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드라마)
1. 개요
강감찬 (드라마)는 993년 제1차 고려-거란 전쟁부터 1019년 귀주 대첩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강감찬을 중심으로 고려와 거란의 갈등을 다룬 드라마이다. 성종, 목종, 현종 시대를 거치며,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권력 다툼, 강조의 반란, 거란의 침입 등 역사적 사건들을 묘사한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강감찬, 목종, 현종, 천추태후, 강조, 서희 등이 있으며, 총 78회로 구성되어 있다.
| 방송명 | 강감찬 |
|---|---|
| 원제 | 姜邯贊 |
| 장르 | 사극 |
| 방송 시간 | 매주 월~토 오후 9시 30분 (1973년 10월 8일 ~ 11월 10일) 매주 월~토 오후 10시 (1973년 11월 11일 ~ 12월 1일) 매주 월~토 오후 9시 40분 (1973년 12월 3일 ~ 1974년 1월 9일) |
| 방송 분량 | 약 20분 |
| 방송 기간 | 1973년 10월 8일 ~ 1974년 1월 9일 |
| 방송 횟수 | 75회 |
| 방송 채널 | KBS TV |
| 연출 | 임학송 |
| 각본 | 이은성 |
| 출연자 | 주현, 박근형, 이선근, 이형구, 이효춘, 김자옥, 김성옥, 신구, 남성우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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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 -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
2023년 11월부터 2024년 3월까지 KBS 2TV에서 방영된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은 몬스터유니온과 비브스튜디오스가 제작하고 최수종, 김동준 등이 출연하여 고려-거란 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강감찬과 현종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최고 시청률 13.8%를 기록했다. -
강감찬을 소재로 한 작품 -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
2023년 11월부터 2024년 3월까지 KBS 2TV에서 방영된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은 몬스터유니온과 비브스튜디오스가 제작하고 최수종, 김동준 등이 출연하여 고려-거란 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강감찬과 현종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최고 시청률 13.8%를 기록했다. -
소실된 텔레비전 프로그램 -
여로 (드라마)
1972년 K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여로는 한국 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가난 때문에 씨받이로 팔려 온 여인 분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이야기이다. -
소실된 텔레비전 프로그램 -
텔레스냅
텔레스냅은 존 큐라가 개발하여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방송사들이 프로그램 기록 및 홍보에 사용한, 텔레비전 화면을 사진으로 촬영하는 기술로, 특히 소실된 초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시각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2. 시대적 배경
契丹중국어은 907년 당나라가 멸망한 후, 야율아보기가 요나라를 건국하고 936년에는 후진으로부터 연운 16주를 획득하여 만리장성 이남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이후 高麗중국어가 건국되고, 거란은 고려와 송나라의 외교 관계를 경계하였다. 993년부터 1019년까지 고려와 거란 사이에 세 차례의 큰 전쟁이 벌어졌다.
993년 1차 침입은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마무리되었고, 1010년에 발생한 2차 침입 때는 고려 현종이 나주까지 피난을 가기도 했다. 1018년 3차 침입 때는 강감찬이 귀주 대첩에서 거란군을 크게 물리쳐 고려가 승리했다. 이 전쟁 이후 고려와 거란 사이에는 평화 관계가 유지되었고, 고려는 송나라와의 관계를 재개했다.
3. 주요 등장인물
--
드라마 《강감찬》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 인물 | 역할 | 비고 |
|---|---|---|
| 강감찬 | 고려의 문신, 본작의 주인공 | 강감찬의 부친은 삼한벽상공신이었으며, 강감찬은 아버지와 함께 혼란스러운 고려의 국정을 한탄하였다. |
| 성종 | 고려의 6대 왕 | 쇠약해지자 개령군(목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
| 목종 | 고려의 7대 왕 | 어머니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불륜, 충신 한언공의 죽음에 충격받아 강감찬과 함께 강조의 반란을 계획했다. |
| 현종 | 고려의 8대 왕 | 사수현에서 훗날의 원화왕후와 가난하게 지내던 중 김치양에게 제거 위협에 시달렸다. |
| 천추태후 | 목종의 어머니 | 아들 목종이 즉위하자 간통 대상인 김치양과 함께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
| 원화왕후 | 현종의 비 | 현종이 사수현에서 지내던 무렵부터 이미 부부였다. |
| 원정왕후 | 목종의 비 | 실제 역사에서는 현종의 제1비이나 편성표에서는 목종의 비로 언급된다. |
| 강조 | 고려의 무신 | 거란의 1차 침공 때 양규, 강감찬과 함께 강화론에 반대한다. |
| 양규 | 고려의 무신 | 거란의 1차 침공 때 문신들이 주장하는 강화론에 강감찬, 강조와 더불어 항의한다. |
| 정신용 | 고려의 무신 | 숭교사와 신혈사에서 대량원군을 제거하려는 김치양의 자객과 맞서 싸운다. |
| 정제 | 고려의 무신, 정신용의 아우 | 신혈사에서 대량원군을 제거하려는 김치양의 자객과 맞서 싸운다. |
| 서희 | 고려의 문신 | 탁월한 외교력으로 담판에서 거란의 침공을 저지하고 강동 6주 회복을 꾀한다. |
| 한언공 | 고려의 문신 |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전횡에 맞서 목종에게 대량원군 축출 음모를 알리는 등 충언을 거듭하다가 형틀에서 목숨을 잃는다. |
| 김치양 | 고려의 문신 | 천추태후와 간통을 일삼아 목종이 즉위하자 모후와의 관계를 이용해 권신으로 발돋움한다. |
| 소손녕 | 거란의 장수 | 거란 정병 17만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으나, 서희와의 담판에서 설득되어 본국으로 돌아갔다. |
| 소배압 | 거란의 장수 | 거란 측 지휘관으로 2차, 3차 침공에 참전하였다. |
3.1. 고려
고려의 6대 왕 성종은 쇠약해지자 개령군(목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목종은 성종에 의해 개령군으로 책봉되어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실권은 어머니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쥐고 있었다. 강감찬의 부친은 삼한벽상공신이었으며, 강감찬은 아버지와 함께 혼란스러운 고려의 국정을 한탄하였다.
3.1.1. 강감찬 가문
강감찬(주현 분)은 본작의 주인공이다. 강감찬의 부친은 궁진으로 삼한벽상공신이었다. 강감찬은 아버지와 함께 혼란스러운 고려의 국정을 한탄하였다. 강감찬의 아우 강중찬은 강조에게 현혹되어 강감찬에게 지탄받았다.
3.1.2. 고려 왕실
; 성종
: 演: 미상
: 고려의 6대 왕. 쇠약해지자 개령군(목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 목종
: 演: 미상
: 고려의 7대 왕. 성종에 의해 개령군으로 책봉되어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실권은 어머니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쥐고 있었다. 어머니와 김치양의 불륜, 충신 한언공의 죽음에 충격받아 강감찬과 함께 강조의 반란을 계획하여 김치양을 제거하고 대량원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다. 결국 강조에 의해 폐위된 후 적성현 촌가에서 생을 마감했다.
; 현종
: 演: 미상
: 고려의 8대 왕. 작중 대부분 대량원군으로 불렸다. 기개가 있고 영민하다고 언급된다. 사수현에서 훗날의 원화왕후와 가난하게 지내던 중 김치양에게 위험인물로 주목받아 제거 위협에 시달렸다. 강감찬에게 보호받아 암살을 모면하고, 강조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올랐다. 강조의 반란을 명분으로 거란이 침공하자, 강조가 붙잡히고 고려군이 패배하여 나주로 피난갔지만 척화론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강감찬을 서북면 행영도통사로 임명했다.
; 천추태후
: 演: 미상
: 목종의 어머니. 성종의 침소에서 소외당하는 굴욕도 겪었으나, 아들 목종이 즉위하자 간통 대상인 김치양과 함께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강감찬을 꺼렸다. 김치양의 아들을 낳으면서 이러한 전횡은 더욱 심해졌다. 강조의 반란으로 목종과 함께 행방불명이 되었다. 목종은 죽음이 확실히 언급되는 반면 천추태후는 편성표상 언급이 끊겼다.
; 원화왕후
: 演: 미상
: 현종의 비. 현종이 사수현에서 지내던 무렵부터 이미 부부였다는 사실이 편성표에서 확인된다.
; 원정왕후
: 演: 미상
: 실제 역사에서는 현종의 제1비이나 편성표에서는 목종의 비로 언급되며 임신했다는 소문에 대한 언급이 있다. 드라마상 오류인지 편성표상 오류인지는 불확실하다.
3.1.3. 고려 무신
* 강조
: 演: 남성우
거란의 1차 침공 때 양규, 강감찬과 함께 강화론에 반대한다. 목종의 밀서를 받아 당혹해하나 야심에 따라 목종을 폐위시키고 대량원군을 옹립한다. 강조의 반란을 명분으로 침공한 거란에 맞서 싸워 삼수진에서 승리하지만, 소배압의 결사대에 의해 생포된다. 역사대로 귀순을 제의받으나 거부한다. 편성표에서는 언급이 없으나 실제 역사대로 처형된 것으로 예상된다.
* 양규
: 演: 미상
거란의 1차 침공 때 문신들이 주장하는 강화론에 강감찬, 강조와 더불어 항의한다. 거란의 2차 침공 때는 흥화진에서 유격대를 조직해 거란군의 후방을 농락하는 활약을 보인다.
* 정신용
: 演: 미상
숭교사와 신혈사에서 대량원군을 제거하려는 김치양의 자객과 맞서 싸운다. 이후 거란의 2차 침공 때 양규, 정제와 더불어 흥화진으로 출진한다.
* 정제
: 演: 미상
정신용의 아우. 신혈사에서 대량원군을 제거하려는 김치양의 자객과 맞서 싸운다. 이후 거란의 2차 침공 때 양규, 정신용과 더불어 흥화진으로 출진한다.
3.1.4. 고려 문신
* 서희
: 탁월한 외교력으로 담판에서 거란의 침공을 저지하는 공을 세우고 조공로를 명분삼아 강동 6주 회복을 꾀한다. 그러나 김치양의 난정으로 인해 어지러운 고려의 국정을 걱정하며 숨을 거둔다. 강조의 야심을 경계한 것으로 묘사된다.
* 한언공
: 창작이 많이 가해진 인물로, 병사한 실존인물과 달리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전횡에 맞서 목종에게 대량원군 축출 음모를 알리는 등 충언을 거듭하다가 결국 형틀에서 목숨을 잃는다. 노신 한언공의 죽음에 목종은 충격을 받는다.
* 김치양
: 천추태후와 간통을 일삼아 목종이 즉위하자 모후와의 관계를 이용해 조정 내 권신으로 발돋움한다. 대량원군을 눈엣가시로 여겨 제거하려 하나 강감찬이 저지한다. 천추태후와 낳은 아들이 커가며 더욱 권력이 강해지지만 목종과 강감찬이 획책한 강조의 반란으로 인해서 제거당한다. 성종 시대에도 승병을 조직해 서희 등에게 위험 요소로 여겨졌다는 내용이 있다.
3.2. 거란
* 소손녕: 거란 정병 17만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으나, 서희와의 담판에서 설득되어 본국으로 돌아갔다.
* 소배압: 거란 측 지휘관으로 2차, 3차 침공에 참전하였다. 2차 침공 때는 결사대를 동원해 강조를 붙잡는 공을 세웠으나, 3차 침공 때는 강감찬에게 귀주에서 대패하였다.
4. 드라마 줄거리
편성표 줄거리에 따르면, 993년 1차 침공부터 1019년 귀주대첩까지의 역사를 극화한 것으로 보인다. 993년 이전에는 강감찬의 탄생과 장원급제를 다룬 회차가 편성표에 언급된다.
전체 78회 중 성종 치세는 1~26회, 목종 치세는 27~62회, 현종 치세는 62~75회에 걸쳐 방영된다. 거란의 1차 침공은 1~9회, 2차 침공은 64~74회, 3차 침공은 75회에서 다룬다. 이중 3차 침공은 극도로 간략하게 다뤄진다.
4.1. 제1차 고려-거란 전쟁 (993년)
993년 거란의 1차 침공은 1회부터 9회까지 다룬다.
4.2. 목종 시대 (997년 ~ 1009년)
드라마에서 목종 시대는 27~62회에 해당하며, 전체 78회 중 35회를 차지하여 작중 가장 세밀하게 다뤄진다. 이 시기에는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전횡, 대량원군(훗날 현종)의 등극 과정이 중심 내용이다.
4.3. 제2차 고려-거란 전쟁 (1010년 ~ 1011년)
993년 거란의 1차 침공 이후, 1010년부터 1011년까지 벌어진 거란의 재침, 고려의 항전, 현종의 나주 파천 등을 다룬다. 양규의 활약을 비중 있게 다루며, 드라마 상에서는 64~74회에 해당한다.
4.4. 제3차 고려-거란 전쟁 (1018년 ~ 1019년)
1018년부터 1019년까지 벌어진 제3차 고려-거란 전쟁은 귀주대첩을 중심으로 극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드라마 편성표상 78개의 회차 중 75회에서 3차 침공을 다루는데, 이는 매우 간략하게 다뤄진 것이다.
5. 에피소드 목록
| 회차 | 방송일 | 편성표 줄거리 | 비고 |
|---|---|---|---|
| - | 1973.10.08 | 전야제 | |
| 1 | 1973.10.09 | 고려 성종 12년(993년) 10월 거란은 소손녕 정병 17만으로 고려를 침략하였다. | |
| 2 | 1973.10.10 | 삼한벽상공신 궁진의 아들로 태어난 강감찬은 983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 |
| 3 | 1973.10.11 | 어전회의에서 문신들은 강화론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나 좌보궐 강감찬과 종당 용호군의 강조, 양규 등은 싸우자고 주장하였다. | |
| 4 | 1973.10.12 | ||
| 5 | 1973.10.13 | ||
| 6 | 1973.10.15 | 소손녕의 강화봉서를 놓고 조정은 또 다시 격론이 벌어졌다. | |
| 7 | 1973.10.16 | 서희는 막중한 국운을 걸고 적장과 강화담판을 벌이기 위해 적진으로 향했다. | |
| 8 | 1973.10.17 | 기치창검이 정연한 거란 진영에서 단신으로 적장 소손녕과 대좌한 서희는 팽팽한 위압감을 무시하고, 땅은 결코 내놓을 수 없다는 결의를 보였다. | |
| 9 | 1973.10.18 | 서희가 담판을 계속하는 동안 조정은 초조와 긴장 속에 잠겨있었다. 거란의 진의를 간파한 서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10 | 1973.10.19 | 거란에 조공을 바치는데 방해되는 여진땅을 토벌하고, 국로를 개설해야 한다는 서희의 묘책을 제시하였다. | |
| 11 | 1973.10.20 | 담판을 성공시킨 서희는 서경에 돌아와 성종에게 거란 조공로를 명분삼아 철군하는 거란군을 따라 강동 6주를 정벌할 것을 진언하였다. | |
| 12 | 1973.10.22 | 강동6주를 얻어 성을 쌓고 변방 국경경비를 단단히 대비하는 고려의 총력태세를 깨뜨리는 중국 일각의 음모가 있었다. | |
| 13 | 1973.10.23 | 정월 보름 연등회에 변복하고 남경으로 오라는 김치양의 밀서에 천추태후는 그리움에 몸부림쳤다. | |
| 14 | 1973.10.24 | 병부 개편에 강조가 물망에 오르자 그의 야심과 사조직을 꺼리는 서희는 반대하였다. | |
| 15 | 1973.10.25 | ||
| 16 | 1973.10.26 | ||
| 17 | 1973.10.27 | 김치양이 승병을 키우는 사실을 알고 서희를 위시한 조정 충신들이 대책을 숙론하였다. | |
| 18 | 1973.10.29 | 날로 시국은 어수선하고 강감찬 부자는 모여 앉아 탄식을 하였다. | |
| 19 | 1973.10.30 | 성종은 만승의 자리를 개령군에게 양위할 뜻을 밝혔다. | |
| 20 | 1973.10.31 | 심혈사 김치양의 무리를 감시하던 호신은 발각되어 칼을 맞고 쓰러졌다. | |
| 21 | 1973.11.01 | 성종의 침소 만녕전 앞에서 소외당한 천추태후는 분통을 터뜨렸다. | |
| 22 | 1973.11.02 | 사수현의 대량원군과 원화 젊은 부부는 가난 속에서도 마음을 의지하고 단란하게 살아갔다. | |
| 23 | 1973.11.03 | 개령군의 등극 소문에 김치양의 야심은 불타오르고 사수현 대량원군에 적소한 강감찬은 근심하였다. | |
| 24 | 1973.11.05 | 천추태후를 손아귀에 쥔 김치양에게 대량원군은 눈엣가시 같았다. 사수현에서 대량군 부부를 모시고 오던 강감찬은 고심하였다. | |
| 25 | 1973.11.06 | 감찬의 집에 잠시 머문 대량원군, 감찬 일행은 그의 기개있고 영민한 모습에 흠모와 존경을 보냈다. 성종은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 |
| 26 | 1973.11.07 | ||
| 27 | 1973.11.08 | 성종이 붕어하고 개령군이 즉위하여 고려 7대 목종이 되었다. 섭정을 맡은 천추태후 가슴은 복수와 야심에 불탔다. | |
| 28 | 1973.11.09 | 천추태후는 실의를 쫓기 위한 무리와 함께 김치양을 추대하고 조정대신 숙청음모를 시작하였다. | |
| 29 | 1973.11.10 | 감찬과 서희를 거세시키자는 태후의 청을 목종은 뿌리쳤다. 감찬은 천추전으로 태후를 알현하였다. | |
| 30 | 1973.11.11 | 거란 사신을 맞은 영접절차를 아뢰는 강감찬에게 태후는 냉랭히 물러가라 외쳤다. | |
| 31 | 1973.11.14 | 태후는 김치양을 합문사인의 벼슬에 앉히고 그 무리로 궁중인사를 개편하니 감찬은 삭탈관직을 당하였다. | |
| 32 | 1973.11.15 | 감찬은 담담히 낙향을 결심하는데 김치양은 거드름을 피며 입궐하였다. 문하시중 한언공은 산발하고 노구를 끌며 대궐로 향했다. | |
| 33 | 1973.11.16 | 태후는 김치양에게 우복야 겸 판삼사사의 벼슬을 내리니 고려조의 인사권과 재정권은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 | |
| 34 | 1973.11.17 | ||
| 35 | 1973.11.19 | 모후가 대량원군의 축출음모를 꾸민다는 한언공의 간언에 천추전으로 간 목종은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되었다. | |
| 36 | 1973.11.20 | 김치양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는 모후의 추악한 광경을 목격한 목종은 분노가 폭발, 칼을 빼어들고 천추전으로 향했다. | |
| 37 | 1973.11.21 | 어지러운 국사를 통탄하면서 서희는 눈을 감았다. 천추전에선 태후와 김치양이 태연히 주연을 베풀고 목종은 침식을 전폐하고 술로 날을 보냈다. | |
| 38 | 1973.11.22 | 목종은 침식을 전폐하고 술로 날을 지새웠다. | |
| 39 | 1973.11.23 | ||
| 40 | 1973.11.24 | ||
| 41 | 1973.11.26 | 목종비 원정이 포태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 |
| 42 | 1973.11.27 | 강조에 현혹당한 동생을 책망하는 강감찬. 궁중에선 태후의 지령으로 모종의 음모가 진행되었다. | |
| 43 | 1973.11.28 | ||
| 44 | 1973.11.29 | 태후가 김치양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놀라운 소문을 확인하고 강감찬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 |
| 45 | 1973.11.30 | 대량원군을 옹호하는 감찬의 집엔 불안과 긴장이 감도는데, 그날밤 김치양이 보낸 자객이 침입하였다. | |
| 46 | 1973.12.01 | 숲속마다 김치양의 심복들이 잠복한 낡은 숭고사. 대량원군은 김치양의 속셈을 알아챘다. | |
| 47 | 1973.12.03 | 다시 부월을 메고 천추전으로 들어간 한언공. 늙은 몸을 바치기로 결심한 그 처참한 모습에 어린 목종의 가슴은 찢어질 듯했다. | |
| 48 | 1973.12.04 | 형틀을 준비하고 독기를 품은 천추태후의 발치에서 원한과 통탄어린 눈빛으로 상소문을 울부짖던 한언공은 끝내 숨을 거두었다. | |
| 49 | 1973.12.05 | 형틀을 준비하고 독기를 품은 천추태후의 발치에서 원한과 통탄어린 눈빛으로 상소문을 울부짖던 한언공은 끝내 숨을 거두었다. 한언공이 숨을 거두자 하늘도 우는 듯 천둥이 쳤다. 그날 밤 입궐하라는 칙지가 감찬에게 내려졌다. | |
| 50 | 1973.12.06 | 아닌 밤중에 감찬을 불러들인 목종은 대량원군에게 양위할 뜻을 비췄다. | |
| 51 | 1973.12.07 | 생모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불륜의 씨를 잉태한 기막힌 현실 속에 강감찬은 고뇌하였다. | |
| 52 | 1973.12.08 | ||
| 53 | 1973.12.10 | 목종으로부터 은밀히 직첩을 받은 감찬은 정신용을 보내 숭교사 대량원군을 보호케 하고 한편으론 강조의 군사를 일으켜 김치양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 |
| 54 | 1973.12.11 | 대량원군 독살 계략이 탄로나자 김치양의 자객과 정제는 필사의 혈투를 벌였다. | |
| 55 | 1973.12.12 | 목종과 강감찬은 은밀히 강조의 군사를 일으킬 칙지를 내렸다. | |
| 56 | 1973.12.13 | 김치양의 세력은 천추태후가 낳은 자식이 커가자 더욱 커졌고 목종은 더욱 몸이 쇠약해졌다. | |
| 57 | 1973.12.14 | 김치양 일당이 목종 침실에까지 침입, 협박하는 속에 감찬은 죽기를 결심하고 상감을 호위하였다. | |
| 58 | 1973.12.15 | 대량원군이 피신한 신혈사에서 감찬이 보낸 정신용 형제와 김치양의 자객들은 필사의 혈투를 벌였다. | |
| 59 | 1973.12.17 | 상감의 밀서를 받아쥔 강조는 당혹스러워했다. 목종 곁에 있는 강감찬을 의식한 강조는 대량원군을 옹립하여 새 조정을 꾸밀 야심을 품고 거병하였다. | |
| 60 | 1973.12.18 | 강조의 군사가 개경에 돌입하니 궁중은 아비규환 수라장이 되었다. 발악이 극에 달한 김치양은 천추태후를 끌고 내전으로 가다 감찬에게 체포당했다. | |
| 61 | 1973.12.19 | 난리통에 목종과 천추태후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감찬의 집에 피신했던 대량원군은 혼란스러워했다. | |
| 62 | 1973.12.20 | ||
| 63 | 1973.12.21 | 강조에 날조된 서약에 목종은 적성현 촌가에서 한많은 일생을 마쳤다. | |
| 64 | 1973.12.22 | 거란이 40만 대군을 일으켜 강조의 죄를 물었다. | |
| 65 | 1973.12.23 | 거란의 외침에 위급해진 궁중에서는 현종과 감찬이 강조의 처단을 뒤로 미루고 일치단결, 거란과 싸울 채비를 하였다. | |
| 66 | 1973.12.25 | 고려는 마침내 현종의 단안으로 강조를 행영도홍사로 삼고 양규, 정신용, 정제 형제를 홍화진으로 파병하였다. | |
| 67 | 1973.12.26 | 강감찬은 정4품 예부시랑으로 삼아 거란과 일전을 겨루게 되었다. | |
| 68 | 1973.12.27 | 거란과 일전을 겨루는 강감찬의 모습이 그려졌다. | |
| 69 | 1973.12.28 | 홍화진의 양규는 첩첩이 싸인 3만의 적진을 12번이나 야습을 감행, 13의 적장과 5천 3백의 적병을 베어 거란의 후진을 교란시켰다. | |
| 70 | 1973.12.29 | 삼수진에서 거란군의 예봉을 꺾어 승전을 올렸다는 강조의 장계를 받고 현종은 기뻐하였다. | |
| 71 | 1974.01.01 | 삼수진에서 거란의 예봉을 꺾고 2만이 넘는 적병을 무찔렀다는 강조의 장계에 궁중은 환희에 싸였다. | |
| 72 | 1974.01.02 | 소배압이 이끄는 거란의 결사대에 강조가 생포되자 고려군은 무너지고 조정은 허탈감에 빠졌다. | |
| 73 | 1974.01.03 | 거란 진영에서 강조는 귀순을 권유받았으나 굴하지 않았다. | |
| 74 | 1974.01.04 | 감찬의 상주를 받아들여 현종은 나주로 피난가고 텅빈 성내에는 패잔병과 시체만 남았다. | |
| 75 | 1974.01.05 | 나주에 피난간 현종은 거란 성종에게 친조하기를 약속하였다. 개경에 복위한 현종은 감찬을 서북면 행영도통사로 임명하였다. 고려에 재침입한 거란은 감찬의 귀주대첩으로 십만대군을 잃었다. | |
| - | 1974.01.07 | 마침내 거란군은 개경에 도달하였다. 나주로 피난간 현종은 척화론에 골치를 앓고 텅빈 개경 성내엔 파잔병과 백성들만 남았다. | |
| - | 1974.01.08 | 나주로 피난간 현종은 척화론에 골치를 썩이는데 텅빈 개경 성내엔 시체만이 즐비하였다. | |
| - | 1974.01.09 |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고려는 마침내 승리를 거두게 되고 거란군은 물러갔다. 현종은 강감찬을 서북면 행영도통사로 삼아 북방경비를 강화하다가 거란의 재차 침입을 당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