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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비디오 게임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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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3년 비디오 게임 위기는 1983년 미국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 발생한 붕괴 현상으로, 과잉 생산, 저품질 게임의 범람, 소비자 신뢰 하락, 가정용 컴퓨터의 부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했다. 이로 인해 아타리 등 주요 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고, 많은 소매상들이 비디오 게임 판매를 중단했으며, 미국 비디오 게임 시장의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닌텐도의 패밀리 컴퓨터(NES)가 등장하여 시장을 부흥시켰지만, 닌텐도의 엄격한 서드파티 통제 정책은 이후 경쟁 구도를 변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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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비디오 게임 위기
개요
명칭1983년 비디오 게임 위기
다른 이름아타리 쇼크
발생 시기1983년
주요 원인가정용 게임 시장의 포화
품질 낮은 게임의 과잉 생산
콘솔의 가격 경쟁 심화
주요 결과북미 비디오 게임 시장의 붕괴
여러 비디오 게임 회사들의 파산 및 부도
가정용 게임 콘솔 시장의 재편
배경
1970년대 후반비디오 게임 산업의 급성장
아타리가정용 게임 시장의 선두 주자
기타 회사다양한 회사들이 게임 시장에 진출
과도한 경쟁저품질 게임의 난립
원인
가정용 게임 시장 포화시장 수요를 초과하는 콘솔 및 게임의 생산
소비자들의 구매력 감소
저품질 게임의 과잉 생산품질 관리 부족
소비자들의 신뢰도 하락
가격 경쟁 심화콘솔 가격 인하 경쟁
수익성 악화
기타 원인팩맨 등 인기 게임의 모방작 및 유사 게임의 증가
E.T.와 같은 실패작의 영향
경제 불황
위기의 영향
북미 시장 붕괴북미 비디오 게임 산업의 거의 완전한 붕괴
회사 파산 및 부도아타리를 포함한 여러 회사들의 파산
수많은 게임 개발자 및 유통사의 도산
콘솔 시장 재편아타리의 몰락
닌텐도의 시장 진입 및 지배
새로운 게임 산업 모델의 등장
게임 개발 및 유통 방식 변화품질 관리에 대한 중요성 인식
라이선스 시스템의 강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게임의 등장
위기 이후
닌텐도의 부상패미컴을 통해 시장 재건 성공
게임 산업의 부활새로운 콘솔과 게임의 등장으로 시장 회복
게임 산업의 변화게임 개발 및 유통 방식의 변화
온라인 게임 및 모바일 게임 시장의 성장
게임 산업의 글로벌화
참고 자료
관련 서적Console Wars: Sega, Nintendo, and the Battle for Video Game Supremacy
관련 기사Wikipedia에 「アタリショックという言葉を初めて使ったのはトイザらスの副社長」と書くことはできない
관련 정보1983년 미국 게임 시장 대폭락 사건(아타리쇼크)
1983년 비디오 게임 위기

2. 배경

아타리는 본래 아케이드 게임이 전문이었으나, 오락실용 게임의 높은 제조비와 짧은 수명으로 순수익이 여의치 않아 가정용 게임기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1975년 말 저가형 마이크로프로세서 모스 테크놀로지의 등장은 이러한 아타리의 바람을 현실화하는 발판이 되었다. 아타리의 개발진은 MOS 6507중앙 처리 장치로 사용해 게임기를 개발했으며, 이는 1977년 CPU 기반 가정용 게임기 아타리 2600(초기 발매명 '아타리 비디오 컴퓨터 시스템')으로 결실을 맺었다.[87] 아타리 2600은 콘솔 안에 게임이 수록되지 않고 게임이 저장된 롬 카트리지를 별도로 삽입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1983년 비디오 게임 시장 붕괴 이전 가장 인기 있었던 콘솔, 아타리 VCS(아타리 2600)


아타리 2600은 자사 아케이드 게임의 가정용 이식판에 대한 독점권과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열등한 그래픽 성능에도 불구하고 경쟁 기기들을 압도했다.[88] 1980년 3월, 타이토의 아케이드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아타리 2600 이식판은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 1982년 말 기준으로 아타리 2600은 전 세계에서 1500만 대가 판매되었다.[89] 아타리 외에도 마텔인텔리비전콜레코콜레코비전이 당시에 높은 마진율을 확보한 게임기였다.

1979년, 전 아타리 프로그래머들이 모여 아타리 2600용 비디오 게임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기업 액티비전을 설립했다.[90] 액티비전은 게임 콘솔 제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이 해당 콘솔로 게임을 판매하여 수익을 거두는 최초의 서드파티 개발사였다.[91] 1980년 말, 아타리는 영업비밀 절도와 기밀유지 협약을 근거로 액티비전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법적 분쟁은 1982년 액티비전이 아타리에 사용료를 지불하는 대가로 서드파티 지위를 인정받는 합의로 마무리되었다.[92][93] 액티비전의 등장은 서드파티 개발사들이 시장에 대거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초의 서드파티로서 액티비전(Activision) 설립(1979년). 명작도 많다.

3. 원인

아타리는 본래 아케이드 게임 개발사였으나, 높은 제조 비용과 짧은 게임 수명으로 인해 가정용 게임기 개발을 목표로 삼았다. 1975년 말, 모스 테크놀로지의 저가형 마이크로프로세서 등장은 이러한 아타리의 바람을 현실로 만들었다. 아타리는 MOS 6507중앙 처리 장치로 사용한 아타리 2600(초기 발매명 '아타리 비디오 컴퓨터 시스템')을 1977년에 출시했다.[87] 아타리 2600은 게임이 내장되지 않고, 게임이 저장된 롬 카트리지를 별도로 삽입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아타리 2600은 자사 아케이드 게임의 가정용 이식판에 대한 독점권과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경쟁 기기들을 압도했다.[88] 1980년,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아타리 2600 이식판은 킬러 애플리케이션으로 부상했다. 1982년 말, 아타리 2600은 전 세계적으로 1500만 대가 판매되었다.[89] 마텔인텔리비전콜레코콜레코비전도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1979년, 전 아타리 프로그래머들은 아타리 2600용 게임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기업 액티비전을 설립했다.[90] 액티비전은 콘솔 제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이 콘솔 게임을 판매하여 수익을 얻는 최초의 서드파티 개발사였다.[91] 아타리는 액티비전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1982년 액티비전이 아타리에 사용료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서드파티 지위를 인정받는 합의가 이루어졌다.[92][93] 액티비전의 등장은 서드파티 개발사들이 시장에 대거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2년, 분석가들은 생산되는 소프트웨어 수가 과도하여 소매상이 물품 배치에 어려움을 겪는 시장 과포화 현상을 지적했다. 또한, 가정용 컴퓨터 가격이 하락하여 콘솔 시장이 큰 변화를 겪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97]

제조사들은 비디오 게임 산업의 급성장에 따라 수요를 과대 예측했다. 1983년, 골드만삭스의 한 분석가는 비디오 게임 수요가 전년 대비 100% 증가했지만, 제조사의 공급은 175% 증가하여 막대한 잉여 생산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1982년, 아타리 CEO 레이몬드 카서는 게임 산업의 포화점이 미국 가정의 절반이 게임 콘솔을 소유할 때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낮은 1500만 대 판매 시점에서 위기가 발생했다.[98]

3. 1. 콘솔 시장 과포화



아타리 VCS(1982년 말 아타리 2600으로 이름 변경)는 게임 카트리지를 교체하여 사용하는 방식의 가정용 게임기였지만, 1980년대 초까지는 2세대 콘솔 시장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다. 1977년, 가정용 '''' 복제품 시장의 붕괴 직전에 출시된 아타리 VCS는 처음 몇 년 동안은 판매량이 적었다. 그러나 1980년, 아타리가 타이토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 출시한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이 콘솔의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되면서 VCS의 판매량은 4배로 증가했고, 이 게임은 100만 장 이상 판매된 최초의 게임이 되었다.[2][3]

아타리 VCS의 성공에 힘입어 오디세이², 인텔리비전, 콜레코비전, 아타리 5200, 벡트렉스 등 다른 회사들의 콘솔들이 출시되었다. 특히 콜레코는 아타리 VCS 게임을 콜레코비전에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하는 추가 장치를 판매했으며, 닌텐도의 아케이드 히트작 ''동키콩''의 라이선스를 받은 가정용 버전을 콘솔과 함께 제공했다. 1982년, 콜레코비전은 하드웨어 시장 점유율 약 17%를 차지한 반면, 아타리 VCS는 58%를 차지했다. 이는 아타리가 가정용 콘솔 시장을 지배하는 데 대한 최초의 실질적인 위협이었다.[4]

각각의 새로운 콘솔은 콘솔 제조업체가 독점적으로 제작한 자체 게임들을 가지고 있었고, 아타리 VCS는 서드파티 개발자가 제작한 많은 게임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1982년, 분석가들은 시장 포화 경향을 지적하며, 새롭게 출시되는 소프트웨어는 몇 가지 큰 히트작만을 낼 수 있을 것이며, 소매업체들이 시스템에 너무 많은 매장 공간을 할애했고, 가정용 컴퓨터의 가격 인하로 인해 업계가 재편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5]

1983년 당시 시장에는 Atari 2600(VCS) 외에도 Atari 5200, 밸리 매뉴팩처링(Bally Manufacturing)의 밸리 아스트로케이드(Bally Astrocade), 콜레코의 콜레코비전, 콜레코제미니, 에머슨의 알카디아 2001, 페어차일드 반도체페어차일드 채널 F, 마그나복스의 오디세이2, 마텔인텔리비전, 밀턴 브래들리(Milton Bradley Company)의 벡트렉스 등의 게임기가 존재했고, 더 나아가 오디세이3(Odyssey3)와 Atari 7800과 같은 차세대 기기도 발표되었다. 각 게임기는 각각 풍부한 게임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와 서드파티를 가지고 있었지만, 소프트웨어 라인업을 채우기 위해 조악한 저품질 게임 소프트웨어가 난무하여 공급 과잉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은 소비자들에게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어떤 콘솔과 게임을 구매해야 할지 혼란을 야기했다. 또한, 소매상들은 여러 콘솔의 게임들을 모두 구비해야 했기 때문에 재고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3. 2. 배급 조절 부재

아타리는 개발자 개인의 실적을 인정하지 않고 게임 내에 이름을 남기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에 반발한 아타리 프로그래머 4명은 1979년 액티비전을 설립하고 독자적으로 아타리 2600 게임을 개발하여 카트리지를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90][91] 아타리는 이를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결국 액티비전이 아타리에 사용료를 지불하는 대신 서드파티 지위를 법적으로 인정받는 합의로 마무리되었다.[92][93]

액티비전의 게임은 아타리 자체 게임만큼 인기를 얻어, 1982년작 《피트폴!》은 4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액티비전의 성공은 다른 많은 경쟁업체들이 시장에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액티비전 설립자 데이비드 크레인은 이들 기업 중 상당수가 액티비전의 성공을 모방하려는 벤처 투자가들의 지원을 받고 있음을 간파했다. 액티비전 팀과 달리, 신생 배급사들은 프로그래밍 경험이 부족하여 대부분 저질 게임만을 생산했다.[7] 크레인은 이 게임들을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게임"이라고 묘사했다.[8]

서드파티 게임 산업의 급성장은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에 등장한 공급업체 수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크레인에 따르면, 한 해만에 업체 수가 3개에서 30개로 증가했다고 한다.[99] 1982년 여름 CES에서는 MCA20세기 스튜디오 소속사 폭스 비디오 게임스를 포함한 17개 기업이 참가해 아타리 콘솔용 게임 90개를 발표했다.[98][100] 1983년에는 약 100개의 기업들이 CES를 통해 비디오 게임 시장 진출을 시도했다. 〈아타리에이지〉는 그 해에 아타리 2600용 게임을 생산하는 업체가 최소 158개가 있었다고 보도했다.[101] 1982년 6월 약 100종에 불과했던 아타리 게임 수는 같은 해 12월 400종으로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1983년에는 상위 10%의 게임만이 총매출의 75%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91]

바이트는 1982년 12월 "1982년에 디자인이나 형식 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 게임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중이 정말로 아이디어를 좋아한다면, 그 가치를 모두 짜내고, 다른 색깔의 수많은 복제품이 곧 선반을 채웁니다. 즉, 대중이 구매를 중단하거나 더 나은 것이 나올 때까지입니다. 마이크로컴퓨터 게임이 1980년대의 훌라후프라고 믿는 회사는 빠른 이익만을 원합니다."라고 보도했다.[103] 빌 컨켈은 1983년 1월에 회사들이 "움직이고, 걷고, 기어 다니거나, 지구 아래 터널을 파는 모든 것을 허가했습니다. 게임과 영화 ''마라톤 맨'' 사이의 연결이 얼마나 미약할지 궁금해해야 합니다. 뭘 할 건가요, 비디오 게임 치근 치료를 할 건가요?"라고 말했다.[104] 1983년 9월, 〈피닉스〉는 아타리 2600 카트리지를 더 이상 성장 산업이라 부를 수 없다고 보도했다.

액티비전, 아타리, 마텔은 숙련된 프로그래머를 갖추고 있었지만, 신생 기업 대다수는 고품질 게임을 생산할 능력이 없었다. 시장에 범람한 저질 게임들로는 랄스톤 푸리나의 개 사료를 소재로 한 게임 《척 웨건을 쫓아라》, 《카붐!》의 위작 《분실수화물》, 밴드 저니를 소재로 한 《저니 이스케이프》, 쟁반 돌리기 게임 《디스해스터》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소매상과 소비자들에게 불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았다.

새로운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경쟁할 수 있는 시장 공간은 제한적이었다. 액티비전의 짐 레비는 1982년에 시장에 풀릴 것으로 예상되는 총 카트리지 수가 6천만 장이며, 이 중 액티비전은 12~15%를 생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 해에 최소 50개 이상의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하여 각각 100만~200만 장의 카트리지를 생산했고, 아타리의 1982년 예상 카트리지 생산량 6천만 장을 합하면 결과적으로 1982년 카트리지 수요의 200%를 초과했다. 이러한 과다 공급은 악성 재고를 만들어 산업 위기에 기여했다.[102]

3. 3. 소비자 신뢰 저하

아타리는 자사의 아케이드 게임을 아타리 2600으로 이식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다른 지식 재산의 라이선스를 확보하여 게임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책으로 출시된 게임들 중 팩맨E.T.는 비디오 게임 위기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106] 1982년 3월에 출시된 팩맨 아타리 2600 이식판은 낮은 그래픽 품질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백만 장이 판매되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품질 문제로 인한 환불이 이어지면서 아타리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을 입혔다.[106]

E.T.는 동명의 영화 흥행에 힘입어 제작되었으며, 아타리는 판권 사용료로 2000만달러에서 2500만달러 사이를 지불했다.[107] 하워드 스콧 워쇼가 게임 기획을 맡았으나, 1982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아타리의 계획으로 인해 개발 기간이 5주밖에 주어지지 않아 급하게 완성되었다.[107] 《E.T.》는 단기적으로는 성공하여 1982년 말부터 1983년 초까지 가장 많이 팔리는 비디오 게임 1위를 달성하고 260만 장이 판매되었지만, 원시적인 그래픽과 지루한 게임플레이로 인해 부정적인 반응을 얻었다.[108] 1983년에는 판매된 게임 중 66만 장 이상이 환불되었다.[109]

《팩맨》과 《E.T.》의 저조한 성적과 낮은 품질은 소비자들의 아타리 제품에 대한 기대를 낮추었고, 1983년부터 판매량이 감소하기 시작했다.[108] 이후 아타리는 게임 이식과 판권 게임화를 개선하려 노력했고, 미스 팩맨 이식판은 더 나은 평가를 얻기도 했다.[107]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타리는 이전의 판매량을 회복하지 못했다.[106]

1982년경부터 가정용 게임 시장의 급격한 확장에 편승하여 게임 제작 경험이 없는 다른 업종의 제조업체들이 VCS 서드파티로 진출했다. 이들이 고용한 개발자들은 아타리액티비전 등의 개발자와 달리 제대로 게임을 만들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매우 질이 낮은 소프트웨어까지 시장에 넘쳐났다. 극단적인 예로 VCS에 진출한 퀘이커 오츠(아침 시리얼 제조업체)나 퓨리나(애완동물 사료 제조업체) 등이 알려져 있다. 이들 제조업체는 저품질 게임 소프트웨어에 대대적인 광고를 했고, 가정용 게임 시장 전체의 신뢰를 훼손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사용자들은 "사서 집에 있는 VCS에 꽂아보기 전까지는 정말 재미있는지 알 수 없다"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이는 사용자의 구매 의욕 감퇴를 초래했다.

3. 4. 가정용 컴퓨터 시장 부상

코모도어 64는 비디오 게임 위기에서 살아남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컴퓨터 중 하나가 되었다.


1977년부터 저가형 가정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아타리는 1979년에 게임 콘솔용 칩셋을 활용한 아타리 400과 아타리 800을 출시하여 제품명과 동일한 가격에 판매했다. 1981년, IBMIBM 5150 PC를 $1,565에, 싱클레어 리서치ZX81£70에 출시했다.[110] 1982년에는 신형 데스크톱 컴퓨터들이 게임 콘솔보다 뛰어난 컬러 그래픽을 제공하며 가정용 컴퓨터 판매량이 급증했다. TI-99/4A와 아타리 400은 $349, TRS-80 컬러 컴퓨터는 $379에 판매되었고, 코모도어 인터내셔널VIC-20를 $199, 코모도어 64를 $499에 판매했다.[111][112]

당시 컴퓨터들은 콘솔보다 더 큰 용량의 기억 장치와 더 빠른 중앙 처리 장치를 갖추어 더 복잡한 게임 제작 환경을 제공했다. 1984년 아타리 8비트 소프트웨어 평가 개요서는 총 365쪽 중 198쪽을 게임에 할애했다.[113] 가정용 컴퓨터는 워드 프로세서와 회계 업무도 가능했고, 게임은 외에 플로피 디스크콤팩트 카세트로 배포하여 비용을 절감했으며, 게임 진행 상황 저장 기능도 지원했다.

1982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코모도어 간의 가격 경쟁으로 가정용 컴퓨터 가격이 콘솔 수준으로 낮아졌다.[114] 1983년 6월 코모도어 64 소매가는 $300였으나 일부 소매상은 $199에 판매했다. 1982년 〈비디오 게임스 플레이어〉 창간자 댄 구트만은 1987년 기사에서 "컴퓨터에서 게임도 하고 다른 업무도 할 수 있는데 비디오 게임 콘솔을 살 이유가 있나?"라는 질문이 있었다고 회상했다.[115] 〈더 피닉스〉는 1983년 9월 인텔리비전 III 발매 취소 소식을 전하며 "누가 게임만 가능한 기계에 200달러를 지불할까?"라고 언급했다. 코모도어는 윌리엄 샤트너가 등장하는 VIC-20 광고에서 "아타리나 인텔리비전에서 비디오 게임만 살 이유가 있나? 이건 진짜 컴퓨터 키보드에 게임도 된다"라고 홍보했다.[116] 코모도어는 모스 테크놀로지 칩셋 기술을 소유, 집적 회로직접 생산하여 VIC-20와 코모도어 64를 저렴하게 판매했고, 아타리 조이스틱 포트를 지원하여 컨트롤러 시장에도 진출했다.

1983년 6월 〈더 뉴욕 타임즈〉 기사에서 서비스 머천다이즈 임원은 "소매업계 30년 동안 이런 자기 파괴적 품목은 없었다"고 말했다. 가격 경쟁 과열로 1983년 9월 콜레코 CEO 아놀드 그린버그는 경쟁사 IBM의 IBM PCjr 출시 소문을 반기며 "IBM은 돈을 만질 줄 안다"고 칭하고, "1, 2년 전에는 소수가 아닌 다수가 이익을 봤다"고 말했다.[117] 낮은 가격에도 수요가 미미하여 기업들은 공급을 줄였으나, 크리스마스에 수요가 급증하여 품절 대란이 발생했다.[118] 코모도어 64는 공급이 충분하여 크리스마스에 50만 대 이상 판매되었다.[119]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99/4A 사업 손실로 1983년 말 생산 중단 및 시장 이탈 후 주식이 25% 반등했다.[120] 1983년 12월, J. C. 페니는 공급 부실과 낮은 가격으로 가정용 컴퓨터 판매 중지를 발표했다.[121] 코모도어 64의 공격적 가격 정책은 1983년 위기의 촉매로 여겨진다.[122]

4. 결과

1983년 비디오 게임 위기는 서드파티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중요한 결과를 낳았다. 매텔과 콜레코는 서드파티 개발을 통제하기 위해 잠금 장치를 구현했지만, 아타리 2600은 보호되지 않아 누구나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닌텐도는 패밀리 컴퓨터(패미컴)를 출시하며 롬 카트리지와 콘솔에 지역별 잠금 칩을 장착하는 등 엄격한 라이선스 정책을 시행했다. 이는 무허가 게임 사용과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한 조치였으며, 오늘날 대부분의 주요 비디오 게임 콘솔에 사용되는 통제 시스템의 개념이 되었다.[65]

닌텐도는 처음에 패미컴의 유일한 개발자였으나, 남코허드슨 소프트의 압력으로 서드파티 개발을 개방했다. 그러나 서드파티에게 카트리지당 30%의 라이선스 수수료를 부과하는 시스템을 도입했고, 이는 현재까지 콘솔 제조업체들이 사용하고 있다.[65] 닌텐도는 엄격한 제조 통제를 유지하고 제조 전에 전액을 지불하도록 요구했으며, 카트리지는 반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게시자는 주문한 모든 제품의 판매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닌텐도는 대부분의 서드파티 게시자를 시스템당 연간 5개 게임으로 제한했지만, 일부 회사는 코나미의 울트라 게임즈 레이블과 같이 추가 회사 레이블을 만들어 이를 우회하기도 했다. 닌텐도는 1993년 슈퍼 패미컴 출시 이후 이 규칙을 폐지했다.[66]

아타리 쇼크와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 유행했던 패미컴(1983년).


아시아 지역에서는 닌텐도의 엄격한 패미컴 카트리지 제조 감독으로 인해 합법적이지 않은 카트리지와 불법 복제 카트리지가 제작되었다. 닌텐도는 시스템용으로 출시된 모든 라이선스 게임에 닌텐도 품질 보증 마크를 부착하여 진품을 홍보하고 불법 복제 판매를 억제하려 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67]

닌텐도 NES가 북미 가정용 게임 시장을 부흥시켰다(1985년).


닌텐도는 패미컴을 미국에서 출시할 때 아시아에서 발생한 불법 복제 문제와 1983년 시장 붕괴를 피하고자 했다. 회사는 독점적인 10NES 시스템(잠금 칩)을 만들어 칩이 없는 카트리지를 NES에서 실행하지 못하도록 했다. 10NES 잠금 장치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닌텐도가 출판 통제를 강화하고 서구 시장에서 불법 복제 카트리지를 처음으로 방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했다.[68] 그러나 이러한 엄격한 라이선스 조치는 닌텐도가 독점적 행위로 비난받은 후 역효과를 낳았다.[69] 장기적으로 이는 일렉트로닉 아츠와 같은 많은 서구 서드파티 게시자들을 닌텐도 콘솔에서 멀어지게 하고 세가 제네시스 또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경쟁 콘솔을 지원하게 만들었다.

NES가 5년 만에 세가 제네시스(Sega Genesis)에 시장을 빼앗긴 모습(1990년). 세가 역시 5년 만에 소니에 시장을 빼앗겼다


아타리는 게임기 시장에서 아타리 재규어를 마지막으로 1996년 철수했다. NES의 성공 이후 북미 게임 시장은 오랫동안 일본산 게임기가 장악했고, 북미산 게임기는 2001년 엑스박스가 출시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아타리 쇼크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아타리 쇼크는 없었다", "비디오 게임의 무덤은 도시 전설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그러나 2014년 4월, Xbox Entertainment Studios의 기획으로 비디오 게임의 무덤이 파헤쳐졌고, 『E.T.』 등의 카트리지가 실제로 발굴되었다.[86] 발굴된 『E.T.』 중 하나는 아타리 쇼크의 증거물로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미국 국립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86]

4. 1. 즉각적 영향

1983년 산업 위기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국가는 미국이었으며, 전 세계 비디오 게임 시장에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미쳤다. 1982년 아케이드, 콘솔, 컴퓨터 게임을 합친 전 세계 시장 규모는 420억달러였으나, 1985년에는 140억달러로 감소했다. 특히, 1983년부터 1985년까지 가정용 게임 시장은 콘솔에서 가정용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났다.[144]

저품질 게임의 범람과 콘솔 시장의 과포화는 소매상들의 재고 부담을 가중시켰고, 많은 게임 회사들이 파산하게 되었다. 아타리 역시 큰 손실을 입고, 모기업 워너 커뮤니케이션즈에 의해 매각되었다. 소매상들은 비디오 게임 판매를 중단하거나 축소했고, 이는 이후 닌텐도가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 큰 어려움으로 작용했다.[61]

북미 가정용 게임 판매액은 1982년 약 32억달러에서 1985년 1억달러로 급감했다. 북미 가정용 게임 시장은 붕괴되었고, 게임기와 홈 컴퓨터를 판매하던 대기업 중 일부는 파산했다. 당시 게임 시장 최대 기업이었던 아타리(Atari Inc.)도 붕괴되어 분할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1983년 당시 닌텐도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는 신형 게임기 출현으로 인한 아타리 2600의 구식화, 아케이드 게임의 저품질 이식, 서드 파티의 다량의 졸작 투입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게임기에 실망하여 새로운 카트리지를 구매할 의욕을 잃었다고 말했다.[73] 1984년에는 패밀리 컴퓨터(패미컴)의 서드 파티에 대해 저질 소프트웨어가 범람하지 않도록 닌텐도의 승인을 받은 것만 만들도록 주문하고 있다고 밝혔다.[73]

1986년에도 야마우치는 해외 신문에서 서드 파티에 의한 저품질 게임 소프트웨어(속칭 "쓰레기 게임")의 난발이 아타리 시장 붕괴를 초래했다고 언급했다.[74] 이는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 되었고, 2010년 당시 닌텐도 사장이었던 이와타 사토루는 저질 소프트웨어가 난립함으로써 고객의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정의했다.[75]

이후, 하드웨어나 장르에 관계없이 게임 소프트웨어의 공급 과잉이나 조잡한 제작으로 사용자가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고 시장 수요 및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는 현상을 "'''아타리 쇼크의 재림'''" 또는 "아타리 쇼크"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타리 쇼크 이후 남은 대량의 불량 재고를 매장했다고 하는 "비디오 게임의 무덤"이 존재한다는 도시 전설이 있었지만, 2014년에 사실로 확인되었다.[76]

비디오 게임의 무덤에서 발굴된 『E.T.』(2014년).

4. 2. 장기적 영향

1983년 비디오 게임 위기는 미국을 강타하여 전 세계 비디오 게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일본, 유럽, 캐나다 등지에서는 비디오 게임 시장이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145] 미국 게임 산업은 회복에 수년이 걸렸으며, 1982년 420억달러 규모였던 전 세계 시장은 1985년 140억달러로 감소했다. 이 시기 가정용 게임 시장은 콘솔에서 가정용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중심이 이동했다.[144]

닌텐도의 패밀리 컴퓨터.






닌텐도의 패밀리 컴퓨터는 북미 시장에서 비디오카세트 레코더와 유사한 형태로 디자인되어, 게임 콘솔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줄이고자 했다. 닌텐도는 '비디오 게임'이나 '소프트웨어' 같은 용어 사용을 최소화하며, 북미판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NES)을 출시하여 8비트 게임과 고전 게임의 상징으로 만들었다.[107] 1985년 말, 야마우치 히로시는 뉴욕 소매상에 닌텐도 제품을 시험 판매했고, 아라카와 미노루는 판매되지 않은 재고를 전액 환불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 5만 대를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146]

1985년은 가정용 비디오 게임 매출이 1억달러로 감소한 암울한 시기였지만, 웨스트우드 스튜디오, 코드마스터즈, 스퀘어 같은 새로운 개발사들이 등장하여 미래 게임 장르를 개척하는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147]

미국의 비디오 게임 위기는 두 가지 장기적인 결과를 낳았다. 첫째, 가정용 콘솔 시장 주도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이동했다. '아타리 쇼크'Atari Shock영어アタリショック일본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일본 관계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148]

1983년 이전, 〈포브스〉의 조나단 그린버그는 일본 기업들이 북미 비디오 게임 산업을 점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149] 1982-1983년경, 일본 제조사들은 이미 북미 아케이드 시장 상당수를 점유하고 있었으며, 데이터 이스트 USA의 진 립킨은 일본 기업들이 새로운 기회에 투자할 재정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150]

미국 산업 위기 동안 일본 게임 산업은 아케이드 게임에서 가정용 콘솔로 초점을 옮겼다. 1983년 7월, 닌텐도의 패밀리 컴퓨터와 세가SG-1000이 출시되어 3세대 게임기 시대를 열었다.[151] 일본의 버블 경제는 이들의 인기를 가속화시켰다. 닌텐도와 세가 콘솔은 아타리와 마텔을 제치고 일본 콘솔 산업 호황을 이끌었다.[151] 1986년, 일본 650만 가정이 패밀리 컴퓨터를 보유했으며, 닌텐도는 미국으로 콘솔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닌텐도의 성공 이후, 닛폰 전기의 PC 엔진과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도 미국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다. 특히 메가 드라이브는 1990년대 초반 닌텐도와 세가의 치열한 경쟁을 이끌었다.

1984년에는 맥나복(Magnavox)과 같은 회사들이 비디오 게임 콘솔 산업에서 철수하면서 비디오 게임이 일시적인 유행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가정용 게임기, 유럽에서는 가정용 컴퓨터가 인기를 얻으며 비디오 게임 산업은 지속되었다.

아타리 쇼크 시기, 일본에서는 닌텐도의 패미컴이 성공을 거두었지만, 닌텐도 내부에서는 아타리 쇼크 재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75]

1985년 북미판 패미컴인 NES 출시는 소매업체들의 거부감이 큰 장벽이었다. 일본에서의 패미컴 판매량은 1984년 44만 대로, MSX와 같은 홈 컴퓨터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고, 북미 소매업체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83] 그러나 토이저러스 담당자가 닌텐도 VS. 시스템을 마음에 들어 하면서 NES 출시가 가능해졌다. 닌텐도는 "BASIC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콘솔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으로 명명했으며, 패미컴 로봇을 번들로 제공하여 "게임기가 아니다"라고 설득했다.[84]

닌텐도는 아타리 쇼크 재현 우려로 NES 소프트웨어 카트리지에 복제 방지 기능을 탑재하고, 엄격한 로트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85] 서드파티에 의한 카트리지 제작을 조건부로 허용했지만, 1986년 라이선스 제도가 설립되었다.[75]

1985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출시되어 NES 인기가 급상승했다. 1987년부터 북미 서드파티가 진출하면서 북미 가정용 게임 시장은 1988년 23억달러(약 2875억), 1989년 50억달러(약 7150억)로 성장하며 아타리 쇼크에서 회복했다.

서드파티의 연간 출시 소프트웨어 수를 제한하여 NES에서는 저품질 소프트웨어로 인한 시장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해적판 게임 소프트웨어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동남아시아나 남미에서 큰 문제가 되었지만,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저작권법 정비로 큰 피해는 없었고, 불법적인 에로게도 곧 판매 금지되었다.

닌텐도의 강압적인 서드파티 관리 방식은 일시적으로 성공했지만, 일렉트로닉 아츠와 텐겐 같은 대형 서드파티와의 불화를 낳았고, 1990년에는 세가 제네시스가 NES와 SNES를 대신하여 북미 시장 점유율을 장악하게 되었고, 이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등이 북미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아타리는 게임기 시장에서 VCS와 같은 인기를 얻지 못하고 아타리 재규어를 마지막으로 1996년 게임기 시장에서 철수했다. NES 성공 이후 북미 게임 시장은 오랫동안 일본산 게임기가 장악했고, 북미산 게임기는 2001년 엑스박스를 기다려야 했다.

21세기, 아타리 쇼크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아타리 쇼크는 없었다", "비디오 게임의 무덤은 도시 전설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2014년 4월, Xbox Entertainment Studios 기획으로 비디오 게임의 무덤이 파헤쳐져 『E.T.』 등의 카트리지가 실제로 발굴되었다.[86] 이와 관련하여 아타리 관계자들에 대한 재차 취재가 이루어졌고, 잭 펜 감독에 의해 『Atari: Game Over』로 영화화되어 11월 Xbox Live에서 배포되었다.[86] 발굴된 『E.T.』 중 하나는 아타리 쇼크의 증거물로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미국 국립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86]

아타리 쇼크와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 유행했던 ZX 스펙트럼(1982년). 1990년대 초까지 인기를 이어갔다.


유럽에 대한 아타리 쇼크의 영향은 거의 없었다. Atari VCS 시장 붕괴로 인해 일시적으로 북미 게임 시장의 패권을 차지했던 아타리와 코모도어의 취미용 컴퓨터는 북미에서는 NES가 보급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까지 인기가 급격히 감소했지만, 한편으로 북미 게임 시장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유럽에서 인기를 얻었고, 유럽에서 "게임용 컴퓨터"로 1990년대 중반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간접적인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1983년 당시, VCS는 미국에서 수입되었기 때문에 고가였고, 당시 유럽에서는 그다지 보급되지 않았다. 반면, 유럽에서는 1982년 영국에서 취미용 컴퓨터 ZX 스펙트럼이 출시되었고, 북미에서 아타리 쇼크가 발생한 1983년 시점에서 "게임용 취미용 컴퓨터"로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NES의 출시가 1987년으로 늦었고, 마케팅도 실패하면서 1990년대 초까지 취미용 컴퓨터 시대가 계속되었다.

1990년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졌던 Atari 8비트 시리즈도 ZX 스펙트럼보다 고성능이면서 16비트 기종보다 저렴하고 게임도 많았기 때문에, 동유럽에서는 여전히 인기가 있었다.

아타리 쇼크 이후에 발매된 Atari 2600 Jr.(1986년). 개발도상국 등에서는 이 무렵부터 VCS의 보급기가 시작된다.


그 외 지역에 대한 영향도 거의 없었다. 아타리 쇼크 이후, 1985년에는 북미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 바닥을 치고, 1986년부터 NES의 보급이 시작되지만, 한편 1986년에는 Atari VCS의 저가판(일명 Atari 2600 Jr.)이 발매되어 아시아와 남미에서는 오히려 이 무렵부터 Atari VCS의 보급기가 시작된다.

4. 2. 1. 일본의 강세

아타리 쇼크는 북미 게임 시장의 주도권을 일본으로 이동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56] 닌텐도는 패밀리 컴퓨터(NES)를 통해 북미 시장을 재건하고, 새로운 게임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107] 닌텐도의 성공은 일본 게임 산업의 발전을 촉진했다.

미국에서 시장 붕괴가 일어나던 당시, 일본 게임 업계는 아케이드 게임에서 가정용 콘솔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1983년, 일본에서는 닌텐도의 패밀리 컴퓨터와 세가SG-1000이 같은 달에 출시되어 3세대 게임기의 시초가 되었다.[59] 일본의 경제 호황은 이들의 인기에 박차를 가했다. 일본 내에서 닌텐도와 세가 콘솔은 기존 아타리나 마텔의 기기들을 판매량에서 손쉽게 제쳤으며, 이후 일본의 콘솔 산업은 몇 년간 타국의 경쟁 없이 호황을 누렸다.[59]

1986년, 출시 3년 만에 일본의 650만 가정(당시 인구의 19%)이 패밀리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닌텐도는 미국으로 콘솔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진출한 닌텐도가 큰 성공을 거두자, 다른 일본 기업들도 미국 시장에 도전하여 1989년에는 닛폰 전기의 PC 엔진과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도 미국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다. 특히 메가 드라이브의 성공은 1990년대 초반 미국 시장에서 닌텐도와 세가 간의 경쟁으로 이어졌다.

시장 붕괴가 소매 부문에 미친 영향은 닌텐도가 미국에서 패미컴을 판매하려고 할 때 직면한 가장 큰 장벽이었다. 북미에서 패미컴을 유통하기 위한 아타리와의 계획된 계약은 시장 붕괴 여파로 무산되었고, 그 결과 닌텐도는 2년 후에 직접 해외 출시를 담당하게 되었다.[60] 소매업체들의 비디오 게임에 대한 반감은 닌텐도가 자사 제품을 "비디오 게임 시스템"이 아닌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NES)으로 브랜드화하고, "컨트롤 데크"와 "게임 팩"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며, 장난감 소매업체들이 매장에 제품을 진열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R.O.B.라는 장난감 로봇을 생산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61][62][63] NES의 디자인은 당시 인기 있던 비디오카세트레코더(VCR)의 로딩 방식을 모방한 전면 로딩 카트리지 슬롯을 사용하여 이전 콘솔 디자인과 차별화했다.[61][62][63]

4. 2. 2. 서드파티 소프트웨어 환경 변화

닌텐도는 10NES 시스템을 도입하여 서드파티 개발사를 효과적으로 통제했다.[152] 이 시스템은 각 롬 카트리지에 CIC 칩을 넣어 게임의 불법 복제 여부와 콘솔 생산지를 확인하고 게임을 가동하는 안전장치였다.[152] 10NES는 완벽하지 않았고, 패밀리 컴퓨터 수명 후반기에 이를 우회하는 방법들이 발견되었으나, 닌텐도가 게임 배급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서양 시장에서 비인가 카트리지 유통을 어느 정도 방지하는 데 기여했다.[152]

초기에 닌텐도는 패밀리 컴퓨터 게임을 자체 제작했으나, 남코허드슨 소프트와의 협력을 통해 서드파티 개발을 개방했다.[153] 닌텐도는 서드파티에게 게임 수익의 30%를 사용료로 부과하는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는 현재 콘솔 제조사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제도이다.[153]

닌텐도는 북미에서 배급사당 매년 5개의 게임만 출시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154] 코나미의 울트라 게임스 지사와 같이 별도 회사를 설립하여 이 제한을 우회하는 기업도 있었다.[154] 이 제도는 슈퍼 패미컴 수명 중반인 1993년에 폐지되었다.[154]

닌텐도의 강력한 카트리지 제조 공정 감독으로 인해 일부 아시아 지역에서는 비인가 카트리지가 판매되기도 했다.[155] 닌텐도는 소비자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인가받은 제품 표지에 '제품보증' 마크를 부착하여 비인가 제품과 구별하는 정책을 실시했다.[155] 닌텐도의 인가 제도는 일부 기업에게 경쟁법 위반으로 비판받아 미국에서 아타리 게임스에게 소송을 받기도 했다.[156]

4. 2. 3. 컴퓨터 시장 성장

1982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코모도어 간의 가격 경쟁으로 가정용 컴퓨터 가격이 비디오 게임 콘솔과 거의 비슷해졌다.[114] 1983년 6월, 코모도어는 코모도어 64의 소매가를 300달러로 낮췄고, 일부 소매상은 최저 199달러에 판매하기도 했다. 당시 컴퓨터는 콘솔보다 용량이 큰 기억 장치와 빠른 중앙 처리 장치를 갖춰 더 복잡한 게임 제작 환경을 제공했다.

코모도어는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겨냥한 광고를 했다. 윌리엄 샤트너가 출연한 VIC-20 광고에서는 "아타리나 인텔리비전에서 나오는 비디오 게임을 뭐하러 사려고요?", "이건 진짜 컴퓨터 키보드도 있고 게임도 돌아가는데요"라고 말했다.[116] 코모도어는 모스 테크놀로지 칩셋 기술을 소유, 집적 회로직접 생산하여 VIC-20와 코모도어 64를 경쟁 모델보다 훨씬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었다.

이러한 코모도어 64의 공격적인 가격 정책은 1983년 위기를 앞당긴 요인으로 평가받는다.[122]

미국에서 콘솔에 대한 관심이 줄면서, 컴퓨터 게임 시장은 1983년부터 성장하기 시작했다. 액티비전처럼 콘솔 게임을 주로 만들던 기업들은 매출 유지를 위해 컴퓨터 게임 개발로 전환했다. 새로운 회사들도 콘솔 게임의 독특한 요소를 컴퓨터 게임에 적용하고, 일부는 저가형 전화 모뎀을 이용한 다인용 게임플레이의 초기 형태를 시도하며 시장에 진입했다.[151] 1983년과 1984년, 산업 위기로 전체 게임 시장 매출은 크게 줄었지만, 컴퓨터 게임 시장은 상대적으로 성장하여 콘솔 시장을 넘어섰다.[144]

5. 한국에 미친 영향

1983년 비디오 게임 위기 당시 한국은 비디오 게임 산업의 초기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상황과는 다르게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아타리 쇼크는 한국 게임 산업에 다음과 같은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 콘솔 게임 시장 진출 지연: 아타리 쇼크로 인한 북미 콘솔 게임 시장의 붕괴는 한국 게임사들의 콘솔 게임 시장 진출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 PC 게임 시장 중심 발전: 한국 게임 산업은 아타리 쇼크 이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PC 게임 시장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는 바람의 나라,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 게임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 일본 게임의 영향력 확대: 아타리 쇼크 이후 닌텐도를 필두로 한 일본 게임 회사들이 세계 게임 시장을 주도하면서, 한국 게임 시장에도 일본 게임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이는 한국 게임사들에게 경쟁과 동시에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었다.
  • 콘텐츠 품질 관리의 중요성 인식: 아타리 쇼크는 게임 콘텐츠의 품질 관리와 유통 시스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한국 게임사들에게 교훈을 주었다.

6. 평가와 교훈

1983년 비디오 게임 위기는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비디오 게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게임 산업은 복구에 수 년이 걸렸으며, 전 세계 시장 규모는 1982년 미화 420억달러에서 1985년 140억달러로 감소했다. 이 시기 가정용 게임 시장은 콘솔에서 가정용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였다.[144]

이후 북미 시장에 진출한 닌텐도의 패밀리 컴퓨터는 비디오카세트 레코더와 유사한 형태로 디자인을 변경하여, 게임 콘솔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을 극복하고자 했다. 닌텐도는 '비디오 게임'이나 '소프트웨어'와 같은 용어 사용을 최소화하고, 북미판 패밀리 컴퓨터인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NES)'을 통해 8비트 게임과 고전 게임의 상징이 되었다.[107] 1985년 야마우치 히로시는 뉴욕 소매상에 닌텐도 제품을 시험 판매했고, 판매되지 않은 재고는 전액 환불하는 조건으로 5만 대를 판매하며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146]

1985년 가정용 비디오 게임 총매출은 1억달러로 감소했지만, 웨스트우드 스튜디오, 코드마스터즈, 스퀘어와 같은 새로운 개발사들이 등장하여 미래에 장르를 개척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147]

1983년 위기는 서드파티 비디오 게임 개발사를 제어하는 수단의 발전을 가져왔다. 아타리마텔산업 스파이 방지에 실패하여 기술 도난 및 핵심 프로그래머 유출을 겪었다. 마텔인텔리비전콜레코콜레코비전은 콘솔 바이오스에 저작권 문자열을 읽는 방식으로 서드파티 개발을 제한했지만, 아타리 2600은 하드웨어 복제 방지 장치가 없어 무단 콘솔 게임 제작을 막을 수 없었다. 닌텐도는 10NES 시스템을 통해 게임의 불법 복제 여부와 콘솔 생산지를 확인하는 안전장치를 장착했다. 10NES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닌텐도가 게임 배급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비인가 카트리지 유통을 방지하는 데 기여했다.[152]

초기 닌텐도는 패밀리 컴퓨터 게임을 자체 제작했으나, 이후 남코허드슨 소프트와의 협력을 통해 서드파티 개발을 개방했다. 닌텐도는 서드파티에게 게임 수익의 30%를 사용료로 받는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는 현대 콘솔 제조사들의 공통적인 제도이다.[153] 닌텐도는 북미에서 배급사당 연간 5개 게임 출시 제한을 두었으며, 코나미의 울트라 게임스와 같은 기업들은 별도 회사를 통해 이를 우회하기도 했다. 이 제도는 1993년에 폐지되었다.[154] 닌텐도의 강력한 카트리지 제조 감독으로 인해 일부 아시아 지역에서 비인가 카트리지가 판매되기도 했으며, 닌텐도는 '제품보증' 마크를 통해 인가 제품과 비인가 제품을 구분했다.[155] 닌텐도의 인가 제도는 경쟁법 위반으로 비판받아 아타리 게임스에게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156]

북미 가정용 게임 판매액은 1982년 약 32억달러 (당시 일본 엔화로 약 7520억)에서 1985년 1억달러 (당시 일본 엔화로 약 200억)로 감소했다. 북미 가정용 게임 시장은 붕괴되었고, 게임기와 홈 컴퓨터를 판매하던 대기업 중 일부는 파산했다. 아타리도 붕괴되어 분할되었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1983년 강연에서 아타리 쇼크의 원인으로 아타리 2600의 구식화, 아케이드 게임의 저품질 이식, 서드 파티의 졸작 투입으로 인한 소비자 신뢰 저하를 지적했다. 1984년 패미컴 서드파티에 대해 저품질 소프트웨어 범람을 막기 위해 닌텐도의 승인을 받은 것만 제작하도록 주문하고 있다고 밝혔다.[73]

야마우치는 1986년에도 서드파티에 의한 저품질 쓰레기 게임의 난립이 아타리 시장 붕괴를 초래했다고 언급했다.[74] 이와타 사토루는 2010년 저품질 소프트웨어 난립으로 고객 신뢰를 잃었다고 정의했다.[75] 이로 인해 게임 소프트웨어 공급 과잉이나 조잡한 제작으로 사용자가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고 시장 수요 및 규모가 축소되는 현상을 "'''아타리 쇼크의 재림'''" 또는 "아타리 쇼크"라고 부른다.

아타리 쇼크 이후 남은 대량의 불량 재고를 매장한 "비디오 게임의 무덤"은 도시 전설이었으나, 2014년 사실로 확인되었다.[76]

7. 결론

1983년 비디오 게임 산업 위기는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비디오 게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82년 미화 420억 달러였던 전 세계 시장 규모는 1985년 미화 140억 달러로 감소했다. 특히 북미 가정용 게임 시장은 1982년 약 32억 달러(약 7,520억 엔)에서 1985년 1억 달러(약 200억 엔)로 크게 붕괴되었으며, 아타리社(Atari Inc.)와 같은 대기업들이 파산하거나 분할되었다.[144]

닌텐도의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는 이러한 아타리 쇼크의 원인으로 Atari 2600의 구식화, 아케이드 게임의 저품질 이식, 서드 파티의 졸작 게임 양산을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로 인해 소비자들이 게임기에 실망하고 새로운 게임 구매 의욕을 잃었다고 분석했다.[73] 이러한 인식은 닌텐도가 패밀리 컴퓨터(패미컴)의 서드 파티에 대해 엄격한 품질 관리를 적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저품질 게임 소프트웨어의 난립과 사용자 신뢰 상실로 인한 시장 붕괴 현상을 '아타리 쇼크'라고 부르게 되었다. 닌텐도의 이와타 사토루 사장 역시 저품질 소프트웨어의 난립이 고객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고 언급했다.[75]

한편, 아타리 쇼크 이후 대량의 불량 재고가 매장되었다는 도시 전설이 있었던 "비디오 게임의 무덤"은 2014년 발굴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었다.[76]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웨스트우드 스튜디오, 코드마스터즈, 스퀘어와 같은 새로운 개발사들이 등장하여 미래 게임 산업의 발전에 기여했다.[147] 닌텐도는 패밀리 컴퓨터의 북미판인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NES)을 출시하며, 비디오카세트 레코더와 유사한 디자인과 '비디오 게임' 용어 사용 자제 등 전략적인 마케팅을 통해 시장을 회복해 나갔다.[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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