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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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바스티아누스는 3세기 로마 제국 군인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후 박해받다 순교한 인물이다. 갈리아 출신으로 밀라노에서 군 복무를 했으며, 기독교인들을 돕다 발각되어 화살형에 처해졌으나 살아남았다. 이후 다시 황제 앞에서 신앙을 증언하다 몽둥이로 맞아 죽임을 당했다. 흑사병의 수호성인으로 숭배받으며, 예술 작품과 문학 작품에서 순교자, 동성애적 상징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 축일로 기념하며, 군인, 흑사병, 운동선수, 특정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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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티아누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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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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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세바스티아누스 |
라틴어 이름 | Sebastianus |
출생 | 기원후 255년경 |
출생지 | 나르본, 갈리아 나르보넨시스, 로마 제국 |
사망 | 기원후 288년경 (약 32세) |
사망지 | 로마, 이탈리아, 로마 제국 |
기념일 | 1월 20일 (로마 가톨릭, 오리엔트 정교회) 12월 18일 (동방 정교회) 2월 14/15일 (에티오피아 정교회) |
속성 | 기둥, 말뚝 또는 나무에 묶여 화살에 맞은 모습 |
수호 성인 | 군인 흑사병 환자 양궁 선수 장애인 운동선수 사이클 선수 네곰보, 스리랑카 리파 대교구 타를라크 교구 바콜로드 교구 치아파데코르소, 믹스틀란, 멕시코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룸반, 라구나, 필리핀 보르본, 세부, 필리핀 푸칼파, 페루 타콰리칭가, 브라질 히베이랑프레투, 브라질 죄르, 헝가리 쿠스코, 페루 로하, 에콰도르 로마, 이탈리아 |
숭배 | 가톨릭 교회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고 가톨릭교회 |
주요 성지 | 산 세바스티아노 푸오리 레 무라, 이탈리아 |
직업 및 역할 | |
직업 | 근위대 대장 로마 군인 치료사 순교자 |
2. 생애
세바스티아누스는 신앙을 신중하게 숨겼지만, 286년에 발각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그를 배신자라고 비난하며, 들판으로 끌고 가 말뚝에 묶고 마우리타니아 출신 궁수들에게 화살을 쏘도록 명령했다. "궁수들은 그가 고슴도치가 가시로 가득 찬 것처럼 화살로 가득 찰 때까지 그에게 쏘았고, 그를 죽은 채로 남겨두었다."[15]
이후 세바스티아누스는 황제가 지나갈 계단 옆에 서서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 기독교인에 대한 잔혹 행위를 꾸짖었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의 발언에 황제는 크게 놀랐지만, 곧 세바스티아누스를 붙잡아 곤봉으로 때려 죽이고 그의 시신을 하수구에 버리라고 명령했다.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암브로시우스가 처음으로 기록했다.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세바스티아누스가 밀라노 출신이라고 언급하며, 그가 이미 4세기에 성인으로 추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야코부스 데 보라기네의 『황금 전설』에 따르면, 세바스티아누스는 흑사병으로부터 신자를 보호한다고 전해진다. 굼베르토 왕 시대에 롬바르드족이 흑사병 대유행으로 휩싸였을 때, 파비아 지방에 있는 성 베드로 교회에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제단을 세우자 유행이 멈췄다고 한다.[63]
2. 1. 초기 생애
세바스티아누스는 갈리아 출신의 로마 제국 군인으로 나르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밀라노에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군인이 되었다.[1]기독교로 개종한 후 그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감옥에 갇힌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도왔다.
세바스티아누스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최초의 현존하는 기록은 ''Passio Sancti Sebastiani''인데, 오랫동안 4세기에 암브로시우스가 쓴 것으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알려지지 않은 저자가 쓴 5세기 기록으로 간주된다.[7]

14세기의 ''황금 전설''에 따르면, 그는 갈리아 나르보넨시스 출신으로 메디올라눔(밀라노)에서 교육을 받았다. 283년, 세바스티아누스는 순교자를 돕기 위해 황제 카리누스 아래 로마 군대에 입대했다. 그의 용기 덕분에 그는 기독교인임을 알지 못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 아래 프라이토리아 근위대의 대장이 되었다.[1]
전설에 따르면, 마르쿠스와 마르첼리아누스는 명문가 출신의 쌍둥이 형제였으며 부제였다. 두 형제는 로마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을 거부하고 체포되었으며, 감옥에서 부모인 트란퀼리누스와 마르티아의 방문을 받고 기독교를 포기하도록 설득받았다. 세바스티아누스는 트란퀼리누스와 마르티아뿐만 아니라 지역 치안판사인 크로마티우스의 아들인 티부르티우스를 개종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 다른 관리인 니코스트라투스와 그의 아내 조에 또한 개종했다. 조에는 6년 동안 벙어리였다고 전해지나, 세바스티아누스에게 기독교로 개종하고 싶다는 소망을 알리자 즉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니코스트라투스는 나머지 죄수들을 데려왔고, 이 16명은 세바스티아누스에 의해 개종되었다.[9]
크로마티우스와 티부르티우스가 개종했고, 크로마티우스는 감옥에서 모든 죄수를 석방하고, 직책을 사임하고 캄파니아의 시골로 은퇴했다. 마르쿠스와 마르첼리아누스는 카스툴루스라는 기독교인에게 숨겨진 후 나중에 순교했고, 니코스트라투스, 조에, 티부르티우스도 순교했다.[10]
2. 2. 기독교 개종과 활동
세바스티아누스는 갈리아 출신의 로마 제국 군인으로 나르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밀라노에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군인이 되었다. 기독교로 개종한 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감옥에 갇힌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도왔다.[1]전설에 따르면, 마르쿠스와 마르첼리아누스는 명문가 출신의 쌍둥이 형제이자 부제였다. 두 형제는 로마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을 거부하여 체포되었는데, 세바스티아누스는 이들을 비롯하여 지역 치안판사인 크로마티우스의 아들 티부르티우스, 또 다른 관리인 니코스트라투스와 그의 아내 조에 등을 개종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조에는 6년 동안 벙어리였으나, 세바스티아누스에게 기독교로 개종하고 싶다는 소망을 알리자 즉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9]
이후 크로마티우스와 티부르티우스도 개종했고, 크로마티우스는 감옥의 모든 죄수를 석방하고 직책을 사임한 뒤 캄파니아의 시골로 은퇴했다. 마르쿠스와 마르첼리아누스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순교했다.[10]
2. 3. 순교
세바스티아누스는 갈리아 출신의 로마 제국 군인이었다. 기독교로 개종한 후, 감옥에 갇힌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도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사형을 명했다. 세바스티아누스는 기둥에 묶여 화살을 맞고 죽도록 버려졌으나, 로마의 이레네가 그를 발견하여 치료해주었다. 기적적으로 화살은 그를 죽이지 못했고, 이레네는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건강을 회복시켰다.[1]이후 세바스티아누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앞에 다시 서서 기독교 박해를 호되게 꾸짖었다. 황제는 그를 몽둥이로 쳐서 죽이라고 명령했으며, 그의 시신은 로마의 하수구에 던져졌다.[10][1] 루치나라는 성스러운 부인은 환상 속에서 순교자에게 훈계를 받아 시신을 몰래 치워 칼리스토 카타콤의 입구(현재 산 세바스티아노 푸오리 레 무라)에 묻었다.[10][1]

3. 유해와 숭배
세바스티아누스의 유해로 여겨지는 것은 로마에 있는 ''바실리카 아포스톨로룸''에 안치되어 있는데, 이 교회는 367년 교황 다마소 1세가 성 베드로와 사도 바울의 임시 무덤 부지에 건설했다. 오늘날 산 세바스티아노 푸오리 레 무라라고 불리는 이 교회는 시피오네 보르게세의 후원으로 1610년대에 재건되었다.[10]
아도, 에기나르, 시게베르트 및 다른 동시대 작가들은 경건왕 루이 치세에 교황 에우제니오 2세가 세바스티아누스의 시신을 생 드니의 수도원장 힐두인에게 주었고, 그는 그것을 프랑스 왕국으로 가져와 826년 12월 8일에 수아송의 생 메다르 수도원에 안치했다고 전한다.[10]
세바스티아누스의 두개골은 934년에 에버스베르크 (독일) 마을로 옮겨졌다. 그곳에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세워졌고, 남부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16] 은으로 덮인 두개골은 성 세바스티아누스 축제 기간 동안 신자들에게 성체의 축성된 포도주를 제공하는 컵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17]
성 유물은 현재 로마의 바실리카 내에 있다고 주장되고 있다(367년에 교황 다마소 1세가 세운 바실리카 아포스톨룸). 이곳은 성 베드로와 성 바울로의 임시 무덤이 있던 곳이다. 이 교회는 현재 산 세바스티아노 푸오리 레 무라 성당이라고 불린다(1610년대에 시피오네 보르게세의 후원으로 재건되었다).
4. 흑사병의 수호성인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페스트 방어자라는 믿음은 중세 시대에 그의 명성에 추가되었으며, 이는 후기 중세 시대에 그가 크게 중요해진 주된 이유이다.[19] 화살 맞은 순교자와 페스트의 연관성은 직관적이지 않지만, 세바스티아누스가 "첫 번째 순교"(또는 "사기타티오")에서 회복한 사례는 화살 상처가 림프절 비대인 선페스트 증상과 유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련이 있었다. 몰라누스는 "화살 상처는 우리에게 자비를 구하고, 병의 증상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연민을 구한다"고 말했다.[20]
연대기 작가 파울루스 디아코누스는 680년에 로마가 역병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전한다. ''황금전설''은 룸바르드족이 구룸베르트 왕 시대에 겪었던 대역병에 대한 에피소드를 전하는데, 이는 파비아 지방의 성 베드로 교회에 세바스티아누스를 기리는 제단을 세움으로써 멈추었다.
가톨릭에서는 1월 20일, 정교회에서는 12월 18일이 공휴일이다. 군인, 흑사병, 경기 선수의 수호 성인이다. (페스트의 검은 반점이 화살에 꽂힌 자국과 비슷하여, 화살에 꿰뚫려도 죽지 않았던 세바스티아누스를 본받아 숭배하게 되었다[65]). 카세르타, 팔마 데 마요르카, 산 세바스티안, 리우데자네이루의 수호 성인이며, 19세기 말부터 동성애의 수호 성인이 되었다.[65]
5. 예술과 문학에서의 묘사
세바스티아누스는 중세부터 현대까지 예술과 문학에서 자주 다뤄진 인물이다. 특히 흑사병 이후 역병 희생자와 군인의 수호성인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초기에는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대성당과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의 모자이크처럼 종교적인 맥락에서 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부터는 화살에 꿰뚫린 반나체의 젊은 남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는 보티첼리, 페루지노, 티치아노, 만테냐, 귀도 레니, 엘 그레코 등 많은 예술가들에게 매력적인 주제였기 때문이다.
17세기에는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돌보는 성 이레네라는 주제가 유행했는데, 이는 교회가 단일 누드 묘사를 꺼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르주 드 라 투르, 호세 데 리베라 등이 이 주제를 그렸다.
문학 작품에서도 세바스티아누스는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가브리엘레 다눈치오와 클로드 드뷔시는 음악극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를 만들었으며, 토마스 만은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세바스티아누스를 아폴론과 같은 영원한 젊음의 상징으로 묘사했다. 미시마 유키오는 귀도 레니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세바스티아누스와 같은 포즈를 취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 외에도 에곤 실레는 자화상에 세바스티아누스를 비유했으며, 살바도르 달리 역시 세바스티아누스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렸다. 또한, 파비올라, 세바스티아네, 캐리 ,[https://www.imdb.com/title/tt0284296/ Das Martyrium des heiligen Sebastian] ,웃는 창이 있는 집, 밀레니엄, 용서해주세요 ,블라스페머스등 영화, 음악, 드라마, 비디오 게임 등 다양한 현대 예술 작품에서도 세바스티아누스는 중요한 모티프로 활용되고 있다. 무하마드 알리는 1968년 4월호 ''에스콰이어 매거진''에서 화살에 꿰뚫린 묶인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도상학으로 묘사되었다. 이 이미지는 사진 작가 조지 로이스와 아트 디렉터 칼 피셔가 만들었다.
5. 1. 예술
세바스티아누스는 중세 후기, 특히 흑사병 이후 후기 고딕과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가들이 가장 많이 묘사한 성인 중 한 명이었다.[26] 역병 희생자와 군인의 수호성인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반나체의 젊은 남성이 굴곡진 자세를 취하는 모습은 예술가들에게 매력적인 주제였다.[27]초기 묘사로는 527년에서 565년 사이에 제작된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대성당 (라벤나)의 모자이크가 있다.[22] 이 모자이크는 성 마르티노를 선두로 한 26명의 순교자 행렬에 세바스티아누스를 포함시키고 있으며, 비잔틴 양식으로 개성 없이 동일한 표정으로 묘사되어 있다. 682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의 모자이크는 법복을 입은 키 크고 수염이 있는 남성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화살은 나타나지 않는다.[23]
궁수와 화살은 1000년경부터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곤봉으로 죽임을 당하는 장면보다 화살에 맞는 장면이 더 흔하게 묘사되어, 대중들에게 그가 곤봉으로 죽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24] 1430년대 놀이 카드의 거장은 화살에 맞은 세바스티아누스를 주제로 판화를 제작했는데, 이는 당시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남성 누드를 다룬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였다.
보티첼리, 페루지노, 티치아노, 폴라이우올로, 조반니 벨리니, 귀도 레니 (7번), 만테냐 (3번), 한스 멤링, 헤릿 판 혼토르스트, 루카 시뇨렐리, 엘 그레코, 오노레 도미에, 존 싱어 사전트, 루이즈 부르주아 등 많은 예술가들이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그렸다.[27] 잔 로렌초 베르니니는 초기 작품으로 성 세바스티아누스 조각상을 제작했다.
성인은 일반적으로 화살에 꿰뚫린 잘생긴 청년으로 묘사되며, 프레델라 장면에는 그의 체포, 황제와의 대결, 참수 장면이 종종 묘사되었다. 일 소도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 (피티 궁전 소장)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한스 홀바인 (아버지)는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 있는 성 세바스티아누스 조각상을 "은과 부분 도금"으로 제작했다.[28]
17세기에는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돌보는 성 이레네가 조르주 드 라 투르, 트로핌 비고 (4번), 호세 데 리베라, 헨드릭 테르 브루겐 등에 의해 자주 그려졌다.[30] 이는 단일 누드 주제에서 벗어나려는 교회의 의도적인 시도였을 수 있으며,[31] 바로크 예술가들은 촛불, 횃불, 랜턴 등으로 밝혀진 야간 키아로스쿠로 장면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었다. 피에트로 파올로 바스타는 산 세바스티아노 성당 (시칠리아)에 세바스티아누스의 생애를 묘사한 프레스코 연작을 남겼다.[32]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예술가 에곤 실레는 1915년에 성 세바스티아누스로서의 자화상을 그렸다.[33]
토마스 만의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세바스티아누스 상은 아폴론과 같은 영원한 젊음을 상징한다.
미시마 유키오는 귀도 레니가 그린 세바스티아누스 순교도에 영감을 받아 시노야마 키신에게 같은 포즈의 사진을 촬영하게 했으며,[64] 사후 요코오 타다노리가 이 사진과 동일한 구도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미시마는 안드레아 만테냐가 그린 성 세바스티아누스 그림의 포즈를 취한 자신의 등신대 브론즈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5. 2. 문학
- 흑사병으로부터의 수호, 그리고 병사의 수호 성인으로서 중세에 인기를 얻어 자연스럽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후기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화가들이 가장 많이 그린 그림이다. 반나체의 모습으로 몸을 비트는 포즈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수보다도 젊은 반나체의 남성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 성인이다. 소도마, 산드로 보티첼리, 안드레아 만테냐, 페루지노, 엘 그레코, 귀도 레니, 헤라르트 판 혼트호르스트, 잔 로렌초 베르니니 등이 그렸다. 건축물로는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의 모자이크,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이 있다.
-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주로 '성 세바스티아누스와 성 이르네'라는 구도가 그려졌다. 조르주 드 라 투르, 호세 데 리베라, 헨드릭 테르 부르겐 등이 이 구도를 그렸다. 이는 교회가 반나체 젊은이상을 단독으로 장식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 1911년, 이탈리아 극작가 가브리엘레 다눈치오는 클로드 드뷔시와 함께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를 제작했다.
- 가브리엘레 다눈치오 원작, 클로드 드뷔시 작곡의 음악극 『성 세바스티안의 순교』 초연 당시 유대인 여성 이다 루빈슈타인이 주역을 맡았다. 이에 격노한 파리 대주교가 가톨릭 신도들에게 관람 금지령을 내리고 로마 교황청이 다눈치오의 전 작품을 금서 목록에 올리는 등 스캔들로 발전했다.
- 미국 작곡가 잔 카를로 메노티는 발레 뤼스의 프로덕션을 위한 발레 악보를 작곡했으며, 이는 1944년에 처음 공연되었다.
- 토마스 만은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세바스티안-인물"을 아폴론적 아름다움, 즉 분화된 형태의 예술성, 즉 규율, 비례, 빛나는 구별로 측정되는 아름다움의 최고의 상징으로 칭송했다.
- 소설의 주인공 구스타프 아센바흐의 작가적 전문성과 연관된 세바스티아누스의 고통에 대한 이러한 암시는 단순한 인내와 수동성을 넘어 스타일화된 성취와 예술적 승리로서 고통스러운 고뇌와 운명을 명백히 받아들이는 가운데 균형을 유지하는 "약점에서 비롯된 영웅주의"의 모델을 제공한다.[34]
- 토마스 만의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는 세바스티아누스의 상이 그리스 신화의 아폴론과 같은 영원한 젊음을 나타내는 지고의 상징이 되고 있다.
- 세바스티아누스의 죽음은 1949년 영화 ''파비올라''에서 묘사되었으며, 마시모 지로티가 연기했다.[35]
- 1976년, 영국 감독 데릭 저먼은 영화 ''세바스티아네''를 제작했는데, 이 영화는 르네상스 이후 이미지에서 감지할 수 있는 하위 텍스트를 반영하는 많은 비평가들에 따르면 순교자를 "동성애 아이콘"으로 다루어 논란을 일으켰다.[36]
- 같은 해, 미국 공포 영화 ''캐리''에서 성 세바스티아누스 (일반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오해됨)의 모습이 캐리의 기도실에 나타난다.[37]
- 고립된 이탈리아 마을에서 프레스코 복원된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묘사는 1976년 지알로 공포 영화 ''웃는 창이 있는 집''의 중심 모티프이자 수수께끼이다.[38]
- 1965년 단편 "모든 것은 수렴해야 한다"에서 플래너리 오코너의 등장인물 줄리안은 어머니를 Y의 "감량" 수업에 데려다주면서 자신이 순교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 1984년에는 터미네이터 스타 마이클 빈이 출연한 [https://www.imdb.com/title/tt0284296/ Das Martyrium des heiligen Sebastian]이라는 영화 각색본이 있었다.
- 1997년, 텔레비전 시리즈 ''밀레니엄'' 두 번째 시즌의 여덟 번째 에피소드에서 주인공들은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손을 찾는다.[39]
- 2007년,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는 자신의 자연사 시리즈에서 성 세바스티아누스, 정교한 고통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포름알데히드에 묶인 소를 금속 케이블로 묶고 화살을 쏘는 모습을 묘사한다.[40]
- 영국 팝 밴드 알트-J의 "Hunger of the Pine" 뮤직비디오는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노래 가사에 맞춰 각색하여 담고 있다.
- 타르셈 싱의 R.E.M. 노래 "Losing My Religion" 뮤직비디오는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귀도 레니[41]와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특히 영감을 얻었다.[42]
- 인디 포크 밴드 더 마운틴 고츠는 그의 삶을 언급하는 "Hail, St. Sebastian"이라는 노래를 가지고 있다.[43]
- 스코틀랜드 음악가 모머스는 1986년 데뷔 앨범 ''서커스 맥시무스''에 수록된 "Lucky like St Sebastian"이라는 노래를 가지고 있다.
- 마돈나의 2012년 앨범 ''MDNA''에 수록된 "I'm a Sinner"는 "성 세바스티아누스, 울지 마세요; 독화살을 날리세요."라는 가사가 있다.
- 2013~2018년 캐나다 드라마 시리즈 ''용서해주세요''는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반복적인 환상에 시달리는 신부를 중심으로 한다.[44]
- 인기 액션 플랫폼 비디오 게임 ''블라스페머스''의 캐릭터 제미노의 모습은 성 세바스티아누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45]
-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 "영혼의 집"의 델 발레 가족은 성 세바스티아누스 교회의 일요 미사에 참석한다.
- 에곤 실레는 자신을 세바스티아누스에 비유한 자화상을 1915년에 그렸다.
- 살바도르 달리는 로르카 시대에 여러 번 세바스티아누스를 소재로 선택하여 그렸다.
-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가면의 고백』 속에서 주인공은 귀도 레니가 그린 세바스찬(세바스티아누스) 순교도를 보고 성적 흥분 및 문학적 감흥을 느낀다. 이후 미시마는 자신이 이 구도와 똑같은 포즈를 취한 사진을 시노야마 키신에게 촬영하게 했다[64]。미시마의 사후, 이 사진과 동일한 구도의 미시마의 초상을 친교가 있던 요코오 타다노리가 제작했다.
- 미시마는 생전에 몰래 자신만의 묘를 확보하고 그곳에 만테냐가 그린 성 세바스티아누스 그림의 포즈를 취한 자신의 등신대 브론즈상을 제작했다(니시 노리타로, 「미시마 유키오 : 수수께끼의 나체상 : 성 세바스티안의 포즈에 담긴 것」『표현자』2017년 3월, 5월, 7월).
- 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1968년 4월호 ''에스콰이어 매거진''에서 화살에 꿰뚫린 묶인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도상학으로 묘사되었다. 이 이미지는 사진 작가 조지 로이스와 아트 디렉터 칼 피셔가 만들었다.
6. 수호성인
가톨릭 교회에서 세바스티아누스는 1월 20일에 선택 기념일로 기념된다.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세바스티아누스의 축일이 12월 18일이다.[46]
세바스티아누스는 흑사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존재였으며, 이전에는 14 성인 조력자 중 한 명이었다. 가톨릭에서 세바스티아누스는 궁수, 핀 제조업자, 운동선수(현대의 연관성), 거룩한 죽음의 수호성인이다.[46]
몰타의 코르미 시, 이탈리아의 아치레알레, 카세르타, 페틸리아 폴리카스트로, 시칠리아의 멜릴리, 스페인의 산 세바스티안, 팔마 데 마요르카, 루브린, 우엘바, 스리랑카의 네곰보,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의 수호성인이다. 비공식적으로, 아프로 브라질 혼합 종교인 움반다의 전통에서 세바스티아누스는 종종 특히 리우데자네이루 주에서 옥시시와 연관된다.[34],[47]
루브린에서는 매년 1월 20일에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성 세바스티아누스 조각상이 마을 주변을 행진하며, 사람들은 발코니에서 아래 거리에 있는 군중들에게 빵 롤을 던진다. 롤에는 구멍이 뚫려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것들을 몸에 밧줄로 묶는다. 이 축제는 콜레라가 이 지역을 강타한 후 14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당시에 부유한 사람들은 질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아래 거리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과 돈을 던졌다고 한다.[48] 산 세바스티안 '빵 축제'는 매우 특이해서 안달루시아에서 국가 관광 유치 축제로 지정되었다.[49]
이 이름을 가진 유일한 왕인 포르투갈의 세바스티앙 1세는 이 성인의 축일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성 세바스티아누스 축일은 인도의 케랄라의 가톨릭 공동체에서 기념된다. 교회는 조명과 장식으로 꾸며지며, 불꽃놀이는 성인을 기념하기 위한 가톨릭 가정의 주요 행사이다.[50] 각 교구는 자체 축하 날짜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트리수르, 에르나쿨람, 아르툰칼 성 안드레아 대성당, 코타얌 지역에서 그러하다. 칸주르 시로 말라바르 교회에서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금 십자가와 장식된 우산 행렬로 축제가 열린다.[50] 이 외에도, 케랄라 전역의 많은 순례 센터, 교회, 성지, 그리고 많은 교육 기관들도 성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그는 필리핀 마닐라의 산 세바스티안 대학교 – 레콜레토스의 수호성인이며, 필리핀과 아시아에서 아우구스티누스 레콜렉트 수도회(OAR)에서 운영하는 철제 교회인 산 세바스티안 소성당과 인접해 있다. 로체스터 대학교의 가톨릭 뉴먼 커뮤니티에서, 성 세바스티안 협회는 뉴욕주 로체스터 지역 사회 봉사,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기금 모금, 지역 사회 봉사 활동을 통해 활동하는 캠퍼스 전체의 기독교 운동선수 단체이다.[51]
필리핀 네그로스 옥시덴탈의 바콜로드 로마 가톨릭 교구와 필리핀 바탕가스의 리파 시의 수호성인이다. 또한 멕시코 레온 시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순교하는 성인의 모습이 도시 문장의 왼쪽 상단에 나타난다.
캘리포니아주 샌호세 로마 가톨릭 교구의 컬럼버스 기사단 협의회 #4926의 수호성인으로, 마운틴 뷰와 로스 알토스 시를 섬기고 있다. 세바스티아누스는 미국의 가톨릭 전쟁 참전 용사의 수호성인이다. CWV가 수여하는 최고 상은 성 세바스티아누스 기사단의 명예 군단이다.
1906년 그의 회고록에서, 칼 슈르츠는 거의 모든 성인의 성인 협회인 성 세바스티아누스 협회가 후원하는 라인 지역 리블라르(de)의 연례 "조류 사격" 페이지를 회상한다.[52]
미국 플로리다 주의 세인트 세바스티안 강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 강은 인디안 리버 석호의 지류이며 인디안 리버 카운티와 브레바드 카운티 사이의 경계의 일부를 구성한다. 인접 도시인 플로리다주 세바스티안과 세인트 세바스티안 강 보호구역 주립 공원 역시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다.[53] 센트럴 플로리다 교구 내의 멜버른 해변의 인근 성공회 교회는 세인트 세바스티안-바이-더-시로 명명되었다.
가톨릭에서는 1월 20일, 정교회에서는 12월 18일이 축일이다. 군인, 흑사병, 경기 선수의 수호 성인이다. (Pestisla의 검은 반점이 화살에 꽂힌 자국과 비슷하기 때문에, 화살에 꿰뚫려도 죽지 않았던 세바스티아누스를 본받아 숭배하게 되었다[65]). 카세르타, 팔마데마요르카, 산세바스티안, 리우데자네이루의 수호 성인이며, 동성애의 수호 성인이기도 하다(19세기 말부터).[65]
7. 동성애의 상징
1996년, 미국 작가 리처드 A. 카예는 "현대의 게이 남성들은 세바스티아누스에게 동성애적 욕망에 대한 놀라운 광고(실제로 호모에로틱 이상)이자 고문받는 숨겨진 케이스의 전형적인 초상화를 동시에 보았다"고 썼다.[54][55]
세바스티아누스를 묘사한 일부 종교적 이미지는 LGBT 커뮤니티에 의해 채택되었다.[56] 그의 강인하고 상반신이 노출된 체격, 그의 몸을 관통하는 화살의 상징성, 그리고 황홀한 고통의 표정은 수세기 동안 (게이든 아니든) 예술가들의 흥미를 끌었다.[56]
오스카 와일드는 제노바의 팔라초 로쏘 컬렉션에 있는 귀도 레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매우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파리에 망명하는 동안 세바스티안 멜모스라는 가명을 사용하기도 했다.[57]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와 같은 다른 동성애 시인 및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성 세바스티아누스 이미지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했다.[58]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가면의 고백》에서 주인공 코찬은 귀도 레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 복제본을 보면서 첫 번째 동성애 경험을 한다. 코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히르쉬펠트가 '성 세바스티아누스 그림'을 역자가 특별히 기뻐하는 예술 작품의 첫 번째 순위에 둔 것은 흥미로운 우연의 일치이다.de
이는 마그누스 히르쉬펠트가 게이 남성이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포함한 특정 예술적 주제에 대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언급한 것이다.[59] 세바스티아누스는 역사상 가장 초기의 게이 아이콘 중 하나이며,[66] 세바스티아누스 자신이 게이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에서 비롯되어,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 속에서 상징으로 사용해 왔다. 오스카 와일드, 미시마 유키오, 테네시 윌리엄스 등이 작품에서 언급했다. 게이임을 공언했던 데릭 저먼은 영화 『세바스찬』(1975년)에서 세바스티아누스의 생애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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