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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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게이 아이콘은 게이 남성들이 문화적 상징으로 여기는 인물을 지칭하며, 레즈비언 아이콘, 퀴어 아이콘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역사적으로는 성 세바스티아누스, 오스카 와일드, 마리 앙투아네트 등이 게이 아이콘으로 여겨졌고, 현대에는 마돈나, 신디 로퍼, 카일리 미노그, 엄정화, 릴 나스 X 등이 다양한 분야에서 게이 아이콘으로 꼽힌다. 게이 아이콘은 연예계, 스포츠계, 정치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며, 긍정적인 반응과 비판적인 시각이 공존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게이 아이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사회적 인식 변화와 함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게이 아이콘
개요
정의특정 하위문화 내에서 숭배를 받거나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인물 또는 캐릭터
관련 하위문화LGBT 커뮤니티
특징카리스마
독특한 개성
사회적 규범에 대한 저항
성 소수자 권익 옹호
역사 및 배경
기원20세기 초, 할리우드와 대중 매체의 발달과 함께 등장
초기 게이 아이콘마를레네 디트리히
그레타 가르보
사회적 변화성 소수자 인권 운동의 발전
대중 문화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 변화
게이 아이콘의 역할과 의미
상징적 의미자유
개성
저항 정신
연대 의식
사회적 역할성 소수자 커뮤니티의 정체성 확립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대한 저항
성 소수자 인권 옹호
게이 아이콘의 예시
여성 아이콘주디 갈랜드
마돈나
레이디 가가
다이애나 로스
셰어
카일리 미노그
머라이어 캐리
비욘세
브리트니 스피어스
돌리 파튼
남성 아이콘프레디 머큐리
엘튼 존
조지 마이클
릴 나스 엑스
앤디 워홀
루 폴
오스카 와일드
캐릭터 아이콘도로시 게일 (오즈의 마법사)
에스메랄다 (노트르담 드 파리)
선정 기준 및 논란
선정 기준대중적 인기
카리스마
독특한 개성
성 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지지
논란이성애자 스타의 게이 아이콘화에 대한 비판
상업적 이용에 대한 우려
참고 자료
서적(영어) "Queer Icons and Their Myths" by Matthew Todd
(영어) "Gay Icons" by Richard Dyer
관련 웹사이트Advocate
Out
Gay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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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중문화 - 유행

2. 역사적 예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역사상 최초의 게이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역사상 최초의 게이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최초의 게이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인물은 기독교인이자 순교자인 성 세바스티아누스이다. 그의 강인하고 셔츠를 입지 않은 체격, 살을 관통하는 화살, 고통스러운 표정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예술가 모두에게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켰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게이 컬트가 되었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자신의 연극 《지난 여름 갑자기》에서 순교자로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세바스찬으로 정했는데, 이는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영향이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감옥에서 출소 후 세바스찬 멜모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세기 후반, 와일드는 커밍아웃에 가까운 행적을 보이며 게이 아이콘이 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초기 레즈비언 아이콘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전, 그녀의 여성 관계에 대한 소문이 외설적으로 묘사되어 퍼져나갔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는 이 소문을 부정했지만, 랑발 공작 부인과의 우정을 과장하기도 했다. 19세기 말, 앙투아네트는 사피즘의 아이콘이 되었고, 그녀의 처형은 비극적 순교로 여겨졌다. 20세기 초 레즈비언 문학에서도 앙투아네트가 언급된다. 동성애자 극작가 조너선 브로켓은 앙투아네트와 랑발을 "허위와 가식에 싫증이 난 불쌍한 영혼"이라고 묘사했다. 장 주네는 1946년 연극 《하녀들》에서 앙투아네트의 처형을 재현하며, 그녀가 게이 아이콘으로서도 어필했음을 보여준다.

2.1. 초기 게이 아이콘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역사상 최초의 게이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역사상 최초의 게이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기독교도이자 순교자인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최초의 게이 아이콘으로 인식되는 인물이다. 강인하고 셔츠를 입지 않은 체격, 살을 관통한 상징적인 화살, 고통에 가득 찬 모습은 수 세기 동안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예술가 모두에게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켰고, 19세기에 이르러 첫 번째로 분명한 게이 컬트가 되었다. 저널리스트 리처드 A. 케이는 "당대의 동성애자 남성들은 세바스티아누스를 동성애적 욕망(동성애의 이상)의 강렬한 알림이자 극심한 고문에 시달리는 클로짓의 원형적 초상이라고 보아왔다"라고 적었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자신의 연극 《지난 여름 갑자기》에 순교자로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세바스찬으로 정하였는데, 이는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게이 아이콘이 된 것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 또한 감옥에서 출감하여 국외로 추방된 후 세바스찬 멜모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잉글랜드의 작가이자 시인인 와일드는 19세기 후반, 그 시대에 커밍아웃에 가까운 행적을 보이면서 게이 아이콘이 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초기의 레즈비언 아이콘이었다. 그녀의 여성 관계에 대한 소문은 프랑스 혁명 이전 반왕정주의자 소책자에 외설적인 세부 사항이 실리며 유포되었다. 빅토리아 영국의 앙시엥 레짐을 지지하던 전기 작가들은 이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마리 앙투아네트와 랑발 공작 부인의 자매 사이와도 같은 우정을 과장되게 해석하기도 했다. 1858년 전기에는 "신께서 죽음까지 함께 하도록 한 귀하고 위대한 사랑" 중 하나라고도 표현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앙투아네트는 사피즘의 아이콘이 되었는데, 그녀의 처형을 비극적인 순교로 보는 시각이 그 매력을 더한 것으로 보고 있다.

레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을 포함한 초기 20세기 레즈비언 문학에서도 앙투아네트에 대한 언급이 나타난다. 동성애자 극작가 조너선 브로켓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랑발을 "허위와 가식에 죽도록 싫증이 난 불쌍한 영혼"이라고 묘사하였다. 장 주네는 1946년 연극 《하녀들》에서 앙투아네트의 처형을 재현했는데, 이는 앙투아네트가 게이 아이콘으로서도 어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2.2. 한국의 역사적 인물

한국의 역사적 인물 중에서는 명확하게 게이 아이콘으로 규정할 수 있는 인물은 찾기 어렵다. 다만, 조선 시대 동성애 풍습에 대한 기록이나 문학 작품 속 동성애 코드를 통해 유추해 볼 수는 있다.

3. 현대의 예

현대에는 연예계, 스포츠계, 정치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게이 아이콘이 등장하고 있다.

말런 브랜도 (1948년)
말런 브랜도 (1948년)

현대 엔터테인먼트계(영화 배우 및 뮤지션)에서 게이 아이콘으로 꼽히는 인물들은 굳건함과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요절하거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예를 들어 1950년대에 명성을 떨친 그리스계 미국인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는 무대에서의 매력적인 모습이나 비극적인 연애 등 파란만장한 사생활, 무대를 떠난 후 파리에서 요절한 일 등 많은 사건들이 그녀를 게이 아이콘으로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게이 아이콘들은 동성애·이성애를 불문하고, 동성애를 공언하는지 여부, 성별도 다양하다. 쇼 등에서 드래그 퀸이 특정 인물이 되어 연기할 때 등은 게이 아이콘의 여성이 자주 다루어진다. 레즈비언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인물은 대부분이 레즈비언 또는 양성애자이고, 본인이 공언했거나 소문이 있는 강력한 여성이다. 하지만, 일부 남성 유명인도 레즈비언 아이콘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제임스 딘이 그 예이고, 말런 브랜도 역시 남성적인 레즈비언의 이미지와 비슷한 풍모()나, 1950년대 이후 그의 이미지로 인해 레즈비언 아이콘으로 여겨지고 있다.

"게이 아이콘"이라는 용어는 미국에서 주로 사용되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도 비슷한 개념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출신의 이집트 가수 달리다는 자신의 경력 동안 파리에서 중동에 이르는 지역의 동성애자들에게 지지를 받았으며, 그녀가 죽은 뒤 몇 년 동안에도 그녀의 우상화는 줄어들지 않았다. 필리핀 동성애자 코미디언 바이스 간다 또한 게이 아이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럽 국가에서는 네덜란드의 가수 빌레커 알베르티가 게이 아이콘으로 인정을 받는데, 노래의 레퍼토리, 경력의 연륜, 다방면으로 불거지는 동성애자 의제에 대한 옹호 행위가 한데 모인 것이다. 스페인의 배우 카르멘 마우라, 이탈리아 가수 미나, 스코틀랜드 가수 지미 섬머빌리, 독일 싱어송라이터 마리아네 로젠베르크, 영국 가수 더스티 스프링필드 또한 게이 아이콘으로 인정 받는다. 프랑스 연예인 미렌느 파머, 우크라이나 보이 밴드 카자키, 튀르키예 가수 아즈다 페칸, 이탈리아 배우 이사벨라 로셀리니도 게이 아이콘으로 일컬어진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게이 아이콘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는데, 1980년대 유행했던 스페인 팝 밴드 알라사카 이 디나라마가 한 예이다. 2002년에 탈리아가 리메이크한 이 밴드의 싱글 "¿A quién le importa?" ("알게 뭐야?")는 스페인어 LGBT 공동체의 게이 앤섬이 되었다. 멕시코의 가수이자 배우인 파울리나 루비오는 동성 결혼에 대한 지지와 게이 아이콘 마돈나와 섹스를 하고 싶다는 공개 발언으로 화제와 지지를 얻으며 라틴 아메리카의 게이 아이콘이 되었다. 이 밖에도 라틴 아메리카의 게이 아이콘으로 알래스카, 샤키라, 발레리아 린치, 리키 마틴,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등이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엄정화가 대표적인 게이 아이콘으로 꼽힌다.

3.1. 서구권의 현대 게이 아이콘

현대의 게이 아이콘은 연예계에서 배우와 음악가를 모두 포함하며, 강렬하고 특색있는 개성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다. 젊은 나이에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 사망한 사람도 많다. 예를 들어, 195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그리스계 미국인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는 매력적인 무대 공연과 파란만장했던 사생활, 비극적인 사랑, 그리고 목소리가 악화되어 무대를 떠난 후 파리에서 쓸쓸하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일들이 어우러져 게이 아이콘이 되었다.

게이 아이콘의 상징 마돈나
게이 아이콘의 상징 마돈나

게이 아이콘의 상징 레이디 가가
게이 아이콘의 상징 레이디 가가


최근에는 "게이 아이콘"이라는 용어의 본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가디언》의 폴 플린은 "게이 아이콘의 개념은 할인표와 다름이 없으며, 게이 아이콘화의 개념 자체는 강인함과 독특함, 개성있는 외양을 수반하는 능력과 인기의 개념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작가 마이클 토마스 포드 또한 자신의 소설 《마지막 여름》(Last Summer)을 통해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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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여왕", "댄스의 여왕"으로 불리며, 기네스 세계 기록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가수"로 기록된 팝 가수 마돈나는 20세기 말의 게이 아이콘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마돈나는 경력 전반에 걸쳐 게이 팬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게이 커뮤니티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곡과 퍼포먼스로 표현했고, 게이 클럽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절친한 친구 중 일부가 게이이며, 자신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게이 아이콘"으로 불린다는 것에 대해 게이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또한 1990년대 초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동성애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잡지 The Advocate의 Steve Gdula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마돈나의 비디오와 싱글 발매는 마치 명절과 같았다. 적어도 그녀의 게이 팬들에게는 말이다."라고 말하며, 미국 내 게이 남성에게 에이즈 감염이 확산되던 당시를 배경으로 "그들의 지지로 스타덤에 오른 다른 아티스트들이 그들과 거리를 두려고 할 때, 마돈나만이 게이 팬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며 눈부신 존재감을 드러냈다."라고 평했다. "Madonna As Postmodern Myth: How One Star's Self-Construction Rewrites Sex, Gender"의 저자 Georges-Claude Guilbert는 게이 아이콘으로서의 마돈나에 대한 찬사는 주디 갈랜드의 그것과 같으며, 공통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마돈나는 친했던 댄스 강사를 에이즈로 잃은 후, 에이즈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Blond Ambition Tour에서는 백댄서의 대부분이 게이였으며, 투어의 뒷이야기를 담은 영화 『인 베드 위드 마돈나』에도 그들이 등장, 게이 퍼레이드와 게이들의 키스 장면이 담겼다. 1999년에는 MTV Video Music Awards에서 드래그 퀸들이 마돈나의 역대 코스튬을 입고 트리뷰트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제7회 게이 게임즈 (2006년)의 폐막식에서 레인보우 컬러 드레스를 입고 공연하는 신디 로퍼
제7회 게이 게임즈 (2006년)의 폐막식에서 레인보우 컬러 드레스를 입고 공연하는 신디 로퍼


신디 로퍼는 여성 해방 운동의 선구자로, 1983년 발매된 데뷔 앨범 『She's So Unusual』은 대표곡인 "Girls Just Want to Have Fun" 등이 가진 게이 프렌들리, 레즈비언 프렌들리한 강인함으로 많은 팬을 확보했다. 신디는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하는 태도는 1960년대에 자신이 자란 환경에서 비롯되었으며, "세상의 시각을 바꾸자"는 1960년대 음악의 결과라고 말한다. 신디는 "비방과 폭력에 맞서는 커뮤니티의 사람들... 게이 사람들을 제가 의식하게 되었기 때문에, 1970년대 초반에는 언니가 커밍아웃했었다"고 한다. 로퍼는 그 이후 게이 권리 옹호자로 나서 LGBT 사람들에 대한 지원과 권리 평등을 위한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최근에는 많은 연예인들이 새로운 세대의 게이 아이콘으로 거론되고 있다. 성적 지향성을 공개한 남성 중에서는 올리 알렉산더와 릴 나스 X가 새로운 세대의 아이콘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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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언급된 외에도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게이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다음은 그 예시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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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한국의 현대 게이 아이콘

엄정화는 돋보이는 성적 매력과 불가능한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하늘만 허락한 사랑〉, 〈Poison〉)로 게이 공동체의 지지를 받았다.

3.3. 스포츠계의 게이 아이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빌리 진 킹, 벤 코언, 데이비드 베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이 게이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톰 데일리는 성적 지향을 공개한 게이 아이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3.4. 정치계의 게이 아이콘

하비 밀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정치인이자, 미국 내에서 처음으로 커밍아웃하고 선출된 공직자였다. 그는 1978년 브리그스 주 상원 의원이 제정하려 했던 "조례 6"(교직에 있는 동성애자를 그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해고할 수 있다는 조례, en)의 폐지에 힘썼다. 그는 의원으로서 매우 짧은 기간에 암살되었기 때문에 게이의 지위 향상에 헌신한 인물로서 유명하며, LGBT 또는 성적 지향이 결정되지 않은 고등학생들을 위한 학교인 "en"에 이름을 남기는 등 좋은 롤 모델로 존경받고 있다. 그의 생애는 영화 『밀크』로 제작되었고, 주연을 맡은 숀 펜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인권 운동가 코레타 스콧 킹
인권 운동가 코레타 스콧 킹

코레타 스콧 킹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아내로, 시민권 운동의 성공이 LGBT 운동과 일치한다고 보았다. 그녀는 게이 권리 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말을 인용하여 "불의는 어디에 있든 모든 정의를 위협한다"고 말했다.
저는 레즈비언과 게이들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인종 평등에 관한 논점에서는 비판에 나서야 한다라는 목소리를 아직도 듣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불의는 어디에 있든 모든 정의를 위협한다"는 말을 떠올리곤 합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꿈꿨던 아이들이 같은 테이블에 모이는 자리에 레즈비언과 게이 아이들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코레타 스콧 킹, Metro Weekly


다이애나, 에이브러햄 링컨, 힐러리 클린턴, 에바 페론,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등도 게이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반동성애 운동가 애니타 브라이언트는 아이러니하게도 게이 아이콘이 된 예이다. 1970년대 브라이언트 등이 펼친 "Save Our Children" 캠페인은 동성애와 아동 학대를 억지로 연결시키며, 동성애는 당사자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가 끌어들여 동료를 늘린다는 주장을 격렬하게 펼쳤다. 그러나 브라이언트의 반동성애 활동은 오히려 게이 권리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3.5. 풍자적 게이 아이콘

일부 공포 영화 캐릭터(예: 마, 애나벨, 바바둑)들은 인터넷 밈을 통해 풍자적인 방식으로 게이 아이콘으로 칭송받기도 한다.

4. 게이 아이콘의 정의와 다양성

"게이 아이콘"이라는 명칭은 주로 게이 남성들이 문화적 아이콘으로 여기는 공인들에게 적용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다른 명칭들이 사용되기도 한다.

* 레즈비언 아이콘: 레즈비언들에게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인물을 말하며, "레즈비언"과 "아이콘"의 합성어인 다이콘(dykon)이라고도 불린다. 이 명칭은 부치 미학에 영향을 미친 제임스 딘이나 말론 브란도와 같은 남성들에게도 적용되었으며, 나타샤 리온과 케이트 블란쳇과 같이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퀴어 캐릭터를 연기한 다양한 여배우들에게도 적용되었다.
* 퀴어 아이콘: 역사학자 마크 너전트는 퀴어 아이콘을 "주류의 '퀴어'에 대한 구성을 자연스럽게 만들거나 도전하는 데 중요한 이념적 역할을 수행하는 비이성애적 표현"으로 정의한다.

5. 게이 아이콘에 대한 반응

많은 유명인들이 게이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일부는 게이 팬들의 지지에 감사를 표했다. 에르사 키트와 셰어는 경력이 흔들릴 때 게이 팬들의 덕을 봤다고 말했다.

마돈나는 여러 게이 관련 행사에서 공연했으며 성소수자(LGBT) 팬층의 영향을 인정하며 "게이 커뮤니티가 없었다면 저는 경력을 쌓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카일리 미노그는 자신을 게이 아이콘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시드니 게이 앤 레즈비언 마디 그라와 같은 행사에서 공연했다. 미노그는 자신에게 많은 게이 팬이 있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드리기는 항상 어렵습니다. 제 게이 팬들은 처음부터 저와 함께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받아들였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녀는 비극적인 인물로 여겨지는 많은 게이 아이콘들과 달리, "저는 비극적인 헤어스타일과 의상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것이 그걸 보상해주는 것 같아요!"라고 언급했다.

2016년 동성애 혐오 올랜도 공격 추모식에서 레이디 가가
2016년 동성애 혐오 올랜도 공격 추모식에서 레이디 가가


레이디 가가는 자신의 경력을 시작하고 지원해준 게이 팬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주류 음악계에서 시작했을 때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은 게이들이었습니다"라고 말했고, "게이 커뮤니티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게이 팬들에게 감사하기 위해 종종 게이 클럽에서 새 앨범을 데뷔시켰다. 그녀는 MuchMusic 비디오 어워드 수상과 알레한드로 뮤직 비디오를 게이들에게 헌정했으며, 노래, 공연, 뮤직 비디오뿐만 아니라 메이크업 라인의 비주얼에서도 다양한 퀴어 집단에 자리를 내주었다. 레이디 가가는 성소수자(LGBT) 운동가로 알려져 있으며, 프라이드와 스톤월 데이와 같은 수많은 성소수자(LGBT) 행사에 참석했다.

마돈나는 경력 전반에 걸쳐 자신의 게이 팬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며, 노래나 공연에서 게이 커뮤니티에 대한 여러 언급을 했고, 여러 게이 클럽에서 공연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들 중 일부가 게이이며 게이들을 숭배하고 자신을 "역대 최고의 게이 아이콘"이라고 칭한다고 밝혔다. 1990년대 초 텔레비전 인터뷰에서는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동성애 혐오"라고 말했다.

게리 할리웰은 솔로 아티스트이자 스파이스 걸스 멤버로서 게이 아이콘으로서의 지위를 일관되게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며, 게이 커뮤니티와의 "유대감"과 자신의 성소수자(LGBTQ) 팬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묘사했다.

2020년 8월, 레아 살롱가는 자신의 게이 아이콘 태그에 대해 "사실 제가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그녀는 "제가 게이 권리를 옹호해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성소수자(LGBT) 커뮤니티의 구성원인 형제자매, 사촌이 있어서 그런 건가요?"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또한 뮤지컬 극장에 성소수자(LGBT)가 존재함을 인정했으며, 경력 전체 동안 성소수자(LGBT) 커뮤니티의 구성원들과 긴밀히 협력해 왔다고 말했다. 2022년 9월, 예쁜 거짓말쟁이: 오리지널 신에서 퀴어 엄마 역할을 맡은 후, 그녀는 "이 역할에 정말 공감하고 이 캐릭터들을 보면서 '아, 저건 나인데, 나는 놀림받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훌륭합니다."라고 말했다.

6. 비판적 시각

일각에서는 '게이 아이콘'이라는 용어가 본래의 의미를 잃고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가디언》의 폴 플린은 "게이 아이콘의 개념은 할인표와 다름이 없으며, 게이 아이콘화의 개념 자체는 강인함과 독특함, 개성있는 외양을 수반하는 능력과 인기의 개념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작가 마이클 토마스 포드 또한 자신의 소설 《마지막 여름》(Last Summer)을 통해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7. 한국 사회와 게이 아이콘

주어진 요약 및 원문 소스와 이전 단계의 응답을 검토한 결과, 현재 단계에서 '한국 사회와 게이 아이콘' 섹션에 대한 내용을 작성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원문 소스는 일본의 게이 아이콘에 대한 내용만 다루고 있으며, 한국 사회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전 단계의 응답과 동일하게, 주어진 정보로는 해당 섹션을 작성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