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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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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주회는 1880년 다나카 지가쿠에 의해 창설된 니치렌 불교 단체이다.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는 의미의 명칭과 "본화묘종"이라는 정식 명칭을 사용하며, 니치렌의 가르침으로 니치렌 불교 종파를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성전은 ''법화경''이며, 사도 시겐 묘 만다라를 숭배한다. 국수주의적 성향을 보이며, 1942년 해산되었다가 현재까지 재가주의와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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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주회
개요
명칭국주회 (國柱會)
일본어 명칭国柱会
일본어 명칭蓮華会 (연화회)
일본어 명칭立正安国会 (입정안국회)
영어 명칭Kokuchūkai
주요 정보
설립1884년, 1914년
설립자다나카 지가쿠
본부東京都에도가와구이치노에 6-19-18
국주회 입구
국주회 입구
제망도장 (국주회 본부)
제망도장 (국주회 본부)
관련 단체
관련 단체렌게카이 (연화회)
릿쇼 안코쿠카이 (입정안국회)

2. 명칭과 표어

국주회의 명칭은 니치렌의 3대 서원 중 하나인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리라"에서 지학에 의해 명명되었다. 독립된 종파로서의 정식 명칭은 "'''본화묘종'''"이다. 지학이 만든 조어이며, 전시 일본에서 국가주의의 슬로건으로 많이 사용된 "팔굉일우"를 처음 표방한 것은 국주회였다. "'''니치렌주의'''"라는 표현도 국주회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주의"라는 개념이 메이지 이후 유입된 서양 철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니치렌주의라는 개념은 니치렌교학의 근대적 체계화의 일면을 나타내고 있다.

3. 사상과 신앙

국주회의 주요 가르침 중 하나는 니치렌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니치렌 불교의 여러 종파를 통합하는 것이다.[1] 국주회의 가르침은 강력한 형태의 니치렌주의로 특징지어진다.[1]

국주회의 성전은 ''법화경''[1]이며, 주요 숭배 대상은 사도 시겐 묘 만다라/佐渡始顕本尊일본어인데, 이는 니치렌이 사도 섬에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만다라이다.[1][4]

국주회의 근본 이념은 사찰제도에 의해 형해화된 전통 종문의 개혁과 근대화를 재가주의 입장에서 목표로 하는 것이다.

교학에 있어서 국주회의 공적은 현재도 "'''사자왕 문고'''"나 "'''진세계사'''" 등에 계승되고 있다. 분파한 각 법화종・니치렌종 종파의 통일, 더 나아가 법화 일승 아래 전 종파, 전 종교의 통일(일천사해개귀묘법)을 위한 종교 혁명, 그리고 황조황종의 일본 국체를 법화경 아래 체계화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지학의 사상에 의한 "전국의 신사에 모셔지는 주신은 모두 황조신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나, 법요 시의 예복, 제단의 모시는 방법, 염주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등 신도적인 요소를 강하게 남기고 있어, 법화신도의 단체로서의 색채도 강하다.

본화묘종으로서의 신앙은, 석존을 교조, 니치렌을 종조로 받들고, 본존은 니치렌 대성인의 "사도 시현의 묘법만다라"로 하고 있다.

4. 역사

니치렌 불교 단체인 국주회[1]는 1880년 다나카 지가쿠에 의해 '렌게카이'(Lotus Blossom Society, 연꽃회)로 창설되었으며, 1884년 '릿쇼 안코쿠카이'로 이름을 변경한 후 1914년에 현재의 이름을 채택했다.[1][2] 이 단체의 현대적인 이름은 13세기 승려 니치렌의 저서 ''가이모쿠쇼/開目抄일본어''의 구절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내용은 와레 니혼 노 하시라 토 나란/われ日本の柱とならん일본어(나는 일본의 기둥이 될 것이다한국어)이다.

원래 요코하마에 기반을 두었던 이 단체는 본부를 도쿄, 교토-오사카, 가마쿠라, 시즈오카현 미호로 옮겼다가 최종적으로 도쿄로 다시 이전했다.[1][3]

처음에는 요코하마에 기반을 두었으나, 도쿄로 진출하면서 1884년 (메이지 17년)에 "립정안국회"로 개칭하고 "종교로써 경국의 근본 사업으로 삼을 것"이라고 선언, 재가주의 입장에서 불교의 근대화를 목표로 했다.

1902년 (메이지 35년), 니치렌 불교의 교학을 조직 체계화한 "본화묘종식목"을 발표하고, 1903년 (메이지 36년)부터 오사카 등에서 니치렌 문하 각 교단의 승려들을 모아 본화묘종 연구 대회를 개최했다. 지가쿠는 진무 천황 어릉 앞에서 행한 강연 "황종의 건국과 본화의 대교"에서 니치렌 불교의 국교화를 목표로 하는 왕불명합 사상을 선언했다.

1922년에는 예술을 통한 교화 활동을 표방하며 외곽 단체 "국성문예회"가 조직되어 일본 국체에 기반한 독자적인 "'''국성예술'''"을 전개했다. 1923년에는 의회 정치에 참여할 목적으로 "입헌양정회"가 결성되어 국립계단 건립을 주장하며 천황의 법화경 귀의에 의한 광선유포, 종교 혁명을 목표로 했다. 1929년에는 지학의 차남 다나카 사와지가 총재로 취임했다. 사와지는 제1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했고, 1936년 제1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동회 공천으로 입후보하여 낙선한 다나카 코가 같은 해에 보궐 당선되어 처음으로 제국 의회에 의석을 확보했다. 다나카 코는 1937년 제2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도 입후보하여 재선되었다. 지방 의회와 농회에는 최성기에 100명이 넘는 의원이 소속되어 있었다. 동회는 신체제 운동과 대정익찬회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1942년 3월 17일 결사 불허 처분을 받아 해산되었다.

1926년에는 메이지절 제정의 청원 운동을 계기로 외곽 단체 "메이지회"가 창설되어 애국주의 운동을 선양했고, 1927년에 청원이 실현되어 메이지절이 제정되었다.

대일본 제국 육군 이시하라 간지 중장의 "동아연맹" 구상이나 "세계 최종전론", 나아가 이시하라가 참모였던 만주국 건국의 사상적 배경으로서, 국주회의 사상은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만주국에는 황군 위안대를 국주회에서 파견하여 관동군 군인을 지원했다. 이 시기가 국주회의 역사상 가장 활발했던 시대이며, 닛켄계 제 종교 단체 중에서도 엘리트주의 집단으로 여겨질 정도로, 유수한 저명인사가 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9년(쇼와 14년)에 다나카 지가쿠가 입적하고, 지학의 장남인 다나카 호쿠코쿠가 차대 회장에 취임했다. 1945년(쇼와 20년), 전재로 인해 본부 강당이 소실되었고, 패전과 함께 세력은 현저하게 쇠퇴했다.

현재도 "순정 니치렌주의"를 내걸고 재가주의와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단체로서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우익 사상도 시대에 매몰되어 예전의 활황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2005년(헤이세이 17년), 국주회 창립 120주년 기념식 직후, 당시 회장직에 있던 4대 다나카 데루오카가 교단의 세대 교체, 젊은 피 수혈을 목표로 회장직을 당시 28세였던 장남 유이치로(다나카 소타니)에게 양위했다. 종교 단체의 리더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젊은 나이에 회장(채주)에 취임하는 것에 주목이 쏠렸다.

현재 이 단체는 도쿄도 에도가와구 이치노에에 위치해 있다.[1]

4. 1. 창립 초기 (1880-1914)

니치렌 불교 단체인 국주회[1]는 1880년 다나카 지가쿠에 의해 '렌게카이'(Lotus Blossom Society, 연꽃회)로 창설되었으며, 1884년 '릿쇼 안코쿠카이'로 이름을 변경하였다.[1][2] 현대적인 이름은 13세기 승려 니치렌의 저서 ''개목초/開目抄일본어''의 구절, 에서 유래되었다.

처음에는 요코하마에 기반을 두었으나, 도쿄로 진출하면서 1884년 (메이지 17년)에 "립정안국회"로 개칭하고 "종교로써 경국의 근본 사업으로 삼을 것"이라고 선언, 재가주의 입장에서 불교의 근대화를 목표로 했다. 이후 본부를 도쿄, 교토-오사카, 가마쿠라, 시즈오카현 미호로 옮겼다가 최종적으로 도쿄로 다시 이전했다.[1][3]

1902년 (메이지 35년), 니치렌 불교의 교학을 조직 체계화한 "본화묘종식목"을 발표하고, 1903년 (메이지 36년)부터 오사카 등에서 니치렌 문하 각 교단의 승려들을 모아 본화묘종 연구 대회를 개최했다. 지가쿠는 진무 천황 어릉 앞에서 행한 강연 "황종의 건국과 본화의 대교"에서 니치렌 불교의 국교화를 목표로 하는 왕불명합 사상을 선언했다.

현재 단체는 도쿄도 에도가와구 이치노에에 위치해 있다.[1]

4. 2. 국주회 개칭 이후 (1914-1945)

니치렌 불교 단체인 국주회[1]는 1880년 다나카 지가쿠에 의해 '렌게카이'(Lotus Blossom Society, 연꽃회)로 창설되었으며, 1884년 '릿쇼 안코쿠카이'로 이름을 변경한 후 1914년에 현재의 이름을 채택했다.[1][2] 이 단체의 현대적인 이름은 13세기 승려인 니치렌의 저서인 ''카이모쿠쇼/開目抄일본어''의 구절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내용은 이다.

1922년에는 예술을 통한 교화 활동을 표방하며 외곽 단체 "국성문예회"가 조직되어 일본 국체에 기반한 독자적인 "'''국성예술'''"을 전개했다. 1923년에는 의회 정치에 참여할 목적으로 "입헌양정회"가 결성되어 국립계단 건립을 주장하며 천황의 법화경 귀의에 의한 광선유포, 종교 혁명을 목표로 했다. 1929년에는 지학의 차남 다나카 사와지가 총재로 취임했다. 사와지는 제1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했고, 1936년 제1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동회 공천으로 입후보하여 낙선한 다나카 코가 같은 해에 보궐 당선되어 처음으로 제국 의회에 의석을 확보했다. 다나카 코는 1937년 제2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도 입후보하여 재선되었다. 지방 의회와 농회에는 최성기에 100명이 넘는 의원이 소속되어 있었다. 동회는 신체제 운동과 대정익찬회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1942년 3월 17일 결사 불허 처분을 받아 해산되었다.

1926년에는 메이지절 제정의 청원 운동을 계기로 외곽 단체 "메이지회"가 창설되어 애국주의 운동을 선양했고, 1927년에 청원이 실현되어 메이지절이 제정되었다.

대일본 제국 육군 이시하라 간지 중장의 "동아연맹" 구상이나 "세계 최종전론", 나아가 이시하라가 참모였던 만주국 건국의 사상적 배경으로서, 국주회의 사상은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만주국에는 황군 위안대를 국주회에서 파견하여 관동군 군인을 지원했다. 이 시기가 국주회의 역사상 가장 활발했던 시대이며, 닛켄계 제 종교 단체 중에서도 엘리트주의 집단으로 여겨질 정도로, 유수한 저명인사가 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3. 전후 (1945-현재)

니치렌 불교 단체[1]인 국주회는 1880년 다나카 지가쿠에 의해 '렌게카이'(Lotus Blossom Society, 연꽃회)로 창설되었으며, 1884년 '릿쇼 안코쿠카이'로 이름을 변경한 후 1914년에 현재의 이름을 채택했다.[1][2] 이 단체의 현대적인 이름은 13세기 승려인 니치렌의 저서인 ''가이모쿠쇼/開目抄일본어''의 구절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내용은 와레 니혼 노 하시라 토 나란/われ日本の柱とならん일본어(나는 일본의 기둥이 될 것이다한국어)이다.

원래 요코하마에 기반을 두었던 이 단체는 본부를 도쿄, 교토-오사카, 가마쿠라, 시즈오카현 미호로 옮겼다가 최종적으로 도쿄로 다시 이전했다.[1][3] 현재 이 단체는 도쿄도 에도가와구 이치노에에 위치해 있다.[1]

1939년(쇼와 14년)에 다나카 지가쿠가 입적하고, 지학의 장남인 다나카 호쿠코쿠가 차대 회장에 취임했다. 1945년(쇼와 20년), 전재로 인해 본부 강당이 소실되었고, 패전과 함께 세력은 현저하게 쇠퇴했다.

현재도 "순정 니치렌주의"를 내걸고 재가주의와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단체로서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우익 사상도 시대에 매몰되어 예전의 활황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2005년(헤이세이 17년), 국주회 창립 120주년 기념식 직후, 당시 회장직에 있던 4대 다나카 데루오카가 교단의 세대 교체, 젊은 피 수혈을 목표로 회장직을 당시 28세였던 장남 유이치로(다나카 소타니)에게 양위했다. 종교 단체의 리더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젊은 나이에 회장(채주)에 취임하는 것에 주목이 쏠렸다.

5. 현대의 활동

아오키 오사무에 따르면, 일본회의와의 관계에 대한 AERA 편집부의 취재 및 설문조사에서, 일본회의 관련 단체인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의 모임" 대표 위원에 교단 간부가 취임하고 있다고 한다.[9] 우에스기 사토시에 따르면, 과거에 실시된 보수계 정치 단체 일본회의의 행사 접수에서, 국주회를 포함한 각종 종교 단체별 접수 창구가 마련되어 참가자를 조직 동원한 적이 있다.[10]

6. 니치렌 성인 문하 연합회

1960년(쇼와 35년), 국주회는 니치렌 문하의 연계를 목표로 하여, 니치렌 쇼닌 문하 연합회를 주최, 발족시켰다. 각 법화종 종문과 많은 공동 사업에 관여했으며, 주요 사업으로는 1983년(쇼와 57년) 니치렌 쇼닌 700년 원기 기념 사업으로, 작사 니시카와 미쓰루, 작곡 마유즈미 도시로에 의한 오라토리오 "니치렌 쇼닌"을 도쿄 교향악단의 연주로 전국 각지에서 상연했다. 그 후에도 1988년(쇼와 62년), 히에이 산 개창 1200년 기념 법요, 2003년 입교 개종 750년 기념 사업 "대일련전", 2009년 입정안국론 주진 750년 기념 사업 "니치렌과 법화의 명보전" 등이 있다.

다음은 니치렌 쇼닌 문하 연합회 가맹 단체의 목록이다.


  • 국주회
  • 니치렌종
  • 겐폰 홋케종
  • 니치렌혼종
  • 홋케종 진몬류
  • 홋케종 신몬류
  • 홋케종 혼몬류
  • 혼몬 홋케종
  • 혼몬 부쓰류종
  • 니폰잔 묘호지
  • 교토 니치렌 쇼닌 문하 연합회

7. 역대 채주(寨主)

국주회에서는 회장을 '''채주'''라고 부르며, 그 지위는 창설자인 다나카 가문에 의한 세습제이다. 역대 채주는 다음과 같다.


  • 다나카 지가쿠
  • 다나카 호쿠
  • 다나카 코우라
  • 다나카 키큐
  • 다나카 소우코쿠

8. 저명한 회원

1924년 전성기에는 국주회의 회원이 7,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3] 다카야마 초규와 미야자와 겐지[5] 한때 국주회의 회원이었다. 단체의 공식 웹사이트는 계속해서 그들을 회원으로 언급하고 있지만,[6][7] 결국 그들은 다나카의 민족주의적 견해를 거부했다.[3]

가네코 야헤이 (초대 교토국장), 고노에 아쓰마로 (고노에 후미마로의 아버지), 이시하라 간지, 사토 키쿠코 (기타하라 하쿠슈 부인), 다케미 타로, 후지마키 요시오, 칸자키 타케오 등이 회원으로 활동했다.

9. 관련 인물

다카야마 초규와 미야자와 겐지[5]는 한때 국주회의 회원이었다.[3] 1924년 전성기에는 이 단체의 회원이 7,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3] 단체의 공식 웹사이트는 계속해서 그들을 회원으로 언급하고 있지만,[6][7] 결국 그들은 다나카의 민족주의적 견해를 거부했다.[3] 이외 관련된 인물로는 쓰보우치 쇼요, 고노에 후미마로, 도조 히데키, 이타가키 세이시로, 나카자토 카이잔, 쿠니이 젠야, 우시지마 타츠쿠마 등이 있다.

10. 각주

wikitext

참조

[1] 간행물 Britannica Kokusai Dai-hyakkajiten Britannica Japan Co. 2007
[2] 논문 Ajia no Bukkyō-nashonarizumu no Hikaku-bunseki http://publications.[...] International Research Center for Japanese Studies
[3] 서적 By Imperial Edict and Shogunal Decree: politics and the issue of the ordination platform in modern lay Nichiren Buddhism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4] 웹사이트 Risshō Ankoku no jitsugen e http://www.kokuchuka[...]
[5] 서적 A History of Japanese Literature: Volume 4: Dawn to the West — Japanese Literature of the Modern Era (Poetry, Drama, Criticism)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9
[6] 웹사이트 Takayama Chogyū http://www.kokuchuka[...]
[7] 웹사이트 Kenji Miyazawa http://www.kokuchuka[...]
[8] 웹사이트 (1ページ目)伝統的右翼がネトウヨを叱る? 宮沢賢治も信じた国柱会は今 https://dot.asahi.co[...] 2017-05-05
[9] 서적 日本会議の正体 平凡社 2016
[10] 논문 日本における『宗教右翼』の台頭と『つくる会』『日本会議』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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