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덴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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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간덴 사원은 티베트 라싸에서 47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겔룩파의 총본산으로, 1409년 쫑카파에 의해 창건되었다.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 다음의 권위를 가지며, 간덴 트리파가 주지를 맡는다. 1959년 티베트 봉기 이후 파괴되었으나 복구 공사가 진행되었고, 인도 카르나타카주에 재건되기도 했다. 현재는 중국 정부가 공인한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이며, 1996년과 2008년 티베트 봉기 당시 승려들의 시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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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덴 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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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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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어 | དགའ་ལྡན་ (가덴) |
웨일리 표기 | dga' ldan (가덴) |
중국어 간체 | 甘丹寺 (간단쓰) |
병음 | Gāndān Sì (간단쓰) |
위치 | 중국 티베트 자치구 라싸 시닥제 현 왕부르 산 |
종파 | 겔루그파 |
창건자 | 제 쫑카파 |
창건일 | 1409년 |
헌정 대상 | 제 쫑카파 |
위치 정보 |
2. 역사
라싸에서 47km 떨어진 탁체현의 키추강(라싸강) 남쪽 왕부르(왕파르)산 능선 해발 4,200m가량의 위치에 자리 잡은 간덴 사원은 겔룩파의 창시자 쫑카파가 1409년에 직접 건립한 사찰이다. 겔룩파의 총본산으로서 정치적 권력을 가졌으며, 쫑카파의 법좌를 계승하는 역대 겔룩파 교주인 간덴 트리파가 이 사원의 주지를 맡았다. 간덴 트리파는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 다음 가는 권위를 가졌다.[2]
간덴 사원은 1959년 이후 티베트 동란 때 달라이 라마 측의 거점이 되기도 하였고, 문화대혁명 때 철저하게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2] 1981년부터 복구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2008년 현재 총카파의 영탑을 안치한 얀파첸, 간덴 사원 주지의 황금좌가 있는 세르티칸, 역대 주지의 주방 티크트칸 등이 복원되어 한때의 위용을 어느 정도 찾았지만, 아직도 완전한 복구는 요원하다.[2] 총카파의 영탑에 보존되었던 유해는 문화대혁명 때 파괴되어 흩어졌으며, 재건된 영탑에는 현재 회수된 일부 유골만 안치되었다.[2] 한편, 망명한 티베트 사람들에 의해 인도 카르나타카 주에 간덴 사원이 재건되고 있다.[2]
간덴 트리파의 임기는 전통적으로 4년이지만 달라이 라마 망명 후 14대 달라이 라마의 전 스승인 린 린포체가 종신 주지를 맡았다. 현재는 잘페르시펜이 98대째 주지를 맡고 있다. 중국 정부가 공인한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이다.
2. 1. 창건 (1409년)
라싸에서 47km 떨어진 탁체현 키추강(라싸강) 남안의 왕부르(왕파르)산 능선 해발 4,200m가량의 위치에 여러 건물과 승방이 있다. 3대 사원 중 라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참배객이나 관광객이 가장 적다. 그러나 겔룩파의 창시자 쫑카파가 1409년에 직접 건립한 사찰로 겔룩파의 총본산으로서 정치적 권력을 가졌다. 쫑카파의 법좌를 계승하는 역대 겔룩파 교주, 즉 간덴 티파는 이 사원의 주지이다. 간덴 티파는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 다음으로 권력을 가진다.[2]한자 표기는 "감단사(甘丹寺)"이다. 청의 옹정제(世宗)는 영수사(永寿寺)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능선 위에 만들어진 순례길에서는 키추강(라싸강)의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다. 본 사찰의 건립과 종조 쫑카파의 좌주 취임을 통해 겔룩파가 창종되었다(1409년).
2. 2. 겔룩파의 발전과 정치적 영향력
1409년 쫑카파가 간덴 사원을 건립하면서 겔룩파는 총본산으로서 정치적 권력을 갖게 되었다.[2] 쫑카파의 법좌를 계승하는 역대 겔룩파 교주인 간덴 트리파는 간덴 사원의 주지를 맡았다. 간덴 트리파는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 다음 가는 권위를 가졌다.1860년대에는 평신 귀족인 샤트라가 주최한 "위대한 간덴 사원, 드레풍 사원, 정부 관리" 회의를 통해 당시 섭정이 폐위되고 샤트라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 이후로 이 회의는 촌두(''촌두'')라고 불렸는데, 섭정을 선출하고 자문 기구로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3] 간덴 사원, 세라 사원, 드레풍 사원은 반대하는 정부 결정에 대해 실질적인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3] 이 세 사원은 총 20,000명의 승려를 보유했으며, 농노가 경작하는 비옥한 토지를 포함한 대규모 토지를 지원받았다.[3]
2. 3. 1959년 티베트 봉기와 문화대혁명
1959년 티베트 봉기 때 달라이 라마 측의 거점이 되었던 간덴 사원은 중국 인민해방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3] 1966년에는 홍위병의 포격으로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며, 승려들은 남은 잔해를 해체해야 했다. 문화 대혁명 (1966–1976) 동안 건물들은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여 잔해로 만들었다.[3]총카파의 미라화된 시신 대부분은 불에 탔지만, 그의 두개골과 일부 재는 시신을 불로 옮기도록 강요받은 승려 보미 린포체에 의해 화재로부터 구해졌다.[3]
1981년부터 복구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2008년 현재 총카파의 영탑을 안치한 얀파첸, 간덴 사원 주지의 황금좌가 있는 세르티칸, 역대 주지의 주방 티크트칸 등이 복원되어 한때의 위용을 어느 정도 찾았지만, 아직도 완전한 복구는 요원하다. 총카파의 영탑에 보존되었던 유해는 문화대혁명 때 파괴되어 흩어졌으며, 재건된 영탑에는 현재 회수된 일부 유골만 안치되었다.

2. 4. 복원과 재건
1959년 티베트 동란 때 달라이 라마 측의 거점이 된 적도 있고, 문화대혁명 때 철저하게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2] 1981년부터 복구 공사를 시작하였지만, 2008년 현재 총카파의 영탑을 납입하는 얀파첸, 간덴 사원 주지의 황금좌가 있는 세르티칸, 역대 주지의 주방 티크트칸 등이 수복되어 한 때의 위용을 어느 정도 찾았지만, 아직도 완전한 복구는 요원하다.[2] 총카파의 영탑에 보존되고 있던 존체는 문화대혁명 때 파괴되어 흩어졌으며 재건된 영탑에 현재는 회수된 일부 유골만 납입되었다.[2] 한편 망명한 티베트 사람들에 의해 인도의 카르나타카 주에 간덴 사원이 재건되고 있다.[2]간덴 사원은 1959년 티베트 봉기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1966년에는 홍위병의 포격으로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며, 승려들은 남은 잔해를 해체해야 했다. 건물들은 문화 대혁명 (1966–1976) 동안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여 잔해로 만들었다.
총카파의 미라화된 시신 대부분이 불에 탔지만, 그의 두개골과 일부 재는 시신을 불로 옮기도록 강요받은 승려 보미 린포체에 의해 화재로부터 구해졌다.
1980년대부터 재건이 계속 진행되었다. 2012년 현재 수도원 재건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중앙에 있는 붉은 칠을 한 라캉은 총카파의 유물 탑인 통와 돈덴, "보기에 의미있는"을 담고 있는 간덴의 ''성소 중의 성소''를 재건한 것이다.
1959년 티베트 봉기 당시 티베트를 탈출한 사원 조직은 인도에서 받아들여져, 남인도의 카르나타카 주 뭉고드(Mundgod)에서 가람을 재건하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라사 교외의 옛 경내에서도 티베트에 잔류한 사람들에 의해 사원으로서의 활동이 재개되어, 1981년부터 수복 공사가 시작되었고, 2008년 현재 춍카파의 영탑을 모시는 얀파첸, 간덴 사원 좌주의 황금좌가 있는 셀티칸, 역대 좌주의 주방 티크토칸 등이 수복되어, 한때의 위용을 상당히 되찾아가고 있지만, 아직 완전한 부흥이 이루어졌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춍카파의 영탑에 보존되어 있던 유해는 문화 대혁명의 파괴 때 산일되었고, 재건된 영탑에는 현재 겨우 수습된 유골 등이 안치되어 있다.
3. 인도에서의 재건
간덴 사원은 망명한 티베트인들에 의해 인도 카르나타카 주에 재건되었다. 간덴 사원은 문드고드의 티베트인 정착촌에 위치해 있는데, 이 티베트 난민 정착촌은 인도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1966년 인도 정부로부터 기증받은 토지에 처음 설립되었다.
문드고드 근처의 티베트인 정착촌에는 간덴 사원과 드레풍 사원이 있다. 1999년에는 약 13,000명의 주민이 있었다. 이 티베트인 정착촌은 2개의 사원과 1개의 비구니 사원을 포함하여 9개의 캠프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농장을 위한 신용 은행, 농업 연구소, 공예 센터를 설립했다. 현대 기술과 통신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간덴 사원의 교육 과정은 1959년 이전 간덴 사원의 가르침과 유사하게 유지되고 있다.
간덴 사원 대학인 장체(Jangtse)와 샤르체(Shartse)도 인도에서 재건되었다. 이들은 간덴 장체 대학(The Ganden Jangtse College)과 간덴 샤르체 사원(The Gaden Shartse Monastery)으로 명명되었으며, 카르나타카 주에 위치해 있다.
2008년, 달라이 라마의 망명 정부가 강요한 수호신 도르제 슈그덴 숭배 금지령을 따르기를 거부한 500명 이상의 승려들이 카르나타카 주 문드고드에 있는 간덴 사원에서 추방되었으며, 2009년 10월 공식적으로 개원한 샤르 간덴 사원(Shar Gaden Monastery)을 인근 지역에 설립했다. 그 결과, 떠난 승려들의 대부분이 속해 있던 간덴 샤르체 사원(Gaden Shartse Monastery)의 가장 큰 분과인 도캉 캉첸(Dokhang Khangtsen)이 해체되었다.
4. 구조
제 쫑카파가 세운 간덴 사원은 20개가 넘는 주요 예배당과 거대한 불상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가장 큰 예배당은 3,500명의 승려를 수용할 수 있었다.[2] 주요 집회소는 거대한 광장 근처에 있는 금색 지붕을 얹은 흰색 건물이다.[2] 주요 예배당에는 쫑카파의 금박 입힌 조상들이 많이 있다. 주요 집회소 옆에 있는 짙은 붉은색과 황토색 예배당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조상이 있으며, 목판을 사용하여 경전 텍스트를 손으로 인쇄하는 데 사용되는 구역이 있다.[2]
간덴 사원의 세 가지 주요 볼거리는 쫑카파의 묘가 있는 세르둥, 촉첸 집회소, 쫑카파가 전통적으로 가르쳤던 예배당인 응암 초 칸이다. 이 사원에는 쫑카파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5. 현대의 간덴 사원
1959년 티베트 동란 때 달라이 라마 측의 거점이 되었고, 문화대혁명 때 철저하게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2] 1981년부터 복구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2008년 현재 총카파의 영탑을 보관하는 얀파첸, 간덴 사원 주지의 황금좌가 있는 세르티칸, 역대 주지의 주방 티크트칸 등이 복원되어 한때의 위용을 어느 정도 되찾았지만, 완전한 복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총카파의 영탑에 보존되었던 유해는 문화대혁명 때 파괴되어 흩어졌으며, 재건된 영탑에는 현재 회수된 일부 유골만 안치되었다. 한편, 망명한 티베트인들은 인도 카르나타카주에 간덴 사원을 재건하고 있다.
간덴 트리파의 임기는 전통적으로 4년이지만, 달라이 라마 망명 후 14대 달라이 라마의 전 스승인 린 린포체가 종신 주지를 맡았다. 현재는 잘페르시펜이 98대째 주지를 맡고 있다.
1996년 초, 달라이 라마의 사진에 대한 금지령이 내려진 후, 간덴 사원의 승려 400명이 폭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중국 인민해방군에 의해 사격을 받아 2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00명의 승려가 체포되었다.
2008년 티베트 봉기 기념일에 간덴 사원 승려들은 3월 10일에 시작되어 티베트 전역으로 확산된 대규모 시위와 항의에 참여했다.
2012년 기준으로 승려 수는 약 400명으로 감소했다.[3]
간덴 사원은 중국 정부가 공인한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이다.
6. 역대 간덴 트리파
종조 초강카파가 1409년에 좌주직에 취임한 이래, 2009년 10월 현재까지 역대 간덴 티파는 102명에 달한다.[2] 2009년 10월 현재 간덴 티파는 라다크 출신의 제102대 '''리존 린포체'''이다. 간덴 트리파는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 다음의 권위를 가진다.[2]
간덴 트리파 (간덴의 법좌 보유자)는 겔룩 학파의 수장이다.[2] 쫑카파는 사망하기 전에 자신의 법복과 지팡이를 초대 간덴 트리파인 겔체잡제(1364-1432)에게 주었으며, 그의 뒤를 카이드루브제가 이었다. 간덴 트리파의 임기는 7년이며, 2003년까지 99명의 간덴 트리파가 있었다.[2] 달라이 라마 망명 후 14대 달라이 라마의 전 스승인 린 린포체가 종신 주지를 맡았다.
참조
[1]
서적
Initiations & Initiates in Tibet.
University Books
1959
[2]
논문
Tsongkhapa as a mahāsiddha
https://doi.org/10.2[...]
2022
[3]
웹사이트
Latvian Encyclopaedia Timenote
https://timenote.in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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