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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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수(高壽)는 백제 시대에 활동한 인물로, 한성식 이름과 낙랑군·대방군 출신이라는 점을 통해 한인 호족, 즉 낙랑 고씨로 추정된다. 백제는 고유어 성씨를 사용했으며, 고수 외 고흥, 고분옥 등도 한인 계통으로 보인다. 고수는 백제의 필요에 의해 귀화했으며, 왕의 경호와 관제 정비에 기여한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와 대방군은 혼인 관계를 맺는 등 우호적인 관계였으며, 고수의 등용은 국왕의 역할 증대와 신체제 도입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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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수 (백제)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한글 | 고수 |
| 한자 | 高壽 |
| 인물 정보 | |
| 직책 | 위사좌평 |
| 재임 기간 | 대수: 1 군주: 백제 고이왕 |
| 출생 정보 | 출생일: 미상 출생지: 미상 |
| 사망 정보 | 사망일: 미상 사망지: 미상 |
| 기타 정보 | |
| 국적 | 백제 |
2. 백제 이전 고씨
백제의 성씨는 기원전 2세기 이후의 예나 8세기 이후의 통일 신라처럼 중국식 성명으로 바꾸지 않고 고유어 이름을 계속 사용했다.[2] 고수(高壽)는 한자식 이름을 가진 중국인 이름이다.
조선 고대사학자 정재윤은 고수가 백제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대방군 출신이며, 백제와 대방군이 우호 관계에 있었다고 보았다. 백제 책계왕의 부인 보과부인은 대방 태수의 딸로서 한인이었고, 대방군과 백제 왕실은 혼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또한 고구려가 대방군을 공격했을 때 책계왕이 대방군을 구원하는 등 백제와 대방군은 우호적인 관계였다. 정재윤은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고수가 대방군에서 초빙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초빙된 인물이라면 일정 기간 후 대방군으로 돌아갔어야 하는데 국왕의 경호를 맡는 중책을 맡았다는 점에서 의문을 제기했다.[6] 그는 고수가 백제에 필요한 인재였기 때문에 귀화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백제가 고수를 등용한 것은 국왕의 역할 증대에 따른 경호 강화와 새로운 체제(좌평과 15등급으로 구성된 관제 정비) 도입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고이왕 때 정비된 것으로 보이는 좌평과 15등급 관제에는 고수와 같은 중국계 인사의 참여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6]
2. 1. 낙랑군과 대방군의 고씨
한나라 무제가 기원전 108년에 한반도에 설치한 식민지인 낙랑군·대방군에서 세력을 떨친 한인 호족 낙랑 고씨로 보인다.[3][4]게이타이 천황 10년(516년) 왜국에 파견된 백제의 오경 박사에 한고안무가 있었다. "한고안무"의 "한"은 "고안무"가 한인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고안무가 한인이라면 고수, 고흥, 고분옥 등도 마찬가지로 보인다.[5] 북한에 있는 낙랑 고분군의 오야리 제21호분에서 출토된 칠기 명문에는 "고효통"이라고 적혀 있으며, 평양 정백동 고분군 2호분에서는 "고상현인"이라고 각인된 은인이 출토되어 고씨의 출자(出自)가 한나라 무제가 기원전 108년에 한반도에 설치한 식민지인 낙랑군·대방군에 있음을 나타내는 자료이다.[5]
3. 백제 시대의 고씨
고수는 대방군 출신으로, 백제와 대방군은 우호적인 관계였다.[6] 책계왕의 부인 보과부인은 대방 태수의 딸이었으며, 고구려가 대방군을 공격했을 때 책계왕이 대방군을 구원하기도 했다.[6]
조선 고대사학자 정재윤은 고수가 대방군에서 초빙된 인물이 아니라 백제의 필요에 의해 귀화한 인물로 보았다.[6] 초빙된 인물이라면 일정 기간 후 대방군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국왕 경호 책임자라는 중책을 외부인에게 맡기는 것은 의문이라는 것이다.[6]
3. 1. 백제와 대방군의 관계
백제 책계왕의 부인 보과부인은 대방군 태수의 딸이었으며, 이를 통해 백제와 대방군은 혼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6] 고구려가 대방군을 공격했을 때 책계왕이 대방군을 구원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백제와 대방군은 우호적인 관계였다.[6]3. 2. 고수의 백제 귀화 배경
조선 고대사학자 정재윤은 고수가 대방군에서 초빙된 인물이 아니라 백제의 필요에 의해 귀화한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6] 고수는 백제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대방군 출신이며, 백제와 대방군은 우호적인 관계였다.[6] 백제 책계왕의 부인인 보과부인은 대방 태수의 딸로, 양국은 혼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6] 또한 고구려가 대방군을 공격했을 때 책계왕이 대방군을 구원하는 등, 백제와 대방군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6]하지만 정재윤은 고수가 초빙된 인물이라면 일정 기간 후 대방군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국왕 경호 책임자라는 중책을 외부인에게 맡기는 것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6] 대신 백제에게 고수는 필요한 인재였고, 그러한 필요성에 의해 백제에 귀화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6]
정재윤은 백제가 고수를 등용한 것은 국왕의 역할 증대에 따른 경호 필요성과 새로운 체제 (좌평과 15등급으로 구성된 관제 정비) 도입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6] 고이왕 때 정비된 것으로 보이는 좌평과 15등급 관제 정비에는 고수와 같은 중국계 인사의 참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6]
3. 3. 백제의 관제 정비와 고수의 역할
정재윤은 고이왕 때 정비된 것으로 여겨지는 좌평과 15등급 관제에 고수와 같은 중국계 인사의 관여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6] 백제가 고수를 등용한 것은 국왕의 역할이 증대됨에 따른 경호 강화와 신체제(좌평과 15등급으로 이루어진 관제 정비) 도입과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6] 고수는 백제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대방군 출신으로, 백제와 대방군의 우호 관계에 의해 초빙되었다는 견해도 있지만, 정재윤은 고수가 초빙된 인물이라면 일정 기간 후 대방군으로 귀국했어야 하므로 국왕 경호 책임자라는 중책을 맡기기에는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6] 따라서 고수는 백제에 필요한 인재였기 때문에 귀화한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고수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참조
[1]
뉴스
고수(高壽)
http://encykorea.aks[...]
韓国民族文化大百科事典
[2]
서적
「高句麗地名」中の倭語と韓語
専修大学学会
2019-11-30
[3]
뉴스
한국 고대사회 外來人의 존재양태와 사회적 역할
https://cms.dankook.[...]
檀國大學東洋學硏究院
2017-07
[4]
서적
4~5세기 百濟의 中國系 流移民의 수용과 太守號
延世大學國學硏究院
2015-12
[5]
뉴스
한국 고대사회 外來人의 존재양태와 사회적 역할
https://cms.dankook.[...]
檀國大學東洋學硏究院
2017-07
[6]
서적
중국계 백제관료에 대한 고찰
高麗大学歴史研究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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