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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라 신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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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시하라 신타로는 소설가이자 정치인으로, 1932년 효고현 고베시에서 태어났다. 1956년 소설 『태양의 계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데뷔했고, 이후 우익 성향의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68년 참의원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 환경청 장관과 운수대신을 역임했으며, 1999년부터 2012년까지 도쿄도지사를 지냈다. 도지사 재임 중에는 디젤차량 운행 제한, 센카쿠 열도 매입 추진 등의 정책을 펼쳤다. 2012년 도지사직 사임 후 신당을 창당하여 국정에도 복귀했으나, 2014년 정계에서 은퇴했다. 2022년 2월 1일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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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라 신타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내각홍보실 공식 초상 (2003년 촬영)
이름이시하라 신타로
원어 이름石原 慎太郎
로마자 표기Ishihara Shintarō
출생일1932년 9월 30일
출생지효고현 고베시 스마구
사망일2022년 2월 1일
사망지도쿄도 오타구
국적일본
배우자이시하라 노리코
자녀이시하라 노부테루
이시하라 히로타카
이시하라 요시즈미
이시하라 노부히로
친척이시하라 유지로 (동생)
미에 기타하라 (제수)
다나카 리사 (며느리)
학력히토쓰바시 대학 졸업
종교알 수 없음
웹사이트이시하라 신타로 공식 웹사이트
경력
직업소설가, 작가
활동 기간1955년 ~ 2022년
장르소설, 수필, 평론
주제불가해한 것, 폭력, 삶과 죽음
문학 운동분노한 젊은이들
주요 작품『태양의 계절』 (1955년)
『처형의 방』 (1956년)
『균열』 (1958년)
『화석의 숲』 (1970년)
『내 인생의 시간』 (1989년)
『동생』 (1996년)
『천재』 (2016년)
수상문학계 신인상 (1955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 (1956년)
예술선장 (1971년)
히라바야시 다이코 문학상 (1988년)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 특별상 (1996년)
분게이슌주 독자상 (1969년, 2001년)
데뷔 작품『회색의 교실』 (1954년)
정치 경력
소속 정당자유민주당 (1968–1973, 1976–1995)
무소속 (1973–1976, 1995–2012)
태양당 (2012)
일본유신회 (2012–2014)
미래세대당 (2014–2015)
참의원 의원선거구: 전국구
임기 시작: 1968년 7월 8일
임기 종료: 1972년 11월 25일
중의원 의원선거구: 구 도쿄 2구 → 도쿄 비례대표 블록
임기 시작: 1972년 12월 10일
임기 종료: 1975년 3월 18일
임기 시작: 1976년 12월 10일
임기 종료: 1995년 4월 14일
임기 시작: 2012년 12월 11일
임기 종료: 2014년 11월 21일
환경청 장관내각: 후쿠다 다케오 내각
임기 시작: 1976년 12월 24일
임기 종료: 1977년 11월 28일
운수대신내각: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
임기 시작: 1987년 11월 6일
임기 종료: 1988년 12월 27일
도쿄도지사임기 시작: 1999년 4월 23일
임기 종료: 2012년 10월 31일
일본유신회 공동대표공동대표: 하시모토 도루
임기 시작: 2013년 1월 19일
임기 종료: 2014년 7월 31일
일본유신회 대표임기 시작: 2012년 11월 17일
임기 종료: 2013년 1월 19일
태양당 공동대표공동대표: 히라누마 다케오
임기 시작: 2012년 11월 13일
임기 종료: 2012년 11월 19일
기타 정보
훈장욱일대수장
학위법학사 (히토쓰바시 대학, 1956년)

2. 생애

이시하라 가족; 왼쪽부터: 기요시(아버지), 유지로(동생), 미츠코(어머니), 신타로


이시하라 신타로는 1932년 9월 30일 효고현 고베시 스마구에서 해운회사 야마시타 기선에 근무하던 아버지 기요시(潔)와 어머니 미쓰코(光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96][97][98] 아버지는 에히메현, 어머니는 히로시마현 출신이다. 1934년 남동생 이시하라 유지로가 태어났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홋카이도 오타루시(1937년), 가나가와현 즈시시(1944년) 등지에서 성장했다.[100]

가나가와현립 쇼난 중학교(현 가나가와현립 쇼난 고등학교)를 거쳐[101], 1956년 히토쓰바시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101] 대학 재학 중이던 1955년 이시다 유미코(이후 이시하라 노리코로 개명)와 결혼했다.[10] 같은 해 소설 『태양의 계절』로 제1회 문학계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듬해인 1956년 1월, 같은 작품으로 당시 최연소로 제34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11]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화 과정에서 동생 유지로가 배우로 데뷔했으며, '태양족', '신타로 가리(컷)' 등의 유행을 낳았다.[12]

이후 작가 활동과 함께 영화 감독('젊은 짐승', 1958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슬하에 장남 노부테루(1957년생), 차남 요시즈미(1962년생), 삼남 히로타카(1964년생), 사남 노부히로(1966년생) 네 아들을 두었다.

1967년 요미우리 신문의 의뢰로 베트남 전쟁을 취재한 경험[17]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 1968년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참의원 선거(전국구)에 출마해 300만 표 이상을 얻으며 당선되었다.[19] 1972년에는 중의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1973년에는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의 일중 국교 정상화 등에 반대하며 와타나베 미치오, 나카가와 이치로 등과 함께 강경 우익 성향의 정책 그룹 청람회를 결성했다.[12]

1975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미노베 료키치에게 패배했다. 이후 중의원으로 복귀하여 후쿠다 다케오 내각에서 환경청 장관(1976년),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에서 운수대신(1987년)을 역임했다. 1989년에는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같은 해 소니 회장 모리타 아키오와 공저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출간하여 국내외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1995년, 의원 재직 25주년 기념 연설 도중 돌연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140]

1999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후 2003년, 2007년, 2011년 선거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4선 도지사를 지냈다. 재임 중 디젤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신긴코 도쿄 설립, 쓰키지 시장도요스 이전 결정, 센카쿠 열도 매입 추진 발언 등 여러 정책과 발언으로 주목과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12년 10월, 국정 복귀와 신당 창당을 선언하며 도쿄도지사직을 사퇴했다.[30] 이후 태양당을 창당했다가 하시모토 도루일본유신회에 합류하여 대표를 맡았고,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17년 만에 국정에 복귀했다. 2014년 일본유신회가 분열하자 차세대당을 창당했으나, 같은 해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4][157]

2021년 10월 췌장암 재발 진단을 받았고,[161][162] 투병 끝에 2022년 2월 1일 도쿄 자택에서 향년 89세로 사망했다.[75][76][77] 사후 정삼위에 추서되었다.[168] 부인 노리코도 약 한 달 뒤인 3월 8일 세상을 떠났다.[169]

2. 1. 작가로서의 활동

1956년 문예춘추(文藝春秋) 건물에서 이시하라 신타로(위)와 미시마 유키오(아래)


이시하라는 소설가로 활동하며 우익적인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와 절친했으며, 훗날 미시마가 자살했을 때도 장례식에 참석했다.

히토츠바시대학 재학 중이던 1956년, 졸업 두 달 전에 소설 《태양의 계절》로 제1회 문학계 신인상과 제34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10][11][105] 이는 쇼와 시대 출생자 최초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이기도 했다. 그는 공인회계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 입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닫고, 휴간 중이던 대학 동인지 '일교문예(一橋文藝)' 복간에 힘썼다. 이 과정에서 OB였던 문학가 이토오 오사무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104] 동인지에 처녀작 「회색의 교실(灰色の教室)」을 발표하여 문예평론가 아사미 후치(浅見淵)에게 호평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두 번째 작품인 《태양의 계절》을 집필하게 되었다.[190]

《태양의 계절》은 젊은이들의 생생한 풍속 묘사와 반윤리적인 내용으로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며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켰다.[106][107] 이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소위 '태양족'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영화에는 동생 유지로가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신타로 본인이 직접 각본을 썼다.[12] 이후 《처형의 방》, 《미친 과실》, 《성찬》 등 현대 사회상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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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설 외에도 희곡과 연극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1960년에는 극단 시키에서 그의 희곡 『늑대여 살아라 돼지는 죽어라(狼生きろ豚は死ね)』가 공연되었고,[108][109] 1965년에는 닛세이 극장에서 상연된 뮤지컬 『화염의 커브』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으며, 쟈니즈가 부른 동명의 주제가 작사도 담당했다.[110] 이듬해에는 쟈니즈 주연의 뮤지컬 「보물섬(宝島)」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109]

1960년대 초반에는 집필에 집중하며 소설, 희곡 외에도 《보물섬》의 뮤지컬 버전 각본을 쓰기도 했다. 후기 소설 중 하나인 《잃어버린 나라》(1982)는 소련의 지배하에 놓인 일본을 가상으로 그린 작품이다.[15] 그는 극단을 운영하고, 북극을 방문하거나 자신의 요트 "콘테사"로 경주에 참여하고, 오토바이로 남아메리카를 횡단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회고록 《남미 횡단 1만 킬로미터》를 집필하기도 했다.[16]

1966년부터 1967년까지는 ''요미우리 신문''의 요청으로 베트남 전쟁을 취재했으며, 이 경험은 그가 정계에 입문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2. 2. 정치 입문

후쿠다 다케오 내각 구성 시 촬영


다케시타 내각 구성 시 촬영


1967년 요미우리 신문사의 요청으로 베트남 전쟁을 취재한 경험을 가진 후, 이듬해인 1968년 7월 제8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자유민주당 후보로 참의원 전국구에 출마했다. 선거 전문가 이이지마 키요시를 영입하고 이미지 중심의 선거 운동을 펼쳤으며[126][127], 당시 운수대신이던 나카소네 야스히로의 후원을 받았다. 또한, 반공주의 단체인 국제승공연합을 설립한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로부터 조직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다.[128][129] 이 선거에서 그는 사상 최고인 301만 표를 얻어 압도적인 1위로 당선되며 정치계에 입문했다.[19]

4년간 참의원으로 활동한 뒤, 1972년 12월 제3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중의원으로 자리를 옮겨 도쿄 2구에서 당선되었다. 이 시기는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이 일중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중국과의 수교를 추진하던 때였다. 이듬해인 1973년, 이시하라는 다나카 내각의 일중 국교 정상화와 이에 따른 중화민국(대만)과의 단교에 반대하며, 와타나베 미치오, 나카가와 이치로, 후지오 마사유키 등 30명의 동료 자민당 의원들과 함께 강경 반공 성향의 정책 그룹인 청람회를 결성했다. 청람회는 결성 당시 참여자들이 피로써 결의를 다졌다는 일화로 주목받기도 했다.[12]

1975년에는 도쿄도지사 선거에 자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당시 현직 도지사이자 높은 인기를 누리던 사회당 소속의 미노베 료키치에게 패배했다. 선거 과정에서 이시하라는 71세였던 미노베를 향해 "너무 늙었다"고 비판하기도 했으며[31], 통일교와 국제승공연합은 이 선거에서도 젊은 신자들을 동원하고 상당한 규모의 선거 자금을 지원하며 이시하라를 도왔다.[134][135]

도지사 선거 낙선 후, 1976년 12월 제3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통해 중의원으로 복귀했다. 선거 후 출범한 후쿠다 다케오 내각에서는 환경청 장관으로 처음 입각했다. 장관 재임 중 미나마타병 피해 보상 문제에 관여하며 일본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이끌어내기도 했으나, "가짜 환자도 있다", "환자 단체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등의 발언으로 큰 논란을 일으켜 결국 태아성 미나마타병 환자에게 도게자를 하며 사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137][138]

1983년에는 자민당 내 파벌이었던 나카가와파를 이어받아 이시하라파의 대표가 되었다. 같은 해 선거에서는 그의 선거운동본부장이 정치적 경쟁자에 대해 "북한 탈북자"라는 내용의 비방 스티커를 붙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시하라는 이것이 차별이 아니며 대중의 알 권리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여 논란을 빚었다.[21] 1987년에는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에서 운수대신으로 임명되었다. 운수대신 시절, 미야자키현리니어 실험선을 시찰한 후 "닭장과 돼지우리 사이를 달리는 초라한 실험선"이라고 비판하며 새로운 실험선을 야마나시현으로 이전, 신설하도록 결정했다. 또한 1988년 나리타 국제공항 시찰 당시, 건설이 중단된 채 방치되어 있던 나리타 신칸센용 나리타 공항역 시설을 보고 "기존 철도를 도입하라"고 지시하여, 이후 나리타 공항 고속철도가 설립되고 JR 동일본과 경성 전철이 공항에 진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139]

1989년, 가메이 시즈카 등의 지지를 받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으나 가이후 도시키에게 패배했다. 같은 해, 소니의 회장 모리타 아키오와 함께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일본인들에게 미국에 대해 당당히 'No'라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구 사회에서 큰 반향과 논란을 일으켰다.

1990년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장남 이시하라 노부테루가 처음 당선되어 부자(父子)가 함께 중의원 의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5년 4월 14일, 의원 재직 25주년 기념 표창을 받는 중의원 본회의 연설 도중 "일본의 정치는 망했다. 실망했다"는 취지의 발언과 함께 돌연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며 중앙 정계를 떠났다.[140]

2. 3. 도쿄도지사 시절

2009년 도쿄 도지사 집무실에서의 이시하라 신타로


1995년 중의원 의원직을 사퇴한 지 4년 후인 1999년 4월, 도쿄도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141] 당시 출마 기자 회견에서 "아마도 이시하라 유지로의 형일 겁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러 유력 후보가 난립했으나, 166만 표를 얻어 압승하며 도쿄도지사에 당선되었다.

이후 2003년 선거에서는 308만 표(역대 최고 득표율)를 얻어 재선했고, 2007년 선거(50.52% 득표율), 2011년 선거(43.4% 득표율)에서도 승리하며 4선 연임에 성공했다. 2011년 선거에서는 개그맨 출신 히가시코쿠바루 히데오와 기업가 와타나베 미키 등의 도전을 받으며 지지율이 다소 하락했다. 도지사 재임 기간은 총 4,941일로, 스즈키 슌이치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길었다.

도지사 재임 중 이시하라는 여러 논란 속에서도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2000년 7월에는 자신의 전 공설 비서이자 측근인 하마우즈미 타케오를 부지사로 임명했다.

주요 정책 및 활동은 다음과 같다.

분야내용비고
재정 및 세금광역자치단체 지출 삭감 및 시설 매각/임대 제안[15]-
은행 총이익에 대한 세금 부과 (외형 표준 과세)[22]-
숙박률 기준 호텔세 부과[23]-
환경디젤 차량 배기가스 규제 및 운행 제한[24]디젤 매연이 든 병을 보이는 홍보 활동
배출권 거래제 방식의 에너지세 부과[25]-
도쿄 서식 까마귀 퇴치 (약 3만 7천 마리)[29]PETA 등 동물보호단체의 비판 야기
도시 개발 및 국제 행사오다이바 지역 카지노 개장 제안[15]-
2016년 하계 올림픽 유치 추진 (2005년 선언)[26]리우데자네이루에 밀려 실패 (2009년 10월)
2020년 하계 올림픽 유치 성공 주도[28]-
쓰키지 시장도요스 이전 결정 (2010년 10월)-
금융신긴코 도쿄 은행 설립 (중소기업 대출 목적)[27]부적절한 위험 평가 등으로 약 10억달러 규모의 손실 발생 비판
외교/영토센카쿠 열도 구입 의사 표명 (2012년 4월, 방미 중)-



2010년, 도지사직을 유지하면서 보수 성향의 정당인 일어나라 일본 창당에 관여하며 국정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민주당 정권 말기인 2012년에는 하시모토 도루 당시 오사카 시장과 함께 차기 총리 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다투기도 했다.[195][196]

2012년 10월 25일, 이시하라는 국정 복귀와 신당 창당을 위해 도쿄도지사직 사퇴를 전격 발표했다.[30] 그는 후계자로 당시 부지사였던 이노세 나오키를 지명했다. 도쿄도 의회는 같은 해 10월 31일 그의 사퇴를 승인했다. 사퇴 후 그는 태양당을 창당(11월)하고 곧이어 일어나라 일본과 합병(11월 13일)했으며, 다시 하시모토 도루일본유신회와 합당(11월 17일)하는 등 정계 개편의 중심에 섰다.

2. 4. 정계 은퇴와 사망

2014년 12월 총선에서 그는 극우 정당인 미래세대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4] 이후 정계를 은퇴했다.

2021년 10월, 이시하라는 병원에서 췌장암 재발 진단을 받고 시한부 3개월 선고를 받았다.[161][162] 아들 요시즈미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고통 없이 집에서 마지막 날을 보내길 원했으며, 임종 간호 전문의에게 진통제 처방을 요청했다고 한다.[163] 가족들의 간호 속에서 병상에서도 원고를 집필했다.

2022년 2월 1일 오전 10시 20분, 도쿄 오타구 자택에서 향년 89세로 사망했다.[75][76][77][164] 장남 노부테루는 기자회견에서 사인이 췌장암 재발이라고 밝혔다.[165] 사망 전 마지막으로 남긴 시는 사후 발매된 『문예춘추』 4월호에 실린 절필 원고 "죽음으로 가는 길"에서 공개되었다.[161][162]

'''등대여, 너가 알리는 말은 무엇인가, 나의 열정은 그릇되었는가'''


그는 생전에 유언장에 "장례식 불필요, 법명 불필요. 나의 뼈는 반드시 바다에 뿌려라"라고 적었으나,[166] 과거 비서에게는 "묘비에는 '청람보국'(青嵐報国)이라고 새겨주었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166] 2월 5일, 오타구 자택에서 가족장으로 장례식과 고별식이 치러졌고, 법명은 海陽院文政慎栄居士|카이요인 분세이 신에이 코지일본어(해양원문정신영거사)로 정해졌다.[167] 유해는 선조들이 잠든 즈시시 해보원에 안치되었다고 보도되었다.[166] 2월 22일, 일본 정부는 사망 날짜로 소급하여 정삼위에 추서했다.[168]

부인 노리코는 남편의 장례식에 참석했으나, 약 한 달 뒤인 3월 8일 향년 89세로 사망했다.[169]

"뼈의 일부는 사랑했던 쇼난의 바다에 돌려주어라"라는 유언에 따라, 4월 17일 가나가와현 미우라군 하야마정의 나기시마 앞바다에서 해상 산골식이 거행되었다.[170][171] 6월 9일에는 도쿄 시내 호텔에서 고별회가 열렸다. 이 고별회는 전 총리 아베 신조 (다음 달 총격 사망)[172]요미우리 신문 그룹 본사 대표이사 주필 와타나베 츠네오 등이 발기인을 맡았다.[172] 제단은 이시하라가 좋아했던 쇼난 바다를 형상화한 푸른색과 흰색 꽃으로 꾸며졌고, 그의 요트 '콘테사 2세'의 돛이 양옆에 놓였다.[173]

6월 17일, 생전에 집필하여 사후 출간을 조건으로 했던 자서전 『"나"라는 남자의 일생』(幻冬舎)이 간행되었다.[174][175] 2023년 8월에는 말년까지 거주했던 오타구 다엔조부의 자택이 매각되었고,[176] 연내 철거될 예정이라고 보도되었다.[177]

3. 정치적 입장 및 논란

이시하라 신타로는 일본 내 대표적인 극우파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35][36][37] 호주 ABC 방송에서는 그를 "일본의 장마리 르펜"에 비유하기도 했으며,[38] 극우 민족주의 단체인 니혼 카이기와 연계되어 활동했다.[39]

그는 정치 활동 내내 직설적이고 논란을 일으키는 발언으로 주목받았으며, 이는 때로 지지를 얻기도 했지만 많은 비판과 정치적 문제를 야기했다. 특히 역사 문제, 외국인 및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 동일본대지진 관련 '천벌' 발언 등은 국내외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비판에 직면했을 때 쉽게 사과하거나 발언을 정정하지 않고 오히려 강경하게 반론하는 태도를 고수했으며, 이로 인해 실언 문제로 사퇴한 적은 없었다. 정치 평론가 원다 지츠미는 이시하라가 상황에 따라 대중이 원하는 '이시하라'라는 캐릭터를 능숙하게 연기했기 때문에 정치적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201]

한편, 타하라 소이치로[116], 스이도바시 하카세[117], 토요사키 유미, 쿠리하라 유이치로[118] 등 일부 인사들은 그의 국가관과 다른 시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3. 1. 외교 및 안보

이시하라는 필리핀의 유력 가문인 아키노 가문과 오랜 친분을 유지했다. 그는 1983년 8월 21일, 당시 망명 중이던 전 상원의원 니노이 아키노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미래의 대통령 코라손 아키노에게 처음으로 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40][41]

이시하라는 일본의 외교 정책이 소극적이라고 자주 비판했으며,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미일 관계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스스로 주장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20] 이러한 비판 의식의 연장선에서 그는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였던 마하티르 모하마드와 함께 『"No" 라고 말할 수 있는 아시아 – 대 구미에의 방책』(「NO」と言えるアジア - 対欧米への方策일본어)이라는 책을 1994년에 공동 저술하기도 했다.[42] 그는 미키 다케오가 제정한 무기수출삼원칙이나 방위비 1% 규정 등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핵무장 및 자주국방 확립론자였다.[216] 1971년에는 아사히 신문 인터뷰에서 "(핵무기가) 없다면 일본의 외교는 더욱 빈약해진다. 발언권을 잃는다. 그러므로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좋다. 일본인이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면 세계는 일본의 말을 들어줄 것이다."라고 발언했으며,[217] 2011년 6월 기자회견에서는 "일본은 핵(무기)을 가져야 한다. 가지지 않는 한 절대 일류로 대우받지 못한다. 일본이 살아남을 길은 군사정권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딘가의 속국이 된다.[218] 징병제도 해도 좋다."라고 주장했다.[218] 이후에도 일본이 강력한 군사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220][221]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공산당 정권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달라이 라마와 대만 총통 리덩후이를 도쿄로 초청하기도 했다.[15] 반면, 중국과 대립 관계에 있는 대만(중화민국)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일중 국교 정상화와 대만과의 단교에 반발하여 청람회를 결성한 대표적인 친대만 인사였으며, 도지사 재임 중 여러 차례 대만을 방문하고 자신이 제창한 아시아 대도시 네트워크 21에 타이베이를 가입시키는 등 적극적인 교류를 추진했다.[228] 다만, 그의 친대만 성향은 중국국민당의 계엄령 하 독재 정권 시기에 대한 비판은 포함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228]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1991년 에토 준과의 공저에서 센카쿠 주변 해저 유전 발견 이후 미국 석유 메이저 회사가 일본 대신 대만과 중국에 영유권을 주장하도록 부추겼다는 주장을 폈다.[203] 2009년에는 일시적으로 공동 개발론을 언급하기도 했으나[204], 이후 미국과 일본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205] 그는 일본 청년사가 세운 센카쿠 등대를 지지했으며[206], 2010년 중국 어선 충돌 영상 유출 사건 당시 잇시키 마사하루 해상보안관의 영상 유출을 옹호했다.[207] 2012년 4월에는 워싱턴 D.C. 연설에서 도쿄도가 센카쿠 열도를 매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여 중국의 격렬한 반발을 사고 양국 간 긴장을 고조시켰다.[71][72][208] 결국 9월 11일(9月11日) 일본 노다 정권은 우오츠리시마(魚釣島), 키타코지마(北小島), 미나미코지마(南小島) 3개 섬을 해상보안청(海上保安庁)이 사이타마현(埼玉県) 거주 지권자로부터 20.5억에 매입하여 국유화했다.[209][210] 이는 도쿄도의 매입 계획을 저지하고 중국의 반발을 억제하려는 목적이었으나, 중국 측의 반발을 막지 못했으며,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은 일본 정부와 이시하라 모두의 대응이 미흡했다고 비판했다.[211] 또한 그는 오키노토리시마에 직접 상륙하여 일본의 배타적 경제 수역임을 주장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도서 방위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202][142]

2005년 중국의 반일 시위에 대해 "국민성이 낮다"고 비난하며 중국을 "지나(支那)"라고 칭해 논란을 일으켰으나, 본인은 멸칭이 아니라고 주장했다.[229]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참석을 계기로 중국에 대한 비판 수위를 잠시 낮추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으며[44][233][234][235], 도쿄도와 베이징시 간 기술 교류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236] 하지만 이후에도 일본 내 중국인 범죄[237], 독 만두 사건[238], 중국의 영토 확장[239] 등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의 입장이 "반중(反中)이 아니라 반중국 공산주의"이며, 중국의 역사와 문화는 좋아하지만 공산당 독재는 일본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240][241][242]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공개된 이후로 강경한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그는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촉구했으며[43], 2002년에는 『뉴스위크』 인터뷰에서 총리가 되면 북한과 전쟁을 해서라도 납치 피해자를 구출하겠다고 발언했다.[247] 2009년에는 납치 피해자 구출을 위한 지사 모임을 설립하고 회장을 맡았으며[248], 북한이 중국에 합병되는 것이 좋다는 발언으로 한국과 북한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248][249][250]

국제연합(UN)에 대해서는 "국제연합헌장이 불변의 진리인가?", "이제 와서 국제연합헌장 따위를 제대로 믿는 바보는 없을 것"이라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227]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에 대해서는 "그런 것은 미국의 책략이며, 모두들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국민건강보험과 일본의 고령화는 아마도 근본적으로 흔들릴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TPP 참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257]

한편, 1984년에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친선 의원 연맹 부회장을 맡기도 했는데, 이는 희토류 등 희소 금속 확보를 목적으로 한 활동이었다.[258]

=== 외교·안보 관련 저서 ===

제목공동 저자출판사출판 연도
조국을 위한 백서 (祖国への白書일본어)집영사1968
신구의 대결인가 조화인가 (新旧の対決か調和か일본어)가야 고노스케경제왕래사1969
신타로의 정치조서 (慎太郎の政治調書일본어)고단샤1970
어떻게 나라를 지킬 것인가 (どうしたら国は守れるか일본어)하니 스스무, 후지와라 히로타츠일신보도출판부1970
신타로의 제2정치조서 (慎太郎の第二政治調書일본어)고단샤1971
청람회 혈서와 우국의 논리 (青嵐会 血判と憂国の論理일본어)타마키 카즈로, 나카오 에이이치, 나카가와 이치로, 나카야마 마사테루, 후지오 마사유키, 미츠카 히로시, 모리 요시로, 와타나베 미치오로망1973
세계 속의 일본 80년대 정치에의 제언 (世界の中の日本 80年代・政治への提言일본어)가와모토 토시오산케이출판1982
유사의 세기에 (有事の世紀に일본어)신초사1985
현대사의 분수령 (現代史の分水嶺일본어)문예춘추1987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NO」と言える日本일본어)모리타 아키오고분샤1989
그래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일미간의 근본 문제 (それでも「NO」と言える日本 日米間の根本問題일본어)와타나베 쇼이치, 오가와 카즈히사고분샤1990
시간의 조소 일본과 세계를 둘러싼 아버지와 아들의 14개의 대화 (時よ、止まれ―日本と世界をめぐる父と子の十四の対話일본어)이시하라 노부테루PHP연구소1990
내세의 여운 (来世の余韻일본어)중앙공론사1991
단호히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전후 일미 관계의 총괄 (断固「NO」と言える日本 戦後日米関係の総括일본어)에토 준고분샤1991
깨어나라 조국 자랑스러운 일본국 창조를 위해 (甦れ祖国 誇りある日本国の創造のために일본어)집영사1994
「NO」라고 말할 수 있는 아시아 대구미에의 방책 (「NO」と言えるアジア 対欧米への方策일본어)마하티르 모하마드고분샤1994
망국의 무리에게 묻는다 (亡国の徒に問う일본어)문예춘추1996
선전포고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경제 미국의 금융 노예로부터의 해방 (宣戦布告「NO」と言える日本経済 アメリカの金融奴隷からの解放일본어)일교 종합연구소고분샤1998
「미국 신앙」을 버려라 2001년부터의 일본 전략 (「アメリカ信仰」を捨てよ 2001年からの日本戦略일본어)일교 종합연구소고분샤2000
이기는 일본 (勝つ日本일본어)타하라 소이치로문예춘추2000
일본이여 (日本よ일본어)산케이 신문 뉴스 서비스2002
나태를 탐하는 나라에 도쿄를 테코로 나라를 바꾸는 도전 (惰眠を貪る国に 東京をテコに国を変える挑戦일본어)산케이 신문 뉴스 서비스2004
일본의 힘 (日本の力일본어)타하라 소이치로문예춘추2005
일본이여, 다시 한번 (日本よ、再び일본어)산케이 신문 출판2006
신·타락론 욕망과 천벌 (新・堕落論 われわれはどこから来て、どこへ行くのか?일본어)신초사(신초신서)2011
평화의 독, 일본이여 (平和の毒、日本よ일본어)산케이 신문 출판2012
도쿄 혁명 나의 도정의 회고록 (東京驀進 私の都政の回顧録일본어)겐토샤2015
일본이여, 완전 자립을 (日本よ、完全自立を일본어)문예춘추(문춘신서)2018


3. 2. 역사 인식

이시하라 신타로는 일본 제국주의 시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수정주의적 시각을 드러내는 발언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1990년, 그는 플레이보이 인터뷰에서 난징 대학살은 허구라고 주장하며 "일본인들이 대학살을 저질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중국인들이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이미지를 더럽혔지만, 거짓말입니다."라고 발언했다.[51][52] 이후 논란 속에서도 이 발언을 계속 옹호했으며,[53]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고 중국 공산당의 선전으로 묘사하는 일본 영화 난징의 진실을 지지하기도 했다.[54]

2010년에는 일제강점기청나라러시아 제국의 역사적 압력 때문에 불가피했으며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60]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인이 그들을 강제로 연행했다는 증거는 없다. 생활이 어려웠던 시절, 여성이 매춘을 하는 것은 돈을 버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들은 스스로 이 일을 선택했다”고 발언하여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역사를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았다.[225] 또한 위안부 문제를 보도한 아사히 신문을 국가를 팔아넘겼다고 비난하며, 과거 코노이치로 저택 방화 사건을 언급하며 노무라 슈스케가 아사히 신문에 목숨 걸고 맞서야 했다고 주장했다.[226]

그는 야스쿠니 신사를 매년 8월 15일에 참배했으며, 이는 중의원 의원, 도쿄도지사, 일본 유신회 공동대표 시절에도 계속되었다.[223]

헌법관에 있어서는 현행 일본국헌법을 연합국이 강요한 점령 기본법으로 규정하고, 의회에서 폐기 결의 후 자주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12][213][214] 또한 천황을 일본국의 원수로 명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300][215]

3. 3. 기타 논란


  • 2000년 4월 9일, 육상자위대 기념식 연설에서 불법체류자를 비하하는 표현인 '삼국인'을 사용하고, 외국인들이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며 자연재해 시 소요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발언했다.[45][46][265] 이 발언은 그의 사퇴 및 사과 요구를 불러일으켰고, 재일 한국인 사회에 불안감을 조성했으며,[15][266]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비판받았다.[47][48] 이시하라는 이후 자신의 웹사이트 등에서 "불법 입국한 많은 삼국인들을 언급한 것"이며, 아사히 신문 등 언론이 의도적으로 '삼국인'이라는 단어의 차별성만 부각했다고 주장했다.[20][267] 그는 '삼국인'이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일본인을 박해했던 대만 출신 중국인과 한반도 출신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당시에는 경멸적 표현이 아니었다고 해명하며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으나,[20][268]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해당 단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20]
  • 2000년 문학상 심사 당시 동성애가 비정상적이라고 언급하여 일본 동성애자 사회의 반발을 샀다.[55] 이후 2010년 12월 3일 기자회견에서도 "텔레비전 등에도 동성애자가 평범하게 나오죠. 일본은 방임되어 있다"고 발언했으며,[315] 12월 7일 이 발언의 진의를 묻는 기자에게 "어딘가 역시 부족한 느낌이 든다. 유전 등의 탓일 것이다. 마이너리티로 불쌍하다"고 답했다. 또한 과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게이 퍼레이드를 보고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했다는 감상을 덧붙였다.
  • 2001년 여성 잡지 주간조세이(週刊女性) 인터뷰에서 "생식 능력을 잃은 노파는 쓸모없고 죄를 짓고 있다"고 발언하여 도쿄도의회의 비판을 받았으나, 이러한 비판이 "폭군… 노파들"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반박했다.[56]
  • 2001년 5월, 중국인 범죄에 대해 "민족적 DNA를 보여주는 듯한 범죄가 만연함으로써 머지않아 일본 사회 전체의 자질이 바뀌어갈 위험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269][237]
  • 2003년 11월 2일, TBS 텔레비전의 프로그램 『선데이 모닝』에서 이시하라가 "한일 병합을 100% 정당화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한 발언을 "한일 병합을 100% 정당화하려는 의도다"라는 정반대의 자막과 함께 방송하는 석원 발언 날조 자막 사건이 발생했다. 이시하라 측의 항의 후 TBS는 명예훼손 혐의로 직원 4명이 도쿄 지검에 서류송검되었으나[264]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되었고, TBS는 프로그램 내에서 "실수"였다며 사과했다.
  • 2004년 10월, 도청 내 수도대학 도쿄 지원 조직 설립 총회에서 프랑스 문학을 좋아한다고 언급한 뒤, 프랑스어가 숫자를 세는 방식(70~99를 20진법 기반으로 셈) 때문에 "숫자를 셀 수 없는 언어"라며 국제어로서 실격이라고 발언했다.[57][270] 이 발언은 프랑스어 교육 관계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했으며,[271] 이시하라는 이후 TV 뉴스에서 프랑스 문화를 무시한 것이 아니며 프랑스 문학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고 해명했다.[57]
  • 2006년 2월 20일, "롯폰기는 이제 사실상 외국인 거주 지역이 되었다. 영어를 못하는 아프리카인들(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제외)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이 차량 절도 같은 새로운 형태의 범죄로 이어진다. 우리는 지능적인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49]
  • 2007년 4월 8일 도지사 선거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신·아와지 대지진에서는 수장의 판단이 늦어 2000명이 죽었다"고 발언하여 당시 효고현 지사였던 카이하라 토시타미로부터 "엉터리"라는 반박을 샀다. 이에 이시하라는 4월 27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숫자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사사 준코의 받아쓰기이므로, 그에게 물어봐 주세요"라고 답했다.[276]
  • 2009년 도쿄 IOC 기자회견에서 환경운동가 폴 콜먼이 도쿄 올림픽 유치 홍보와 미나미야마 숲 파괴의 모순을 지적하는 편지를 보낸 것에 대해 "그저 외국인일 뿐, 상관없다"며 분노를 표했다. 또한 관련 질문을 한 일본인 기자 요코타 하지메에게 "미나미야마는 아이들을 먹는 악마의 산이다", "당신은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말하며 국가 배신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 장면은 영상으로 촬영되어 미나미야마 구하기 운동(Save Minamiyama Movement)을 통해 퍼져나갔다.[58][59]
  • 일본의 외국인 참정권 부여에 대해 "위험한 시도", "발상 자체가 이상하다", "절대 반대", "일본에 영주하는 분이라면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 된다" 등의 발언으로 강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259][260][261][262] 2010년 3월 3일 도의회에서도 재차 반대 의사를 밝혔다.[263]
  • 니트프리터에 대해, "니트라고 하면 멋있게 들리지만, 초라하다. 무기력·무능한 인간의 것이다"[289], "프리터라든가 니트라든가, 어딘가 멋진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내가 말하건대 쓸모없는 놈이다, 이런 것은"[291] 등의 비하 발언을 했다. 다나카 료 도의원이 (일하는) 프리터까지 비난한 것은 워킹 푸어에 대한 무지라고 지적하자, "내가 쓸모없는 놈이라고 한 것은 니트의 일"이라며 왜곡된 인용이라고 반박했다.[292] 넷카페 난민에 대해서는 2008년 10월 기자회견에서 산야의 값싼 숙소를 언급하며 그들이 처한 곤경을 매스컴의 편향 보도라고 주장했다.[293] 이 발언은 요시주미 히로시 다이토구청장의 항의를 받고 일주일 후 "숫자가 달랐다"고 정정했지만, "1500엔보다 싼 곳에 가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294] 연말 파견촌 문제에 대해서는 2009년 신년 인사에서 후생노동성의 대응을 비판했다.[295]
  • 1990년 플레이보이 인터뷰에서 난징 대학살은 "중국인들이 지어낸 이야기"이며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51][52] 이후 벌어진 논란 속에서도 이 발언을 계속 옹호했으며,[53] 난징 대학살의 만행을 부정하고 중국 공산당의 선전으로 묘사하는 일본 영화 난징의 진실(The Truth about Nanjing)을 지지했다.[54]
  • 2010년, 일제강점기청나라러시아 제국의 역사적 압력 때문에 정당화되었다고 주장했다.[60]
  • 2010년 4월 17일, "여당의 많은 베테랑 의원들이 귀화자 또는 귀화자의 자녀들입니다"라고 발언했다.[50]
  • 토요타 자동차의 대규모 리콜 (2009년-2010년) 사태에 대해 "미국의 정서로서 자기들이 만들어낸 자동차를 일본에 빼앗겼다는, 분한 기분이 있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포드나 GM의 문제였다면, 이 정도로 소동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미국은 그런 점이 영악하고, 교활하다"고 발언했다.[256]
  •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인이 그들을 강제로 연행했다는 증거는 없다. 생활이 어려웠던 시절, 여성이 매춘을 하는 것은 돈을 버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들은 스스로 이 일을 선택했다"고 말했다.[225] 또한 아사히 신문의 위안부 관련 보도를 "국가를 팔아넘긴" 행위라고 비난하며, 과거 언론인 노무라 슈스케가 코노이치로 저택 방화 사건을 일으킨 것을 언급하며 "목숨을 걸고 결판을 내야 했다"고 주장했다.[226]
  •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일본인의 아이덴티티는 탐욕이다. 물욕, 금전욕. 이 쓰나미를 잘 이용하여 탐욕을 한 번 씻어낼 필요가 있다. 역시 천벌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61][62][63][277][278] 이 발언은 국내외적으로 큰 논란과 비판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켰다.[64][65][66] 미야기현의 무라이 요시히로 지사가 불쾌감을 표하고[68] 나가부치 츠요시 등 유명인사들의 비난과 함께 도쿄도청에 항의가 쇄도하자, 이시하라는 다음 날인 3월 15일 기자회견에서 "천벌"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했다.[67][280] 한국 언론에서도 이 발언이 그의 과거 한일 병합 정당화 발언 등과 함께 비판적으로 보도되었다.[281]
  • 2012년 하계 올림픽 기간 중 "서양인이 유도를 하는 것은 짐승 싸움과 같다. 국제화된 유도는 매력을 잃었다"고 발언했다. 그는 "브라질에서는 초콜릿을 김에 넣지만, 나는 그것을 스시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유도도 마찬가지다"라고 덧붙였다.[69]
  •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70]
  • 2012년 4월 15일, 워싱턴 D.C. 연설에서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도쿄도가 매입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중일 간 영토 분쟁을 격화시키고 양국 정부 간의 긴장을 고조시켰다.[71][72] 일본 정부는 도발적인 입찰을 막기 위해 섬들을 매입(국유화)했지만, 이는 중국 측의 강한 반발을 샀다.[73]
  • 조선학교에 대해서는 학교 운영 및 교육 내용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후, "반일 교육을 하고 우리 동포를 납치하는 데 가담했던 그런 조직이 그와 관련된 교육을 앞으로도 한다면 지원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며 2012년 도쿄도 예산에서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중단했다.[252]
  • 도쿄도립학교의 공식 행사에서 기미가요 제창과 일장기 게양을 철저히 하도록 지시하고, 기립 제창하지 않은 교사에 대해 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 처분에 대해 교직원들이 처분 취소 및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310] 한편, 이시하라 자신은 1999년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에서 "일장기는 좋아하지만, 기미가요라는 노래는 싫어한다, 개인적으로는. 가사도 저것은 일종의 멸사봉공과 같은 내용이다. 새로운 국가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답한 바 있으며, 2014년 인터뷰에서도 국가 제창 시 '나의 조국은'이라고 바꿔 부른다고 밝혔다.[304]
  • 야스쿠니 신사에는 매년 8월 15일 참배했으며, 총리대신에게 "만약 총리가 야스쿠니에 가지 않으면 이 나라는 핵심부터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311]며 참배를 요구하고, 천황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기대하는 발언을 했다.[297][299] 한편, A급 전범의 야스쿠니 합사에 대해서는 "전쟁의 명확한 책임자를 제외하고 합장하고 있다"며 이의를 제기한 적도 있다.[312]
  • 중국의 반일 활동에 대해서는 "국민성이 낮다"고 비난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을 '지나(支那)'라고 불렀으나, 본인은 "멸칭이 아니라 존경하는 마음에서 옛 이름으로 부른 것"이며 "중국인들이 모욕감을 느끼는 것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가 공개된 이후 강경한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2002년 뉴스위크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총리였다면 북한과 전쟁을 해서라도 납치 피해자를 구출하겠다고 말했다.[247] 2009년에는 납치 피해자 구출을 위한 지사 모임을 설립하고 회장에 취임했으며,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중국에 합병되는 것이 좋다고 발언하여 한국과 북한의 반발을 샀다.[248][249][250] 또한 자서전에서 과거 재일 조선인으로부터 아들을 살해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251]
  • 자신을 "원전 추진론자"라고 공언하며,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인 2011년 3월 25일에도 "나는 원전 추진론자입니다, 지금도. 일본과 같은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원전을 없애 버리면 경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284]
  • 2010년 6월 19일, 삿포로시에서 열린 일어서라 일본 집회에서 간 나오토 당시 총리대신이 자위대 관병식에서 국기에 경례하지 않는다면 "상관없으니 때려라. 맞아도 어쩔 수 없다"고 발언했다.[286]
  • 2012년 2월 24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여성 전용 차량에 대해 "여성은 약자가 아니다"라며 문제점을 지적하는 견해를 보였다.
  • 2012년 3월, 타치카와시의 도영 아파트에서 주민이 고독사한 사건과 관련하여 기자회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권리자는 아니고 사용자다. 관리인이 마스터키로 들어가서 확인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며 관리자인 도주택 공급 공사의 자세를 비판했다.[288]
  • 일본인 청소년에 대해 "휴대전화를 사용하여 매춘하는 아이가, 초등학생도 흔히 있다. 300만 엔, 1000만 엔도 모아서 그것을 의 코인로커에 숨기고 있다. 이런 풍속은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다[274]"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요미우리 신문 사회부의 저서를 들었다[275].
  • 올림픽 후쿠오카 유치를 응원한 강상중에 대해 "수상쩍은 외국인이 나와서 말이야. 건방지다, 저 녀석은"이라고 발언했다.[273]

4. 가족 관계

'''이시하라 신타로 가계'''
관계이름생몰년비고
조부이시하라 노부나오 (石原 信直일본어)1862년 ~ 1922년경찰관. 하토리(服部) 가문에서 이시하라 가로 입양.[178]
조모사사요 (ササヨ일본어)1867년 ~ ?
아버지이시하라 기요시 (石原 潔일본어)1899년 ~ 1951년에히메현 출신. 야마시타 기선(현 미쓰이 상선) 직원.[96][97][98][178][364] 뇌일혈로 사망.
어머니이시하라 미쓰코 (石原 光子일본어)1909년 ~ 1992년히로시마현 이쓰쿠시마 출신.[98][179][180]
본인이시하라 신타로 (石原 慎太郎일본어)1932년 ~ 2022년작가, 정치인. 도쿄도지사 역임.
배우자이시하라 노리코 (石原 典子일본어)1938년 ~ 2022년본명: 이시다 유미코 (石田 裕美子일본어). 수필가. 히로시마 원폭 생존자.[74][372][374] 1955년 결혼.
장남이시하라 노부테루 (石原 伸晃일본어)1957년 ~정치인. 배우자 다나카 리사.[74]
차남이시하라 요시즈미 (石原 良純일본어)1962년 ~배우, 탤런트, 기상예보사.[74]
삼남이시하라 히로타카 (石原 宏高일본어)1964년 ~은행원 출신 정치인.[74]
사남이시하라 노부히로 (石原 延啓일본어)1966년 ~화가.[74]
남동생이시하라 유지로 (石原 裕次郎일본어)1934년 ~ 1987년배우, 가수. 배우자 기타하라 미에.[74]
형수기타하라 미에 (北原 三枝일본어)1933년 ~본명: 이시하라 마키코 (石原 まき子일본어). 배우.[74]
이복형오가와 (小河일본어)?아버지 기요시와 전처 사이의 자녀. 고모 스마 부부의 양자.[366]



신타로의 집안은 부계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원래 성씨는 하토리(服部)였으며, 사족(士族) 출신이라고 주장한다.[365][178] 조부인 이시하라 노부나오(石原信直)는 하토리 노부요시(服部信義)의 차남으로 태어나 이시하라 가문에 양자로 들어가 경찰관이 되었다.[178] 아버지 기요시(潔)는 에히메현 나가하마정(현 오즈시) 출신으로,[364] 구제 우와지마 중학교를 중퇴하고[178] 1914년 야마시타 기선(현 미쓰이 상선)에 입사하여 점동(店童, 견습 사원)에서 시작해 최종적으로 관계 회사의 임원까지 올랐다.[178][368] 어머니 미쓰코(光子)는 히로시마현 이쓰쿠시마(현 하쓰카이치시) 출신이다.[98][179][180] 신타로에게는 유명 배우이자 가수였던 남동생 이시하라 유지로(石原裕次郎)가 있다.[74]

1955년 12월, 당시 17세였던 이시다 유미코(石田裕美子, 후일 이시하라 노리코(石原典子)로 개명)와 결혼했다.[372] 노리코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 히로시마 시내에 있었던 생존자이며,[372] 수필가로 활동했다. 신타로는 아가와 사와코와의 대담에서 결혼 계기에 대해 "귀찮아서 했다", "러브호텔에서 나오는 것을 친척에게 들켜 할머니에게 불려가 '헤어질 거냐, 결혼할 거냐'는 질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고 농담조로 말하기도 했다.[373] 부부는 2022년 약 한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75][76][77][374]

슬하에 네 아들을 두었다. 장남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와 삼남 이시하라 히로타카(石原宏高)는 정치인의 길을 걸었고, 차남 이시하라 요시즈미(石原良純)는 배우 겸 기상예보사, 사남 이시하라 노부히로(石原延啓)는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74] 장남 노부테루의 배우자는 전 배우이자 탤런트인 다나카 리사(田中理佐)이다.[74]

아내 노리코의 사촌 자녀인 미에코(美枝子)가 고이즈미 준이치로총리의 동생인 고이즈미 마사야(小泉正也)와 결혼하여, 고이즈미 가문과 인척 관계를 맺고 있다.[377]

5. 역대 선거 결과

연도선거 종류회차/선거명직책/선거구소속 정당득표수득표율순위당락비고
1968년참의원 통상선거제8회참의원 (전국구)자유민주당3,012,552표6.99%1위당선정수 51/후보 93
1972년중의원 총선거제33회중의원 (도쿄도 제2구)무소속118,671표22.3%1위당선중선거구제, 정수 5/후보 9
1975년도쿄도지사 선거-도쿄도지사 (도쿄도)무소속2,336,359표43.87%2위낙선후보 16
1976년중의원 총선거제34회중의원 (도쿄도 제2구)자유민주당111,112표21.9%1위당선중선거구제, 정수 5/후보 10
1979년중의원 총선거제35회중의원 (도쿄도 제2구)자유민주당71,238표17.3%3위당선중선거구제, 정수 5/후보 10
1980년중의원 총선거제36회중의원 (도쿄도 제2구)자유민주당162,780표32.8%1위당선중선거구제, 정수 5/후보 6
1983년중의원 총선거제37회중의원 (도쿄도 제2구)자유민주당96,386표21.0%1위당선중선거구제, 정수 5/후보 9
1986년중의원 총선거제38회중의원 (도쿄도 제2구)자유민주당101,240표20.9%1위당선중선거구제, 정수 5/후보 6
1990년중의원 총선거제39회중의원 (도쿄도 제2구)자유민주당119,743표22.6%1위당선중선거구제, 정수 5/후보 11
1993년중의원 총선거제40회중의원 (도쿄도 제2구)자유민주당92,259표19.0%1위당선중선거구제, 정수 5/후보 10
1999년도쿄도지사 선거제14회도쿄도지사 (도쿄도)무소속1,664,558표30.47%1위당선후보 19
2003년도쿄도지사 선거제15회도쿄도지사 (도쿄도)무소속3,087,190표70.21%1위당선후보 5
2007년도쿄도지사 선거제16회도쿄도지사 (도쿄도)무소속2,811,486표51.06%1위당선후보 14
2011년도쿄도지사 선거제17회도쿄도지사 (도쿄도)무소속2,615,120표43.40%1위당선후보 11
2012년중의원 총선거제46회중의원 (비례대표(도쿄))일본 이신의회(정당 득표) 12,262,228표(정당 득표율) 19.0%(비례 순위) 1위당선정수 17/당선 3
2014년중의원 총선거제47회중의원 (비례대표(도쿄))차세대의 당(정당 득표) 1,414,919표(정당 득표율) 2.65%(비례 순위) 1위낙선정수 17/당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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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뉴스 石原良純 石原慎太郎さんの最後の日々「死ぬぞ、3カ月で」と告白され最後の1週間は「寝るのを怖がって」 https://www.sponichi[...] 株式会社スポーツニッポン新聞社 20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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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뉴스 石原良純、父慎太郎さんの最後の2週間振り返る「恐怖心みたいなのが芽生えて…」 https://www.nikkansp[...] 2022-02-05
[166] 뉴스 石原慎太郎さん「墓石に『青嵐報国』と入れてほしい」思い伝えていた…家族葬で息子4人に送られ旅立つ https://hochi.news/a[...] 報知新聞社 202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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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뉴스 石原慎太郎さんお別れの会 元都知事、各界関係者ら参列 https://web.archive.[...] 202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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