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노
1. 개요
간노는 일본 남북조 시대(1336년~1392년)에 해당하는 1350년부터 1352년까지의 연호이다. 이 시기에는 무로마치 막부 내에서 쇼군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그의 동생 아시카가 타다요시 간의 권력 다툼인 간노의 소란이 발생했다. 이 소란은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승리로 끝났으며, 왜구의 활동과 고려 연안에 피해를 입히는 사건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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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보쿠초 시대 -
남조 (일본)
남조는 14세기 일본 남북조 시대에 고다이고 천황이 세운 천황가의 분파로,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세운 북조와 대립하다가 1392년 종결되었으며, 메이지 시대에 정통으로 인정받았다. -
난보쿠초 시대 -
태평기
《태평기》는 14세기 무로마치 막부 관련 지식인들이 편찬한 군담소설로, 남북조 시대를 배경으로 겐무 신정, 남북조 분열, 무장들의 활약상을 유교적 대의명분론과 불교적 인과응보론에 기반하여 극적으로 묘사하며 역사적, 문학적, 사상적 영향력을 지닌다. -
일본의 연호 -
다이쇼 시대
다이쇼 시대는 1912년부터 1926년까지 일본의 연호로,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국제 연맹 이사국 진출, 국내 사회 변화, 민주주의 사상 발전 등을 특징으로 하며, 1920년대 후반 세계 경제 불황의 영향을 받았다. -
일본의 연호 -
쇼와 시대
쇼와 시대는 1926년부터 1989년까지 이어진 일본의 연호로, 히로히토 천황의 치세 동안 일본 제국의 군국주의, 태평양 전쟁, 패전 후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겪었으며, 쇼와 천황의 사망으로 헤이세이 시대로 전환되었다.
2. 시대적 배경
메이지 시대 1911년 3월 3일 칙령에 따라, 간노 시대의 정통 군주는 고다이고 천황의 직계 후손으로 고무라카미 천황을 거쳐 내려왔으며, 고무라카미 천황의 南朝일본어는 나라현 근처 요시노에 유배되어 있었다. 에도 시대 말까지, 아시카가 막부의 지원을 받은 군사적으로 우세한 칭제(pretender)-천황들은 삼종신기를 소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황실 연대기에 잘못 포함되었다.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교토에 정통성이 없는 北朝일본어를 세웠다.
2.1. 남북조 시대
* 북조: 교토
* 남조: 요시노
메이지 시대 1911년 3월 3일 칙령에 따라, 이 시대의 정통 군주는 고다이고 천황의 직계 후손으로 고무라카미 천황을 거쳐 내려왔으며, 고무라카미 천황의 南朝일본어는 나라 근처 요시노에 유배되어 있었다.
에도 시대 말까지, 아시카가 막부의 지원을 받은 군사적으로 우세한 칭제(pretender)-천황들은 삼종신기를 소유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황실 연대기에 잘못 포함되었다.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교토에 정통성이 없는 北朝일본어를 세웠다.
2.2. 무로마치 막부 초기 권력 투쟁: 간노의 소란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그의 동생 아시카가 다다요시 간의 권력 다툼은 간노의 소란(1350년 ~ 1352년)으로 이어진다. 이 갈등은 고 노 모로나오 등 유력 무장의 개입과 남조의 책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격화되었다.
3. 주요 사건
1350년(간노 1년) 10월, 아시카가 요시노리가 교토를 지켰다. 같은 해, 아시카가 다다요시는 행정에서 배제되어 승려가 되었고, 그의 양자인 아시카가 다다후유는 반역자로 몰렸다.
1351년(간노 2년), 다다요시는 남조에 가담하여 남조 군대가 교토를 점령하기도 했다. 이후 휴전이 성립되고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교토로 돌아왔으며, 다다요시와 다카우지는 화해했다. 그러나 고 노 모로나오와 고 노 모로야스는 추방되었다.
3.1. 간노의 소란 (1350년 ~ 1352년)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그의 동생 아시카가 다다요시 사이의 불화로 인해 발생한 무력 충돌은 [[간노의 난일본어 또는 간노의 혼란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갈등은 고 노 모로나오의 영향력에 대한 이견에서 비롯되었으며, 모로나오가 죽은 후에도 계속되었다. 다다요시는 가마쿠라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결국 형제는 1352년 다다요시가 죽기 전에 화해했다.
* 1350년 (간노 원년)
10월: 아시카가 다다요시가 교토를 탈출했다.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고 노 모로나오는 아시카가 다다후유 토벌을 위해 규슈로 내려갔다.
11월: 아시카가 다다요시가 고 노 모로나오, 모로후유 토벌을 명목으로 병사를 모았다. 고곤 상황은 아시카가 다다요시 토벌을 명했다.
12월: 아시카가 다다요시가 강화 조건을 제시하고 남조에 귀순했다.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후쿠오카에서 돌아왔다.
* 1351년 (간노 2년)
1월: 모모노이 다다쓰네가 홋코쿠(北国)에서 교토로 돌아와 아시카가 다카우지 등을 하리마로 쫓아냈다. 고 모로후유는 남조에게 공격받아 가이에서 자결했다.
2월: 아시카가 다다요시와 남조군이 셋쓰 우치데하마(打出浜)에서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격파했다. 북조는 고 노 모로나오를 비롯한 고씨 형제의 은퇴를 조건으로 화의를 청했다. 고씨 형제 및 그의 일족들이 셋쓰에서 교토로 호송되던 중에 호송을 맡은 우에스기 요시노리에게 살해되었다. 아시카가 다다요시는 고씨 일족을 배제한 후 정계에 복귀했다.
3월: 아시카가 다다후유가 규슈 단다이(九州探題)에 임명되었다.
10월: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남조에 항복하고, 남조는 아시카가 다다요시 토벌령을 내렸다.
11월: 북조의 천황과 연호가 폐지되고, 쇼헤이 통일이 성립되었다. 같은 달, 고려 연안에서 왜구가 활동을 시작했다.
* 1352년 (간노 3년)
윤2월: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쇼군직이 해임되었다. 기타바타케 지카후사를 비롯한 남조 측의 여러 신하와 장수들이 입경하고, 쇼헤이 통일이 파탄났다. 북조의 고곤, 고묘, 스코 3 상황과 스코의 황태자 나오히토 친왕을 남조의 본거지로 납치했다.
6월: 고곤, 고묘 양 상황의 국모인 코기몬인이 치천의 정무 대행을 승낙하고, "간노" 연호의 회복을 선언했다.
** 8월: 스코 상황의 동생인 이야히토 친왕이 즉위한다(고코곤 천황).
3.2. 동아시아 정세
1350년(간노 원년)부터 고려 연안에서 왜구의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왜구는 고려 해안 지역을 약탈하며 고려에 큰 피해를 입혔다. 같은 시기 원나라에서는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사회 혼란이 가중되었다.
4. 주요 인물
| 구분 | 인물 | 설명 |
|---|---|---|
| 북조 | 아시카가 다카우지 | 무로마치 막부의 초대 쇼군. 동생 아시카가 다다요시와 권력을 두고 대립하였으며, 이는 간노의 소란으로 이어졌다. |
| 아시카가 다다요시 |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동생으로, 형과 대립하다 패배하였다. | |
| 고 노 모로나오 |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유력 가신이었으나, 간노의 소란 중에 우에스기 요시노리에게 살해되었다. | |
| 고곤 천황 | 북조의 초대 천황. | |
| 고코곤 천황 | 북조의 4대 천황으로 간노 3년에 즉위. | |
| 남조 | 고무라카미 천황 | 메이지 시대 칙령에 따라 정통으로 확립된 남조의 천황. |
| 기타 | 요시다 겐코 | 가인, 수필가. 쓰레즈레구사의 저자. 간노 원년에 사망. |
| 무소 소세키 | 임제종 승려. 간노 2년에 사망. |
4.1. 북조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무로마치 막부의 초대 쇼군으로, 동생 아시카가 다다요시와 권력을 두고 대립하였다. 이 갈등은 간노의 소란으로 이어졌다. 아시카가 다다요시는 다카우지의 동생으로, 형과 대립하다 패배하였다. 고 노 모로나오는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유력 가신이었으나, 간노의 소란 중에 우에스기 요시노리에게 살해되었다.
고곤 천황은 북조의 초대 천황이며, 고코곤 천황은 북조의 4대 천황으로 간노 3년에 즉위하였다.
간노 연간의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주요 사건 |
|---|---|
| 간노 원년 (1350년) | |
| 간노 2년 (1351년) | |
| 간노 3년 (1352년) |
4.2. 남조
메이지 시대 1911년 3월 3일 칙령에 따라 고다이고 천황의 직계 후손인 고무라카미 천황 계열의 南朝일본어(남조)가 정통으로 확립되었다. 남조는 나라 근처 요시노에 있었다.
; 원년 (남조 정평 5년, 1350년)
* 10월: 아시카가 다다요시가 교토를 탈출, 아시카가 다카우지·고노 모로후유 등은 아시카가 다다후유 토벌을 위해 규슈로 갔다.
* 11월: 다다요시가 모로후유·모로후유 토벌 명분으로 군사를 모으자, 고곤 상황이 다다요시 토벌 원선(院宣)을 반포했다.
* 12월: 다다요시가 남조에 강화 조건 제시 후 귀순, 다카우지는 후쿠오카(오카야마현세토우치시)에서 돌아왔다.
; 2년 (남조 정평 6년, 1351년)
* 1월: 모모이 나오츠네가 북국에서 입경, 다카우지 등을 하리마국으로 몰아냈다. 고노 모로후유는 남조 공격으로 가이국에서 자살했다.
* 2월: 다다요시가 셋쓰국 우치데하마에서 다카우지 측 격파, 고 형제 은퇴 조건으로 화해했다. 우에스기 요시노리가 고 형제 호송 중 살해했다.
* 3월: 아시카가 다다후유가 친제탄다이에 임명되었다.
* 10월: 다카우지가 남조에 항복, 남조는 다다요시 토벌령을 내렸다.
* 11월: 스코 천황 폐위, "간오" 폐지, 쇼헤이 잇토가 이루어졌다.
* 이 무렵 고려 연안에서 왜구 활동이 시작되었다.
; 3년 (남조 정평 7년, 1352년)
* 윤2월: 다카우지 장군직 해임, 기타바타케 지카후사 등 남조 신하와 장수들이 입경하며 쇼헤이 잇토가 파탄났다. 북조 고곤·고묘·스코 3 상황과 스코 황태자 나오히토 친왕이 남조 본거지로 납치되었다.
* 6월: 고곤·고묘 양 상황 국모 코기몬인가 치천 정무 대행 승낙, "간오" 연호 회복을 선언했다.
* 8월: 스코 상황 동생 미히토 친왕이 고코곤 천황으로 즉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