紙とおしめと産着が届く。やがておしんは野良仕事が終わると眠気で立てなくなる。洗い物をしながら居眠りをするおしんを見た福太郎(ふくたろう)は、もう働くのは無理だと意見する。大五郎(だいごろう)のはからいで、おしんは仕事を休むが、家事も雄(ゆう)の子守りもさせてもらえず、居場所がない。昼食のうどんを食べようとすると、清は「働かず食べるのか」と激しく口論する。翌日からおしんは何があっても仕事を休まなかった。

やがて、稲刈りの季節を前にして産み月になる。清はお産は不浄なので、篤子は家の納戸、おしんは裏の納屋代わりの離れを使えと指示する。恒子(つねこ)는魔除けの麻の葉を刺した出産用の厚地の木綿の下敷きをおしんに渡す。稲刈りから帰宅した夕刻、篤子が産気づき、竜三が町の産婆を呼びに行く。夜、離れにいたおしんも産気づくが一人耐える。篤子はひどい難産で、見るに堪えない清は部屋を飛び出し「みんなおしんのせいだ」と叫ぶが、大五郎は清を突き倒し「二度とそんなこと言ったら叩き出す」と怒鳴りつける。産婆から手に負えないので町の医者を呼んでくれ、朝までに産まれなければ赤子をあきらめねばならないと言われ、竜三が真夜中の雨の中走り出す。

陣痛に苦しむおしんは、離れから竜三を呼ぶが入口で倒れてしまう。朝方、医者が到着し、篤子は無事出産。竜三がやっと離れの方へ行くとおしんが気を失っていた。目を覚ましたおしんは、女の子を産んだ、お乳をやりたいと言うが、竜三はごまかす。清は母屋で近所の女衆を招いて篤子の出産祝いをする。清たちの笑い声に、竜三はいらだち、怒鳴り込む。竜三に代わり、大五郎がおしんに産んだ子は死んでいたと告げる。おしんは子どもに「愛」と名付けたのだと叫ぶ。

死産のショックでおしんは放心状態となり、ものも言わず、ただ乳が出るばかり。一方篤子は乳の出が悪い。清はおしんに乳を分けてもらえないかと言うが、篤子は嫌がり、竜三も激怒する。恒子はおしんのためになるかもと竜三を説得する。おしんは自分の子ではない赤子を抱き黙ってお乳をやる。清はおしんは慈母観音のようだと感激する。正気に返ったおしんは死産を受け入れ、死んだ愛の代わりに生まれた篤子の子に乳をやりたいと言う。清はおしんに手をついて感謝し和解する。

清은 篤子의 아이에게 사랑이라고 이름 붙였다.おしんは愛に乳をやり、今まで遠ざけられていた雄の守りをする平穏な日々を送る。竜三たちは、おしんが清から嫁として認められたと安堵する。生後33日目の愛の宮参り。篤子と愛は嫁ぎ先に帰る。佐和(さわ)からおしんに手紙が届く。手紙には東京で無事に暮らしを立てていることが綴られていた。おしんは竜三に家を出て東京に行くと打ち明ける。死産してから家を出ると考えていたが愛に乳をやるため留まっていた、「ここでは失うばかりで何も残らなかった、黙って行かせて下さい」と言われ竜三はうろたえる。おしんは大五郎と清に、明日、雄と二人で出ていくと伝える。清は激昂し雄は田倉の子だと譲らない。竜三も清に同調する。

翌早朝、雄を一緒に連れて行くことを半ば諦め、荷物をまとめて挨拶にきたおしんに恒子が清に隠れて雄を連れ出してきてくれると言う。おしんはその意外な申し出に戸惑うが恒子の言葉を信じ、源右衛門(げんえもん)の墓の前で待った。恒子は清の留守を狙い雄を連れ出しておしんに手渡す。おしんは恒子の思いがけない機転と心配りに感謝して佐賀を離れ東京へ向かった。

おしんは、再建した髪結長谷川に身を寄せ、たかに佐賀での日々を打ち明ける。さっそくたかはおしんに試しに自分の髪結いをさせるが、おしんの右手はまだ力が入らず、熱したコテがたかの頭皮に当たってしまい、やけどをさせそうになる。佐賀での怪我のこと、そのことで右手が不自由になったことを話すとたかはおしんに大いに同情し「できることだけやってくれればいい」と言うが、おしんは髪結ができない以上居候するわけにはいかないと思う。

佐和からの手紙を頼りにおしんは佐和の仕事先を訪ねる。佐和は住み込み女中として働いておりおしんに借りた汽車賃を返す、ここでは子供と一緒に働くことは出来ないと言う。長谷川に来た健(たけし)はおしんの事情を知り、露天商を勧める。たかは反対するが、自活したいおしんの意思を認める。おしんは健が用意したどんどん焼きの屋台を始める。健はおしんに頼まれ、母子で住む長屋を見つけてくる。おしんは髪結長谷川を出ることをたかに言っておらず、たかは寂しがる。屋台の仕事に忙しく明け暮れる中、大正14年(1925年)1月、おしんは佐賀の竜三に手紙を出すが、手紙は清が受け取り破り捨てる。恒子はその一部始終を見ていたが清に口止めされる。

健はおしんと雄のため細々と世話を焼く。それを見たたかは「世間の口はうるさい」とおしんに忠告するがおしんは「健さんとはそんな関係ではない」と気にもとめない。夜遅く健がいつものようにおしんを長屋まで送り布団を敷いたところで、健の女が長屋に怒鳴り込んでくる。女は健がおしんの屋台出店のために大変な手間と金を使ったことでおしんを責めるが、健は「俺の片思いだ」「男は本気で惚れた女には指一本触れなくても力になりたいものだ!」と言い放つ。おしんは健の気持ちを初めて知り、いつまでも健の好意に甘えるわけには行かない、と悩む。翌日、健が謝りに来るがおしんは健の親切を丁重に断り、故郷山形に帰ると決め、雄と帰郷する。その後、髪結長谷川に竜三からおしんの消息を訊ねる手紙が届き、たかと健は訝しむ。

4年ぶりに山形に帰ったおしんにふじは喜ぶ。兄の庄治(しょうじ)も5日に一度の風呂を勧めるが、おしんが田倉家を出てしばらく谷村家にいると聞かされると態度を変える。谷村家では小作争議で小作米は4割になり、麦飯が食べられるようになっていた。だがおしんが夕食を食べると、庄治は「長男は家と親の面倒を見なければならない、おまけに兄妹が転がりこんできたら貧乏をついで長男くらい引き合わないものはない」と文句を言う。庄治の嫁・とらも仏頂面。それを聞いたふじはおしんのために庄治夫妻と所 गरजेを別にして、納屋から勝手に食料を持ち出す。とらは「おしんはわがままだ」と庄治に愚痴り、庄

4. 5. 고우타의 가족


  • '''고우타''': 청년 시절에 민중운동에 헌신한 진보적인 지식인이다. 1930년대 군부정권의 좌파(左派)에 대한 혹독한 탄압으로 강제 사상전향을 한 뒤 나미끼 가의 데릴사위로 성격이 너그러운 아내 교오코와 결혼한다. 오싱의 첫 사랑이며, 오싱을 세심하게 돕는다. 고우타의 사촌이모인 히사는 조카인 고우타가 민중운동에 헌신하느라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한 것이 걱정되지만, 오싱은 억압과 착취를 받는 민중의 편에 서서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해한다.[1]
  • '''히사''': 고우타의 사촌 이모.[1] 어부들이 새벽에 잡아온 생선으로 행상들과 거래하는 생선 도매상이다. 고우타의 부탁으로 오싱이 이세에 정착하고 생선장사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덕분에 오싱은 훗날 손자 게이에게 "살 이 없었던 비참한 시절"이라고 기억한 방황을 끝내고 이세에 뿌리내려 안정된 삶을 살아간다. 아저씨와 사별한 뒤 냉혹한 세상과 싸워가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여걸(女傑)인 히사 아줌마를 보면서, 오싱은 상인으로서의 경험을 쌓아간다. 또한 히사 아줌마는 아저씨 사이에서 아들 셋만 두었지 이 없었기 때문에, 오싱과 그의 아이들을 딸과 손자, 손녀들처럼 돌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군부정권이 발행한 주택구입계약서는 휴지조각이라, 전 주인이 집을 도로 찾는 바람에 살 집이 없게 되었다. 이를 안 히사 아줌마는 오싱이 처음 온 날처럼 오싱과 자녀들이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해 주었다. 오싱이 잔치에 쓸 생선구이, 반찬으로 먹을 정어리 간장조림, 전복된장절임 등을 만들어 파는 창발성을 보면서, 그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상업임을 읽었다.[1]

4. 6. 타노쿠라 가 (아들과 딸 그리고 며느리)


  • '''류'''(雄|유일본어): 오싱의 장남으로 1923년 1월 14일에 태어났다. 어머니 오싱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고 어머니를 각별히 생각했다.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하려 했으나, 슌사쿠의 영향으로 평화주의자가 된 어머니의 반대로 교토제국대학으로 진학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육군 장교로 참전했다가 필리핀에서 전사했다. 굶주림 끝에 쓰러져 일본군에 저항하던 원주민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살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 김경진 작가에 따르면, 일본군의 필리핀 침략으로 마닐라에서만 10만 명이 죽었다.[1] 엔도 슈사쿠 작가에 따르면, 일본군은 굶주림에 허덕여 필리핀 원주민들의 에서 농산물훔칠 정도였다.[1] 유는 카레라이스, 경단, 주먹밥 등 어머니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내용이 담긴 일기장을 남겼고, 오싱은 아들의 유골 대신 일기장을 받았다.[1]
  • '''히토시'''(仁|히토시일본어): 오싱의 차남으로 1929년 10월생이다. 태평양 전쟁특공대에 지원했지만, 출격 전에 전쟁이 끝나 목숨을 건졌다. 돈을 벌기 위해 윤리에 어긋나는 일도 서슴지 않는 우상 숭배자로 타락하여 오싱의 후회를 샀다. 사업이 어려워지자 오싱은 일부러 돕지 않았다. 그러나 히토시는 하츠코와 노조미의 수예 가게 개점과 도예 사업을 돕는 등 형제애를 보였다.
  • '''테이'''(禎|테이일본어): 오싱의 막내딸로 1936년 2월 26일생이다. 대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실력이 있어도 인정받지 못하는 학력차별을 경험한 오빠 히토시의 뒷바라지로 대학교를 졸업했다.
  • '''하츠코'''(初子|하츠코일본어): 오싱의 양녀로 1926년생이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인신매매될 뻔했으나, 오싱이 된장국을 끓이는 하츠코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고 양녀로 들였다.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집안일을 도왔다. 오싱의 장남 유와 미래를 약속했으나 유가 전사한 뒤 미군을 상대로 하는 술집에서 일했다. 오싱과 켄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꾸고 이세로 돌아와 10년간 가게 일을 도왔다. 이후 자영업자로 독립하여 털실로 과 장식물을 만드는 수예 가게를 열었다. 히토시는 하츠코의 가게 계약을 도왔다. 하츠코는 오싱에게 든든한 자식이었고, 집안의 분란을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
  • '''노조미'''(希望|노조미일본어): 오싱의 양자이다. 곡물 사업을 원하는 어머니와 갈등하다가 그림을 잘 그린 친어머니 가요에게서 물려받은 예술적 감각으로 도예가가 되었다. 히토시는 자신의 가게에 도자기 매장을 만들어 노조미를 도왔다. 노조미와 히토시는 하츠코의 과거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기보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로 연민을 느꼈다.
  • '''미치코'''(未知子|미치코일본어): 오싱의 큰 며느리이다. 상인답게 빈틈없는 시어머니의 완벽함에 기가 죽고, 남편 히토시와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어머니와 히토시가 자신을 의지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화해했다.
  • '''유리'''(百合|유리일본어): 오싱의 둘째 며느리이다. 히토시에게 배반당한 후 노조미와 결혼하여 시댁과 직접 교류하지 않았다. 제빵제과 기술로 만든 케이크를 시어머니께 보낼 만큼 따뜻했지만,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오싱은 히토시를 용서하지 않아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 '''타츠노리'''(竜則|다쓰노리일본어): 오싱의 사위이다. 히토시와 해군 시절 선후배 사이였고, 데이와 결혼하여 타노쿠라 상점을 꾸려나갔다. 성격이 착하고 성실하여 오싱의 고마움을 샀다.
  • '''타케시'''(毅|다케시일본어): 오싱의 큰 손자이다. 빠칭코에 손댈 만큼 방황했지만, 다노쿠라 슈퍼의 영업부장으로서 아버지의 사업을 돕는다.
  • '''케이'''(圭|게이일본어): 오싱의 둘째 손자이며, 노조미와 유리 사이의 외아들이다.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큰 아버지 히토시와 할머니 오싱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다. 오싱의 여행에 따라다니며 할머니의 고생을 깨닫고, 등산 실력으로 할머니를 돕는 등 씩씩한 청년이다. 카가야를 부흥시킬 사업가가 될 것을 결심한다.
  • '''아카네'''(あかね|아카네일본어): 오싱의 큰 손녀이다. 타노쿠라 상점 직원과 혼담이 오갔으나 상점이 어려워지자 소문을 내고 회사를 그만둔 후 무기력한 생활을 했다. 히토시와 미치코의 이혼 소식에 집안일을 모르는 아버지와 함께 살려고 했으며, 나중엔 회사를 다니며 부모님을 도왔다.
  • '''미도리'''(みどり|미도리일본어): 오싱의 작은 손녀이다. 나고야의 대학교를 그만두고 광고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하려고 한다.

4. 7. 그 외의 인물


  • '''센조''' : 오싱의 사돈어른이다. 고집이 세서 오싱과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세상 물정에 밝은 오싱을 존중한다. 딸이 시어머니를 어려워해 가출하자 잘 달래서 데리고 온다.[1]
  • '''나미에''' : 오싱의 사부인이다. 오싱은 혹독한 시집살이를 경험한 나미에의 마음을 헤아려 며느리에게 집안일을 맡긴다.[2]
  • '''카와무라''' : 유의 복무 시절 전우로, 종전 후 유의 유품인 일기장을 오싱에게 전해준다. 이후 큰 돈을 벌어 오싱에게 아들 대신 효도하겠다는 뜻으로 역 앞 땅을 양도하지만, 채무자에게 살해당한다. 오싱과 하츠코는 그의 장례를 치르며 전쟁의 비극에 대해 동정한다.[3]
  • '''슌사쿠''' : 오싱이 제재소를 탈출했을 때 만난 탈영병이다. 오싱에게 글과 산수를 가르쳐주고 반전주의자가 되도록 영향을 주었다. 봄이 되자 오싱을 마을로 데려다주려다 순사에게 총살당한다.[4]


'''그 외 등장인물'''

이름설명배우
남자오싱이 항구에서 길거리 판매하던 오니기리를 받은 지 며칠 후, 가가야(加賀屋)라는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온다.가지 켄타로
손님오싱이 항구에서 길거리 판매하던 오니기리를 받은 지 며칠 후, 가가야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온다.시시도 큐이치로
남자오싱이 항구에서 길거리 판매하던 오니기리를 받은 지 며칠 후, 가가야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온다.오사카 켄, 오야 타카토시, 호리 타카히로
남자싸고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가가야 식당에 온다.에노키 헤이에
남자가가야 식당에 온 취객. 오신에게 술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1병에 15전에 마신다.미에마치 코지
다른 손님가가야 식당의 손님. 위의 취객에 휩쓸려 자신도 술을 주문한다.나카무라 슈
남자가가야 식당의 단골손님. 가게에 나타난 히데와 테츠에게 음식을 엎질러지게 하고 놀란다.시마무라 타쿠시, 타카하시 마사오, 하라 테이코, 시로 겐타
히데(秀) / 테츠(鉄)조폭 두목.레이젠 키미히로 / 미야구치 지로
손님가가야 식당의 손님. 가게를 나선 후, 코타가 가게에 들어온다.나카무라 타케미, 오가와 긴지, 우나바라 슌스케
손님가가야 식당의 손님. 가게 안에서 싸움을 시작했지만, 말리러 들어온 오신에게 위압감을 느껴 포기하고 돌아간다.오카다 마사노리, 나카지마 쓰기오, 쿠로다 이쿠마, 마치다 유키오, 고토 요시아키
덕조(德造) / 가네(カネ)오신이 이발사로서 처음 독립했을 때의 첫 하숙집 주인 부부.신다 마사오(神田正夫) / 하시모토 키쿠코(橋本菊子)
로쿠(ロク) / 사브(サブ)나카자와 켄(中沢健)의 부하.오본(おぼん) / 코본(こぼん)
키다(木田)다쿠라 상회(田倉商会) 개점을 위한 빚의 채권자.키시모토 이사오(岸本功)
야마구치 미사(山口ミサ)미싱 기술 지도원. 오신에게 미싱 사용법을 지도한다.와타나베 야스코(渡辺康子)
나카모토(中本)여성 의류 재봉사. 오신은 그에게 패턴 제작을 의뢰하거나 기술 지도를 받았다.코이케 사카에(小池栄)
토메키치(留吉)목수. 다쿠라 상회를 아동복 봉제소로 개조하는 일을 맡았다.나카지마 겐(中島元)
옷감 가게 남자류조(竜三)의 주문으로 다쿠라 상회에 옷감을 배달한다.아키모토 가쿠(秋本学)
타치하라(立原) / 나가노(長野)오노야(大野屋)의 매입 담당자.오야 케네오미(大矢兼臣) / 카가야 준이치(加賀谷純一)
운송업자오노야의 업체.히다 미노루(桧田稔), 타카하시 켄이치(高橋匤一)


5. 평가

오싱은 일본을 경제 대국으로 이끈 기성세대들의 삶을 다루면서, 일본 경제 발전 과정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1] 특히,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당시 사회상과 유행을 반영하고, 주인공 오싱의 현명함을 부각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1]

한편, 한국에서는 오싱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적 평가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드라마 내용 중 일부 장면은 한국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1918년 미곡폭동에 대한 언급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상황과 대비되어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한, 양장 머리의 유행과 같은 문화적 변화는 당시 한국 사회의 변화와 비교해 볼 때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5. 1. 긍정적 평가

1918년 미곡폭동 당시 쌀 소동에 대한 소문을 이야기하거나, 양장 머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정보를 공유하는 등, 드라마 오싱은 당시 사회상을 반영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1] 또한, 미리 원단을 회수한 오싱의 선견지명을 칭찬하는 언급을 통해, 오싱의 현명함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았음을 알 수 있다.[1]

5. 2. 비판적 평가

오싱일본어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현재까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드라마 내용 중 일부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행동에서 당시 시대적 상황이나 유행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이쇼 7년(1918년) 여름, 미용실 '하세가와'를 방문한 손님들은 양장머리가 유행하기 시작했음을 이야기하며, 일본식 머리일본어를 해야 하는 것에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1] 또, 같은 해 8월 쌀 소동 다음 날에는 미용실 직원들과 손님들이 쌀 소동에 관한 소문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5] 이러한 장면들은 당시 사회 분위기와 유행, 그리고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6. 한국어판

한국어판은 청조사에서 1984년 3월 1일에 6권으로 출판하였으며, 2002년에 6권, 2006년에 3권으로 재출간되었다.[95] 번역자는 김균이다. 2002년과 2003년에는 어린이 독자들을 대상으로, 일본 군국주의나 매춘처럼 어린이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내용을 각색한 만화동화로도 제작되었다.[95]

7. TV 드라마 정보

하시다 스가코일본어가 각본을, 사카타 코이치일본어가 음악을 맡았다. 제작은 코바야시 유키코일본어가, 연출은 에구치 히로유키일본어, 코바야시 헤이하치로일본어, 다케모토 미노루일본어, 모치즈키 요시오일본어, 이치야나기 쿠니히사일본어, 요시무라 후미타카일본어, 에바타 지로일본어, 오오키 카즈시일본어, 아키야마 시게키일본어가 담당했다. 서예지도는 호시 후에코일본어, 무술지도는 하야시 쿠니시로일본어, 다도지도는 도다 소안일본어이 맡았다.

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배역배우
타니무라 오싱 → 타노쿠라 오싱코바야시 아야코일본어(유년기) → 다나카 유코일본어(성년기) → 오토와 노부코일본어(노년기)
타니무라 후지이즈미 핀코일본어
타니무라 사쿠조이토 시로일본어
타니무라 나카오지 미치오일본어
타니무라 쇼지사노 다이스케일본어 → 요시오카 유이치일본어
타니무라 토라와타나베 에리코일본어(와나타베 에리)
타니무라 하루센도 노부코일본어 → 센노 히로미일본어
타니무라 미츠하세가와 마유미일본어 → 후루사카 루미코일본어
타노쿠라 류조나미키 시로일본어
타노쿠라 키요나카모리 카즈코일본어
타노쿠라 다이고로기타무라 가즈오일본어
타노쿠라 후쿠타로기타무라 소이치로일본어
타노쿠라 츠네코간제 요코일본어
이마무라 겐에몬이마후쿠 마사오일본어
타노쿠라 유후케 노리마사일본어(소년기: 마쓰다 요지일본어)
타노쿠라 히토시다카하시 에츠시일본어(청년기: 야마시타 신지일본어)
타노쿠라 타케시미야모토 무네아키일본어
타노쿠라 미치코아사지 요코일본어(청년기: 다나카 미사코일본어)
타노쿠라 아카네스즈키 미에일본어
타노쿠라 미도리가와카미 마이코일본어
타노쿠라 테이 → 사키타 데이요시노 유키코일본어(청년기: 아사누마 유키코일본어)
타츠노리 사키타기리하라 후미오일본어(청년기: 와타나베 간지일본어)
타노쿠라 하츠코사사키 아이일본어(청년기: 우에나카 하루카일본어, 나카시마 유코일본어, 다나카 요시코일본어)
야시로 카요아즈마 테루미일본어(소녀기: 시키야 후미일본어)
야시로 마사오모리 아츠오일본어
야시로 쿠니나카오카 테루코일본어
야시로 미노고바야시 지토세일본어
야시로 세이타로이시다 타로일본어
야시로 사요오츠카 치카일본어
야시로 노조미노무라 만조일본어(청년기: 시오야 도모조일본어)
야시로 유리데라다 미치에일본어(청년기: 오카야마 미오일본어)
야시로 케이오하시 고로일본어(유년기: 이와부치 다케시일본어)
코조구마모토 요시나리
사와카노 유리코
코조의 어머니토가와 아키코
코조의 여동생카나노 케이코, 토치하라 마미


8. 사회적 영향

おしん일본어은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일본에서는 인내심을 설명할 때 '오싱'이라는 이름이 자주 언급되었다. 예를 들어, 스모 선수 다카노사토(貴乃花)는 당뇨병을 앓으면서도 요코즈나에 오른 것을 인정받아 "오신 요코즈나"라는 별명을 얻었다.[7] 1980년대 버블 경제 시기에는 무와 쌀을 먹는 식단을 묘사하며 "오신식 식단"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다. 모가미 강을 따라 운항하는 유명한 유람선은 "오신호"로 이름이 바뀌었다.[2]

하토리 비스코(羽鳥 ヒス子)의 만화 ''오란고교 호스트부''에서는 부유한 학생들을 위한 학교에서 호스트부 리더인 타마키 수오가 소년으로 변장한 하루히 후지오카를 "오신"이라고 부르며, "혹사하고 베개에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나쁜 주인에게 팔린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하루히는 가난하지만 성실한 장학생이다.[8]

베트남어에서는 "ô-sin"이라는 단어가 가정부를 의미하는 동의어(때로는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9]

이란에서는 오신의 직업을 기리는 의미로 중고 의류 매장을 "타나쿠라 상점"(مغازه تاناکوراfa) 또는 "타나쿠라"라고 부른다. 오신의 직업은 섬유였지만, "타나쿠라"는 이란에서 중고 옷을 일컫는 구어가 되었다.[10]

1989년 1월 28일, 이란 국영 방송은 파티마(파티마)의 생일 기념 방송에서 한 여성이 파티마와 오신을 모범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 사건이 있었다. 이는 호메이니(호메이니)의 분노를 일으켜 관련자들이 처벌받는 사건으로 이어졌다.[11][12][13]

おしん일본어연속 TV 소설의 전형적인 작품으로, “전쟁 중과 전후 혼란기를 씩씩하게 살아낸 한 여자의 일대기”를 다루며 아침 드라마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1983년부터 1984년까지 평균 시청률은 52.6%, 최고 시청률은 62.9%로 일본 TV 드라마 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17] 고바야시 아야코 (어린 시절), 타나카 유코 (청년기·성년기), 오토하 노부코 (중년기)가 오신 역을 맡았다.

NHK의 연속 TV 소설에서 처음으로 크레딧 롤에 방언 지도자가 명시된 작품이며, 타나카 유카리는 おしん일본어을 “‘본격 방언 드라마’의 시초”라고 평가하고 있다.[18] 1983년 10월 3일부터는 일본 최초의 자막 방송 시험 방송이 진행되었다.[19]

9. 해외 방영

오싱은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방영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싱가포르는 일본 외 지역에서 이 드라마를 방영한 최초의 국가였다. 싱가포르에서는 1984년 11월 미디어코프 채널 8에서 만다린어 더빙판이 처음 방영된 후, 이듬해 같은 채널에서 다시 방영되었고, 1994년에는 영어 더빙판이 미디어코프 채널 5에서 방영되는 등 인기에 힘입어 세 번이나 방영되었다.[3]

이 드라마는 태국(1984), 홍콩(1984), 중국(1985), 말레이시아(1986), 인도네시아(1986)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인기를 얻었다.[3] 싱할라어 더빙판은 스리랑카의 루파바히니에서 1989년에, 파키스탄에서 1991년에, 방글라데시에서 1992년부터 1993년까지, 네팔에서 1992년에, 인도에서 1992년에, 베트남필리핀에서 1993년에, 미얀마대만에서 1994년에 방영되었다.[3]

오싱은 중동에서도 큰 인기를 얻어, 이란(1986), 요르단(1987), 모로코(1988), 바레인(1989), 시리아(1990), 레바논(1991), 이집트(1992) 등에서 방영되었다.[3] 미주 지역에서는 멕시코(1988), 푸에르토리코(1989), 도미니카 공화국(1989), 미국(1989), 쿠바(1990), 에티오피아(1992), 브라질(1990), 베네수엘라(1991), 페루(1991), 콜롬비아(1992), 볼리비아(1992), 아르헨티나(1992), 칠레(1993), 파라과이(1993), 에콰도르(1994)에서 방영되었다.

小林綾子|고바야시 아야코일본어는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국가들을 방문할 때 따뜻한 환영을 받는다. 특히, 1980년대 후반 드라마가 큰 인기를 누렸던 스리랑카를 2017년 2월 방문하여 "Japan Expo Premier Sri Lanka 2017"에 참석하기도 했다.[4][5] 오싱은 이란-이라크 전쟁 중에 방영된 드라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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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Men and Women of Character http://www.nhk.or.jp[...] NHK 2011-10-08
[3] 논문 Udornpim http://utminers.utep[...] Utep
[4] 웹사이트 Ayako Kobayashi: Young Oshin Performs At Japan Expo 2017 https://web.archive.[...] 2022-02-24
[5] 웹사이트 තිස් අවුරුද්දක් දිරිය මව සමඟ ඔෂින් නැවත එයි https://web.archive.[...]
[6] 뉴스 Once enamored with militarism, 'Oshin' writer aims for message of peace and happiness https://web.archive.[...] 2015-03-17
[7] 웹사이트 Mainoumi interviews Asasekiryuu http://www.banzuke.c[...]
[8] 서적 Ouran High School Host Club Viz Media 2002
[9] 웹사이트 Làm "oshin" trên phim http://nld.com.vn/20[...] 2013-09-02
[10] 웹사이트 Tanakura Bazaar: The Iranian Legacy of Beloved Japanese Soap Opera Oshin https://ajammc.com/2[...] 2021-06-06
[11] 뉴스 Wildly Popular Japanese TV Soap Opera Lands Radio Chiefs In Prison https://apnews.com/a[...] 2021-06-13
[12] 간행물 The Impacts of Japanese Television Programs: Worldwide "Oshin Phenomena " https://core.ac.uk/d[...]
[13] 웹사이트 ماجرای توهین به حضرت زهرا با الگو معرفی نمودن اوشین | پرسمان دانشجويي - اندیشه ی سیاسی https://web.archive.[...] 2018-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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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웹사이트 ❸ Ⅱ期 15 作目『水色の時』から41作目『純ちゃんの応援歌』まで(1975 ~ 1988) https://www.nhk.or.j[...] NHK放送文化研究所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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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웹사이트 最低平均視聴率なのにDVDが大売れ!「ちりとてちん」貫地谷しほりがメッセージ! https://www.cinemato[...] 201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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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기타 오싱은 별다른 의미 없이 지은 이름이기 때문에 한자가 아닌 히라가나로 표기된다. 단, 오싱이 결혼하기 전의 성인 다니무라는 谷村로 표기된다.
[86] 서적 《오싱》-작가의 글 청조사
[87] 기타 제사공장은 실을 짓는 공장을 말한다. 공장안의 습기가 높은데다가 보균자를 격리시키지 않아 폐결핵에 걸릴 확률이 높아서 근무조건이 나쁘기로 악명높던 사업체였다. 대부분의 생산직 여직원들이 소작인의 딸이었는데, 이들의 부모들이 지주에게서 진 빛을 갚기 위해 선불로 임금을 받았기 때문에 이동의 자유조차도 없었다. 소설속에서도 오싱의 언니 하루는 제사공장에서 혹사당하다가 폐결핵에 걸려서 죽는데, 죽기직전 동생에게 다카 미용실의 주소를 알려준다.오싱은 이 주소를 간직하고 있다가 언니가 세상을 떠나자 도쿄에 무작정 가서 다카의 제자가 된다.
[88] 기타 가요는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학교 공부를 그만두고,재주와 흥미에 맞는 서양화 그리기에 몰두하지만, 결혼하여 가가야 쌀도매점 후계자가 되기 바라는 할머니와 부모님의 강요로 꿈을 이루지 못한다.
[89] 기타 겡 할아범은 출신이 비천한 오싱을 처음에는 '아씨'가 아니라 '오싱상'이라고 부르며 편견을 가지고 대하지만, 오싱의 착한 마음씨와 요리, 다도, 주산, 회계 모두 수준급인 다재다능함에 감탄, '아씨'라고 부르면서 존경한다. 그리고 다노쿠라가 아동복 가게를 개업하자 가게일을 봐주면서 사업을 돕는다.
[90] 기타 오싱은 양복점영업 시절, 남편의 거래처가 무리한 사업확장과 세계경제대공황으로 부도나자, 과감하게 거래처에 가서 납품한 양복원단을 갖고와서 시장에서 장사하여 손해를 최소화하는 지혜를 보인다.
[91] 기타 오싱과 다노쿠라의 아동복가게는 우연히 오싱이 만든 옷을 본 미노미야 백화점 머천다이저들의 거래제안으로 미노미야백화점에서 불티나게 팔리게 되고, 재봉사들을 고용할 정도로 번창한다. 그런데 재봉사중 한 사람이 감기로 일을 할 수 없자, 오싱은 그 재봉사 아가씨를 대신해서 재봉틀을 돌려 납품에 지장이 없게 하였다.
[92] 기타 무료로 생선을 나누어주어 관심을 끈뒤,다른 상인들보다 싼 값에 판매하는 상술로 오싱은 마을 사람들의 인기를 받는다. 당연히 경쟁관계의 생선장수 아줌마들이 격분하여 집에 찾아오지만, 지는 게 싫으면 상술을 개발하라는 히사 아줌마의 반박에 말문이 막혀 돌아간다. 뿐만 아니라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해주는 요리대행서비스까지 개발하는등 오싱은 뛰어난 영업방식을 선보인다.
[93] 기타 오싱은 가족 수와 가족구성원 연령에 맞춘 생선판매로 신용을 얻는다.
[94] 기타 고우타는 사상전향을 한 뒤 이름을 나미키(並木浩太)로 바꾸었기 때문에, 다노쿠라 수퍼 관계자들은 고우타를 나미키로 알고 있다.
[95] 기타 청조사에서 출판한 동화《어린이를 위한 오싱》에서는 오싱의 친구이자 옛 상전인 가요가 매춘부로 혹사당하다가 급사하는 내용이 나와 있지 않으며, 오싱이 가요의 장례를 치른뒤 아들 노소미를 데려오는 내용도 가요가 고아원에 맡긴 노소미를 데려오는 내용으로 각색되었다.
[96] 기타 일본에서는 막부에서 기독교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기독교인과 비 기독교인 모두 장례를 치를때 불교 승려가 치르도록 강제했는데, 전통으로 굳어졌다.
[97] 기타 “원시 여성은 태양이었다. 진정한 사람이었다. 지금 여성은 달이다. 타인에 의존하여 살고 타인의 빛에 의해 빛나는 병자와 같이 창백한 얼굴의 달이다.” 라는 하라즈카 라이초의 글이 인용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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